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6)
하늘에서 내려온 신부
앞 단원에서 우리가 천희년을 논했고, 그리고 아직 못다 한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먼저 몇 분 동안 여덟가지 이유를 제출하겠습니다. 제가 왜서 전통론적 전천년의 견해를 믿는지를 설명하겠습니다. 그것은 초대 교회부터 몇 세기 동안 내려온 견해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천년동안 왕이 되고, 그의 통치 방식을 체험하게 합니다. 아래는 바로 이 견해를 믿는 여덟가지 이유입니다.
첫번째 이유는 이것은 계시록 20장의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입니다. 다른 견해들은 성경의 순서를 옮겨서 견강부회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만약 여러분이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간단한 각도로 본다면, 여러분은 이 견해를 믿을 것입니다.
두번재 이유는 이 견해가 가장 정면적이어서 예수님이 왜서 다시 오시는지를 해석할 수 있으며, 또한 우리를 데리고 함께 오시며, 바로 이 땅에 한가지 임무를 시행하고, 이 세상을 통차하십니다. 전천년의 견해는 바로 초대 교회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견해에 대한 것이고, 신약성경 318곳에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을 기대하라고 분부했습니다. 전천년설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 그리고 기대가 충만하여 자주 논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발견했을 것입니다.
세번째 이유는 이 견해는 신약성경이 왜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을 그렇게도 강조하는 것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에 대해 흥분과 소망이 충만하였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오시지 않고, 왕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소망은 하늘에만 있게 됩니다. 그가 땅으로 오시지 않고 왕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주:동영상에 네번째 이유가 모자랍니다)
다섯번째 이유는 만약 지구가 우리 미래의 귀숙이라면 하늘은 단지 하나의 대기실 뿐이고, 영원한 집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으면 하늘에서 예수님과 만나게 되고, 마지막에 다시 이 땅으로 와서 그와 함께 살고, 여기에서 그와 함께 왕이 됩니다. 우리 미래의 집은 하늘에 있지 않고 새로운 땅에 있습니다. 계시록 21장과 22장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우리는 땅에서 살고, 성자, 성령과 성부 모두 땅에서 삽니다.
여섯번째 이유인데 이 견해가 아주 실제에 맞으며, 낙관적이지도 않고 비관적이지도 않습니다. 낙관적인 사람은 교회가 땅에서 곧 나라를 세운다고 하는데, 저는 믿지 않습니다. 너무 낙관적입니다. 비관적인 사람은 미래의 지구가 지금보다 더욱 좋게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비관적인 견해입니다. 실제에 맞는 견해는 지구가 좋게 되는데, 하지만 예수님이 다시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구의 상황이 먼저 악화되고, 예수님이 오시면 좋게 전화된다는 것입니다.
일곱번째 이유인데, 이 견해의 문제는 다른 견해보다 적어요. 다른 겨해들에는 해석할 수 없는 문제들인데, 하지만 이 견해의 문제는 가장 적습니다.
마지막 이유인데, 초대 교회가 오랫동안 내려오면서 모두 이 견해를 믿었고, 다른 관점들은 후에 나타난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적어도 400년 동안 한결같이 이 견해를 지지했는데, 저는 이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도에 제일 가까웠기 때문이며, 그래서 사도 원래의 뜻을 응당 가장 이해했을 것입니다.
좋아요. 여러분, 이제 우리가 ‘계시록’의 마지막에 왔습니다. 여섯번째와 일곱번째 환상이 우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천년이 끝난 이후 사탄이 석방되는 것을 보았고, 그리고 다시 세계를 장악하려 했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완벽한 통치하에 이 세계에서 누군가가 여전히 자신이 주인 되고 싶어하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마귀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통치가 없는 것이 더욱 좋다고 설득할 것입니다. 그 때면 사탄이 곡과 마곡의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에스겔 39장을 읽으셨다면 왜서 그들을 곡과 마곡이라고 하였는지를 아실 것입니다. 사탄의 대군이 예루살렘을 향해 전진했고, 결국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에 태웠습니다.
