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지금 우리가 ‘유다서’라는 이 짧은 서신을 보겠습니다. 이 책은 짧고, 또한 신약성경의 마지막에 놓여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읽지를 않습니다. 심지어 이 책을 주의하지 않는데, 하지만 이 서신은 아주 멋있습니다. 제가 시작하는 말을 다르게 하렵니다. 전에 제가 이 서신을 구어체로 번역했었는데, 원어의 뜻을 더욱 똑독하게 표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저의 번역본을 읽어보겟습니다. 여기에 이 짧은 서신의 대강이 있는데, 여러분들이 이 대강을 한면으로 보고 한면으로 제가 읽는 것을 들어보십니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부분은 1-16절이며(위험한 부패), 두번째
부분은 17-25절(타당하게 바로잡다)입니다. 유다가 당시 이 책을 기록하면서 번호를 메기지 않았습니다. 이 번호는 후에 메긴것인데, 어떤 곳의 뜻이 오히려 파괴되었습니다. 첫 부분에서 수신하는 교회에 한가지 위험한 부패 현상이 있다고 논했는데, 저는 이를 ‘체내의 암증’이라고 합니다. 두번째 부분에서는 그들더러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타당하게 처리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었고, 이 현상을 어떻게 교정하는지를 말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보신 이 두장에는 두 부분의 대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장은 1-6절이고, 이 장은 17-25절입니다. 제가 이 서신을 단숨에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한면으로 듣고, 한면으로 이 대강을 대조해 보십시오.
“이 편지는 유다인 내가 기록했고, 나는 유다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량하신 종이고 야고보의 형제 유다이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바로 하나님 아버지 집에 사랑으로 부름 받은 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너희가 하나님의 완전함을 초대 성도의 진실한 신앙에 전하기를 격려하노라 내가 이 편지를 기록함으로서 너희를 권면하노라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예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니라 성경은 그들을 징벌한다고 일찍이 선고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는 은혜를 방종하는 정욕의 핑계로 하였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주재라는 것을 거절했느니라 비록 너희가 이 모든 일을 이미 알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너희에게 일깨우겠는데,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당하는 분이 아니니라 당시 주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하여 내었지만 그들의 작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멸하였느니라 그는 천사를 대하는 것과 같이 방임하지 않았고, 어떤 천사들은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고 떠났다. 주님이 이 타락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흑암에 가두셨느니라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동일하게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타락한 천사들과 마찬가지가 되었느니라 이런 사람들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게 되고, 후대들은 이로 거울이 되느니라 이런 역사적인 거울이 있다할지라도 너희중에 경건하지 못한 자들이 들어와서 자신들의 몸을 더럽히고,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멸시하고, 하늘의 존용자를 훼방하느니라 미가엘 천사장의 이름은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뜻이며, 그가 사탄과 누구 모세의 시체를 가지는가를 쟁론할 때 사탄이 하나님을 모욕했다고 감히 직접 고발하지 못하고, 죄를 정하는 권세를 하나님께 넘겼느니라 단지 사탄에게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고만 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생명에 대한 이해는 완전히 피상적이다 이 사람들은 가인의 길을 따라 갔기 때문에 화 있을지어다 뿐만 아니라 발람 같은 죄를 범하였고, 돈의 유혹을 받았고, 잘못된 길로 빠졌다. 또한 고라와 같이 배반하여 멸망되었느니라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사실 그들은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이런 자들은 암초 같이 모든 것을 파멸하고, 또한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구름처럼 비는 내리지 않으니라 또한 마치 과일을 맺지 못하는 가을 나무 같아서 뿌리채 뽑히고, 결국에는 완전히 말라서 죽느니라 그들은 더럽고 수치스로운 행위를 하는데, 마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 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조상 아담의 제7대 자손 에녹이 이런 사람이 있을거라는 것을 일찍이 알고 있었고, 그가 전에 엄격히 경고했으며, 에녹의 예언은 이러하니라 보라 주께서 반드시 그의 천만 천사를 거느리고 강림할 것이고, 그가 모든 사람을 심판하고, 또한 모든 불경건한 사람들의 죄를 정하리라 그들의 행위가 불경건하고, 삶이 불경건하고, 또한 불경건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였기 때문이라. 