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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David Pawson's Unlocking the Bible

34 요한계시록 2 / 데이빗 파슨 교정 및 자막 예정

LNCK 2018. 12. 27. 20:23

요한계시록(2)

                    아래 한글 자막 스크랩, 출처

 

승천하신 주

계시록이 책이 내용과 성경이 다른 책들과 다를 뿐만 아니라 출처도 다른데, 이것은 유일하게 사람이 주동적으로 쓰고 싶어하는 책이 아닙니다. 복음서, 서신서과 사도행전 모두는 사람이 한통의 편지나 혹은 복음서 한권을 쓰고 싶어하는 것이며, 그리고 앉아서 잘 생각하고 다시 집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책은 요한이 기록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 책은 그가 집필한 것인데, 하지만 내용은 그가 생각해낸 것이 아닙니다. 이는 성경 학자들의 백사불해의 점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단지 요한이라고 자칭했고, 다른 소개는 없었습니다. 이 요한이 아주 유명하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여러분 모두가 그를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 지역의 요한을 여러분 모두가 아실 것이며, 사도 요한 뿐이었습니다. 그는 12제자 중 유일하게 해를 받지 않은 자이고, 또한 천수를 다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가 후에 에베소로 이주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그가 에베소 그 곳에서 마리아를 자기 어머니처럼 봉양했습니다.

아마 일년 전 쯤 제가 몇 명과 함께 에베소에 있는 사도요한의 묘지를 방문했습니다. 우리는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했다고 하는데, 하지만 사실 그가 기록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가 본래는 이 책을 쓰려는 생각이 없었고, 단지 분부대로 그가 본 것, 들은 것을 쓰려고 했습니다. 마치 서기원이나 혹은 비서처럼이었습니다. 당시는 서기라고 하지요.

문제는 계시록의 성품이 요한복음요한일이삼서와 확연히 다릅니다. 그래서 많은 성경 학자들이 계시록은 요한이 기록했을리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더러 영화관의 떠다니다라는 영화를 보는것으로 상상해보시라고 청하고 싶어요. 누군가 당신더러 본 것을 쓰라고 하면 당신은 당신이 쓴 결과가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여기에 계신 어떤 분들은 일기를 쓰실 것인데, 당신의 구절 모두가 완벽합니까? 당신의 문법 모두가 정확하십니까? 당신의 철자법 모두가 정확합니까?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불쌍한 요한이 많은 것을 써야했고, 그리고 그가 본 상황과 그가 들은 말은 참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이며, 심지어 여러 차례 기록하는 것을 잊었습니다. ‘계시록에서 천사가 요한에게 11번 말했습니다. ‘네가 기록하지 않았구나. 이것들을 기록하라. 이 모든 것은 신실하고 참되다고 하였습니다. 불쌍한 요한이 재빨리 필을 들어 계속하여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주 엉망으로 썼고, 문법도 맞지 않고, 어떤 구절은 심지어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며 말하기를 사도요한의 문필이 그렇게도 좋은데, 왜서 늙어서인지 이런 것들을 기록했지?’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필기로만 기록했기 때문이고, 요한은 그가 본 것, 들은 것들을 아주 빠른 속도로 기록했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혹시 묻기를 요한이 왜서 필기를 좀 윤색하게 하지 않았을까요?’라고 합니다.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마지막 한 마디에서 말하기를 이 책의 내용을 무단 변경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이 책의 내용을 더하거나 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가 기록한 일들을 감히 함부로 다치지 못했습니다. 헬라 원본으로 보면 계시록의 내용이 매우 어수선하고, 완전히 사도요한의 기록한 품격이 아닙니다. 하지만 확실히 요한이 집필했는데, 그러나 그의 사상에서 온 것이 아니고, 대다수는 구술한 기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완성에 많은 사람이 참여했는데, 그 중에는 천사도 있었습니다. 이 천사들은 요한더러 무엇을 기록하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성령님도 이 작업에 참여했고, 예수님도 이 작업에 참여했고, 그래서 이 책을 예수의 계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더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했고,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에게 계시했고, 그리고 성령에게 전했고, 천사에게 전했고, 천사가 요한에게 전했고, 요한이 일곱교회에게 전했습니다. ‘계시록이 책에는 이런 계시 순서가 있는데, 아주 특히합니다. 이 계시들은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직접 예수님께로부터 왔고, 직접 성령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리고 천사를 통해 요한에게 전했고, 다시 일곱교회에 전했는데, 상당히 긴 줄의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저자는 누구일까요?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시고, 성령님이시기도 합니다. 요한은 단지 보고 들었고, 그가 보았고 들었습니다. 그는 단지 그가 들은 것과 본 일들을 분부대로 기록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현재 읽는 계시록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시작부터 사람을 놀라게 하는 예수님의 진리에 관해서 계시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요한이 그와 가장 가까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밥상에서 식사를 할 때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밥상 옆에 비스듬히 누워서 하는데, 마치 이렇게 비스듬히 누워서 오른손으로 밥을 먹었고, 머리는 앞 사람의 몸에 기대고, 더러운 발은 바로 밑 사람의 코 옆에 놓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밥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이 아니라 발을 씻는데, 하지만 요한은 항상 예수님의 오른편에 앉고, 머리를 항상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고 예수님과 귓속말을 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였는데, 저는 요한이 예수님이 가장 좋아하는제자라고 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과 가장 가까웠고, 예수님이 그를 아주 사랑했습니다. 이젠 60년이 지났고, 그가 다시 예수님을 만났는데, 이번에는 깜짝 놀라서 땅에 엎드렸으며 마치 죽은 것처럼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이 이런 행태로 나타났던 것을 전혀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머리가 눈같이 희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변화된 예수님이시고, 뿐만 아니라 변화된 예수님이 지극히 큰 영광을 발사했습니다. 요한이 먼저는 뒤에서 말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래서 몸을 돌려 누구 말하는지를 보려고 했는데, 결국에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예수님의 형상을 보았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코번트리 대성당을 가시게 되면 뒤쪽에 있는 자수 한 폭을 볼 수 있는데, 이 그림은 제가 좋아하는지를 말을 모하겠네요. 아주 큰 한 폭의 그림인데, 예수님 발 앞에 사람이 진짜 사람처럼 큰데, 여러분들이 만약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그 그림은 이미 승천하신 예수님이 요한에게 나타난 묘사이고, 그리고 계시록의 상징물입니다. 예를 들어 네 생물이 이미 승천하신 그리스도, 영광스러운 그리스도를 에워쌓던 것처럼입니다.

