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라이트
1. 하나님은 대적을 물리쳐 주시기도 하지만, 그와 똑같이, 대적을 데려오시기도 하십니다.
2. 룻은 선택을 잘 했고, 또한 시모에게 충성했습니다.
하나님은 충성하는 사람을 사랑해 주십니다. 그래서 룻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3. 룻이 나오미, 보아스, 동네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축복의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주, 영원히 잘 되었습니다. 우리도 사람들에게 축복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4. 우리 모두는 룻과 같은 이방인이고, 보아스 같은 신랑을 만나서 왕의 족보에 들게 되었습니다.
5. 그 외에도 알찬 내용이 많습니다.
◑악에서 건지시지만, 악을 데려오기도 하십니다.
전에는 우리가 사람의 시각에서 <사사기>를 보았는데,
지금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에서 <사사기>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악순환에 처해서 끊임없이 내리막길로 내려갔지만,
사실 사사기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은 아주 선명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대적들을, 그들 앞에서 전부 쫓아내지 않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대적을 보내어 그들을 공격하게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고,
그러자 하나님은, 사람을 보내어, 그들의 처한 곤경에서 구해 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속해서 개입하셨다고 봅니다. 그분의 인내심이 놀랍지 않습니까?
비록 이스라엘 사람들이 끊임없이 악순환을 거듭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어난 사건들은, 사실 하나님이 배후에서 섭리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상황을 계속해서 장악하고 계셨습니다.
그 모든 일에, 하나님이 그들과 계속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에서의 하나님은,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실 뿐 아니라,
또한 우리를 죄악을 대면하게도 하십니다. *섭리로
그래서 우리는 매일 주기도문으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하고 기도합니다. *시험에 넘겨지지 않게 하소서
당신도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이 두 가지 (from sin, to sin) 일을 다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병자를 치료하지만, 또한 사람을 병에 걸리게도 합니다.
성경은 눈먼 자를 보게도 하지만, 또한 눈이 성한 사람을 눈멀게도 합니다.
마치 사도행전의 구브로의 총독 때처럼 말입니다. *행13:11, 박수 바예수, 엘루마
하나님의 능력은, 죽은 사람을 살아나게도 하지만,
또한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사람더러 죄악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도 있고, 또한 사람을 죄악에게 넘겨주기도 하십니다. from evil, to evil
그래서 교회가 징계할 때, 그들을 사단에게 내어주었다고 말씀하지요. to Satan, 딤전1:20, 고전5:5
물론 교회는 성도들 사탄으로부터 지키고 구해내지만 말입니다. from Satan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의 두 방면을, 우리는 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사기에서 대적을 물리쳐 주시기도 하시고, 대적을 데리고 오시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모리(블레셋) 사람도 불러오셨습니다.
아모스 9장에서 ‘하나님이 유다를 애굽에서 끌어내실 때, 블레셋도 갑돌 크레타 에서 끌어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두 부류의 사람을 동시에 가나안에 데리고 들어오셨고,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잘못 행할 때, 그들을 징벌하는 하나님의 택하신 도구였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블레셋을 갑돌에서 데리고 오셨는데,
애굽에서 끌어내어 온 유대인들과 동일한 곳 가나안 에 두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거역할 때, 하나님이 다른 어떤 민족보다 블레셋 사람으로, 그들을 징벌하셨어요.
그래서 성경에 블레셋 사람들이 자주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사사기에서 백성들이 버벅거린 두 가지 이유
여러분, 사사기가 아직도 ‘악순환’의 연속에서 나와, ‘직선’적인 생명의 역사로 들어가지 못했는데,
이것은 왜일까요? 그 이유를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1. 첫 번째 원인은, 이것 또한 교회에서 배워야 할 교훈인데요,
교회에서 2세대의 성도들이, 1세대보다 믿음이 연약합니다.
부모는 어려운 환경에서 주님을 믿었고, 그 자녀들이 교회에서 자라났지만,
믿음의 질이 틀립니다. 모든 교회마다 2세대 성도의 문제가 있습니다.
3세대, 4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윗세대의 신앙을 물려받았을 뿐입니다. *모태신앙과 비슷
사사기에서도, 새 세대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또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역사도 몰랐습니다.
이것이 사사기의 한 가지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2세대의 성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대는 자신들의 소견에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지요.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은 행하지 않고, 율법을 무시하는 세대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했고, 주님이 행하신 구원 사역도 잊어버리고,
그들이 구원 받았다는 것에 대해 아무런 감사도 없었습니다.
▶2. 두 번째는, 2세대의 지도자 문제였습니다.
매번 지도자가 살아있을 땐 괜찮았지만, 죽으면 상황이 악화되어 갔습니다.
기드온이 죽고 난 후, 삼손이 죽고 난 후,
지도자의 공백 기간이 생겼고, 그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른 나라에는 왕조가 있어서, 지도자가 끊임없이 계승되었습니다.
그들은 왕실 계보가 있었지만, 이스라엘에는 아직 없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습니다. 사사기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이러했습니다.
