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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1장, 인구조사와 군대조직

LNCK 2022. 9. 2. 09:33

◈인구조사와 군대조직              민1장           여러 설교 정리        민수기설교모음

 

민수기 1장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머문 후에 
인구조사를 실시하고
가나안을 향해 광야로 들어가는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적용

▲1. 시내산에서 <충분한 준비> 후에, 1년 후에, 출발했습니다.

1: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후 2달 걸려서 시내 산에 도착했죠(출19:1).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떠난 후 3월 1일에 시내 광야에 이르렀다'

그 시내산에 머무는 1년 사이에, 대략 4가지 중대한 일을 했습니다.

1) 시내 산에서 성막 계시와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가지 규례들을 지시받았습니다.

2) 출애굽 2년째 1월 1일에 <성막 건립>했습니다.(출40:17). 
 
3) 성막 건립 후 곧 <레위기 규례>가 주어졌습니다.  *레위기서
이 규례들은 출애굽 제 2년 1월 1일 ~2월 1일, 즉 한 달 사이에 주어진 것입니다.
 
4) <민수기 규례>가 출애굽 제 2년 2월 1일부터 약20일간 주어지기 시작했는데,  
본문 민1장의 내용입니다. 
-그것은 진의 대형과
-인구조사에 관한 것입니다.

민10:11~12 '출애굽 후 제2년 2월 20일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제 2년 2월 20일에 시내 산을 떠났습니다. 
이때는 시내 산에 도착한 지 약 1년이 지난 뒤였고, 출애굽 한지 2년 2월 20일이었죠.
 
△한편 이스라엘이 이곳 시내 산에서 근 1년 동안 계속 체류한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된 선민으로서 그들의 삶에 필요한 종교, 도덕, 사회의 각종 율법을 계시 받고,
또한 그들의 삶의 중심적 역할을 할 성막을 건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출애굽의 감격에 도취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시간 내에 가나안 땅에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따르는 신앙과 그분을 중심한 경건한 생활의 훈련이었습니다.

만약 이것 없이 가나안 땅이 주어진다면
그곳은 그들에게 복된 땅이 아니라, 타락과 방종의 땅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게 이해가 쉽게 안 될 수 있어요. 
1년이면 벌써 가나안 땅에 도착하고도 남아요.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한달이면 도달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왜 그걸 1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출발도 안 하고 있을까요?  *2년 2월 20일에 출발  10:11

    어릴 때 소풍가던 기억이 납니다. 
    그 전날 밤에는 잠을 설쳐요. 너무 흥분되어서요.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는, 금방 약속의 땅에 도착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시내산에서 무려 '1년 1달 19일'을 지체합니다. (=2년 2월 20일째와 같은 표현)
    어린아이같이 조급한 성격이라면, 기다리다가 지쳐서 쓰러질만큼 긴 기간이에요.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요?

민수기에는 '군대'라는 단어가 30번 이상 나와요.
이스라엘을 '군대, 군사'로 부르고 있어요.
인구조사를 하는 이유도 '군대 편성'을 위한 것이 1번 목적이었어요.
    

1: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여기서 '싸움'은 전쟁을 뜻해요.

1:45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의 그 종족을 따라 이십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가

이스라엘 중에서 다 계수함을 입었으니' 즉 인구조사의 목적은, 전쟁을 위한 것이었죠.
   
그러므로 민수기 1장에서 첫 번째 교훈은
-성도는 영적 전쟁의 군대로, 군사로 부름을 받았다는 거예요. 자신의 정체성을 잊고 살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 나가 싸우는데는,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1년 가량 걸렸습니다.

그럼 이스라엘 '군대'가 시내산에 머무는 약1년 동안, 무슨 준비를 갖췄습니까?
위에 4가지,
1) 십계명 법을 세우고, 
2) 성막을 짓고 - 영적 군대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거죠. 
3) 레위기 규례를 세우고 - 예배와 성결이 중요하다는 거죠.
4) 민수기 규례를 세우고 - 군대를 편성하고, 진의 배치 및 이동 대형 deploy 을 갖춥니다. 