바울이 전에 승천하신 후의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보았는데, 이로써 잠시 실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그의 영광을 본 사람들은 실명되지 않았습니다. ‘계시록에서 예수님이 그의 원래 영광을 반복했는데, 그 광경은 사람을 매우 놀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가장 잘 이해하는 요한이 극히 크게 감동했으며, 뜻밖에 땅에 엎드려 마치 죽은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여기에서의 예수님이 복음에서의 예수님과 달랐습니다. 비록 동일하신 분이지만 이미 승천했고, 영광스러운 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체가 환골탈태했고, 그리고 예수님이 아직도 모라 심판관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영국에서 법관을 볼 때 모두가 경건하게 경의를 표하며, 법관은 가발을 쓰고, 법관 옷을 입고, 아주 위엄한 모습이지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심판관의 신분으로 오실 것이며, 그 때의 예수님은 우리가 교회 유리에서 보신 오색찬란한 예수님과 다를 것이고, 주일 학교에서의 그림과도 다를 것입니다. 주일 학교 교재의 온유한 예수님은 계시록에서 말하는 예수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나중에 다시 논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예수님의 새로운 모습이 나타났고, 새로운 각도에서 예수님을 보면 사람더러 경외하게 됩니다. 사실 제6장에서 땅의 왕부터 노예까지 묘사했습니다. 뜻밖에서 모든 산들이 그에게 넘어지고, 그들을 감추었는데, 이는 계시록의 예수님 얼구를 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의 예수님의 눈은 불꽃 같고, 분노가 가득한데, 이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가 지으신 세계를 짓밟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시록을 통해 예수님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예수님의 많은 새로운 칭호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이 책의 뒷 부분에서 하나님의 칭호까지도 예수님에게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예수님이 여기에서 새로운 신분으로 나타났는데, 여러분도 아마 예수님이 250개가 되는 이름과 칭호가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초월했습니다. 이 호칭들을 모두 쓰는 것은 묵상에 아주 좋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35개까지 생각할 수 있는데, 하지만 예수님이 250개의 호칭이 있습니다. 그 중 이 책에서 아주 많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여기에서 자신의 새로운 신분을 계시했고, 호칭마다 우리가 그를 더욱 알아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요. 나는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느니라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 나는 거룩하고 진실하다 나는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뿔리이다. 나는 충성되고 참되다. 나는 다윗의 뿌리이고 또한 그의 자손이고, 나는 광명한 새벽 별이라. 저는 이 칭호를 아주 좋아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더욱 일찍 일어나면 여명 전의 마지막 별이 지평선 위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주 광명스럽고, 마지막까지 여전히 빛나는 별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자신을 알려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모든 영화 스타와 가수들이 모두 사라진 후, 또 하나의 별이 빛을 낼 것입니다. 그래서 광명한 새벽 별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 하나의 호칭이 있는데,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이고, 제가 더 추가하겠는데 즉 대통령 중의 대통령’, 그리고 수상 중의 수상입니다. 왜냐하면 전체 호칭이 바로 이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든 통치자의 머리시고, 그는 머리를 통치하시는 머리이고, 그는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래서 이 책은 처음부터 사람을 놀라게 하는 예수님의 형상을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땅의 교회 사이의 친밀한 관계도 묘사했습니다. 그가 모든 교회에서 다니시면서 그들을 자세히 관찰하며, 손에는 금등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 이 책의 시작에서의 몇 개 상징물이 나타나는데, 즉 일곱 별, 일곱 금등대이며, 잉 상징물들의 뜻은 아주 뚜렷합니다. 일곱 금등대는 몇 개의 교회를 가리키며, 일곱 별은 그 교회의 천사들을 가리키는데, 마치 아이들에게 수호천사가 하나님께 보고하는 책임을 진다는 것처럼, 누구 이 아이를 속였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아이를 속이는 후과의 심각함보다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이의 수호천사는 하나님 아버지께 보고합니다. 교회마다에도 수호천사 하나씩은 있는데, 여기에서 아주 명확하게 기록했는데, 우리가 기억할 필요가 있고, 나중에 여러분이 여러분 교회의 수호천사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매번 경배할 때 주변에 많은 천사가 있습니다. 매번마다 사람들이 저에게 묻기를 지난주에는 사람이 얼마나 오셨습니까?’라고 하면 제가 몇 천명, 수천명은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하늘의 천사와 함께 경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예수님이 하늘에서 영광을 가지고 강림한다고 묘사했습니다. 오셔서 그의 교회를 탐방하고, 그들을 관찰하며, 교회가 있는 도시를 관찰합니다. 여기에서 교회와 거기에 속한 도시의 상황이 드러났는데, 아주 예사롭지 못합니다.

