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David Pawson's Unlocking the Bible

4 누가복음 / 교정 및 자막 예정

LNCK 2018. 12. 27. 20:51

누가복음

 

여러분, 제가 문장 한 단락을 읽을 테니 여러분들이 이 말씀이 어디에 말씀인지, 도대체 구약인지 신약인지 아니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인지 투표해 보세요. 이 중의 하나라고 제가 보장합니다. 제가 읽으면 여러분들이 바로 표결해 주세요.

이 말씀은 이렇습니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으로부터 나온 것입니까 신약으로부터 나온 것입니까 아니면 셰익스피어로부터 나온 말씀입니까? 지금 표결하겠습니다. 구약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몇 명입니까? 신약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몇 명입니까? 좋아요. 셰익스피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몇 명입니까? 아주 좋습니다. 대부분 맞습니다.

이는 누가복음에서 나온 것인데, 즉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는 도중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가 예루살렘 여자들더러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자신을 위해 울어라고 하였습니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목수로 말하자면 푸른 나무는 베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나는 무고한데, 그들은 그래도 나를 죽인다는 뜻입니다. 만약 어느날엔가 당신이 로마를 배반한다면 그들이 당신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가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가장 사랑 받고, 또한 가장 지명도가 없는 하나의 복음서인데, 여러분은 아마도 놀라게 느끼실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유일하게 있는 구절은 여러분 모두가 매우 익숙하시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 구절들은 보편적으로 소홀히 되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마태, 마가 혹은 요한복음에 있는 것을 누가복음에서 읽지 않습니다. 제가 몇 구절을 썼는데, 이것은 그 중의 한 구절입니다. ‘나의 집안을 가득 채우라인데, 저는 여러분들이 이 구절의 출처에 대해 몇 사람이 알고 있는지에 의심이 갑니다. 이는 누가복음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또 한 구절인데, 이 구절은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입니다. 전에 이 말씀을 들어 보신 분이 계십니까? 그리고 또 한 구절인데,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입니다. 제가 계속해서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어떤 구절들은 여러분들이 귀에 익으면 확실히 똑똑히 알 수 있습니다. 방탕한 자가 돌아온 것, 좋은 사마리아 사람 같은 것들인데, 이는 여러분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난쟁이 삭개오가 온갖 방법으로 나무에 기어올라가서 예수님을 본 이야기, 마대와 마리아,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죄인, 엠마오로는 가는 길에서의 이야기들은 여러분들이 잘 아실 것입니다. 여기에 사진 두 장이 있는데, 이것은 엠마오로이고, 엠마오로 대로에 한쌍의 부부가 있으며, 이는 크로파와 그의 아내입니다. 첫 번째 부활절에 거리에서 거니는 모습입니다. 하는 김에 한 마디 언급하겠는데, 크로파는 예수님의 삼촌이고, 요셉의 형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친척이었고, 친하지 않은 제자였습니다. 사건은 바로 엠마오로에서 발생했는데, 어떤 사람은 엠마오로 가는 길의 이야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확실히 감동적입니다. 여러분 모두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인데, 이 방은 바로 이야기 속의 객점이며,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중간 광야에 위치했고, 거기에는 하나의 객점만 있는데, 무슨 원인일까요? 왜냐하면 거기에만 수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객점을 자연히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지점은 어느 곳이었습니까?

