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하는, 내리막길을 걷는 역사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고백하겠습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역사 과목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저희 역사 선생님은 퇴직한 목사님이신데, 그 분이 이 과목을
다른 과목보다 더 재미없고 지루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역사책에는 년대, 전쟁, 왕들, 여왕들이 나오지요. 여러분도 그렇게 역사를 배우셨지요?
그 모든 역사의 공부들은, 너무 복잡하고, 현실에 불필요한 공부 같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배우는 용도는, 다만 학교시험을 치기 위해, 배우는 것 같습니다.
저의 역사에 관한 지식은, <1066> 책 수준입니다. *역사 풍자 만화책
그 책에는 모든 역사 사건을 단순히 잘된 일, 잘못 된 일로 쉽게 평가하는데요,
재미있는 것은, <열왕기상하>도 이러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기록된 왕들은, 선한 왕이든지, 아니면 악한 왕입니다.
‘그는 나쁜 왕이고, 그는 좋은 왕이다’ 라는 식이지요.
성경 대부분이 역사를 얘기하지만, 사실 단 한 나라의 역사를 말합니다.
중국을 논하는 것이 아니고, 인도 혹은 미국 역사를 논하는 것도 아니고,
한 민족의 역사를 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역사를 중요시하기 때문이지요.
다른 나라 역사도 아마 재미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성경의 역사가 제일 중요한데,
이는 전 인류와 관계있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서부터 이스라엘은, 지도자의 제2국면에 들어갔는데요.
여기에 도표 한 장 있는데, 우리 함께 봅시다.
아브라함은 주전 2000년 전이고, 또 다윗은 주전 1000년 전이고,
바벨론 포로기는 주전 500년 전입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000년이 걸려서야,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기 원하셨던 땅을 결국 모두 받았고,
그런데 그 사이에 몇 번의 딸국질(일시적 하락) 상황이 일어났어요.
예를 들면, 그들이 애굽에서 400년 노예로 있었다든지,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에도, 미디안의 공격과 다른 민족들의 공격을 받았는데,
거기서 잠지 주춤하는 것 같았지만, 그러나 그들은 계속 전진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다윗에 이르러서, 왕국Empire을 건설하였습니다. *오르막길 계속해서 정점에 도착
이 올라가는 역사의 시기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열왕기서>에 와서부터 이스라엘의 역사가 하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열왕기서 두 권에는, 그들이 과거 1천년동안 쌓아올린 것을 잃게 되었다는 것과,
그걸 어떻게 잃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계속 내려오게 되었는데, 솔로몬 사후 얼마 되지 않아 내전이 발생했고,
북방 10지파와 남방 2지파로 나누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통일하지 못하였어요.
그래서 열왕기서에서는 통일된 이스라엘 민족을 볼 수 없습니다.
북방 10지파는, ‘이스라엘’ 이라는 칭호를 가졌는데, 이는 그들이 10지파라는 많은 수를 차지했기 때문이었어요.
남방의 두 지파는 ‘유다’라고 스스로 불렀는데,
이는 두 지파 중 유다 지파가 크기 때문이고, 베냐민 지파는 숫자가 아주 작았지요. *사사기 전쟁사건으로
그래서 내전이 일어났고, 그후 북방의 10지파는 끊임없이 하락하여,
마지막에는 10지파가 모두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갔지요.
남방은 계속 하락하면서도, 중간에 몇 번 올라갔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가 언제죠?
그들에게 선했던 두 왕이 있었는데, 특별히 히스기야 왕 때가 좋았고,
그리고 어려서 8살 때 왕이 된 요시야입니다.
그렇지만 그 두 왕의 상승이, 전체 하락 추세를 꺾진 못했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이 두 지파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요.
그들은, 시작한 원점에서, 돌아가 끝을 맺었습니다. *갈데아 우르에서 시작해서, 거기서 끝남
한 때는 애굽에서 노예로 있었고, 나중에 또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는데,
참으로 비극적인 이야기이지요.
▶이 두 권의 역사책을 읽어야 하는 목적은, 교회에도 이러한 결말이 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흥망성쇠의 역사가 오늘날의 교회에도 일어납니다.
모든 것을 얻을 수도 있고(상승세), 또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데(하락세),
보통의 경우, 쌓는 것은 오래 걸리나, 잃는 속도는 아주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왜 그들이 나라를 잃었으며, 무엇이 그들을 내리막길로 걷게 하였는지
그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장의 그림을 보겠는데,
그들이 포로된지 70년 후 조국으로 귀환하였지만, 과거처럼 완전한 자유를 되찾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귀환 후에는, 선지자나 왕이 아니라, 제사장들이 그들을 다스렸어요.
그후 그들은 계속 애굽, 시리아, 헬라의 통치를 받았는데,
그 중에 헬라 왕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3년 반이나 극심한 핍박을 받았어요.
그는 아주 무시무시한 일을 행했는데, 성전의 제단에 돼지를 제사로 드렸는가 하면,
또한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부속실마다 매음굴로 만들어버렸어요.
이는 완전히 적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만난, 역사에 제일 악한 통치였고,
마지막에는 로마가 통치하였습니다.
