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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31:1~3 교만한 마음을 버려야 산다

LNCK 2021. 6. 16. 10:58

 

◈교만한 마음을 버려야 산다                         시131:1~3                   2019.06.25.녹취, 출처

*출처 설교의 5분부터 녹취              

 

◑1절 분에 넘치는 일을 이루려하는 교만

 

시131:1 '주님, 이제 내가 교만한 마음을 버렸습니다. 오만한 길에서 돌아섰습니다.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나서지 않으며,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새번역)

 

시편 기자는 자신의 교만을 회개하면서 1절에서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나서지 않으며,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아마 과거에 그렇게 살았던 거예요.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했고,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 그렇게 살았던 거예요.

그걸 이제는 내려놓았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하거나

또는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 하는 걸.. 우리가 보면

‘어휴 저 사람 참 교만하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지요.

 

‘자기 능력, 자기 준비되어진 것, 그런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어떻게 저렇게 큰 걸 얻으려고 하는 거야?’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자기 자신이나 자기 자녀가 그러면

‘우리 애는 비전이 있구나. 정말 적극적이야. 아주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군!’ 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참 자기를 몰라요.

 

다른 사람을 보면 교만해 보이는데, 그게 자기에게 적용되면 비전이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우리를 자꾸 그렇게 부추깁니다.

우리시대가 가지고 있는 정신이 뭐냐면

‘누구든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어, 성공의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어!

신분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어!’

이것이 지금 우리 시대의 아주 강력하고 아주 매력적인 메시지입니다.

 

2세기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하던 일이에요.

그때까지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아주 철저한 신분사회였습니다.

그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근데 지금 시대는 ‘누구든지 노력하면, 얼마든지 실력이 있으면 그러면 성공할 수 있어!’ 합니다.

근데 그게 뭐가 문제인가요?

 

결과가 뭔지를 한번 보시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좌절감과 열등감, 우울증에 사로잡혀 살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는데..

누구든지 실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데..

근데 왜 난 안 되지? 왜 난 이 모양일까?’

이렇게 자기 자신 스스로 더 비참하게 느끼게 되는 거지요.

 

여기에 교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빠져 있는 것이에요.

‘실력만 있으면, 노력만 하면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다!’ 참 그럴 듯 하게 보이는데

 

거기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세우시고 / 폐하시고

하나님이 어떤 일을 이루시고 / 막으시는 전적인 하나님에 주권’이

다 빠져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아주 교묘하게 사람의 마음 속에

‘너는 노력하면 될 수 있어! 하고 싶은 거 해봐!’ 라고 미혹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 마귀가 아담과 하와의 마음속에 심어준 생각이

‘네가 먹고 싶지? 그럼 먹어!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결국은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보는 거야!’

그래서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원)죄가 왔지요.

 

지금도 똑같습니다. 사람들마다 ‘좀 더 노력하면 될 텐데..

내가 조금만 더 실력이 있으면, 내 삶을 바꿀 수 있을 텐데..’

 

근데 정말 그렇습니까?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온 건 뭐지요?

일의 노예가 된 겁니다. 성공의 노예가 된 겁니다.

 

▲우리가 진짜 하나님을 믿지 않아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편 23편 1절 말씀을 우리가 다 좋아합니다.

다 아멘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런데 여러분 그동안 누가 먹이고 살렸습니까?

그동안 애들은 어떻게 공부 시켰습니까?

그동안 집은 어떻게 마련했고, 차는 어떻게 마련했습니까?

정말 목자되신 하나님이 하셨습니까?

 

‘내가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서 한 거지..’ 라고 속으로 생각한다면

그런데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 이십니까?

 

우리 삶 속에 실제로는 하나님이 빠져 있어요.

잘 살아 보고 싶고, 잘 되고 싶고, 높아지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행복하고 싶은데

그 속에 하나님은 빠져 있어요.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삶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정말 벗어나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일의 노예가 아닙니까?

쉴 때 보면 알 수 있어요. 일의 노예는 쉬지 못 합니다. 쉬라고 그래도 못 쉬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의 노예로 살고 있어요.