이런 사람은 영원히 자족을 모르고, 그들은 불평하기를 좋아하고, 늘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한다. 늘 큰소리치며 자신을 치켜세우기를 좋아하고, 취할 이익이 있다면 남에게 아첨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전에 했던 말을 너희들은 기억하라. 그들이 일찍이 말하였는데, 말세에 반드시 사람들이 너희의 경건을 비웃을 것이며, 그들의 행위는 자신의 불경건의 사욕에서 온 것이니라. 이런 사람이 너희 중에 있으면 분쟁만 만들 것이라. 그들은 혈육에 속했고 본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라. 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했느니라. 사랑하는 자들이여, 너희들은 거룩한 신앙의 기초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키우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기도하고,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자라게 지키고, 그가 너희들을 영생으로 데리고 들어갈 때까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인내함으로 기다리라. 아래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내가 충고하겠는데, 마음에 의심하는 자들은 특별히 사랑으로 대하라. 그릇된 길로 빠지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을 불속에서 구하여 내라. 철저히 더러움에 사는 자기 있는데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만 자신이 그들에게 더럽힘을 당히지 않게 지켜라. 그들의 더러운 속옷까지에도 물들지 말라. 너희를 넘어지지 않게 하고, 너희들을 아무 흠이 없게 하고,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셨느니라. 모든 영광과 모든 위엄과 모든 권력과 모든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매우 확실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느니라”.
‘아멘’이 바로 매우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너무 많은 전도인들이 아멘을 하나의 물음표로 사용하기를 좋아합니다. 아멘이십니까? 허허! 이러면 안됩니다. ‘아멘’은 매우 확실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뜻입니다.
좋아요. 이제 우리 ‘유다서’를 보겠는데, 이것은 신약에서 가장 등하시당하는 책이지요. 아마도 아주 짧기 때문인데, 많은 사람들이 작은 물건을 업신여기지요. 또 다른 한 면은 아마도 많은 기이한 일들을 논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했는데,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어찌된 일인지 우리가 자세히 보겠습니다. 그리고 고라 자손인데, 그들은 무슨 잘못을 했을까요? 그리고 천사장은 왜서 갇혔는지? 왜서일까요? 이 서신이 등한시당하는 또 한가지 원인이 어휘 사용이 엄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엄한 편지 보기를 좋아하지 않고, 사람들은 격려하는 편지 보기를 비교적 좋아하지요. 이 책은 마치 그리스도의 몸에서 암세포를 베어내는 날이 선 수술칼 같아요.
교회마다 모두 위험이 있는데, 외부 위험에 대면하는데, 즉 외부에서 오는 핍박이지요. 이것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러면 크리스찬들이 더욱 단결하고, 더욱 강해지고, 교회가 오히려 더욱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내부의 위험이야말로 무서운 것이지요. 율법주의, 방종주의, 어떤 크리스찬은 속이 좁고, 어떤 크리스찬은 오는 사람을 거절하지 않는데, 이 모든 것은 교회 내부의 위험이고, 그리스도의 몸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율법주의는 당신이 범죄할 자유가 없고, 우리가 당신이 범죄하지 않다록 방법을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방종주의는 당신이 이미 주를 믿었기 때문에 범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자유주의는 당신이 죄를 짓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차이가 여기에 있는데, 제가 다시 한번 얘기하겠습니다. 율법주의는 당신이 범죄할 자유가 없고, 적어도 우리 교회에서는 안된다. 우리에게는 규정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방종주의는 당신이 이미 주를 믿었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된다. 천국에 들어갈 티켓이 있느니라. 범죄하면 아마도 당신에게 돌아갈 상이나 혹은 축복이 적어질 것이라. 하지만 당신은 어떻게든 천국은 들어가니라. 그래서 당신은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주의는 당신이 성령안에서 죄를 짓지 않을 자유가 있는데, 크리스찬에게만 이런 자유가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많은 크리스찬들은 아직 이 자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죄를 짓지 않을 자유가 있습니다. 아주 멋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런 자유가 없습니다.