만약 이거 없이 무조건 광야로 들어갔다가는..
도중에 아말렉도 만나고, 바산 왕 옥도 만나고, 헤스본 왕 시혼도 만나는데...
아마 중구난방 오합지졸로, 혼비백산해서 전멸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암몬과 모압과는 전쟁 없이 통과하게 되는데요, 
아마 확실한 지휘체계가 없었다면, 60만 대군 중에 또 이탈해서 전쟁하는 사람도 소수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명확한 지휘체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탈자들이 없었요.

 

바울은 성도가 군사로 부르심을 입었다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빌2:5 '나와 함께 군사된 자'  

딤후3:4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실제로 2천년 교회역사에 보면, 교회를 군대 체제로 운영한 단체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구세군과 예수회입니다. 

또한 '군대, 군사'라는 말은 안 썼지만, 사도바울은 성도가 '군대'임을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엡6:12~17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지금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세례를 의미)를 건넌지 2달 지났어요.
막바로 광야(전쟁터 의미)로 내보내진 게 아니라, 이제 막 걸음마 뗀 아기를 내보낸 것이 아니라
시내산에서 약 1년간의 준비과정, 정비과정을 거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준비의 핵심은, 뭐 제도도 있고, 형식과 예식도 있었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어요.

사실 광야는요, 아무것도 없어요. 먹을 것도 없고, 마실 것도 없어요.
이거 거의 맨 땅에 헤딩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환경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 믿고, 그 분을 의지하고.. 행진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준비'가 필요했던 것이죠.

사실 준비를 했어도, 광야 여정에는 우여곡절, 엉망진창인 경우도 많았죠.
그리고 여정도 40년이나 길게 늘어나기도 했지만.. 결국 결과적으로는 성공했어요.
그 다음 세대가 가나안 땅에 결국 들어갔거든요!

△오늘날 성도에게 필요한 훈련은 ‘경건 훈련’입니다.

*경건과 영성의... 몸의 훈련  https://blog.daum.net/rfcdrfcd/15972041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https://blog.daum.net/rfcdrfcd/15980252

 

 

▲2. 성도는 "싸움에 나갈 만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싸움에 나갈 만한 자'라는 말이 본문 민1장에 13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1:45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의 그 종족을 따라 이십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자

이스라엘 중에서 다 계수함을 입었으니.” 

 

민수기의 교훈은, 현재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출애굽과 같은 영적 구원을 얻은 주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후에는 영적 전쟁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이고,

성도는 "싸움에 나갈 만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출석 교인' 몇 명이다.. '등록 교인' 몇 명이다.. 보통 이런 기준으로 계수하는데,

본문의 계수 기준은 "싸움에 나갈 만한 자"입니다. 신약의 표현으로는 '제자'이죠.

그렇다면 오늘 우리 공동체는 군사는 과연 몇 명인가요?

 

    <포레스트 검프>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포레스트 검프는 꿈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지능이 없습니다.
    근데 이 사람이 인생을 어떤 식으로 살았는가를 대표적으로 말할 수 있는 한 장면이 나와요.

    그가 군대에 들어갔을 때, 훈련을 시키는 한 상사가 와가지고 포레스트 검프에게 묻습니다.
    ‘검프! 너는 왜 육군에 들어왔냐?’

    그때 검프가 상사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한 말이
    ‘나는 상사님이 시키시는 일을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목에서 하나님을 연상하셔야 합니다.)

    다른 친구들은 뭐라고 대답했겠습니까?
    '미국을 지키기 위해서 왔습니다. 인생의 경험을 위해서 왔습니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한 전 단계로 왔습니다.'

    그러나 검프는 말합니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당신이 시키시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나는 군데에 들어왔습니다.'

