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11 시58:1~11 여러 설교 정리
시편 58편의 표제를 보면 이 시가 다윗의 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믹담 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1)
그래서 다윗의 믹담 시인 58편은, 57편처럼,
사울 왕을 피해 은신처에 숨어 있을 때 지었던 시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다윗은 통치자들의 악행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한편, 시편 58편은 시편을 묵상하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저주시”에 속합니다.
저주시는 개인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좀 더 공적인 차원에서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이기적인 동기에서, 이기적인 방법으로,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려는 기도가 아닙니다.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싶은데, 내가 할 힘이 없으니까
저주라도 퍼부어야겠다는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인으로서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의로운 분노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를 미워하기 때문에 드리는 기도이고,
하나님께서 그런 세상의 불의를 바로 잡으시고
하나님의 이름이 찬양 받기를 원하는 기도가, 저주시입니다.
◑보이는 현실 : 부정한 통치자들 (1~5절)
1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인자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결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1절에서 주어는 '너희' 또는 '인자들'입니다. 주2), 주3)
구약에서 인자 (사람의 아들)는 '참 인간, 온전한 자'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베니 아담
※참고로, 히브리어 용례로
'하나님의 아들들' (브네이 엘로힘)은 천상의 완전한 자들(천사들)을, 욥1:6등
'사람의 아들, 인자' (베니 아담)은 지상의 완전한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인자'는 통치자를 가리키는데, 그들 통치자가 엉망이지만,
'참 사람들아(인자들아)'라고 존중히 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들을 매너있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높으신 분'이 그러시면 안 되지요.. 식이죠)
이 질문은,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순수한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느냐는 개탄이자 반문이고 책망입니다.
즉, '온전한 사람(인자)'들은 마땅히 정의를 말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올바르게 통치하고 재판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시57:4절에서도 '인자' (사람의 아들)이 나옵니다. 역시 부정적 의미로 쓰였습니다.
사울의 신하들, 고관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시57:4
그런 사람들이 정의에 대해서는 잠잠했기 때문에
다윗은 그들을 “잠잠하느냐” 라고 표현했는데,
그 원어 '에이렘'은 "듣고만 있느냐"라는 뜻입니다. 주3)
백성들의 탄원과 공의를 부르짖음을, 그저 듣기만 하고, 그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것이죠.
2 아직도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으로 폭력을 달아 주는도다
다윗은 2절에 계속해서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고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을 보고도
침묵하는 통치자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당시엔 3권 분립이 없었고,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있어서, 통치자가 부패하기 더욱 쉬웠습니다.
'중심에 악을 행하며'
그들은 우연히 발생한 악행보다는
미리부터 마음의 악한 계획을 설정하고
그것을 통하여 백성을 공평히 판단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따라 판단한 것입니다.
“달아 주는도다”는 저울의 균형을 맞추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균형을 이룬 천칭 저울은 일반적으로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정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 겉으로는, 입술로는 마치 정의를 말하고 집행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폭력을 행하는 일이라고 꼬집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성경적 통치자'의 모범은, '하나님의 통치의 대행자'입니다.
자기 생각과 판단대로 통치, 재판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통치를 자기가 이 땅에 대행하는
마음가짐과 말과 통치를 펼치는 것입니다.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그래서 왕도, 선지자 제사장과 함께 기름부어졌던 것이죠.
3절에서 다윗은 겉으로 보이는 이런 일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합니다.
3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멀어졌음이여”는 잘못된 방향, 이상한 방향, 이방인의 길로 갔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모태에서부터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원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심지어 이 시를 기록한 다윗도 모태에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시51:5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동일한 죄를 범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의 소리에 조금 더 귀기울이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가운데 그 길에서 돌이키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의 문제는 계속해서 그 죄의 길을, 자기 욕심에 따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기를 선택하고
곁길, 즉 바른 길이 아닌 다른 길, 잘못된 길을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말하는 정의는 거짓이었고, 이들이 행하는 공의는 폭력이 되었습니다.
4 그들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5 술사의 홀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도 따르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이러한 악인들의 행태는
모태에서 죄성을 지닌 악한 자로서
술사의 소리나 술객의 요술에도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위험한 독사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귀를 막고 일부러 듣지 않는 독사와 같습니다.
그 주인(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않고, 그러니 따르지도 않습니다.
독을 가진 독사가 술사의 통제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주위 환경이 매우 위험한 상태에 빠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바라는 현실 : 공의로운 하나님 (6~11절)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다윗은 6~11절과 같은 기도를 강력하게 드리는 것입니다.