이어서 성경에서 사탄이 불 바다에 떨어졌고, 적그리스도와 가짜 선지자들은 일찍이 불 바다에서 밤낮으로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고통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영원한 불의 징벌을 받을 것인데, 이것은 직역입니다. 이 구절의 성경은 현대에 소히 말하는 ‘멸종론’이라는 치명적인 일격을 주었는데, 이 논점은 사람이 결국에는 모두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영국 대다수의 복음파와 영은파 모두는 멸종론을 가르치고, 그들은 이 구절 성경을 절대로 인용하지 않지요. 두 사람이 마귀와 밤낮으로 영원까지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 구절 성경이 정말로 명확하게 얘기했습니다.
예수님이 양과 염소의 가르침에서 양에게 말하기를 ‘너희 저주 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라 마귀와 그의 사자들 위해 예비한 영원한 불에 들어갈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겠는데, 볼 수 있듯이 사람도 동일한 끝장과 상황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일 이후, 이 일 후에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하는데, 바다에 죽은 자들지 혹은 땅에서 죽은 자든 모두는 부활하여 새로운 몸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옥에서 간 자들이 몸을 가지고 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 모두는 몸이 있고, 모든 죽은 자도 새로운 몸을 얻을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이 죽음에서 부활하는데 의인과 불의한 사람 모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다니엘서 12장에서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으며, 그리고 요한복음 5장, 사도행전 22장에서 바울도 말하기를 ‘내가 오늘날 심문을 받는 것은 죽은 자가 선이든 악이든 모두가 부활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며, 모든 사람은 부활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두번의 부활이 있을 것이며, 중간에 천년 간격이 있고, 그러나 모든 사람은 죽음에서 부활하여 새로운 몸을 얻어 흰 보좌 앞에 서게 됩니다. 그 보좌에 앉으신 이는 하나님이 아니시며, 여기에서 하나님이 그 보좌에 앉아 있다고 말하지 않고, 단지 그 위에 앉으신 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누구 또한 그 보좌에 앉겠습니까? 사도행전 17장에서 바울이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 가르치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이미 한 사람을 세워서 천하를 심판하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의 영원한 귀숙을 결정하고, 그 날에 하나님이 친히 심판하지 않고, 그는 이미 한 사람으로 이 세상을 심판하게 했는데, 이러면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어떤 단막극의 독백이 기억나는데, 제가 대략만 기억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평원에 서 있고, 한 심판관이 앞에 보좌에 앉아있는 것을 묘사했습니다.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당신은 사생아게 된 고통을 모르십니다’, ‘당신은 노예가 된 고통을 모르십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누명을 쓰고 모함당하는 고통을 전혀 모르십니다’고 하였고, 그리고 무리들이 침묵합니다. 그들은 보좌 위의 그 분이 이 모든 고통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장래에 예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 마음은 위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미 예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도록 지정했고, 미래에 흰 보좌에 앉으실 분은 바로 한 사람입니다. 모든 인류는 생명책에 기록된 근거대로 심판을 받게 되고, 이 책을 모든 사람을 위해 열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그 책이 무엇이라고 하는지 알려 드릴게요. 표면은 붉은 색이고, 위에는 금빛 글씨로 ‘이것은 너의 일생’이라고 씌여져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추측일 뿐인데, 하지만 책에 모든 사람의 모든 행동, 언행, 생각과 느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알려드리겠는데, 만약 그 책이 나를 위해 펼쳐진다면 저는 틀림없이 지옥으로 내려 갈 것이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책을 펼치는 뜻은 모두에게 보이려는 것이고, 가장 좋은 사람도 문제가 있게 됩니다. 모든 감추어진 일들은 그 날에 반드시 끄집어 내어 모든 사람들이 알게 할 것입니다.
그 책을 곧 펼치십니다. 제가 ‘너의 인생’이라는 방송 프로를 아주 좋아합니다. 아주 재미있는데, 이는 정면적인 일만 방송하기 때문입니다. 조사를 책임진 사람이 항상 부정적인 일을 발견하였는데, 그러나 프로에서는 방송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심판하는 그 날에는 한가지 일도 빼 놓지 않을 것이며, 누구든지 책의 모든 기록을 보면 할말이 없을 것입니다.
