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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37:1~9 바벨론 강변의 회한의 노래

LNCK 2021. 6. 24. 16:07

 

◈바벨론 강변의 회한의 노래                    시137:1~9                 여러 설교 정리

                                     

◑본문 해석

 

오늘 본문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부른 노래입니다.

6월은 현충일과, 육이오 한국전쟁이 있어서,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국경은 없지만, 조국과 나라는 있습니다.

우리는 육이오를 맞이하면서, 믿음의 사람으로, 성경적인 애국을 생각해야 합니다.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주1)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바벨론의 여러 강변' .. 거기에 유대 포로 정착촌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즉 도시가 아니라

완전히 사회와 격리된 노동자 수용소인데.. 아마 운하건설에 동원되었으리라 추정합니다.

그리고 겔1 :3에는 '그발 강가', 단8 :2에는 '을래 강변'이라고도 나옵니다.

여기서 그들이 '울었다'고 했는데, 흐르는 강물과 흐르는 눈물이 묘하게 조화되었을 겁니다.

  

“시온”은 바로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말인데,

시온 산 바로 아래에 성전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온'을 기억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말은 바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자유롭게 예배드리던 시절을 그리워했다는 뜻입니다.

 

2절에서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었다’는 것은,                         *수금 : 손으로 타는 악기, 하프

더 이상 수금을 켜며 즐거이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근데 창고에 두지 않고, 버드나무에 걸어 둔 것은 '전시 display'한 것 같습니다.

같은 동족 이스라엘들에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개이지, 흥겨운 노래가 아니다!'

이런 메시지를 심어주려고 했던 목적이라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이유는 2가지 인데,

-하나님 앞에 회개의 표시로, 울며 애곡은 할지언정 오락의 노래는 부르지 않겠다는 것과,

-또 하나, 이방인들이 노래를 청하기 때문에, 수금을 타며 노래하지 않겠다는 거죠. :3~4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그들이 특별히 '시온의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해서도 아니요

특히 시온의 노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사용된 신성한 음악인데,

바벨론인은 유대인을 조롱하기 위해, 그들에게 거룩한 노래를 연주하도록 요구했죠.

4절에서는 '여호와의 노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성전에서 부르는 노래였던 것이죠.

 

이스라엘을 배려해서도 아니요, 순전히 자기들의 기쁨과 여흥을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이건 벨사살이 성전 기명을 꺼내서 술을 따라 마신 것에 비견되는 신성모독 일 수 있죠.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유대인 포로들은, 도저히 거룩한 음악을 유흥을 즐기는데 돕는 목적으로 부를 수 없었죠.

그래서 아예 악기를 버드나무에 걸어버렸습니다. 강력한 거절의 의사표시였죠.  :2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전쟁에서는 패했지만

신앙에서는 조금도 양보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저항했다는 정신을 볼 수 있습니다.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5절, '오른손이 재주를 잊는다'는, 전후 문맥상 '수금을 타는 손과 그 재주(기술)' 입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뜻인데,

차라리 손이 재주를 잊을지라도, 바벨론을 위해서는 악기를 연주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6절, '혀가 입천장에 붙는다'는 표현도, 전후 문맥상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가장 즐거워하겠다는 뜻인데, 

차라리 입이 입천장에 붙어도 (노래를 못 부르게 되어도), 바벨론을 위해서는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들어 있습니다.

 

반어적으로, 오직 시온을 기억하면서만 내가 악기를 연주하고

예루살렘만 기억하면서만 노래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인데요..

굳은 애국심과, 헌신된 여호와 신앙의 표출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국경은 없지만, 조국과 나라는 있습니다.

 

▲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8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9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유대를 멸망시킨 두 나라, 즉 에돔과 바벨론에 대해 보복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바댜서를 보면, 이스라엘의 형제의 나라, 에돔이 한 일이 나옵니다.

에돔은 바벨론이 유대를 침략했을 때에, 그들을 돕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벨론 편에 서서, 유대의 멸망을 도왔습니다. 위 7절에 나와 있죠.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7

 

그래서 “예루살렘이 심판받던 날에, 에돔이 한 일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7

형제 나라인 에돔이, 유대의 멸망을 슬퍼하기는커녕, 기뻐한 일은 악한 일이었습니다.

   

7~9절은, 시편 저자가 저주를 퍼붓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게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에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자기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 있는 것도, 하나님의 공의 때문이었어요.

똑같은 공의를, 에돔과 바벨론에게 적용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하는 것입니다.

 

특히 9절에 ‘네 (바벨론의)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이것은 완전 저주 같이 들리지만,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쓰임 받아 이스라엘을 함락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한 선 이상으로, 선을 넘어서 이스라엘을 친 것은..

공의의 심판의 대상입니다.

아마 바벨론이 먼저 어린 아이를 바위에 쳐서 죽이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나 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공의의 하나님께, 공의의 심판을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지금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소서”라고   :7

자신의 한 맺힌 원한을 하소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

 

▲1. 우리나라도 6.25 전쟁 때, IMF와 같은 경제적인 위기 때,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교회에서, 골방에서 산에서 토굴에서 기도원에서 밤을 새우며,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무엘처럼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가장 큰 애국자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화를 낼 만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애국자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이니까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가 있으면, 그가 사는 나라를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고, 보호하지 않을 수가 없으시지요.

