◈예수님의 고향 눅4:16-30 10.10.10.설교스크랩
▶어느 작가인들 고향을 예찬하지 않은 작가는 없습니다. 주1)
예수님도 고향을 사랑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고향을 제일 먼저 찾은 것을 보면,
예수님도 고향을 심히 사랑하시고, 저들이 복 받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가 태어난 이스라엘도 심히 사랑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예루살렘을 바라보시고 심히 우시는데
영적으로 눈이 어둡고 하나님을 멀리한 그 백성이 받을 미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심히 많은 통곡을 하고 계셨습니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대체로 보면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고향에 가서 삽니다.
트루먼 대통령도, 루즈벨트도, 유명한 카터 대통령도
여러 분들이 고향에 가서 지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시나 레이건 다 고향을 좋아하고, 고향에 가서 책을 읽고,
카터 같은 분은 고향 교회를 출석하며 주일학교를 지금까지 돌보고 있습니다.
노후에 고향 냄새 맡으면서 살아가는 분들은, 정말 행복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고향에 가셔서 말씀을 전하셨는데 실패하셨습니다.
고향들이 사람들이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너무 잘 아니까 그랬을 것입니다.
저도 가끔 가다가 고향에 귀하신 목사님들하고 같이 가면,
고향 사람들이 일하다가도 “삼환이 오냐?” 합니다.
다 옛날 같이 놀던 친구들이니까 반갑지요.
그 소리 들을 수 있는 곳이.. 고향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대체로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 라는 겁니다.
왜요?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육적으로 살아온 지난날을 배경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하나님의 아들로 공생애에 들어서서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향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목수의 아들이요, 옆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이고,
가난하고 헐벗고 어려웠던 그 집, 그 소년을 생각할 때,
예수님을 환영하고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쫓아버립니다. 욕하면서
“당신의 형제들은 다 우리하고 같이 있지 않느냐. 누이들도 같이 있는데 너 혼자 뭐가 메시아냐.”
이러고 가서 붙잡아서 창피를 주고 동네 밖으로 끌고 갑니다.
죽으라고 큰 낭떠러지에 밀어 던지려고 그러는데
예수님이 기적적으로 빠져나오신 것을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고향 사람은 좋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나사렛은 세계적인 가장 축복이 되었을 터인데
예수님을 받아들인 나라들, 런던, 로마 예수님을 받아들였던 모든 도시들, 국가들이
세계 최고가 되었는데,
만약에 예수님을 받아들였더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났을 터인데
고향은 배척하므로 축복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저주받는 나라가 되고 도시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 원인은 딱 하나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육적으로 본 것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 어떤 눈으로 사람을 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볼 때 하나님을 바라볼 때 교회를 바라볼 때
언제나 영적인 눈으로, 영적인 마음으로, 믿음으로, 성령으로,
신령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 봐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바라볼 때도 물론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편에서 나를 봐야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부터 나를 봐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지고 나를 봐야 합니다.
내가 귀한지, 좋은지, 잘났는지 못났는지는 세상 기준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고후5: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육체로 알았습니다. 그때는 예수님을 핍박했습니다.
예수 믿고 예수 따르기보다 무슨 예수를 믿느냐고, 무슨 예수를 증거하느냐고,
나사렛 예수, 목수의 아들 예수, 더구나 죄수인데
로마의 형법에 의해서 사형을 받은 죄수를 무슨 메시아냐 그랬습니다.
오히려 핍박을 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다가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육으로, 목수의 아들로,
세상의 기준으로 봤기 때문인 것입니다.
영적으로 주님을 봤을 때..
사도 바울은 예수 앞에는 자기가 가장 큰 죄인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죄인 중의 괴수임을 깨달았습니다.
나를 구원할 이는 예수밖에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든 것을 갈라놓는 것입니다.
주님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영적으로 봐야 합니다. 믿음으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노벨평화상이 어제 발표됐습니다.
류사오보라고 하는 중국반체제인사가 노벨평화상에 당선이 됐습니다.
세계가 축하할 일입니다.
그러나 류사오보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중국의 감옥에 있습니다.
1989년 6월 4일 천안문 광장에 시위를 주도한 분이 류사오보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지금 노벨상을 탄 것입니다.
