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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주 안에서 행할 일

LNCK 2012. 4. 11. 20:59

◈성도가 주 안에서 행할 일           빌4:1~3      빌립보서강해10, 출처



▲들어가는 말

나의 [사모하는 형제, 자매]에게 가장 소중한 몇 마디 권면을 남겨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말을 남기시겠습니까?


나의 [기쁨인 아들, 자랑이요 면류관인 딸]에게 가장 소중한 몇 마디 당부의 말을

남겨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말을 남기시겠습니까?


사도 바울께서 그분이 사모하고 사랑하였던 빌립보 교우들에게 남겼던 권면을 통해

그 답을 얻기 원합니다.



◑ 1. 주 안에 서라.


빌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주 안에 서라!’ you should stand firm in the Lord! 

당시 빌립보 교인들은 風前燈火(바람 앞에 등불)와 같은 형편에 놓여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으로부터, 기독교는 적대적인 세력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또한 유대교로부터, 기독교는 회당 밖으로 내몰리고 있었습니다.

  

고전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고 전하는 것을 꺼림칙하고 미련하게 보는 세상에서

빌립보 교인들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들어야 할 복음이 무엇이겠습니까?


‘주 안에 서라!’는 것입니다.

주 안에 굳게 서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흔들릴 수밖에 없는 외부적 환경 가운데서,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사도바울은 성령의 계시를 받아서,

그들에게 확실한 권면의 말씀을 전합니다.

- '주 안에 서라!' you should stand firm in the Lord! 


어떻게 하는 것이 주 안에 서는 것일까요?

- 주 안에 서서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구원이 그분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 서서 하나님 구원을 경험한 다윗은 외칩니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시62:2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었을 때,

그는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벌벌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가톨릭과 그 권세 아래 있는 권세는 너무 막강했습니다.

제국의 왕들까지 교황 앞에서 벌벌 떨던 시대였습니다.


'주 안에 서라!'

그는 주 안에 서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를 바라보았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주 안에 서서 하나님 구원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담대해졌습니다.


그가 황제 앞에 섰던 보름스WORMS 국회의사당에서,

그 건물의 기왓장 숫자만큼 많던 마귀들 앞에서도, 루터는 떨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는 시46:5절을 즐겨 암송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시46:5


위 구절에 의거, 이런 찬송을 지어서 불렀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우리는 흔들리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요.

흔들리는 세상에, 내 인생의 기초를 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고형원 형제가 만든 복음송(오직 믿음으로)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그렇습니다. 흔들리지 않으신 하나님께 승선하는 일입니다.

주 안에 서 있는 자에게 흔들림이 없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당시 영국 모든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 휩쓸려 갈 수밖에 없는, 절박한 시대에 살았습니다.

'주 안에 서라!'


그는 주 안에 섰습니다.

광장에서 주 앞에 섰습니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벌판에서 주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교회밖으로 내몰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세계를 그의 교구로 편입해 주셨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에 흔들리고 계십니까?

요동하는 바다 물결처럼 흔들리고 계십니까?

이리저리 밀리는 모래더미같이 흔들리고 계십니까?

흔들리는 갈대처럼 흔들리고 계십니까?

'주 안에 서라!' you should stand firm in the Lord! 


출14:13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주 안에 서십시오. 하나님께서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폭풍까지도 잔잔케 하시는 주 안에 서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요동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흔들리지 않으시는 주님 안에 서시면 요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동치 않으시는 반석이시요, 산성이십니다.


삼상12:16 (사무엘의 말)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


우리는 흔들리는 갈대와 같습니다.

쉽게 흔들리고, 쉽게 약해집니다.

그렇지만 흔들리지 않으시는 주님 안에 서십시오.

반석 되시고, 산성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2.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4: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be of the same mind in the Lord

사람은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경영하는 것이 자신을 경영하는 것이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자신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마음은 땅과 같아서, 하나님을 위해 기경하면.. 하나님께서 마음을 활동무대로 삼으십니다.