여러분, 사실 ‘유다서’의 저자는 예수의 넷째 동생인데, 재미있는 것은 예수의 동생이 예수님이 세상에 있을 때 그를 믿지 않았고, 오히려 말로 그를 풍자했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초막절이 되면 메시야가 올 것인데, 당신이 좀 모습을 나타내 보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대답하기를 ‘나의 때가 아직 되지 않았느니라’고만 했습니다. 후에 그가 몰래 갔지만 그의 형제들이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이 한동안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에서 그의 모친과 형제 자매들이 그를 집으로 데려 가서 그를 집문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가 미쳤다고 하고, 정신 분열 현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며, 그는 단지 목수인데 자신이 하나님인 줄 생각한다고 하고, 그의 머리에 문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둘러싸서 가족들이 그를 접근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에게 전하기를 ‘당신의 모친과 형제 자매들이 밖에서 기다리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대답하기를 ‘누가 나의 어머니요? 누가 나의 형제요? 누가 나의 자매요?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예수가 진짜로 미쳤어. 자기 가족도 못 알아본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부활 후 상황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그의 형제 모두 나와서 예수를 전했습니다.
야고보와 유다가 각각 선신 한권씩 기록하여 신약성경에 넣었는데, 두 사람은 자신들이 예수님의 동생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예수님의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아주 신기하지요. 예수님의 친동생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다가 서신에서 말이 빗나갔는데, 그가 자신을 야고보의 형제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가 누구인지 아시지요. 그래서 그가 말이 빗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늘날까지도 예수님의 종이고, 뿐만 아니라 그가 복음에 대한 진리가 열렬하며, 그의 마음에는 진리가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내가 본래는 너희들과 다른 내용인 예수안에서 누리는 구원을 논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소식을 듣고 이 편지를 쓰기로 마음을 바꾸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내가 권하노니 전에 성도에게 주신 진리를 전력을 다하여 지켜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의 ‘전력을 다하여’에는 아주 고통스럽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가장 고통스러운 몸부림인데, 반드시 전력을 다하여 성도에게 한번 주신 진리를 지켜야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진리를 지켜야 합니다. 매우 고통스러운 것은 몸부림쳐야 할 대상이 왕왕 주 안에서의 형제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가족과의 몸부림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지요. 이것이 그가 이 편지를 기록한 목적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누군가가 몰래 너희 교회에 잠입했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사용한 동사는 슬금슬금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뒷문으로 몰래 너희 교회에 잠입했다고 말하였습니다. 교회를 해칠 뿐만 아니라, 그는 무슨 일이라고 명백하게 지적하지는 않았고, 단지 그들더러 잘 처리해라고 분부했습니다.
암세포가 아주 명백하게 확산되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여기에서 몇가지를 언급했는데, 이로써 그 교회의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신앙이 뒤틀어진 것을 나타냈는데, 이것은 모든 부패의 시작이며, 부패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유다는 총 두가지를 언급했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주 연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예수님은 많은 신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아주 연약하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핑계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어차피 하나님은 개의치 않고, 그는 아주 좋으신 분입니다. 그는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용서한다. 이 일을 잊으라. 나는 네가 기쁘고 즐겁기만 하면 된다’라고 합니다. 이는 참으로 웃긴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티비에서 전도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아주 연약하여 파리 한마리까지도 상하게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일방적인 희망인데, 근본상 성경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하박국의 기도야말로 성경이 하나님에 대한 견해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죄악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명확히 다루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그는 죄를 반드시 대처합니다. 우리는 응당 성경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에 대해 정확한 견해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첫번째 잘못된 점입니다. 그 교회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죄를 그다지 심각하게 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무엇이든지 모두 말씀하시기를 ‘괜찮아, 내가 너를 용서할게’라고 생각합니다. 