여러분 모두는 좋은 사마리아인과 엠마오로 가는 길의 이야기를 매우 익숙한데, 하지만 제가 여러분들을 여러분들이 모르시는 누가복음으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에서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이라는 것을 읽었습니다. 제가 많은 전도인들이 여기에서의 소금을 논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들이 이를 방부제라하고, 조미료라고 하는데, 전부 주방에서 사용하는 소금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만약 누가복음을 읽으면 발견하게 되는데, 예수님의 뜻은 주방에서 사용하는 소금의 뜻이 아닙니다. 누가가 언급한 소금은 밭에서 사용되는 비료를 말하고, 변기통에 사용되는 소독수를 말하고, 똥더미에 사용되는 것입니다. 제가 알려드리겠는데, 이런 사해에서 파내어 올린 소금에는 탄산칼륨이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고, 칼륨 소금은 비료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며, 또한 소독제로도 적합합니다. 소히 말하는 세상의 소금인데, 그 뜻은 방부제와 조미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사회의 살균제와 비료를 만들며, 좋은 일을 만드고 나쁜 일을 억제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더욱 의미가 있는 해석입니다. 사람들은 마태복음에서부터 단장취의 해서 자체적으로 식용 소금의 의미를 부여했으며, 여기의 소금이 식물로 변하였습니다. ‘누가복음에서 누가가 우리에게 정확한 뜻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 계속해서 아래를 보겠는데, 우리 지금 다시 누가복음전체를 보겠습니다. 우리가 저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그의 다른 작품인 사도행전을 읽을 때 그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겠습니다. 우리는 그가 이방인이고, 이방인 의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이방인 저자입니다. 다른 39명 성경 저자 모두 유대인인데, 누가는 유일한 이방인이었습니다. 누가는 안디옥에서 태어났는데, 조금 후에 여러분에게 그 곳의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거기는 시리아의 큰 성이며, 지금까지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도들이 여기에서 가장 먼저 크리스찬이라 불리웠고, 크리스찬은 성도의 자칭이 아니었고, 다른 사람이 그들에 대한 칭호였습니다. 누가는 이라는 단어를 조금도 꺼리지 않게 사용했고, 그는 유대 저자들과 태도가 달랐습니다. 마태는 이라는 단어 사용하기를 싫어했는데, 왜냐하면 그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천국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가는 오히려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 나라를 언급했고, 유대인들은 이라는 단어 언급하기를 무서워 했지만 이방인들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누가가 의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는 연구하고 기록하는데 습관이 되어있는데 이것은 좋은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기록은 매우 확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누가복음에서 의학 용어를 대량 사용했고,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린 것 같은 것인데 이러한 의학 용어는 의사여야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사실 하나님이 매우 유모적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은 의사를 통해 우리에게 동정녀가 잉태한 사실을 알려주게 하였는데, 의사는 치유와 몸의 기적을 항상 강하게 의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의사를 택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것을 알려주도록 하였습니다. 이로써 누가는 선택되었고, 마리아 입에서 자세한 사정을 알아야 할 책임을 맡았는데, 마리아는 이 사건에 전혀 논하지 않았으며, 그는 모든 것을 마음에 숨겼습니다. 누가 의사는 병문안하는 친절한 태도로 그와 대화를 했고, 그에게 잉태하여 예수님을 낳은 과정을 물었습니다.

누가도 여행가였습니다. 그는 많은 곳을 다녔고, 뿐만 아니라 베드로와 함께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는 시야가 넓었고, 견문이 광범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만이 갈릴리 바다를 갈릴리 호수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그것은 호수일 뿐이었고, 13마일 길이고, 8마일 넓이일 뿐이었습니다. 어부에게는 갈릴리가 바다였는데, 하지만 누가는 그것이 호수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세계를 여행하는 자의 눈에 그것은 확실히 그러했습니다.

누가는 글 쓰는 기교가 매우 뛰어났고, 상당히 뛰어났습니다. 제가 예를 들어 그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뛰어나게 편찬했고, 어떻게 비유를 편찬했는지를 설명하겠습니다. 우리가 매번 누가복음’ 15장을 언급하게 되면, 절반 이상은 대부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탕자의 이야기를 논하는데, 그것은 사실 탕자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그 아버지가 재산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는 돈 낭비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아래로 두 장을 더 읽으면 관통하는 주축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누가가 성경에서 가독성이 가장 높은 성경을 어떻게 교묘히 제작하였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15장에 시작부터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과 함께 집안에서 식사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밖에서 의론이 분분한 것을 기록했는데, 이것이 바로 본장의 배경입니다. 다음 두 장도 이 배경아래서 예수님의 비유를 나타냈으며, 이로써 예수님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이야기한 첫 번째 이야기는 잃어버린 양의 비유인데, 양 한마리를 잃어버렸고, 양은 자신이 길 잃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어서 돈을 잃어버린 비유인데, 하지만 돈은 자신이 잃어버린다는 것을 모릅니다. 한 주인은 남자이고, 한 주인은 부녀인데, 두 사람 모두 물건을 떨어 뜨렸습니다. 예수님이 이어서 주요 이야기를 말했는데, 잃어버린 두 아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중점은 작은 아들이 아니고 큰 아들이었으며, 그가 작은 아들보다 방향을 더욱 잃었는데, 하지만 자신이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대조를 보셨습니까? 16장에 들어가게 되면 다른 두 개의 역할을 볼 수 있는데, 두 개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난해한 이야기인데, 예수님이 올지 않는 청지기가 된 것을 기록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납득이 안 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두 개가 확실히 같은 글씨를 사용하였습니다. 작은 아들이 먼 곳에서 재물을 낭비했으며, 청지기가 그 주인의 재물을 낭비했다는 것을 같은 단어를 사용했고, 같은 성격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큰 아들은 모두 잘 했고, 그는 아버지의 계명에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이 부자처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생각하였는데, 결국은 뜻밖에도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내버려 두고,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주축이 전후를 관통한 것을 볼 수 있고, 누가는 이 주제를 교묘하게도 함께 관통시켰습니다. 아쉬운 것은 장절로 성경을 짜르는 사람이 있는데, 이로써 독자들이 그의 연관성을 소홀히 하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점에서부터 시작하여 읽어서 선을 잃어버렸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아름다운 선이 있으며, 그는 뛰어난 저자인데, 이는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누가 풍격의 고전 작품을 감상하고 싶으면 사도행전마지막의 선박난의 서술을 읽어도 무방합니다. 어떠한 선박난의 서술도 그와 같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누가는 작가이며, 또한 복음 전하는 사람이며,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위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했습니다. 그 자신이 크리스찬이 된 후 이를 세상 모든 사람이 알기를 바랬는데, 하지만 그의 방식은 설교가 아니었고, 그는 설교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글을 쓸 줄 알았으며, 그는 글을 쓰는 은사를 사용하여 사람들더러 주를 믿도록 인도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는 누구 보라고 썼을까요? 일반 비크리스찬들에게 쓴 것이 아니고 한 사람에게 썼습니다.

