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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19:41~80 말씀 묵상이 나를 살린다

LNCK 2021. 8. 31. 08:47

 

◈말씀 묵상이 나를 살린다                 시119:41~80             여러 설교 정리

 

▲41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42,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지함이니이다

 

시인은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라고 기도했는데

자신이 위기 가운데 있음을 고백합니다(41절). 어떤 위기입니까?

그는 비방을 받고 있었습니다. 원수는 말로 그를 괴롭힌 것입니다. :42

 

이때 위기 가운데 있는 그는

주의 인자하심(헤세드)과 주의 구원(문제 해결)을 간청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위기 가운데 처할 때, 주의 인자하심 (과 진실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는 자기가 처해진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해 주신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악한 세력들과 싸우겠다는 결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주의 말씀을 의지함이니이다’ :42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공격무기입니다.

말씀은 바로 성령의 검입니다.

 

▲48절 또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읊조리다’.. 묵상하다란 뜻이죠.

과거에 개역성경에는 ‘묵상하다’로 번역했습니다.        *히 ‘시아흐’

같은 말이 시119편에만 9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비슷한 말 시1:2의 ‘하가’

15, 23, 23, 27, 48, 78, 78, 148, 148절

 

그래서 믿음의 선조들은, ‘성경을 10분 읽으면, 10분간 묵상하라’고 조언했습니다.

무조건 읽고서 성경을 바로 덮어버리는 것은,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려면.. 필연적으로 말씀을 암송하게 됩니다.

암송을 하다보면.. 묵상이 동반되는 거죠.

 

그래서 탁월한 설교가들은, 주일 설교 본문을 월요일부터 묵상한다고 합니다.

본문을 수첩에 적거나 종이에 프린트해서.. 평소에 계속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그저 주말에 잠시 본문 말씀을 들여다 보는 정도로는

그 말씀이 좌우에 날선 검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와 성경읽기에 충분한 시간을 기울이지 못하며,

묵상(말씀을 오래, 깊이 생각하며 기도함)하는 것도 포기하였습니다.

 

한 때 묵상은 기독교 영적 훈련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훈련으로 여겼지만,

요즘은 초월 명상이나 요가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기독교 영적 훈련의 핵심인 성경 묵상을 되찾아 와야 합니다.

성경은 읽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묵상해야 합니다.

만약 음식을 먹기만 하고 씹지 않는다면, 또 그것을 삼키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아무런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말씀을 듣고 읽기만 하고

그 말씀을 혀 밑에서 굴려보고 영혼의 미각에서 단맛을 느낄 때까지  씹지 않는다면,

그 말씀은 신자에게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윌리엄 베이츠는 “말씀을 듣는 것은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과 같고,

그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그것을 소화하는 것이며, 그 묵상을 통해 말씀을 소화할 때

따뜻한 정서와 열정적인 결단과 거룩한 행실을 배출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을 통해 배운 사람은 사람을 배우지만,

성경을 자신의 교사로 여기며 성경을 읽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배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만 하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입니다.

 

여러분 소를 자세히 보았습니까? 가만히 보면 소는 잠깐도 쉬지 않아요.

소가 낮에는 풀을 뜯어 먹지요,

그 다음에는 앉았다 하면 쉬는 시간은 되새김질해요. 계속, 계속 되새김질을 해요.

 

소가 거친 풀을 마구 뜯어서 삼켜놓고는, 그 다음에 한가할 때

삼켰던 풀들을 다시 꺼내서 이걸 되씹어요. 막 씹어가지고 두 번째 위로 돌려요.

또 꺼내가지고 씹어서 세 번째 위로 돌려요. 위가 세 개래요.

 

이렇게 해서 되새김질을 해서 부드럽게 깨끗하게 만들어서 소화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말씀에 되새김질이 필요합니다.

묵상 meditation 이란 말을 가장 쉽게 설명하면 ‘되새김질’입니다.

 

제가 언젠가 한번 미국교회를 방문했는데

어떤 집사님 가정에서 저를 초대해서 그 집을 방문했어요.

 

갔더니 음식은 별거 아닙니다마는 온 가족과 함께 맛있게 식사를 한 다음에

애들과 다같이 앉은자리에서 그날 들은 설교를 그 집사님이 얘기하는데

“오늘 목사님이 이런 설교 말씀을 하셨는데...”

미국교회는 아이들도 부모와 같이 예배를 드리잖아요.

 

그래서 그 집사님이 ‘설교 되새김질’을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목사님 설교보다 잘하더라고요.

아이들을 다 앞에 놓고 새김질을 해주더라고요.

 

여러분도 한 번 그렇게 해 보십시오.

집에 돌아가서 점심을 잡수시고 오늘 들은 말씀을 놓고 되새김질을 해야 돼요.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줘야 돼요.

‘이건 이런 말씀이다, 이건 이런 뜻이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되새기고 되새기는 중에.. 말씀이 잘 소화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새김질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것이 신앙인의 생활입니다.

   

▲49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이 구절에 관한 짐 심발라 목사의 좋은 일화 https://blog.daum.net/rfcdrfcd/14277272

 


▲50절,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죄' 와 '고난'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또한 '고난'과 '말씀'도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본문 119 편에서도 시인은 줄곧 자신의 죄악된 모습과 고난을 고백하며 
오직 말씀이 위로가 되고, 말씀만으로 그 고난을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말씀의 은혜를 입혀 달라고 간청합니다. 