다행히 다른 한 책을 펼치는데, 생명책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생명을 기록했기 때문이고, 이 책을 처음부터 끝가지 읽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을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읽을 수 있는데, 예수님이 바로 이런 사람이고, 그에게는 완벽한 일생이 있습니다. 제일 멋있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날에 이름이 자신의 책이 아니라 그의 책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아주 멋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이름이 그 날에 여러분 자신의 책에서 나타나야 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생명책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책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시록’의 목적을 말하는데, 우리의 이름이 그 날에 여전히 생명책에 기록되어야 한다는 확보를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믿음’과 ‘충성’이 동일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충성이 있고, 무슨 대가를 지불하든지, 무슨 일이 발생했든지 계속하여 믿습니다. 믿음은 믿음의 한 걸음 내 딛는 것 뿐만 아니라 하늘로 올라가는 티켓을 받아야 하고, 평생 예수님께 충성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그를 믿고 의지해야 하고, 환경이 얼마나 흑암이든지 여전히 그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박국에서 말씀하시기를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이 의인은 충성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해도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믿음을 지켰고, 그들은 끝가지 지켰으며,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교회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한 모든 사람들을 남길 수 있다면, 오늘날 교회의 숫자는 다섯배가 넘을 것입니다.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이 다시 되돌아갔고, 상황이 위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냉담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고,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때면 이 책들이 열리게 되고, 책의 증거대로 정의를 신장하여 선을 상 주시고 악을 징벌할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세상의 사람들이 두 종류로 나누게 되는데, 그 중 한 종류는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 종류는 배역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음 성경이 불 바다를 언급했는데, 저는 이를 더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이미 ‘지옥으로 통하는 길’이라는 책을 썼기 때문입니다. 책에서도 한 장은 하늘을 논했는데, 만약 여러분이 천국과 지옥을 이해하고 싶으면 이 책을 읽으십시오. 제가 이 책을 쓴 것은 현재 지옥은 무섭지 않다는 많은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한 번 죽으면 사라지는데, 무서울것이 뭐가 있겠느냐? 만약 제가 평생 온갖 악행을 저질렀는데 어떤 사람이 저에게 사람이 죽으면 깨끗이 사라질 것이라고 알려주면 저는 소리 높여 할렐루야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닙니까? 왜냐하면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말이 영국 각 곳에 보편적으로 유행하였습니다. 한번 죽는 것으로 끝나고, 괴롭지 않는데, 들으면 아주 멋있습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제가 주의했는데, 이 점을 믿는 사람들은 거의 강의를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람에 대해 사실 그다지 영향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옥을 무서워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여러분, 저에게 사진 한장이 있는데, 조금 후에 여러분에게 보여드릴게요. 위에 다른 사진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같은 카드에 있어서 조금 후에 함께 보여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시칠리아의 에트나 산입니다. 한번은 제가 시칠리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데, 비행기가 낮게 에트나 산 꼭대기로 날았습니다. 당시 화산이 마침 폭발했고, 붉은 용암이 아래로 흘러 2마일 밖의 한 시골에 흘러 들어갔습니다. 비행기 조종사가 비행기 머리를 위로 올려서 제가 아래로 보니 하나의 큰 조각의 타는 듯 뜨거운 용암이 이글거렸습니다. 당시 제가 바로 지옥을 연상시켰습니다. 불 바다 불 바다였습니다. 조종사가 비행기 몸을 평행하여 런던으로 날아갈 때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그 화산이 바로 우리 밑에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화산 상공의 기류가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고, 제 마음으로 계속하여 빨리 가자 빨리 가자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거기에 떨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 대한 깨우침이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불길이시어서 우리는 경건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이것은 현대인들이 쉽게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너무 익숙해서 마치 형제가 좋듯이 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화산 변두리에 섰을 때 나타나는 경의하는 마음이 바로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하여 응당 있어야 하는 태도입니다.
