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생각에 다니엘서는,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부분(1~6장)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가장 덜 알려진 부분(7~12장)을, 둘 다 담고 있는 책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니엘의 사자굴’을 압니다.
모든 사람들은 불타는 풀무(용광로)속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 대해서도 압니다.
또한 ‘벨사살 왕의 잔치’에 대해서도 아는 것 같은데요,
그 사건이 ‘벽에 쓴 글씨’의 출처이지요.
그 글씨의 의미는 ‘심판이 다가온다’이었습니다.
다니엘서는, 매우 쉽게 이해되는 책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책의 어떤 부분들은, 매우 선명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메시지를 얻는데 있어서, 제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다른 부분들은 매우 모호하며, *아마 7~12장
그래서 사람들은 그 부분과 수년째 씨름하기도 하고요,
특히 ‘다니엘의 70이레’는, 오래 동안 예언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연구대상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상당부분 자연적으로 쓰여졌습니다.
그래서 이해하기 쉬운데, 예를 들면 다니엘이 건강했던 것은,
그가 일정기간 붉은 고기를 멀리하고, 채소와 과일만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상당히 자연적인 일이며, 오늘날 매우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책에는, 상당부분 초자연적인 일들이 나오는데,
그래서 이 책의 기적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세 명의 남자가 불타는 풀무에 던져졌고, 그것도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겁게 달궜는데,
그들의 머리카락도 거슬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말합니다. ‘당신은 그걸 제게 받아들이라고 하나요?’
이 책의 많은 부분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다니엘처럼 타향으로집을 떠나기 때문이죠.
이 책이 너무 익숙할까봐 오히려 염려됩니다. *다만 인간적인 책으로 생각할까봐요.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포로들’, 이건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죠.
그래서 <다니엘서>는, 이런 질문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이 책은 도대체 어떤 책인가, 이 책은 인간적인 책인가, 아니면 신적인 책인가?’
이런 질문은 옛날부터 내려오던 질문이죠.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이, 인간에 의해서 쓰여진 인간적인 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을, 역사책이나 문학책처럼, 그저 종교 카테고리의 책쯤으로 여깁니다.
*카테고리만 다르지 똑같은 책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성경을 그렇게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신적인 divine 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의해 쓰여졌고, 하나님에 관해 쓰여진 책입니다.
적어도 성경은, 하나님에 의해 영감되었고, 사람이 썼더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 중 어떤 것(기적)들은,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성경 66권 가운데 많은 책이, 이런 똑같은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만 어떤 일(기적)들을 행하실 수 있고,
하나님만 어떤 것을 말씀하실 수 있기에,
우리는 세상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기적을 행하실 수 있고, 자연법칙을 잠시 멈추실 수 있거나
혹은 자연법칙에 개입하실 수도 있고,
혹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지배하는 인과법칙을, 초월해서 간섭하실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기사와 표적’을 행하실 수 있으며,
이 ‘기사와 표적’이, 특별히 이 다니엘서에 많이 나옵니다.
이 말은, 라틴어 Miras에서 왔는데,
어떤 놀라운, 믿기 어려운 것을 뜻합니다.
거기서 영어 miracle이 나왔죠, 뭔가 우리 이해를 넘어서는, 경이로운 일을 뜻합니다.
▲또 한 가지는, 오직 하나님만 어떤 일을 특별히 말씀하실 수 있으십니다.
오직 하나님만 미래에 대해, 권위를 갖고서 말씀(예언)하실 수 있으십니다.
미래에 대해, 사람이 말하는 것은, 추측에 불과합니다.
사람은 그저 내다볼 뿐이죠.
그렇지만 오직 하나님만,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는 다니엘의 생애 중에 75년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440년의 역사를 언급하고 있으며,
과거 역사가 아니라, 미래 역사입니다.
사실 우리가 그 역사를 살펴보면,
그건 적어도 2,400년의 역사를 커버하고 있으며, *구약만 400년, 신약까지 합치면 2,400년
그 먼 미래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예언합니다.
그러자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또 다시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들은 이런 기적적 예언들을 믿지 않으니까요. *기적도 믿지 않고, 미래 예언도 역시 믿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기적과 예언에 대해, 사람들의 태도에 변화가 있어 왔습니다.
과거에는 기적과 예언이야말로, 성경이 영감을 받은 증거라고 여겨져 왔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 변증가들은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보고, 성경에 나오는 예언들을 봐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게 바로,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증거다’ *과거에는 이랬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성경의 기적과 예언은, 성경의 진리를 증명하는데
오히려 장애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반대자들에 의해서 그렇게 주장되고 있는데요.