다음은 바로 요한이 일곱교회에 쓴 일곱통 편지입니다. 저는 늘 놀라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들여서 바울 서신을 읽으며, 또한 많은 시간을 들여 요한 서신도 읽는데, 예수님의 서신은 아주 적은 시간을 들여 읽습니다. 여러분은 놀랍지 않습니까? 이 책은 예수님의 서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응당 더욱 많은 시간을 들여서 읽어야 맞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일곱교회에 보낸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묻기를 예수님은 왜서 이 교회들에게 편지를 썼을까요? 이 교회들은 무슨 특별함이 있을까요? 이 문제를 대답하려면 먼저 지리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먼저 우주에서 찍은 터키의 위성 사진을 보겠습니다. 터키가 여기에 있고, 헬라가 여기에 있는데, 터키의 대부분 지역이 갈색인 것을 볼 수 있고, 조금 메마릅니다. 하지만 북해안 여기 흑해 옆, 이 지방은 오히려 초록색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지역은 두가지 색인데, 좌측 아래 이 곳, 바로 서남쪽인데, 초록색 원형 하나가 있으며, 산에서 직접 흘러내려서 강이 형성되었고, 강물이 마지막에는 에게해로 흘러들어 가고, 산골짜기에 푸른 빛을 가져왔습니다. 가까이 앉으신 분들 보이십니까? 아랫쪽에 초록색 원형 하나가 있는데, 일곱교회 모두가 그 원형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하나의 원형이며, 로마 중심인 서방 세계를 연결하고, 그리고 중국, 아프리카와 인도를 위주로 하는 동방 세계를 연결합니다. 여기를 문화의 융로라할 수 있으며, 로마 문화, 헬라 문화 그리고 이교 문화를 융합했습니다. 여기는 정치의 융로이기도 하고, 종교의 융로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하나의 아주 특별한 지역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인데, 이것이 예수에 대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는 교회를 에워놓은 원형입니다. 이 편지 몇 통은 아래 순서대로 나열한 것인데,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그리고 라오디게아입니다. 여기는 서방에서 동방으로 오는 주요 통로입니다. 하지만 이 길이 버가모에서 갈라졌는데, 한갈래는 연해로 거쳐 에베소에 가고, 한갈래는 내륙을 거쳐 두아디라 등에 가고, 마지막에 라오디게아에서 합하여 다시 동쪽으로 갑니다. 이 비옥한 원형이 바로 모든 사물의 집합점입니다.