그 책을 기억하십시오. 책에 여러분의 평생 크고 작은 일들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사실 머리가 모든 일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혹시 여러분이 어느 사건인지 생각나지 않을 것인데, 하지만 여러분의 머리는 영원히 잊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한가지 맛이 어린 시절의 많은 기억을 생각나게 하는데, 여러분은 이 점을 주의해 보셨습니까? 마치 한 서랍을 열었는데, 지나간 일들 모두가 그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일들을 하늘의 책에 모두 기록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다면, 그때 바로 이 책을 열어보세요. 그때면 스스로가 아무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어서 우리가 천국과 지옥을 논하겠는데, 사실 지옥을 논하지 못했습니다. 아쉽게도 우리는 천국만 논했는데, 여기가 천국이 아니고 새 하늘 새 땅입니다. 이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을 것이라는 표시입니다. 여기의 천지는 사실 지구와 하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장래에 새로운 우주가 있을 것이며, 새로운 우주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우주를 만드실 것입니다.
매번 사람들이 저에게 무슨 일을 하시냐고 물으면 제가 회수업을 한다고 합니다. 그들의 반응은 통상적으로 웃으시며 ‘당신은 폐지를 회수하나요 철물 아니면 깡통병을 회수하나야?’하면 ‘다 아니고 사람을 회수합니다’라고 합니다. 오염은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바로 사람을 회수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기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첫번째 창조에서 먼저 천지를 창조했고, 마지막에 사람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창조에서는 우리 지금이 바로 새로운 창조 제8일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8일에 경배하고, 즉 일요일입니다. 이 날을 휴식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장으로 복귀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그가 옛 창조의 첫부분을 새롭게 하였으며, 즉 그 아들의 신분입니다. 오늘날 그는 새로운 남녀를 창조하고, 장래에 새 하늘 새 땅을 창조해 우리더로 거주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장래에 우주 전체를 회수할 것인데, 현재 여러분이 그의 회수에 원하신다면 여러분은 장래에 새 우주에서 살게 됩니다.
‘회수’는 현대 용어이고, 이전에는 폐물 이용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전에는 모두 폐물 이용이라고 했는데, 폐물 이용이 바로 구급입니다. 복음은 바로 당신이 회수 되는 것이고, 회수된 지구에서 살게 되는 것이며, 위에는 회수된 하늘이 있고, 이것이 바로 복음의 중심 사상입니다. 사람더러 천국에 올라가게 할 뿐만 아니라 새 하늘 새 땅도 있습니다. 새로운 우주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자에게 거주하라고 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복음의 중심 사상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회수하는 비유로 복음을 전하면 다른 사람들이 들으려고 하는데, 모든 사람이 회수되는 것을 원한다고는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도 포함되었고, 그가 새로운 지구 하나를 만들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지금 회수되기를 원한다면 장래에 거기에 거주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복음의 중심 사상이며, 미래의 소망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 초점은 새 하늘 새 땅에서부터 바로 새 하늘 새 땅의 창조자에게로 전환되었습니다. 큰 소리가 있어 가로되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그는 새 도시가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고, 땅에 내려왔는데, 이것은 하나의 아주 큰 성이였습니다. 만약 달 안에 비었다면 아마 달 만은 수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 전체의 길이가 아마 파리에서 바르샤바로의 거리일 것이며, 길이 뿐만 아니라 높이가 1500마일이고, 이 도시는 대단히 큽니다. 현대인들은 바깥 하늘에 작은 도시를 세우고 싶어 매우 흥분하고 있는데, 하지만 예수님이 하늘에 이미 도시를 건축했습니다. 그가 목수의 옛 직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성 전체가 하늘에서부터 내려 올 것이고, 새 땅에 내려옵니다. 저는 이 성을 보기를 매우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건축에 아주 흥취가 있습니다. 여기에 앉아 계시는 몇 분은 제가 교회당을 설계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저는 차마 생각할 수가 없는데, 이 대 도시에 사람이 합당히 거주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설계해야 하겠습니까? 제가 캔버라와 브라질리아 두 도시를 연구해 보았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것은 현대인들이 도시를 건설하면 모두 도시 중앙에 강을 만드는데, 새 예루살렘도 이렇습니다. 저는 참으로 새 예루살렘 성을 보고 싶어요.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급해 마세요. 당신은 반드시 볼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건설한 이 성을 정말로 기대가 됩니다.
