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
지난번 우리는 마태복음을 유대인을 위해 기록한 책이라고 함께 나누었습니다 마태는 유대인의 사고방식으로 자신의 관점을 저술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복음은 구약 성경을 이어 받았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섬세히 배려하여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를 회피하며 “천국”이라는 단어로 대치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함께 마태복음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의미를 나누고자 합니다. 마태복음은 성도들에게 주는 글입니다. 사복음서 중 두 편은 죄인들에게 쓴 글이고 나머지 두 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글입니다. 이것이 사복음서를 기본적으로 나누어 지는 다른 관점입니다. 아마 여러분이 능히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설명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됐습니다. 여러분이 틀리지 않게 하기 위해 제가 말을 하겠습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죄인을 위해서 쓴 글이며 성도들을 위해 쓴 것은 아닙니다. 이는 비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필요한 것이고 또 예수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 읽기에 좋은 글입니다. 누가복음에는 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즉 탕자의 이야기,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등등의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경험에 의하면 누가복음은 비 그리스도인이 읽기에 좋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비 신자에게는 제일 적당하지 않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요한복음을 가지고 설교를 함으로 엉망이 되게 만듭니다. 요한복음은 매우 심도가 있는 책입니다. 비 신자는 1장 3절 앞에 기록 된 말씀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뒤에 있는 구절들은 어떨 가요? 우리는 요한복음을 사용하기 좋아합니다. 반드시 상대방에게 3장까지 읽게 하면 그러면 그곳에는 “사람이 반드시 거듭나야 함”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읽어 내려가면 요한복음 3장16절을 읽게 되는데 이렇게 하여 복음을 듣게 합니다. 사실 요한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은 성도들을 위해, 기독교인들을 위해 기록하였습니다. 즉 예수 믿는 사람을 위해서 입니다. 설령 당시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인들을 부르는 칭호입니다. 교인들의 대다수는 자칭 “제자”라고 불렀습니다.
제자는 마태복음의 중요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은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자들, 예수님을 본받을 자들을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유일하게 교회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여러 분이 이것을 주의해서 읽었나요? 마가복음은 그런 말이 없습니다. 누가복음도 없고 요한복음도 없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에는 두 번 교회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런데 이 두 번 언급한 교회에 대한 의미는 다릅니다. 처음에는 16장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의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금 가서 두 가지 사명을 완수 하겠고 합니다. 그는 이전에 사용하지 않던 두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교회를 세울 것이다”입니다. 이는 결국 반석을 찾은 것입니다. 오직 한 무리의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만이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내가 능히 십자가에서 죽을 수 있다”입니다. 2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기까지 예수님은 종래로 교회와 십자가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그는 누군가가 자기를 알게 되었으므로 그는 능히 이 땅에 온 사명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사랑스러운 베드로, 우리가 알기로는 그는 항상 엉뚱한 말만 하였습니다. 거의 맞는 말을 한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만은 마음에 드는 말을 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이는 네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지금 내가 능히 교회를 세우리라” 베드로는 듣고 매우 흥분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자기가 반석이 될 줄로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또. “내가 인제는 십자가에서 돌아갈 수 있구나”고 말씀하시니 베드로는 항변하면서 “주님, 절대 안됩니다” 금방까지 예수님을 왕이라고 부르시던 것이 지금은 또 그를 조종하려고 합니다. 이는 매우 웃기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정확히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항상 범하는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가리키고 있는 교회는 당연히 땅 위에 있는 교회이며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세상에는 오직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만 존재합니다. 감사한 것은 그가 친히 교회를 세우시는 것이지 우리에게 가서 세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세우 십니다.