그들은 말합니다. ‘만약 성경에서 기적을 제하고, 예언을 제하면
나는 성경을 믿겠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기적과 예언이,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이 하나님의 책임을 믿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걸 믿는데 방해가 된다고 합니다.
왜냐면 지금 우리는 과학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데요.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세팅된 사람이, 어떻게 기적과 예언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요?
그들은 성경의 기적을, 사실보다는 지어낸 것으로, 즉 신화나 전설 정도로 취급하잖아요.
거기엔 역사적 진실도 일부 포함되어 있겠지만,
역사적 진실이라기보다는, 대하소설 정도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사자굴’은, 사자가 배가 불렀거나
다니엘이 너무 바짝 여위어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서, 먹을 게 없어서
잡아먹지 않았다는 식으로 설명합니다.
다른 말로, 이 이야기들은 역사적 가치는 없지만,
영적인 가치나 도덕적 가치는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들은 이 다니엘의 이야기를, 그저 이야기책 정도로 취급합니다.
이솝우화같은 재미있는 이야기책이나 다른 동화책 정도로요.
이런 자세가, 오늘날 사람들이 성경에 나타난 기적을 믿지 않고, 이것을
그저 도덕적 교훈이 담긴 이야기 정도로만 취급하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예언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기록된 것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난 후에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여러분들이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쓴 성경주석을 보시면,
그들은 미래에 관한 예언을 ‘나중에 편집해서 포함시킨 것’으로 설명합니다.
다니엘서의 예언들은, 사건이 발생한 후에, 책에 추가로 집어넣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니엘11장에 보면, 다니엘이 죽은 후에 일어난
놀라운 일련의 연속적인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그 후 수 세기 동안 일어난 세속 역사를 기록한 종이를 드릴 터인데,
여러분은 그 세속 역사와, 다니엘서 11장을 나란히 펴 놓고 보실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 11장에는 약 2백가지의 구체적인 역사가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 모든 예언은, 수 세기가 지난 후에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통계학적으로 볼 때, 그렇게 우연의 일치가 발생할 확률은, 믿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둘 중 하나인데, 그 일이 발생한 후에 기록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감동에 의해, 미리 기록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기적과 예언을 이렇게 인간적인 방식으로,
재미있는 이야기 정도로만 취급하고자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성경을 계속 읽고, 보존하려고 합니다.
왜 그러는지 그 이유를, 저는 모르겠어요.
성경을 그렇게 취급하려면, 차라리 성경을 던져버리면 될 터인데요.
그런데도 그들은 왜 성경을 계속 보존하려고 합니까?
아마도, 그들은 말하기를 ‘성경은 그래도 도덕적이며 영적인 가치가 있다.
그건 좋은 책이다’ 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기적은 빼 버리지만, 도덕적인 부분은 계속 보존하겠다는 것이죠.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경의 10계명과 산상수훈을 따르며 살되,
기적이나 예언은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성경을 버리는데,
그들은 성경이 미혹적이며, 현대에 부적합하며,
역사적으로도 이 책은 사실이 아니며,
그래서 성경을 가지지도 말고, 사지도 말아야한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이런 양면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대하고 있습니다.
*우화로 믿거나, 아니면 아예 믿지 않는 두 가지 태도
▲여러분, 사람들이 성경의 기적이나 예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근본적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그것은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파슨은, 그게 바로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초자연적인 부분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그것을 믿으면, 그들은 자기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하거든요.
하나님은 너무 확실히 존재하시면, 그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싫으니까 성경의 기적, 예언을 부인하는거죠
흥미로운 것은, 부활의 증거는 매우 확실합니다.
제가 쓴 책 on the resurrection 에서 제가 설명했듯이요.
부활의 증거는 너무 확실해서, 어떤 법정에서 어느 재판관이라도
부활은 확실히 일어난 사건이라고 확신할 것입니다.
거기엔 눈으로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과 더불어
정황적 증거가 더해져서, 부활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줄리어스 시저가 BC 55년경에, 영국을 침입한 사실보다
약 200배나 더 강한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줄리어서 시저가 영국을 침입한 사실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을, 제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활을 증거가 부족하다고 받아들입니다. 왜 입니까?
그것은, 만약 예수님이 죽은 자로부터 진짜 살아나셨다면, 그걸 인정하고 믿는다면
그들은 자기 삶을 바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으로 살기 싫으니까, 부활을 부인합니다.
