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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20편 화평을 사랑하는 성도
LNCK
2021. 9. 3. 10:30
◈화평을 사랑하는 성도 시120:1~7 여러 설교 정리
▲1절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시편 120편은 평소의 시편들과는 좀 다릅니다.
보통 호소하는 시편들은, 전반부에 막 괴로운 얘기들을 토로하다가
후반부에 분위기가 확 바뀌어
'그렇지만 하나님이 도우심을 믿고 감사합니다' ... 이렇게 확신과 찬양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시120편은 거꾸로입니다.
1절에서 ‘응답의 확신’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2~7절까지 복잡한 현실의 상황을 하나님께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선제 감사’라는 말이 있는데,
앞으로 상황이 호전되고, 감사로 바뀔 것을 믿고.. 미리 선제적으로
그 응답을 감사하는 거죠.
우리도 이런 신앙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그때 하나님께 나아가야지!’가 아니라
미리 앞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심을 믿고서,
그 다음에 자기의 문제를 토로하는 것입니다.
▲2절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성도가 살아가면서, 가장 쉽게 그리고 빈번히 당하는 고통이 ‘입술’로 인한 것입니다.
쉽게 주위 사람들의 혀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또 그런 고통을 가해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도들 사이에 악한 자에게 악하게 맞대응 하다가
본인 자신이 수년간 대응하는 사이에, 악하게 변해버린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억울함을 토로하는 기도는 하되
절대 ‘악으로 악을 갚지는’ 말아야 합니다.
악한 자들을 대응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악한 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L.A.에서 큰 사업을 하는 교포 집사님의 말에 의하면,
자기가 유태인과 거래를 하는데,
유태인들이 얼마나 인색한지 모른다고 합니다.
몇 센트 가지고도 그렇게 야박하게 (좋은 말로 정확하게) 군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 년을 그렇게 오래 거래했는데,
설렁탕 한 그릇도 대접받아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인색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그런 유태인과 자기가 계속 거래하는가 하면, 그 집사님의 말에 의하면
‘유태인과 거래를 하면 그렇게 야박해서 피곤하기는 한데
절대 큰 손해를 보게하지는 않고요,
또 한 번 말한 것은, 문서로 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손해가 나도 꼭 지키기 때문에, 유태인은 신용이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러니까 구두로 계약을 해도, 어떤 돌발 사건이 생겨서
그 계약대로 하면 자기가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서류로 작성하지 않았으니까, 그냥 없던 걸로 슬쩍 넘어가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집사님이 거래한 유태인은, 말로 약속한 것도
(돌발적 상황으로) 유태인 자기에게 손해가 나더라도 잘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유태인들이 신용이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결국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는 망하게 되고,
정직한 입술은.. 사업을 하더라도.. 결국 신용을 얻어 잘 된다는 얘기입니다.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 :2
짧게 말하면 '거짓말'입니다.
어쩌면 인류역사에 가장 큰 비극은 '거짓말'이다.. 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인간관계에 겪는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사실 거짓, 또는 거짓말로부터 출발합니다.
인간의 모든 죄악이 어디서 비롯되었나요?
거짓말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사탄이 와서 하와에게 속삭입니다. 거짓말이었고, 그 거짓말에 속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짓말에 대해서 정말 경각심을 가져야 되는데,
사회 전체가 거짓말에 둔감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도 거짓말에 심하게 시달리셨습니다.
'저는 바알세불을 힘 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 '그는 먹기를 탐하는 자요, 포도주를 즐기는 자다'
그러면 또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언제나 늘 있기 마련입니다.
요8:44절에 보면, 거짓말 하는 본질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거짓의 아비인 마귀에게 났기 때문에 거짓말 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역사라는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죠. 요8:45
예수님이 진리를 말하면 오히려 믿지 않고, 사람들의 거짓말은 쉽게 믿고 속는다는 거죠.
그래서 이 세상이 점점 타락해간다.. 이 세상이 점점 정의롭지 못하다 할 때,
가장 첫 번째 증후군은, 거짓말이 횡횡하는 것입니다.
투서도 거짓말로 들어가고, 모함도 거짓말이고, 심지어 사랑의 고백도 거짓말이고..