18장에서 예수님은 두 번째로 교회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곳에서는 분명히 앞에 있는 교회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만약에 이곳에서 땅 위에 있는 교회를 말한다고 하면 아마 당신이 평생 비행기를 타고 다녀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이곳에서 말하는 교회는 능히 찾아 가서 상담할 수 있는 교회를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두 가지교회의 의미입니다. 다른 뜻은 없으며 이것은 종파 교회와 전현 무관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님이 세우시며 지역적 교회는 땅 위에 있는 교회의 일부분입니다. 만약에 여러분 가운데 의견이 있으면 지역 교회에 가서 물어 보세요. 때문에 마태복음은 교회를 향하여 쓴 글입니다. 보통 복음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목적을 문장의 앞부분에 놓기를 좋아하는데 이는 독자들에게 먼저 내용을 알게 합니다. 하지만 이전에는 거의 모두 글의 목적을 제일 마지막에 놓았습니다. 이후 우리가 함께 나눌 마태복음도 이와 같습니다.
마태복음은 마지막에 예수님이 승천하면서 분부한 명령이 있습니다. 그가 다시 오기 전 하나의 사명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것이 바로 마태복음의 목적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제자들에게 한 것입니다. 때문에 마태복음을 하나의 제자훈련수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신약가운데서 초신자들을 인도하기에 가장 적합한 책이기도 합니다. 이는 맞춘 옷 입은 것과 같은 제자훈련수첩입니다. 전문적으로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가를 가르치는 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를 위해 결정할 것이 아니라 그는 우리가 가서 제자훈련하기를 원합니다. 모든 것은 지금부터 결정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결정은 몇 분밖에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자훈련은 몇 년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이는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를 훈련하고 그들을 가르쳐 지상에서 천국의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마태가 이 복음서를 쓴 목적은 바로 우리로 예수님의 제자를 양성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또 신약 성경의 가장 처음에 넣은 목적의 하나 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은 기독교인들의 가장 좋은 입문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금방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적합한 복음서는 바로 마태복음입니다. 이렇게 적합한 것은 왜냐 하면 마태복음의 주제는 천국입니다. 이 시간 이 곳에 있는 천국, 매우 가까운 곳에 있는 천국, 손에 잡힐 것만(닿을 것) 같은 천국, 육신 가운데 있는 천국, 죽은 다음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 들어 갈수 있는 천국입니다. 하지만 이 천국에 들어가면 특별한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천국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주제야 말로 이스라엘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합니다. 이는 전체 성경이 말하는 중요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전체 성경이 말하는 것은 천국이 다시 이 땅 위에 세워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 이 지구에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때문에 마태복음의 요지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믿건대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 유일한 다른 것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요지는 능히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게 합니다.
지금까지 가르치면서 여러 분에게 하나 해석 해야 할 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도대체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대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에 의하면 천국은 장래의 일이고 아직 강림하지 않은 미 완성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내세라고 합니다. 현재 매 유대인들은 아직도 아름다운 내세를 기다리며 또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메시아가 오면 내세도 같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이미 왔음을 믿지 않으므로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모년 9월 혹은 10월에 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매년 9월, 10월에 장막절을 기념하여 메시아의 강림을 경축합니다. 유대인은 기쁘고 즐겁게 장막절을 경축합니다. 그들은 이 군왕이 천국을 이 땅에 가지고 옮을 기대합니다. 이는 그들에 미래에 대한 희망입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사악한 세상은 사탄이 통치하고 있으며 마귀는 이 세상의 왕입니다. 그는 이 세상의 통치자이며 이 세상의 신입니다. 이 칭호는 예수님과 바울이 지어 주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명칭입니다. 사람들은 사탄이 지배하는 사악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메시아가 9월 혹은10월의 장막절에 강림하시면 그는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 때문에 유대인들이 미래에 대한 가장 큰 기대는 메시아의 오심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미래에 대한 기대는 메시아는 이미 왔고 또 다시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이것이 “천국의 비밀”이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의 비밀은 메시아가 두 번 오는 것이지 한 번이 아닙니다. 이는 그는 이미 왔고 때문에 미래의 세계는 이미 왔습니다. 그림에서는 점선으로 표시하였습니다. 여러분이 보입니까? 미래의 세계는 이미 일찍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확실하게 강림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이 시각에 이 사악한 세상을 천국은 대체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의 기대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세계가 끝나는 줄로 생각합니다. 메시아는 한 번 오셨습니다. 하지만 메시아는 두 번 오셔야 천국이 세상과 겹치게 됩니다.