예수님의, 자신에 증거는 분명하고 참이며,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들에 대해 말씀하신 것도, 분명하고 참이므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 성경말씀을거부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줄리어스 시저는 아무 일 없이 믿을 수 있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그런 식으로 믿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자기 전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속의 초자연적인 영역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사람들은 자꾸 주저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과학주의 뿐만 아니라,
즉 그저 ‘우리는 유한한 우주 속에 살고,
시험관이나 실험을 통해 조사된 것이 아니면, 다른 존재(하나님)는 없다고 믿는'
그런 과학주의 뿐만 아니라,
그것은, 원래 사람이 초자연적인 영역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는
어떤 죄악된 본성 때문입니다.
▲다니엘서를 보겠는데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다니엘서가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는 것인데,
전반부 절반은, 모두가 기적적인 이야기이고
후반부 절반은, 모두가 예언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초자연적인 것을 믿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다니엘서를 읽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그들에게 이 책은, 성경 66권 중에 최악의 책입니다.
단1~6장을 보면, 이 부분은 매우 매우 이해하기 쉬우며,
주일학교에서 가르치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처음 여섯 장을, 뒤에서부터 잘 압니다. *6-5-4-3장 순서로
그리고 우리는 이 이야기들을 아주 어려서부터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왜 후반부가 이렇게 어려운지요?
우리가 그 예언의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이며, 그래서 우리가 읽을 때 상당히 오리무중입니다.
그래서 제가 차트를 만들었는데, (차트를 못 찾음)
여러분의 머리로 그리면서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노트하시면 됩니다.
1~6장과 7~12장은 대조적인데요.
전반부 6장은 주로 기적에 관한 내용이고
후반부 6장은 주로 예언에 관한 내용입니다.
전반부 6장은 3인칭으로 쓰여졌는데, 다니엘을 가리키는 ‘그’로 나옵니다.
후반부 6장은 1인칭으로 쓰여졌는데, ‘나’입니다. 다니엘이 직접 썼습니다.
전반부 6장은 그에 관한 내용이며, about him
후반부 6장은 그에 의에 쓰여진 내용입니다. by him
전반부 6장은 다니엘의 살 동안에일어난 일들입니다.
후반부 6장은 다니엘의 사후에일어난 일들입니다.
그 (7~12장의 예언) 중에, 어떤 일들은 벌써 일어났고,
어떤 일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미래에 일어날 일들입니다.
전반부 6장은 당시 현재의 일이었고
후반부 6장은 미래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전/후반부 사이에서 가장 특이한 차이점은, 여러분이 주의 깊게 들으시기 바랍니다.
전/후반부가 각각 똑같이 6장으로 되어있는데,
전반부에서 1장은 히브리어로, 나머지 5장은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람어는, 당시에 가장 많이 통용되던 상용어였습니다.
아람어는, 당시 고대사회 어디를 가든지, 사용되던 언어였습니다.
후반부에서는 첫장(7장)이 아람어이고, 나머지 5장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이해하셨죠? 재미있습니다.
이 사실은, 그 내용들이 어디에서 읽혀질 것이며,
누구를 위해서 그 내용들을 썼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전반부에서 1장은 히브리어로, 2~6장은 아람어로 기록했고,
후반부에서 7장은 아람어로, 7~12장은 히브리어로 기록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아실 수 있습니다.
어느 부분이 불신자들에게 광범위하게 읽히기를 겨냥했으며, *아람어 부분
어느 부분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해되기를 목적했는지요. *히브리어 부분
아시겠죠?
그러나 그것은 2개의 똑같은 절반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훨씬 더 복잡한데요.
◑이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십시다. 13:35~
잠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바벨론에서 포로귀환 할 때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모두 다 함께 동시에 포로로 잡혀가지 않았고,
그런데 그들은 다 함께 동시에 귀환하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 역사를 너무 단순하게 보지는 마십시오. *3차에 걸려 잡혀갔고, 3차에 걸쳐 귀환
여러분이 그 기록을 자세히 읽으실 때는,
그들은 바벨론에 잡혀갈 때, 3차에 걸쳐서 잡혀갔습니다.
그리고 귀환할 때도, 3차에 걸쳐서 돌아왔는데요.
그러나 실제로 귀환한 유대인의 전체 숫자는, 매우 작았습니다.
잡혀간 숫자에 비교하면 매우 작은 숫자만 귀환했습니다.
사실 그들이 바벨론을 뒤로하고, 귀환할 때는
유대 공동체를 거기 남겨두고 왔는데, 그 공동체가 20세기몇 년 전까지 거기 아직까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가 되돌아오지는 않았습니다. 길도 멀었고요.