기드온이 백성들을 미디안으로부터 구원했을 때,
백성들은 기드온에게 ‘당신이 우리의 왕이 되어주시오. 그리고 당신의 아들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다스려 주시오’ 라고 요청했습니다.
다시 말해, ‘당신이 왕조를 세워서, 우리에게 계속 왕이 있게 해 주시겠어요?’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아주 지혜로워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에게 이미 왕이 계시니라. 여호와가 바로 너희 왕이시니라.
너희들의 진짜 문제는, 바로 하나님을 너희 왕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왕위를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아비멜렉이란 자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의 이야기를 설명하기를 잊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왕이 되고 싶어 했지요. *기드온의 한 아들
그가 왕이 되기 위해 자기의 모든 형제들(70명)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했어요.
하지만 그 중 한 형제는 도망했습니다. *요담, 삿9:5
아비멜렉의 마지막 결말이 아주 불행한데,
아비멜렉이 한 성을 포위했을 때, 어떤 한 여자가 맷돌을 그의 머리위에 떨어뜨려서
그가 갑자기 거의 죽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가 급히 사람을 불러, 자기를 찔러 죽이게 하였는데,
이는 ‘그가 여자의 손에 죽었다’고 소문이 날까봐 염려하였습니다.
그렇게 아비멜렉도 왕이 되고 싶어했다는 것입니다.
사사기는 계속 반복해서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그들에게는 한 왕이 계셨지요. 하지만 그분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았고, 하늘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2세대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왕을 요구했습니다. 사사기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장래에 그들에게 세우실 왕을 준비하시지요.
작은 책 <룻기>가, 우리에게, 이 왕이 어디서 나올 것인가를 알려주는데요.
<사사기>는 ‘당시에 왕이 없으므로’가 그 주제였는데,
<룻기>에서는 그 성취를 (왕 준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실 이 두 책은 한권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룻기>를 봅시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하나의 광경인데, 사사기와 같은 시기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아주 다릅니다.
사사기에서 북부 단 지파부터 중부 베냐민 지파까지의 상황은 아주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남쪽 유다지파 의 상황은 전혀 다릅니다.
이것은 베들레헴의 사진인데, 아래쪽의 ‘목동들의 들판’에서 찍은 것입니다.
이 사진은 그 지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농지입니다.
<룻기>를 읽으면 고대의 사랑 소설과 매우 흡사합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까?
거기에 사랑 이야기가 있고, 사랑 소설의 작가들은 이러한 작품을 능히 쓸 수 있습니다.
여성 잡지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이고,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여기서 신성한 공기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느끼시죠?
사사기에서 첩의 시체를 조각내는 무서운 이야기를 읽고 나서, 이 <룻기>를 읽으면 마치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 같아요.
<룻기>의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베들레헴(룻기)이 베냐민 지파(사사기)에서 2마일 떨어진 거리입니다.
단지 2마일만 옮겨왔는데, 마치 1백만 마일을 옮겨온 것 같은 생각이 들지요.
룻기와 사사기의 전체 분위기가, 바로 이렇게 전혀 다릅니다.
▶좋습니다. <룻기>가 <사사기>와 대조되는 점은
첫 번째로, <룻기>에의 등장인물이 많이 적어졌다는 것이고, 실제로 한 가족만 얘기했어요.
그리고 언급된 장소도 많이 적어졌고, 포함된 년대도 많이 적어졌고,
그럼에도 <룻기>는 <사사기>의 문제에 대한 답을 줍니다.
이제 우리 <룻기서>의 개요를 봅시다. 바로 여러분이 볼 수 있는 이 도표입니다.
<룻기>는 총 4장이고, 단을 나누기도 아주 쉽습니다.
1~2장은, 두 여인이 그림자처럼 절대 서로 떨어지지 않는 내용이고,
3~4장은, 두 영향력 있는 남자에 관한 내용입니다.
주인공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리고 기업 무를 자와, 왕입니다.
이 극에서 이렇게 두 남자와 두 여자, 다른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
우리 먼저 이 이야기의 내용을 봅시다.
▶제1장은, 남편과 아들들을 잃은 시어머니입니다.
나오미란 여자가 나오고, 당시 유대 땅에 기근이 들어, 양식이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웠어야만 했는데요, *못 배운 것 같아요
하나님의 자녀가 양식을 찾으러 이방으로 가면, 재앙을 만나게 된다는 역사입니다.
전에 아브라함이 기근이 와서 애굽에 내려가 양식을 구했을 때 재앙을 만났고,
이삭도 그러했고, 요셉의 형제들도 그러했고,
그들 모두가 이방에 가서 양식을 구할 때, 재앙을 만났습니다.
나오미와 그의 남편이 모압 땅에 가려고 결정하여,
요단강을 건너서 트랜스 요르단(요단강 건너편), 모압으로 갔어요.
모압은 언덕 위의 평야지대 였고, 거길 지나서는 사막이 있지요. *아라비아 사막
그들 가족은 거기에 양식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그것은 치명적 실수였습니다.
