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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장 들포도를 맺으면 화가 있을진저

LNCK 2021. 9. 9. 10:02

 

 

◈들포도를 맺으면 화가 있을진저        이사야5:1~30          여러 설교 정리

 

1: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식으로 비유하셨는데

5:장에서는 이스라엘을 포도원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참고로, 에스겔서 15장에도 포도나무의 비유가 나옵니다.

 

◑1. 기대가 컸는데 실망이 컸던 포도원                   사5:1~7

 

▲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하나님은 1절에서만 “나의 사랑하는 자”라는 말을 3번이나 반복 사용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이스라엘을 사랑하는지 나타내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노래하리라'고 말씀한 것만 봐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기름진 산에다가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즉 가나안 땅에다가 일곱 족속을 제거하고

기름진 땅 그곳에서 정착하면서 살게 하셨습니다.

 

포도나무, 포도원은 본문 사5:장 외에도 성경에 종종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시80:8절에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다”고 했습니다.

 

렘2:21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극상품 포도나무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

 

‘들포도’는 시고 떫은 포도, 맛이 없어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포도’를 가리킵니다.

원어적으로 보면 ‘썩은 포도, 악취 나는 포도’를 의미합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2

주인이 아주 힘겹고 정성스럽게 포도원을 일꾼 것을 뜻합니다.

 

앞서 사3 :14절에도 이스라엘을 '포도원'으로 비유했습니다.

지형 특성상 별다른 농사를 하기 어려운 이스라엘에, '포도원, 포도나무'는

정말 주인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농사요, 농지였습니다. 

 

▲3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고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2절, 4절)

들포도는 말 그대로, 맛도 없고, 시고, 짐승이나 먹을까, 식용의 가치도 없습니다.

오히려 포도원에 해를 끼치는 열매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애굽 땅에서 400년 동안 노예로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은 백성들은 이끌어 내시어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에 살고 있는 일곱 족속을 몰아내시고

그곳에 살게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당신의 포도원을 일구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적과 이적으로 체험한 백성들입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간의 도리를 팽개쳐 버렸습니다.

1장에서는 '부모를 버린 자녀로'

5장 본문에서는 '주인의 뜻을 져버린 포도나무'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포도원은 대개 '가시 울타리' 혹은 '돌담벽'으로 둘렀습니다.

하나님이 보호의 울타리가 되어 주셨는데, 이제 그 보호를 걷어버리시겠다는 거죠.

그러면 포도원이 이방 사람과 짐승에 의해 짓밟히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들포도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포도 열매가 아닙니다.

성도라고 다 성도가 아닙니다. 하나님보시기에 아름다운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라고 다 교회가 아닙니다. 목사라고 다 목사가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참된 교회와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적당히 예수 믿는 것은 하나님이 절대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내 할 일 다 하고, 내가 즐길 것 다 즐기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다 만나고

그렇게 예수 믿는 것은 예수 믿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은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마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아 황무하게 된 포도원에 찔레와 가시덤불만 무성하게 남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비를 안 보내시니.. 그 땅이 더욱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아담에게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하셨죠. 창3:18

 

이런 사람은.. 사업을 하든지, 직장에 다니든지 뭘 하든지.. 일이 풀리지 않습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그 결과는 '찔레와 가시'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버림 받은 포도나무요, 포도원이기 때문입니다.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울부짖음)이었도다

 

이것은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2, 4절)에 대한 설명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대하신 좋은 포도는 '공평'(미쉬파트)과 '의로움'(체다카)이었어요. 1:21, 27

 

그러나 정작 맺힌 것은 '포학'(미스파흐) 과 '울부짖음'(체아카)이었습니다.  :7

미쉬파트-미스파흐, 체다카-체아카 이렇게 비슷한 발음으로 '언어 유희'를 사용했습니다.