아브라함이 본래는 벽돌로 지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중앙난방에 수도도 있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그가 살았던 갈대아 우르 집을 발견했는데 안에 설비가 상당히 선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80세 고령일 때 편안하고 벽돌로 지은 집을 떠나다니 의외입니다. 남은 생을 텐트에서 살아야 했는데, 많은 퇴직한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를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건설한 도시를 찾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 새 예루살렘을 찾았으며, 이것이 규격이 완벽한 도시가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영원히 거기에서 살고 싶어 합니다.
성경에서 이 도시가 곧 하늘에서 땅에 내려온다고 하였고, 이 도시는 가장 귀중한 재로로 건축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여러분에게 이 사진을 보여 드리겠는데, 이는 성경은 절대로 하나님의 묵시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제가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여러분, 요한이 이 성을 보았을 때 성에 사용된 건축 자재를 보았는데, 우리 눈에 보석이라는 것이 이 성에서는 평범한 건축자재였습니다. 현대에는 소중한 보석이 있고 여자들이 매우 좋아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남자들도 보석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귀중한 보석들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순광을 만들수 있게 된 후에 알게 된 것인데, 순광은 바로 레이저 같은 종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만약 여사님들 몸에 걸친 보석을 얇게 자르고 순광으로 비추어 보면 두가지 상황이 나타납니다. 한가지 상황은 칠색으로 변하는데, 원래의 색이 붉은 색, 초록 색이나 혹은 파란색이든 모두 똑같습니다. 다른 한가지 상황은 검정색으로 변하는데 색을 완전히 잃은 것입니다. 칠색으로 변한 보석을 우리는 ‘비등향성’이라 하고, 색을 잃은 보석을 우리는 ‘등향성’이라 합니다. 제가 여기에 앉아 계시는 여사님들께 나쁜 소식을 알려 드리겠는데, 여러분 다이아몬드가 등향성이고, 홍보석이 등향성이고, 적색 석류도 등향성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그래서 여사님들, 죽은 후에는 이것들을 가져 갈 수 없는데, 이는 그들 모두가 색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한이 새 예루살렘 성에서 본 12가지 보석은 모두 비등향성이고,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이 12가지 보석 모두는 새 예루살렘의 건축자재이고, 모두가 채색 무지개 색으로 변했는데, 이것은 작은 하나일 뿐입니다. 천분의 일 정도의 크기이고, 현미경으로 나타난 색을 보십시오. 아래 이 다이아몬드, 홍보석과 적색 석류들은 순광으로 비추니 모두 광채를 잃었고, 이것은 30년 전에야 알게 된 것입니다. 요한이 당시에 절대로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보석이 순광 아래 칠색으로 변한다는 것을 그는 절재로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혹 보석의 창조주가 예수님에게 계시했고, 예수님이 성령님에게 계시했고, 성령님이 천사에게 계시했고, 천사가 다시 요한에게 계시해서 알게 한 외에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점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족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천년 전에 하나님만이 이 점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과학이 성경의 발자취를 따라서 올라갔다는 것이 정말로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마지막 이 몇 장에서 심각한 경고 하나가 있는데, 바로 불 바다를 끊임없이 언급했고, 마지막 이 몇 장에서 우리는 많은 나쁜 소식을 읽었습니다. 여러분은 매우 신기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모두는 ‘계시록’의 좋은 소식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들이 없는데, 다른 일들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새 예루살렘이거나 혹은 새 하늘 새 땅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그래서 상례에서 항상 이 구절을 읽는데, 이는 우리가 깊이 소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계시록 21장과 22장을 읽으면 계속하여 나오는 경고 하나를 읽을 수 있는데, 성 밖에 불 바다가 있습니다. 이것은 에트나 산의 사진인데, 거기에도 불 바다 하나가 있습니다. 이 불 바다는 성 내에 있지 않고 성 밖에 있으며, 여기에서 개들을 위해 예비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계시록 21장 여기에 경고 하나가 있는데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거짓말 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비크리스찬을 논하는 것이 아니고 두려워하는 크리스찬, 불충성한 크리스찬, 그리고 거짓말 하고 음행하는 크리스찬을 말하는데, 여기에서 이러한 크리스찬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일을 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만약 이러한 비크리스찬들을 여기에 보내시면 너무 불공평한데,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크리스찬들에게 관계 없다고 한다면, 비록 당신이 이 일을 했는데 그래도 오신다면, 그것은 너무 불공평하잖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늘로 가는 티켓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 이런 생각은 틀렸습니다. 천국 가려면 죄 사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고, 비성결하는 사람은 주를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말씀입니다.