그 다음 역사는,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이 왕의 혈통을 이어왔고, 두 사람 모두는 다윗 왕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1천년(아브~다윗)이 지나서, 5백년(열왕기)이 지나서, 천년(다윗~예수님)이 지나서 성취되는데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님이 드디어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열왕기서>를 공부할 때,
이 책이 전체 이스라엘 역사 중에 어느 시점 쯤에 처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앞에서 얘기했던 <사무엘서>는 이스라엘이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역사를 기록했고,
그리고 <열왕기서>는 거기서부터 하락하는 경과를 기록했는데, 그 500년 기간이 참으로 슬픈 이야기입니다.
◑왕국 개념
▶다음으로 잠깐 몇몇 중점을 살펴보겠는데,
이스라엘이 매 단계마다 다른 직임의 지도자가 나타났다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제일 먼저는 족장이 500년 정도 이끌었고,
다음으로는 선지자가 이끌었는데, 이는 모세부터 사무엘까지이고,
다음으로 왕이 이끌었는데, 이는 사울부터 시드기야까지이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제사장이 이끌었는데, 여호수아부터 안나스와 가야바까지입니다.
(도표에는 스룹바벨로 잘못 기록되었는데, 여호수아가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열왕기서>에서, 이스라엘 왕국의 이야기를 살펴보고 있는데,
이 시기는 ‘왕’의 통치 기간입니다.
그런데 히브리 성경에서는 이 책을 <이스라엘 왕국들>이라 부릅니다.
‘왕들 (Kings)’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영어성경은, 이 책이 ‘왕들(여러 왕들)’이지만,
히브리 성경에, 이 책은 ‘왕국들’로 부릅니다.
그 이유는, ‘왕국’이란 단어는, 히브리어에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영어 단어 ‘왕국’에는, 그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는데요.
영어로 ‘왕국’은 ‘땅, 영토’ 개념입니다.
지금 영국은 United Kingdom 인데요, 영토 개념입니다.
제가 한 가지 알려드릴게요. 영국은 연합united 도, 왕국kingdom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이름은 사실 괜찮은 것입니다.
우리는 왕국이라는 단어를, 쉽게 어떤 지도상에 나타나는 지역으로 생각하는데,
하지만 히브리어 개념의 ‘왕국’은 ‘통치’를 가르치는 것이지, ‘통치영역’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즉 어떤 하나의 ‘통치권’이지, ‘영토’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왕국’은, 왕이 얼마 큰 통치 구역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많은 통치권을 가지고 있느냐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말할 때, 이 나라 kingdom 는 어떤 영토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통치권을 말하며, 그 다스리는 통치권을 뜻합니다.
영국은 이게 좀 복잡한데, 영국은 소위 ‘입헌군주 체제’여서,
여왕이 비록 왕권은 있지만, 실제로는 통치권이 없습니다.
현재는 존 메이어 수상이 통치하는데, 이는 우리가 왕실의 통치권을 박탈해서
영국 왕실의 권세가 그렇게 작아진 것입니다.
이러한 체제의 제일 큰 장점은, 권세가 다른 사람 손에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지요.
그래서 영국 군대와 영국 법정은 정부 직속이 아니고, 여왕의 직속인데,
이래야 너무 많은 권력이 정치가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합니다. *분산시킵니다.
그래서 영국 왕실의 역할은, 얼마만큼의 권력을 휘두르는가에 있지 않고,
권력이 (일부) 다른 사람들 손에 다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지하는데, 그 역할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왕국kingdom’에서는,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고,
왕이 법을 제정하고, 의회도 없고, 투표도 없고, 반대당도 없고,
통치자는 왕이며, 왕이 칙령을 내려서 통치하지, 토론을 통해서 다스리지 않습니다.
모든 법은 왕이 제정하고, 사람들은 복종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왕국에서 살고 싶습니까? 영국에 한 사람이 통치하기를 바라십니까?
그가 모든 법을 제정하고, 국회가 없고, 선거가 없고, 투표가 없는 나라에 살고 싶으십니까?
여러분이 쉽게 답을 하지 못하는데, 제가 2분 만에 여러분들이 왕국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절대적인 공평으로 행하고, 백성들을 위해 목숨도 내 놓을 수 있고,
가난한 자와 병자들을 빈틈없이 돌보는 좋은 왕을 만약 찾는다면,
여러분은 이러한 왕국에서 살고 싶으시지요? *세상 왕국은 별로지만, 하나님의 왕국은 좋다는 뜻.
아시다시피, 왕국은 완전히 왕의 성품에 따라 결정됩니다.
만약 왕이 선하면, 왕정 제도가 제일 좋은 형태입니다.
하지만 만약 왕이 악하면, 왕정 제도가 제일 나쁜 제도가 되지요.
그래서 우리는 민주주의 제도를 좋아하는데,
이는 어떤 한 사람이 너무 큰 권력을 얻는 것을 방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처칠이 말한 것처럼, 민주주의 제도는, 가능한 제도 가운데 가장 나쁜 제도라고 하였어요.