나오미의 가족이 떠날 때, 두 아들도 데리고 갔습니다.
두 아들이 후에 모두 모압 여자를 아내로 취했고,
하나님 백성이 아닌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상황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악화되었는데,
나오미의 남편이 불행하게도 죽었고, 이어서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세 과부만 남았습니다.
당시에 과부의 삶은 심히 어려웠습니다.
옛날에 과부들은 무슨 연금이나 사회복지 같은 것이 없었고,
그래서 과부의 생활은 심히 어려웠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한 걸음 잘못 디딘 것으로 발생했는데,
바로 사람을 의지하려 했고,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해결법을 찾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근은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징벌로 발생한다’고 율법에 알려 주셨지요.
그래서 그들이 다시 하나님께 되돌아오면, 다시 충분한 양식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오미 가족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지 않고 성급하게 행동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고생하게 되었는데요.
‘나오미’라는 이름은 원래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니, 친척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어요. *너무 고생해서
그래서 그가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로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는 ‘기쁨’, 마라는 ‘심한 고생’이라는 뜻입니다. *쓰다, bitterness
그가 돌아 왔을 때는, 심히 고생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룻의 선택, 선택이 중요합니다.
▶당시 그가 모압을 떠날 때, 두 며느리가 그와 같이 가려고 했어요.
나오미가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유대에서 남편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방 여자를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 있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재혼할 수 있다’라고 하였어요.
그 중 한 며느리 오르바는 동의하여 모압 땅으로 갔고,
그의 이름이 성경에서는 이로써 다시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의 선택이었습니다. 인간적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아주 좋은 충고였지만, 하지만 그가 이런 선택을 하여 *선택은 자기 책임
그 후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룻도 한 가지 선택을 했는데, 결국 자신의 이름이 역사에 계속 내려가게 하였어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서요.
얼마나 많은 것이,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는지요.
단 한 번의 선택이, 여러분의 삶을 통째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우리의 성품을 만들어(조각해) 갑니다.
룻은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선택을 하였는데,
원래 그가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이었지만, 그래도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선택’이었습니다.
그의 선택으로, 그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갔고,
그의 선택으로,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족보의 한 일원이 되었습니다.
돌고 도는 ‘순환 역사’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직선 역사’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건 아주 불가사의한 일인데요, 그의 이름이 <마태복음>의 족보에 나옵니다.
그는 이방인이고, 또한 성차별로 무시 받는 여자인데,
유대인들의 족보에는 보통 여자의 이름을 넣지 않거든요.
그걸 다 무시하고, 더욱이 이방인 여자가 족보에 들어갔고,
그의 이름이 바로 룻입니다.
단 한 번의 훌륭한 결정/선택으로, 그가 왕의 족보에 들어갔습니다.
나오미는, 고향에 남아 있으라고 말했지만, 룻은 굳이 따르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제2장은 한 며느리의 충성심을 묘사했어요.
그의 선택은, 내적 아름다움과 외적 아름다움을 겸하여 가졌음을 나타내 보여줍니다.
재밋는 것은, 이스라엘 족장들은 여자의 미모에 무관심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전서3장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논했고, 그리고 또 리브가도 논했는데,
그들은 내적 미와 외적 미를 겸하여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둘 다요!
제가 잠시 주제를 떠났지요.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여기에 계신 자매님들은, 베드로가 가르친 비결에, 아마 관심 있으실 것입니다.
여자의 내적 미와 외적 미.. 그것은 자기 성품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아내가 내적미와 외적미를 겸하여 가지고 있기를 격려했습니다. *벧전3:1~6
베드로가 ‘이렇게 되면 주님을 믿지 않는 남편을, 믿게 할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좋은 조언을 많이 말하는데,
이스라엘 족장의 아내들도 모두 그랬다는 것입니다.
룻도 그랬고요. 내적 미와 외적 미를 모두 겸하여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84세의 할머니입니다.
그의 얼굴에 얼마나 주름이 많은지, 유선전화교환기의 선처럼 복잡하게 주름이 많습니다.
제가 그에게 ‘미스 해리스! 당신이 정말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하니,
그가 아주 우아한 얼굴로 대답하기를 ‘당신만 아니고요, 많습니다.’
그는 계속하여 말하기를 ‘내가 젊었을 때 아주 못 생겼고, 아주 평범해서
남자 친구도 한 명도 못 사귀었고, 제게 결혼하자는 사람도 없었어요.
학교에서도, 어느 누가 저에게 같이 춤을 추자고 요청하는 사람도 없었고요.
하지만 제가 27세 때 예수님과 사랑에 빠졌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눈을 반짝이면서 말하기를 ‘당신이 누구를 사랑하면 누구를 닮아 가는게, 맞지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아주 아름다운 여사이며, 사랑스런 외모를 가졌습니다. 그의 외적 미는, 내적 미에서 나온 것입니다.
룻은 깊은 내적 미가 있었고, 그는 아주 겸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또한 아주 대담했는데, 남자들은 그런 점을 매력적으로 생각하지요.
