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사명 행9:15~16 15.10.18 출처
◑이중사명
이중사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정기간 기도를 하면서,
어떠한 일을 잘 해내겠다고, 사명감을 갖고 시작합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처럼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고난이 계속될 때도 있습니다.
사명감을 갖고 일을 시작하면, 영광만 따라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명 때문에 고난이 더 많이 찾아오게 됩니다.
마치 마트에 가면, 한 가지 물건을 사면, 또 한 가지를 덤으로 주는 ‘원 플러스 원’처럼,
사명의 길에는 ‘플러스 고난’이 뒤따르는 길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두고 ‘이중 사명’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예를 들면, ‘여자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을 가진 역도선수 장미란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안겨줬던 선수입니다.
올림픽에서 그녀가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려 메달이 확정되면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면서 기뻐했습니다.
특히 장미란 선수는 시합이 끝나면 항상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그리스도인들은 더 큰 감동을 받곤 했습니다.
반면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바벨을 들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장미란 선수도 아쉬워하면서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모습이 TV를 통해 비춰지면,
우리도 함께 안타까워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제대회에 참석했던 런던 올림픽에서는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자,
눈물을 글썽이면서 바벨을 향해 손 키스를 해서, 지켜보는 국민들도 많이 안타까워했습니다.
장미란 선수는 런던 올림픽이 끝난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장미란 선수를 위한 은퇴식이 있었습니다.
은퇴식에 장미란 선수를 위한 깜짝 이벤트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야구 감독이 편지를 보내온 것입니다. 그 편지 가운데 일부분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장미란 만큼은 영원한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많이 아쉽네.
역도에 전력투구한 땀과 노력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선물해준 역도 외길 인생은
대한민국을 빛나게 해주었네.
런던 가기 전에 어깨 아프다고 해서, 포기하라고 권유하고 싶었지만
스포츠맨의 진수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네.
이제 여행갈 때 역기 가져갈 생각하지 말게나.
앞으로 편하게 할 일이 많이 기다리고 있으니,
선수 때와 다른 더욱 빛나고 멋있는 금메달을 목표로 살아가길 바라네.
그 동안 너무 멋있었고, 아름답고, 큰 감동을 전한 너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네.”
▶이 편지에서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 있습니다.
1) ‘어깨 아프다고 해서,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스포츠맨의 진수를 느끼고 싶어서, 말을 접었다’는 대목입니다.
그녀에게는 스포츠맨, 국가대표라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어떤 어려움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부상을 당해 몸이 아파도, 부상 후유증이 있어서,
몸과 마음이 무거워도, 국민들의 기대감으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이 있어도,
그녀는 무거운 바벨을 들어올려야 했습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도저히 올림픽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힘들게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기 위해
그녀는 이겨내야 할 고난이 있었습니다.
2) ‘여행갈 때 역기 가져갈 생각하지 말라’
이 문장 하나에서 ‘장미란’이라는 이름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
그리고 눈물과 수고가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수많은 ‘고난’이 따르는, 이중사명을 감당했던 삶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는데, ‘고난’이 함께하는 것을
‘이중사명’이라고 합니다.
사역자 지망생은, 오랜 시간 기도한 이후에
사명감을 갖고 시작합니다.
그러나, 생각처럼 잘 안됩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일로 인해 고난이 계속됩니다.
‘사명감’이 있는 삶은 ‘영광’만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오히려 그 사명 때문에 고난이 찾아옵니다.
마치 ‘1 + 1 행사’처럼 ‘사명’과 ‘고난’이 함께합니다.
이와 같은 것을 ‘이중 사명’이라고 합니다.
◑사울의 이중 사명
‘이중 사명’을 갖고 삶을 살아낸 한 사람의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사울’이라고 불리우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향하던 사울은 놀라운 사건을 경험합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췄습니다. 그는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오로지 강한 소리만 들려왔습니다.
그에게 새로운 명령이 전해집니다.
행9: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누군가 사울에게 와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려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사울은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면서 살아갑니다.
▶사울이 이러한 일을 겪을 그 때에, 또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행9: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엎드러져 소리를 듣고 난 이후,
사흘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그 순간에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에게 놀라운 사건이 발생합니다.
아나니아가 환상을 봅니다. 환상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행9: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환상 속에 나타나신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합니다.