그의 뜻은 민주주의가 최선은 아니지만 제일 안전하다는 뜻입니다.
당신이 역사를 읽어보면 알 수 있는데, 역사상에 나쁜 왕이, 좋은 왕 보다 10배나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액턴 경은 ‘권력은 사람을 부패하게 하고,
절대적인 권력은, 사람을 절대적으로 부패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모든 권력이 한 사람의 손에 있으면, 그는 반드시 잘못 나갈 것인데,
권력은 사람을 부패하게 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이를 독재 정권이라 부르지만, 그게 ‘왕국’ 의 장/단점 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히브리 책명은 ‘이스라엘 왕국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왕국은 한 사람이 통치하고, 그 왕이 없어지면, 그의 왕국도 없어지고
그리고 새로운 왕국이 펼쳐지지요.
우리는 ‘이스라엘 왕국’이라지만, 그들 히브리인들 은 ‘이스라엘 왕국들’이라고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말하는데,
이는 왕국이 하나에서 또 하나로 이어지는 ‘왕국들’이라는 것입니다.
*영어는 한 왕조가 한 왕국이지만, 히브리 개념은 한 왕이 한 왕국, 별 중요한 내용은 아닌 듯합니다.
이런 설명을 드리는 이유는,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 개념을 이해하고 싶으면,
반드시 이 배경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연합 왕국 United Kingdom’이라는 개념으로는, ‘하나님의 왕국/나라’개념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열왕기서>부터 왕국의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왕의 성품, 행위가 그 나라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열왕기서는 ‘왕’의 역사
▶이스라엘이 왕이 있기 전에는, 역사서가 백성들이 무엇을 행하였는가를 말했는데,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진 후부터는, 역사서는 왕이 무엇을 하였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왕이 어떻게 행했는가를 보면, 나머지 백성들도 무엇을 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지요.
백성들이 왕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게 되어 있고,
왕은 ‘이것이 나의 법이니, 백성들은 이 법을 지키시오. 아니면..(처벌)’ 하고 말하게 됩니다.
그래서 백성은 왕을 따르게 되어 있고, 왕의 성품이 제일 관건이 되지요.
즉, 좋은 왕을 만나면 나라가 태평하게 되고, 나쁜 왕을 만나면 사방에서 분란이 일어나게 되지요.
그래서 <열왕기서>에서, 역사의 중점은 통치자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행했는지, 그가 좋은 왕인지/ 나쁜 왕인지를 말씀하고 있지요.
그런데 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는, 한 잣대로 평가되었는데, 바로 다윗 왕입니다.
만약 그가 다윗 같으면 좋은 왕이고, 다윗 같지 않으면, 그는 나쁜 왕입니다.
다윗이 비교평가하는 잣대가 된 것이지요.
다윗의 초기를 뜻합니다. 그가 내리막길을 달리기 전입니다.
백성들은 왕을 보고 판단합니다. ‘그가 다윗 같은가?’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왕하16:2, 14:3 등
백성들이 그렇게 판단했지요. 하지만 그 말의 이면에는 더욱 깊은 논리가 있는데,
만약 그들이 다윗처럼 행했으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열왕기서>를 읽으면, 아주 간단한데, 바로 좋은 왕이냐/아니면 나쁜 왕이냐..입니다.
제가 앞에서 말했지만,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하니,
사무엘은 그들에게 ‘왕은 비용이 아주 많이 든다’고 하였어요.
심지어 그들에게 ‘너희들에게 이미 왕이 있다. 하나님이 바로 너희 왕이다’라고 말해 주었어요.
아시다시피 사사시대에, 기드온이 미디안을 물리친 후,
백성들이 기드온에게 ‘당신이 우리 왕이 되고, 왕조를 시작합시다.
그리고 당신의 아들, 손자가 계속하여 우리의 왕이 되어주세요’고 부탁하였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참으로 지혜가 있어요. 그는 ‘나는 당신들의 왕이 되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에게 이미 한 왕이 있어요. 하나님이 바로 당신들의 왕입니다’라고 하였어요.
하지만 후에 백성들은 생각이 변하여, 드디어 왕을 세웠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열왕기서>가 사실 일반 역사책이 아니에요.
여기에 각 왕들을 묘사한 분량이 천차만별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북왕국에 ‘오므리’라는 왕이 있었는데, 이 왕의 업적이 아주 뛰어났습니다.
정치에 아주 재능이 있고, 경제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업적이 대단했어요.
그는 강력한 왕이었지만, 하지만 <열왕기서>에는 단 7절로 끝내고 말았습니다.
비록 오므리의 치적이 아주 대단하다 하더라도,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행을 행하여서,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의 위대한 업적도, 아무 인정을 못 받았지요.
*단 7절로 기록하고 끝냅니다. 그러나 세속 역사가들은 정반대지요. 그들은 아주 높이 평가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이렇게 영국의 수상을 평가하십니다.
정치지도자들이 놀라운 치적을 쌓더라도, 하나님이 보시는 방식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어떻게 도덕적으로 살았는가를 보십니다.
그들이 어떻게 믿었으며, 그들이 어떻게 행했는지를 보십니다.