누가는 이 연구를 하여 누가복음사도행전을 기록했는데, 모두 이 책에서 호칭했던 데오빌로 나리를 위해 썼습니다. 후에 사도행전강의에서 제가 여러분을 위해 다시 상세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저는 누가가 이런 연구를 하여 이 두 권의 서신을 기록한 것은 한 가지 사건, 즉 한 가지 목적이 있다고 믿습니다. 바로 바울을 로마의 심판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와 바울은 로마에 있었습니다. 물론 심판 때 변호사와 법관 모두는 범인이 피고가 된 원인을 알고 싶겠지요. 그래서 누가는 이 두 권의 서신을 기록하였는데, 한 권은 이 신앙을 세우신 예수님을 말했고, 한 권은 이 신앙을 전한 바울을 얘기했습니다. 우리가 이 중점을 일단 장악하면 이 두 권의 책 모두가 사리에 맞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 두 권의 책,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무죄라는 것을 세 번이나 성명하였고, ‘사도행전에서도 바울이 무죄라는 것을 세 번이나 성명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본디오 빌라도도 전에 예수님이 무죄라고 세 번이나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도행전이라는 이 책 마지막에 로마 법관이 바울이 무죄라고 세 번이나 말했습니다. 그 외 이 두 권의 책에서 예수님과 바울 모두는 로마 정부에 거역하지 않았는데, 이 점은 로마 병사들이 가장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이 두 권의 서신 모두는 기독 신앙의 창시자인 예수님이든 혹은 옥중에서 재판을 받은 바울이든 모두 로마 율법에 거역하지 않았는데, 유대인들이 오히려 헛소문을 퍼뜨리고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이상은 바로 이 두 권 서신 배후의 인위적 요인입니다. 이 관점으로부터 읽고 해석하기만 하면 누가복음은 그 법관이나 변호사에 대해 말하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대인은 당시의 어떤 관직이었고, 그래서 그는 그를 데오빌로 대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누가복음은 바울을 위해 변호한 것인데, 우리는 누가가 성공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로써 석방되었으며, 그리고 복음 전하는 사역을 계속했고, 두 번째로 잡혀서 옥에 들어갔고, 마지막 단두대에 올려졌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바울과 예수님을 위해 기록한 극히 훌륭한 변호서이며, 상정 대상은 로마 법정입니다. 하지만 누가는 당시 자신이 기록한 것이 성경이라는 것을 몰랐고, 또한 이 책이 2000년 후에 전 세계에 퍼지리라고 몰랐습니다. 그는 순수히 옥중의 친구인 바울을 돕기 위해 기록했는데,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다른 계획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관된 작풍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다른 사람만 돕는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당신이 모르는 위대한 계획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변호사의 변호서입니다.

