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CK
2021. 7. 21. 11:55
◈아가서 6장 설교 및 주석
◑사랑이 회복되면 더 견고해진다 아6:1~13 여러 설교 정리
늘 외롭고 춥게 살아가던 고슴도치에 관한 동화가 있습니다. 주1)
▲1절 (합창) 여자들 가운데에서 어여쁜 자야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돌아갔는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예루살렘의 여자들 (합창자)이, 앞서 5:13절에서는 술람미를 비웃었어요.
5:13 (합창) ‘술람미 아가씨여, 제발 돌아오세요. 당신이 보고 싶으니, 제발 돌아오세요.’
이 말은 이런 뜻입니다.
‘거봐라, 네 같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어떻게 솔로몬을 사랑하냐?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라는 뜻으로 조소했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술람미는 남편 솔로몬을 자랑하고 예찬합니다.
아가서 5:10~16절에, 일곱 절에 걸쳐서 길게 길게 자기 신랑을 찬양합니다.
술람미의 말을 들은 예루살렘 여자들은
솔로몬(예수님)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면
술람미가 이토록 사랑하는지 그를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여인들이 함께 찾아 나선 것입니다. 6:1
술람미가 진심으로 솔로몬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여인들에게 마음이 전해진 것처럼,
여러분이 예수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은 그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어서 교회로 올 것입니다.
예루살렘 여인들이, 술람미와 함께 신랑을 찾아나서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점차 남편에 대한 술람미의 사랑의 진심을 깨닫고.. 술람미에게로 돌아섭니다.
그리고 여인들은 술람미에게 아주 힘이 되는 말을 해 줍니다.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6:1
앞서 5장에서 솔로몬과 술람미의 관계가 약간 틀어졌는데, 5:1~9
주위에서 이제 그 두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켜주려고, 도움을 주려고 나서게 됩니다.
(실제로 우리도, 부부관계, 교우관계, 목회자와의 관계가 틀어졌을 때
주위에서 나서서 그 틀어진 관계를 회복시켜주려는 노력이 아주 귀중하고, 효과 있습니다.)
그들은 술람미를 ‘여자들 가운데 어여쁜 자야’라고 불렀습니다.
원래 그 말은, 솔로몬이 술람미를 부르던 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루살렘 여인들(합창자)도 그렇게 불러주는 거죠. 이제 술람미를 동정하게 된 것이죠.
▲2절 내 사랑하는 자(신랑)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5장에서 밤에 술람미가 문을 더디게 열어서, 만남이 불발되어서
그 밤중에 술람미가 신랑을 찾아나섰으나 순찰자, 파수꾼들에게 수모만 당했습니다.
이제 6:1절에서, 예루살렘 여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다 함께 신랑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신랑 솔로몬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자기 동산에서 꽃밭을 돌보며, 양을 돌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6:2
신랑은 자기 있어야 될 곳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아마 왕궁 어느 곳에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가 다시 회복됨을 :3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3
이 구절을 영적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으면
주님은 먼 곳에 떠나 계시지 않습니다. 항상 우리 가까이에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와 말씀과 찬양으로, 주님과 멀어진 관계를 속히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솔로몬은
술람미보다 훨씬 높은 생각과 넓은 마음과 인생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술람미가 서운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을 회개하고 자기를 찾아오자 아내를 기꺼이 맞아 주었습니다.
이것이 연약한 아내를 안아주는 든든한 남편의 모습이며,
탕자와 같은 성도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3절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떼를 먹이는도다
술람미는 많은 양떼가 남편에게 속해 있는 것처럼
자기 역시 남편에게 속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들이 솔로몬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르고 순종하는 것처럼,
자기 역시 남편과 하나가 되어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요14:20절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과 술람미가 하나인 것처럼,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도들이 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인이었던 성도들이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를 감당한 그리스도의 희생이 없었다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자기를 찾아 먼 길을 온 술람미의 간절한 눈을 보자
솔로몬은 여인이 진심으로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심령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물론 성도들도 세상의 열심과 욕심과 계획을 버리지 못해서,
하나님을 서운하게 해 드리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는 것만큼 귀한 믿음도 없는 것입니다.
참고로, 앞서 솔로몬은 비슷한 말을 했던 적이 있다.
2:16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4절부터는 신랑의 노래입니다. 10절까지
이제 자기를 찾아온 술람미를 보고서
남자의 마음이 확 열리면서, 잠시 멀어졌던 그들의 관계가 회복됨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4
디르사와 예루살렘은.. 예루살렘에서 대표적으로 아름다운 두 도시입니다.