그래서 다른 왕을 보면, 한 장이나 성경에 길게 설명된 것을 봅니다.
이렇게 분량이 많다는 것은, 하나님의 관점과 관심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열왕기상하는, 확실히 역사를 논하고 있지만, 선택적인 역사입니다.
역사서는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역사를 기록할 때, 세 가지 과정을 거치는데, 첫째는 선택입니다.
역사 기록은, ‘선택’하는 일로부터 시작합니다.
역사에 일어난 모든 사건들 중에서, 자기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건을 선택하는 거지요.
선택 후 두 번째 과정은 서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선택한 역사적 사건들을 하나하나씩 서로 연결시킵니다.
한 사건이 어떻게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쳤는지..
그래서 세 번째는, 왜 이 사건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 되는지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역사가들은 이 세 절차를 밟지요. 선택, 연결, 해석입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역사 기록을 이런 절차로 하는 것입니다.
먼저 어느 사건이 제일 중요한지를 결정하고,
다음에 한 사건이 다른 사건과 연관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리고 A사건과 B사건, B사건과 C사건의 연관관계를 해석/설명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칠 때, 그래서 역사는 객관적일 수 없고, 그런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열왕기서>도 주관적인 역사합니다. 하나님이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에 제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가 히브리 성경에서는 ‘전前 선지서’라고 부른다고 말씀드렸지요.
<여호수아>와 <사사기>도 마찬가지 전선지서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들은 선지자가 기록한 역사서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의 시각에서 쓴 책들이죠. 선지자의 시각은 또한 하나님의 시각이고요.
즉 중요한 사건을 선택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 각각의 사건들을 서로 연결시키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래서 역사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해석하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서를 읽는 것이 아니고, 예언서를 읽습니다.
▶히브리 성경에는 <열왕기서>를 제2부에 놓습니다.
제1부는 다섯권인 모세 율법이고,
제2부는 전 선지서와 후 선지서를 포함한 선지서이고,
다음(3부)로는 성문서인데, 그 외 여러 가지를 모은 것으로, <시편>과 <잠언> 같은 것이지요. *눅24:44참조
후 선지서는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스겔서>와 12 소선지서들입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항상 역사서와 선지서로 나누어 불렀어요.
하지만 유대인들은 더 현명했는데, 이들을 전 선지서와 후 선지서로 구분했습니다.
역사서는 없고, 모두가 선지서들입니다. (아셨죠? 진도 나갑시다.)
▶우리는 이스라엘 왕국 역사를 논하는 중인데요.
이것은 거룩한 역사이며, 여기엔 도덕적 교훈과, 어떤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어요.
열왕기서는 ‘역사에 관한 교훈’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로부터 얻는 교훈’도 논하고 있는데,
이 두 개가 완전히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역사는 반복 된다’고 말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과거 역사에서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만약 당신이 과거를 잊으면, 그 과거 일이, 다시 또 닥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역사가 아주 중요하지요. 왜냐하면 우리는 똑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기 때문이며,
역사를 무시하면,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배우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열왕기서> 역사를 읽어야 하며,
이것은 ‘역사에 관한 교훈’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역사로부터 얻는 교훈’입니다.
아주 명확한 양식이 하나 있는데, 만약 매 왕의 통치 기간을 합쳐 보면,
혹은 유대인들이 말하듯이 각 왕의 왕국의 기간을 합쳐보면,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통치 기간의 총 년수에서 왕의 수를 나누면,
좋은 왕마다 통치 기간은 평균 33년이고, 아주 재미있지요?
하지만 나쁜 왕마다의 통치 기간은 평균 11년인데, 이것이 바로 역사의 결과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좋은 정권이 나쁜 정권보다 더욱 오래 유지 되었고,
좋은 통치자가 나쁜 통치자보다 평균적으로 더욱 오래 정권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평균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각각은 달라질 수 있지만, 평균! 못되지만 오래 통치한 왕도 있음.
여기서 하나님이 역사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고,
우리는 도덕적으로 다스려지고 있는 우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악한 왕들은, 명이 길지 못했습니다. 선한 왕의 삼분의 일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한 왕은 평균 33년 통치하였고, 악한 왕은 평균 11년 통치하였는데,
이는 간단하지요.
하나님은 선한 왕의 통치 기간을, 악한 왕보다 3배나 더 연장시켜 주셨다는 뜻이지요. 맞습니까?
그래서 <열왕기서>는, 각 왕의 통치 기간을, 우리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는데,
당신도 한번 계산해 보세요.
그래서 당신이 열왕기서를 읽을 때, 당신이 계산한 왕들 통치기간의 결과들을 보면서,
거기에 함의가 무엇인지를, 당신이 생각해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이 왕은 30년 통치했고, 저 왕은 15년 통치했고’ 하면서,
아주 지루하게 느낄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역사입니다.
당신이 실제로, 왕들의 재위 기간을 계산해 보면, 하나님이 역사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이것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모든 역사에 그대로 적용되지요.
선한 문명이 오래 지속되었고, 악한 문명은 짧게 있다가 사라졌는데,
하나님이 보좌에 앉으셔서, 역사를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계속하여 이스라엘 왕국을 살펴봅시다.