    이때 상사가 한 말이 있습니다.
    ‘너는 천재다. 검프야. 너는 아이큐 지수가 160이다. (실제 검퍼의 아이큐는 85)
    내가 이제까지 상사노릇을 하면서, 너처럼 탁월한 대답을 하는 놈은 처음 봤다.’
    이런 얘기를 해요. 이게 바로 '싸움에 나갈 준비가 된 자'의 예입니다. 

    여러분 이거에요. 군사된 자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상사(하나님)가 시키시는 일을.. 무식하게 하는 겁니다.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그 훈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계수되었는가요?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계수 count, census 할 것을 명하셨는데 
이것은 아주 중요한 하나의 구분을 만들어냅니다. 계수된 사람들과 계수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때 계수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는 명확합니다. 
한국사람이 아니면 한국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계수된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즉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김형O 목사)가 오래 전에 한국에 들어와서 주민등록증을 다시 만들었는데, 
    미국 영주권자라는 이유로 주민등록증 제목 아래에 괄호로 (재외국민)이라고 쓰여진 것을 받았는데 
    불쾌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좀 이상했습니다. 
    완전한 한국의 시민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와 함께 미국 대사관에 가서 미국영주권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주민센터에 가서 신고하고 새로운 주민등록증을 받았습니다. 
    ‘재외국민’이라는 글자가 사라진 주민등록증이었습니다. 
    ‘아, 이제는 진짜 완전한 한국시민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은근히 기뻤습니다. 

이것이 적절한 예화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어쨌든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면 시민이고, 아니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의 계수하심에 들지 못했다면 (계시록에도 14만4천이 나오지요)
그것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의미하기에 비교할 수 없이 무서운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계수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군대에 속했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매우 명확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계수는, 온 세상의 모든 인류를 둘로 나누는 사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계수된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군대에 속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이 문제를 생각할 때 
그는 자신이 충성을 다해야 할 대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뿐 아니라 
그 충성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1:20)라는 표현은 
그들이 단지 큰 이스라엘 민족에 소속된 존재일 뿐 아니라 
그 민족을 구성하는 지파, 그리고 지파를 구성하는 작은 단위의 가족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런 작은 단위의 가족에 속하지 않은 채, 전체에 계수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계수된 사람은 누구든지 예외없이(진짜 예외가 없습니다!) 작은 단위의 가족에 속하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계수된 사람의 책임이라면, 그에게는 또한 특권들도 있습니다. 
그 가장 중요한 특권은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에 그들이 땅을 분배 받을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나중에 천국의 기업을 의미하죠.

이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이 땅을 살면서 그들에게 보장된(계수되었기 때문에) 
하늘의 유업을 바라보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자격을 이렇게 썼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어떤 사람을 계수하라고 명하셨나요?
그들은 ‘군인’으로서 계수된 사람들입니다. '싸움에 나갈만 한 자'로서의 계수입니다.

그렇다면 계수된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 민족 공동체에 대하여 가져야 하는 태도가 
충성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70제자가 전도하라 나갔다 돌아와서 
“주여 주의 이름 앞에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하고 기뻐하면서 자랑할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 무슨 의미입니까?

천국에는 계수된 자들의 기록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여러분의 존재가 하나님의 백성의 명부에 기록되었다는 것 보다 
더 위대한 사건은 없습니다. 이것은 죽어봐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디서 미리 맛보기로 확인하는지 아십니까? 
교적(교회 등록)입니다. 

그래서 중세 가톨릭 교회 때로부터, 교회 등록(교적)을 아주 중요시하게 여겨온 전통이 있었으나 
이것이 교회 확장론과 맞아떨어지면서 오용, 남용되다보니
오늘날은 그 가치가 아주 바닥을 찍고 있습니다만, 원래는 아주 고귀한 기록이었습니다. 