또한 계시록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게시가 있는데, 사탄은 창조주가 아니고 피조물이며, 그는 한번에 한 곳밖에 가지 못하고,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다닙니다. 하지만 그가 땅에서도 총부가 있고, 거처가 하나 있는데, 저는 이 곳이 오늘날 어디인지 모릅니다. 제가 추측해 볼 수 있는데, 하지만 저는 딱히 모릅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의 거처에서 세계 각 곳을 다니고, 그는 하늘도 갈 수 있고, 그가 하늘도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땅에 거처가 있는데, 거기가 그의 나라 수도입니다. 1세기인 이 때 사탄의 거처가 바로 버가모였으며, 사탄이 땅에서의 거처가 바로 거기였습니다. 예수님이 버가모에 보내는 편지에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권좌는 바로 영원히 거주하는 곳이라는 뜻인데, 거기가 사탄의 거처입니다. 사탄은 이 몇 개의 원형 도시가 바로 동서의 경계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 원형이 그의 나라에 대해 관건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전에 사람들과 이 지역을 방문했었습니다. 우리가 가서 거기의 문화, 종교 그리고 신전 등을 참관했는데, 여기는 아주 관건적인 하나의 지점이었습니다. 여기 일곱 곳에 일곱개의 작은 교회가 원형으로 분포되었는데, 에베소가 아래있고, 에베소로 시작하여 다른 대다수 교회들이 건립되었으며, 요한이 당시 바로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언급한 교회 중에서 우리는 에베소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습니다. 에베소에서 사역했던 전도인들을 보면 먼저는 아볼로이고, 그리고 한쌍의 부부인데 브리스가와 아굴라이며, 그리고 바울이며, 그리고 디모데, 다음 요한입니다. 이 작은 곳에서 뜻밖에도 이렇게 많은 사도와 전도인들이 목양을 했으며, 여기는 주요한 전쟁터입니다.

당시는 제1세기 말이었고, 교회는 이미 제2, 3대까지 전해졌으며, 그리고 이 곳은 바로 사탄의 나라가 거처한 곳이고, 세속 문화와 이교의 중심 지대였는데, 이것이 가장 중요한 시련이었습니다. 만약 교회가 여기에서 생존한다면 다른 곳도 반드시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만약 제2, 3대 크리스찬들이 이 곳의 압력을 이기면 교회는 계속하여 말세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곳의 몇 개 교회를 아주 친밀하게 주의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들의 위치가 매우매우 관건적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거처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교회들의 상황인데, 그들이 사탄의 거처와의 거리가 거의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으며, 사탄의 거처에 가장 가까웠던 두 교회이며, 내부에는 우상 숭배와 음란으로 썩었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거처와 거리가 조금 있는 두 교회인데, 핍박을 당했지만 그 상황을 이겼고, 예수님이 그들에게 어떠한 비평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거리고 더욱 먼 두 교회인데, 에베소와 라오디게아인데, 사탄의 공격을 아예 받지를 않았고, 단 한가지라면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고, 믿음이 냉담하게 변했다는 것입니다. 아주 재미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사탄이 그의 손이 닿는 교회에 대해 우상 숭배와 음란히 침투해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거리가 조금 있는 교회에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핍박했는데, 하지만 예수님이 핍박을 받는 두 교회에게 아무런 비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리가 제일 먼 두 교회는 믿음이 냉담하게 되어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았고, 즉 처음 사랑을 잃었습니다.