총괄적으로 이스라엘 나라가 세 단계를 통과했는데,
첫 번째 단계는 통일 왕국입니다.
이 단계에는 세 왕이 이스라엘 12지파를 통치했습니다. 통일왕국이 세 왕밖에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첫째 왕은 사울, 그는 나쁜 왕이고, 두 번째는 다윗인데, 그는 선한 왕이지요.
세 번째는 솔로몬인데, 그는 좋을 때도 있었고 나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하나님이 사울, 다윗, 솔로몬에게 각각 40년씩 왕으로 있게 했는데,
이것은 눈 여겨 볼만 합니다.
40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이 사람을 테스트 하시는 숫자이지요.
광야에서 40일, 광야에서 40년, 하나님이 사용하는 이 40이라는 숫자를 사용해서,
(제가 어떻게 설명할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시험 기간인데, 기간이 차면, 합격/불합격을 결정하십니다.
세 왕에게 각각 40년은 하나님의 눈에, 시험의 기간이었습니다. *순종하는지/아닌지 시험
이때는 12지파가 함께 있을 때, 하나님은 이 세 왕에게 시험 기간을 주셨는데,
이는 그들이 왕으로서의 능력이 되는지를 테스트 하는 것이었지만, 아쉽게도 그들 모두는 합격하지 못했어요.
시작은 모두 아주 좋았는데, 마지막이 모두 나빴어요.
하나님은 그 중에서 다윗을 보시고는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하셨어요.
이 세 왕이 40년 기간 시작부터 끝까지 좋았던 왕은 한명도 없었어요.
그래서 통일 왕국 결국은 실패하였던 것입니다.
<사무엘하>에는 다윗의 40년 통치가 기록되었고,
<열왕기상> 1~10장까지는 솔로몬의 40년 통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죽자마자, 남북으로 갈라졌고, 내전이 발생했습니다.
남북간 긴장관계가 점점 더 커져갔지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남방은 수도 부근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남방은 풍족하고 번영하였는데,
북방은 계속 아주 가난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북방은 이런 현실에 아주 불평을 터트렸습니다.
정부가 예루살렘에 있다 보니, 남방만 관심있다고 원망하였어요. 여러분, 이해됩니까?
우리는 이런 현상을 아주 잘 이해하지요. *영국과 비슷해서요
보통 수도의 소재지의 부근 지역은, 모두 비교적 번영하고, 혜택이 많이 주어지지요.
그래서 솔로몬이 죽자 12지파를 계속 단결 시켜 줄 사람이 없었고,
두 지파는 남방에 남게 되어, 수도와 다윗의 후손을 보존시켰던 것입니다.
북방의 10지파는 수도도 없을 뿐 아니라, 왕의 후손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들은 예배할 곳이 없고, 다윗의 후손도 없는데, 그럼 그들은 어떻게 했지요?
그들은 자체적으로 2곳에 제단을 세웠는데, 벧엘과 단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관심을 끌 만한 물체를 세웠습니다.
벧엘과 단에 각기 큰 금송아지 우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체적으로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제게 여로보암의 인장(도장 같은 것)이 있는데, 여러분 보십시오.
인장의 그림에 위에는 사자가 한 마리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상징이지요.
그 인장에 여로보암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요.
이 인장은 복사본이고 원본은 아닙니다. 원본은 당시 므깃도에서 출토되었어요.
이 사람이 바로 그들이 선택한 왕이고, 여로보암은 다윗의 후손이 아닙니다.
그 후로 북방은 여러 왕조가 차례로 출현했습니다.
이유는, 끊임없이 왕을 죽이고, 정변을 일으켜서 왕조를 찬탈하고, 참으로 슬픈 이야기지요.
그래서 그들은 금송아지를 세워서 예배의 중심지를 구축하고,
왕이 있긴 했지만, 보통은 선왕을 죽이고, 자기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북왕국의 이야기는 참으로 슬픕니다.
그리고 남북이 갈라진 후 80년 동안, 남북 사이의 전쟁은 계속 되었으며,
한번은 북방의 10지파가 수리아, 다메섹과 조약을 맺어
연합해서 두 지파밖에 안 되는 작은 남유다를 멸하려고 하였어요.
당시는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할 때인데, <이사야서> 서두 에서
그 자세한 내용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남북은 80년간을 싸웠고, 그 후에는 80년간의 평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은 아무 탈 없이 잘 지냈고, 80년 기간 아무 탈 없이 잘 지냈습니다.
80년은 40년의 두 배라는 것을 주의해서 보십시오.
북방과 남방은 한동안은 아무 탈 없이 잘 지냈어요. *여호사밧과 아합 시대부터~
하지만 이 평화의 세월에, 하나님이 두 선지자를 보냈는데,
그들이 <열왕기서>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엘리야는 왕상17장~왕하 2장까지 길게 기록되었고,
그 다음 엘리사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여러분도 보셨겠지만, 이 두 선지자는 북방에서 아주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는데,
이때는, 남북사이에 전쟁이 없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엘리야와 엘리사 이후로, 남북이 또 전쟁하기 시작했고,
그들이 서로 공격했고, 더러운 모략을 써서 다시 서로 싸웠지요.