‘계시록’은 하나의 엄숙한 책이며, 또한 하나의 아주 멋있는 책입니다. 우리에게 새 하늘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이라는 많은 약속을 주었습니다. ‘계시록’ 마지막 몇 페이지에서 사람을 가장 놀라게 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있는 것이 아니고 그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는 것입니다. 천사까지도 매우 놀랐는데, 이는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에 하나님의 자녀만 여기에 거주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친히 여기에 거주하고, 어린양도 여기에 거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큰 소리로 말하기를 ‘보라’고 하였습니다. 큰 소리로 보라고 웨쳤는데, 이 뜻은 바로 ‘너희들 보라 너희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느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거기에 거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가 놀라며 큰 소리로 웨치기를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이 점을 생각하지 않으셨지요? 기도할 때 더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실 필요 없고, 땅에서 우리와 함께 있는 아버지라고 하면 됩니다.
성경 마지막은 하나님이 이사하는 것입니다. 그의 아들이 이미 땅에 오셨고, 그의 영도 이 땅에 오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그는 이 땅에 오셨으며, 아담이 하나님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디에 있나이까? 저녁 무렵에 에덴 동산에서 산책했는데, 장래에 바로 이렇게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땅에 거주하게 되고, 회수하는 지구에서 거주합니다. 상상할 수가 없지요? 우리가 이사 가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고 그가 오셔서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그 새로운 우주에서, 지구는 바로 우주의 중심이 될 것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 원래의 계획입니다. 그의 사랑을 바로 여기에 놓았으며, 우리는 어린양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와 그 성에 거주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곧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얼굴이 무엇 같을까요? 제가 추측하기에 그의 아들 예수님 같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좋아요. 우리가 이미 ‘계시록’의 마지막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여러분에게 열가지 ‘계시록’을 연구할 필요가 있는 이유를 주시겠는데, 이로 ‘계시록’의 총결이라 하지요. 계시록의 마지막 한 마디 맺는 말이 있는데, 초청이고, 간구이기도 합니다.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오라 오라 와서 마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에 끊임없이 사람을 초청하여 와서 이 생명수를 마시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여기에 또 ‘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계시록’ 마지막에 두 번의 ‘오라’가 있는데, 하나는 사람을 초청하여 오라는 것이며 ‘오라 모든 복은 네가 그냥 얻을 수 있다 오라’고 합니다. 듣는 사람은 대답하기를 ‘오라’고 합니다. 신부도 신랑에게 ‘오라’고 합니다.
‘계시록’의 열가지 이유를 읽어야겠습니다.
첫째, 이것은 성경의 결말이고, 관건적인 고조입니다. ‘계시록’이 없으면 이야기는 결말이 없습니다. 마치 탐정소설을 읽는 것처럼, 마지막 10페이지를 읽고 나서야 찢어버리는데,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모릅니다. ‘계시록’은 결말이고, 역사의 결말이며, 하나님 사랑의 결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시작과 마침이기 때문입니다. 우주 창조와 끝날 때 그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둘째, ‘계시록’을 읽으면 당신이 이단에 속지 않게 보호해 주십니다. 많은 이단들이 와서 당신의 문을 두드릴 것이며, 이 이단들은 ‘계시록’에 매우 익숙합니다. 그들은 고정적으로 교회만 가고 ‘계시록’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이 이단들은 그들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이 책을 아주 잘 이해하는데, 당신에게 가르칠게요’라고 합니다. 전에 어떤 사람이 저에게 십사만 사천이 무엇을 대표하는가 물으셨는데, 여호와 증인들이 이 숫자에 대해 터무니 없는 해석을 하지요. 제가 앞에서 이 숫자를 논하지 않았는데, 하지만 ‘계시록’에서 이 숫자를 두번 언급했습니다. 제7장에서는 대환난 시기에 유대인들이 땅에서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을 가리켰고, 14장에서는 주를 위해 순교하여 하늘로 올라온 크리스찬들을 가리켰습니다. 같은 무리의 십사만 사천이 아닙니다. 이는 해석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이단들은 크리스찬들이 ‘계시록’에 대한 무식으로 성도들을 빨아들이지요. 그러나 만약 당신이 그들보다 더욱 많이 알게 되면 그들을 회수하여 그들더러 이 복을 받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단들이 ‘계시록’에 대해 무식한 크리스찬들을 이용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계시록’을 이해하면 당신이 이단에게 속지 않게 보호해 줍니다.