 

쉴 시간이 왔습니다. (정부가, 회사가) 쉬라고 권해요.

그런데도 일이 바빠서 못 쉬고, 두려워서 못 쉬고, 노는 법을 못 배워서 못 쉽니다.

 

핑계는 많지만 결국 이유는 하나예요.

일을 쉬는 것 자체가 자기에게 두려운 거예요!

 

왜요?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데.. 열심히 일하면 돈 많이 벌 수 있는데..

그걸 이루지 못하면 그 책임은 누가 져요?

 

자기 힘으로 자기 인생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결국은 잘 되는 거라고 그렇게 믿으니까

쉴 시간이 와도 못 쉬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 규정을 주셨습니다. 과거에 이런 예가 없었어요.

역사가 토마스 카일이 ‘역사상 그 어떤 문명도 보통 사람들에게

정기적인 휴일을 준 적은 없다’고 그랬어요.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사람에게, 일주일에 하루는 쉬라고 그랬어요.

그 말은 무슨 뜻이지요?

 

‘일은 열심히 해야하는 게 마땅하지만, 절대로 일의 노예가 되지는 말라’

그 말은, 열심히 노력하고 일해서 먹고 사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먹이고 살리는 건 하나님이지,

내가 일을 열심히 해서, 내가 실력이 있어서, 내가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그래서 잘 된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루는 쉬어야 한다’, 그게 우리가 잘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쉬지를 못 해요. 그건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닙니다.

 

결국은 자기를 믿고 사는 것입니다.

내 능력으로 산다고 생각하니 아까워서 쉬지 못하고, 두려워서 쉬지 못하는 것입니다.

 

 

◑2절, 삶이 평안하십니까?

 

자신의 교만을 회개하고 난 다음에, 시편기자는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2절에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젖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혼도 젖뗀 아이와 같습니다.’

 

교만하다가 갑자기 평안이 온 것입니다.

자기 교만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졌더니 그 결과가 뭐지요?

평안이에요.

젖 뗀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기듯이 그런 평안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노예처럼 살게 되는가를 말해 주는 겁니다.

 

여러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사람의 특징은

‘주님 안에서 쉬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으시면 안 돼요.

 

마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교만하게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거예요. (*자기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교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게 인생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 완전히 달라져요.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 믿은 축복이 뭐지요? 진짜 쉴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일이 많아서 힘든 게 아니에요.

쉴 시간에도 쉬지 못 하니까 어려운 거예요.

마음에 쉼이 없으니까 힘든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면, 주님께 다 맡길 수 있어요.

내 삶의 모든 짐, 내 삶의 모든 무게,

내가 결국은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사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먹이고 입히시는 겁니다.

일은 나에게 주신 축복의 선물 일뿐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기뻐서 일을 하는 거예요.

일 자체가 기쁨이에요.

일해서 먹고 사는 게 아니에요.

먹여 살리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정말 믿으니까

일할 때는 열심히 기쁘게 하지만, 쉴 때는 더 편안하게 쉬는 거지요.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가장 놀라운 복은

성공하는 것, 부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3절,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라!

 

그래서 시편 기자는 오직 주님만 의지하라고 외칩니다.

3절에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히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여라.’

 

여기에서 교만과 겸손히 갈라지는 거예요.

교만은 ‘결국 내가 다 책임져야 된다!’ 하는 겁니다.

‘내 노력으로 성공해야 된다’고 하는게 교만입니다. 거기엔 하나님이 빠져 있어요.

 

그런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 이것이 겸손함입니다.

그리고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을, 그 삶 속에서 주님이 드러내세요.

 

제가 저희 두 딸에게 마지막으로 남겨 줄 말이 있다면, 저는 이 말을 꼭 하겠어요.

‘너는 무슨 일이 있든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

좋은 일이 있든, 어려운 일이 있든.. 사람을 만나든..

네가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너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라!’

 

저는 오늘 우리 교우들에게, 또한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마음으로 정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이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게 가장 복된 인생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은 진짜 복은,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목동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깻묵을 저장해 놓은 창고에 불이 났습니다.