그 후 얼마 안 되어 앗수르가 올라와서, 이스라엘의 10지파를 포로로 잡아갔는데,
그때가 주전 721년경이었습니다. 10지파는 이로써 사라졌습니다.
사실 그들은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고,
하나님은 그들이 거기에 분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들은 흩어졌지만 <계시록>에는
‘하나님이 이 12지파를 그들의 있는 곳에서 데리고 오리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어디 있든지 알고 계시고, 하나님이 계시록의 약속을 기록하셨습니다.
▶북왕국이 망하고 이제는 남왕국만 남았는데,
이 왕국은 다만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로 구성된 작은 왕국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주위의 작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수도를 지키고 있었고,
여전히 다윗의 후손을 계승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그들의 왕은, 여전히 다윗의 후손으로 이어져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10지파인 동포들이 포로되는 것을 보고, 응당 이렇게 말해야지요.
‘우리도 바짝 긴장해야 되겠어.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도 포로로 끌려가게 하실지도 몰라!’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여러분의 집안 식구가 10명이 납치되어 사라져버렸는데,
하나님이 ‘남은 너희도 행위를 조심하지 않으면, 잡혀갈 수도 있어.
그래서 너희도 바짝 긴장해야 돼’ 라고, 여러분께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비극적이게도, 그들은 남유다는 조심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먼저 사전 경고 없이는, 결코 징벌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자입니다.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나는 선지자에게 먼저 보내서, 내가 시행하려는 바를, 백성들에게 알리지 않고는,
결코 행하지 않는다’라고 하셨어요. 암3:7
그래서 하나님이 엘리야와 엘리사를 북왕국에 보내셨고,
후에는 아모스와 호세아도 보냈지만,
호세아는 마지막 선지자이고, 그 후로 북방에는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남왕국 두 지파에도, 거듭해서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이사야를 보냈고, 미가를 보냈고, 나훔을 보냈고, 많은 선지자를 보냈는데,
그들 모두는 선지자의 음성을 귀담아 듣지 않았고,
비극은, 주전 587년에, 북왕국이 망한지 140년 후에,
남유다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는데, <열왕기서>의 이야기는 이로써 끝났습니다.
이상은 <열왕기서>의 개략적인 역사였습니다.
다음은 ‘분열왕국’을 읽게 되는데요, 읽기가 참으로 혼란스러워요.
남방을 얘기했다가 또 갑자기 북방을 얘기하곤 하는데요, (여러분은 주의해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남유다 왕은 이렇게 하였고.. 하다가, 북이스라엘 왕은 저렇게 하였고.. 하다가
다시 남유다 왕은.. 하는 식인데,
저자는 양쪽을 함께 설명하느라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방식은,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헷갈리게 하지요.
우리 생각에는, 정말로 단숨에 북방을 다 얘기하고, 그 후에 남방을 다 얘기 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저자가 이렇게 교차적으로 설명한 것은,
두 왕국이 어떤 때는 서로 전쟁을 했고, 어떤 때는 아무 탈 없이 잘 지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쌍방의 스토리를 반드시 동시적으로 기록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북왕국이 망하고 남쪽의 두 지파로 구성된 남유다만 남으니
후에는 이야기가 비교적 단순해지지요.
어디서 ‘유대인 Jew’이란 단어가 나왔을까요?
‘유대인’이라는 이 단어가, 옛날부터 사용된 것은 아니고,
그 말이 히브리말이긴 하지만, 전에는 ‘이스라엘’이라고 불렀지요. *유대인이라 부르기 전에
‘유대인’은 바로 ‘(남)유다’나라에서 온 것이고, 이때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예수님이 나타나시고, 이 단어가 특히 ‘복음서에서’ 아주 보편적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갑자기 이 얘기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래도록 <요한복음>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였다’고 계속 말하고 있어서,
기독교에서는 그 요한복음에 나온 유대인을, 모든 유대인을 가리키는 줄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지난 20세기 동안,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였다고 유대인들에게 끔직한 박해를 가했습니다.
“너희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였잖아!”
하지만 요한이 <요한복음>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였다고 했는데,
거기서 ‘유대인’은 모든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단 남유다만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서 남방의 예루살렘과 그 부근 사람만을 가리키지, 북방의 갈릴리 사람들은 포함하지 않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무리지어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님을 사랑했어요.
예수님이 남방의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가시니, 거기 유대인들이 적대시 하였어요. 이해가 됩니까?
여러분이 <요한복음>에의 ‘유대인’을 읽을 때,
이를 모든 이스라엘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는 남방의 유대인을 가리키는 것이지, 북방의 유대인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만약 우리가 이 사실을 일찍 알았다면, 수 세기 동안의 오해를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유대인은 남유다 사람들을 가리키는데요, *요한이 복음서를 썼을 당시를 생각해 보세요.
사실 이렇게 불리게된 것은, 포로에서 돌아온 것은 이 두 지파이기 때문이지요.
