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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04편 땅에 기초를 놓으사

LNCK 2021. 8. 12. 11:04

 


◈ 땅에 기초를 놓으사              시104:1~35          출처

본문의 시편 기자(아마 다윗)는 우리가 TV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 이나 또는 동물의 왕국 같이 
자연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 것들처럼 
이 세상이 정말 아름답고.. 또 풍성한 <자연> 임을 노래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편 기자가 주목하는 것은, 그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 이세요!  
시편 기자는 이 <자연>의 위대함을 노래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대함을 노래하고 있어요.  

시편 기자는 정말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고 계신다고..  
태초에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고 계신다고 
그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시103편은 하나의 큰 변화를 이루고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대부분 시편은 시작할 때, 시편은 기도이자 찬양이기 때문에 
기도의 대상, 찬양의 대상을 먼저 부르면서 시작합니다. 
즉 '여호와여, 하나님이여, 주여, 전능자여!' 이렇게 부르면서 시편이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시100편에 와서 비로소 '온 땅(백성)이여!' 라고 찬양하는 주체, 
찬양하는 우리들로 그 부르는 대상이 바뀌었다가 

103편에서는 '내 영혼아!' 이제는 '내'가 찬양하는.. 
'내'가 하나님 앞에 서서 '내'가 하나님의 은총을 노래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라는 것으로 관점이 변화되었습니다.

◑1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 '내 속에 있는 모든 것'(103:1)들, 여기에는 우리 의식무의식이 다 포함됩니다. 

사람은 의식과 무의식이 다 있는데, 어느 쪽이 크냐? 무의식이 훨씬 더 커요.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일들이 생각하고 계획한 일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더 많습니다.  

그래서 그 의식과 무의식이, 실제로 내가 상대방을 만날 때 
그 사람에 대한 생각, '내가 이렇게 말을 해야지, 이렇게 행동해야지' 라는 <의식적>인 것보다 

<무의식>적인 영역, 
즉 내가 느끼지 못하는 일들, 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에 대한 과거의 안 좋았던 일들, 
또는 그 사람과 비슷한 과거에 좋았던 기억들.. 이것들이 같이 작동을 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났는데,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고요, 
또 어떤 사람은 처음 봤는데,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을 때도 있어요. 

왜 그럴까요? 우리에게는 의식과 무의식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인데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무의식이 훨씬 더 우리를 많이 움직여 간다는 거예요. 
분명한 기억보다, 분명치 않은 기억들이 더 많이 우리를 움직여 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본문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라는 말씀에
의식과 무의식을 대입해 보면 
'내가 하나님을 찬양해하지, 그래 하나님은 고맙고 감사하니까' 하는 의식적인 부분보다 
더 많은 부분.. 즉 내 속의 무의식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이예요. 

내 속에 있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더 많은 '내'가 있는데 
그 '나'들까지도 다 하나님을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송축하라, 시103:1)

내가 깨어 있는 시간만이 아니라, 잠들어 있는 시간도, 꿈속에서라도, 
모든 시간들, 나의 감정들, 내가 살아있는 모든 순간을..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하는 다짐과 결단입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1
나의 하나님.. 굉장히 친밀한 표현입니다. 

근데 나의 하나님이 뭘 하셨어요?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  :1

옛날에는 신분의 차이를 옷으로 구별했습니다. 
그래서 왕은, 왕의 옷이 있고요, 귀족은 귀족의 옷이 있었고, 평민은 평민의 옷을 입었습니다.

절대로 다른 계층의 옷을 입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 옷을 입는 것 자체가 사회 체제를 붕괴시키는 도전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뭘로 옷을 입으셨다고요?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  :1

하나님은 굉장히 모든 존귀하시고 권위가 높으신 분이라는 뜻인데,
그 근거가 뭐냐?
본문 2절부터 끝 35절까지 계속 나오는데, 그 근거는 '창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사람은 옷을 입지만, 하나님은 옷을 입으실 필요가 없지요. 