성경에서 바울은 정확히 천국과 세계가 공존하는 도리를 가르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때문에 고난과 좌절이 끊어지지 않고 핍박을 받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천국과 세계가 병존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분이 이해를 하셨나요? 우리의 임무는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건져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너무 좋고 그리고 능히 직접 천국에 들어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에게 이와 같이 말합니다. “자기를 정결케 하고 더러운 자들은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아 자신의 죄를 정결케 하며 예비된 천국을 받으라.” 만약에 메시아가 정말로 한번만 와서 이 사악한 세상이 끝난다면 그러면 이 세상에 있는 죄인들은 모두 죽어야 합니다. 어느 누가 감히 살아 남을 수가 있을 가요? 때문에 그는 먼저 꼭 와서 사람들에게 천국을 맞이할 준비를 시켜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씻고 자신을 준비하고 시간이 차면 천국이 완전히 임하게 됩니다” 이렇게 준비 된 사람들만이 천국에 들어 가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왕권 아래에 있을 수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은 천국과 세계가 병존하여 있습니다. 만약에 유대인 개인이 각각 자기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하나님의 선민이며 나는 꼭 천국에 들어 갈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한번은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달려 가서 말합니다. “천국의 잔치에 참여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반문 합니다. “당신이 정말 그 잔치에 참여 할 것을 확신합니까?”
여러 분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사람을 세상으로부터 천국에 인도하기 위해서 입니다. “장래의 세계”는 사실 이미 왔으며 우리는 미래에 속해 있으며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전적으로 임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악한 세대는 아직도 운행합니다. 때문에 사탄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나라의 사이에는 매우 큰 싸움이 있습니다. 사태는 매우 긴장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으로부터 천국으로 들어 갑니다. 매 분마다 45명이 천국으로 들어가며 매 주일 2000개의 교회가 세워 집니다. 사람들은 바뀌고 있습니다. 단만 그들을 사탄의 나라에서 나오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나라를 받도록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어떻게 천국 자녀의 생명의 삶을 사는지 가르쳐 줍니다. 때문에 마태복음의 목적은 오늘날 어떻게 천국의 삶을 사는지를 보여 줍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일생을 5개의 주제로 나누어 기록합니다. 이는 또 5편의 설교 가르침입니다. 이 5편의 설교 가르침 가운데서 제일 유명한 한편은 산상수훈입니다. 하지만 다른 설교 가르침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 가운데 있는 일부분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제가 이 다섯 편의 설교교훈을 하나 하나 이름을 붙이기를 원합니다. 이 다섯 편의 설교교훈들 가운데서 한편만 산에서 설교한 내용이고 기타는 모두 다른 곳들 입니다. 이 다섯 편의 설교 내용은 모두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기왕 나라이면 왕이 있고 백성이 있고 좋은 군주와 좋은 백성이 있습니다. 아래에는 다섯 개의 주제가 있습니다.