그리고 그가 아주 가족에 충성스러웠습니다. 섬기는 마음이 있었지만,
소극적으로 하지 않고, 남들 눈에 불쌍하게 보이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많은 인격적 미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점은, 그가 옳은 선택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나오미를 따라가겠다고 선택했을 뿐 아니라, 나오미의 동족까지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오미의 하나님도 선택하였는데, 그게 정말 중요했지요!
이는 그가 그저 나오미와 함께 살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그가 말하기를 ‘제가 이미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니,
제가 당신의 동족이 되고, 제가 당신의 하나님을 믿고 섬기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정말로 현명한 결정이었지요.
그래서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비록 그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 모압을 징계하는 것을 보았는데도, 이렇게 결정한 것은 놀랍지요.
그는 나오미에게 ‘제가 원합니다. I will’라고 네 번이나 말했어요.
이것은 정말로 결혼식 때의 맹세와 같습니다.
그가 나오미에게 ‘제가 원합니다’라고 네 번이나 말했던 것 말입니다. *결혼식 서약 때 I will 하지요. 한국인은 ‘예’
‘당신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당신을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I will’
충성은 하나님이 아주 중요하게 보시는 자질이며, 아주 존귀합니다.
히브리어에서 ‘충성’과 ‘사랑’은 거의 비슷한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충성이 없으면,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언약적(맹세한) 사랑이라면, 언제나 붙어있습니다.
큰 풍랑이든지 작은 풍랑이든지,
잘 되든지 힘들든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만약 충성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이점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충성을 아주 중요시합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룻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16:05~
※룻2:13, 룻이 가로되 내 주(보아스)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은혜를 입었다’는, 바로 ‘사랑을 받았다’라는 뜻입니다.
그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고,
이렇게 하나님께 은혜를 입는 것은, 운이 좋은 것보다 10배나 낫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과 ‘운이 좋은 것’중에, 당신은 어느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세상에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그 위에 운 좋은 놈이 있다고 하잖아요. 세상은 운을 중히 여깁니다.
제가 저의 가문의 문패를 가져 왔는데, 여러분에게 보여 드릴게요.
저의 성은 ‘Pawson’이고, 그 뜻은 공작새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son of peacock
Paw-son에서 Paw은 옛날 영어에 공작새를 뜻했어요.
저는 제 성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요. 제가 폴란드에서 이 사실을 알았어요.
그들이 저를 ‘패슨 씨’로 불렀습니다. *파슨으로 불러야지요.
제가 ‘왜 나를 패슨이라고 부릅니까?’
그들이 말하기를 ‘PAW’가 폴란드말로 공작새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공작새’로 부르기가 미안해서
그래서 제가 집에 와서, 고대 영어를 찾아보았지요.
고대 영어도, Paw이 공작새였습니다.
그래서 제 성 Paw-son이, ‘공작새의 자녀’란 뜻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말의 요지는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저를 제일 흥분케 하는 것은
문패에 새겨진 저희 가문의 모토가 Favente Deo,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라는 점입니다. *라틴어로
당신은, 당신의 가족 문패에, 무엇이라고 쓰기를 바랍니까?
‘행운의 가족’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가족’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세상에서 운이 좋은 사람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하나님은 룻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은, 그가 충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올바른 선택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 모든 사람이, 룻을 칭찬했습니다.
룻기에서 ‘그가 룻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았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묘사가 참으로 아름답지요?
※2:20. 나오미가 자부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이 이 여자에게 끊임없이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그를 칭찬했어요.
여기서부터 이 책의 후반부가 연결되는데, 영향력 있는 두 남자가 나옵니다.
▶우선 먼저 제가 히브리 율법을 잠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보아스는 사회적 위치가 있었고, 관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룻의 충성을 보고, 그에게 상을 베풀었어요.
그가 수확하는 종들에게 분부하기를 ‘추수 단을 남기든지, 밭모퉁이는 베지 말고 남겨서,
저 모압 여자가 줍게 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보아스는 룻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룻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는 두 가지 풍습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여기서 먼저 설명드리려 합니다.
▶1. 첫째는 ‘계대결혼법’이라 부르는데요. *수혼受婚법이라고 번역하기도 함
전에 제가 한 말을 기억하시죠? 희년이 되면, 모든 토지를 최초의 가족에게 돌려줍니다.
하지만 만약 그것을 되돌려 받을, 남자 가족이 없으면 문제가 되지요.
그 가족에 반드시 한 사람(남자)이라도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희년 때 그 땅을 돌려받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율법의 규정은, 만약 과부가 남편이 죽었는데 아들이 없으면,
희년에 그 토지를 돌려받기 위해서,
그의 죽은 남편의 형제가 그 여자를 취해야 하며,
그 여자에게 아들 하나를 두어서, 가문을 잇게 해야 했는데,
그 목적은 바로 가족의 토지를 보존하기 위함입니다. 이해하십니까?