‘네 눈이 나를 놀라게 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5
진짜 보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 정말 아름다워서 쳐다보기 힘들다는 말입니다.
반어법입니다. 속뜻과 반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나를 봐달라는 뜻입니다.
‘네 이는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 떼 같으니 쌍태를 가졌으며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구나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6~7절
이 표현은 4:1~2절과 같은 말입니다. 솔로몬이 청혼할 때 했던 말이었죠.
이 말이 중요한 것은, 솔로몬이 아내에 대한 칭찬이 회복된 것입니다.
사랑이 회복되려면.. 칭찬이 먼저 회복되어야 됩니다.
사람들은 ‘그걸 꼭 말을 해야 아느냐?’고들 하지만, 현실은 말을 해야 (사랑하는 줄) 압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 모릅니다.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8~9
내 주위에 수많은 셀 수 없는 여인들이 있지만
내 사랑은 오직 네 하나 뿐이로구나! .. 라고 솔로몬이 고백했는데
이 귀한 신랑의 고백이 .. 갈등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사랑의 회복은.. 칭찬의 회복입니다.
사랑이 회복되려면.. 주변에서 부추겨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회복되면.. 원래보다 더 깊은 사랑, 더 온전한 사랑
더 아름다운 사랑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고, 도약의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함께 있을 때보다는 떨어졌을 때 그 진가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평상시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더 인격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며,
상대를 존중하는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남편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는 성도와 아내는
자신이 지금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행복한 사람인지 잘 모릅니다.
그 울타리가 얼마나 자기의 인생을 지켜준 버팀목이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랑을 쉽게 배신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남편에게 버림을 받으면,
세상과 사람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당하게 될 것이며,
그제서야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따뜻했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목자가 늘 곁에서 지켜주며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고, 물이 흐르는 시냇가로 인도할 때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목자를 잃고 낯선 곳에 홀로 있게 되면, 그 동안 목자가 곁에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가지 않고 마음대로 꼴을 찾다가 목자와 헤어지게 되면
낯선 곳에서 아무리 울어도 따뜻한 목자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양에게 목자가 없다는 것은 들짐승이 모여들어도 그들을 쫓아내 줄 보호자가 없는 것이고,
안전하게 들어가 머물 수 있는 피난처가 없는 것입니다.
양은 그제서야 세상이 두렵고 무서워 목을 놓아 울었습니다.
이렇게 한눈을 팔다가 길을 잃어버린 양을 목자가 찾아 온 것입니다.
목자를 보는 순간 양이 얼마나 기뻤을지 이해가 됩니다.
▲10절,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냐고 예루살렘 여자들이 말했습니다.
남편을 만난 술람미가 너무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에 놀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만 해도 얼굴에 빛이 나며,
눈이 부시도록 외모가 아름답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성장하는 성도들은 영적으로 빛이 나기 때문에
외모를 꾸미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게 기품이 있어 보입니다.
그의 세상의 삶은 가난하고 병들고 연약해도
그에게서 품어져 나오는 영적 권위는 술람미처럼 단연 돋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성장하는 성도들은 행동이 먼저 달라집니다.
즐기던 세상의 습관을 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깎고 다듬는 노력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다가 넘어지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나
진리의 길로 가기를 멈추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도 말씀으로 돌이키셨거든 힘있게 일어나서 달려가시고
다시는 세상을 돌아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13절,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13 (합창) 술람미 아가씨여, 제발 돌아오세요. 당신이 보고 싶으니, 제발 돌아오세요.
(남자) 두 줄로 늘어선 무희들 가운데서 그녀가 움직이는 듯,
술람미 아가씨를 바라보고 싶은 그대들 심정. *쉬운성경, 마하나임을 '두 줄'로 번역함
'마하나임'은 두 진영 혹은 두 군대를 뜻합니다.
야곱이 그렇게 부른 것은 두 군대로 형성된 많은 천사들,
즉 만군의 천사가 야곱 일행의 전후 혹은 좌우에서 옹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남편 곁으로 오자 술람미는 마하나임(두 군대)처럼 아름답고 기품있어 보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만 했는데도 여인은 이렇게 변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교회와 성도의 모습이 이래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교회와 성도는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기품이 있고,
위세 당당해야만 세상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을 주시는 그리스도께서 곁에 계시는데 무엇이 두려울 것이며,
세상의 권세에 위축 될 필요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사랑을 주는 신랑의 품에서 행복과 안식과 평안의 빛을 발산하면 되는 것입니다.