이로써 많은 사람들이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였습니다. 제가 독일계 유대인 시인 하이나가 생각나는데, 그는 후에 파리에 거주하였고, 그가 파리에서 방랑형해 하였고, 한창 나이에 돌아갔습니다. 임종 전에 신부가 와서 그의 고해를 들었는데, 하지만 그는 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고, 신부가 왜서 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하나님은 나를 반드시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는 본래 모든 사람을 용서하실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일방적인 희망의 견해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소홀히 보는 것이지요. 이것이 첫번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방면은 예수님을 많은 신들 중의 하나로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더는 유일하신 주로 믿지 않는 것이지요. 일단 예수님을 마호메트와 부처처럼 보면 그가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유일하신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가 더는 유일한 길이 아니고, 단지 갈 수 있는 길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는 유일하신 진리와 생명이 아니고, 단지 많은 진리와 많은 생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매체로 통해 수없이 들었고, 심지어 당신의 이웃까지도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으로 가는 길이 아주 많다고 합니다. 이런 다신론적인 생각이 사람 마음에 점차적으로 들어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으로 올 때 통과하는 길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그가 더는 유일한 경로가 아닙니다. 이것은 아주 큰 잘못입니다. 신앙이 일단 뒤틀어지면 행위가 바로 문제가 생깁니다. 결국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행동을 주도할 것입니다. 유다가 여기에서 심각한 경고를 했는데, 이를 크리스찬들에게 하신 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가 말하기를 ‘너희들은 거역한 유대인과 거역한 천사들의 끝장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아라. 소돔과 고모라가 어떤 형벌을 받았느냐? 하나님 자녀도 심판을 면치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크리스찬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데, 누구 그렇게 말하였습니까?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래의 이 세 가지 일은 매우 창피스러운데, 우리 함께 보겠습니다. 첫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들이 금송아지, 방랑형해, 음란 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일단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었고, 서로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었습니다. 더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더는 서로 사랑하지 않고, 서로 박대했습니다. 만약 프랑크푸르트의 유럽 증권 거래소에 가시면 밖에 거대한 금송아지 조각상을 볼 수 있는데, 그 조각상이 유럽 금융중심에 세워져 있으며, 배금주의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돈을 경배했고, 결국 한 사람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구함 받았지만 가나안은 들어가지 못했고, 그들은 시작이 있고 끝이 없었으며, 진정으로 구원 받지 못한셈이지요. 신약성경에서 세명의 저자가 이 사건으로 크리스찬들에게 경고했습니다. 마지막까지 견디고, 시작과 끝이 있어야 구원 받은 것인데, 이 예를 언급한 것은 사도 바울을 포함한 ‘히브리서’와 그리고 ‘유다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시 어린양의 피로 구속 받고 애굽을 탈출했는데, 결국에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당신도 이런 끝장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외에 다른 어떤 뜻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놓았는지를 볼 뿐아니라 당신이 앞의 무엇을 좇고 있는지도 봅니다. 노력해서 좇아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광야에서 쓰러질 것입니다. 광야에 떠돌아 다니는 것은 아주 비참한 것이며, 만나만 먹게 됩니다. ‘만나’는 ‘이것이 무엇입니까?’라는 뜻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히브리어입니다. ‘오늘 아침은 무엇을 먹을까요?’, ‘이것은 무엇이에요?’,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요?’, ‘이것은 무엇이에요?’, ‘네? 또 이것은 무엇이에요를 먹어요’, 그들은 ‘이것은 무엇이에요’로 40년동안 배불리 먹었습니다. 많은 크리스찬들이 이렇듯이, 우리는 이미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지만 약속의 땅에는 아직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목표를 향해 노력해 나아가지도 않아서 결국에는 광야에서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헤르몬 산의 천사가 어떤 결말이었습니까? 여러분, 구약성경에서 일부분을 폭로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두 성경 사이의 ‘에녹서’에서 알았는데, 거기에서 더러운 일을 면담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른이어서 들어볼 수 있습니다. 