우리는 이러한 율법이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율법이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과부 룻은 현재, 남편도 없고 아들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친척들은 의무적으로 이 여자와 결혼해야 했고,
그의 죽은 남편을 위해, 그 남편의 이름과 피를 물려받을 후대를 남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희년 때, 그 후대가 응당 토지를 되돌려 받아 가문을 계승하기 위함이지요.
이해가 되시죠? 이것은 율법의 규정이고, 그들의 풍습입니다.
그래서 사두개인이 예수님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했는데, 바로 이 율법을 배경으로 하지요. 그 질문을 기억하십니까?
‘어떤 여자가 남편이 7명 있었는데, 그 7명이 모두 죽었어요’라는 물음이었지요.
그럴 일은 일어날 확률이 낮지만, 어쨌든요.
아무튼 이 문제는 하나의 함정이었어요.
사두개인은 사람의 죽은 이후의 내세적 삶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슬프게 살 수밖에 없죠. *사두개인은 “Sad-you-see” 영생이 없으니까 슬프겠죠.
여러분이 그 질문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들이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예수님께 물었죠.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너희들이 오해한 것은, 너희들이 성경을 모르고, 또한 하나님의 큰 능력도 모르기 때문이다’
▶2.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익숙하지 못하는 사회 풍습이 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청혼하지 못합니다. 발렌타인 데이 때도 못합니다.
물론 그때는 발렌타인 데이 같은 것이 없었지요.
아무튼 여자가 남자에게 청혼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자가 어떤 남자에게 시집가고 싶은 뜻 같은 것은 표시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 뜻을 표시하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남자를 위해 발을 따뜻하게 천같은 것으로 덮어주는 것인데,
이 방법이 괜찮은 것 같아요. 그렇지요? 이미 결혼 한 사람은 아시겠지만,
밤에 잘 때 만약 누가 뜨거운 물병을 사용해서, 두 발을 따뜻하게 해주면 아주 편합니다.
전도서에서도 ‘한 사람이 침상에서 어찌 몸을 따뜻하게 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매우 실제적이지요, 그렇죠?
우리는 성경에서 ‘룻이 보아스의 발 곁에 누워서, 옷으로 그의 발을 덮었더라’를 봅니다.
이것은 룻이 ‘제가 당신에게 시집가게 되어도 괜찮아요.’ 라는 표시였습니다.
당시의 풍습에는 여자가 청혼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방법은 허락하였습니다.
그가 암시할 수는 있었지요. 이것은 아주 강력한 암시였습니다.
그래서 방금 설명 드린 이런 두 관습에 근거하여, 보아스가 룻과 결혼할 수 있었고,
보아스 또한 룻의 이러한 표시에 심장이 두근거렸겠지요.
그는, 룻이 특별히 자기에게 마음을 표시해 준 것을, 감사하게 여겼어요.
왜냐하면 자기는 룻에게, 제일 연령이 높은(가까운) 친척도 아니었고,
제일 젊은(가장 먼) 친척도 아니었어요. 그의 나이는 룻보다 훨씬 많았어요.
그는 룻이, 젊은 자기 동생이 아닌, 자신을 선택하여 룻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형이 응당 이 법적 의무를 다해야 했었지요. *우선권이 있었지요
그는 말하기를 ‘나의 형만 동의하면, 나는 기꺼이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을 성문 재판관들에게 찾아갔고, 그들은 이 일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형이 ‘네가 그를 취하라’라고 하였어요. 그리고 자기 신발을 벗어서 보아스에게 주었는데,
이것은 당시 풍습에서의 하나의 증거였습니다.
(아마 고대 영국에서는) 손에 침을 뱉고, 그 손으로 악수했지요.
이것은 계약이 끝났다는 표시입니다.
이 일은 이렇게 원만히 해결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 가운데, 하나님은 어떻게 배후에서 일하셨을까요? 22:05~
표면상으로 보면 이것은 하나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이 사랑 이야기를 읽어보시면, 푹 빠지게 되실 겁니다.
하지만 이 모든 배후에는, 사실상 하나님이 일하고 계셨는데, *세속 연애 소설이 아니지요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려는 것일까요?
사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왕의 혈통을 예비하고 계셨는데, 그것이 그분의 일관된 배후의 뜻이었습니다.
룻의 올바른 선택은, 정확하게 하나님의 올바른 선택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작은 그림은 큰 그림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 왕의 계보(큰 그림)의 한 부분으로 동참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에스더>라는 책이 있습니다. 나중에 순서대로 공부하겠지만, 이것도 하나의 사랑 이야기이지요.
이 책에서는 ‘하나님’이란 단어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사랑이야기 같네요.
하지만 <룻기>에는 ‘하나님’을 자주 언급하였는데,
하지만 모두 다른 사람에 의해 언급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 말씀하신 게 아니라요.
사람들이 ‘룻에게 복을 내려 달라’고 구할 때, ‘하나님’이 나옵니다.