누가가 이런 자료를 어디에서 얻었을까요? 제가 여러분에게 답안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바울이 가이사에서 옥중 생활을 하던 2년 사이에 누가는 시간이 많았고, 그는 사방으로 다니면서 예수님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아마도 그 시기에 그가 마리아를 방문했을 것입니다. 흔적에 표시되기를 누가가 야고보를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어쩌면 마태도 방문했을 것이며, 요한도 반드시 방문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에서의 어떤 부분은 요한복음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 종의 귀를 베인 것 같은 것인데, 베드로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 종의 귀를 베인 것을 기억하십니까? 이런 것들은 요한으로부터 들은 것입니다. 누가는 제자가 아니고, 사도도 아니며, 그는 예수님을 본 적이 없었고, 목격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능한 한 모든 목격자를 자세히 찾아서 예수님의 사적을 이해하려고 시도했었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호송되기까지 가이사에서 2년을 기다렸고,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고, 또한 2년이라는 시간이 있었고, 누가더러 바울의 이야기를 쓰게 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전 뿐만 아닌 것은 아무런 사도도 여기에 거의 나타나지 않았으며, 바울이 나타나니 다른 사람들은 잊혀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바울과 그리스도 신앙의 연관을 얘기했고, 또한 그가 로마 제국을 다리면서 발생한 일들을 기록했는데, 이 모든 것은 목격한 증인들이 한 말입니다. 그는 누가복음처음부터 자기의 속셈을 말했고, 그는 가능한 한 사건의 진상을 찾아 간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필을 들어 기록하였지만 누가 자신은 깊이 조사하고, 목격자들의 증거를 수집하였는데, 그것이야말로 사법 재판에 필요한 증거였습니다. 중고 자료가 불충분하고, 반드시 목격자가 사건에 대해 증거해야 했습니다. 누가 자신은 바울이나 예수님의 사적을 목격하지 못했는데 그의 자료는 목격자들의 입에서 나온 것들이었습니다. 누가는 이 자료들을 신중하게 정리했는데, 이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독창적인 연구 성과였습니다.