이 일곱개의 서신이 교회의 상황을 생동적으로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이 교회의 미래에 대해 얼마나 중요하고, 교회의 제2, 3대 크리스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2, 3대의 크리스찬들이 제1대의 크리스찬처럼 열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처럼 주를 그렇게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2, 3대의 크리스찬, 교회나 혹은 소모임들은 집에서나 혹은 동굴에서 모임을 가졌고, 강하고 그리고 무서운 헬라와 로마의 문화에 대면하였으며, 그리고 이교도, 특히는 사탄을 대면해야 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버가모 그 곳을 가게되면 거기에 높고 가파른 산이 하나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산 위에 도서관과 그리고 신전이 있습니다. 그 중에 제우스 신전 하나도 있는데, 묘양이 마치 커다란 팔걸이 의자 같고, 커다란 U자형 신전이고, 울안에 제단 하나가 있고, 이 제단에는 일년 내내 불이 있고, 아직도 검은 연기가 나고 있습니다. 버가모 도시에서 머리만 들면 일년 내내 검은 연기가 나는 신전을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이 거기를 사탄의 보좌가 있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저에게 사진 한장 있는데, 하지만 이 제단이 오늘날에는 버가모에 있지 않습니다. 이 사진은 동 베를린에서 찍은 것이고, 버가모 박물관에서 찍은 것입니다. 사실 이 제우스 제단이 바로 버가모에서 왔고, 베를린에 새롭게 세워졌습니다. 여러분이 사신에서 볼 수 있는데, 아주 크고, 저 작은 검은 점이 진짜 사람의 크기입니다. 이 제단이 바로 하나의 아주 큰 팔걸이 의자 같은데, 보이십니까? 그것이 바로 사탄의 보좌이고, 터키 사람들이 이 제단을 돌려받고 싶어 합니다. 베를린의 여러 크리스찬들이 그를 보내기를 바라면서 계속 기도하고 있어요. 하지만 오늘날에 이 제단이 사탄의 보좌가 있는 곳이 아니고, 단지 하나의 빈 의자입니다. 그러나 당시 사탄의 보좌가 바로 버가모에 있었고, 사탄이 바로 거기에 거주했으며, 그는 높은 곳을 좋아하고, 그는 산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고, 땅의 만국을 멀리서 바라봅니다. 당시 그가 바로 산에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왜서 이 지역 교회에게 편지를 했는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총 일곱통의 편지를 일곱개의 교회에 보냈는데, 편지의 상세 내용을 논할 수 없습니다. 제가 다른 두개 비디오 테이프에 이미 많이 논했기 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광고를 하겠습니다. 작년에 우리가 오늘 여기에 계신 녹음 팀과 그 일곱 교회를 방문했는데, 이 두개의 비디오 테이프가 매 편지에 대해 아주 상세히 번역했고 또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 일곱개의 편지를 상세히 논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대략적으로는 강의하겠습니다.

총 일곱통의 편지를 일곱교회에 보냈습니다. ‘계시록에서 모든 물건이 거의 7의 숫자인데, 마치 일곱 나팔, 일곱 인, 일곱 그릇처럼입니다. 7은 하나님의 완벽한 숫자이고, 하나의 완전하고 원만한 숫자입니다. 하나님께 부족한 숫자는 6이며, 그리고 666은 하나님께 3배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뒤에서 이 숫자를 다시 논하겠는데, 하지만 7은 하나님 앞에 완전하고 그리고 원만한 숫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일곱 교회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일곱통 편지를 썻고, 매 편지마다 일곱 부분이 있으며, 그리고 편지마다의 일곱 부분이 모두 비슷한데 우리가 한번 보겠습니다. 첫번째는 주소인데 편지 서두에 놓았습니다. 예를 들면,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등 같은 것입니다. 두번째 부분은 이 편지들의 저자가 예수님이신데, 그는 본명인 예수를 상요하지 않고 자신에게 하나의 호칭을 붙혔으며, 통상적으로 새로운 호칭이며, 그 교회가 그를 알아야 할 방면이었습니다. 혹시 그들이 예수님에게 이 속성이 있다는 것을 잊었을 수가 있고, 혹은 누군가 그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교회를 엄격히 책망할 때 그가 말하기를 나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나의 말은 진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편지마다의 두번째 부분이 예수님의 특징입니다. 이 말씀은 누구에게서 나온 것이냐?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에 관한 묘사이고, 이 묘사들은 제1장에서 나타난 환상에 근거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한에게 자신의 영광을 나타낸 후, 그 환상을 근거로 각 교회에게 자신을 묘사했습니다.

세번째 부분은 예수님이 그 교회에 대한 긍정적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좋은 작은 깨우침을 얻을 수 있는데, 바로 비평하기 전에 먼저 긍정을 주었으며, 먼저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사실 신약성경의 서신 모두는 이 양식대로입니다. 바울은 상황이 아주 나쁜 고린도 교회에 편지할 때 그가 말하기를 주님께 감사한 것은 너희가 은사에서 아무것도 다른 사람에게 미치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한 교회에만 좋은 말을 할 수가 없었는데, 여러분은 어느 교회인지 아십니까? 갈라디아 교회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편지할 때마다 먼저 긍정적인 말을 하는데,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편지들의 세번째 부분에서 모두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느니라…… 너희들의 일을 내가 모두 알고 있느니라 내가 너희들의 모든 장점과 좋은 행위를 알고 있느니라 다른 사람이 너의 좋은 행위에 주의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주의하지 않는 것을 예수님은 모두 주의하고 있습니다. 만약 교회가 당신에게 감사하지 않았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모두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의 행위를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당신을 긍정합니다.