교적을 너무 고평가하여, 무슨 무기처럼 휘둘러서도 안 되지만 (가톨릭이 개신교보다 교적을 강조함)
반대로 너무 저평가하여, 쓸데 없는 것처럼 여겨서도 안 된다는 것이고, 
그러한 행적적 절차보다는, 그 정신, 그 본질, 그 의미('싸움에 나갈만 한 자)가 더 중요한 가치가 되겠지요.

 

물론 교적이 무슨 '면죄부'도 아니고, 천국에 들어가는 보증서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천국행 티켓이나 되는 것처럼, 성직자들이 과도히 휘둘렀던 시절도 과거 역사에 있었죠.

 

반대로 예수님이 오병이어를 먹이실 때, 교인등록을 시키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고요,

오늘날 개혁을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은 '교적'의 폐해를 들면서 '교적 폐지'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뭐든지 잘 쓰고 좋게 쓰면 좋은 것이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잘못 쓰고, 악용하면.. 나쁜 것이 되고 말지요.

 

▲3. 인구조사를 통해 얻는 또 하나의 교훈은 <공동체에 결속하십시오>

광야에는 길도 없고 이정표가 없고 따라서 지도도, 네비게이션도 없습니다. 
민수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광야에서는 떨어지면 죽습니다. 공동체에 결속해야 삽니다. 

혼자서 광야를 지나겠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만용일 뿐입니다. 
믿음을 가진 신자가 이 땅을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서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은 어렵고도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천로역정이 정상적이고 안전한 여정이 되어 마침내 천국에 들어가게 되려면 
여러분에게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저는 단순히 오늘날 사람들이 오해하는 교회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냥 주일에 한 번 잠깐 모이고 흩어지는 개개인들이 아니라, 
서로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며 돌보아주고 책임을 나눌 줄 아는 공동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교회이고, 이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주님께서는 자기 백성, 양떼들을 돌보시고 인도하십니다. 

여러분의 신앙 생활이 여전히 결속되지 않은 채 홀로 가는 자리에 있다면, 
여러분은 지금 아주 위험한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성도의 공동체와 성도의 교제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4. 그러면서 민수기는 영적 전쟁의 승리 비결과 
영적 전쟁의 패배 원인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영적 전쟁에서의 <패배 원인>에 대하여 살펴 보겠습니다. 
그 패배의 원인들은 10~21장까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1) 첫째로,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나옵니다. 
“백성이 (만나만 먹는다고)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민11:1). 

또한 민20:2절에 이들은 므리바라는 곳에서 ‘물이 없다고 원망’합니다. 
그 원망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다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찾아가서 공박합니다... 

2) 둘째는 불신앙입니다. 
민13~14장의 그 유명한 가나안 정탐 사건 때입니다. 

3) 셋째는 지도자들 간의 갈등과, 영적 권위에 대한 도전입니다. 
민12장에, 모세에게 아론과 미리암이 대적했습니다.

또 민16장에, 고라와 다단 등이 당을 지어, 모세를 대적했습니다.

△이러한 실패 원인들을 알려준 민수기는 
또한 영적 전쟁에 있어서 <승리의 원인>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영적 전쟁의 승리를 위한 가장 중요한 자세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영을 배치하는 것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전쟁을 치루어야 하는 이스라엘의 진영 배치를 보면 
성막을 가운데 짓고, 성막 4면에 각각 이스라엘의 진을 치되 
한 방향에 3지파씩 진을 치고 진영을 만드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가장 중앙에는 레위인이 진을 쳤습니다. 

 

1:52~53 '이스라엘 자손은 막사를 치되 그 진영별로 각각 그 진영과 군기 곁에 칠 것이나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이러한 진영 배치가 주는 메시지는, 성막을 중심으로 하여  
영적 전쟁에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활은 
항상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 
이 뜻은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매라는 뜻입니다. 