당시 유대지파 중심으로만 돌아왔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이 이름(유대인)이 마치 이스라엘의 전부/대표인 것처럼 지금까지 고정적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이 사실이 당신의 이해에 어떤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책의 배경
▶이제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열왕기상하>는 누가 기록하였습니까? 어떻게 기록하였습니까?
어느 때에 기록하였습니까? 왜 기록하였습니까?
누굽니까? 우리는 모릅니다.
유대인 대다수는 이것을 예레미야가 기록하였다고 생각하는데, 정말로 예레미야가 기록한 것 같아요.
<열왕기서>중의 어떤 부분의 단어 구사가 <예레미야서>의 어떤 부분과 똑같습니다.
우리는 선지자들이 역사를 기록했다고 알고 있지요. *예언만 하는 게 아니라 예언 + 역사기록
그들은 역사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자는, 예레미야로 보는데, 어떤 사람들은 에스겔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레미야라고 보는데, 그 이유는, 이 책에서 예레미야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서 이 시기 역사의 중간에는, 예레미야가 언급되어져야 하거든요. *엘리야, 엘리사처럼
그런데 이 책에서 그를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동시대에 다른 사람이 열왕기를 기록하였다면, 예레미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하지만 만약 그 자신이 기록하였다면, 자기 자신을 언급하지 않을 수 있어요. *겸손으로
그는 또 다른 책에 자기의 예언을 기록하였습니다. *예레미야서
또 다른 한 두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저는 예레미야가 기록하였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래서 의문의 여지를 남겨놓습니다.
▶이 열왕기서가 어떻게 기록 되었지요?
<열왕기서>에서 거듭 얘기하는데,
‘솔로몬이 행한 모든 것은 <솔로몬 실록>에 기록된 것처럼’ 왕상11:41
‘이 모든 것들이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에 기록된 것처럼’ 왕하15:11, 왕하14:18등
‘이 모든 것들이 <유다 열왕기>에 기록된 것처럼’이라고 합니다. 대하27:7, 35:27등
그러므로 열왕기서의 저자는, 분명 국가의 역사 자료를 참조 하여,
다른 사람들의 기록을 집합하여 역사를 참고하여, 편집한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로부터 어떤 교훈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려 했을 것입니다.
<이사야서>에 어떤 부분도 <열왕기서>와 똑같아서, 그 부분은 이사야가 기록한 것이거나,
혹은 그 부분은, 예레미야가 이사야의 말을 인용한 것이라는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확실히 일반 역사서 기록 방법을 채택하였고,
도서관에서 자료들을 수집하였으며, 그리고 그렇게 이 책을 편찬하였는데,
우리가 이 역사책에서 심오한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이 책이 어느 때에 기록되었는지요?
많은 분량은, 분명히 바벨론에 포로 전에 기록되었는데,
‘이는 성전이 아직 있을 때’라는 것을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자는 ‘오늘날까지 이르니라’라는 표현도 빈번히 썼습니다. 왕하10:27, 16:6등
‘오늘날까지 그러하였다’는 표현도 <열왕기서>에 계속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저자는 분명히 나라가 멸망하기 전에 기록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열왕기서>의 마지막 부분은, 바벨론에 포로된 중간기에 기록되었으며, 왕하25장
▶그리고 여기에 아주 놀라운 메시지를 하나 기록했는데,
이는 바벨론이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죽였고,
그들은 시드기야를 매우 잔혹하게 대하였는데, 쇠사슬로 그를 묶고,
또한 그의 아들들을 그의 앞에 줄 세워서, 그 자리에서 그 아들들을 모두 죽였고,
시드기야가 자기 모든 아들들이 죽는 것을 본 후, 바벨론 사람들이 그의 눈을 빼어
그를 쇠사슬로 묶어 데려갔는데, 이것이 시드기야가 당한 것입니다. 왕하25:7
하지만 그전의 여호야긴 왕이 있는데, 그는 나약하여 바벨론 사람들에게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이 비록 그를 포로로 잡아갔지만, <열왕기서> 마지막에 기록하기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 왕을 석방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초청하여, 그 후로 왕의 식탁에서 먹게 하였어요. 왕하25:27~30
이 사건은 정말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이 열왕기서의 마지막 부분에 기록된 뉴스는
바로 <열왕기서>가 포로기 중간기에 기록되어서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조금 후에 다시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다윗의 후손이, 바벨론에서 왕과 식탁을 함께 하였다는 뜻인데,
이 사람(여호야긴)의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남을 봅니다. *개역엔 여고냐, 마1:12
다윗 왕의 직접적인 후손이 뜻밖에도 느부갓네살에 의해 보존되어 내려 왔다는 것입니다.
그 왕의 후손은, 유대인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후, 스룹바벨에 의해서 계속 이어지는데요, *귀환 후 초대 총독
우리가 후에 다른 책에서, 그에 대해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스라서에서
그래서 비록 재앙에 재앙이 겹치고, 공포에 공포가 겹치는 와중에도,
다윗의 후손은 여전히 보존되었고,
다만 예루살렘은 잃어버렸는데, 이 도시의 이름에는 하나님의 이름(샬롬)이 들어있지요.