박사들은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왔는데
그들은 확실히 귀환 때남겨진 유대 공동체로부터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의 표적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보통 성탄절 이야기에서 나오듯이, 이방인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유대 공동체에서 온 사람들, 그 후손들입니다.
▲포로로 잡혀감은 3차에 걸쳐 일어났는데,
1차는, BC 606년 경에, 사회 상위층만 데려갔지요. 중요한 사람들요.
그들 가운데는 젊은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특별히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있었습니다.
이 뛰어난 젊은이들이, 유대 왕가를 위해 준비된 자들이었습니다. *친바벨론파 양성
이 4명의 영웅들이 이 책에 나오죠.
다니엘은 1차포로로, 이 젊은이들과 함께 잡혀갔습니다.
2차포로는 주전 597년에, 에스겔이 이때 잡혀갔고,
그는 다니엘보다 뒤에 잡혀갔습니다. 그리고 다니엘보다는 젊습니다.
나머지는, 주전 586년에 모두 잡혀갔죠.
그 해는 도시와 성전이 모두 무너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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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 모든 것을 기억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유다가 모두 일제히 포로로 붙잡혀갔다가,
모두 일제히 귀환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아닙니다.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1차포로로 잡혀갔고, 결코 귀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는 자기 고국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붙잡혀 갔을 때는, 10대 때였습니다.
나중에 그들이 돌아올 때, 다니엘서는
그들이 바벨론으로 잡혀 가고, 다시 바벨론에서 돌아오는데 있어서
어떤역사적 배경을 제시했습니다. *1차로 잡혀갔으니까, 초기역사부터 들어있네요.
그 모든 역사가 여기에 들어 있는데요.
그런데 다니엘은 결코 귀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벨론에 머물다가 거기서 죽었습니다.
그는 3차에 걸쳐 귀환할 때, 귀환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1차귀환은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BC 536년에 일어났습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바벨론이 바사에 BC 539년에 패했기 때문입니다.
바사의 통치자 고레스는, 그들의 귀환을 허락했고,
1차 귀환 때는 약 5만 명이 돌아왔습니다.
1차 알리야, 그들은 그렇게 부르죠.
알리야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는 뜻의 히브리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당신은 알리야를 한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1차 알리야는,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5만명이 돌아왔고요.
2차는, 몇 십년 후에 에스라의 귀환입니다. 그때가 BC 458년입니다.
성전이 BC 516년에 재건되기 시작했지만, 오래 동안 완공이 늦춰졌습니다.
마침내 최후의 3차 귀환, 거대한 알리야가 일어난 것은 BC 445 또는 444년입니다.
(정확한 연도 계산은 어렵습니다.)
이때는 느헤미야의 지도하에 일어났고, 이때 성벽이 재건되었고,
하나님의 도성은 주변의 적들로부터 이제 안전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한 가지, 제가 이 역사적 배경 가운데 지적하고 싶은 것은, 에스더입니다.
에스더는 차트에서이쯤 나옵니다. *에스라의 2차 귀환 직전
당시 그녀는 수산 성에 있었는데,
그곳은 메데-바사 제국의 수도였습니다.
에스더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살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다니엘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피는 중입니다.
그는 이 차트의 모든 시대에 다 살았습니다.
그는 1차포로 때 잡혀와서,
3차귀환 이후에도 계속 바벨론에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래 장수해서 살았고, 흥미로운 것은
그는 정복자가 계속 바뀌어도, 여전히 등용되었습니다.
왕들이 모두 다니엘의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제국이 다른 제국에 의해 망해도, 다니엘은 계속 등용되었습니다.
왜냐면 그는 그만큼 훌륭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런 놀라운 경력을 가졌으며, 그의 자질이 오래도록 계속 빛이 났습니다.
자 지금까지 역사적 배경이었고요.
이 중에서 바벨론 왕조에서 가장 중요한 왕은
물론 포로로 잡아갔던 일을 했던 느부갓네살입니다. *1~3차 포로가 모두 느부갓네살 때
여러분이 오페라 나부꼬를 보셨다면, 보셨나요?
그 오페라는 바벨론의 포로 사건을 경이롭게 다루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이것이 역사적 배경이었습니다.
◑다니엘의 일생이 이 책의 1~6장에 나와 있습니다. 18:52~
<제1장>은, BC 605-606년에 있었던 그의 포로 송환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가 바벨론 궁전의 선택을 받은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는 바벨론 신의 이름을 따라서, 바벨론 식 이름을 부여 받습니다. *벧드사살
그래서 벨드사살 이라고 불리웠는데, 그의 세 친구도 역시 새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는데, 그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데, 누가 기분이 좋겠습니까?
그들은 거기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신실하게 지켰습니다.