즉, 구약성경에서 성막을 이스라엘 백성 진영의 가운데 치라는 말씀과,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했다는 말은 똑같은 말입니다.

 

따라서 성막을 중심하여 장막을 치라는 말씀은 
장차오실 그리스도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실 것을 예표함과 동시에 
우리 삶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성막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고 그 지성소 안에는 법궤가 있었습니다. 
그 법궤 안에는 십계명이 있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진영의 중심에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는 말씀이 중심이 되어 그 말씀에 위로받고 교훈받아 
하나님의 말씀이 지시하는대로 따라가는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가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알려 줍니다. 
성막은 신약시대의 교회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신약시대 성도의 중심은 가정도 아니요, 사회도 아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성도들간의 신앙의 교제와 함께 기도에 전념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전하는 
교회의 삶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물론 과도한 교회 출입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 중심, 말씀 중심, 그리고 교회 중심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고 그러한 공동체에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약속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는 성막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진영을 배치할 때 
하나님께서 이들과 함께 하신다는 약속으로서 그 약속을 두 가지로 나타내셨다는 사실입니다.

1) 민9장에 보면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성막을 덮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낮에는 피할 그늘과, 밤에는 따뜻한 온기로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항상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을 중심으로 진영을 배치하고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전진하게 하실 때는 진영의 배치가 바뀌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움직이기 전에는 진영이 움직이지도 않고 바뀌지도 않았습니다. 
하루고 한달이고 1년이고 기둥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들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10:11의 말씀을 보게되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지 제 2년 2월 20일에 시내광야를 출발하게 되는데 
이 때 중요한 모습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2) 법궤가 앞서 가십니다.
즉 민10:33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진을 치고 있을 때는 법괘가 있는 성막이 가운데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삶을 예표하셨는데, 진행할 때는 대열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잘 보면 하나님의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앞서가면, 
레위인들이 성막의 기구들을 부분적으로 나누어서 이스라엘 백성 12지파 사이로 들어 갑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12 지파의 맨 앞에는 법괘가 서게 됩니다. 
어느 지파가 앞서 가는 것도 아니요, 모세가 앞서 가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제사장들이 법괘를 지고 맨 앞에 서면 다른 지파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의미는 “따라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우리는 주님보다 앞서가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말씀에 앞서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이 지시하는대로 따라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삶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의심과 염려를 버리고 오직 주만 따르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앞서 가시면 따라 가시기 바랍니다. 주님보다 앞서지 않기 바랍니다.
 

 

 

◑절별 해석 .......................................................................................

 

1: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10대 재앙으로 인해 마침내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나

언약의 땅 가나안을 향해 출애굽을 감행한 시점과 장소는 B.C. 1446년 1월 15일 고센 지역 라암셋에서 였다(출 12:37).

 

그리고 이때는 야곱이 요셉의 초청으로 그 가족과 함께 애굽으로 이주한 (BC 1876년) 때로부터

430년이 흐른 뒤였다(출 12:40).

 

한편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후 2달 만에 시내 산에 도착했다(BC 1446년 3월 15일, 출 19:1).

그리고 시내 산에서 성막 계시와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가지 규례들을 지시받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출애굽 2년(BC 1445년) 1월 1일에 성막을 건립했다(출 40:17).

 

그리고 성막 건립 후 곧 레위기 규례가 주어 졌다.

시기상 이 규례들은 출애굽 제 2년 1월에 주어진 것이다.

 

이어 민수기 규례가 출애굽 제 2년 2월 1일부터 주어지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이 모든 규례들은 시내산 기슭에서 주어 졌거나 혹은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제 2년(BC 1445년) 2월 20일에 시내 산을 떠났다.

이때는 시내 산에 도착한 지 9개월 닷새가 지난 뒤였다(10:11).

 

‘제 2년 2월 1일’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시점부터 만 1년 보름달이 지난 후의 첫날로서,

성막이 세워진 지 한 달 후이며(출 40:2, 17),

이스라엘이 군대로서의 조직을 완료하고 시내 광야를 떠나기 20일 전이다(10:11).

