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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95편 우리가 주님께 즐거이 노래하자
LNCK
2021. 8. 1. 19:50
◈우리가 주님께 즐거이 노래하자 시95:1~11 스크랩, 녹취
우리는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받고 삽니다.
우리가 그것을 깨달을 수도 있고,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부족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나아갈 때, 즐겁게 하나님께 예배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시편 95편은 그렇게 시작합니다.
'오너라 우리가 주님께 즐거이 노래하자. 우리를 구원하시는 반석을 보고 소리 높여 외치자.
찬송을 부르며 그의 앞으로 나아가서 노래 가락에 맞추어 그분께 즐겁게 소리 높여 외치자' 95:1~2
이런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시편은 늘 이 이야기만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편은 맨 똑같은 소리만 계속 하고 있네' 그래서 좀 진부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하나님께 즐거이 노래하고 예배하자!'
▲그런데 이 시편 95편은 그런 분위기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 입니다.
지금 시편 기자는 거의 울부짓는 호소를 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즐겁게 노래해야 됩니다.
여러분, 좀 큰 소리로 하나님께 그렇게 찬송 부를 수는 없나요?
여러분, 지금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셔야 돼요!'
이런 분위기로 본문에서 시편 기자가 말하고 있는 거예요.
마치 불이 났을 때 '불이야!' 하고 소리 지르는 것과 똑같아요.
시편 기자가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지금 이스라엘의 형편이 너무나 두렵고.. 어려울 정도로 무너져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95편은 7절 하반절로 내려가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찬양하고 즐거운 분위기 아닙니다.
아주 침울 하고 두려운 분위기 입니다.
이게 시편 95편의 배경이에요.
시편 기자는, '왜 우리 민족이 지금 이렇게 어려운 형편이 되었느냐?
지금 우리가 왜 이 꼴이 되었느냐?' 라고 질문합니다.
마치 요즘에 우리가 우리나라를 보면서 탄식하는 것과 똑같아요. *최순실 국정농단 당시
'우리가 어째서 이렇게 되었냐?'
▲시편 기자는 거기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늘 원망하고 불평하고
하나님께 대들고 하나님을 시험했던 그들과.. 우리가 똑같지 않느냐? ..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시편 기자가 대언합니다.
8절 말씀에 '므리바에서 처럼, 마사 광야에 있을 때처럼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므리바와 맛사 라는 지명은, 출애굽기 17장에 나옵니다.
므리바는 '다툰다'
맛사는 '시험한다'는 뜻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 하시면, 순종하지 않고 불순종하고
하나님께 대들고 항의하고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안 계신가 끊임없이 시험하고..
그랬던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너는 놀라운 사건을 통해서 구원받았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습니다.
반석에서 터져 나오는 물을 마셨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대들고, 그리고 하나님을 시험했던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므리바, 맛사 라는 이름을 그렇게 지었겠습니까!
▲하나님을 계속 말씀합니다 10~11절 말씀에
'40년을 지나면서 나는 그 세대를 보고 싫증이 나서
그들은 마음이 빗나간 백성이요, 나의 길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구나 하였고
내가 화가 나서, 그들은 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맹세까지 하였다'
약간은 거부감이 드는 말씀입니다. 보통 성경봉독 하고 나면
마지막에 다 큰 소리로 '아멘!' 그렇게 하는데, 오늘은 아멘 소리가 잘 안나옵니다.
왜냐면 본문의 마지막 부분(11절)이 아멘 하기에는, 좀 혼동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가 나셔도 그렇지..
싫증이 났다든지
화가 났다든지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맹세를 했다든지.. 이건 좀 심하잖아요. :11
그럼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돌덩어리처럼 굳어져서
이제는 바뀔 수가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아셨기 때문입니다.
8절에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 했는데
마음은 굳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돌덩어리처럼 굳어졌습니다.
하나님 앞에 불평 원망하다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순종하지 못하고 대들다가
진짜 하나님 앞에 제대로 된 예배 한번 드리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에 그들의 마음이 돌덩어리처럼 굳어졌어요.
하나님이 그걸 아셨습니다.
▲10절에 '그들은 마음이 빗나간 백성이요, 나의 길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구나'
그래서 하나님이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다 죽게 내버려 두셨던 겁니다.
시편 기자는, 지금 우리의 행위가,
그때 당시에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하고 똑같지 않느냐? ..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잃어버렸고..
예배를 드려도 형식적으로만 드리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한 불평과 원망만 가득하고..
하나님께 대들기도 하고..
하나님은 끊임없이 시험하고..
이렇게 하면 우리는 (광야 이스라엘처럼 다) 죽는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다 망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본몬의 시편 기자가, 이제라도 우리가 정신 차리고 예배를 회복하자!