그때 위기가 발생했는데, 왜냐면 그들이 너무 잘 먹고, 살이 쪘기 때문입니다.
당시 살찐 것이 왕궁에서는 좋게 여겨졌습니다.
오늘날엔 통가가 그러하지요.
만약 여러분이 통가의 왕족을 보신 적이 있으면 알 수 있는데,
어떤 궁전에서는, 살찐 것을 부유함의 상징으로 좋게 여깁니다.
그래서 그들은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아주 살이 쪘습니다.
그런데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대학에서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이 있었고, *환관장 아스부나스
그들은 거기서 바벨론의 모든 지혜와, 우수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환관장은 말하기를 ‘내가 너희들을 살찌우지 않으면, 왕이 내 목을 칠 것이다.’
그러자 다니엘은, 그 환관장과 협상을 했습니다.
다니엘은 말하기를 ‘우리는 10일 동안 육식을 먹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만 먹겠습니다.
그 후에 당신은, 다른 청년들과 저희를 비교해 보십시오.
만약 우리가 보기 흉하거나 건강하지 않으면, 우리가 당신의 식단을 따르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다니엘이 자기 신앙 원칙을 지켰는데,
그건 음식 같은 아주 작은 문제였습니다.
바로 이 다니엘이 후에는 사자들을 상대했는데,
여기에 심오한 교훈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작은 문제라도, 당신의 신앙을 지키면,
후에 큰 문제에도, 당신의 신앙을 굳게 지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타협하지 않습니다.
제 파슨이 한 번은, 아주 신앙이 성숙한 사람과 대화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 파슨이 정말 압박을 받았을 때,
예수님을 위해서 사자굴에 기꺼이 갈 수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정말 제게, 순교적 신앙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때 그 분이 제게 말한 것을, 저는 결코 잊지 못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데이빗 파슨, 만약 당신이 작은 일에 신실하다면,
큰 시험이 닥칠 때에도, 하나님은 당신에게 이길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이길 것입니다.’
여기에 심오한 교훈이 있습니다.
당신이 선택하는 작은 결정, 그 작은 것들이.. 당신의 인격을 점점 형성해 가며,
그 작은 일에 당신이 올바른 선택을 할 때,
나중에 큰 압박이 닥쳐도, 당신은 요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작은 일에 요동하는 사람은, 큰 인격적 시험이 닥칠 때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다니엘서 1장에서 우리가 배우는 교훈입니다.
그들은 건강만 남들보다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학문에 있어서도, 남들보다 10배나 더 뛰어났습니다. 1:20
저는 이것이 대학에 다니는 모든 기독학생들에게, 적용되기 바랍니다.
때때로 기독학생들은, 신앙적인 모임에 참석하느라 너무 바쁩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
그들이 주님을 위하여 하는 가장 최선은,
공부를 잘 해서, 다른 학생들보다 뛰어나는 것입니다. *시간에 열세이지만요
보세요. 바로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그는 진실한 성품을 가진 젊은이였고,
그는 젊은 시절에, 자기 미래 일평생의 직임에 관한 기초를 놓았습니다. *자기 인격을 훈련했습니다.
그래서 비신자들 가운데서도, 자기 임무를 잘 수행했습니다.
그는 장차 세속적 직업을 가질 사람이었습니다. *종교직이 아니라요
그런데 사실상 하나님께 속한 사람에게는 ‘세속적인 직업’이란 없습니다.
모든 직업은 신성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입니다.
이제까지 1장이었습니다.
▲<2장>은, 다니엘서에서 좀 신비한 부분인데, 거대한 신상 꿈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전반부 여섯 장 가운데서, 제 파슨을 아리송하게 만드는 유일한 부분인데,
왜냐하면 2장은, 묵시적이며 환상적인 부분으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고, 그는 왕국의 모든 지혜있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러분들이 내게, 그 꿈을 해석해주기 원한다. 그런데 나는 그 꿈을 잊어버렸다.
여러분이 내게 그 꿈 해석과, 그 꿈 내용을 말해 주지 않으면, 너희 머리가 떨어질 것이다.
왜냐면 내가 그 꿈을 꾸고는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건 정말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그 꿈을 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왕이 꾼 꿈이 무엇인지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래, 그게 내가 꾼 꿈이다.’
그들은 그 의미도 말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왜냐면
왕이 자기가 꾼 꿈을 기억도 못 하는데, 그 꿈의 의미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 꿈은, 괴물 같은 거대한 거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거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재질이 아래로 갈수록 자꾸 낮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머리부터 금, 다음에 은, 다음에 동, 다음에 철, 발은 진흙이었지요.