깻물이 불에 타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고소한 냄새가 막 번지니까

양떼들이 그 불이 붙은 창고로 막 몰려드는 겁니다. 그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서!

 

그래서 이 목동이 막대기를 들고, 양들이 그 불난 창고에 가까이 오지 못 하도록

계속 위협하면서 그 양들을 내쫓았는데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겁니다.

 

이쪽을 막으면 저쪽으로 들어오고

저쪽을 막으면 이쪽으로 들어오고..

그 양떼들을 막느라고 불은 끌 생각도 못 하고 얼마나 진을 뺐는지...

그 일 이후에 며칠을 앓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평소에 그렇게 목동의 말을 잘 듣는 그 양들이

그날은 어떻게 그렇게 변했는지, 아무리 막아도 때려도 끊임없이..

자기가 불에 타서 죽을지도 모르고, 그 깻묵 냄새에 이끌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목동은 무서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지금 우리를 보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욕심이 한번 발동하기 시작하면

주님의 음성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내 마음 속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한 번 발동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아무리 막아도 막을 수가 없는 게 우리의 문제예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절대로 건성으로 들으시면 안 됩니다.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라’ :3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의 귀에 주님이 정말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에요.

그래야 사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셨어요.

그 사실이 정말 분명하다면, 우리가 할 일이 뭡니까?

이제는 예수님이 하자는 대로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셨다니까요.

이 엄청난 일을 하나님이 이루어 주셨다니까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정말 예수님 하자는 대로 살아야지요!

 

천지를 지으시고 천지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셨어요.

여러분 이것이 진짜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죠?

어떻게 하는 게 진짜 잘 사는 길이죠?

우리 안에 오신 주님을 따라만 사는 거지요! 주님 말씀대로만 사는 거 아니겠어요?

 

그것 외에 다른 어떤, 더 좋은 길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에 대해서 의심합니다.

‘그래도 될까? 그래도 잘 살 수 있을까?’ ...

 

조지 뮬러 목사님이 이런 호소문을 쓴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여, 모든 염려와 무거운 짐과 필요를

다 하나님께 맡기는 행복한 길을 가지 않으시렵니까?

 

이 길은 나처럼 여러분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누구나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께 모든 짐을 내려놓고

곤고한 날에 그분을 찾도록 초대와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이여, 이렇게 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어려움과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평안하고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게 되기 바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하늘 아버지가 여러분을 돌보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지 밀러 목사님이 이 호소문을 쓰실 때의 심정이

설교 준비 하는 동안 내내 제게도 가득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중에

정말 이 말씀을 들으셔야 될 분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 이것이 사는 길이에요.

내 속에 교만이 없어지고, 그리고 정말 겸손하게 주님을 믿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한 번은 여러 목사님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데

연세가 드신 어느 목사님이 그런 말씀하시더라고요.

 

‘자기가 젊었을 때는 혼자 다니기가 좋았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까 이제는 아내 뒤만 따라다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집에 들어가도 아내가 있나 없나? 그것만 먼저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목사님도 다 동의하셨어요. ‘나도 그렇다, 나도 그래요!’

그래서 제가 ‘그래도 우리 이제부터 아내만 좇아다니지 말고, 예수님을 좆아서 삽시다!’

그래가지고 분위기가 갑자기 확 싸늘해졌어요.

 

여러분 ‘오늘 주님이 나와 늘 함께 계신다’ 그걸 실제로 검증해 보지를 않아요.

여러분 막연한 생각으로 주님과 동행하게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매번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 놓치면 안 돼요.

계속 주님께 귀 기울이고, 그리고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정말 주님의 내게 필요할 때

주님이 나를 이끌어 주심을 간절히 원할 때

쉽게 주님을 가까이 모실 수가 없게 됩니다. 

 

저는 처음에는 성공을 위해 목회했던 목사였습니다.

‘이왕 목사가 되는 것이라면 큰 교회 담임 목사가 되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신학교에 갔어요. 저는 그게 나쁜 일이라고 생각 안 했습니다.