나오미가 ‘네가 나와 함께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에게 복 주기를 바란다’라고 했고,
보아스도 ‘네가, 나의 형제들이 아닌, 나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에게 복 주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동네 모든 사람들도 룻에게 ‘하나님이 너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너에게 복 주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너에게 복 주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진심으로 한 말입니다.
*그러니 룻기도, 에스더서처럼, ‘하나님’이 거의 등장하지 않으니, 사랑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만,
하지만 배후의 하나님의 일하심을 우리가 읽어내야지요,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야웨”라 불렀고,
영어 구약성경에서 대문자로 LORD라고 쓴 것은,
히브리 원어의 “야웨”(Yahweh)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에게 아주 어색한 단어가 될까봐 염려합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도 대부분 대문자로 LORD로 번역했고요, *뭔가 의미가 확 안 와 닿아서
영어성경에 소문자로 Lord는, 히브리 원어에는 Adonai인데, ‘주님’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대문자로 LORD라고 하면, 그게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이름 하나가 있다는 것입니다. *야웨
몇 년 전에 제가 한번은 기도할 때 이렇게 말했어요.
‘주님! 제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야웨‘라는 이름을 부르고 싶지 않아요.
저한테는 그 이름이, 너무 마음에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야웨’에 해당하는, ‘영어 이름’을 하나를 제게 알려 주시겠습니까?
그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에 대해 친밀감을 느낄 수 있게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즉시 제 마음속에 바로 한 가지 단어가 떠오르는데,
바로 “ALWAYS, 존재하는”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저는 이것이 아주 합당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야웨’는 ‘존재하다 to be’라는 단어의 분사형니다. *존재하는.. 이죠
저는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하나님, 당신의 이름을 저는 존재하는 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당신 이름의 이름 first name 인데, 이름을 길게 쓰면
당신은, ‘항상 존재하는 공급자’이시고, *여호와 이레, always my provider
‘항상 존재하는 나의 도움’이이고, *“always” my helper
‘항상 존재하는 나의 치료자’이며, *여호와 라파
하나님은 ‘항상 존재하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250개의 명칭에서 저는 ‘예’라는 이름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마다 모두 ‘예’가 되십니다.
아주 멋있는 것은, 하나님은 ‘항상 존재하는’이시고, 그의 아들은 ‘예’입니다.
이것보다 더욱 적극적인 신앙은 없습니다. *둘을 합쳐보세요.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룻을 축복하였습니다.
‘항상 너를 축복하기를 원하노라.’ *God/Always bless you
‘항상 너를 위로하시길 원하노라.’ *God/Always comfort you
‘항상 너에게 친절 베풀기를 원하노라.’
‘항상 축복을’
▶룻이 끊임없이 시모/보아스/동네 사람들의 축복을 받았기에,
룻이 그 중요한 왕의 계보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보아스가 유다의 직계 후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다는 야곱의 12아들 중 한명이고, 유다의 이름의 뜻은 ‘찬양’이며,
히브리어의 발음으로는 ‘유다’였습니다. *한글성경의 명칭은 대부분 히브리어를 그대로 음역
보아스는 유다의 직접적인 후손이고, 이것 또한 그가 다말의 직접적인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다말이 시아버지와의 근친상간적 관계를 기억하시지요?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제일 나쁜 상황, 제일 나쁜 사람을 통해서도,
예수님을 낳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후에 올바른 선택을 할 때 말입니다.
*좋은 상황, 좋은 사람을 통해서도 물론이고요.
야곱이 임종 전에 유다에게 예언을 했는데, (유다, 야곱은 히브리 발음으로 이유다, 이야콥,)
야곱이 예언하기를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창49:10
아주 흥미로운 약속입니다. 당시에는 장래에 왕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조차 못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장래에 한 왕이 유다의 후대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베들레헴의 베이트-집, 레헴-떡, 그래서 ‘떡집/빵집’이란 뜻입니다.
이 도시가 곡식 밭 중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생긴 거죠.
이 베들레헴이 장래에 중요한 도시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미가의 예언을 기억하십니까.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믹5:2
이 모든 것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데, 참으로 묘하지요.
▶<룻기>에 또 하나의 특별한 메시지가 나오는데,
유다 지파가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 예루살렘이라는 성읍을 점령했어요.
이 성읍은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의 접경 지역에 있었습니다.
유다 지파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이것을 베냐민 지파에게 주었어요. 삿1:8, 1:21
후에 베냐민 지파가 이 도시를 잃게 됩니다.
이 내용이 <룻기>에 나옵니다.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데요.
왕의 족보에, 베들레헴의 다윗이 나타나고, (그림을 보여주며) 이 그림에서도 예루살렘 성이 나타나 있습니다.
후에 다윗이 이 도시를 점령하여, 수도로 만들었습니다. 삼하5:6
예루살렘이 이때부터 그 후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 모두가, 구슬 꿰듯 하나의 실로 연결되는데요,
이는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다는 당시에 이 예루살렘을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장래 하나님의 계획상
하지만 그들은 이것을 베냐민 지파에게 줘 버렸고,
베냐민 지파는 또한 이 성을 이방인에게 빼앗겨 버렸어요.