제 일편, 산상수훈, 천국의 생활에 대해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산상수훈은 비 신자에게 어떻게 살라는 교훈이 아닙니다. 이런 생활 방식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비 신자에게는 어떻겠습니까. 이는 그리스도인을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은 그들의 것 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 임이요.” 여기서 예수님이 가리키는 사람은 새롭게 거듭난 사람입니다. 새롭게 거듭난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기록한 책입니다. 좀 있다 계속하여 나누기를 원하는데 일편 교훈은 5장부터 7장까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 이편, 예수님이 부동한 시간과 지점에서 가르친 내용의 집합체 입니다. 목적은 “천국의 사명”입니다. 왜냐 하면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의 사명이 있는데 이는 자신을 천국으로 인도해야 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함께 천국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이 사명은 일찍 시작 할수록 더욱 쉽고 늦게 시작 할수록 어렵습니다. 금방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적절합니다. 일단 그들이 어떻게 천국의 삶을 사는가에 대해 배웠으면 응당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9장과 10장에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가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복음 전하는 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오직 두 사람이 한 조로 하여 가기만 하면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치유되고 귀신을 쫓고 그리고 천국이 가까웠다고 알려주면 됩니다. 이와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그 후 듣게 하고 기적을 행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간단합니다. 우리는 현재 사람들로 먼저 복음을 듣고 그 후 기적을 보게 합니다. 사실 먼저 듣고 그리고 보는 것도 비교적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야고보와 요한이 한 도시의 거리를 걷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바라건대 귀신들린 사람을 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갑자기 그들이 시장의 한 가운데서 미친 사람을 발견합니다. 야곱이 말합니다, “요한 내가 알기로 얼마 가지 않으면 좋은 식당 하나가 있는데 우리가 그곳에서 먼저 밥을 먹어요, 만약 내일 아침 그가 또 이 자리에 있다면 그때에 우리가 가서 섬기죠.” 요한이 말합니다. “ 안되, 야곱 너는 비겁한 사람이야, 때문에 네가 먼저 가서 섬기고 다음 내가 섬길 것이야, 자네가 섬길 때 나는 길 모퉁이에서 너를 위해 기도 할게.” 지금 그들이 왜 갔는가에 대해 나는 알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돌아 올 때 매우 흥분되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마귀도 그들의 말에 순종하였다 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매우 용맹스럽구나, 하지만 능력으로 인해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나의 책에 기록 된 것으로 인해 기뻐하라” 예수님은 계속 흥분하여 말합니다. “내가 금방 사단이 하늘에서 번개와 같이 떨어 지는 것을 보았느니라” 여기서 우리가 주의하여 살필 것은 예수님이 사용한 동사시태 입니다. “내가 금방 보았느니라” “너희들이 둘씩 갈 때에 나는 사탄의 이쪽 상황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은 기뻐서 외쳤습니다. “천부여, 아버지는 똑똑하고 부유한 사람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이런 젊은이들을 사용해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이번에 성공할 줄을 알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과 성령의 능력으로 평범한 사람도 사탄을 무너 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동의 한다면 “할렐루야”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천국의 사명입니다. 마태복음 9장과 10장을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지를 알았습니다. 어떻게 반대세력을 대하며 어떻게 세상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제 삼편에 있는 교훈은 13장인데 이는 우리들의 소망에 대해 나누고 있습니다. 사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사기는 전쟁가운데 승리할지 아니 할지 모르지만 항상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마태복음13장에는 여러 편의 천국의 비유에 대해 말씀합니다. 첫 번째는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근심하지 말라, 네 개의 씨앗 중에서 세 개의 씨앗은 결과가 없을 지라도 한 씨앗이가 30, 60,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 뿌리는 씨앗이 돌밭 혹은 잡초가운데 뿌려 질지라도 실망하지 말라.” 왜냐 하면 마지막 결실은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좋은 씨앗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비유를 하면서 말씀하시기를 “가라지를 뽑느라고 신경을 쓰지 말라. 이는 네가 할 일이 아니다.“ 안타까운 일은 그리스도인들이 씨를 뿌리는 일보다도 가라지를 뽑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내 뜻을 알고 있나요? 우리는 가라지를 뽑는데 열심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가라지는 계속해서 자라 날것입니다. 사탄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옆에 있습니다. 두 나라는 함께 존재합니다. 하지만 근심 할 것은 없습니다. 추수 때가 되면 자연적으로 분리가 됩니다. 설령 사탄의 세력이 날마다 강해 질지라도 그래도 근신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도 더욱더 강해 지기 때문입니다. 두 나라가 동시에 성장하면 그는 우리에게 충만한 기대를 가집니다. 예수님은 또 겨자씨 비유를 합니다. 겨자씨는 매우 작은 씨앗입니다. 손 바닥 위에 50알의 씨앗을 놓았을 때도 보일까 말까 합니다. 