여러분은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즉 ‘진흙 다리’ 혹은 ‘진흙이 섞인 철로 된 다리’ 말입니다.
그 꿈의 해석으로는, 그 금으로 된 머리는 느부갓네살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이 신상 꿈의 전체 의미는,
미래에 다른 제국이, 바벨론을 대체한다는 내용의 묵시였습니다.
실제로 바벨론은 고레스와 다리오의 메데-바사에 의해 대체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지만 메데-바사는, 바벨론과 같은 웅장함과 영광은 갖지 못했습니다.
아무 제국도 바벨론이 가졌던 강력함은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메데-바사는 그리스에 의해 대체되었는데,
알렉산더 대제는, 메데-바사의 흔적을 다 없애버렸습니다.
알렉산더 대제는, 인도까지 정복했습니다.
그는 수도 페르세폴리스를, 그리스에 짓지 않고 메데-바사 지역에 건설했습니다. *지금의 이란 땅
그 수도의 잔해를, 오늘날 여러분은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는, 로마에 의해 대체되었습니다. ‘철로 된 다리’죠.
실제로 로마의 상징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왜냐면 로마의 군대는 로마의 법질서(철에 비유)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 다음은 ‘진흙과 철이 섞인 다리’였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살펴봅니다.
왜냐면 나중(7~11장)에 또 나오니까요.
그러고 그는 꿈에서 보았는데, 산에서 취해진 돌이, 깎아서 다듬어진 돌이 아니었어요.
(제가 좀 빨리 나가서 미안해요. 7장에서 또 살펴볼 겁니다. 그래서 이 내용은 빨리 넘어갑니다.)
이것이 그 꿈과 그 해석이었어요.
단1~6장 사이에서, 유일하게 이해하기 까다로운 부분입니다.
그 꿈은, 느부갓네살에게 하나님이 1차로 경고하신 것입니다.
‘내가 나라들을 모두 다스리고 있다.’
다니엘서 전체가 바로 그 말을 하는데요,
나라를 일으키기도 하고, 망하게도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왕국이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그게 언제 생기고, 언제 사라질지를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히스토리는 ‘그 분의 스토리’이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왕국을 뒤 이을, 다른 왕국들을 일으키겠다.
그 왕국들은 네 왕국만큼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왕국들은 점차적으로 약하게 될 것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을 행하는 자는, 바로 나 하나님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왕국들은 내 것이다. 네 것이 아니다.’
▲<3장>은, 풀무불 이야기로 유명한 장이죠.
느부갓네살은, 아마도 그 꿈 때문에, 거대한 동상을 세울 것을 명령합니다.
그건 약 30미터 높이에, 약 3미터 넓이였어요. 금으로 덮어 씌웠지요.
메소포타미아 땅은 마치 팬케잌처럼 편평해서, 눈으로 보면 멀리까지 보입니다.
그 30미터 높이의 동상은, 사람들에게 매우 인상적이었을 겁니다.
그 상은, 그 웅장함으로 그 지역의 풍경을 지배했을 것이고,
느부갓네살은, 악단이 연주할 때마다 모든 사람이 그 우상에 절하도록 명을 내렸습니다.
그건 마치 어떤 ‘국가 종교’를 만들어서, 제국 내 모든 사람들을
한 종교로 통합하려는 시도 같아보였습니다.
그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신상에 절하는 것을 거부했고,
저는, 그때 다니엘이 어디에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왜 그는 세 명과 함께 붙잡히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들은 우상에 절하기를 거절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그러나 누군가 그들을 고자질해서.. 여러분은 그 이야기를 아시지요,
그들은 불타는 풀무불(용광로)속으로 던져졌습니다.
이것은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풀무불에 던졌던 사람도 불에 태워졌는데, 그 정도로 뜨거웠는데,
이때 느부갓네살이 풀무의 입구를 기웃거리며 보니, 4명이 그 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는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그렇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자기가 이해한 만큼 표현한 것입니다.
‘신들의 아들과 같은 이’
그 불은, 세 명을 묶고 있던 밧줄을 태워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머리카락도 그슬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여러분은 이걸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이걸 믿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유대주의가, 바벨론 제국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데요,
그때부터 반유대주의가 나타나서, 이제 전 세계에서 일어납니다.
▲<4장>은 구약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걸 좋아하다니 제가 약간 이상한 사람임에 틀림없군요. *농담
4장은, ‘느부갓네살이 미친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기 경험을, 기사와 표적이라고 말합니다.
그게 사실인 것은, 느부갓네살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기로 회심했기 때문입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이야기죠.