이 경에서 말하기를 헤르몬 산 지역에서 200명되는 천사들이 여자를 유혹하여 그들이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천사와 인간이 교합하는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로써 무서운 혼종 후손이 태어났으며, 당행이도 오늘날에 한 사람도 살아남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르바 족속이라 불렀는데, 어떤 번역본에서는 거인으로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어떤 모습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에게는 질서와 규율이 있고, 천사와 인간이 교합하는 이런 행위는 바로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며, 마치 인간과 짐승이 교합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서 동성 교합하는 행위에도 명백하게 꾸짖었으며,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질서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는 것에 미워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천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위반했고, 이로써 결국에는 박수를 인류에 들였고, 폭력도 인류에 들였습니다. 창세기 6장에서 말하기를 결국에는 땅에 폭행이 가득하였다고 말하였으며, 변태적인 행위, 박수와 폭행이 가득했는데, 들어보니 아주 익숙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그가 가져온 후과이며, 박수의 기원이 바로 이 천사와 인간의 교합하는 사건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당행히도 그 천사가 오늘날에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장 깊은 옥에 이미 집어 넣고, 심판의 날까지 쇠사슬로 묶어 놓았으며, 그들은 더는 이런 악행을 할 기회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 홍수가 오게 된 원인인데, 하나님이 더는 참을 수가 없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에서 가장 슬픈 구절은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것에 후회한다는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부모가 말하기를 ‘애당초 이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 하는데’라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것에 후회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천사들도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크리스찬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잖아요.
그는 매우 슬픈 예를 하나 들었는데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총 네개의 도시로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실 것입니다.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는 알고 있는데, 하지만 사실 아드마와 스보임도 있고, 사해 남쪽 끝에 총 네개 도시가 있었습니다. 모래속에 역청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대지진이 오니 불이 타 올라서 이 몇 개의 도시를 깨끗하게 태워 사해의 남쪽 끝에 매장하였습니다. 사해는 아라비아 숫자 8을 닮았고, 두 부분으로 나누었으며, 사해 남쪽은 현재 이미 점점 마르고 있고, 소돔과 고모라가 아마도 얼마되지 않으면 다시 떠오를 것인데 이것은 얼마나 강렬한 상징이 되겟습니까. 어떤 사람은 노아 방주를 발견했다고 하는데, 하지만 사람들이 반신반의합니다. 만약 소돔과 고모라가 오래지 않아 다시 나타난다면 얼마나 충격을 받을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여러분이 모르는 일 한가지가 있는데, 예수님 탄생 2000년 전, 소돔과 고모라를 불태워 버린 그 불이 예수님 시대까지 계속 타고 있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이 이 불을 논할 때,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와 도보로 20분만 가면 볼 수 있었습니다. ‘유다서’에서 이을 영원한 불이라고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하나님께 반역했고,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했고, 그들 남녀 관계가 부패했으며, 어디에서나 동성애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인본주의자들’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자들은 성차별죄를 범한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유다서’에서 이런 사람들이 우리를 갈림길로 가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이 그들과 가면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을줄로 생각하는데, 후과가 정말로 아주 심각합니다.
신앙이 비틀어지면 행위가 부패해지고, 행위가 부패해지면 성품이 부패해집니다. 행위가 한 사람의 성품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행위가 습관을 양성하고, 습관이 성품을 만들어내고, 성품이 생명의 귀속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그가 이어서 성품을 논했고, 그리고 구약성경의 세 사람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가인은 질투했기 때문에 자기 동생을 죽였는데, 이 사람들이 우리를 가인처럼 되게 할 것이며, 그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줄 것이고, 우리더러 질투도 생기게 합니다. 다음은 발람인데, 발람은 선지자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돈을 내어 그더러 거짓 예언을 하라고 하니, 발람이 돈만 보면 눈이 뜨였는데, 이러므로 하나님이 나귀더러 그를 못가게 말렸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그의 옆에 있는 어떤 것으로도 입을 열게 하여 말을 하게 합니다. 하지만 하필 발람이 재물에 눈이 어두워졌는데, 마치 가인처럼 분노가 머리 위로 솟구쳤습니다. 그럼 고라는요? 고라는 야심찬 사람이었고, 그는 모세를 질투하여 혼자 잘난체하고 싶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새로운 교회들이 설립되는데 이는 본래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하필 어떤 교회는 좋지 않는 동기로 설립합니다. 교회 설립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야심이 있는데, 이런 사람이 바로 고라 자손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게 순종하려고 하지 않고, 그래서 나와서 자신이 교회를 개척합니다. 교회가 만약 이 문제에 대면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반드시 이 성품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가인이고, 발람과 고라의 성품이며, 분노, 탐욕과 야심의 성품입니다.