 

그들의 포학과 울부짖음에 대해서 사1:21~23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었도다.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는 한때 순은이었으나 이제는 쓸모없는 찌꺼기가 되었으며)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오늘날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잘 다스리고 있습니까? (행20:28)

 

 

◑2. 이사야는 6가지로 '들포도'들의 죄를 지적하다               사5:8~23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맺고 있는 들포도 열매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5장 끝까지 “화 있을진저” 를 6번이나 반복하시면서  :8, 11, 18, 20, 21, 22, 

그들의 죄악을 낱낱이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의 죄악이 어떤 거였습니까?

 

예수님도 마태복음 23장에서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에게

7번이나 “화 있을진저” 라고 저주를 퍼부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복만 받을 것으로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냄새 나는 들포도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저주하시고, 대적하십니다.

 

▲1. 첫 번째 '화 있을진저'는  <탐욕>에 대한 저주입니다.

 

8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9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할 자가 없을 것이며

 

물질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물질입니다.

이상하게 가지면 가질수록 더 공허해 집니다.. 그래서 더 가지려 하는 것이죠.

 

일례로 명품 가방도 신발도, 하나 가지면 두 개 가지고 싶고, 세 개 네 개 가지다가

나중에는 그 매장에 있는 가방과 신발을 다 사버리고도.. 여전히 목말라 합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고 예언하십니다. :8

 

10절, 열흘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지기에는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열흘 동안 가꾸던 큰 포도원에서 겨우 한 바트를 수확할 것입니다.

한 바트는 약 23 리터 인데 큰 포도원에서 적은 양을 수확한다는 것은

땅이 황폐화 될 것을 의미합니다.

 

포도원 뿐만 아니라 한 호멜지기 전토에서도 한 에바 뿐이 수확을 못할 것입니다.

한 호멜은 230리터로서 곧 10 에바인데, 

겨우 한 에바, 즉 1/10만 수확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땅이 황폐되어 수확이 적은 것은, 하나님이 비를 막으셨기 때문이고,  :6  

신자의 탐욕으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아 황폐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찔레와 가시'를 내는 것이죠.  :6

 

▲2. 두번째 '화 있을 진저'는  그들의 <술 취함과 방탕함>이었습니다.

 

11절,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독주를 따라가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술을 얼마나 즐겼는지,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라고 했습니다.

술취함이 위험한 것은, 종종 2차 범죄, 3차 범죄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술취한 자들은, 하나님의 행하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12절,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결국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는 말씀처럼   계3:1

들포도를 맺는 신자의 삶은, 그의 영혼이 죽어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신앙과 영적인 일에 아무런 관심도 없고,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신자는

'화 있을진저' 하시는 이사야서의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에게 '무지한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지한 자들에게 임할 심판을 네 가지로 지적하셨습니다.

 

-사로잡힐 것이고, 

-주리고 목마를 것이고,

-음부에 빠지게 될 것이고, 

-굴복되고 낮아질 것입니다.

 

13절,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14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

15 천한 자는 굴복되고 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현재의 열락(悅樂)하는 삶에 대조되는.. 장차 닥칠 미래의 고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하셨죠. 눅6:25

성도인 우리는, 성경말씀에 근거, 자기 미래를 앞서 내다보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함 때문에

그들은 바벨론에게 BC 586년 멸망 받아 70년 동안 포로로 사로 잡혀 가서

노예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꼭 BC 586년 전에도, 작은 전쟁과 침략에 늘 시달리면서 

풍전등화와 같은 불안한 시절을 보냈으며, 작게 포로로 잡혀가기도 했습니다. 

 

14절의 '음부'는 지옥으로 볼 수도 있으나, 그 일차적 의미는 '죽음, 무덤'입니다.

사7:2절에도 북왕국이 아람과 동맹해서 공격해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왕과 그 백성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7:2

즉 온 국민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는 것입니다.  '들포도'들에게 임하는 재앙입니다. 