이렇게 아주 작은 씨앗이 나중에는 커서 나무가 됩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마치 겨자씨와 같다고 합니다. 이는 확실합니다. 처음에는 오직 11명의 제자들로 시작하지만 현재는 이미 15억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회는 죽음 앞에서 없어지는 사회단체가 아닙니다. 이는 작아 지지도 않고 갈수록 성장하기만 합니다. 마치 한 알의 작은 겨자씨와 같이 결국 큰 나무로 성장합니다. 이 비유는 모두 1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망할 때 13장을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크고 아름다운 진주를 발견하고 이 진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립니다. 그는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천국을 향해 가져야 할 태도 입니다. 우리는 혹시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지만 결국 가장 좋은 것을 얻게 됩니다.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값진 진주와 바꿀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불평이 가득한 악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천국은 마치 그물을 바다에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물을 거둘 때 여러 종류의 고기들이 가득합니다. 좋은 것 못 된 것들이 있습니다.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물에 차기까지 기다렸다가 그물을 끌어 올려 어부가 자연히 가려냅니다. 하지만 오늘날 목회자들은 이런 비유로 설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목사는 100명의 좋은 회중이 있을지언정 1000명의 못 된 회중은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물에 고기가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목사는 한 마리의 길 잃은 양 찾기를 즐겨야 합니다. 목사는 전도자들과 부동한 부분이 있습니다. 전도자는 그물로 고기 잡는 사람들이고 목사는 낚시하는 사람입니다.
천국에 관한 제 사편의 설교는 천국의 사회입니다. 여기서는 교회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잃은 양의 비유에서는 타락한 그리스도인을 찾아 가기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에게 아픔을 가져다 준 친구를 대하여야 할지에 말합니다. 교회에 알리고 교회를 통해 그 허물을 덮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모두 교회의 규범이고 이는 모두 초신자들이 알아야 할 가르침들 입니다. 이는 모두 천국 백성들이 훈련 받아야 할 주제 입니다.
마지막 24장과 25장의 목적은 천국의 미래와 군주의 다시 오심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 그는 감람산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 제자가 질문하는데 언제 다시 오시고 오실 때 어떤 징조가 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그날이 가까웠는지를 알 수 있나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4개의 정확한 징조에 관해 설명합니다. 이제 클라이맥스에 오고 있습니다. 먼저 말하지는 않지만 답은 이후의 프로그램에 있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4개의 징조를 알려 주면서 그들이 어떻게 기다리며 어떻게 기도하며 그리고 알 수 있는 것은 마지막 날이 가까왔음 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몇 개의 간단한 비유로 설명합니다. 오직 열두 제자들에게만 말하는데 어떻게 자신을 준비할 것과 어떻게 군주을 영접할 것인가를 알려 줍니다. 여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모든 비유에서 언급하는 것은 “주인은 오는데 꼭 더디 오는 것입니다.” 자신을 준비하여 다신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시험 중 만약에 그분이 다음 주 화요일에 오는 이는 쉬운 일인데 만약에 그분이 천년 후에 오면 이 일은 어렵게 되는데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시험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가 주님이 오시기 며칠 전에 무엇을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귀하게 여기는 것은 그가 떠나 있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했는가 입니다. 여러분이 충성되십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은사를 잘 사용하여 자신의 등이 빛나게 합니까? 이것이야 말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이 오실 그 때에 맞추어 의를 행하겠다고 말합니다. 틀렸습니다. 주님이 언제 오던지 오늘이야 말로 의를 행하여야 합니다. 천국의 삶을 사는 것은 마땅한 삶입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시기를 “너희들은 모세의 율법을 들었다. 하지만 나의 율법은 같지 않다. 모세는 율법에 살인하지 말라 하지만 예수님의 율법은 저주하는 자는 살인한 자이며 미련한 자라고 욕하는 자도 살인한 자와 같다.” 매우 엄격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모세의 율법에 아내 외에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말하는데 예수님의 율법은 눈으로 봐도 안되며 음란한 마음을 가져도 안되며 다시 결혼하려고 이혼해도 안 된다고 합니다. 매우 곤란하게 합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것은 근심하지 말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여태까지 그리스도인이 근심하는 것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왜 내가 매번 이 말을 할 때 마다 여러 분은 웃고 있나요? 예수님은 이것을 우스갯소리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이 웃고 있는 것은 이것을 들을 때 매우 풍자적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결코 우리는 웃었다고 해서 깔보지 않습니다. 나도 웃습니다. 예수님은 말하기를 “근심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동식물에 관심을 가지시지만 자신의 자녀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들판의 야생화를 보살피고 공중에 나는 새를 먹이는데 하물며 나는 그분의 자녀인데 나는 꼭 근심해야 하는요? 산상수훈을 보기를 원합니다.