지난번에 그 도표를 보겠는데, ‘누가복음이 오른쪽에 있고, 노란색은 그의 원시 자료를 대표하며, 여기 커다란 조각이 있는 것을 보십시오. 누가가 로마에서 마가를 만나서 마가복음자료를 대량적으로 채취하였습니다. 하지만 자신도 많은 직접적인 연구를 했는데, 특별히 예수님의 출생 기사를 했고, 그리고 누가에게 대량적인 예수님이 남행을 한 여정이 있었습니다. 마가는 한 장으로만 이 여정을 기록했는데, 누가는 오히려 많이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때 탕자의 이야기를 했고, 또한 마지막 부활과 죽임 당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누가가 많은 유일무이한 자료들을 애써서 찾아 증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어디가 유일무이하게 다른 복음서에 없는 것일까요? 첫째는 예수님의 탄생인데, 완전히 마리아의 각도에서 온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의 예수님 탄생은 완전히 요셉의 각도에서 온 것이며, 완전히 남자의 각도에서 이 사건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잉태하여 출산하는 세부 사항을 볼 수 없습니다. 마태는 요셉으로부터 예수님 탄생한 이야기를 얻었다는 것이 나타났는데, 하지만 누가는 마리아로부터 얻었습니다. 이로써 두 복음서의 족보가 다른 원인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에서의 다른 것을 주의했습니까? ‘마태복음은 요셉의 아버지로부터 다윗 왕까지 거슬러 올라갔고, ‘누가복음은 오히려 마리아의 아버지로부터 다윗 왕까지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의 양부모 모두 다윗 자손이라는 것을 볼 수 있고, 아버지로 말하자면 예수님은 다윗의 합법적 자손이며, 어머니로 말하자면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입니다. ‘누가복음에서의 예수님 탄생은 여성의 각도에서 쓴 것이고, 엘리사벳과 마리아 두 사람의 각도에서 쓴 것입니다. 누가는 그들에게서 이 이야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서만 예수님의 어린시절을 언급했고, 오직 그만이 방법을 강구하여 예수님의 30세 이전의 삶을 발굴하였습니다. 상당히 경이롭지 않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목수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12세 때 성인 의식을 거행했는데, 여러분이 유대인 성인 의식에 참석해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성인 의식은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대표입니다. 유대 남자 아이들은 12세가 되면 선을 행할 능력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남자 아이들이 12세 전에 잘못을 하면 부모들이 벌을 줍니다. 우리 사회가 만약 이렇다면 반드시 많이 개선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12세가 되면 남자아이들은 자아 속박할 능력이 있게 되고, 성인이 된 것입니다. 이로써 그는 회당에 가게 되어 모세 율법 몇 구절을 읽고, 그리고 정식으로 성인이 됩니다. 유치한 것에서 벗어나고, 또한 유치한 장난감에서 벗어나고, 그 부친의 사업이나 혹은 다른 방면에서 유능한 파트너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 문화에는 남자아이를 남자가 되게 하는 성인 의식이 부족합니다. 아닙니까? 그래서 남자아이들은 영원히 성장하지 못합니다. 남자아이와 남자의 유일한 차이는 장난감의 가치일 뿐이며, 우리가 공개적 의식으로 이 남자아이는 이미 성장하여 성인이 되었느니라고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12세 때 요셉과 마리아가 그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먼길을 떠날 때 여자들이 하루 먼저 떠나 15리쯤 가서 장막을 치고 음식을 만들어 남자들이 도달하기를 기다렸습니다. 매우 좋은 준비이지요. 여성주의 자들이 만약 들으면 틀림없이 잡으려고 할 것입니다. 어째됐든 12세 미만 아이들은 어머니와 함께 가는데, 그러면 12세 이상 아이들은요? 12세 이상 아이들은 아버지와 갑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날 때 여자들이 먼저 여리고 성에 와서 장막을 치고 음식을 만들어 남자를 기다렸습니다. 이때 마리아가 요셉에게 말하기를 예수는요?’라고 하니 요셉이 나는 그가 당신과 함께 있는줄로 알았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는 이미 12세가 되었고, 응당 당신과 함께 있어야 해요라고 하니 그는 내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관리해야 해요라고 했습니다. 부부는 바로 이렇게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두 사람 모두는 예수가 서로와 함께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결국 되돌아 가서 오랫동안 찾았는데, 한 곳에서 그를 찾았는데, 바로 유대 회당에서였습니다. 여기에서 일어난 대화가 매우 멋졌습니다. 조급하고 화가 난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에게 말하기를 너 어디 갔었어? 너의 아버지와 내가 아무리 찾아도 네가 보이지 않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너의 아버지와 내가 아무리 찾아도 네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님이 대답하기를 나는 이미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서 나를 찾지 못하는 것은 응당인줄 알지 못합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이미 아버지의 파트너가 되었고, 이미 어른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가장 기묘한 것은 예수님이 그래도 나사렛으로 돌아갔고, 부모님에게 순종했습니다. 설령 그가 당시 12세밖에 되지 않았는데, 우리가 이로써 예수님이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마리아가 그에게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는 네 아버지와 내가 너 찾으로 왔노라고만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요셉을 계속 아버지로 여기셨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예수님은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누가는 아마도 마리아에게서 이 기묘한 이야기를 얻었을 것입니다.

이어서 우리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누가가 다른 곳에 없는 자료를 언급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가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후 물에서 올라오면서 기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은 후 물에서 올라오면서 기도했는데, 바로 그의 이 기도로 인해 성령이 그에게 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매우 재미있는데, 왜냐하면 누가가 다른 성경 저자보다 성령의 세례에 관해 더욱 많이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누가가 예수님이 물에서 세례를 받은 후 일어서서 기도를 하였다는 것 같은 것입니다. 명백하게 하나님 아버지께 성령을 내려 달라고 구했고, 이로써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습니다. 누가가 성령에 대해 매우 흥취가 있었으며, 다른 성경 저자보다 많았고, 마태나 마가보다 더욱 지나치게 강조하였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몇 가지 사건이 있는데, 산상보훈 같은 것은 여기에서 평원보훈으로 변했으며, 모든 축복에는 한가지 화가 배합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교훈을 한번만 한 것이 아니며, 그리고 다른 형식으로 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는 우리에게 산상보훈과 완전히 다른 형식으로 알려주었는데, 내용은 더욱 간단하고 짧았으며, 예수님이 다른 장소에서 강의하였다는 것이 매우 명백하였습니다. 모든 축복에는 하나의 재앙이 있었고, 재앙은 하나의 저주입니다. 예수님이 전에 확실히 사람을 저주하였습니다.