일단 성품이 부패해지면 이어서 언어가 부패해지는데, 이는 어떤 사람이면 어떤 말을 하고, 사람이 마음에 가득찬 것을 입으로 내 뱉기 때문입니다. 몰래 교회에 들어온 위험한 사람들은 항상 어떤 말을 할까요? 바로 원망과 비평하는 말을 하고, 그들은 무엇을 보아도 모두 눈에 거슬려합니다. 자신의 원래 교회에 불만하여 당신의 교회에 오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이 사람들은 6개월이 못 되어서 당신의 교회에 불만해 합니다. 원망과 불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매일 완벽한 교회를 찾아 다닙니다. 만약 여러분이 완벽한 교회를 찾았다면 절대로 가입하지 마세요. 당신에 의해 파괴되지 않도록 하세요. 어떤 크리스찬은 마트를 다니는 것처럼 매일 완벽한 교회를 찾아 다니는데, 이런 사람들은 교회를 파괴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렇지요? 원망과 비평하기도 가장 좋아합니다. 그리고 또 더욱 심각한 한가지가 있는데, 이런 말은 바로 스스로 자랑하고, 아첨하는 말입니다. 스스로 치켜세우고, 자신을 아주 위대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욱 나아가 다른 사람을 치켜세우는데, 스스로를 치켜세우는 것과 아첨하는 것은 항상 분리할 수 없습니다. 아첨하는 것은 아주 엉망인 행위이며, 격려와 감사는 아주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첨은 과장하는 것이고, 아첨은 이기적인 동기를 위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더러 더욱 자신을 가지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한 사업가의 부고에 이렇게 쓰였습니다. 이 인생 전에는 상부에 맞장구를 쳤고, 아래에는 얕보고 압착했으며, 그래서 벼락출세를 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스스로 치켜세우는 것과 아첨은 분리할 수 없고, 원망과 비평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교회의 부패가 바로 이러했습니다. 신념, 행위, 성품, 언어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설명하니 이젠 똑똑히 알 수 있겠지요. 혹시 여러분이 기억하실건데, 여러분이 전에 이런 상황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타당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아니면 상황은 더욱 엉망으로 변합니다.
그럼 어떻게 처리할까요? 첫째는 교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의외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의외적이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구약 선지자들은 우리가 이렇게 된다고 일찍이 경고했으며, 신약 사도들도 우리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교회에 문제가 생긴 것을 보고 왜서 그렇게 놀라십니까? 우리 모두는 아직 완전하게 구원 받지 못했고, 그래서 교회에는 반드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처리하는 태도가 아주 중요한데,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놀라지 마시고, 교회에는 반드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아직 하나님의 뜻대로 완전하게 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약 선지자 에녹, 저는 아주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에녹은 성경에서 첫번째 선지자이고, 첫번째로 하나님 대신 말을 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이 한 세대 전체를 심판한다고 모두에게 경고했습니다. 여러분, ‘불경건’이라는 단어가 ‘유다서’에서 다섯번이나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불경건하는 사람 모두를 심판하고, 그들 입에서 나오는 모든 불경건한 말을 심판하고, 그리고 그들의 불경건한 모든 일을 심판한다고 하였습니다. 유다는 불경건, 불경건이라는 이 단어를 거듭 중복하였습니다. 불경건한 사람들이 그들의 교회에 몰래 들어와서 경건한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의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불경건입니다.
첫 부분에서 제가 한 가지 사건을 빼놓았는데, 조금 후에 다시 보충 강의 하겠습니다.