창조의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창조의 존귀와 권위의 옷을 입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1절에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라는 이유가 뭐냐면, 
바로 하나님의 창조하심 때문이에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창조를 감사할 때가 얼마나 있을까요? 

우리에게 자녀가 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내가 승진하거나 돈을 많이 벌면 감사하지요. 
그리고 고민했던 일이 해결되면 우리는 감사합니다. 

그런데 창조에 대해 감사가 나오는 때는, 어떤 때일까요? 
하늘이 있는 게 감사하다. 땅에 있는 게 감사하다, 비가 내리는 게 감사하다, 
바람이 불어서 감사하다... 여러분, 그런 느낌을 가져 본 적 있으세요? 

저도 개인적으로 그랜드캐니언에 갔을 때, 그런 마음이 들더라구요. 
'야 이거 엄청나다. 사람이 만들 수가 없다. 이건 사람이 아무리 고민하고 아무리 계획해도
이렇게 만들 수 없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만드셨지!'
그냥 입이 떡 벌어지고 다물어 지지 않더라고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를 기뻐한다.. 근본적인 감사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살아가면서 돈 한 푼 더 벌려고 몸부림을 치고 
뭐 일이 하나 되고/ 안 되고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우리에게 

'창조의 하나님'은 
'근본적인 나의 주인이 누구냐? 근본적인 온 세상을 계획하신 분이 누구냐?'
'진짜 권위 있는 분이 누구냐?' 하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래서 시편 104편은 현실 가운데 아옹다옹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일희일비를 초월하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이 바로 여호와다.. 라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103편을 공부하면서 배웠거든요. 
이제 104편 105편 106편에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까지 
이 모세오경 내용들이 쭉 나오는데 

104:1~105:23까지 <창세기> 내용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 104편은 '창조'입니다. 
105:23절까지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나옵니다. 

105:24~106:12까지 <출애굽기>가 나옵니다. 

106:13~끝절까지는 <민수기>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본 시편의 기자는 아마도 다윗이라고 추정되는데 
다윗이 창세기 출애굽기 민수기.. 
바로 하나님이 처음에 창조하셨을 때부터 
그 백성을 이끌어 가시고, 그의 백성을 세상 가운데 두시던 하나님의 계획이 
아주 풍성하게 시 104~106편에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다윗을 일반적으로 '전사'로 알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사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알려진 가장 보편적인 성경이자, 가장 중요한 성경이었던 모세오경에 대해서 

아주 박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시편 104편의 표현들도 하나하나가 
정말 창세기 1장의 주석 같아요. 
창세기 1장에 나왔던 그 이야기들을, 더 자세하고 더 아름답게 풀어 주고 있습니다. 보겠습니다. 

◑2절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하나님이 빛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어요. 
여기서 말하는 '빛'은 우리 눈에 보이는 그냥 단순한 햇빛이 아니고 
천지창조를 하셨던 재료입니다. 첫째 날입니다.

'하늘을 휘장같이 치셨다'
'하늘'이 원래 인간에게 얼마나 두려운 존재입니까. 
인간은 땅에 살고, 하늘은 신적인 존재들이 사는 공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늘에 휘장을 치신 분이 누구냐? 
하나님이시다 라고 것입니다.  

이 말은, 이미 세상의 모든 신들, 다른 민족들이 믿는 모든 신들을 제압하는 분이 하나님이다.
왜냐면 그 신들이 거하는 하늘에 휘장을 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늘도 하나님의 것임을 지금 선포하는 것입니다. 

◑3~5절,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멋진 모습으로 
지금 그 피조물들 사이를 돌아다니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3절에 나오는 '물'은, 우리가 보는 물이 아니에요. 
창조 당시에 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로 나눠졌는데, 이때 '궁창 위의 물'입니다. 
(왜냐면 지금 하늘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그 '궁창 위의 물'이 쏟아진 것이 노아의 홍수 사건입니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는, 이 땅의 물로 일어난 홍수가 아닙니다.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3
그 물을 통제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4
여러분, 바람이 어디서부터 불어오는지 아십니까? 어디로 불어가는지 아세요>
인간은 바람이 어떻게 부는지 몰라요. 

