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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07편에 나오는 4가지 그림

LNCK 2021. 8. 16. 15:08

 

◈시107편에 나오는 4가지 그림             시107:1~43                 여러 설교 정리

 

◑본문 시107 편은 4개의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본문이 43절에 걸친 긴 시편 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한눈에 들어오게 <구조>가 형성이 되어 있죠.

 

단락 그들이 겪었던 어려움 후렴 1 하나님의 해결책
후렴

2
(1단락)
1~9절
 4~5절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6절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7절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8~9절
(2단락) 
10~
16
10~12절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13절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14절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15~
16절
(3단락)
17~
22

17~18절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19절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19~20절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21~
22절
(4단락)
23~
32    
26~27절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28절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29~30절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31
~
32

33~
43절
이 형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변형된 형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과
또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합니다.

위 표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이 당한 어려움은, 광야 사막 - 감옥 - 병상(질병) - 거친 파도 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부르짖었을 때,

반드시 그 문제와 어려움으로부터 그들은 해결을 받았습니다.

 

광야에서는 -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7

감옥(포로기)에서는 -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14

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는 -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20

거친 파도에서는 -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29~30

 

그렇지만 가만히 있어서 해결되지 않았고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반드시 해결되었습니다.  :6, 13, 19, 28

 

오늘날 우리도,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는 없습니다.

부르짖으면.. 반드시 해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해결될 때까지, 성도가 할 일은 부르짖는(큰 목소리로 호소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4가지 그림

 

첫 번째 그림이 1~9절에 나오는데, ‘광야 사막’입니다.              *1단락

(4-5)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광야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목마른 곳, 살기 힘든 삶의 환경입니다.

위 본문에도 주리고 목마르고 피곤하다고 했습니다.

이 때는 '부르짖어야' 하는 때입니다. 

 

두 번째 그림이 10~16절에 나오는데, ‘감옥’입니다.                 *2단락

(10-11)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감옥에 갇힌 이 모습은 유다 자손들이 바빌론에서의 포로생활의 곤고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방 땅에서 포로생활은 얼마나 서글프고 고달팠겠습니까?

 

그런데 인생이 감옥에 갇힌 것과 같은 것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시인은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이게 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과식 중독, 드라마 중독, 성 중독 등 모든 중독이 동일합니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그것을 탐닉하면, 이내 그것의 중독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매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그림이 17~22절에 나오는데, ‘병상(病床)’입니다.              *3단락

(17-18)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미련한 자’는 ‘머리가 나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라기보다,

‘하나님이 없이 사는 사람’이나

‘자기 자신을 인생의 최고 가치관으로 삼는 사람’을 뜻합니다.

 

네 번째 그림이 23~32절에 나오는데, ‘바다’입니다.                       *4단락

(23-27)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바다 한 가운데서 태풍은 만나면, 아무리 큰 배라도 안전을 100%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작은 배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바다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한 나라가 IMF구제금융을 요청해야할 상황이 되면,

경제적으로 초강력 태풍을 맞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에도 가정경제에 태풍을 만날 수도 있고,

가족관계를 비롯한 인간관계에 태풍을 만날 수도 있고,

건강의 적신호라는 태풍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고,

몸이 끝도 없는 바닥 속으로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28-30)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런 고통의 지경에도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는 태풍 속을 통과하게도 하시고,

예수님께서 태풍이 휘몰아치는 갈릴리 호수를 꾸짖어 잔잔하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물결을 잔잔하게 하시며, 목적지인 항구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항해에서 아무리 강력한 태풍을 만나도 소망 가운데 나아갈 수 있습니다.

 

 

 

◑1단락, 1~9절

아래 설교를 참조하세요

 

주린 영혼의 축복  https://blog.daum.net/rfcdrfcd/15972140

 

 

 

◑2단락, 10~16절

 

▲10~11절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시편 기자는

흑암, 사망, 곤고, 쇠사슬..

이런 무겁고 힘겨운 단어들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이 땅에 일어나고,

그런 험악한 세상에서 우리 사람들이 살게 되었나요?

그 이유는, 시편기자가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11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이게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꼭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의 삯은 사망(의 고통)이다' 하고 말씀하셨고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 먹으면 정녕죽으리라' 말씀하셨는데

그 '사망, 죽음'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의 삶의 환경에 팽배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흑암, 고난, 고통, 아픔, 슬픔, 억울함, 사망의 고통을 ..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까닭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제게 왜 그러세요?' 라고 얘기 하는데

내 고난의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려고 하는 어리석음이.. 내게 없어야 하겠습니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있을 때, 즉 사람이 고통 당할 때

그 인간을 놓고 사탄과 하나님의 마음이 갈라집니다.

 

사탄은,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이렇게 고난과 고통당할 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고,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게 하고

마치 그 고난과 고통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처럼 착각하게 해서

하나님을 자꾸 떼어놓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고난과 흑암과 사망을 이용해서 노리는

사탄의 올무, 함정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동물의 왕국> 같은데 보면, 사자 같은 맹수들이 사냥할 때

건강하고 튼튼하고 힘 센 어미들은 공격을 잘 안 하더라고요.