광야와 같이 방치해두면.. 마음은 마귀가 또한 역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


유오디아와 순두게, 그들은 빌립보 교회에서 나름대로 충성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마음이 달랐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저들의 마음을 서로 틀렸다고 고소합니다.

두 마음이 서로를 틀리다고 고소하고 있었어요. 이것은 비극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질 때, 상대의 마음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를 뿐인데..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십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내 안에 상처가 있을수록, 이웃과 트러블이 생기기 쉽습니다.

사람마다 크고 작은 상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 마음이 변덕을 부립니까?

나의 마음에 상처가 덧날 때입니다.


어떤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나에게 상처가 있으면,

작은 사건 속에서도 아프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부딪쳐도 지나친 반응을 보입니다.


더 나아가면 상대를 나쁘게 몰아갑니다.

너무 아프거든요.

그러니까 같은 마음을 품기 힘이 듭니다. 마음에 변덕이 나요.


자기 마음에 상처가 있으면, 탁구공이 날아와서 나를 때려도, 정말 아픔을 느낍니다.

보통 사람은, 탁구공에 맞으면.. 아프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은.. 우연히 날아온 탁구공에도,

아픔을 느끼고, 나중에 그것을 곱씹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상처에 대하여 아파할 수 있습니다.

상처는 누구나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다른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성령은 한 분 이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따를 때,

다른 성향의 두 사람도, 상처가 민감한 두 사람도..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서로 주님의 마음을 품을 때, 같은 마음이 됩니다.


벧전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고전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경청하세요. 같은 마음이 됩니다.


같은 마음은.. 자신의 존재를 내려놓고,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입니다.

같은 마음은 상대방을 듣는 것입니다.

같은 마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같은 마음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같은 마음은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자의 마음입니다.

같은 마음은 상대방을 향해 열린 마음입니다.

같은 마음은 상대방을 품는 마음입니다.

같은 마음은 상대방 안에서 자신을 찾는 마음입니다.


빌2: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믿음의 동역자들을 도우시라!


빌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도우라’ 

여기서 도우라 help 라는 말의 헬라어는 ‘붙잡다, 체포하다, 임신하다’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도망 못 가도록 팔로 꽉 붙잡아 주라’는 뜻입니다.

또는 ‘여인이 태아를 배에 붙잡고 있듯이, 팔로 꼭 붙들고 있으라’는 뜻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동역자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도 됩니다.

 

눅5: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도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우리는 자기가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똑같이.. 이웃을 열심히 돕는 것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나 혼자 개인전에서 이겨서는 안 되고,

모두가 함께, 단체전에서 승리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척 스윈돌 목사님의 설교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저녁 목사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 레오나르도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하여 보게 되었습니다.

마치고 지휘자와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되자

그를 좋아하는 팬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물어 보았습니다.

 “번스타인 선생님, 수많은 악기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악기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는 재치 있는 말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제2바이올린입니다. 

제1바이올린을 훌륭하게 연주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1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과 똑같은 열의를 가지고

제2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은 참으로 구하기 어렵습니다.


프렌치 호온이나, 플롯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1연주자는 많이 있지만, 그와 함께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어 줄

제2연주자는 너무나 적습니다.


만약 아무도 제2연주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음악이란 영원히 불가능하지 않겠어요?”


조연도.. 기쁘게 감당할 일입니다.

무대 뒤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조연자로 섬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조연은, 주연 못지않게, 연극이나 영화에서 중요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모든 사람은 위대해 질 수 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섬기기 위해 학력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신분이 요청된 것도 아닙니다.

섬김을 위해서는 예수님을 닮은 섬기는 마음이 필요할 뿐입니다.


영적 자녀는 동역 속에 태어납니다.

펭귄이 새끼를 낳기 위해 교미를 하고, 그 후에 알을 낳고,

알을 낳은 후에 알이 부화하는 모든 과정을 담은 영화를 보았습니다.