하나님께 좀 즐겁게 예배 합시다! 좀 큰 소리로 찬양합시다!
그렇게 외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여러분의 예배가 죽지 않았다면,
정말 예배를 뜨거운 간격으로 드리고
마음에서부터 진심어린 찬송이 나오고
예배드리는 시간이 가장 좋으면...
여러분은 절대로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회복되고, 반드시 삽니다.
(개인적/ 공동체적) 예배가 살아 있으면, 그 사람은 반드시 삽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 십니까?
3절에서 5절까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은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나신 왕이시다
땅에 깊은 곳도 그 손 안에 있고
산의 높은 꼭대기도 그의 것이다
바다도 그의 것이며 그가 지으신 것이다
마른 땅도 그가 손으로 빚으신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 하나님을 믿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하고, 홍해바다를 만났을 때.. 절망 했어요. 거기서 죽는 줄 알았어요.
광야에 나갔을 때, 먹을 게 없고 마실물이 없었을 때
그들은 그렇게 해서 목말라 죽는 줄 알았어요.
여리고 성에 정탐꾼들이 들어가 보니까, 자기들은 메뚜기 같았어요.
그런데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 여러분들 다 잘 아시죠?
홍해는 결국 갈라졌고
만나가 아침마다 내리고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오고
여리고 성은 소리 한 번 확 지르니까 무너져 버렸어요.
그 두려운 순간, 그 정말 절망적인 순간 그게 다 기적 이었어요, 간증 거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처지와 형편에서도
하나님께 (개인적/공동체적으로) 예배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 제 2차 대전 때, 그때 대영제국의 왕실이
당시 가장 존경받던 영국 성공회 대주교였던 윌리엄 템플 주교에게
대국민 방송 설교를 요청을 했었습니다.
영국과 독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
그때 영국은 독일을 이길 수 있는 전투력이나 그런 국력이 아니었습니다.
독일을 바라보면서 영국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패배의식이 쫙 깔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어..'
그때 윌리엄 템플 주교가 라디오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방송 설교를 했는데
무슨 설교를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하실까?
국민들은 다들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때 윌리엄 템플이 뜻밖에 이렇게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대영제국의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볼 수 있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내일 이 땅의 모든 교회는 종을 울려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그분을 경배하며
그동안의 우리의 죄, 민족의 죄를 회개하고
이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십시다!'
그 설교를 듣고 영국 국민들이, 그 다음 날
모든 교회가 종을 치고, 그리고 교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그리고 나라를 구해 주시기를 기도했어요.
결과가 어떤지는 여러분이 다 잘 아시죠?
우리의 삶 속에 가장 위기의 순간이 오면,
사실은 그때가 하나님 앞에 제대로 예배를 드릴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27편에 보면, 다윗이 굉장히 어려운 일을 겪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 David의 살을 먹으려고 달려든다'고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27:2
'군대가 자기를 향하여 진을 쳤다'고 말했습니다.
전쟁이 지금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듭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다윗은 조금도 마음이 요동하지 않고 그는 담대하게 고백합니다.
시편 27편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어떻게 이렇게 담대할 수 있지요?
그것은 그의 기도가 (남들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시편 27편 4절에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one thing,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아니 세상에 수많은 군사들이, 군대가 자기를 향하여 공격해 들어오고
사람들이 자기 살을 뜯어 먹으려고 달려드는 이런 형국에서
정상적인 기도라면 '하나님 살려주세요, 하나님 나를 구원해 주세요. 나를 지켜 주세요!
내 대적이 다 물러가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해야 맞잖아요.
어떻게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일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 하는 것이다!'
아니 다윗은 도대체 지금 정신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다윗이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는 예배 때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 드릴 때마다 다윗은 만날 수 있었어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이 분명히 바라봐 진다면, 두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는 단 한 가지 one thing,
예배 드리는 것을 하나님 앞에 소원 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많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정말 말할 수 없는 어려운 가운데 있는 분들이 계실 거예요.
여러분, 이와 같은 일을 만날 때, 우리는 항상 예배를 점검해야 됩니다.
'내 예배는 어떤가?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릴 때마다 은혜로 충만한가?'
'정말 나는 큰 기쁨으로 하나님께 소리 높여 찬송 하는가?
내 마음속에 예배의 즐거움이 있는가?' 그걸 점검하셔야 됩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개인/공동체적 예배가 살아 있다면,
여러분은 세상에 두려워할 문제가 없습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어려운 일이 두려운 게 아니고
'오늘은 예배드릴 기분이 아니야! 아 오늘은 정말 찬송 하기가 싫어!
왜 이렇게 매사에 짜증스럽기만 하지?'
오늘 예배 드리러 올 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셨나요?
지금 예배 드리는 여러분의 기분은 어떠신가요?