술람미가 밤을 새워 남편을 찾아 다닐 때는
순찰하는 사람들에게 어미 잃은 아기 새처럼 공격을 받았지만,
이제 솔로몬이 곁에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이며, 진심으로 사랑하는 부부의 관계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권세를 가지고 교회와 성도를 넘어뜨리려 해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군대가 성도를 호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성도들이 확실하게 믿으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 하늘의 보호를 받는 성도들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자이고,
복된 자라는 칭송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의 곁에서 보호받는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아가서 6장 주석 출처
▲1절 (합창) 여자들 가운데에서 어여쁜 자야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돌아갔는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너의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함께 찾으리라’
예루살렘 여자들은 (1절의 주어)
이전에 술람미 여자가 솔로몬에 대해 증거하기 전에는 그를 잘 알지 못했으나,
이제 솔로몬 왕에 대한 술람미 여자의 예찬(5:10~16)을 듣고 난 후에는
함께 찾아나설 것을 제안한다.
이것은 그들이 그만큼 솔로몬 왕에 대해 알고 관심을 표명하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이는 예표론적인 의미에서 볼 때
솔로몬 왕으로 예표된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자들이
그분과 보다 성숙한 관계에 있는 자들의 간증을 듣고서
그들도 그분께 대해 보다 더 친근한 마음과 사랑을 갖고 대한다는 것을 예시해 준다.
▲2절 (여자)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이는 예루살렘 여자들의 반응(1절)에 대해 술람미 여자가 한 말이다.
여기서 술람미 여자는 솔로몬 왕이 거하는 곳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술람미 여자가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도 솔로몬을 찾았음을 나타내는 것으로써,
예표론적인 의미에서 볼 때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찾으려고 노력할 때
주님을 만날 수 있음을 예시해 준다(사 55:6; 렘 29:13).
한편 '자기 동산'이란 문자적으로는 솔로몬 자신의 정원을 암시하나
은유법적 표현으로서는 4:12, 16; 5:1을 근거해 볼 때 술람미 여자 자신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는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자에게 돌아왔음을 나타낸다.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은유적인 측면에서 '향기로운 꽃밭'은 뺨을 가리킨다(5:13).
따라서 본 구절은 솔로몬 왕이 그의 사랑하는 자에게 가까이 가서
그와 함께 기쁨과 아름다움을 누리는 것을 암시한다.
‘동산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동산'에 해당하는 '가님'은 복수형이다.
이는 상반절의 '동산'에 해당하는 '가노'가 단수인 것과 대조된다.
이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전자가 술람미 여자를 의미하는 반면,
후자는 그의 또 다른 여자들을 암시한다고 본다(Lange).
당시 솔로몬은 많은 왕후와 비빈을 두었는데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아6:8, 왕상11:3
'양떼를 먹이며'란
솔로몬 왕이 그의 그늘 아래 있는 자들을 돌보며 인도하는 것을,
'백합화를 꺾는구나'란
솔로몬왕이 그의 사랑하는 자들 특히 술람미 여인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을 암시한다.
'양떼'와 '백합화'에 대해서는 각각 1:7; 2:1, 2등을 참조하라.
▲3절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속하였다’
이는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자가 사랑으로 연합한 결과를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은 말은 2:16에도 비슷하게 언급되나
그곳에서는 술람미 여자를 중심으로 솔로몬 왕이 그녀에게 속한 것을 먼저 언급했으나,
본 구절에서는 솔로몬 왕을 중심으로, 술람미 여자가 그에게 속한 것을 말하고 있다.
(어순이 그렇다는 뜻)
이는 술람미 여자가 초기의 자기 중심적인 사랑에서 헌신적, 희생적, 사랑으로
그리고 받는 사랑에서 주는 사랑으로 성숙하게 변모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예표론적인 의미에서 볼 때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는 성도들이
초기에는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구원하신 것을 생각하고 만족하나,
후에는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며 또한 그렇게 사는 것이 참다운 기쁨과
소망임을 깨닫고 전적 순종과 헌신의 삶을 살게 됨을 예시한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그 양떼를 먹이는구나’
본 구절 역시 2절 하반절의 의미와 동일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솔로몬 왕이 왕궁의 다른 여자들과 같이 노닐며 즐거워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의 연합으로 술람미 여인에게 속하였고 그녀가 그에게 속하였으므로
그의 사랑을 의심치 않음을 암시한다.