다음은 네번째 부분인데 책망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책망할 것이 한가지 있느니라고 하였는데, 그 책망하는 말은 아주 엄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 교회의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모든 결점을 알고 있으며, 예수님이 여러분 교회의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장점도 아십니다. 하지만 여러분 교회의 결점을 그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다음은 (다섯째 부분) 권고인데, 그들이 응당 어떻게 모든 결점을 고쳐야 하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만일 고치지 않으면 내가 너희들이 고치도록 도와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그 중 두개 교회에게 경고하기를 그는 교회 문을 닫게 할 방법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계시록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그들의 등대를 옮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교회 건축하고 싶어하고, 그리고 많이 건축할수록 좋다고 하는데, 하지만 예수님이 어떤 교회 문을 닫고 싶어합니다. 그가 말씀하시기를 만일 너희들이 고치지 않으면 내가 너희 교회 문을 닫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세계 각 곳에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아서 빈 건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건출할 뿐만 아니라 교회 문을 닫게도 합니다. 어떤 교회가 예수님과 복음을 부끄럽게 했기 때문입니다.

(여섯번째 부분은 부르심입니다). 예수님이 선신에서 그들에게 권고하기를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자는 응당 유희하라는 것으로도 번역이 됩니다. 여러분, ‘듣다유의하다'는 다르지요. 듣다와 들리다가 다릅니다. 런던에 어떤 비서가 새 귀걸이를 끼고 출근했는데, 그 중 하나에는 들어가다이라고 적혀있고, 다른 하나에는 나가다가 적혀있습니다. 저는 항상 생각하는데, 이것을 크리스찬 액세서리 매대에서 크리스찬들에게 팔았으면 좋겠어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볼 수 있는데, 편지마다 모두 반드시 일곱교회에게 읽어서 듣게 해야 하고, 그들더러 완전한 메시를 듣도록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에베소와 서머나, 그리고 버가모에 보낸 편지를 듣고 나서 이어서 당신의 교회라면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몰라서 마음이 분명히 조마조마해서 숨을 참으며 기다릴 것입니다. 하지만 이 부르심의 뜻은 사실 나에게 회답하라는 뜻입니다. 나는 너의 대답을 원하고, 나는 너의 회답을 원하고, 나는 너의 대답에서 네가 이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느니라.

서신에서 마지막 한 부분이 약속이며, 이기는 것이며, 내가 반드시 어떻게 어떻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마지막 이 약속은 모든 교회에 하는 약속이 아니고, 교회 안에서 조건에 합한 자에게 주는 것이며, 여러분의 교회 상황이 어떻게 나쁘든지 상관없이 당신은 자신을 위해 책임져야 하며, 당신이 교회 전체를 위해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당신의 교회 상황이 어떻하든지 상관없이 마지막 날에 내가 너희에게 물을 것은 네가 이기었느냐?’입니다. 이 또한 우리에게 알려주기를 교회 밖에서 아니고 먼저 교회 안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교회 안에의 문제를 이기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핍박할 때 우리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데, 이것은 우리에 대한 인내와 이기는 가장 큰 시련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 편지에도 나는 네가 이스마르크시티에 가기를 건의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거기는 서머나 교회가 있는 곳이며, 너희들이 마차를 타고 서머나 교회 가기를 건의하는데 거기 교회가 비교적 좋으니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원래 자리에서 이기고, 너희들은 자신들의 교회에 남아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교회 성도들에게 아주 강렬한 호소를 하였는데, 바로 마지막 서신인 라오디게아 교회였습니다. 그들의 교회를 입에서 토해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주님더러 오바이토 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음 문이 아니고 교회 문입니다. 그가 말씀하시기를 성도 한 사람이라도 내가 오는 것을 원하면 내가 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하나의 약속입니까. 단 한 성도면 예수님을 교회로 초청해 들일 수 있는데, 이는 교회 전체가 예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표시는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그 성도와 함께 앉을 것이고, 그도 나와 함께 앉을 것이며, 우리는 친밀한 관계를 건립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오해하기 쉬운 구절입니다. ‘보라 내가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를 믿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묵도회를 보강하는 것도 아니고, 이것은 교회가 예수님을 떠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한 성도면 예수님을 다시 돌아올 수 있게 초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시록 편지마다에 모두 똑 같은 양식이 있고, 동시에 이 일곱권의 책을 읽으면 우리가 이해하는데 가장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순서대로 읽는데, 하지만 동시에 읽으면 다른 깨우침이 있습니다. 제가 똑 같은 곳에 색갈로 표시하신 것을 여러분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곧 바로 그 중의 첫번째 (에베소)를 볼 수 잇고, 두번째 (서머나), 세번째 (버가모), 네번째 (두아디라), 다섯번째 (빌라델비아)인데 이 다섯개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하지만 두 교회에서는 장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사데, 라오디게아). 웃기는 것은 그들이 의외로 가장 성공한 교회들입니다. 인수가 가장 많고, 헌금이 제일 많아요. 표면상으로 보면 아주 흥왕한데, 하지만 예수님이 이 두 교회에서 장점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예수님이 교회를 보시는 각도가 우리가 보는 각도와 다릅니다. 책망 부분에 대해서는 다섯개 교회가 책망을 받았는데 (에베소,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라오디게아)입니다. 그 중 두 교회는 잘못한 일이 없었습니다(서머나, 빌라델비아). 그들은 완벽하지 않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은 교회를 꾸짖지 않고, 그들을 격려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아주 간단한 비교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됩니까?