세번째 ‘계시록’을 읽으면 당신이 역사를 이해하하도록 도울 것이며, 당신더러 신문을 볼 때 마음을 밝게 합니다. 매번 제가 크리스찬들을 데리고 ‘계시록’을 연구하면, 그들은 항상 신문이나 잡지의 것을 오려 내어 저에게 보이는데, 매번 ‘계시록’을 연구하면 이렇게 합니다. 그들은 묻기를 ‘당신은 이번 주에 신문에 실린 이것을 보셨습니까?’라고 합니다. 그들은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장래의 그림자가 이미 나타난 것을 보았고, 우리는 역사가 정말로 그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에 있다는 것을 이해했고, 당신이 재난에서 위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아직 끝은 아니고 시작일 뿐이라 몸을 곧게 펴고 머리를 쳐들어야 한다. 구속의 날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크리스찬들의 반응은 판이 다릅니다. 재난으로 피해 본 자들에게 조금도 동정심이 없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으로 일찍이 예비했고, 이것은 신생의 산통이지 우주의 임종 전의 아픔이 아니며, 새 우주가 탄생하기 전의 산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반응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도록 도움이 되는 것이며 마음의 소망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우리가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이고, 예수님이 이긴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네번째, 미래에 대해 확고한 소망이 있고, 오늘까지 굳건히 서 있을 수 있습니다. 믿음과 사랑만 있어서는 안되고, 소망도 필요합니다. 상황이 악화될 때에 소망은 우리 영혼의 닻이 될 것이며, 우리의 복 있는 소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이 땅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사탄을 이기고, 크리스찬들이 세상을 통치할 것이며, 우주 전체가 회수될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 임할 것입니다. 그것은 저의 소망인데, 하지만 일방적인 소망은 아니고 반드시 실현되리라는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식언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모든 약속은 예수 안에서 응하였습니다.
다섯번재 이유는 ‘계시록’을 읽으면 당신더러 더욱 복음을 전하고 싶어하게 됩니다. 세계가 끝나기 전에 한 영혼이라도 힘껏 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왜서 예수님을 더디 오시게 하시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베드로전서’가 우리에게 알려주는데, 하나님은 더욱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직도 예수님을 오지 못하게 하는데,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그는 복음을 먼저 각 족속에게 전해지게 하고, 그리고 말세가 오게 합니다.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여섯번째, ‘계시록’을 읽으면 우리더러 경배하고 싶다고 격려합니다. 우리가 ‘계시록’에 묘사한 하늘의 노래와 경배를 읽으면, 그들과 함께 경배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저의 집에 천사가 노래한 아름다운 녹음 테프가 있는데, 당신이 들으면 거기에 가입하고 싶어집니다. 아쉽게도 완벽한 합창을 파괴했는데, 다행히 평시에는 천사의 노래를 들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노래만 듣고 싶어지고, 자신이 더는 경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계시록’의 경배는 사람을 경배하고 싶도록 격려합니다. 매번 집회에서 자유 경배 시간이 있는데, 임의로 기도할 수 있고, 찬양이나 혹은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계시록 5장 혹은 4장을 읽는 소리를 항상 듣는데, 읽으면 사람더러 경배하고 싶어집니다.