▲4절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내 사랑아 너의 어여쁨이 디르사 같고’
첫 사랑의 고백을 반복한 신부에게(3절; 2:16) 신랑 역시 사랑을 확인한다.
'디르사'란 '아름다움', '즐거움'등의 뜻을 가진 성읍으로서
사마리아에서 동쪽으로 약 14km, 세겜에서 북동쪽으로 약 11km 지점에 위치한다(수 12:24).
이는 후에 이스라엘이 분열된 후 오므리 왕 때까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로 존속한 적도 있었다(왕상 14:17).
솔로몬 왕 당시 이 성읍에는 관개 시설을 통해 조성된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던 것 같다.
‘너의 고움이 예루살렘 같고’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자의 아름다움을 예루살렘에 비유한 것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중심이요 하나님의 거하시는 성으로서 이스라엘인들의 사랑을 받는 것인 바,
술람미 여자가 솔로몬에게 그만큼 아름답고 사랑받는 존재임을 나타낸다.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 같구나’
'엄위함'에 해당하는 '아우마'는 문자적으로는 '공포'(terror), '무서움'(dread)등을 뜻한다.
이것은 술람미 여자가 단순히 아름답고 고울 뿐만 아니라
불의와 부정에 대해서는 추호도 여지를 주지 않는 냉철함과 위엄있는 여자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기치'의 히브리어 '데갈'은 2:4의 '기(旗)'와 같은 말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신부의 엄위함이 승리한 군대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개선하는 것처럼
당당하고 위엄이 있음을 뜻한다.
예표론적인 의미에서 볼 때는 그리스도의 신부된 성도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뿐만 아니라
죄의 씨앗이나 사단의 세력 등이 전혀 침입할 수 없는 강하고 엄위한 자가 되어야 함을 암시한다.
▲5절 네 눈이 나를 놀라게 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고
‘네 눈이 나를 놀래니 돌이켜 나를 보지말라’
이것은 앞절의 '엄위함'이란 말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놀래니'의 히브리어 '라하브'는 '압도하다'(overwhelm), '이기다'(overcome)는 뜻이다.
따라서 본 구절에서는 신부의 순결하고 사랑의 열정으로 가득 찬 눈이
솔로몬을 압도하고 사로잡은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신부의 눈길을 거절하려는 의미보다는
신부의 눈이 너무도 순결하고 아름다우며 사랑의 빛으로 가득 찼으므로
신랑 자신이 사랑의 감정을 가눌 수 없을 정도임을 암시한다.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떼 같고’
이는 술람미 여자의 머리털 숱이 많고 검은 윤기가 흐르는 것을 암시한다(4:1).
솔로몬이 앞에서 말한 신부에 대한 칭찬을(4:1-5) 다시 언급한 것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재삼 강조함과 아울러 그녀에 대한 사랑이 변치 않았음을 나타낸다.
▲6절 네 이는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 떼 같으니 쌍태를 가졌으며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구나
술람미 여자의 치아가 쌍태를 나은 양 같이 고르며 하얗다는 뜻이다(4:2).
▲7절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술람미 여자의 뺨이 잘 익은 석류 쪽처럼 홍조를 띠어
건강미가 넘침을 나타낸다(4:3).
▲8절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왕후가 육십이요...시녀가 무수하되’
'왕후'는 왕비요, 후궁은 첩들을 의미한다.
또한 '시녀'는 낮은 부류의 여자들로서 왕후들을 시중들었던 자들인 것 같다.
한편 위에 언급된 왕후와 비빈의 숫자는
"후비가 칠백 인이요 빈장이 삼백 인이라"는 왕상 11:3절의 내용과 다르다.
이 차이는 본서가 쓰여진 시기가 왕상 11:3 당시보다 이른 때였기 때문에 비롯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본절에서 솔로몬이 그의 사랑하는 신부의 아름다움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궁궐 내부에 많은 여인들이 있음을 언급한 것은
술람미 여자가 그들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임을(9절)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예표론적인 의미에서 이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성도들은
단순히 구원의 반열에 들어선 데에 머물지 않고
개인적으로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헌신함으로써
주님과 깊은 사랑과 교제를 나눌 수 있어야 함을 교훈한다.
▲9절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가 귀중하게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비와 후궁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 2:14, 5:2 주석을 참조하라.