내가 맨섬 달라스를 산책하고 있을 때 우연히 한 형제를 만났습니다. 그 형제가 말하기를 사람이 그리스도인과 프리메이션 회원이 될 수 없음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렇다고 말했고 저는 확실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는 제에게 2분의 시간을 주겠다면서 만약 이 2분 안에 나에게 증명하면 내가 투항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좋다고 말하고 손목시계를 벗어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천국의 삶을 살라고 하였습니까? 그는 대답하기를 욕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프리메이션회원은 먼저 피를 가지고 언약을 합니다. 비밀을 퍼드린 사람은 용서가 되지 않고 죽어야 합니다. 그는 그 세운 언약이 농담으로 한 것이 라고 변명하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가 그렇게 말할 줄로 알았습니다. 왜냐 하면 회원으로 가입된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옳으면 옳고 아니면 아니라 하라고 하였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겉과 속이 다르지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좋습니다. 2분이 다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는 그 말을 받아 들였습니다. 때문에 산상수훈의 말씀은 매우 실용적입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의 마음 태도, 복수하지 않음 등등을 나누었습니다. 비록 행하기가 어렵지만 확실히 천국의 삶입니다. 때문에 제자들에게 마태복음을 읽게 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천국 백성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천국의 일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떻게 천국의 삶을 살며 어떻게 천국은 전파하며 어떻게 천국에서 성장하며 어떻게 준비하며 어떻게 천국 공동체의 생활하며 즉 교회 생활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즉 이 시간 이 시각부터 천국의 생활을 시작합니다.
마태복음에는 특별한 주제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먼저 관심 가질 것은 이곳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 가입니다. 하나는 마태복음 중에 44번이 중복 된 부분이 있는데 이는 우리는 천국의 백성이면서 천부의 아들입니다. 만 왕의 왕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마태복음에는 아버지라는 단어를 사용한 횟수는 기타 복음서보다 많이 언급됩니다. 마가, 누가는 많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태는 항상 언급하며 총 44번이나 기록합니다. 저는 세어 보았습니다. 마가는 4번, 누가는 조금 많은데 17번 입니다. 마태는 44번 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분이 천국의 백성일뿐만 아니라 꼭 기억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백성일뿐만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율법주의에 빠져 들게 됩니다. 이것은 갈라디아서를 나눌 때 더 깊이 나누기를 원합니다. 율법주의는 그리스도인들의 생명 가운데 큰 적입니다. 일단 율법에 빠지면, 혹시 백성이라는 신분만 기억하고 있다면 매우 중요한 것을 잃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마태복음의 마지막 한 부분에 대해 계속 나누고자 합니다. 마태 복음에는 가장 주요한 3개의 주제가 있는데 이 주제는 제자훈련의 기초입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며 예수님을 따른 후 어떻게 그와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 것인가 입니다.