일곱번째, ‘계시록’을 읽으면 우리가 세속에 물들지 않게 도와주는데, 우리더러 신 세계 임하심을 열렬히 기대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신시대에 속했으며, 저는 다른 사람이 이 단어를 도용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우리야말로 신시대입니다. 신시대 임하심을 기대하는 것은 현재 사람들이 말하는 무슨 물병자리 시대 따위가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이고, 이는 우리더러 경건한 삶을 살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여덟번째, 여기에 앉아 계시는 몇 분은 이미 느꼈을텐데 ‘계시록’은 당신 자신더러 예비하도록 격려합니다. 책을 펼치는 그 날에 당신더러 부끄러운 일이 나타나지 않게 하실 것이며, 뿐만 아니라 당신을 격려합니다. 요한일서에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를 믿는다면 그를 꼭 닮을 필요는 없고, 여러분이 힘껏 그를 본받으면 됩니다. 이것은 저의 아내가 매우 믿기 어려운 사건인데, 그는 많은 방면에서 모두 큰 믿음이 있지만 장래에 그의 남편이 완벽하게 변한다는 것을 믿기 매우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그가 당신에게 경험에 근거해서 이 점을 믿기가 매우 어렵다고 알려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가르침을 받는 마음이 있습니다. 믿음을 경험에 두지 않고, 성경에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약속인데, 그가 다시 오실 때에 우리는 반드시 그를 닮을 것입니다. 그때면 우리는 서로 마주 볼 것이며, 모든 사람은 예수를 닮았다고 생각할 것이며, 모든 사람의 표정과 눈빛이 그를 닮았을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 점을 믿는다면 힘껏 거룩을 따를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아홉번째, ‘계시록’을 읽으면 우리 자신이 핍박을 대면할 예비를 하도록 격려합니다. 저는 핍박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실 핍박은 이미 대략 200개 되는 나라에 임했고, 많은 곳의 크리스찬들이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증하며 말씀하시기를 ‘말세가 임하기 전에 만국이 우리를 미워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나라가 그렇게 할 것이고, 지난 2000년동안 이 지경까지는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이미 갈수록 더욱 가까워지고 있는데, 우리는 준비를 잘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시록’을 읽으면 사람더러 핍박을 대면하도록 자신을 예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계시록’을 기록한 목적입니다.
마지막으로 ‘계시록’을 읽으면 우리더러 그리스도에 대해 전면적인 이해를 하도록 돕습니다. 복음서에서 그리스도을 이해한 것은 그를 철저히 이해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서신서에서 그리스도를 이해한 것도 부족합니다. 복음서에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선지자라고 묘사했고, 하나님의 백성들 위해 생명을 바친 선지자였습니다. 그리고 서신서에서 묘사한 그리스도는 우리의 제사장이고, 영원히 살아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합니다. 저는 승천일에 예수님의 승천 소식을 전해서 너무 기쁩니다. 그 날은 목요일이고, 사람들이 쉽게 소홀히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하늘의 제사장일 뿐만 아니라 ‘계시록’에서 그는 우리의 왕이라고 더욱 명확하게 묘사했습니다. 우리는 전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그래야 그의 전면적인 신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알파와 오메가요 유다의 사자이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시고, 그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며, 그는 진실로 믿을만한 증인이며, 그는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십니다. ‘계시록’에서의 호칭은 우리가 그의 전모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계시록’에서의 예수님은 온유하고 친근한 형상이 아닙니다. 당시 빌라도가 너희들은 ‘이 사람을 ‘보라고 하였는데, 하지만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평형적인 관점이 있어야 하고, ‘계시록’에는 예수님의 엄숙함과 사람더러 무섭게 하는 면으로 묘사했으며, 계시록은 우리에게 평형적인 관점을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은 연약하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예수님은 세상을 정상 궤도로 돌아오도록 정의를 신장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실망하기를 그는 2000년 전에 왔었는데 세상은 여전히 엉망이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하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세상이 다시는 혼란하지 않을 것이며, 그때면 이 세상은 하늘이 통치하실 것이며, 하나님 나라가 다시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속히 오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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