‘그는 그 어미의 외딸이요...귀중히 여기는 자로구나’
이는 동의 대구법(同義對句法)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외딸'이란 단순히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라는 의미보다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특별히 사랑받고 귀중히 여김받는 딸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런 표현은 잠 4:3에서 솔로몬 왕이 그의 어머니 밧세바에게서 난 많은 형제들 중
자신을 가리켜 그 어머니의 유약한 외아들이라고 표현한 것과 유사하다.
아울러 이는 술람미 여자가 솔로몬에게 더욱 사랑스러운 자임을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시적(詩的) 표현이라 하겠다.
또한 '귀중히 여기는 자'란,
'깨끗이 하다', '선택하다'란 뜻의 '바라르'에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RSV는 이를 '흠없는'(flawless)으로 옮겼으며,
KJV는 '선택된 자'(the choice one)로
NIV는 좀 더 유추하여 '사랑받는 자'(the favorite)로 번역하였다.
아무튼 본 구절은 술람미 여자가 솔로몬에게 특별히 사랑과 귀여움을 받는 자임을 묘사한 것이다.
‘여자들이 그를 보고...칭찬하는구나’
여기서 '여자들'(바노트)이란 문자적으로는 '딸들'을 의미한다(창 24:23, 24; 민 27:7, 8).
혹자는 이들이 8절의 '시녀'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하며(Lange),
혹은 이 단어가 본서에서는 주로 예루살렘 여자들(1:5; 2:7)과 관련되어 사용된다고 본다(2:2).
본 구절에서 이들과 함께 왕후와 비빈들도 술람미 여자를 칭찬한 것은
그들도 그녀의 아름다움과 솔로몬 왕에 대한 사랑을 인정하고 경탄하였음을 시사한다.
▲10절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아침 빛같이 뚜렷하고’
본절에 대해서는 '왕후와 비빈들이'(9절) 한 말,
혹은 3:6과 1:8; 5:9처럼 예루살렘 여자들이 말한 것으로 보기도 하나
여기서는 이들 모두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함이 무난하겠다.
한편 '뚜렷하고'에 해당하는 '하니쉬카파'는 '내려다 보다', '주의하여 보다'는 뜻을 내포한다.
NEB는 '내다보다'(looks out)로,
JB는 '솟아오르는'(rising)으로,
NIV는 '나타나는'(appears)으로 각각 번역하기도 하였다.
이중 어떤 번역을 취하든 본 구절의 의미는
술람미 여자가 하늘에서 땅에 내려 비치는 아침 빛처럼 탁월하고 아름다움을 암시한다.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맑고'의 히브리어 '바라'는 '흠이없이 깨끗하고 밝은 것'(시 19:8)을 뜻한다.
따라서 본 구절은 술람미 여자가 달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해처럼 흠이 없이 밝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여자가 누구인가’
술람미 여자의 기품의 뛰어남과 당당함을 뜻한다.
▲11절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혹자는 본절을 솔로몬이 한 말이라고 생각하나,
일반적으로는 10절의 말에 대해 술람미 여자가 한 말로 본다.
여기서 '골짜기'란 일반적으로 건조기에는 물이 마르나 우기에는 물이 급하게 흐르는
깊고 좁은 골짜기를 가리키나
여기서는 주변에 나무들이 자랄 수 있도록 수분을 공급하는 골짜기를 말하는 것 같다.
델리취는 이곳을 베들레헴 남쪽 약 2,4km 지점에서 위치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물을 공급하는 우물이 있는 '에담'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푸른 초목'에 해당하는 '이베'는 '녹색식물' 혹은 '과일'을 뜻한다.
▲12절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를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게 하였구나
‘부지중에 내 마음이...수레 가운데 이르게 하였구나’
'수레'에 해당하는 '마르케보트'는 '수레들'을 의미한다.
이는 여러 말들이 끄는 많은 무리의 수레들
즉 한 나라의 왕이나 높은 고관들이 행차할 때 수행되는 많은 수레(병거)들을 의미한다(삼상 8:11; 삼하 15:1).
따라서 본절은 술람미 여자가 솔로몬 왕의 귀한 신부로서 솔로몬 왕이 보낸
또는 왕이 함께하는 수레들 가운데로 이르게 되었다는 뜻을 암시한다.
그리고 '내 귀한 백성'이란 솔로몬 왕이 파송한 신하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13절 (합창)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보게하라’
이는 일반적으로 예루살렘 여자들이 술람미 여자에게 한 말로 본다.