펭귄에게서 배운 지혜 가운데 가장 소중한 지혜는

펭귄은 결코 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펭귄은 항상 떼를 지어 움직입니다.


펭귄은, 알을 낳고, 부화하기까지.. 부부가 훌륭하게 동역하였습니다. 주1)


또한 펭귄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지게 되면 외로워서 죽고, 추워서 죽게 됩니다.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죽게 됩니다.

펭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펭귄은 그 추운 겨울, 수개월 동안 밤이 계속되고 혹독한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

그 추위를 견디기 위해 서로 몸을 맞대어 체온을 유지합니다.


교회는, 동역자를 돕는 기능이 살아 있어야 건강합니다.

선교사를 도와야 교회답습니다.

이웃 교회를 도와야 합니다.

이웃 목회자를 도와 믿음의 동역을 해야 합니다.

연약한 이웃을 도와야 합니다.


20세기에서 강조되던 교회의 이미지는 ‘종’입니다.

주님께서 ‘타자를 위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교회도 역시 ‘타자를 위한 공동체’여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즉 고난 받는 종이어야 하며

따라서 종된 교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마치는 말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무엇을 기뻐하라는 말씀일까요?


    1. 주 안에 서기를 기뻐하라는 말씀이지요.

    2. 같은 마음 품기를 기뻐하여야 합니다.

    3. 믿음의 동역자를 돕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이 3가지를 성실히 준행해서 살면,

성도의 삶에, 샘솟듯 기쁨이 생기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십자가를 지는 아픔과 고통이 수반됩니다.

우리가 성도들이 갖는 기쁨은 맹목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세상의 고통을 충분히 통과한 기쁨입니다.


주 안에 서서

같은 마음을 품고

동역자를 힘써 도움으로써

이런 기쁨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주1)

펭귄은 바다에서 살다가 일 년에 한 번씩

그들이 본래 태어났던 아주 추운 장소로 새끼를 낳기 위해 찾아갑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짝짓기를 합니다. 서로 짝짓기를 하면 일 년 동안 그들은 부부가 됩니다.


우리가 볼 때는 펭귄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그들 모두는 다릅니다.

펭귄에게는 그들만의 언어가 있고, 그들만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들만의 구별법이 있습니다.

그들은 짝짓기를 한 후에 한 번의 사랑을 나눈 다음에 암컷이 알을 낳기까지 기다립니다.

알을 낳기까지 그들은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의 몸 안에 저장해 두었던 음식으로 생존합니다.


알을 낳은 후에 암컷은 그 알을 수컷에게 조심스럽게 넘겨주고

음식을 먹기 위해 바다로 떠납니다. 암컷이 음식을 먹으러 바다로 떠나는 이유는

그가 알을 낳기까지 음식을 먹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낳은 알이 부화하면 그 새끼에게 음식을 먹이기 위해서입니다.

엄마 펭귄이 바다로 떠나 있는 동안 수컷은 그 알을 품고 몇 주를 지냅니다.

그때 수컷은 자기 체중이 반으로 줄어드는 고통을 감수합니다.


마침내 알이 부화하면, 수컷은 새끼를 위해 자신 안에 남아 있는

거의 마지막 음식을 토해 내서 새끼에게 먹입니다.

그 무렵 엄마 펭귄은 음식을 몸에 지닌 채 돌아와서 새끼에게 음식을 토해 내어 줍니다.

    

엄마 펭귄이 돌아오면 수컷은 음식을 먹기 위해 급히 바다로 떠납니다.

급히 수컷이 바다로 떠나는 이유는, 알을 부화하기까지 소모된 체중을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조금만 더 지체하면 탈진해서 바다까지 나가지 못한 채 지쳐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펭귄이 한 마리 새끼를 재생산하기 위해, 이토록 엄청난 값을 지불하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무엇보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부부가 동역하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펭귄보다 엄청 큰 사랑을 받고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가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