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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낭독 <가슴 찢는 회개> 9편
◑나는 위선적인 선교사였다
허선교사가 폐암 수술을 받고 내게 이렇게 제안했다.
이제 좀 쉬고 싶으니 사역을 좀 줄이면 어떻겠냐고.
이미 우리 사역은 동역 하는 선교사에 비해 일이 너무 많았다.
65명이 공동생활을 하는 신학교 운영,
내가 목회하는 제1교회와 개척 교회, 교회 내 진료원과 병원선 의료 사역 등이
그것이다.
나는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오랫동안 기도하고 연구하여 결정했다.
사역 결정에서 삼위일체의 원칙을 따졌는데,
-현지의 필요,
-선교 동역자들의 이해와 협력 가능성,
-우리 선교회의 준비가 그것으로
이 세 가지 조건이 만족할 때 사역을 결정했다.
오랜 기도와 세심한 연구 끝에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허락이 떨어졌을 때 어떤 일이든 시작했다.
때로 너무 오래 기도하다가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누가 나의 이 같은 사역 결정 방식을 틀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주님이 직접 하신 일이 아니고,
내가 기도하고 내가 결정하고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디에도 문제는 있을 수 있다. 잘못을 인정하고 취소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토록 오랫동안 기도하고 연구하고
최고로 현명한 삼위일체 방식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내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신중하게 결정한 만큼 그것은 주님의 뜻이라는 거짓 확신도 갖고 있었다.
결국 내가 선교의 주체였던 것이다.
나는 완벽주의자로 살았다.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고, 비록 내가 손해 보더라도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것이 주님보다 더 중요했다. 다른 사람이 더 중요했고 주님은 다음이었다.
사람 눈치를 많이 보았다는 말이다.
이제 좀 쉬고 싶으니 사역을 좀 줄이면 어떻겠냐는 허 선교사의 제안을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이 가슴속에 깊은 회한으로 남아 나를 두고 두고 통곡하게 한다.
사역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나는 싼타이사베우와 바르셀로에 교회를 개척했다.
굳이 변명을 한다면 선교 사역은 교회가 자동적으로 성장하듯이
자동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뒤에 숨은 진실은 무엇인가?
내가 오랫동안 기도하고 연구한 뒤 시작한 사역인 만큼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었다.
나의 확신을 하나님의 확신으로 착각한 것이다.
선교사로서 나는 선교 보고를 할 기회가 아주 많았다.
그런데 돌아보니 하나같이 위선적이었다. 왜 위선적인가?
사람을 기쁘게 하고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선교 보고를 했기 때문이다.
1990년 9월 선교사로 파송되기 전, 장신대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았는데,
그때 박광자 선교사님이 현지인들의 흉한 부분만 사진으로 촬영해서
본국 교회에 보내지 말라, 선교지의 어려운 면만 부각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나는 첫 3년간은 아마존의 경치만 찍었다. 형제들의 모습을 찍지 않았다.
허 선교사가 인디오 형제들을 찍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는 선교 보고를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또 선교 보고를 할 때 아마존의 삶이 덥고 고생스럽다고
말하지 않으려 애썼다.
내가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몹시 두려워서 선교 보고가 늘 맹숭맹숭
했다.
얼마나 모범적인 선교사인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사진을 찍지 않은 일, 아마존의 환경을 말할 때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일,
선교를 잘하고 있음을 드러내려 하지 않은 일, 이 모든 것은
박광자 선교사님의 가르침 때문이 아니었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사람들에게 자기 자랑을 일삼는 선교사로 인식될까 봐 두려웠다.
그렇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어서 자유함이 없었다.
얼마나 큰 위선인가?
주님이 행하신 일을 잘 설명해야 하는데
주님은 감추고 나를 드러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내 선교 보고는 힘도 없고 주님의 은혜도 없었다.
반면 허 선교사의 선교 보고는 힘이 있고 은혜가 있었다.
설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모든 것을 조심했다.