 

목사가 열심히 목회해서, 그래서 교회가 크게 부흥 되는 게 뭐가 나쁜 일이겠어요?

근데 하나님이 그것을 얼마나 기뻐하지 않는지.. 그때 저는 몰랐어요.

 

열심히 목회하면서 끊임없이 주님께 저를 도와 달라고 구했어요.

제가 목회하는 일에, 설교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그래서 제 목회가 잘 되기를 제가 바랬어요.

 

그러면서도 항상 마음에는 주님께 순종하는 게 두려웠어요.

‘혹시라도 주님이 더 어려운 길로 가라고 하시면 나는 어떻게 할까?’

‘나에게 어려운 일을 명령 하시면 나는 어떻게 할까?’ 그게 저는 두려웠어요.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 아니었습니다. 제 자신 (성공)을 위한 열심이었어요.

그게 바로 교만이었던 거죠.

 

그때 제 마음속에 꿈꾸던 것은 ‘하나님이 제게 큰 능력을 주시면

그래서 기적을 행하는 그런 목사가 되면, 구름같이 교인들이 많이 몰려들지 않겠나?’

그런 헛된 꿈도 한때 가졌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생각인지.. 나중에 성경을 읽고서 알았어요.

마7:22~23절에,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자들에게 주님이 이렇게 엄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저는 능력을 행하면 그러면 제 사역이 크게 부흥될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러면 불법을 행할 가능성이 많아진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목회하는 것조차도, 전혀 하나님을 배제하고 자기 욕심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이번에 (2019년 12월경) 호주 집회 마치고 호주에 ‘예수동행 운동’을 설립하고 돌아오면서

주님은 제게 다시 한번 말씀 하셨어요.

 

‘사역이 커지고 그리고 화려하게 되는 것을 바라지 말라.

오직 한 사람이 정말 진실하게..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 세워지는 거기에만 초점을 맞추라.

그 다음에는 주님이 하신다!’

 

역사는 주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전세계에 예수동행운동이 일어나는 것도, 그건 다 주님이 하실 일입니다.

내가 해야 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오직 정말 진실로 주님과 동행하면서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과 정말 동행 하는 사람으로 세워가고

그들이 주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서로 나누고 살게 하는 것.. 이것 뿐입니다.

 

그것은 제게 있어서 정말 구원의 복음과도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때때로 사역의 무거운 짐에 눌려 있을 때가 있습니다.

 

또 사역을 내가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고려 대상에서 빠져 버리는 겁니다.

 

주님을 바라보게 되니까, 사역의 짐이 무거운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거죠.

 

▲어느 성도가 원망의 말을 하더라고요.

‘그 사람이 나를 망쳤습니다.’

 

어떤 분들은 또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내가 그 결혼 때문에 내 인생이 다 망가졌습니다!’

‘그 사건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해석을 잘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지독하게 교만해서

내 노력으로, 내 열심으로, 내 지혜로, 그렇게 잘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깨우쳐 주시려고

내가 의지하던 것, 믿었던 것을 다 막아버리십니다.

 

여러분, 언제 여러분은 기도에 열심을 가졌습니까?

언제 여러분은 주님을 그렇게 갈망하게 되었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에 부딪혔어요. 내 노력의 한계에 부딪혔어요.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엄청난 유익을 얻는 순간이었어요.

 

우리가 길에 나가면 자동차 조심해야 되고, 운전도 조심해야 되고, 매사에 조심할게 많은데

그 모든 것 중에 정말 조심해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된다 / 안 된다 결론을 아직 내리시지 않았는데

내가 된다 / 안 된다 결론을 스스로 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라 / 말라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내가 스스로 한다 / 안 한다 결정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좋다 / 나쁘다 아직 말씀하지 않았는데

내가 그냥 좋다 / 나쁘다 평가를 내려버리는 것입니다.

 

이게 무서운 교만입니다.

그것 때문에 주님이 우리를 인도 못 하시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주님이 우리의 삶 속에 역사 못 하시는 거예요.

 

예수동행일기를 쓰는 이유는, 철저하게 우리 주님만 의지해서

주님께만 순종해서 살아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