심지어 어떤 약속도 아무 거리낌없이 거짓의 약속으로 하는 것입니다.
약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이 땅이 불의의 세계로 변하는 이유는, 인간의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계21: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거짓말은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큰 죄입니다. 우리가 쉽게 여길 게 결코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거짓말에 대한 태도를 단호하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일 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사실이 한 번 나를 거치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조금이라도 왜곡되게 되어 있습니다.
왜곡되어서 남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받고 회개한 사람의 특징은, 항상 정직하려고 애쓰고, 정직을 지향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거짓된 존재인지.. 한 번 철저히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3절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4절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
거짓말하고 속이는 원수들이 받을 것은,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을 받게 되고, 로뎀나무 숯불을 받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보응을 노래(예언)하고 있습니다.
로뎀나무는 우리나라 참나무처럼 재질이 단단하기 때문에
숯불이 꺼지지 않고 오래 타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영적으로 로뎀나무 숯불은 하나님의 영원한 지옥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5절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메섹은 터키 북부이며, 게달은 아라비아입니다. 둘 다 매우 호전적인 민족입니다.
지금 시인이 그 먼 이방나라까지 떠나가서 머문다는 뜻이기 보다는
자기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메섹, 게달 사람처럼 매우 호전적이라는 뜻이며,
시인이 지금 메섹 사람, 게달 사람들 가운데 머물 듯이,
자기가 호전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6절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7절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
여러분, 나와 자꾸 싸우려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멀리하십시오.
괜히 화해한답시고, 그의 집에 찾아가서 만나거나 하지 마십시오.
왜냐면 그러다가 더 싸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6절에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라고 했는데
이것은 시인의 ‘후회’일수도 있습니다. 꼭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원수를 사랑하고,
그가 잘못 되도록 저주하지 않고, 그가 잘 되기를 원하고... 그런 마음을 갖되
꼭 가까이 있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한 거죠.
삶의 지혜입니다.
히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추구하라’고 해서,
그 사람 집에 찾아가고, 그 사람과 식사하고.. 꼭 그럴 필요 없습니다.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라고 했습니다. :5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되,
그를 미워하지 않고, 그를 저주하지 않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며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영 맞지 않는 사람과는 좀 떨어져 지내면서도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얼마든지 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례로, 부부사이가 나빠질 때는, 부모-자녀간에 고성이 오갈 때는
누가 한 사람이 빨리 그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이.. 생활의 지혜입니다.
나중에 식으면, 다시 돌아오면 됩니다.
▲적용 <전쟁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일단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습니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루즈벨트 대통령 기념관’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 루즈벨트 대통령의 연설을 돌판에다가 새겨서 진열해 놓았는데
그 중에 전쟁과 관련된 연설 내용이 있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세계 제2차 대전을 미국의 승리로 이끈 대통령이죠.
그가 전쟁을 겪으면서 내린 결론이 뭐냐면
'결코 전쟁은 애당초 있어서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연설했던 연설문이 돌판에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것보다 우리가 더 원하는 것은
모든 전쟁의 시작이 끝나는 것이다' (아예 전쟁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뜻)
일단 전쟁이 시작되고 나면, 그 끔찍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그리고 시작되면.. 불을 끄기가 어렵습니다. 아예 시작부터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부사이에도, 전쟁이 시작되면.. 누구 한 사람이 그걸 막아야 합니다.
아니면 겉잡을 수 없이 크게 번집니다. 나중에는 양쪽이 모두 큰 상처를 입습니다.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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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표제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모두 열다섯 편이 있습니다(120-134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동일한 저자에 의해서 지어진 것이 아니고
동시대에 지어진 것도 아닙니다. 이 시편들 중에 다섯 편은 저자가 확실히 나타나는데
그중 네 개의 시(122,124,131,133편)을 다윗이 썼고, 솔로몬이 한 개의 시(127편)를 썼습니다.
그런데 매튜핸리 주석가는 126편과 127편은 후대에 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120편부터 134편까지 이어지는 15편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다윗 시대 사람들이 지방에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면서 부른 노래였다가
나중에 외국에 포로로 잡혀 갔다가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면서 부른 노래가 되었다고 봅니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시들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