이어서 우리가 아주 빠른 속도로 여러분에게 사진 한두장을 보이겠는데, 이것은 에베소 도시의 주요 도로이며, 도시의 심장 지대인데, 제가 빠른 속도로 여러분에게 몇 곳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여기는 라오디게아이고, 다른 한 면 위에 일곱개 교회 모두가 있습니다. 좋아요. 우리가 빠르게 한번 보겠습니다. 빌라델비아, 이것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유적이고, 이것은 사데이고, 거대한 다이애나 신전이 있고, 옆에 작은 벽돌로 지은 교회 하나가 있는데 크리스찬들이 경배하는 곳입니다. 이것은 서머나 시장인데, 나중에 여러분들이 다시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에베소 유명한 극장이며, 바울이 바로 여기에서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은 두아디라이고, 마지막 이것은 버가모인데, 여러분이 위에 있는 제우스 신당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의 거처입니다. 이러면 여러분들이 대략 이해가 되지요?

좋아요. 여러분, 이제 제가 여러분에게 계시록전체의 대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책에 전체적인 개념이 있습니다. 이 책은 하늘의 그리스도와 땅의 교회를 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땅에서부터 하늘을 논하고 있고, 또한 하늘에서부터 땅에까지 논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장면을 바꾸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금 놀라게 느끼는데, 이는 하늘의 역사를 듣는 것에 습관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하늘의 상황이 땅의 상황에 영향을 줍니다.

제가 계시록을 네 단원으로 나누었습니다. 네 단원인데, 빨간색 두개(2-3장이고, 6-18장으로 나눔), 초록색 두개(4-5장이고, 19-22장으로 나눔)로 나누었습니다. 빨간색은 나쁜 소식을 대표하고, 초록색은 좋은 소식을 대표합니다. 1장은 하늘의 그리스도와 그가 땅의 교회에 대한 관심을 논하였습니다. 제가 제2장과 제3장의 주제를 땅의 상황이 좋지 않다라고 하였고, 예수님이 이 상황을 반드시 교정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아시아의 도덕적으로 부패한 곳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타협하고, 신념과 행위에서 타협하고, 우상 숭배와 음란이 모르게 교회에 들어왔으며, 당연히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가장 주요한 두개의 문제인데, 교회 안에까지도 있었습니다.

다음 단원인 4장과 5장이 우리에게 하늘의 상황이 아주 좋다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땅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은 여전히 보좌에 앉아 계시고, 보좌 앞의 유리 바다와 보석 무지개 모두가 있으며, 이는 우리에게 하늘의 상황은 아주 좋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과 싸우지 않았고, 우리가 사탄과 싸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계시고, 사탄은 심지어 하나님의 동의를 구해야 비로서 땅에서 풍랑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상황은 아주 좋고, 역사의 결말은 예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의 시작부터 땅의 상황이 좋지 못하고, 하늘의 상황은 아주 좋다고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다음 이 단원(6-18)은 이해하기 힘든데, 우리가 시간을 조금 가지고 해석해야겠습니다. 나쁜 소식인데, 제가 이 단원을 상황이 먼저 악화되었다가 다시 호전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쁜 소식이며, 그리고 세계와 교회의 상황 모두가 악화되었습니다. 세계는 전쟁을 겪을 대로 겪었고, 피를 흘리고, 굶주리고, 질병, 자연 재앙으로 고난 등을 겪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죽는데, 사분의 일이 죽을 것입니다. 교회가 삼년 반의 대환난을 겪을 것이고, 세 악령이 사탄으로 변하여 교회가 크게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바벨론 도시의 핍박도 받을 것인데, ‘계시록에서 짐승에 탄 붉은 옷을 입은 여인으로 묘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순교할 것이며 헬라 원어에서 순교자라는 단어가 증인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계시록에서는 순교자로 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증거한다는 것은 바로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제가 계시록순교자의 수첩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먼저 악화되다가 다시 호전되는데, 하지만 짧게 잠시 악화입니다.