 

예수님도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고 하셨고,  눅3:9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15:2

 

우리가 말씀에 무지해서 :13

찍혀 불에 던지우거나, 제해 버려지지 (포도나무 가지치기 pruning) 말아야 하겠습니다. 

 

계시록의 표현으로는 '촛대를 옮기시는' 것입니다.  계2:5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무지함입니다.

더 미련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대로 우리가 이 무지함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저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무서운 심판과 저주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귓등으로 듣는 '미련함' 속에서 나오시기 바랍니다.

(잠27:22)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미련함 속에서 나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입니다.

  

16절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

 

15절과 16절을 연결해서 읽으면

'죄악된 인간은 낮아지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높임을 받으신다'는 진리입니다.

이 진리는, 구약성경에 반복해서 나오는 신학이요, 명제입니다.

 

사람은 심판을 받고 나서, 이 진리를 깨달으면.. 그 때는 너무 늦습니다.

그리고 수업료도 상당히 비쌉니다.

편안한 날에 이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17절,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먹을 것이요

살찐 자의 황무한 밭의 소산은 유리하는 자들이 먹으리라

 

17절은, 하나님이 '들포도'들에게 심판을 내리신 결과

고관과 부자들에게 눌려 있던 '어린 양'들이 이제 풀려나서 평화로이 풀을 뜯으며 

그들의 밭의 소산은  행인들이 먹게 되는.. 황량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3. 세 번째 '화 있을진저'는 '하나님의 심판이 더디다고 <조롱>하는 자들'입니다. 

 

18절,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

19 그들이 이르기를, 그 God는 자기의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에게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는 자기의 계획을 속히 이루어 우리가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이사야는 악인들을 굵은 밧줄로 마차를 끄는 모습에 비유합니다.

'거짓의 끈'은 죄인들이 그들의 죄악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교묘한 궤변이나 그릇된 논리를 가리킵니다.

 

'수레 줄' 즉 마차의 밧줄은 그들이 무시하고 조롱하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만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

 

19절에서 악인들은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제발 하나님으로 하여금 지체치 말고 신속하게 움직이게 하여

우리 눈으로 그가 행하신다고 아득한 옛날부터 약속해 오신 그 심판을 보게 하라.

그는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니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킬 것 아니냐?'

라며 조롱하고 있습니다.

 

▲4. 네 번째 화 있을진저..는 '선과 악을 <전도>하는 자들' 입니다.

 

20절,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화 있을진저’

악인들은 도덕을 파괴하고, 가치 전도(顚倒)에 앞장 섭니다.

 

이들에게는 선과 악을 규정한 객관적, 초월적인 규범이 더 이상 존재치 않으며,

있다면 언제나 그들의 자기 합리화된 행위 뿐입니다.

 

이런 죄를 짓기 쉬운 계층이 특히 ‘지도자 계층’입니다.

 

'광명'과 '단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상징하며, 시19:8, 10

'흑암'과 '쓴 것'(민 5:18;신 32:32;렘 2:19;4:18;약 3:11)은 악의 상징입니다.

 

그들은 심령이 뒤틀려 매사를 왜곡시키면서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20

그래서 사람마다 역사와 사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왜곡된 자를 “화인 맞은 양심”이라고 합니다. 딤전4:2

악인이 잘 못 되면, 이렇게 왜곡을 하게 되고,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법인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모든 도덕, 윤리, 사상, 법률을 판단하기를 원합니다.

 

선한 것을 악하다고 판결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욱이 악한 것을 선하다고 판결하는 세상은

정말 미친 세상, 뒤틀린 병든 세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불의하고 거짓된 자가 판치는 세상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쓴 것과 단 것을 혼동, 전도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쓴 것’은 악을 표현하고, 히12:15, 엡4:31

‘단 것’은 선행, 거룩함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악행과 선행, 추함과 거룩함을 혼돈한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5. 다섯 번째 '화 있을진저'는 ..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들입니다. 