중국은 깜짝 놀란 것입니다. 중국은 노벨상위원회를 향하여
“너희는 무슨 죄수를 향하여 상을 주냐. 노벨평화상 그렇게 줄 곳이 없느냐.
이 사람은 천하의 나쁜 죄인인데 범죄인을 향해서 무슨 상을 주냐?”
그러나 우리는 어떤 눈으로 보느냐, 어디에서 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중국이 볼 때 류사오보는 나쁜 사람이지만, 세계가 볼 때는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힘쓰는 분입니다.
중국도 지금 당장으로 보면 류사오보가 나쁜 사람 같지만
멀리 바라보면, 류사오보를 따라가야
앞으로 중국이 국제 사회에서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중국이 정말 훌륭한 나라가 되려면 류사오보를 지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중국은 지금 중국의 입장에서만, 독재정권의 입장에서만
류사오보를 보니까 나쁜 사람인 것입니다.
자유와 평화, 인권을 귀히 여기는 인류전체, 세계 평화의 입장에서 놓고 보면
류사오보는 훌륭한 분인 것입니다.
어디에서 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어디에서 보느냐,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 앞에서 보면, 믿음으로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세주인 것입니다.
그러나 육으로 놓고 보면 예수님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목수의 아들입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났지 않습니까?
세상에, 얼마나 어려우면 마구간에 태어납니까?
예수님은 가난합니다. 그래서 막6장에 보면
이미 아버지도 일찍 떠나시고 어머니와 함께 지냅니다. 남매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아들만 4명이고, 누이들도 많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족들이 가난하게 살아갑니다.
이렇게 비천하신 예수님, 더구나 죽으실 때는 죄인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데,
그런 면을 놓고 보면 예수님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누가 따르고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로마가, 세계가, 인류가, 미국이 예수님을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본 민족마다, 그 민족이 축복을 받고 영광을 얻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예수님을 어떻게 보고, 믿고, 따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국가든, 민족이든, 세계든,
예수님을 무시하고 예수님을 멀리하는 민족은.. 어느 민족이라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갑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바라보고
예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는 영적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이 남미로 갈 때 남미로 간 사람은 무엇을 찾아갔다 그랬습니까?
육을 보고 세상 것을, 물질을, 황금을 얻으려고 남미로 몰려들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배를 타고 무장을 하고 남미로 몰려 들었습니다.
그러나 남미로 간 사람은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그 나라도 안 되고, 갔던 사람도 안 되고 다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미로 간 사람은 어떻게 됐습니까?
미국으로 간 사람은 예수님 잘 믿으려고 찾았습니다.
예수님 잘 믿는 나라가 어디일까, 예수님 잘 믿는 것을 소원하고,
영적인 꿈을 가지고, 어디 가서든지 하나님 잘 믿는 나라를 만들자고 찾아간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들은 가자마자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예배드리고,
은혜 받고, 기도하고, 하나님 중심의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쫓아가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갔는데,
영적으로도 잘 되고, 육적으로도 잘 되고 세계 최고인 나라를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동독 사람은 공산주의를 따라 갔습니다. 유물주의를 따라 갔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육의 것을 쫓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 안 되었습니다.
서독 사람은 하나님을 쫓아 교회를 세우고 성령을 따라,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서독은 미국 다음으로 잘 사는 부유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승만 대통령이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국가로 만들고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제헌 이후의 첫 회의를 목사님이 나와서 기도하게 하고 우리나라를 세웠습니다.
우리나라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으로 사는 나라가 되어서
한없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를 세워서 물질을 따라 가고
하나님을 버리고 육적으로 쫓아갔는데, 육도 안 되고 영도 안 되는 것입니다.
내년에는 김일성 수령 탄생 백주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선군정치 백주년의 목표가 뭐냐?
북한은 전 인민들에게 소고기국과 쌀밥 주는 것을 백년의 목표로 잡은 겁니다.
인류를 위하여 봉사하는 위대한 일에 꿈을 가지고 도전하고 희생하고 나아가는,
훌륭하고 건강한 인격을 가진 영적인 민족으로 기르지 않고
소고기국하고 쌀밥을 먹는데다 맞춰서 나라의 목표를 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겁니다.