주로 새끼를 노리더라고요.

새끼는 아직 힘도 약하고, 뛰지도 잘 못하고 만만하니까.. 새끼를 노려요.

 

그래서 사자들은 소나 염소의 무리를 몰아서

새끼를 자꾸 어미들의 무리에게서 떼어 놓으려고 해요.

그래서 새끼가 무리에서 떨어지면, 덮쳐서 잡아먹는 거죠.

 

그 <동물의 왕국> 보면서 '저게 사탄의 수법이구나!'

하나님(어미)에게서 떨어지면.. 마귀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암에 걸렸거나/ 안 걸렸거나

고통을 당하거나/ 안 당하거나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을 꼭 붙잡고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물의 왕국>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이 흑암과 사망에도 하나님의 기대가 있어요.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12

 

예,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그 고통을 줬다는 것은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게 되었다는 말이에요.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약속대로 죄로 인한 고통이 왔는데

그렇게 내버려 두시는 것은

그것을 통하여 나를 겸손케 하려고, 회개하게 하려고

그리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라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 매달리게 하려고... 고통을 주신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사탄과 하나님은, '고난'을 이용하는 방법이 달라요.

사탄은 고난을 이용해서 하나님을 의심하게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요

 

하나님은 우리가 죄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지만

그 고난을 우리가 이용해서 자기의 겸손함, 자기의 무능함을 깨닫게 하시고

겸손하게 하셔서

하나님을 더욱 붙잡고 매달리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지금 힘들고 어렵고 아프고 고통스러우세요?

그 고통과 고난을 어떤 기회로 삼아야 할까요?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는데 써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바짝 엎드려서, 붙잡고 매달리고 부르짖는데 써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께 부르짖고 매달리고 그런데 써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건져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13절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죄로 말미암아 죽어가는 우리들의 대한 하나님의 뜻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짖게 만드시고, 우리가 부르짖으면.. 도와주십니다. 건져주십니다.

 

▲제가 암에 걸리기 전에는 '부르짖으면 들어주십니다' 라는 설교가 어렵지 않았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그런 설교를 했죠.

 

그런데 제(김동호 목사)가 암에 걸리고

또 실제로 옆에서 암으로 고통 당하는 우리 친구들을 보면서

그 설교가 약해졌어요...

 

암에 걸린 사람도, 앞이 깜깜하고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르는데

그리고 기도해서 병이 나은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죽음으로써 인생을 끝내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에게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구원해주십니다' 라는 설교를

쉽게 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주위에 특별한 신유 은사를 받은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신유 은사를 받은 사람이 기도하면 병자들이 다 낫나요?

낫는 사람도 있지만, 안 낫는 사람들도 솔직히 많습니다.

 

신유 은사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신유 은사를 사용하는 것도 성경적이지만.. 그렇다고 다 낫는 것은 아닙니다.

나을 수도 있고, 낫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럼 성경적 신유를 믿고, 또 신유 기도를 스스로 하기도 하고, 또 남에게 받기도 했는데

병이 낫지 못하고 죽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요?

 

우리는 누구나 한번 죽음의 강을 건너야 해요.

죽음은 우리에게 절망이고, 고통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죽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망가진 세상을

구원하는 치료의 길입니다.

 

하나님이 새하늘과 새땅,

아픔과 죽음과 고통과 괴로움과 질병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었잖아요.

거기로 우리를 가게 하시는 게 구원이잖아요.

 

여러분 그런데, 그곳은 반드시 죽음을 통해서 넘어 가잖아요.

우리가 거기로 들어가려면, 완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죽음을 한번 건너야 되는 것입니다

 

한 번 신유 기도를 통해서, 자기 질병이 나았다 하더라도,

결국은 사람은 누구나 다 죽음을 직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유 기도를 통해서 낫든지/ 안 낫든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믿어야 해요.

 

저는 지금도 하나님의 구원을 믿지만

나중에 천국에 가게 될 때, (병이 낫지 않을 때)

그때도 하나님의 구원을 믿을 거예요. 그리고 꼭 붙잡을 거예요.

 

여러분,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어서

'살려 주시든지 / 죽음으로 건너가게 하시든지

하나님의 구원에서 벗어나지 않고, 믿음의 길에서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 찬송하여

사탄의 계략을 물리치고, 사탄을 부끄럽게 하고, 사탄을 초라하게 만들면서 사는

믿음의 장부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단락  17~22절

아래 설교를 참조하세요

 

말씀을 보내사 저희를 고치사  https://blog.daum.net/rfcdrfcd/14951449

 

 

◑4단락   23~32절

아래 설교를 참조하세요.

 

광풍이 일어날 때 https://blog.daum.net/rfcdrfcd/15979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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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편에는 ‘찬양시’가 29편이 있는데 그 중에서 18편이 5권에 있습니다.

제5권에 찬양시가 많다는 뜻입니다.

제1권과 제2권에 ‘탄식시’가 아주 많은 것과 대조적입니다.

 

탄식시의 구조가 자신의 현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다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끝을 맺는데,

시편 전체의 구조도 탄식시에서 → 찬양시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