그러나 '왕후'와 '비빈' 혹은 솔로몬의 결혼 잔치에 참석한 친구들이 한 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돌아오고 돌아오라'는 반복적 표현은 술람미 여자를 속히 보고자 하는 마음을 강조적으로 나타내준다(4:1).
한편 '술람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 '술람미'(슐라미트)란 솔로몬(쉘로모)의 여성형으로서
'솔로몬이 사랑하는 여인', '솔로몬의 신부'를 가리킨다는 설.
2) '술람미'란 하나의 지명으로서 이스라엘의 갈멜 산에서 동남쪽으로 약 25.6km 떨어진
'수넴'을 가리킨다는 설.
이 경우 '술람미 여자'란 '수넴에 사는 여자'를 가리킨다.
이 두 견해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으므로, 단정적인 양자택일을 하는 것은 다소 무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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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성경)
6:1 (합창) 여인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여, 그대 애인은 어디로 갔나요?
어디로 가셨는지, 우리가 그대와 함께 그를 찾을 것입니다.
:2 (여자) 나의 애인은 자기 동산, 향기로운 꽃밭으로 내려갔을 거예요.
동산에서 양 떼를 먹이고, 백합화를 모으러 갔을 테지요.
:3 나는 내 애인의 것, 나의 애인은 나의 것.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이네.
:4 (남자) 나의 사랑, 그대는 디르사같이 아름답고, 예루살렘같이 사랑스러우며
깃발들을 날리는 군대처럼 당당하오.
:5 그대 두 눈을 내게서 떼시오. 그대의 눈이 나를 삼킬 듯하오.
그대 머리털은 길르앗에서 내려오는 염소 떼 같소.
:6 그대 이는 새로 목욕한 양 떼 같소. 모두 짝이 있고, 하나도 홀로 있지 않소.
:7 가리개 너머 그대의 두 뺨은 쪼개 놓은 석류 반쪽 같소.
:8 왕후가 육십 명, 후궁이 팔십 명, 궁녀들은 셀 수도 없이 많지만,
:9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오직 하나뿐. 그 모친의 외동딸이자,
그녀를 낳은 자의 총애하는 자. 아가씨들은 그녀를 보고 복되다 하고,
왕후나 후궁들도 모두 그녀만 칭찬하네.
:10 새벽빛같이 솟아오르고, 달처럼 아름답고, 해같이 빛나며,
기를 높이 든 군대같이 당당한 이 사람은 누구인가?
:11 (여자) 호두나무 숲에 내려가, 골짜기에 새움이 텄는지,
포도나무에 싹이 돋았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고자 했더니,
:12 나도 몰래, 그가 어느새 내 백성의 귀한 병거에 나를 태우네.
:13 (합창) 술람미 아가씨여, 제발 돌아오세요. 당신이 보고 싶으니, 제발 돌아오세요.
(남자) 두 줄로 늘어선 무희들 가운데서 그녀가 움직이는 듯,
술람미 아가씨를 바라보고 싶은 그대들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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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늘 외롭고 춥게 살아가던 고슴도치에 관한 동화가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마음을 줄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자기처럼 외로움으로 아파하는 한 고슴도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둘은 같은 외로움을 갖고 있었기에, 서로를 위로해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함께 살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고슴도치 부부는 서로 마음을 나누며, 추위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서로 안아주려고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사랑하고픈 마음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고슴도치 몸에 난 가시가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가시에 찔리면 반사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상대방으로부터 받는 상처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고슴도치 둘은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부부는 너무 바짝 붙어 있으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사랑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섬기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배웠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상대를 사랑한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소유욕이 생깁니다.
상대가 자기 가시에 상처를 입고 아파하는 줄도 모르고,
마치 자신의 소유인 것처럼 마음대로 행동하니까
결국 상처만 입고 곁을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사랑하는데 가장 적당한 거리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몸의 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이 좋은 부부라고 해도
성숙한 인격을 가지고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 섬겨줄 때
두 사람의 사랑은 더 오래 깊이 간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부모와 자식간에도 마찬가지이고 모든 곳에 적용 될 것입니다.
정말 친하면 친할수록 서로 조심해야 하고,
적당한 선을 두어야만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습니까?
내 모난 성격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내 상처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인간은 절대로 일방적인 행동으로 상대를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일방적인 사랑도 사랑’이라는 스토커가 있지만,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것은 물론,
내가 준 사랑이 반드시 상대를 이롭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품어야 하는 남편들이, 자기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작은 그릇일 때
가정을 파탄으로 이끌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한 가정의 가장은 큰 그릇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