 

예를 들면, 여러분 자녀가 군에 입대하면

여러분은 우리나라 국방과 군대를 위해서 기도 안 하겠습니까?

내 아이가 군에 가 있는데, 당연히 기도하게 되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어느 나라에 무슨 봉사를 하러 가거나, 선교를 하러 갔다면

그 나라는 여러분의 기도 제목이 되잖아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 하는 성도가 이 땅에 살고 있다면

그러면 그 나라는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그냥 명목상으로만 예수 믿는 게 아니고, 주님과 정말 동행하는 사람,

그 마음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고, 그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그런 성도들이

애국자인 것은

하나님이 그들이 사는 나라를 포기하거나 버리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에 바벨론 강가에서 울었던 그 이스라엘들,

그들이 바로 애국자였던 것입니다.

 

오늘도 애국한답시고, 시청앞에 나가서 태극기 흔드는 일이 필요할지 모르나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우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애국이 될 것입니다.

  

▲2. 촛대가 옮겨지면 포로로 붙잡혀 갑니다.

계시록 2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 그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내가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겨버리리라.’

 

‘촛대를 옮기겠다’는 말씀은 주님이 교회를 버리시겠다는 뜻입니다.

 

에스겔 8~9장에 보면,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 가기 직전에

먼저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버리셨습니다.

그 다음에 포로생활이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복음 - 생명 - 영생 - 첫사랑’의 가치를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만약 계속 잃어버리고 회복하지 않으면, 결국 촛대가 옮겨지게 되고

그 결과 이방에 포로로 잡혀 가고, 발에 밟히는 소금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나중에 포로로 잡혀가서, 슬프게 우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물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그곳에도, 주님이 함께 가셔서 그들과 함께 계셨지만,

아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만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미리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3. 세상은 결국 무너져버릴 바벨론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세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조롱하고 무시하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영적으로 분명히 '바벨론' 세상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바벨론 앞에서 노래하라'

우리 앞에서 '너희 신앙의 노래를 불러보라'고 조롱하듯이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세상은 얼마나 화려하고, 또 얼마나 보기 좋은 것들이 많은지요.

그래서 잠깐 잠깐 우리의 마음이 바벨론 같은 세상에 현혹되기도 합니다.

 

'결국은 돈이야 돈을 벌어야 돼'

'성공해야 돼! 한 번 잘 살아 봐야지!'

바벨론은 그런 마음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불어 넣어줍니다.

 

마치 이 세상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여기에다가 터잡고 세상을 위해서 영원히 살라고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오늘 본문 시137편 기자의 고백처럼

'우리는 절대로 바벨론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지 않을거야!'

'저들의 장단에 맞춰서 노래부르지 않을 거야!'

하는 그 분명한 결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바벨론은 반드시 멸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믿어지지 않는 고백을 이렇게 합니다.

8절에 '멸망할 바벨론 도성아!' (새번역)

 

그들이 바벨론에 와서 보았을 때, 그들이 본 바벨론은 멸망 할 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 거대한 건물들과 그 화려한 문명, 그 막강한 군사력!

'도대체 누가 바벨론을 무너뜨릴 수 있겠느냐!' 당시 사람들은 다 그렇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 강성했던 바벨론..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고고학자들이 겨우 그 옛날 바벨론의 잔해를

그 땅 속 흙더미 속에서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떵떵거리고 있는 물질주의적 세상도

언젠가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며,

폐허더미 속에 파묻혀 버리고 마는 날이 .. 결국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찬란했던 세상 모든 역사와 문명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고 말았으니까요!

 

그 바벨론이 실제로 지진 등 자연재해와 외적의 침입으로 삽시간에 무너졌습니다.

약 80년밖에 제국이 지탱하지 못했습니다.

고대 제국들 가운데 아주 짧은 역사를 지닌 제국이었습니다.

 

이미 이스라엘 포로들은, '멸망할 바벨론 도성'이라고 불렀습니다. 믿음인 거지요!  :8

하나님이 영원히 살아계시지, 바벨론은 영원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바벨론은 그렇게 무너졌고, 이스라엘은 포로에서 귀환했습니다.

 

영적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성경은 '바벨론' 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바벨론 세상이 반드시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18 :2절에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오늘날 부동산 - 주식 - 비트코인 뭐 이렇게 난리를 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이 세상 문명은, 결국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앞에서 노래하면서, 같이 즐기며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바벨론을 위해서, 여기서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함께 다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에 있는 도성을 바라보며 사는' 성도들입니다. 히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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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본문 시137편을 우리 실정에 맞게 지은 시

(김정준 목사의 ‘시편명상’에서)

 

북해도 탄광에서나 만주 벌판에서 서울을 생각하고 우리는 울었다.

저기 버드나무 가지에 우리의 퉁소를 달았다. 우리의 장구도 달아버렸다.

아, 우리를 징용해온 이 자들이 즐기도록 어찌 양산도를 부르리! 어찌 아리랑을 부르리!

내 조국 노랫가락을 이 이역에서 부를진대, 내 혀여, 입천장에 붙어버려라!

내 겨레의 노래에 맞추어 장구를 칠진대, 내 손가락이여, 장구에 붙어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