-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라
-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라
- 누군가를 찾으라
그러나, 아나니아는 이 명령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찾아야 할 대상이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행9: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아나니아는 벌써 많은 사람들에게 사울에 관한 소식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본격적인 핍박이 시작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흩어져 다메섹에도 왔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닥치는 대로 옥에 가두고,
직접 죽이는 데 앞장선 인물인 사울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큰 분노와 적의를 갖고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던 그 사람을 찾아가라는
주님의 명령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사울은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할 권한을 갖고
다메섹으로 오고 있던 자였습니다.
이런 자를 당장 찾아가라는 주님의 명령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사울이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떤 사명을 감당해야 할 사람인지 두 가지 말씀하십니다.
1) 사울의 첫 번째 사명
행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주님께서는 사울이, 복음 전파를 위해 사용될 ‘택한 그릇’이라고 합니다.
‘택한 그릇’이란 말은 많은 그릇들 중에서 나머지를 ‘포기’하고
사울 ‘한 명만’을 선택했다는 말입니다.
우연히 얻은 그릇이 아니라, 주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그릇이라는 의미입니다.
사울이 선택받은 것은 금그릇과 같이 귀해서도 아닙니다.
사울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그릇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보잘 것 없는 그릇이지만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그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한 그릇으로 사용하기 위해 선택한 주님의 그릇이 사울이었습니다.
이것이 사울의 첫 번째 사명입니다.
2) 사울의 두 번째 사명 *여기서 <이중 사명>이 나옵니다.
행9: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또 다른 사명은 복음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사울이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앞으로 받게 될 고난은 그의 선택에 따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의하여 지정된 필연적인 사명이었습니다.
이것이 사울의 두 번째 사명입니다.
사울의 사명을 정리하면 ‘복음 증거’와 ‘고난 받음’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온 세상으로 운반하여 가는 복음 전파의 사역과
그의 이름을 전할 때 따라오는 고난이 그의 사명입니다.
그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할 때마다
바로 이 이름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사울에게 주어진 ‘이중 사명’이었습니다.
◑우리의 이중 사명
이러한 ‘이중 사명’은 사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주어진 사명입니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복음을 전하는 그릇으로 사용되면 사용될수록,
그 복음 때문에 고난의 자리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중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가 ‘이중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이중 사명’을 감당하려면, 다음의 3가지 질문에 답변해야 합니다.>
▶1. 먼저 ‘누가 인생의 주인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사울은 자기신념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출신에 대한 신념이 강했습니다.
자신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한 신념이 강했습니다.
자신이 습득해온 지식기반에 대한 신념이 강했습니다.
자신이 유대인으로서 갖고 있는 정체성에 대한 신념이 강했습니다.
사울은 빌립보서 3장을 통해 자기신념이 강했던 시절을 고백합니다.
빌3:5-6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이러한 사울에게 인생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었습니다.
강한 ‘신념’으로 무장된 자신의 ‘생각’이 항상 진리였고,
강한 신념으로 무장된 자신의 ‘가치관’이 인생의 중심이었습니다.
그 신념에 따라 사울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에게 인생의 주인이 뒤바뀌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고꾸라지는 순간
그는 인생의 주인이 자기 자신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바뀝니다.
그 순간 그의 입술을 통해서 고백되는 말이 무엇입니까?
행9:5 “주여 당신은 누구입니까?”
강한 빛과 더불어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주여’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주여’는 단순한 존칭의 의미를 넘어섭니다.
이 말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통치자’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주관자’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즉, “당신이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라는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앞으로는
사울은 예수를 주인으로 삼고, 주인으로 섬기겠다고 고백합니다.
그 길이 험난할지라도 새로운 주인에 의한 삶을 살겠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한 사울은, 이후 이중 사명을 감당합니다.
▶사울이 이중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첫 번째 비결은 무엇입니까?
사울은 ‘누가 내 인생의 주인인가?’란 질문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중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신념이 주인이던 시절에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만났던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의지하는 흔들림 없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맡겨진 이중사명을 감당합니다.
여러분! “누가 우리 인생의 주인입니까?”
우리 인생의 진정한 주인은 우리가 갖고 있는 신념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진정한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믿음의 선포가 흔들림 없어야 이 시대에
우리에게 맡겨진 이중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2. 다음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문제입니다.
사울은 인생의 진정한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진정한 미션을 발견했습니다.
사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할 때에 이렇게 말합니다.
행26:16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예수께서 사울에게 나타난 것은 ‘종과 증인’으로 삼기 위함이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종’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표현입니다.