어느 순간에 내 예배가 죽어 있어요. 율법적인 예배,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어요.
이것이 어떤 위기 보다 더 큰 위기입니다.
예배가 죽으면, 모든 게 죽으니까요!
▲제가 어제 밤에 잠을 자는데, 꿈을 꾸었습니다. 집이 무너지는 꿈을 꿨어요.
집이 무너지는 것을 제가 보면서, 제 아내의 손을 붙잡고 급히 그 집을 빠져나오면서
그 옆에 있는 집의 문을 두드리면서 '빨리 나오세요. 집이 무너집니다!' 하고 막 소리 지르면서
다급하게 빠져나오는 꿈을 꿨습니다. 그리고 깼어요. 새벽 3시쯤 되었더라고요.
너무 꿈이 생생해서 한동안 잠이 오질 않았어요.
'내가 왜 이런 꿈을 꾸나, 무슨 뜻일까?' 하고 기도 하는데
시편 95편 기자의 심정이 그러한 심정임이 느껴졌습니다.
시편 95편 기자의 심정이, 지금 무너지는 집 속에 있는 심정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보니까, 하나님께 대해서 불평 원망만 하고
하나님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그들의 예배가 다 죽었어요.
시편 기자가 그런 현실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이러면 우리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 합시다, 찬양합시다!'
그렇게 말씀 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죽은 심령, 예배가 죽은 교회는.. 무너지는 집입니다
▲어릴 때 교회 학교 선생님 중에, 연세 드신 여자 권사님이 한 분 계셨어요.
그 분의 성함도 얼굴도 지금은 가물가물한데,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계속 우리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예배 그렇게 드리면 안 돼! 예배 그렇게 드리면 안 돼!' 주1)
▲제가 예배에 눈에 뜨인 계기는 1985년, 제가 부목사로 있으면서
교회학교를 담당하고 대학부를 지도할 때입니다.
학생들을 부흥시키고, 대학생들을 부흥시켜야 되겠는데 도무지 잘 안 돼요.
런데 강 건너 편에 있는 온누리교회에서 청년 대학생들,을 고등학생들까지
그렇게 많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경배와 찬양 운동"이 시작될 때였습니다.
제가 너무 궁금하기도 하고, 가서 좀 뭘 배워야 될 거 같아서
제가 온누리교회를 처음 찾아갔었습니다.
예배당 문을 열었을 때, 열기가 확 퍼져 나왔어요.
그건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나오는 열기만이 아니었어요.
거기에는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느껴졌어요.
저는 그때까지만해도 목사이면서
'예배!' 그러면 아주 거룩한 의무라고만 생각했어요.
'예배는 반드시 드려야지!'
그러나 예배의 기쁨이나 예배의 감격이나.. 그런 건 잘 몰랐어요.
그런데 그날 그 예배당에서 본 청년들, 대학생들, 중고등학생들은 교복까지 입고 와서
찬송 시간인데 다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요즘도 우리 청년 예배 때는 찬양 시간에 다 일어나지만
1985년 당시 때는, 예배 드릴 때, 찬송 부를 때 다 조용히 의자에 앉아서 불렀어요.
근데 청년학생들이 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불러요.
누가 뭐 강제로 일어나라고 한 것도 아닌 거 같아요.
일부는 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어떤 친구는 펑펑 울기도 하고...
제가 옆에서 그 예배 드리는 광경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이게 예배지.. 그래 예배는 이렇게 드리는 거지..'
'우리가 하나님을 진짜 바라보고 예배를 드린다면, 이렇게 예배드리는 거지!
아 그래~ 이렇게만 예배 드릴 수 있다면, 그러면 예배 만으로 다 충분하겠다!
무슨 뭐 좋은 프로그램이 뒤에 필요한 것도 아니고,
뭘 따로 더 가르쳐야 될 필요도 없잖아!
예배만 제대로 드릴 수만 있다면, 우리 신앙생활에 부족한 것이 없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 저의 목회에 가장 첫 번째 목표는 '예배'가 됐어요.
우리 교회에 7가지 방향이 있잖아요.
그 첫 번째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교회" 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가르치기 어려운 수학 문제가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복을 세어 보는 것'이래요. 서양 속담입니다.
이 속담에 담겨 있는 의미가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너무 많아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가 너무 많아서 세기가 어렵고,
그러니까 가장 어려운 수학 문제이죠.
-또 하나는, 우리가 너무 완고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고도 몰라요.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의도로 주셨지?
은혜를 받고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르니.. 이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수학 문제라는 겁니다.
일본의 소대O 목사님, 우리 형제교회입니다.
영성일기 나눔방에 들어가서 그 목사님의 일기를 볼 때마다 감동을 받아요.