하나님은 그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셨다는 거예요. 
이 말은, 바람이 불어오고 하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거지요. 

게다가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십니다'  :4
불꽃은 인간에게 두려움의 상징입니다. 한 순간에 살라버리니까요.
그 불꽃도 사역자다.. 천사처럼 불을 사용하신다는 뜻입니다.
 
'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5
'땅이 흔들린다'는 말은, 우리의 삶의 기반이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이 불안하고, 두렵고, 떨리고,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뜻이죠.

근데 하나님이 땅의 기초를 직접 놓으시고, 흔들리지 않게 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신다는 말이에요. 

아무리 우리가 힘들고, 괴롭고, 일이 안 될 것만 같아도 
그렇지 않고, 하나님이 기초를 붙잡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지금 지키고 계신다.. 라고 하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혹시나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불안하십니까, 두려우십니까? 
삶의 기반이 흔들릴까봐,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평안이 없으십니까? 

그런 분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살아요. 
불안한 거예요. 두려운 거예요. 세상에 나오는 소식들을 들으면, 밖에 나가면 교통사고 날 것 같고요, 
모르는 사람이 나를 해칠 것 같고요, 잘못 먹으면 그거 먹고 죽을 거 같고요, 
밖에 나가서 미세 먼지 많이 마셔서 그거 때문에 중병에 걸릴 것 같고요.. 

여러분 뉴스를 보면, 세상을 보면, 하루하루 안전한 날이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안심 하란 말이에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6절, '옷으로 덮음 같이 주께서 땅을 깊은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로 솟아올랐으나'

'땅을 깊은 바다로 덮으시매' :6
여러분 지구본을 보면, 땅과 바다가 있는데, 바다가 훨씬 면적이 넓습니다.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실 때 보면, 땅과 바다 중에서 뭐가 이 세상의 중심인가요? 

실제로 하나님은 땅으로 세상의 중심을 삼으시지만, 
그 중심을 둘러싸고 있는 건 바다요, 물이거든요. 

근데 6절은 '땅을 깊은 바다로 덮으셨다'는데, 
이 말은, 일단 전 세계를 다 덮게 하신 것은 물이란 뜻입니다.
물이 (노아 홍수처럼) 땅 위로 올라와서 다 덮었다는 얘기입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에베레스트산도 히말라야 산맥도 옛날에 다 바닷속에 있었답니다. 
에베레스트산 그 가장 높다는 산 위에서도, 바닷속의 퇴적층이 발견됩니다. 
놀라운 일이죠. 그게 다 과거에 바다 속에 있었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이 마치 인큐베이터 안에서 미숙아를 길러내듯이 
모든 땅들을.. 바닷속에서 물속에서, 그렇게 처음에 만들어 내셨다는 거예요. 

◑7절 '주께서 꾸짖으시니 물은 도망하며 주의 우렛소리로 말미암아 빨리 가며'

이 천지를 창조하신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물이 한쪽으로 몰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땅이 솟아오르기 시작해요. 

땅이 점점점점 올라와서, 융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물이 한쪽으로 몰립니다.
이것을 성경에 '물이 도망하며'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7


◑8절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곳으로 흘러갔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이걸 마치 비디오를 빨리 돌리는 모습으로 상상하면,
천지가 창조되는 모습을 빨리 돌리면 이런 모습이 된다는 거예요. 

물이 점점 점점 도망가고 
산이 점점 올라오면서 자리를 잡는 모습. 
그러면서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자기 자리를 잡는 모습을 지금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은 변치 않는 하나님의 신성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모습은, 이 땅에 두려움과 공포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신성,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렇게 해서 8절에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고 
하나님의 놀라운 땅의 창조가 지금 틀을 잡아 가는 것입니다. 