▶위 사실이 아주 중요한 한 가지 문제를 가져오게 되는데, 왜 <열왕기서>를 기록하였을까요?
우리는 이제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어요.
이제 이 나라가 국토를 잃었고, 수도를 잃었고, 백성들은 이방에 강제적으로 포로로 잡혀갔고,
포로된 그 세대는 영원히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어요. *바벨론에서 죽었지요.
그들이 반드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게 하셨을까?’
만약 당신과 당신의 자녀가 이런 일들을 만나면, 반드시 똑같이 이렇게 물어 볼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강제적으로 고국을 떠나, 영원히 고향 땅을 보지 못한다면,
마음속으로 반드시 많은 질문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시냐? 하나님이 이러한 불행을 나에게 임하게 허락하다니..’
<열왕기서> 전체는, 하나님이 왜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도록 허락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줍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너희 잘못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약을 어기신 적이 없다.
그분은 약속을 지키셨다. 그분은 약속하기를,
‘너희가 거역하면 반드시 이러한 불행을 만나게 될 것이다’ 라고 미리 경고 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을 비난하지 말라,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지키셨다.”라고요!
저자는 열왕들이 내리막길을 걷는 이 모든 역사 기록을 통해서
한 가지 확실한 교훈을 보여주는데, ‘하나님은 약속을 성실히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유다 패망)은 절대적으로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니고,
이는 완전히 너희들이 유발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일찍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약속을 알았지만, 그들은 그 말씀을 무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무시)이 바로 사람의 본성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하나님이 우리가 살았던 삶에 근거하여, 우리를 심판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보세요, 인간 본성은 참으로 삐뚤어져 있어요. 하나님의 형용사적 표현에 의하면 ‘목이 뻣뻣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삶이 하나님을 화나게 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여전히 평소 자기 방식대로 사는데요,
이는 우리가 그분의 인내심을 끊임없이 나쁘게 이용하는 것입니다.
마치 유태인의 시인 하이네처럼 말입니다. 그는 유대인 무신론자입니다. *하인리히 하이네
그는 평생 죄 중에서 제멋대로 살다가, 마지막에 젊은 나이에 파리에서 죽었어요.
사람들은 임종 전에 성직자를 불러서, 그의 죄 고백을 듣게 했는데, 그러나 그는 죄고백을 거부했어요.
그는 누워서 죽어가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실 것이에요. 그게 하나님의 직업이잖아요’
이 하이네의 임종 전 말이, 유명한 시인이니까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서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인내를 나쁘게 이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이네의 유언을 인용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이 인내심이 바닥나는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몇 백 년동안 이스라엘에게 인내하셨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심판의 맷돌은 천천히 돈다.
그러나 그 맷돌은 정말 세밀하게 갈아낸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는, 가까운 장래든지 먼 장래든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열왕기서>를 기록한 목적이며,
저자는 역사를 사용해서, 그들을 교훈하였습니다.
이 책이 비록 어두운 역사로 가득하지만, 그 속에서 여전히 희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그 약속하신 언약을 절대 깨뜨리지 않으신다는 점이, 바로 그 희망입니다.
저는 구약성경을 읽을 때, 이 사실이 계속 반복해서 나올 때마다, 밑줄을 긋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언약을 깰지라도, 나는 절대로 깨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가 비록 이방에 포로가 될지라도, 나는 너희 자손을 다시 데리고 올 것이다’
하나님은 그 분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분은 절대로 식언하시지 않으십니다.
약속하기를 그들을 바벨론에서 데리고 나오겠다고 하셨는데,
그분이 확실히 그들의 자손을 그렇게 귀환 시키셨습니다.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70년간 포로 되었는데, 왜 그랬는지 아십니까?
제가 아마 전에 얘기 했을 것인데, 하나님이 한 가지 율법을 세우셨는데,
그들이 매 7년마다 땅을 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땅이 쉼을 얻어서, 다시 생기를 회복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솔로몬 때부터 500년 동안 계속해서 이 율법을 완전히 무시하였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계산해보면, 몇 년을 그 땅이 못 쉰지 아십니까? 70년입니다. *매7년마다 1년씩 쉬면 70년 쉬면 490년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땅을 쉬지 못하게 하였으니, 내가 그 땅을 쉬게 하겠다.
그래서 너희들은 이 땅에서 나가라. 그래서 이 땅이 원래 쉬어야 할 쉼을 다 쉴 때까지!’
여러분, 이해가 됩니까? 계산이 딱 맞지요?
이것이 바로 저자가 <열왕기서>를 기록한 목적입니다.
만약 예레미야가 열왕기서를 기록하였다면, 그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내가 지나간 500년 역사를 기록하여, 사람들이 역사적 교훈을 알게 해야겠다.’
이 재앙이 12지파 모두에게 임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절망적인 것은 아니고,
하나님이 다윗의 후손을 보존하겠다고 약속하셨고,
그가 그들의 자손을 유대로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하셨는데,
미래에도 이 약속을 그분이 반드시 지키실 것입니다. *20세기 이후 유대인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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