제일 첫 번째 주제는 계속해서 언급하는데 이는 바로 믿음입니다. 천국의 백성, 천국의 자녀는 지속적인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는 먼저 믿음에 관해 나누지 않겠습니다. 함께 요한복음을 배울 때 더 많이 나누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가운데서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질문하는데 “당신은 믿습니까? 내가 말 한 것을 믿습니까?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 여러분은 믿습니까? 여러분은 믿습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를 때 구비하여야 할 첫 번째 요소는 확고히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두 번째 주제는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의’에 관한 주제입니다. “의”는 행위와 믿음의 조화를 필요로 합니다. 먼저는 믿음이고 그 후 행위를 필요로 합니다. 저는 종래로 들은 적이 없는 마태복음 중에서 가장 짧은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가 아들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합니다. 한 아들은 좋다고 대답을 하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다른 아들은 거절하였지만 그는 가게 됩니다. 결과 누가 아버지의 말을 들었나요? 이 비유는 사실 매우 짤막하고 간단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즐겨 듣지 않습니다. 이 비유가 가르치는 것은 행위입니다. 매우 잘 설명합니다.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무엇을 하였는가 입니다. 한 사람의 고백은 거짓말 일수도 있습니다. 제가 교회에서 말하는 거짓말은 외부에서 말하는 것보다 많습니다. 일반 적으로 찬양을 통해서 인데 자세히 후렴에 있는 가사들을 음미해 보세요. 사실 부를 수가 없습니다. 불러도 자신을 속이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부르는 찬양의 가사대로 나는 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기대하는 것은 우리의 행위입니다. 기왕 우리가 그의 제자라고 믿고 있다면 우리는 의에 알맞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때문에 마태는 우리에게 말하기를 왜 예수님은 세례를 받았습니까? 만약에 누가 자격이 되어서 세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면 그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는 죄가 없으시며 하나님이 정결하게 할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 요한은 말합니다. “내가 응당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곳에서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세례 요한은 종래로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절대 침례교회에 말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총체적으로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니다, 내가 너한테 세례를 받겠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이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준 본보기입니다. 물론 당신의 보기에 필요하든지 필요하지 않든지 응당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행하여야 합니다. “의”는 바로 해야 할 것을 당연히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반 사람과 다릅니다. 그의 세례는 회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는 해야 할 것을 당연히 행한 것을 설명합니다. 천부께서 그에게 가서 하라고 하니 그는 가서 한 것뿐입니다. 그는 논쟁하지 않고 그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내가 세례를 꼭 받아야 합니까?” 그는 말하기를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도 말씀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여러 분의 의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낮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 갈수가 없느니라” 이들은 최고로 하나님의 의를 행하고자 하는 사람이며 이들은 매 주일 두 번 금식하며 십일조를 엄격히 지키며 그들은 바다와 육지를 다니며 사람들에게 입교를 권하며 그들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헌금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들보다 더 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태의 뜻입니다. 때문에 믿지 않는 자가 마태복음을 읽으면 매우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은 선행을 행하여야 한다고 오해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선행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먼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이 이루어 지고 죄 사함이 있은 후에야 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제자에 관한 세 번째 그리고 제일 마지막 주제인데 심판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심판은 다른 세 복음서에 비해 많이 있습니다. 이는 이미 믿는 사람들에게 쓴 글 입입니다. 저는 방금 다른 한 권의 책을 완성했습니다. 금요일에 막 출판했습니다. 이 책은 이미 적잖은 소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는 지옥에 관한 책입니다. 제 생각에도 적지 않는 사람들이 몹시 놀랄 줄로 믿고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든지 성경에 충실 하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원래부터 믿으려고 하지 않는데 아마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책의 내용은 예수님을 믿는 저는 예수님이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사람으로 놀라게 합니다. 지옥에 관한 가르침은 반수가 넘게 예수님의 가르침에 있지 바울도 아니고 요한도 아닙니다. 구약에는 더욱 지옥에 대해 가르치지 않습니다. 