그래서 거기가 다시 이방인 도시로 변했는데, 이는 참으로 슬픈 이야기입니다.
우리 전체 상황을 차츰차츰 이해 해 봅시다. 보아스의 조모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는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인 라합입니다. 여리고 성의 기생입니다.
이 족보가 아주 복잡하지 않습니까?
다말이 시아버지에게 불륜적으로 당하고, 라합은 기생이고, 룻은 모압 사람이고,
그리고 이들 모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조상이 되었지요. 아주 놀라운 일이지 않습니까?
◑누가 썼으며, 왜 썼나요? 28:35~
금방 휴식할 때, 어떤 열심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당신은 아직 <사사기>의 저자와 쓴 목적을 얘기하지 않았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첫 시간에 그걸 탐정처럼 우리가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었거든요.
앞에 얘기했는데, <사사기>와 <룻기>는 원래는 한 책이었고,
이제 두 사이의 연관을 보겠는데,
저자가 누구이고, 무슨 목적으로 쓰셨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저를 따라와 보십시오.
▶매 성경마다 보통 마지막에, 그 책을 쓴 목적이 나와 있습니다. *사사기의 마지막도 마찬가지죠.
‘그때 이스라엘이 왕이 없었으므로’의 표현으로 볼 때,
<사사기>와, 그와 비슷한 시기의 <룻기>가, 왕이 있은 후에 썼다는 겁니다. 이해되시죠?
만약 당신이 ‘그때 당시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 현재는 왕이 있다’는 말뜻입니다. 맞죠? *이게 1강에서 말한 탐정놀이.
그리고 또 하나의 명백한 단서가 있는데,
<룻기> 마지막에 다윗 왕의 족보가 나옵니다.
거기에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고 하였습니다. 4:22
하지만 ‘이새가 다윗 “왕”을 낳았더라’고 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아주 심상치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다윗은 이름이 언급되었지만, 그가 아직 왕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이 어느 때에 기록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이 왕이었을 때일 것입니다. (여기까지 잘 따라오셨죠?)
▶이 책은 이스라엘 첫 번째 왕인 사울이 왕좌에 있을 때,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선택한 왕이고, 이는 그의 머리와 어깨가 다른 사람보다 높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이 그의 어깨 아래. 공동번역, 삼상9:2
즉 그의 키가 컸고, 인물이 출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외모에 근거해 선택했는데, 이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책이 어느 때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면, 누가 기록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무엘상>을 읽으면, 거기에 사무엘이 말한 부분이 있는데,
그 어투가 <사사기>와 <룻기>와 너무 똑같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러한 방식으로 그 역사를 기록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사무엘서>에서의 사무엘의 메시지가 한편 나오는데, 그 내용이 <사사기>의 압축판 같습니다.
그렇다면 <룻기>는 누가 기록하였는가? 사무엘이 기록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사사기>와 <룻기>를 기록하였습니다.
원래는 한 책이었는데, 당시 사울이 왕이었지요.
▶사울이 어느 지파이지요? 베냐민 지파입니다.
<룻기>의 전체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베냐민 지파가 참으로 나빠요. 베들레헴을 보십시오.
*베들레헴은 사사기에서 한때 베냐민 지파에게 속했고, 사사기에서 마지막에 두 비극적 사건이 모두 베들레헴과 연루.
베들레헴은 나중에 다시 유다지파에 속함. 삿1:8, 21, 삼하5:6.
그래서 <룻기>는, 백성들이 희망을 사울에서 다윗으로 바꿀 것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미 다윗에게 비밀스럽게 기름을 부었고, 다윗이 다음 왕이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어떻게 해야 내가 사울의 가문이 아닌, 다윗이 왕이라는 것을
백성들이 받아들이도록 준비할 수 있을까..’ 라는 뜻에서 룻기를 썼습니다.
이렇게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룻기는 참으로 훌륭한 한편의 ‘홍보책자’입니다. *정부에서 펴내잖아요.
사무엘이 룻기를 통해 말하기를 “베냐민 지파가 근본이 얼마나 나쁜지를 잘 보아라.
그들은 정말로 새는 구멍이다. 그들이 사사기에서 무슨 짓을 하였는가를 보라. 정말로 밑바닥이다.
그리고 다시 베들레헴에 사는 이 좋은 사람들(보아스 가문, 유다지파)을 보라.
이 가족이 얼마나 좋은지를 보라’고 하였지요. 이해가 되십니까?
이것은 정말로 뛰어난 한편의 문학작품임이 보이십니까?
저 파슨은, 사무엘이 이 두 권의 합본 책을 기록한 것은, 백성들의 생각을 바꾸려 하려는 목적임을 믿습니다.
백성들의 희망을, 베냐민 지파에서 유다 지파로 옮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들더러 다윗을 받아들이게끔 예비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룻기의 맨 마지막에 가서야, 그를 언급했는데,
그것도 이름만 살짝 언급했어요. ‘이새가 다윗을 낳았더라’입니다.