누가복음에서 가장 보귀한 곳은 당연히 비유입니다. 좋은 사마리아인 같은 비유이고, 그리고 탕자, 탕자의 아버지 비유이고, 잃어버린 두 아들이지요. 불경건한 관리의 비유가 있고,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가 있는데, 그것은 멋있는 비유가 아니지요? 또 무슨 메시지가 있어요? 한밤중에 친구를 위해 떡을 구하는 비유가 있습니다. 한밤중에 이웃집 문을 두드리는데 떡을 얻을 때까지 구했으며, 이로써 갑자기 방문한 친구 대접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성령도 이렇게 구해야 하느니라. 하나님의 문을 성령 구하기까지 끊임없이 두드리라. 왜냐하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 비유가 있고, 그리고 불의한 청지기 비유가 있고,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가 있는데 부자는 결국 지옥에 갔습니다. 그것은 유일하게 이름을 짚어서 한 비유였습니다. 그래서 이는 아마도 가상이 아닌 것 같고 진인진사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빚진 두 사람의 비유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데, 지금 우리가 그 중 몇 개를 보겠습니다. 바리새인 집에서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부은 창녀가 있는데, 이것은 복음서에서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의 많은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 왜냐하면 그의 사랑이 많기 때문이라. 하지만 사함이 적은 자는 그의 사랑이 적어서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 여자는 많은 사람의 기회를 타서 예수님의 옷 깃을 만졌는데, 예수님은 그의 몸에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 마태와 마가의 이야기가 있는데, 여러분들은 이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려했던 삭개오가 있었고, 예수님이 그의 집에 가서 밥을 먹겠다고 했는데, 그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총애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한 친구를 얻으려고 기꺼이 많은 친구를 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종에 걸린 남자가 있고, 다리를 저는 여자가 있고, 문등병자 10명 치유 받는 것이 있는데, 단 한 명만 와서 감사한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 진실한 인생과 매우 같습니다.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서 얼마나 감사를 합니까? 그리고 또 고기 잡는 기적이 있고, 십자가 상에서의 도적이 있고,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의 아름다운 복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가 사람에 대해 매우 흥미가 있었다는 것을 주의할 수 있었고, ‘누가복음이 다른 복음보다 사람에 대해 더욱 흥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가정 의사가 매우 자연스럽게 이렇게 합니다. 하지만 이렇지만 않습니다.

그는 적어도 여섯 종류의 사람들에게 특별한 흥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 점은 주의해

볼 가치가 상당히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사마리아인인데, 좋은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이 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만 명확하게 지적했는데, 돌아와서 감사한 문등병자가 사마리아인이며, 나머지 모두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치유의 은혜를 받았고 이를 당연시하였는데, 하지만 그 사마리아인은 돌아와서 감사했습니다. 야고보, 요한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사마리아인을 태워 없애주기를 구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에 대해 불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풍자한 것은 사도행전에서 후에 요한이 사마리아로 돌아와서 성령의 불을 그들에게 내리어 달라고 하나님께 구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불을 그들에게 내리어 달라고 하늘에게 구하라 하지만 네가 상상하는 방식으로 아니라 몇 년 후 네가 와서 이 일을 하실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누가가 두 번째로 흥미있어 하는 사람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서 계속해서 이방인을 언급했는데, 사렙다 과부, 수리아의 나아만 장군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는 그가 이방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가 세 번째로 흥미있어 하는 사람은 변두리 사람인데, 그것은 여러분들이 보고 싶어하지 않고, 접촉하고 싶지 않는 사회가 버린 사람들입니다. 나병환자, 세리, 심지어 목자, 그리고 창녀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가는 이런 사회가 버린 사람들에게 매우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가가 네 번째로 흥미있어 하는 사람은 여인이었습니다. 마대, 마리아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여인들입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질 때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던 여인들입니다. 누가가 언급한 여인 10명은 다른 곳에서는 없는 것인데, 이는 다시 의사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고, 이것 또한 여인들이 누가복음을 깊이 사랑하게 된 원인이기도 합니다.

다섯 번째는 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배려가 있었는데, 그야말로 그는 가난한 사람을 편애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느니라. 화 있을진저 너희 부유한 자들이여 라고 했는데, 그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였던 것입니다. 신약의 표준에 근거하면 예수님이 부유한 자는 화가 있다고 했고,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는데, 여기에 앉아 계신 모두는 부유한 자들입니다. 마태는 영적으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고, 누가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는데, 그는 단지 가난한 자라고만 말했습니다. 그는 가난함도 하나의 복이라고 하였는데, 정말로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의지할 남편이 없는 과부들을 특별하게 관심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과부 몇 명을 언급했다는 것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한 부류의 사람은 여러분들이 분명히 생각하지 못했을 것인데, 바로 죄인입니다. 누가는 죄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졌는데, 주의하세요. 죄인은 누구를 가르키는 것입니까? 죄인이란 나쁜 짓을 일삼는 나쁜 놈, 식인마, 중범죄자들을 가리킨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모두는 성경이 가르키는 죄인이 아닙니다.