6 하나님이여 그들의 입에서 이를 꺾으소서 여호와여 젊은 사자의 어금니를 꺾어 내시며
‘젊은 사자’라는 말은 힘과 위험 그리고 무자비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된 말입니다.
사자는 무리지어 행하는데, 그 중에 젊은 사자가 머리입니다.
악인은 '젊은 사자'처럼 위험한 존재이지만
이빨 빠진 사자와 같은 무기력한 존재가 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다윗은 4개의 이미지를 사용해서, 하나님께서 이들을 심판하시기를 간구합니다.
7 그들이 급히 흐르는 물 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 겨누는 화살이 꺾임 같게 하시며
8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 만삭 되지 못하여 출생한 아이가 햇빛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1) “급히 흐르는 물”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순식간에 불어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곧 사라지는 것처럼 그들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2) “겨누는 화살이 꺽임”
화살이 휘거나 부러지면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의 계획이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기를 바랍니다.
3)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달팽이가 끈적한 자취를 남기고 다니다가 결국은 빈 껍질로 발견되는 것을
점점 소멸해가는 달팽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달팽이는 햇빛이 비치면 녹아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의 이 기도는 달팽이가 햇빛이 비치면 금방 녹아서 자취를 감추듯이
신속하게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이 자취를 감추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4) “만삭 되지 못하여 출생한 아이”
이 표현은 아마 ‘사산된 아이’라는 의미일 것입이다.
요즘은 조산아도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지만, 과거에는 조산아는 거의 다 죽었습니다.
9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뜨겁게 하기 전에
생나무든지 불 붙는 나무든지 강한 바람으로 휩쓸려가게 하소서
9절도 난해구절입니다.
(새번역)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뜨겁게 하기 전에
생것(가시나무)과 불붙은 것(가시나무)이, 강한 바람에 휩쓸려 가게 해주십시오.'
이들의 악이 너무 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빨리 심판해주시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불이 가마를 뜨겁게 하기 전에, 즉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전에 (요리를 완성하기 전에)
회리 바람이나 강풍이 불어서, 불 때는 화목이 다 휩쓸려 가 버리면, 요리가 되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 때 결과는 10~11절과 같이 나타날 것을 기대합니다.
10 의인이 악인의 보복 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의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그의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이 이미지는 어쩌면 괴기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계19:15절의 이미지와 비슷합니다.
계19:15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이렇게 볼 때, 이는 당시에 승리자에게 사용하던 이미지 였습니다.
의인은 악인에게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보복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공의를 모르던 그들을, 공의의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의인에게는 온전한 승리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날 때, 하나님의 편에 선 자들은 기뻐할 것입니다.
그동안의 모든 슬픔과 눈물이 보상받을 것이다.
11절은, 그 의인들의 확신입니다.
11 그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
1~10절까지 여러 이야기를 한 후에, 다윗은 11절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두 가지를 설교하고 있는데
-의인에게는 보상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과
-악인에게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는, 세상에 피할 수 없는 확실한 게 두 가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세금과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들은 '세금과 죽음'이 아니라,
-의인에게는 보상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과
-악인에게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 확실히 믿어야 하겠습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믿는다면,
악인의 악행에 대하여 폭력으로 맞서는 것보다
이처럼 비폭력 저항으로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롭지 않겠습니까?
다윗 역시 원수갚는 것을 직접하지 않았고
보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일평생 신뢰했습니다.
이와 같은 다윗의 신앙은 신명기 32:35~36절 말씀을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
참으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불쌍히 여기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 신32:35~36
평소에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 즉 당시 모세 5경을 얼마나 깊이 마음에 새기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많은 현실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악인이 항상 고통스럽고 괴로운 현실을 살아야할 것 같은데,
오히려 그들은 많은 것을 누리며 즐겁게 살아가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힘든 것은 의인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정직하게, 깨끗하게, 겸손하게
살려고 하는 자들에게 죄 많은 이 세상은 쉽지 않습니다. 선을 행하면서 낙심하기 쉬운 세상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결국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공의를 드러내실 때가 되면,
이 땅의 사람들도 결국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윗의 기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끝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가. 메시아 예수님을 통하여 세워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불의는 설 자리를 잃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라도, 지금 현실에서도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그 공의를 나타내신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다윗과 같은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기원하는 기도!'
▲(일화1) 양평군 옥천면 용천3리에 있는 엘림교회가 있습니다.
용천리는 이름처럼 ‘용이 승천한 곳’이랍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 자부심이 대단하답니다.
그 동네는 교회가 들어오지 못하는 동네였습니다.
교회가 들어오면 안 되는 동네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기에 李목사님이라고 하는 여자 목사님을 보냈습니다.