그리고 에녹은 첫번째로 심판의 메시지를 전달한 선지자이기도 합니다. 그가 65세 때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그가 하나님께 어떤 이름을 지어주려는지를 물으니 하나님이 그에게 아주 특별한 이름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에게 그가 죽으면 발생하리라는 이름을 지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학교에 가서 선생님이 이름이 무엇이라는 상상을 해 보십시오. 그가 ‘그가 죽으면 발생하리라’고 할 것입니다. ‘죽으면 발생하리라’고 했는데, 너 혹시 공부를 하지 않았냐? 이 이름이 평생 이 불쌍한 남자아이와 함께 합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므두셀라, 므두셀라입니다. 그래서 그가 다른 사람보다 장수했는데, 이는 하나님이 매우 인내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오래 기다렸다가 심판을 했습니다. 므두셀라가 세상을 떠나는 그 날에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그 때 므두셀라의 손자 노아는 방주를 이미 만들었습니다. 아주 재미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969년 기다렸다가 그 시대를 심판했는데, 하나님이 매우 인내심이 있지 않습니까? 마틴 루터가 전에 말하기를 ‘만약 내가 하나님이라면 이 세상을 제대로 심판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당행히 그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아니면 일찍이 심판이 임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한한 인내심이 있지만 심판은 반드시 임할 것입니다.
신약성경 사도가 우리에게 경고하기를 말세에는 반드시 비웃는 자들이 있을 것이고, 경건한 자들은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오늘날이 바로 이렇습니다. 얼마나 많은 코미딕 티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비웃고 있습니까. 그들은 경건한 자들의 신앙을 비웃고, 경건은 이미 우스갯소리로 변했습니다. 우리는 경건한 자가 되고 싶기 때문에 웃음거리가 되었고, 현재는 ‘불경건’이 유행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대면해야 할 것이고, 우리는 이에 의외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제대로 대면해야 합니다.
우선 우리는 반드시 말씀을 지켜야 하고, 믿음, 소망 사랑안에서 자신을 세워야 하는데, 이것이 첫번째 임무입니다. 다음은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하는데, 세가지 사람은 도와줄 필요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자인데, 즉 진리의 가르침을 들어야할지를 모르는 자입니다. 우리는 이런 마음으로 의혹하는 자들을 반드시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두번째는 잘못 가르침을 받아 생명의 위험이 있는 자입니다. 여기에서 그들을 불에서 건져주고, 마치 집에 화재가 나서 힘껏 그들을 구해주는 것처럼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음부의 불에서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 복음 전파와 완전히 무관합니다. 맞습니다. 그들을 음부의 불에서 나오게 해야 하는데, 하지만 그들이 구원 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니고 그들은 크리스찬이기 때문이며, 그러나 잘못된 길로 이끌려갔습니다. 세번째는 이미 오염되었으며, 헬라 원어 성경에서 이런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방비해라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들에게 속옷을 더렵히게 오염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런 단어를 사용한 것이 아주 신기하지 않습니까? 어떤 질병은 변태적 성행위로 통해 나타났으며, 그리고 불정상적인 잡교로 전염되었는데, 우리는 이런 일에 대해 적당한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여전히 관심해야 하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그들도 위해 생명을 받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놀랄 필요 없는데, 하지만 타당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중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당신더러 넘어지지 않게 지켜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많은 사람이 ‘지키다’라는 이 단어를 인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더러 넘어지지 않게 지켜주신다는 것을 매우 강조하는데,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의 지키심을 계속 강조하면 주의하지 않게 되고, 성경에서 매번 하나님이 우리를 지킨다는 것을 언급할 때 부근에 우리가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구절도 언급했습니다. ‘유다서’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기 전에 자신을 하나님 사랑안에 항상 있게 지켜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더러 넘어지지 않게 지켜주신다고 하지 않고, ‘능히’ 너희를 지키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 안에 항상 있을 수 있게 지켜야 하는데, 이는 그가 능히 우리를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디모데후서’에서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충분한 믿음이 있지만 그는 또 말하기를 ‘내가 이미 믿음을 지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보호에는 두가지 방면이 있고, 하나님이 능히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더러 하나님 안에 있도록 지켜야 하는데, 이 두 방면을 평행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한면만 강조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평행을 잃을 수 있습니다. 