제가 여러분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 4장의 배경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느부갓네살이 한 왕비와 결혼했는데, 그 예쁜 왕비는 페르시아의 산악지방 출신이었습니다.
오늘날의 테헤란 지역입니다.
그 지역은 숲과 산들로 둘러싸여있고,
그녀가 느부갓네살의 궁전으로 시집와서는, 향수병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그녀는 수도 평지에서 산들과 나무들과 야생동물들을 그리워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녀는 밤에 잘 때 계속 울었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그녀는 ‘제가 향수병에 걸렸습니다.’
‘당신의 고향에는 있는데, 여기에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 고향에는, 산들과 나무들과 야생동물들이 있습니다.’
왕이 말하기를 ‘좋소.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내가 여기 왕궁에, 당신 고향의 산들을 똑같이 만들겠소.’
그래서 느부갓네살은, 벽돌로 산을 만들었습니다.
벽돌을 쌓아서 큰 산을 만들고는, 거기에 나무도 심고, 풀과 식물도 심었습니다.
이게 ‘공중정원’인데, 이것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입니다.
관광객들이 바벨론의 공중정원을 보기 위해 몰려듭니다. *바그다드 교외에 유적이 약간 남아 있음
그 산, 실제로는 탑 꼭대기에는, 사설 동물원을 만들어서,
야생동물을 우리에 넣어서 보관했지요.
‘이제 됐지요?’ 그는 말하기를 ‘이제 궁전에서 더 이상 울지 마세요.
당신은 산도 있고, 숲도 있고, 동물도 있으니, 뭘 더 원할 겁니까?
이제 울지 마세요.
이 이야기가, 4장의 느부갓네살이 미치게 된 인간적인 측면의 배경입니다.
그러고 나서 어느 날, 느부갓네살이 자기의 웅장한 궁궐 지붕에 있었습니다.
제가 사진으로 보여드릴게요, 당시에 바벨론이 얼마나 웅장했는지.
제 말은, 바벨론은 정말 웅장한 도시였습니다.
그들의 부유함은,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극치까지 도달했습니다.
사진의 여기가 왕궁 지역인데요, 거기에 큰 대로(넓은 길)가 있었지요.
그 대로 위로, 느부갓네살과 그의 마차가, 군사들과 함께 행진했는데,
그 대로 끝에는, ‘이쉬타르 문’이라는 유명한 성문이 있었습니다.
이쉬타르는 바벨론 신이고, 이쉬타티는 여신이지요. 모두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 ‘이쉬타르 문’은, 이 사진을 보세요.
이 문은 화려하게 푸른색 타일로 치장한 문인데요,
지금 이라크 박물관 속에 새로 복원되어져 있는데요,
이 멋진 성문은, 타일로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고,
그 벽에 그리핀과 기괴한 동물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리핀, 독수리 날개에 사자 몸통의 신화 속 동물.
제가 확신하기로는, 그 동물들은 다니엘이 본 환상 속 동물과 연관이 있다고 보는데요,
다니엘이 환상속에서 본 동물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논하겠습니다.
어쨌거나 그 성문이 사담 후세인에 의해서 복원되었는데,
원래보다 절반 사이즈로 건축되었습니다.
오늘날 사담 후세인이 만든 것이, 옛날 바벨론 성문의 절반 크기에 합니다! *옛날에 얼마나 웅장했을까요.
이렇게 바벨론 성은 웅장했으며, 느부갓네살은 그 왕궁의 지붕을 거닐면서
하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위대한 성 바벨론을, 내가 내 능력으로, 내 영광을 위하여 건축하지 않았느냐!
왕국도 내 것이고, 능력과 그 영광도 다 내 것이 되었구나.’
그때 그는 한 꿈을 꾸었어요.
그 꿈에, 거대한 나무가 있었는데, 하늘까지 도달했어요.
동물들이 둥지를 그 나무에 틀었고, 새들이 가지에 앉았는데,
그만 그 나무가 베어져, 쇠사슬에 감겼다가
그 나무가 다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에게 그 꿈의 해석을 말해 주었어요.
‘느부갓네살 왕이여, 그 나무는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은 사람들로부터 쫓겨나서 7년 동안 지낼 터인데,
지극히 높으신 분이 나라들을 다스리시며
누구든지 그 분이 원하는 자에게, 나라를 주신다는 사실을 당신이 인정할 때까지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느부갓네살은 그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렸어요.
1년 후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아, 내가 전에 말했던 것을 이제 시행하겠다.’
그때부터 그는 완전히 미쳐버렸습니다. 7년 동안요.