◑9절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아멘 그렇습니다. 여러분, 땅을 다 편평하게 만들어버리면 바다보다 훨씬 더 낮습니다. 부피로.
그래서 과학자들은 모든 해수면과 땅을 비교하면 
땅이 원래 해수면보다 2,700 M 낮다고 합니다.

그런데 땅이 지금 왜 바닷물 위에 있을 수 있죠? 이거 설명할 길이 없어요. 
이유는, 하나님이 물의 경계를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다의 부피가 훨씬 많은데, 그래서 바다가 한번 쓰나미처럼 몰려오면 
육지가 다 바다에 잠깁니다. 노아의 홍수 때처럼!

그런데 마치 누가 경계를 정한 것처럼 
바다는 바다까지고, 육지에는 물이 안 들어옵니다.
어떻게 된 거냐? 하나님이 물의 경계를 정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권자이시다' 라고 선포하는 시편이 바로 본문 104편입니다.

▲여러분, 이 104편을 쭉 끝까지 읽어보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나오는지 몰라요. 

하나님이 정말 하나하나, 세세한 것까지도 다 하나님이 지으셨어요. 

뭐까지 나오냐면, 너구리도 나와요. 잣나무도 나오고, 백향목도 나오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들이 쭉 나와요. 

그러면서 그 모든 것들을 왜 나열하고 있나요?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너구리와 잣나무까지 하나님이 지키신대요.
그러면 우리는 왜 지키시지 않겠습니까! 

그 하나님의 창조와 관심을 받고, 도우심 받은 나는 지금 두려워하고 떨고 있는데 
이 세상 모든 만물은 떨지 않는다는 거예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왜냐면 하나님이 그들을 지키시고, 하나님이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24절,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자 하나님이 이것도 지으시고 저것도 지으시고 쭉 얘기 하거든요. 
뭐 들짐승, 들나귀도 지으시고... 
그러다가 24절에서 숨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게 정말 많군요. 어떻게 이걸 다 지으셨어요?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이 땅에 정말 가득하네요!' 라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 지으신 것들이, 그럼 다 어떻게 살아가는가요? 27절입니다. 

◑27절 '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나님이 기르신다는 거예요. 창조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르십니다. 먹이십니다.
그러니까 너희도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여러분, 정말 그렇게 믿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물으세요. '너는 정말 내가 천지를 지으신 것을 네가 믿느냐?  
그런데 왜 너는 그렇게 염려하면서 사느냐? 너는 왜 그렇게 매일 걱정하느냐?  
너는 왜 그렇게 쓸데없는 것을 목표로 사느냐?'  

우리가 진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이시라고 정말 믿는다면 
세상 일로 걱정하고 염려하는 게 없어져요. 우리의 목표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 되십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는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염려와 근심 속에 삽니다 

세상의 부유함과 성공.. 그것을 목표로 하고 살아요 
실제로는 창조주 하나님을 안 믿는 거지요! 

 

◑29절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 죽는 것도.. 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입니다.

 


◑30절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본문 시104편 중에서 가장 제일 제 마음에, 하나님이 강하게 주신 메시지가 30절입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불어 넣으시면, 그들이 새롭게 창조됩니다.

주님께서는 땅에 모습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주의 영으로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다시 창조하십니다.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다음에

그들은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사는, 완전히 새 생명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시는 곳에는 그와 같은 새로운 창조가

오늘날에도 똑같이 일어납니다. 바로 우리가 다 그 증인들입니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여러분의 마음과 삶이 철저하게 무너진 이들이 있으실 겁니다.

오늘 예배에는 나오셨지만, 마음이 완전히 무너진 분이 있으실 거예요.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들을 다시 일으키기를 원하시고, 또 그렇게 하십니다.

주의 성령께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모든 허물과 죄를 씻으시고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하시고, 기도의 힘을 회복시켜 주시고,

그리고 삶이 완전히 달라지게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30

 

하나님은 태초에만 천지를 창조하신 게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를 이루어 가세요.