주님만을 증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나의 약함과 십자가를 증거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 대하여 죽지 않고 세상도 내게 대하여 죽지 않은 까닭에
십자가 대신 교묘하게 나를 자랑했다.
내 자아는 속으로 말하기를 나는 훌륭한 목사다,
누구누구는 자기를 자랑하는데 나는 내 자랑을 절대 안 한다 하며
속이고 또 속였다.
그러면서 자기 자랑을 일삼는 설교자들을 마음속으로 비난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했는가?
내가 모든 것을 잃고 주님께서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주실 때까지 그랬다.
나는 주님의 종이 아니고 두려움의 종, 사람의 종으로 살았다.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
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5, 9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6:14
◑그릇된 회개
많은 사람들이 허 선교사가 아픈 것은 나를 회개시키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내가 회개하지 않으면 아내가 죽는다고 말했다.
감당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말들이었다.
더구나 그즈음 선교비가 늘 모자라서 전전긍긍하느라 마음을 자주 빼앗겼다. 그래서 더더욱 회개하기를 소원했다.
그런데 나중에 깨닫고 보니, 나는 주님을 어르고 달래서
내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목적으로 회개했다.
하나님이 그들을 죽이실 때에 그들이 그에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하나님이 그들의 반석이시며 지존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
그러나 그들이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그들의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시78:34-37
전에 나는 시편 78편 36절 “그들이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라는 구절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인간이 주님께 아첨을 하며 거짓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바로 내가 그랬다.
허 선교사가 투병을 하는 동안 내가 한 회개는
사실 내가 이렇게 회개하니 주님이 뜻을 돌이키셔서 살려 달라는 아첨이었다.
즉 회개를 통해 나를 변화시키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아내를 살리고 싶은 욕심으로 주님을 이용하려고 했다.
“오 나의 하나님, 당신 홀로 순결하시고 능력이 있으십니다.
영혼의 근원 안에 있는 이 사악함을 정결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당신 한 분뿐이십니다.
하지만 당신은 오직 당신께 자신을 전적으로 내어 드린 영혼들 안에서만
그일을 행하시며 감히 자기 재간으로 정결케 하려는 영혼들 안에서는
그리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창조하실 수 있었으므로
우리에게서 이기적이고 사악한 본성을 가져가시고
우리를 혁신적으로 정결케 하실 능력을 가지신 분도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잔느 귀용의 《욥기》 중에서)
회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자아가 살아 있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는 회개는
주님을 속이는 종교 행위다.
나는 회개했다는 행위로 말미암아 내가 의로워졌다고 오해했다.
율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나를 돌이키려 회개했다가
나는 도리어 회개했다는 자랑을 하나 더 달았다.
◑나는 삯군 목자였다
나는 선교의 열매들을 내가 이룬 노력의 결과라고 오해했다.
예배당을 가득 메운 교인들과 규모 있는 사역들,
나한테 세례를 받거나 안수 받아 목사가 된 목사들…
이 모두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물론 사람들 앞에서는 지극히 겸손하게 하나님이 모두 하셨다고 고백하고
하나님을 높였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마존을 누비고 다닌 나의 수고를 더 높이 여겼다.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된 것밖에는
내가 한 일이 없는데도 그렇게 교만했다.
얼마나 큰일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주님으로 인해 일했느냐가 중요하다.
주님은 내가 주님으로 인해 일하지 않았음에도 감당할 수 없는 열매를 주셨다. 내 사역 대상인 형제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을 구원하고 변화시키신 것이다.
그러니 나는 더욱 할 말이 없는데도
삯군으로 일한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면서 모세의 자리에 앉아 다른 선교사들을 비판하고 판단하기 바빴다.
◑아내의 폐암이 재발하다
2010년 4월 10일, 마나우스주 법원 판사 앞에 서서 브라질 시민으로서
법을 잘 지키겠다는 선서를 했다.
그런 다음 한국에 검사 받으러 간 허 선교사에게 전화했다.
그날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허 선교사는 내가 염려할까 봐 미리 나를 준비시켰다.