모두 우리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아니며, 자신더러 그의 안에 있도록 지켜야 합니다. 그가 우리를 능히 지키기 때문이며, 계속해서 그를 믿고 의지하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영광과 찬송을 우리더러 넘어지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제 우리 제가 앞에서 강의하지 못한 부분으로 가 보겠습니다. 처사가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신명기’ 마지막 한 마디가 매우 심상치 않습니다. ‘신명기’ 여기에서 말하기를 ‘모세가 느보 산에서 죽었으며, 오늘날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자신이 자기를 매장했을까요? 여러분, 여러분이 이 구절의 뜻을 이해하십니까? 그는 홀로 떠났고, 죽을 때 고독하게 혼자였으며,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습니다. 그럼 누가 그를 매장하였을까요? 이 문제의 답은 하나님이 천사장 미가엘을 보내 모세를 매장하였습니다. 천사는 실제를 중시하는데, 여러분 아십니까? 그들은 밥을 잘 짓습니다. 엘리야가 천사들이 밥을 잘 짓는 것을 보았고, 천사들이 마차를 타고, 자전거도 탈 줄 압니다. 제가 들었는데 어떤 천사가 아프가니스탕에서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선교사 한명을 보호하였다고 합니다. 천사는 실제적입니다. 당신의 집에 혹은 차에 아마 천사가 있을 것인데 하지만 당신이 모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천사가 아브라함을 찾아 왔을 때 그는 네 명만 보았습니다. 천사가 나타날 때는 눈부시는 흰 옷을 입고, 날개를 펼치고, 손에 하프를 들고, 금발머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어린이 주일학교의 그림입니다. ‘히브리서’ 13장에서 어떤 사람이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했다고 하는데, 이는 천사의 외모가 일반 사람과 다를바 없기 때문입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명령을 받자 부삽을 가지고 가서 모세를 매장하였습니다. 거기로 가서 보니 마귀가 모세의 시체 옆에 서서 말하기를 ‘당신은 이 시체를 다치지 마세요. 이것은 제 것입니다. 그가 사람을 죽여서 그는 제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두 사이에 충돌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어떤 크리스찬들은 알아야 하는데, 미가엘이 사탄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대담하게 사탄을 책망하는 방법은 제가 보기에 너무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우리보다 훨씬 총명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매번 젊은이들이 ‘사탄아, 내가 너를 책망한다’라는 것을 들으면 매우 걱정됩니다. 미가엘이 사탄에게 ‘주께서 반드시 너를 책망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마귀가 바로 떠났고,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를 매장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단락의 뜻입니다. 좋은 천사가 있고, 나쁜 천사도 있는데, 미가엘은 좋은 천사였습니다.
당시 이 교회에는 많은 잘못된 가르침이 가득했고, 많은 사람들이 곤혹스러워 했습니다. 본래 유다는 구원을 논하고 싶었으며, 그들에게 조금 격려하려고 이런 내용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에는 암세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 요한과 유다의 서신을 읽고 난 후, 여러분은 한가지 도리를 아셨을 것인데, 바로 교회의 제일 큰 위험은 교회 내부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항상 깨어있어야 하고, 사랑과 진리로 성도에게 맡겨진 복음을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우리가 이 방면에서 싸우면 싸울수록 더욱 위험해집니다. 이 비디오 테치프의 메시지가 여러분이 진리를 지키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하는 강의 모두가 맞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교종이 아니고, 저도 틀릴 수 있습니다. 저는 단지 성경 해석할 뿐입니다. 성경은 조금도 착오가 없지만 사람은 틀리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간 한 강의에 만약 성경의 근거가 없다면, 여러분이 들으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한 강의가 성경의 인치심이라면 바로 잡으세요. 성도에게 주신 진리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이 짧디 짧은 ‘유다서’가 여러분이 진리를 지키도록 격려할 수 있으며, 크리스찬들의 처지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몰래 들어와서 잘못된 생각, 언행과 품행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는 매우 깨워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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