하나님의 성령으로!  

자기 아내가 아이를 낳는 동안 겪었던 어느 남편 성도의 글을 읽었습니다.

아내는 그 날 새벽부터 진통을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진통시간에 남편도 함께 울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내가 도리어 남편을 위로 했습니다.

'괜찮아 여보, 그냥 오늘은 죽었구나! 생각하면 되는 거야'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받아낸 핏덩어리를, 그는 손으로 조심스레 물로 씻어 주며

아이를 향해 찬양을 불러주었습니다. '너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옆에서 도와 주던 간호사도 함께 불러주었습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과정이 그렇게 모질고 고된 것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엄마가 죽음의 고통을 맛본 후에야, 비로소 아이는 세상에 빛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한 생명이 그저 태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도 똑같아요.  
여러분, 여러분의 새 생명은 그냥 주어진 게 아닙니다.  
마치 산모와 또 그 아빠와 같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리고 성령님께서 지금 우리 안의 오심으로 인하여.. 모진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고통 중에 낳으신 우리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새 생명인데,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시겠어요?

 

그래서 자녀를 낳은 후에도, 계속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고

그리고 새롭게 살게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세요. 우리가 계속해서 지금 경험하고 있잖아요.

 

여러분 이것은 절대로 교리가 아니에요. 교리로만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천지창조를 믿느냐?' 이것은 교리적인 질문이 아닙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를 경험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창조주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게 되면,

세상에 안 되는 것 때문에 시험들 일 없고, 슬플 것도 없고, 절망하는 것도 없고, 낙심하는 것도 없어요.

창조주 하나님을 진정 믿게 되면 .. 주님이 새롭게 하시는 역사로,

새 노래를 부르며 날마다 살아가는 것입니다.

  
◑33절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이게 하나님의 창조 앞에서 우리가 해야 될 일입니다. 
하나님의 이 위대한 창조, 거룩한 창조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살아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찬양해도 부족하다는 거예요. 
이 높은 산과 저 넓은 바다, 바람과 불과 나무와 모든 만물을 바라보니 
찬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내 인생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겠다.. 
라는 것이 본문 104편 기자의 고백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많은 일이 벌어집니다.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들은, 우리를 괴롭히려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일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만물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지금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나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나를 귀하게 여기셔서 
나에게 복을 주시려고, 이 모든 일들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날이 밝고 해가 뜨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를 사랑하셔서... 

오늘도 바람이 불어 오고, 비가 내리고, 오늘도 많은 이 세상 일들이 벌어집니다. 왜요? 
나를 사랑 하셔서.. 내가 찬송하게 하시려고.. 

내 평생 사는 날 동안 주님을 경배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시고 
나를 위한 계획으로, 여기까지 인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하시고,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 안에서 
두려움을 내쫓고, 땅을 견고하게 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이 모든 것을 다 먹이시며, 성령으로 재창조하시고 
우리의 찬송을 받으시는 우리 하나님과 오늘도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감사로 찬양하는 우리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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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3편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찬양했다면,

104편은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섭리와 권능을 찬양합니다.

 

1~2a절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송축과 첫째 날 창조하신 것에 대한 찬양입니다.

 

2b~4절은 하나님께서 둘째 날에 궁창을 만드심과 물을 궁창 위와 아래로 나누신 일을 찬양합니다.

 

5~18절은 창조의 셋째 날과 관련된 하나님에 대한 찬양입니다.

셋째 날에 바다와 육지를 구분하시고, 육지에 식물, 즉 풀과 채소, 각종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19~35절은 창조의 넷째 날에서 일곱째 날 찬양합니다.

 

그 중에 25-26절은 창조의 다섯째 날과 관련하여 바다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7~30절은 창조의 여섯째 날에 지어진 지상의 생물들에 대해서 노래합니다.

 

31~35절은 하나님의 영광을 기원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 것을 결단하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