내년에 북한이 소고기 먹을 수 있습니까? 아마 없습니다.
우리는 목표를 소고기에 맞추지 않았는데, 소고기 얼마나 잘 먹는지 모릅니다.
전 세계 소고기 다 가져다가 먹고, 지금 소고기를 먹는 정도가 아니고
고깃살 부위가 어디인지 골라서 먹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는 소고기라고 그냥 안 먹습니다.
보들보들 해야 먹고 안 그러면 먹지 않습니다. 팔리지도 않습니다.
쌀밥, 지금 우리는 쌀밥시대가 다 지나서 다시 보리밥으로 돌아갔습니다.
요새는 오히려 나물 값이 더 비싸서, 그전에는 상추에 소고기를 싸먹었는데,
지금은 소고기로 상추를 싸 먹습니다. 지금은 뒤바뀌었습니다.
얼마나 우리가 복을 받은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소고기’에 맞추면 안 된다 라는 겁니다.
사람이 ‘먹는 데’ 목표를 맞추지 말고, ‘하나님이 경외하는 데’에 맞춰야
영육이 다 잘 된다 라는 것입니다.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못 본 것입니다.
오늘 세상을 볼 때 여러분 육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가면 실패합니다.
여러분이 육적인 것을 의지하고 육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면
여러분의 인생은 반드시 길을 잃고, 방황하고, 부끄러움 당하고, 고통당하고,
불행하게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결혼할 때도 오늘 많은 사람들의 결혼의 조건이 무엇입니까?
건강입니다. 물질, 외모, 좋은 직장, 좋은 학력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꼭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핵심이 빠졌습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사랑하느냐?’ 하는 겁니다.
그러나 물질, 외모, 좋은 직장, 좋은 학력 등의 소위 ‘조건’만 따질 때,
오늘 이런 것이 다 정욕의 불을 태우는, 온갖 교만의 불을 태우는 화인성 물질인 것입니다.
이거 가지고 모두다 정욕으로 온갖 음욕과 세상의 향락을 쫓아가니
인격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진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육의 것도 귀합니다.
그러나 육을 앞세워서 육의 눈으로만 보고
영을 무시하고, 육적인 것만 구하고 육적인 것만 따라가면
영육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은 하나님을 쫓아간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쫓아갔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다 등 뒤로 버렸습니다.
육을 쫓아갔던 롯은 소돔성으로 너무 좋은 곳으로 갔지만.. 그는 멸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갔던 아브라함은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다 버리고, 애굽의 바로가 되는 것도 버리고,
하나님을 쫓아감으로써 인류 역사에 최고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세상’이라고 하는 이 현실 세계는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무한한 기쁨을 주는 것 같지만
함정이 끊임없이 있는 것입니다.
그 호화찬란한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하는 그림 속에는
수많은 독소가 있고, 위기가 있고, 함정이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올무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육의 아름다움과 육적인 것은 오래 갈 수 없다 라고 했습니다.
벧전1:2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 그랬습니다.
꽃은 시듭니다. 가을서리 한 번만 오면 모든 꽃잎은 다 떨어지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잠깐인 것입니다.
성령으로 살고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 은혜를 귀히 여기고,
기도의 사람, 믿음의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육으로 살면 늘 속습니다. 사람에게 속고 세상에게 속습니다.
나도 안 되고, 너도 안 되고, 모두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육적인 사람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영적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내 편에서 보면 모르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있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기준이 그렇습니다.
내가 부자고, 성공해서 사랑하는 그런 기준이 결코 아닙니다.
내가 부모님 사랑하는 것과,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나는 그냥 자녀이기 때문에 사랑하지만
부모님은 나를 낳은 과정이 있기 때문에, 나를 기른 과정이 있기 때문에,
자녀에 대한 사랑은 부모에 대한 사랑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엄청난 것입니다.
기준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노아시대 때 사람들을 하나님이 물로 다 심판한 것은
사람들이 다 ‘육적’이 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창6:3
보니까 하나님이 영이 떠나버렸습니다. 영이 죽어 버렸습니다.