‘종’으로 번역된 단어는 원래 로마의 전함 밑창에서 노를 젓는 노예를 일컫는 단어입니다.
이들은 주로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를 지었으나 집행이 유예되어
노역에 종사하는 자들로서 오직 명령에 따라서 노를 젓는 일만 해야 했습니다.
사울은 바로 이러한 단어를 사용하여 자신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사로잡혀
오직 복음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노예’가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헬, 휘페레테스
사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사로잡힌
노예와 같은 ‘종’으로 살았다고 말합니다.
사로잡힌 ‘종’으로서 수행해야 할 미션을 말합니다.
행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사울이 감당해야 할 미션은 사람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 사울은 이 미션에 자신의 목숨을 바칩니다.
- 사울은 이 미션에 목숨을 다하여 열정을 바칩니다.
- 사울은 많은 이방인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구체적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 사울은 이와 같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 ‘이중 사명’을 감당합니다.
▶사울이 이중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두 번째 비결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란 질문에 대한 확실한 미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을 복음을 전하는 노예라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더 많은 사람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사명을 감당합니다.
이것이 그의 삶의 이유였습니다.
이러한 미션이 있었기에 그는 이중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여러분은 목숨을 바칠만한 미션이 있으신가요?
2년 전에 개봉되었던 영화 <늑대소년>에 송중기는 주1)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드는 미션이 있기를 바랍니다.
미션을 수행하는 기대와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던져줄 수 있는 미션이 있어야
크고 작은 고난이 따르더라도 ‘이중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3. 마지막으로,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사울은 자신을 괴롭히는 ‘육체의 가시’ 때문에 매우 힘든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는 육체의 가시에 대해서 3번 간구합니다.
고후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9절 끝에 가면 ‘머물게’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성경을 보시면, ‘머물게’ 앞에 숫자 1)이 있습니다.
이 (난외 주, 각주) 번호를 따라 성경책의 밑을 보시면,
헬라어의 의미가 ‘장막으로 덮게’입니다. *영어 rest, 헬. 에피스케노우, to fix a tent
9절 뒷부분의 단어를 헬라어 의미로 바꿔서 다시 봅시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장막으로 덮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장막을 만들어 선교를 감당했던 바울에게 최고의 장막이 있었습니다.
그 장막은 바로 그리스도의 능력이라는 장막이었습니다.
그 장막은 자신의 ‘학문’이 드러날 때는 별로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 장막은 자신의 ‘출신’이 드러날 때도 별로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 장막은 어느 것 하나 ‘자랑스러운 것’이 드러날 때 아무 효과가 없었습니다.
사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의지하면 할수록
그리스도의 능력의 장막은 자신을 덮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의지함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리스도의 능력의 장막”은 “나의 장막”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울은 오직 약한 자아의 모습으로 주님만을 의지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인 장막이 자신을 덮어주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울이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 기쁨이 바울이 살아가는 힘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세 번 간구했던 바울은 거절당해서 몸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그리스도의 능력의 장막 즉, 그리스도의 보호하심이
자신에게 머물고 있는 위대한 은혜를 느끼며 살고 있음을 깨닫고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누리기 시작합니다.
▶사울이 이중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세 번째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가?’란 질문에 대해
그리스도의 능력의 장막이 자신을 덮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약할 때 강함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의 장막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이중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나의 약함을 덮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장막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우리에게 주어진 ‘이중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의 장막을 덮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치는 말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에 우리 또한 사울과 같이 이중사명을 갖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복음 전하는 그릇으로 선택하셨듯이,
우리를 선택하셔서 복음 전하는 그릇으로 사용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울이 복음을 위하여 살아갈 때에
고난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하셨듯이 우리 또한 그러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이중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이중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 ‘누가 인생의 진정한 주인인가?’
-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믿음의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주1)
2년 전에 개봉되었던 영화 <늑대소년>에 송중기는
늑대와 함께 자란 소년이므로, 늑대의 본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과 함께 사랑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인간의 성품을 배워야 했습니다.
이때 늑대소년이 인간(박보영)에게 받은 미션은 무엇입니까?
‘기다려’입니다.
늑대의 본성이 나타날 때면 ‘기다려’란 명령이 있었습니다.
둘이 헤어질 때도 미션은 ‘기다려’였습니다.
늑대소년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이 내린 미션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지킵니다.
아무 댓가가 없어도, 외로워도, 고통스러워도....
‘기다려’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늑대 소년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을까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미션을 수행하는 늑대소년은 한 편으로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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