말씀은 고난 중에 내게 유일하게 위로가 되시고, 
말씀이 고난 중에 내 인생을 살리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인생의 깊은 고난 중에는 하나님 외에는 나를 위로해 줄 분이 없어요. 
하나님만이 내게 위로가 되어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내게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욥의 세 친구가, 욥이 고난가운데 있을 때, 위로 하겠다고 찾아 왔는데 
위로가 되기는커녕 고통을 주었어요. 

사람들의 마음은 공감이 되지 않아요. 
사람들의 마음은 위로가 되지 않아요. 
그 고난의 순간에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내게 위로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54~55절 '내가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그 고난으로 인해, 나그네가 되었어도.. 말씀으로 노래를 불렀으며
그 고난으로 인해, 캄캄한 밤 중에도.. 주의 법을 지켰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받는 종을 반드시 말씀으로 위로해 주세요. 
고난 때문에 말씀을 더 찾고, 고난 때문에 말씀을 더 의지하게 돼요. 

이만한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고난이 축복인 것입니다! 

정말 별 인생이 없습니다. 
성도의 인생 마지막에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마지막 순간에 영광이 무엇이며, 내 자랑할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지키며 산 삶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걸 70세가 넘어서 깨달으면.. 너무 늦고요

40세 50세 중년에 깨달아야..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 복된 사람입니다.  

57절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지킨다'는 말은 순종, 복종한다는 군대용어입니다. 

 

다윗은 평생 군인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한 게 아니라, 순종한 사람입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토론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냥 자기가 바로 살아 버려야 되는 거룩한 명령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강한 영적인 전사였던 것입니다.

말씀만이 우리를 강한 영적인 군대로 만들어 줍니다.

 

▲59절,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들을 향하여 내 발길을 돌이켰사오며

위 구절을 본문으로, 대천덕 신부의 (증)조부인 R. A. 토리 목사님은

“크리스천이 되지 않아서 치르는 대가”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 설교에서, 크리스천이 되지 않아서 치르는 대가로

1) 크리스천이 되지 않으면, 내 삶에 <평화>가 없습니다.

2) 크리스천이 되지 않으면, 내 삶에 참된 <기쁨>이 없습니다.

3) 크리스천 되기를 포기하면, <희망 없는 삶>을 삽니다.

4) 크리스천 되기를 포기하면 <참된 인간성 회복>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5) 지금 내가 예수를 모른다고 하면, 나중에 <예수가 나를 모른다>고 하십니다.

 

☞자세히 보기 What it Costs Not to be a Christian https://blog.daum.net/rfcdrfcd/14996876

 

▲61절, 악인들의 줄이 내게 두루 얽혔을지라도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고통의 대부분은 사람들로부터 오는 고통입니다. 
직장생활을 힘들게 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 직장 동료들입니다.

다윗은 평생 사람들로부터 오해받고, 비판받고, 배신당하고, 견제받으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희안하게 다윗의 마음에 그렇게 많은 상처가 남아 있지 않아요.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왜냐면 다윗은 사람들이 상처를 줄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이 상처가 되기 전에 빨리 빨리 치유했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치유도 타이밍이거든요.
이것이 내 영혼을 병들게 하고, 인격을 파괴시키기 전에 
말씀을 통해서 치유해야 돼요.  52절에도 보세요.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들을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52
'스스로 위로하였다' .. 말씀을 붙잡고 스스로 자가치료를 했다는 것입니다. 

 

▲65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인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그것으로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시는 과정이었고 하나님의 훈련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함부로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토기장이십니다. 자신이 원하시는 그릇을 빗고야 마십니다.

 

▲67절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인은 고난당하기 전까지 잘못된 길을 걸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고난이라는 학교에서 주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운 것입니다.


▲71절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에서
'유익이라'가 히브리어로 '토브'입니다. '선하다, 좋다'는 뜻이죠.

하나님이 6일간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토브)' 하셨죠.
그러면 고난 중에 있는 내 인생을 '선하다, 좋다' 라고 선언을 하신 거예요. 
우리 말에 '유익이라'고 번역했는데, 원래는 그런 뜻인 것입니다. 

어떻게 고난 가운데 있는 인생이 선할 수 있는가요? 
그것은 인생의 모든 비본질을 내려놓고, 본질만 남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본질은 바로 하나님이세요. 

아무도 내 곁에 함께 해 주지 않는 시간에
하나님만이 내 곁에 함께 해 주시고,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즐거움이요, 목적이요, 왕이신 것을 
고난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되기 때문에, 고난이 내게 선이 되었다 하는 것이죠.

물론 인간이 생각하는 선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선은 다를 때가 많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내 인생의 최선과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내 인생의 최선은 다를 때가 많이 있어요.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하는데, 하나님이 부재하시는 선은, 악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악도 선으로 변한다 라고 이야기하십니다.

하나님이 없는 권력과 재물은, 사울의 비참한 결말에 이르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광야의 고난조차도 다윗의 승리로 결론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고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선이 될 수 있다' 
이것을 선언하는 것이 71절 말씀이에요. 

'내가 볼 때는 이거는 결코 좋은 게 아니야 이거는 어둠이야' 
이거는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에요.

그런데도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면 고난도 선이 될 것이다' 

요셉이라는 인물은 옥살이 종살이를 하는데 성경은 형통하다고 말씀합니다. 
종살이 옥살이를 해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면, 그의 인생은 형통하다는 거예요.
왜냐면 거기에 천국의 임재가 임하고, 주님의 권세와 능력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의 인생이 선이 될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72절,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히 '토브'

고난의 결과가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지상의 어떤 부(富) 보다 주의 입술의 법이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가치관이 변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은 무엇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그것을 따라 가게 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감당하기 힘들고 어렵지만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얻는 유익은 천천 금은 보다 좋은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고 주의 말씀을 지키게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