매일같이 감사일기, 감사 제목이 50가지가 나옵니다.
어제 우리 김승O 목사님 영성일기를 봤더니,
33가지 감사 제목을 쓰셨더라고요.
'아 그렇구나 이렇게 감사할 제목이 많은데.. 이게 진짜 감사인데..
나는 그 동안에 하나님 앞에 제대로 감사 한 번 드리지 못했구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어떤 처지와 형편에서든지, 이미 받은 은혜, 지금도 받고 있는 은혜,
이거 잊어버리면 큰일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면, 어떤 처지에서도 찬송할 수 있어요.
그래서 영혼이 살고, 그리고 그 인생이 바뀌어지는 거예요.
▲시편 137편 을 보면 바벨론 포로 시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환이 담겨진 있습니다
그들은 그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실 때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지 않았고, 성전에 있지 않았고,
성전은 다 무너졌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 성전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노래했어요.
'자기들이 만약에 이렇게 즐겁게 노래하지 않으면, 내 입술이 내 입천장에 들러붙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어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어도 여전히 불렀던 그 찬송!
그래서 그들은 다시 나라를 회복한 겁니다.
70년 뒤에 예루살렘은 다시 재건되게 됩니다.
▲YWAM의 김선교사가, 그가 신학생 때 열심히 사역하다가 과로로 쓰러졌어요.
병원에 누워 있는데 마음에 낙심이 오기를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보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병원에 누워 있지..'
그런데 어느 자매가 병원에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이 병원에 가라고 그랬대요.
그러면서 골로새서 1장 27절 읽어 주었습니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김선교사는,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신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살아계신다'는 겁니다.
김선교사는,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신 줄 알았는데.. 그래서 병원에 누워있는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잖아?'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왜 여기 이렇게 병원에 누워 있어야 돼요? 지금 바깥에 할 일이 너무 많은데..'
그 때 주님이 김선교사에게 말씀하셨어요.
'네가 할 수 없는 일은 걱정하지 마! 내가 다 하는 거야!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돼!'
'그럼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요?'
그리고 생각해 보니까, 있었어요.
병원에 누워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어요.
그것은 찬송이었어요. 예배 였어요!
그래서 김선교사는 병원 침상에 누워서 하나님께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성령의 놀라운 은혜가 자기에게 놀랍게 임했다고.. 나중에 그가 그렇게 간증했습니다.
여러분 찬양곡 중에 "부르신 곳에서" 라는 제목의 찬양이 있습니다.
그 후렴이 "부르신 곳에서 나는 예배하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살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우리는 항상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세우시는 역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다 그렇게 하나님을 예배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주1)
그 권사님의 눈에는, 철없는 우리들이 예배시간에 떠들고 장난치는 걸 볼 때마다
너무 두려웠을 것 같아요.
'아니 지금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시간에, 이렇게 서로 장난하고 떠들면 안 되잖아?
그러면 너희는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복을 받을 수가 없어!'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러나 그 권사님은, 그런 식으로 우리를 말로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바로 잡아 주려고 했었는데
남자 젊은 선생님 한 분은, 긴 막대기를 들고'예배 제대로 드려야지!' 하면서
뒤에서 얼굴 머리를 때리기도 하시고'다 나와 손 들고 있어!' 하며 벌 주기도 하시고...
그때는 제 마음에 상처가 되더라고요.
아무리 예배가 귀해도, 제 어린 마음에, 그렇게 하는 것은 믿음에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하여튼 분명한 것은, 철이 없을 때는 예배가 뭔지 몰랐을 때는
그렇게 떠들고 장난만 쳤어요.
가정에서도, 예배를 교회에서만 드리는 게 아니고우리 집에서 드리면 얼마나 좋을까?
예배에 눈이 뜨인 있는 사람은 소원이 그렇습니다.
'우리 집에서 날마다 우리가 가정 예배 드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가족들이 마음이 하나가 안 되요.
특히 자녀들이 이제 조금 크기 시작하면, 예배 드리는 걸 그렇게 싫어해요.
그러면 그 가정안에서 가정 예배 드리는 것 때문에 또 불화가 일어납니다...
저는 오늘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 어릴 때 그 여자 권사님 선생님 생각이 나요.
저는 어른들인 여러분에게, 그 권사님의 심정으로 말씀을 지금 드리는 거예요.
여러분, 요즘 예배를 어떻게 드리십니까?여러분의 예배는 죽은 예배가 아닙니까?
여러분, 습관적으로 예배 시간에 늦는 일,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어떤 때는 늦을 수도 있지만
습관적으로 예배 시간에 늦는 것은.. 두려운 일이에요.
여러분, 여러분의 예배를 점검해야 합니다.예배를 바로 드리는 일은 너무너무 중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