사람들은 그를, 자기가 만든 동물원에 감금했습니다. 그는 7년 동안 풀을 먹었어요.
그의 머리는 마치 독수리 날개처럼 보였고, 그의 손톱은 새 발톱처럼 되었습니다.
마치 하워드 휴즈의 말년처럼 되었지요. *큰 부자였다가 나중에 미친 사람
만약 여러분이 하워드 휴즈의 사진을 보시면,
바로 그게 느부갓네살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7년 끝에, 그가 눈을 들어서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를 왕좌에 회복시켜주셨고,
그를 이전보다 더 위대하게 만들어 주셨지요.
그런 그가, 이전에 큰 실수를 범했는데,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국가종교처럼) 만들어
모든 사람에게 그 신에게 절하라고 명했지요. 그리고 그 신을 섬기라고 강제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섬길 수는 없습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이시지요.
그런 실수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건을 통해 4:34)
그는 영원히 회심한 자이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미치게 해서 쫓아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나를 7년 동안 미치게 하셨고, 다시 내가 감각을 되찾게 되었다.’
이것은 회심하는 것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는지를 보여줍니다.
다니엘서는 얼마나 놀라운 책인지요. 큰 성 바벨론에서도 하나님은 역사하셨습니다.
당시 다니엘은 아직 젊었고요. 그는 그 큰 궁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5장>은, 바벨론 나라의 몰락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벨사살이 큰 연회를 열었고, 그는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여러분이 거룩한 것을 욕되게 하기 원한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은 레위기 말씀을 기억하시죠?
벨사살은 말하기를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거룩한 그릇들을 꺼내 오라.
그 그릇을 우리의 난잡한 술파티에 사용하자.’ 그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거룩한 그릇에다, 술을 부어 마시고 취했습니다.
그때 그가, 손가락으로 벽에 글씨가 써 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무슨 뜻입니까? 그들은 이렇게 손가락 형체가 나타나 쓴 글을 보았을 때,
그 파티 참석자들은 겁이 나서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 다니엘이 말하기를, 그 글씨의 뜻은 ‘당신이 무게를 저울에 달아보았는데,
무게가 모자랐습니다.’ 5:27
바로 그 날 밤에, 페르시아 인들이 바벨론에 쳐들어와서,
바벨론은 이렇게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바벨론은 과거에 ‘바벨탑’이었던 것을 아시나요? *신바벨론-고대바벨론
다니엘서의 바벨론은 과거에 바벨탑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바벨’이란 단어도 똑같습니다.
거기는 옛날에 바벨탑을 세우던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하늘에 미칠 만한 큰 건물을 세웠는데요.
왜냐하면 그 땅이 매우 편평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지역에서, 하늘에 닿을만한 큰 건축물은,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바벨, 바벨론,
그런데 바벨론이,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성경의 마지막 책에 다시 한 번 나타나지요.
▲<6장>은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갔던 내용인데요.
그때는 다른 제국의 다른 왕 치하이었습니다.
‘메데 사람 다리오’라고 불리는 왕이었죠.
*다른 다리오와 구분하는 이름, 다리오가 여럿 나옴. 다리오는 이름이 아니라 ‘왕’이란 호칭
여기서도 다시 ‘반유대주의’ 문제가 발생한 것을 보는데요.
사람들은 왕을 신처럼 섬기도록 강요받았고,
사람들은 한 달 동안, 다른 신에게는 절대 기도하지 못하게 법령으로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기도를 단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상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놓고,
멀리 서쪽을 바라보면서, 거기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인 성전이 있는 곳이었죠.
그는 자기 침실로 올라가서, 이전처럼 창문을 열어놓고,
나머지는 여러분이 설명 안 해도 아실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천사가 사자의 입을 닫았다’고 하였어요. 6:22
천사가 사자의 입을 봉하였고, 그는 다시 구원을 얻었지요.
다리오는 자기 말을 삼켜야 했습니다. *자기가 내린 칙령을 바꿔야 했습니다.
다니엘은 계속 계속 거듭해서, 누가 와서 자기를 넘어뜨리려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왜냐면 다니엘은 뛰어난 사람이었고, 그의 정직성은 모두에게 인정받았으며,
그래서 왕들은, 그를 더 책임 있고, 더 높은 자리를 주었습니다.
이 책은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놀라운 모델과 예를 제시해 줍니다.
젊은이들이, 정말 비신자나 이방인들도 기독 청년들을 등용하는 예..
왜냐면 비신자들이 그의 정직성과 인격을 인정하니까요. *다니엘처럼
여기까지가 단1~6장이었고, 여기서 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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