한번은 제가 이스라엘 버스를 탔는데, 그때 그 버스에 같이 탔던 사람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이스라엘 기사와 가이드가 앞 자리에 앉았고, 제가 확장기를 통해 말을 했습니다. 제가 말하기를 무엇이 죄인이라는 것을 제가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차에 죄인 두 명이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앞 자리에 앉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앞에 그 두 사람은 꼿꼿이 앉아 있었고, 그들의 눈빛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차에 이 두 사람이 바로 죄인이라고 했고, 죄인은 바로 모세의 율법을 노력하여 지키지 않는 사람이며, 오늘이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에 기사님은 운전을 하면 안되고, 가이드는 일을 하면 안됩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압력 때문에 일을 하고, 그들은 한 집안의 어른과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그래서 모세 율법을 위반하였으며, 우리를 위해 위반하였습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죄인이며, 죄인은 바로 자신이 그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삶은 정말로 수고스럽고, 제가 그들이 죄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 두 사람은 옷깃을 여미고 앉아 있었고, 눈을 한번도 돌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어서 말하기를 메시야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는 죄인의 친구입니다. 그는 율법 지키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자신이 의롭다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는 죄인의 친구가 되려고 하고, 마치 우리의 기사님과 가이드처럼, 그는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두 사람이 돌아보면서 입이 귀에 붙었고, 매우 찬란하게 웃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점입니다. 그들 모두는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 범죄자가 아니며, 나쁜 짓을 일삼는 자들도 아닙니다. 그들은 매우 좋은 사람인데, 하지만 그들은 율법을 지킬 방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삶이 너무 수고스럽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사랑하며, 그들도 예수님을 사랑하며, 정말로 기묘합니다. 그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미워한 원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매우 박애하는 복임이었고, 동시에 초자연적인 복음이기도 합니다. 땅의 사람들을 관심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하늘의 사람들도 관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아래를 보겠는데, ‘누가복음에서 나타난 천사가 다른 복음서보다 많았고, ‘누가복음에 천사가 계속하여 나타났습니다. 주의 사자가 엘리사벳이나 혹은 사가랴에게 나타나서 세례 요한의 탄생 소식을 보고하였고, 마리아에게는 예수 탄생 소식을 보고했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을 때 천사가 와서 그에게 수종들었고, 천사가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많은 곳에 천사의 종적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성령을 매우 강조했는데,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보다 성령을 더욱 많이 논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완성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탕생, 세례 받음, 그리고 기적을 행할 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누가복음마지막에 예수님이 제자들더러 위에서 내려오는 능력을 받기까지 예루살렘에서 기다려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는 성령에 대해 흥미가 넘쳤고, 특히 사도행전에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은 찬양과 경배하는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독자들을 끊임없이 하늘로 이끌어 올라갑니다. 여기에 가장 아름다운 찬양이 있고, ‘마리아 송가같은 찬양은 오늘날까지 교회에서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원래 라틴어인데, ‘내 영혼이 주를 찬송하리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마리아가 아들 낳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마리아가 불렀던 노래입니다. 그리고 시므온송인데, 여러분은 시므온송을 불러보셨습니까? ‘주재여, 이제는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전에서 목수 부부가 아기를 안고 있을 때 그들을 본 노인 시므온인데, 그는 그 아기가 바로 메시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를 찬양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주재여, 이제는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옵소서.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서 찬양, 경배의 송가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는 경배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가 기록한 기도인데, 그가 예수님의 기도를 다른 복음서보다 훨씬 많게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기를 다음은 어떻게 합니까? 내가 누구를 제자로 택해야 합니까? 내가 여기를 떠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기도하는 것을 항상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생활은 매우 진실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총결을 하겠습니다.

누가복음은 모든 사람이 읽기에 합당한 복음이며, 모든 사람은 누가복음에서 그들에게 합당한 위치를 찾을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은 여기에서 자신의 그림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이방인에게 합당한 원인이며, 그는 이방인이 읽기에 매우 합당한 복음서입니다.