악화 후에 다시 크게 호전되는데, 이는 19-22장에 기록되었으며, 결국 좋은 결말로 끝납니다. 전체 상황을 개변하는 관건은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시는 것과 그리고 첫번째 부활인데, 이에 대해 제가 뒤에서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가 땅에서 천년동안 왕으로 있을 것이고, 그리고 심판 날이 임하고, 다른 죽은 사람들이 부활하여 심반을 받을 것이며, 두번째 사망인 불 바다, 그리고 새 하늙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개념에 조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층으로 되어있는 샌드위치와 조금 비슷한데, 순서는 이렇습니다. 나쁜 소식, 좋은 소식, 나쁜 소식, 좋은 소식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 대해서는 나쁜 소식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고난을 대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교회가 이미 타협하였다면, 압력이 임할 때면 바로 서 있지 못합니다. 반드시 먼저 거룩함을 구비해야 고난을 대면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난관을 극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의 상황은 아주 좋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좌의 상황을 볼 수 있고, 예수님의 손에 봉해진 책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모든 것이 통치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황이 하나님 손에서 통제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상황을 엄중하게 악화로 허락할 수 있고, 그리고 다시 호전합니다. 세계가 이렇고,, 교회도 이렇습니다. 하지만 대환난이 지난 후 상황이 크게 호전됩니다. 우리는 멀리를 봐야 하고, 마지막 결말을 봐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을 영혼의 닻이 되게 해야 하며, 우리의 영혼의 닻이 되게 해야 합니다.

마지막 남은 몇 분으로 이 배후에 역사 철학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철학이라는 이 단어를 무서워 하는데, 사실 철학은 바로 사람의 관점입니다. 오늘날 많은 역사관이 우리의 주의를 일으키고 있는데, 티비와 뉴스 등 같은 매체로 우리의 견해에 영향을 줍니다. 가장 보편적인 한가지는 순환적인 역사관인데, 이러한 순환적 역사관은 역사가 끊임없이 재연하고, 계속 끊임없이 재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가지 역사관은 역사가 연속되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고, 위 아래, 그리고 후퇴하지 않고 계속하여 앞으로 나가는데, 하지만 위 아래로 파동하며, 통화 팽창하고, 통화 긴축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가지 관점은 역사가 점진한다는 것인데, 1900년대 영국의 어떤 수상이 말하기를 위로, 위로, 위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라고 하였습니다. 20세기 초의 관건적 단어 하나라면 즉 진보인데, 이는 아무래도 되돌아간다는 기본 견해보다는 좋아요. 목적에 비교적 보편적인 것은 후퇴하는 역사관인데, 모든 상황이 악화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갈수록 나빠지고, 끊임없이 악화, 악화, 악화, 악화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21세기의 관건적 단어는 진보가 아니고 생존을 구하다입니다.

말세의 역사관이 바로 성경의 역사관이고, ‘말세의 역사관은 현재 상황이 악화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결국에는 갑자기 호전되며, 그리고 지속적으로 호전된다는 것입니다. 세 종류의 사람이 이런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 세 종류의 사람은 유대인, 크리스찬과 공산당인데, 이 세 종류 사람의 견해가 일치합니다. 유일하게 다른 것은 호전하는 관건은 무엇일까요? 여러분, 공산당은 혁명이라고 생각하며, 무산계급과 유산계급 사이의 투쟁이 악화되어 결국에는 혁명이 일어나고, 결국 사회에는 더는 계급 구분이 없게 되며, 더는 범죄가 없습니다. 하지만 공산당의 꿈은 이미 점차적으로 파멸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이 상황을 바꾸신다고 말하고, 크리스찬들은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실 때 이 상황을 바꾼다고 합니다. 상황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때까지 끊임없이 악화되고, 그가 상황을 호전시키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호전되게 합니다. 이러한 역사관은 사실 바로 계시록에 근거했습니다. 유대인, 크리스찬과 공산당 모두는 유대 선지자로부터 이 관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크리스찬이 역사에 대한 관점입니다. 현황은 끊임없이 악화되지만 어느날엔가 갑자기 호전될 것이며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때면 모든 것이 바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