사무엘은, 다윗이 하나님이 지적한 왕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내가 현실의 전체 상황을 바꾸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저의 추론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추론이 아주 좋은 근거가 있다고 믿습니다.
특히 예루살렘 도시가 베냐민 지파 손에서 잃어 버렸는데,
이것은 전에 유다 지파가 점령했던 도시입니다. 삿1:8, 21.
후에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유다 지파가 이 성을 다시 찾아옵니다. 삼하5:6
다른 말로 하면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다윗의 자손인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에브라다, 즉 베들레헴에 태어나실 것까지 내다보고 계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여러분 모두가 잘 아시지요. 그의 출생지가 완전 정확합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을 가리켜 ‘큰 왕의 성’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마5:35, 시48:2, 다윗을 가리킴
◑<사사기>와 <룻기>에서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이제 마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사사기>와 <룻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요?
만약 모든 성경이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준다면,
그리고 우리가 성경을 상고하는 것은, 이 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기 때문이라면,
그런 맥락에서 <사사기>와 <룻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1. 우리 먼저 <사사기>를 봅시다.
크리스천 개개인은 <사사기>의 인물에서 많은 교훈을 배웁니다.
로버트 맥스웰이 희한한 일을 한 가지 했어요. *1923~1991, 영국의 언론인, 의원
그가 예전에 옥스퍼드 부근의 해딩턴 저택을 임대했는데,
그 저택 안의 계단 위에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었어요.
그 유리그림에는, 삼손이 궁전 기둥을 밀어 넘어 뜨려, 그들과 함께 죽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후에 로버트 맥스웰이, 자기 아내를 위해, 별장 하나를 프랑스에 지었어요.
그때 그는 영국의 스테인드글라스와 똑같은 것을 주문하여, 그 별장에 두었는데,
그 유리그림에 유일하게 달라진 것은, 그 얼굴이 삼손 대신에 맥스웰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삼손처럼 자살했고 그의 모든 것이 함께 무너져 내렸습니다. 참 슬프네요. *아마 정신병, 자가용 요트 사고
전에 사람들이 잘못한 것을, 우리는 다시 범하지 마십시다.
전에 사람들이 잘 선택한 것은, 우리가 본 받으십시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기드온, 삼손, 입다, 바락 에게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히브리서>11장에서 ‘이들 모두는 우리를 둘러싼 증인이라’고 말씀합니다. *히12:1
‘그들 모두가 우리를 지금 보고 있고, 우리가 어떻게 달려가는가를 보고 있으며,
그들은 우리의 증인이며,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교회에서도 <사사기>를 읽고 공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도 사사기와 동일한 무정부 상황에 종종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그 무정부 상태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사기와 똑같은 해결책을 추구하는데
그것은 눈에 보이는 왕정을 (사울왕을 세우는)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서, 무작정 따르는 것은, 위험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한 왕이 계십니다.
만약 우리가 그가 보시기에 옳게 행하면, 내일이면 교회는 합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못하면 웨슬리파, 루터파, 칼빈파 같은 사람들을 따르게 됩니다. *관련설교 http://blog.daum.net/urmymt/1647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하기보다, 사람을 따르는데 열심 내면,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이 과거에도 그러하셨듯이, 오늘날에도 똑같이 행하십니다.
▶2. 우리는 <룻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우리 모두가 룻입니다.
나는 룻처럼 이방인이었지만, 이제 내가 하나님 백성들 가운데 들어오니
내가 왕의 자손이 되었고, 하나님 왕실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왜냐면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바로 왕족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왕자이고, 공주이니, 고개를 곧추 세우고 다니십시오. 당신은 왕의 자손입니다.
전에 당신은 이방인이었고, 이스라엘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당신은 바깥에 있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이 왕의 계보에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전前이 아니라, 예수님 후後에요.
우리가 바로 룻이고, 보아스는 바로 우리의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와 결혼해서, 하나님의 백성의 계보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신부이고 예수님은 신랑입니다.
성경 전체가 그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결혼식으로 끝납니다.
그 후로 그들은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전체 성경이 사랑 이야기이고, 룻과 보아스의 사랑 이야기는
바로 그리스도와 그의 이방인 신부인 우리의 상황과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매 주일마다 밸런타인데이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랑 이야기도 성경의 사랑 이야기보다 못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사기>와 <룻기>를 공부하는 사람은, 그 수고의 대가로, 그 사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사기>와 <룻기>를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번역 LCY, 영타 Chris, 교정 및 자막 Ji Kim
'분류 없음 > David Pawson's Unlocking the Bib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무엘상하 P2 / David Pawson (0) | 2015.07.25 |
---|---|
사무엘상하 P1 / David Pawson (0) | 2015.07.22 |
사사기, 룻기 P1 / David Pawson (0) | 2015.07.16 |
여호수아 P2 / David Pawson (0) | 2015.07.12 |
여호수아 P1 / David Pawson (0) | 2015.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