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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21장. 심판 중에 나타난 은혜
LNCK
2021. 3. 29. 17:45
◈심판 중에 나타난 은혜 역대상21:장 2021.03.29.큐티묵상
다음 장인 역대상 22:장은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다윗’이란 제목을 달 수 있다.
대부분의 성경에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다윗은 석수와 목수와 놋과 철을 무수히 구해서
성전을 건축하는 준비를 완벽히 갖춘다는 설명을 22:장이 하고 있다.
오늘의 본문은 21:장인데, 그 제목은 ‘다윗의 인구 조사’이다.
사람이 돈을 세거나 무슨 셈을 자세하게 할 때는,
남의 것, 남의 소유를 가지고 그렇게 셈 (계산) 하지는 않는다.
다윗이 전국적인 인구의 셈을 명령한 것은
그 나라가 ‘자기 것, 나의 것’이라는 소유의식이 발동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그런 교만을 징계하셨고,
결국 사흘 만에 이스라엘 중에 7만이 전염병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이런 반전이 성경의 묘미가 될 수도 있고,
참으로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성품이요, 하나님의 섭리인데
하나님의 명백한 진노의 징계를 통하여
결과적으로 ‘성전을 지을 부지’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다음 장인 22:장이 ‘다윗의 성전 준비’가 그 표제어(제목)인데,
본문인 21:장도 ‘다윗의 성전 준비 파트 1’이 되는 셈이다.
본 장은 '인구조사를 명령한 다윗의 교만'을 그 주제로 볼 수도 있으나
역대기의 전체 주제와 흐름이 <성전 건축>이란 큰 흐름으로 흘러간다고 볼 때
본문 22:장은
‘성전을 짓는 다윗의 마음 준비’가 된다.
즉 전쟁에서 연전연승 하고, 필승불패 하며
수많은 전리품을 취하고, 뭐 하나 나무랄 데 없고 부족함이 안 보이는 다윗을
하나님은 징계하셔서 그를 철저히 낮추시고 겸손케 하셨다.
그의 겸손은 본문에 이렇게 나온다.
‘여호와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마당에서 멈추었다.
예루살렘을 멸하기 위해서 뺀 칼을 들고 거기 선 천사를 본 다윗은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16
앞서 그는 ‘내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기를, 즉 하나님이 주시는 벌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회개의 기본 자세이다. :13
그렇지만 다윗은 :17절에서 다시 회개한다.
자기 죄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다윗은 자기와 자기 집안을 멸해달라고 간청한다. :17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 (칼을 든 천사) 는
갓 선지자를 통해서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18
하나님이 ‘단을 쌓으라’고 명하시는 것은,
벌써 하나님이 다윗을 용서하시고, 그와 관계를 회복하시겠다는 신호였다.
그리고 :26절에, 하나님은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 번제에 응답하셨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26
이때 천사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서 비로소 자기 칼을 칼집에 꽂았다. :27
병행구절인 삼하24장에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 응답하셨다’는 내용이 안 나온다.
사무엘하는 선지자가.. 다윗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 초점을 맞춘 반면,
역대기는 제사장이.. 다윗의 죄가 용서받았음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참고로, 하늘에서 불을 번제단에 내리신 사건은 성경에 자주 나오는 표현이 아니다.
아마 아벨의 제사 때,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 때, 엘리야의 갈멜산 제단 사건 때,
그 외 레9: 24, 그리고 본문이다.)
▲번제를 드렸는데, 하늘에서 불이 내리자.. 성전건축 대지로 확정된다. :26
그러자 다윗은 이렇게 말한다. 역대상 22:1절
‘다윗이 이르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그 의미를 번역하면 이렇다.
‘이 자리는 하나님의 성전 터가 될 것이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 있을 자리가 될 것이다.’
◑심판 중에 나타난 은혜
왜 하필이면 오르난의 타작 마당인가?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터가, 예정지가 수 십 군데나 있었을 것이다.
아마 다윗은 성전 지을 터를 늘 염두에 두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땅만 보면 ‘여기가 거긴가?’ 하며 유심히 살펴보고 다녔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오르난의 타작 마당’으로 확정되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거기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다윗의 인구조사로 인한 전염병 심판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나타났겠지만
칼을 빼든 천사와 마주치고, 천사의 명에 따라 번제를 드리고,
드디어 천사가 칼을 거두는 등 .. 이 모든 <심판>의 주 무대가
바로 ‘오르난의 타작마당’이었다.
그것도 오르난은 여부스 사람이다. 삼하24:18~25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이다.
이런 저런 점을 감안한다면 ‘오르난의 타작마당’이야 말로,
어쩌면 성전 지을 부지로서, 가장 부적합한 예정지 1순위가 되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심판의 장소에서 긍휼과 은총을 베푸셨다.
불로써 응답하셨다.
신약적 표현으로 말하면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된’ 것이다. 롬5: 20
▲다윗왕에게는 많은 자녀들이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솔로몬이 그의 후계자인가?
솔로몬은 밧세바와 사이에서 낳은 부끄러운 아들이 아닌가!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맏아들은 암논,
길르압 - 압살롬 - 아도니야 - 스바댜 - 아드르람 이라' 삼하3: 2~5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들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입할과 엘리수아와 엘벨렛과 노가와 네벡과 야비아와
엘리사마와 브엘랴다와 엘리벨렛이었더라’ 역대상14: 3~7
그런데 여기 이름이 적히지 않은 아들들이 더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수많은 아들들이 있었는데, 다윗의 후계자는 왜 하필 솔로몬이었을까?
그는 지우고 싶은 이름 ‘밧세바’의 아들이 아닌가!
솔로몬이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게 된 것은, (그랬다고 가정 할 때)
그가 많이 사함 받았기 때문인가? 눅7: 47절에 비유해서.