정욕으로 날뛰고, 음욕으로 날뛰고, 온갖 악한 것으로 날뛰고 있는 인간,
욕심으로 온갖 불의와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무 가치가 없었던 것입니다.
▶대학에서 저도 대학의 이사장으로 봉사를 해 봤습니다.
대학은 입학시험을 칠 때,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습니다.
그 사람, 누구 아들이냐 그런 것 안 봅니다. 시험지 갖다 놓고 점수 가지고 봅니다.
그 커트라인 아래는 다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영적인 커트라인 아래로, 육적으로 떨어지면.. 버리는 것입니다.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물로 불로 심판하는 것입니다.
농구감독은 선수를 볼 때.. 농구를 잘할 수 있느냐/없느냐.. 그것만 봅니다.
축구감독은 선수를 볼 때.. 축구를 잘하느냐/못하느냐.. 그것만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볼 때는.. 감독과는 다른 눈으로 봅니다.
가끔 가다가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간호사가 바꿔 가지고
엄마는 모르고 와서 10년 길렀는데,
자기도 안 닮았고 아버지도 하나도 닮은 데가 없습니다. 수상하게 생각합니다.
온갖 정성 다 쏟고 중고등학교까지 보내다가도, 이상해서 DNA검사 딱 해 보면
내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 보고 그 순간부터 애는 같은 애지만
그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친 아들 찾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이 아들이 아니라, 있어도 아들이 아닙니다. 요만큼 정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잘났느냐 못났느냐, 공부를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라
내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순간에 정이 떠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 인간이 육체가 되어서, 육적으로 바뀌어버려서
영적으로 죽어버리고,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하나님 편에서는 한순간 정이 뚝 끊어져버리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가정주부가 음식이 부패하면,
값이 많이 나가든 못 나가든..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처럼
하나님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때가 되면 다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멸망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아 멸망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버리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버리는 것 아닙니다.
부모나 자식이 사람 버리는 거 절대로 아닙니다.
▶오늘 자식이 부모를 갖다 버렸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버리니까.. 자식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면.. 친구도 날 버리고, 세상이 다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
갈 데도 올 데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나를 버릴 자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다 버려도.. 나는 살 수 있습니다. 아무 것 없어도 나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고 지키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힘이요,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 축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볼 때도 너무 육적으로 보지 말아야 속지 않는 것입니다.
친구를 사귀든, 사람을 사랑하든,
사람과 손을 잡을 때도, 사람을 볼 때도, 세상을 볼 때도,
언제나 신앙의 눈으로 봐야
세상에서 속지 않고, 실패하지 않고, 끝까지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국제 혼인을 한 다문화 가정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교인들 눈은, 아직까지도 외국인 근로자를 우습게 알고, 무시하고, 그거 안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모든 교수들, 대학총장 하시는 분들도
과거에 다 미국에서 근로자 했고, 접시 닦고 하다가,
여기 와서 총장 되고 이랬는데,
우리도 다 그런 일을 거쳐서 온 건데, 사람을 그런 눈으로 보면 안 됩니다.
신앙의 눈, 영적인 눈을 가지고 봐야 된다 라는 겁니다.
지금 세계를 움직이는 최고 지도자가 오바마인데,
18살인 백인 미국 여자가 케냐 흑인하고 결혼해서 오바마가 태어난 겁니다.
흑인 가정, 그리고 이혼하고 어머니는 인도네시아 분하고 결혼하고 복잡합니다.
그러나 그 가정에 미국 대통령이 나올 줄 어떻게 알았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사람을 볼 때 절대로 그런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을 보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본문에 있는 대로
눈 먼 자를 찾아가고, 병든 자를 찾아가십니다.
병든 것만 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병이 치료받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위대한 날이 올 줄로 믿습니다.
가난한 것 보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 말미암아 그를 축복하실 미래를 바라보고 사람을
사랑해야 되고 가까이해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신앙의 눈을 가져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고향 사람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신앙이 없었습니다.
영적인 눈을 감고 모두 육적인 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하고
주님을 저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길어서 후략)
...........................
주1)
고향을 노래하는 노래는, 참 많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의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은상 선생님의 곡입니다.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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