전부 예수님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매번 사람들이 나에게 질문합니다. 인자하신 하나님이 왜서 사람들을 지옥에 보낼까요?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누구보다 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옥에 대해서도 믿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사람을 속이지 않는 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러 분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지옥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고 그리고 그 중에 대부분은 마태복음에 있습니다. 이는 믿지 않는 신자의 복음서에는 없고 오직 믿는 자의 복음서에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매 경고하는 구절의 앞뒤를 자세히 읽어 보면 우리는 이것은 거듭나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경고한 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2개의 경고를 제외하고 입니다. 이 책은 후에 커다란 충격을 줄 것입니다. 저는 적잖은 지옥에 관한 책들을 연구해 보았습니다. 이 책들은 모두 오래 전에 출판된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근래 이런 유형의 책을 쓰는 사람들은 점점 적어지고 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만 관심을 보입니다. 모두 지옥을 다른 사람에게 던져 줍니다. 이는 정말로 못된 심리상태입니다. 다른 사람은 죽고 자기는 괜찮고, 나는 천국 가고 너는 지옥 가기 입니다. 모두 당연히 지옥 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은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경고하고 두 번은 바리새인들에게 경고 합니다. 하지만 죄인에게는 종래로 경고하지 않습니다. 이상하지 않는 가요? 다만 나머지 모든 경고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인데 아마 여러분들에게는 익숙한 말씀들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이 말은 누구에게 한 것인가요? 죄인에게요? 아닙니다. 바리새인에게요? 그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한 말입니다. 당시 마침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여 천국 복음을 전하게 할 때 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 기록 되었는데 이는 선교사들에게 한 설교입니다. “너희들이 지옥에 갈 것이다”라고 예수님은 죄인들에게 가서 이것을 전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자들에게 자신들이 지옥에 가지 말아야 할 것을 경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만 경외 하세요. 다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런 것들로 인해 자연히 많은 문제들이 일어 납니다. 하지만 만약에 신약 성경 중에서 오직 마태복음만 지옥을 언급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두려움을 경계하고 삼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쓰레기장에 버려 지는 것을 피면 해야 합니다. 힌놈 골짜기는 인간 지옥입니다. 이는 예루살렘 근교의 산 골짜기 입니다. 그리하여 쓰레기들을 모두 버려 그곳에서 태워 없애 버립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은 매우 엄숙한 한 권의 복음서입니다. 이 책은 제자들이 진심으로 흔들림 없이 믿을 것을 가르치고 확실하게 예수님의 길을 행할 것을 말합니다. 때문에 이는 하나의 좋은 지도서이며 그리고 또 읽고 배울 복음서 입니다.
여러 분, 마태가 왜서 모든 가르침 즉 5편의 설교를 마태복음이라는 구조 속에 넣었을 가요? 그는 왜 오히려 이를 제자훈련수첩으로 만들지 않고 또 단도입적으로 본론에 들어가지 않았을 가요? 무릇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이 제자훈련수첩을 나눠 주어서 그들로 읽게 하면 얼마나 좋을 가요?
제가 왜서인지를 알려 드릴게요. 왜냐 하면 이는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행위는 분리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도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알겠습니까? 바꾸어 말하면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삶 사는 것을 가르치지만 말고 그리고 돌아가서 주님이 그들를 위해 돌아 가신 것을 언급하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저의 뜻을 알만 합니까? 우리는 복음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모든 일입니다. 왜냐 하면 만약 우리가 오직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교만해 질 수 있고, 바리새인들이 될 수 있고, 율법주의에 빠질 수 있고, 선을 행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한 모든 일들을 잊고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매우 지혜롭습니다. 그는 제자훈련수첩을 복음서라는 틀 안에 세웠습니다. 제자들을 파송한 이 예수님이 바로 치유하시고 사람을 살리시고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부활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것이 결말입니다. “가라”, “보라” 그렇지만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보기만 원하지 가기를 싫어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에는 조건적입니다. 가서 모든 민족을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고 그때 그가 여러 분과 함께 하십니다.
만약 누가 저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저는 그에게 당신이사람들에게 가서 주님을 전해 믿게 하면 여러분은 아마 금방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하게 될 것 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응답은 가면 내가 너와 함께 하심을 보게 된다 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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