▲왜 하필 바울인가? 당시에 얼마나 많은 제자들이 있었을 터인데...
선거철이 되면 ‘낙선자 명부’가 떠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절대 당선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인물들의 명단이다.
아마 ‘이방인의 사도’로서 낙선시켜야 할 명단 같은 것이 있다면
그 첫 번째 자리는 아마 ‘다소 사람 사울’이었을 것이다.
왜냐면 그는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 일에 가담한 사람이요
또한 외국에 가서까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옥에 넘긴 전력 때문이다.
그 당시에 인물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그렇게 많고 많은 후보자들 가운데
하필 사울 같은 인물을 택하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시고 기름부으셨는가?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한다는 네 여인도, 비슷한 이력을 가진 분들이다.
왜 하나님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을 택하여 쓰시는가?
왜 하나님은 하필이면 ‘심판의 장소, 심판의 랜드마크’인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성전을 지을 거룩한 장소로 택정하셨는가?
▲불신자에게 ‘심판’은 멸망으로 끝나지만
성도에게 ‘심판’은 긍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성도에게는 ‘심판’이 결코 ‘멸망, 끝장, 영원히 망함’으로 끝나지 않는다.
성도에게는 ‘심판’이 반드시 ‘회복, 은혜, 전화위복, 축복’으로 끝난다.
신약에 ‘나중 된자 먼저 된다’고 예수님이 거듭 말씀하셨는데
세상 법칙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가 지극히 어렵지만
하나님 나라의 법칙, 은혜의 논리로는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가 징계나 심판을 받았으나
회개하고, 돌이키고, 결국 회복된 것이.. 이전보다 더 잘 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혹시 징계를 받는 성도가 있다 할지라도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의지해야 한다.
어쩌면 그는, 징계를 받지 않는 성도보다 더 ‘나중 된 자 먼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자, 천사가 칼을 빼고 내리칠 기세로 내게 다가온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회개의 번제를 드리기를 쉬지 말아야 한다.
그 천사의 칼은, 성도를 회개로 인도하려는 칼이기 때문이다.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본문 :8절의 다윗의 고백처럼, 큰 징계를 당하더라도
회개하면 반드시 살 길이 보인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남 탓 하지 말고, 자기 죄를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 아뢰되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하니라’ 대상21: 17
▲마치는 말
보통 본문 역대상 21:장의 제목을 ‘다윗의 교만’이라고 잡는데
그보다는 ‘다윗의 성전 대지 마련 (준비)’이라고 제목을 잡아 본다.
왜냐면 이어지는 22:장이 ‘다윗의 성전 건축 준비’이기 때문이다.
성전을 건축하려는 다윗,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성전 건축을 준비하려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준비시키신 것은
<다윗아! 네 죄를, 네 교만을 깨닫고 납작 엎드려라> 였다.
성전을 건축하려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마음자세는 .. 고상함과 고고함과 교만이다.
‘내가 이런 거룩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남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다.
나는 하나님께 아주 중요한 일을 해 드리고 있다’는 생각이
건전한 자화상 수준을 넘어서.. 건강치 못한 교만과 ‘자기 의’로 발전하기 쉽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그런 자신감과 자아가 충만한 자세가 아니라
우리의 ‘상한 심령’이다.
오늘날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해 나아갈 때 ‘상한 심령’으로 해 나가는가?
아니면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기 의’의 충만한 자세로 해 나가는가?
위에서 예로 든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데 가담한 사도 바울 역시
절대로 ‘자기 의’가 있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나님은, 다윗이 자기 의로 충천한 가운데, 성전 건축 준비를 하기 원치 않으셨다.
그래서 다윗을 다시 한 번 죽이시는 것이다.
자기 때문에 무고한 국민들 7만 명이 사망하는 것을 그는 목격해야 했다. :14
아마도 성전건축 준비를 한다고 들떠 있는 다윗왕이
이제 그 어찌 어깨를 펼 수 있으랴?
‘나와 아비 집이 죄인이오니,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라는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17
오늘 내가 주의 일을 수행해 나가는 자세를 본문을 통해 돌아보게 된다.
내가 상한 심령, 겸비한 자세를 가지지 못하면.. 내가 하는 그 주의 일 때문에
주님은 나에게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본문의 다윗처럼!
(아예 주의 일을 안 하면 차라리 그런 심판도 없을 터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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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생각해 볼 내용
▲사무엘하 24:24에서는 다윗이 은 50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샀다고 했는데,
본문 대상21:25절은 금 육백 세겔로 샀다고 기록했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다.
후자는 ‘터 값’이라고 함으로써 타작마당보다 훨씬 넓은 땅을 가리킨다.
아마 성전을 지을만한 넓은 터를 산 것이다.
▲대상21:29절의
‘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성막과 번제단이 그 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었으나’
이 구절은 대상16:39절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
제사장 사독과 그의 형제 제사장들에게 <기브온 산당>에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 모시게 하여
즉 예루살렘으로 모셔온 법궤가 대상16:39절에 의하면 <기브온 산당>으로 최종 모셔진 것으로 여겨진다.
▲본문 15절에 ‘하나님께서는 뉘우치셨다’고 했는데,
‘하나님은 후회하심이 없으시다’ (민 23:19)고 성경에 나온다.
일반적으로 <큰 그림>에서는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신지라 후회하심이 없으시다.
그러나 하나님도 인격이신지라, <작은 그림>에서는, 뉘우치신다
즉 그 뜻을 돌이키실 때가 있다는 것이 성경에 가끔씩 나온다.
▲사무엘하24장에는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이라고 나오고
역대상21장에는 ‘오르난’이라고 나온다.
같은 사람의 다른 이름이다. 히브리어로도 거의 같은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