“여보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러나 그 순간 눈앞이 노래졌다.
원발성 암이 시작되었지만 재발은 아니니 걱정 말라고 했다.
‘암이 재발했구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구나’,
그리고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마 후 정신이 들자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당신의 제자들이 보냄 받은 땅에서 뼈를 묻고 죽었습니다.
저도 보냄 받은 이 땅에서 이 땅의 사람들과 같이 묻히려고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나는 지구별에 홀로 버려진 고아가 된 것 같았다.
너무 기가 막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은 만큼 절망이 컸다.
“허 선교사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주님이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녀가 언제 명예나 권력을 구한 적이 있습니까?
노후를 위하여 적금을 들었습니까?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 없이 살던 여인이 아닙니까?
친히 손으로 수고하고 모욕을 당해도 축복하고 비방을 받아도 참으며
권면하지 않았습니까? 사도 바울처럼 그렇게 살았는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녹색의 지옥이라고 부르는 아마존으로 당신이 원하신다고 하여
고국과 가족들을 멀리하고 떠나왔습니다.
인디오 형제들이 끝없는 배신과 속임과 협박과 독약으로 살해하려고 해도
그들을 지도자로 세우려고 새벽부터 밤까지 수고했습니다.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당신의 여종을 버리십니까?
사도 바울은 적어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허 선교사에게는 왜 송아지를 떼어 놓고
벧세메스로 울며 가는 소와 같은 아픔을 주시는 겁니까?”
하나님께 너무 서운했다. 야속했다. 인과응보의 결과를 주시지 않는 하나님께 치를 떨며 분노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알았다.
그동안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한 모든 사랑과 헌신이 모두
나를 위한 종교 행위였구나.
주님을 믿고 따르며 충성하면 만사 형통의 복을 주실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이 든 것을 확인하였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내 속의 악을 보여 주셨다.
허 선교사에게 암이 재발된 뒤 3개월은
내가, 나머지 3개월은 딸 수산나가 한국에 가서 간호를 했다.
한국에 있어도 아마존에 돌아와서도 많이 힘들었다. 허 선교사 곁에 있는 동안은 말기암 통증과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고통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고통이었고,
아마존에 와서는 내가 없는 동안 어떻게 지낼까 걱정되어 마음이 무너졌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때 그 감사한 시간들을 그냥 흘려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남아 있는 시간이 그렇게 짧을 줄 알았다면,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인 줄 알았다면,
좀 더 최선을 다했을 텐데, 그냥 흘려보내고 말았다.
나는 아마존에 돌아오면 신학교 채플에 들어가 철야를 했다.
나무판자로 만든 의자에 담요를 깔고 기도하다가 자고 자다가 기도하기를 반복했다.
낮 동안 일하는 중에도 허 선교사를 살려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하여 통일’이라는 노래에
가사를 바꿔 ‘나의 소원은 회개 꿈에도 소원은 회개, 이 정성 다하여 회개’
라고 할 만큼 회개의 영을 보내 달라고 애걸복걸했다.
어느 날 주님이 내 마음에 감동을 주시기를
“너는 나보다 아내를 더 사랑했다. 아내가 네 우상이다”라고 해서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주님을 더 사랑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아내를 살려 주십시오” 했다.
한번은 밤에 기도하는데 “네 기도가 하늘에 사무쳤다.
그러니 더 이상 기도하지 말라” 하는 환청을 들었다.
함박눈이 내리는 것처럼 내 기도가 천지에 쌓여서 눈처럼 내리는 환상도 보았다.
그러나 허 선교사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다.
우리가 흔히 자신이 소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잘못 해석하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는 말씀이
내게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그때 그렇게 기도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한다.
만일 내가 그때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다면
문제 해결만을 위하여 무작정 매달리며 기도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죄하고 판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종교학자가 “신은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의 화신이다”라고 했던가?
“내가 하나님께 충성과 사랑을 바친 만큼 내게 갚아 주십시오”
라는 무언의 계산이 있었음을 나는 그때 알았다.