 

여기서 '2월'은 오늘날 태양력의 4, 5월에 해당한다.

한편 이스라엘이 이곳 시내 산에서 근 1년 동안 계속 체류한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된 선민으로서 그들의 삶에 필요한 종교. 도덕. 사회의 각종 율법을 계시 받고,

또한 그들의 삶의 중심적 역할을 할 성막을 건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출애굽의 감격에 도취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시간 내에 가나안에 입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따르는 신앙과 그분을 중심한 경건한 생활이었다.

만약 이것 없이 가나안이 쟁취된다면

그곳은 그들에게 복된 땅이 아니라 타락과 방종의 땅이 될 것이다.

 

‘광야 회막에서’

여기서 '광야'(미드바르)란 건조한 계절에는 생물이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되고

우기(降雨期)에만 풀들이 자라는 '스텝'(steppe)지역을 가리킨다.

결국 10월과 4월 사이에 내리는 약간의 겨울비와

8, 9월에 내리는 이슬로 1년을 버텨야 하는 팔레스틴의 기후 조건으로 볼 때

실로 '광야'는 인간이 견뎌내기 힘든 '죽음의 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곳에서 식량 생산을 위해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이

1년여 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정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그런데 이 '죽음의 땅'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임재 처소인 '회막'은

바로 이 기적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공한다.

즉 그들은 그들의 삶 중심부 깊숙이 개입하고 계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죽음의 땅 광야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광야에 세워진 회막은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고,

생명을 싹트게 하는 생명의 처소, 곧 '광야 교회'라 불리워질 수 있다(행7:38).

 

한편 본문에 언급된 회막(오헬 모에드)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만나는 장소'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리고 개역 성경에는 '오헬'이라는 동일한 원어가 '성막'(출 26:9), '장막'(출 16:16), '회막'(출 33:8)등으로

별 구별 없이 혼용(混用), 번역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구약의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공의로우시기만 한 분으로서

인간이 도무지 접근할 수 없는 초월적인 분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떨쳐버릴 수 있다.

진정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만나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원하시고 또한 기뻐하신다(사 55:1-7).

 

1:2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계수(計數)할지니’ - '계수하다'란 말은 히브리어로 '파카드'인데

'계수하다'는 의미보다 오히려 '점호하다', '정열하다'는 뜻의 군사적인 용어로 번역함이 좋

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군대 조직으로 재편성하시기 위해

인구조사를 명하셨기 때문이다(출 12:17, 51).

 

한편 KJV에서는 '총계를 내다'(take the sum)로,

여타 영역본에는 '명부에 게재하다', '등록하다'(register)로 번역했다.

 

1:46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 오백오십 명이었더라

 

‘603,550명’

이스라엘 12지파 중 싸움에 나갈 만한 군사로 부름 받은 자의 총계(總計)이다.

그런데 이 숫자는 대략 9달 전 성막 건축을 위한 속전 대상자의 총계와 동일하다(출30:11-16, 38:26).

 

본문의 통계는 성막 건축 전 속전 대상자의 명단 조사 결과(출 38:26)에 전적 의존한 것으로서,

여기서는 단지 군대 편제를 위해 가족과 종족과 지파별로 분류하여 공문서로 작성했을 뿐이라고 본다.

 

1:50 그들에게 증거의 성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 그들은 그 성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성막 주위에 진을 칠지며

 

‘증거막- 곧 하나님의 임재를 증거하는 성막을 가리킨다. 한편 이 말이 생겨난 것은

성막 속에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을 증거하는 증거판(십계명 두 돌판)이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성막이나 장막이란 말 외에 특별히 '증거막'(the tabernacle of the testimony)이라

지칭할 때엔 언제나 하나님의 율법, 계명, 규례 등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