누가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알 수 있기를 바랐고, 그의 말은 모든 육체입니다. ‘모든 육체라는 단어가 복음서에서 끊임없이 나타났고,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하나님의 구원을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나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라는 단어가 사도행전에도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항상 강조한 중점입니다. 한 사람이 어떤 출신이든, 어떤 종족이든, 피부색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전 인류의 구주인데, 이 점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누가복음의 장소는 유대 땅인데, 하지만 사도행전에 와서 이야기 끝나는데서는 이방 제국 수도인 로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시작에 천사가 큰 기쁜 소식을 보고했으며, 이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이라고 하였습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사람들이 이 성경 이야기 서술을 인용하는데,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또 언급하기를 사람이 동서남북 각 곳에서 와서 하나님 나라에 모이는데, 이는 전 세계가 주께로 돌아오는 환상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유대 왕으로 보았고, 누가는 오히려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이며, 세상 사람들을 위해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이 책을 기록한 이방인이며, 당신은 이 책을 읽는 이방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과 나를 위해 오셨다는 것이 누가복음이 강조하는 점입니다.

제가 세가지 묘사로 누가복음을 총결하겠습니다. 그는 사람에게 속한 복음이고, 하늘에 속한 복음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그는 기쁜 복음이고, 그는 하나의 기쁘고 즐거운 복음서입니다. ‘누가복음에서 기쁨과 연관이 있는 단어가 다른 복음서보다 많습니다. 이 복음서에 기쁨이 가득하며, 하늘에도 기쁨이 있습니다. 단 한 사람만 회개하여 주를 믿으면 천사가 환호하며 축하합니다. 한 죄인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기쁨이 끊이질 않습니다. 마태와 마가복음에서 기쁨이라는 단어를 찾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는 즐거운 의사이고, 그가 이 즐거운 복음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사람에게 속한 복음이며, 하늘에 속한 복음이며, 매우 즐거운 복음이기도 합니다. 그는 유일하게 웃음을 언급한 복음인데, 매우 재미있지요. 다른 복음서에서는 이 단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신약 전체에도 이 단어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에는 웃음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왜냐하면 구원은 죄인을 예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누가복음이 매우 평이하고 이해하기 쉽고, 또한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하지만 그는 매우 평이하고 이해하기 쉽습니다. 방금 시작하면서 제가 여러분에게 드린 구절은 여러분들이 아마도 들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의 집을 가득 채우라인데, 그것은 큰 연회에서 온 비유입니다. 한 사람이 연회를 마련했으며, 많은 손님을 초대했는데, 손님들은 오히려 핑계를 대면서 사양하기 시작했으며, ‘나는 방금 아내를 맞이하여 갈 수 없느니라’, ‘나는 소 다섯마리를 사서 시험해 봐야 한다’, ‘나는 땅을 사서 반드시 가서 봐야 한다라는 것처럼이었습니다. 연회 주인이 종에게 말하기를 만일 그들이 오지 않으면 거리에 나가서 사람들을 불러 오너라고 하였습니다. 종이 주인의 말씀대로 그렇게 했습니다. 돌아와서 주인에게 보고하기를 내가 이미 거리에서 사람을 찾아서 연회에 앉혔는데, 하지만 그래도 빈 자리가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은 종더러 먼 곳에 가서 찾아 사람을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이 나의 집에 가득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이 바로 이렇게 빈 자리가 없이 반드시 가득히 앉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가족 숫자를 만족하게 할 것입니다. 그는 우리더러 먼 곳에 가서 사람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집을 가득하게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 사마리아인, 죄인, 여인, 가난한 자들이 가득 앉게 됩니다. 집안을 가득하게 하는데, 이것이 누가복음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가가 우리에게 이 일을 알려주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응당 일찍이 여러분에게 이것을 보여드려야 했었는데, 그러나 지금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방금 논했던 누가복음의 유일한 자료를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어린시절, 족보, 가르침 그리고 비유,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승천한 기록들인데, 그것은 다른 복음서에 없는 것이며, 누가의 두 번째 작품을 잇게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승천으로 끝나고,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으로 시작하는데, ‘누가복음은 바로 이렇게 사도행전을 잇어 갔습니다.

제가 누가가 흥미있어하는 사람들을 논했는데, 사마리아인, 이방인, 변두리 사람, 여인, 가난한 자와 그리고 죄인입니다. ‘죄인의 뜻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죄인은 바로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초자연적인 측면을 보았는데, 천사, 기도, 성령, 경배 등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는 하나님 나라가 곧 임하리라는 것을 강조했으며, 인자가 오는 그 날에 바로 하나님 나라고 임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모두 다 기록하였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복음서입니까. 이젠 여러분들이 읽기 시작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