내 사랑과 충성에 목적이 있었음을 알았다.
다른 종교인들과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
내 속에도 여느 종교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이용하여
내가 잘되고 싶은 욕망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내 원대로 되지 않자 독사가 고개를 들고 공격하듯이 하나님을 공격했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어떻게 믿었는가? 무엇을 설교했는가?
하나님은 만사에 복 주시기 위하여 존재하는 분이라고 믿지도 않고
설교하지도 않았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대가를 지불하고
제자가 되어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평생 동안 그렇게 믿었고
그 복음을 설교했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살지는 않았다.
주님은 허 선교사의 암 재발을 통해 내 악을 계시해 주셨다.
이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주님은 내가 원한 건강이나 명예, 권력,
부를 통해서 나를 강복(복 내려 줌)하지 않으셨다.
반면 그것과 절대로 비교가 되지 않는 복을 주고 싶어 하셨다.
그 복이란 나를 거룩하게 하시고 주님 안에서, 주님으로 인하여,
주님을 위하여 살게 하시는 복이다.
그리스도와 완전한 연합을 이루게 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데려가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고통을 통하여 당신의 진실하신 사랑을 내게 드러내셨다.
◑아내에게 멍에를 지우다
2009년은 강력한 회개운동이 불어서 신학교와 교회에서 기도회가 뜨겁게 열렸다.
허 선교사는 암 재발 전이었으므로 열정적으로 기쁨으로 사역을 하였으나
계속되는 기도회와 수업들로 인해 많이 지쳐 있었다.
나는 허 선교사에게 여느 해처럼 성가대의 칸타타 발표회를 하자고 했다.
당시 허 선교사는 오른쪽 팔이 너무 아파서 팔에 붕대를 감고 앉아서
매일 여러 시간씩 성가 연습을 했다.
그 해는 쉬자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한 해도 거르고 싶지 않아
그런 어리석은 짓을 했다.
신학교 내 지도자 계속 교육을 위해 LA 감사한인교회 김영길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와서 인디오 마을 지도자들을 초대하여 일주일간 집회를 가졌다.
집회가 끝난 후 나와 허 선교사는 오창학 목사님의 은퇴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갈 예정이었다.
당시 허 선교사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그런데 나는 허 선교사의 형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학교 소개 영상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것도 신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집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속히 만들어 달라고 했다.
허 선교사는 이틀 밤을 뜬눈으로 새우며
겨우 영상을 만들어 학생들 손에 들려 보냈다.
한국에 입국하여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폐에 염증이 있다고 했다. 암이 재발하는 징조였다.
성가대 발표를 한 해 쉰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학교 소개 영상이 뭐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했을까?
나는 왜 그렇게 악했을까?
나의 완벽한 사역을 위해 절대 과로해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아내가 과로에 과로를 더하도록 몰아붙였다.
나는 내 이름을 알리기 위해 아내에게 멍에를 씌우고 이용하는
악한 남편이었다.
허 선교사가 얼마나 주님께 충성스러운 여인이었는지는
주변의 모든 사람은 다 안다.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열정과 헌신의 여인이었다.
내가 무슨 일을 맡기든 200% 완벽하게 만족시켜서
언제나 믿을 만하고 든든한 아내였다.
그랬기에 나는 허 선교사에게 필요 이상의 일을 강요했다.
자주 몸이 힘들다고 고통스러워할 때 불쌍히 여기며 쉬라고 하지 않았다.
위로하며 용기를 주지도 않았다.
내 종교적 야망에 눈이 어두워 희생을 강요했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그렇게 악한 남편인 줄 몰랐다.
허 선교사가 떠난 뒤에야 내가 허 선교사를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걸 알았다.
천국에서 다시 만난다면 무릎을 꿇고 엎드려 너무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사죄하고 싶다.
그렇게 천만 번 용서를 빌어도 내 악을 다 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악인은 땅에 남고 허 선교사는 주님께로 돌아갔다.
나는 그 후로 눈물로 베개를 적시지만, 더는 되돌릴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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