어떻게 이곳에서 교회를 하려고 생각했느냐 물었더니
이분이 사연을 들려주셨습니다.
이분이 서울 사랑의교회 여전도사님으로 계시다가
7년 전에 대학생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습니다.
마음의 고통이 가득한 상태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목사안수를 받고
교회를 개척하도록 도전을 받았다는 겁니다.
아니, 지금 다 큰 아들이 어이없이 죽었는데,
목사안수에 교회개척이 웬말입니까?
그저 날마다 드러누워서 울고불고 할 판인데,
그런 상황에 있는 이 분을 하나님이 몰아붙인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상황을 그렇게 만들었다 는 겁니다.
용이 승천했다는 용천3리에 하나님의 인도 가운데
가보지도 않고 땅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없는 지역이니까 교회가 세워져야 된다는 생각으로
땅을 사고 나서 가보니까, 그 땅이 사당 터더라는 겁니다.
그 동네 사당인데, 일 년에 한 두 번 온 동네 사람들이 와서
제사지내고 그러는 데랍니다.
어찌된 사연인지 그 사당 터가 복덕방에 나와
이 목사님 손에 들어온 겁니다.
목사님이 그 동네에 가서 교회를 세우려고 하는데,
교인은 하나도 없고 이장이라는 사람이 와가지고 이 목사님한테
‘사당 터에 교회를 세우면 당신이 무사할 줄 아느냐?’고 악담을 퍼붓더랍니다.
또 이웃에 사는 70대 할머니가 와서는
‘당신이 죽지, 살 줄 아느냐?’면서 유치원 아이 나무라듯이 다그치더랍니다.
그때 이 목사님이 그 할머니하고 이장한테
한 시간씩이나 온갖 험한 욕을 먹으면서 서 있는 모습을 지켜봤던 분이
나중에 교인이 됐는데, 그분 말이
‘그때 이 목사님이 유치원 아이 벌 서듯이
그분들 앞에서 한 시간을 그러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 목사님은, 이장과 할머니가 한 시간이나 욕을 퍼부어댔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견뎌냈을까요? 그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라도 있었을까요?
李목사님 말씀이,
"아들 죽은 슬픔이 너무나도 큰 상처로 자리를 잡아서
누가 무슨 욕을 해도
아들 잃은 슬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겁니다.
누가 뭐라고 그러든 마음에 아픔으로 다가오지 않아 그저 끄덕끄덕했답니다.
이후로 목사님이 여기서 무슨 교회를 하겠나 싶어 떠나려고 하자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통해 못 떠나게 붙잡더랍니다.
그렇게 야단을 쳐댔던 이웃의 70대 할머니가
몇 달 후에 목사님을 찾아와서 무릎을 딱 꿇고 앉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너무 놀래가지고 왜 이러시냐고 했더니,
이 할머니가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면서,
"목사님, 나를 용서해주십시오." 그러더라는 겁니다.
이 목사님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왜 이러시냐고 다시 물었더니
할머니가 그간의 사연을 말하더랍니다.
지난 몇 달 동안 미국 유학 간 손자가 미국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죽을 뻔했는데
다행히 살아났고, 며느리가 낙태를 하고,
집안의 자손들에게 우환이 벌어지는데 감당할 수 없는 정도여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몇 달 전에 욕을 막 퍼부어 댔던 일과
심심하면 한 번씩 들러서 목사님을 찔러댄 일이 생각이 나서
자신이 너무 센 신을 건드려가지고
우리 집에 이런 우환이 생기는가 보다 싶었답니다.
또 그 이장님은 어땠는지 아십니까?
60이 다 돼 가는 그 목사님을,
유치원아이 나무라듯이 사정없이 몰아붙인 이장님은
그날 밤에 토사곽란이 일어났답니다.
그것도 너무 심하게 와가지고 병원에 실려 가서
한 1주일을 입원해 있었답니다.
그 뒤로 이분 마음에도 하나님이 감동을 주셔서
목사님을 찾아와 용서해달라며 사과를 해서
교회를 짓게 되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쩌면 그렇게 일을 묘하게 하실 수가 있습니까?
이 목사님이 자기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무슨 큰일을 한 것처럼 됐대요.
사실 자기는 아들 잃은 슬픔 때문에 어쩔 바를 몰라
누가 욕을 해도 아프지도 않고 그냥 기도만 하고 있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악은 심판하고, 의인은 상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화2) 서독에서 동독으로 간 목회자,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아버지 호르스트 카스너 Horst Kasner(1926~2011) 이야기
https://blog.daum.net/rfcdrfcd/15977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