 

21절,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들포도'를 맺는 자들의 일반적인 특징입니다.

자기를 지혜롭고 명철하다고 여기는 교만입니다.

 

이들은 자기 견해와 주장이 강합니다.

그리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다. 삿17:6, 21:25

 

성경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잠3:7

자기 지혜와 명철을 과신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자의 표본입니다.

  

마치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처럼 자신들만이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가장 완벽하다고 과신하여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하여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는” 어리석은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고전2:8

 

▲6.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화 있을진저'는 .. 술에 젖은 불의한 재판관에 대함입니다.

 

22절,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3절, 그들은 뇌물로 말미암아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공의를 빼앗는도다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그들은..’

이사야의 어조는 풍자적입니다.

그들을 용감하고 힘이 넘치는 사람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 용감함은 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포도주를 마시기 위한 것이며,

기껏해야 독주를 빚기 위한 것이었다고.. 풍자하고 있습니다.

 

뇌물로 인하여 악인을 의롭다고 판결하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정치, 관료, 법정까지 뇌물로 오염되고

불의한 판결로 의인은 악인이 되고 악인은 의인이 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세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3. 들포도를 맺은 '화 있을진저' 사람들이 받을 심판 - 즉 전쟁        사5:24~30

  

▲24절, 이로 말미암아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 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 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한 마디로 말하면, 이들의 죄악은 '말씀을 멸시했다'는 것입니다.

  

▲25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그들 위에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

산들은 진동하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 가운데에 분토 같이 되었도다.

그럴지라도 그의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의 손이 여전히 펼쳐져 있느니라.

 

'산들은 진동하며'

본문을 과거로 해석하는 이들은 이 말이 웃히야 왕 시대에 일어난 지진을 뜻한다고 봅니다. 암1:1

오늘 본문 말씀에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그들 위에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25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단히 화가 나셔서 징계로 내리 치신 결과

거리에는 시체가 즐비 해 있음에도.. 하나님은, 그 손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못하여, 때리는 손을 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어떻게 때리십니까?

먼 나라에서 적군들이 사자처럼 몰려와서, 짓밟아 버리게 하실 것입니다.↓

 

26절, 또 그가 기치를 세우시고 먼 나라들을 불러

땅 끝에서부터 자기에게로 오게 하실 것이라 보라 그들이 빨리 달려올 것이로되

 

앗수르 와 바벨론의 침공을 예언한 것입니다. 

 

27 그 중에 곤핍하여 넘어지는 자도 없을 것이며 조는 자나 자는 자도 없을 것이며

그들의 허리띠는 풀리지 아니하며 그들의 들메끈은 끊어지지 아니하며

 

앗수르 와 바벨론의 군대가 아주 잘 훈련되어 유다를 칠 것을 예언합니다. 

 

28 그들의 화살은 날카롭고 모든 활은 당겨졌으며

그들의 말굽은 부싯돌 같고 병거 바퀴는 회오리바람 같을 것이며

 

상황은 점점 더 급박해져 갑니다. 질서정연하게 대오를 지어 먼 곳으로부터 달려온 그들은

이제 유다를 향한 모든 전쟁 준비를 다 끝마쳤습니다.

고대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로 꼽히는 화살과 병거들은 출전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 목표물을 향해 활은 당기어졌습니다.

 

29 그들의 부르짖음은 암사자 같을 것이요 그들의 소리지름은 어린 사자들과 같을 것이라 

   그들이 부르짖으며 먹이를 움켜 가져가 버려도 건질 자가 없으리로다

 

고대인의 전쟁은 함성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시74:4, 렘 2:15

선지자의 귀에 그 소리는 마치 암사자와 어린 사자의 포효소리로 들립니다.

 

'어린 사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케피림'은 젖을 떼고 어미에게서 독립하여

스스로 먹이를 잡을 줄 아는 젊은 사자를 가리킵니다.

 

30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 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려서 어두우리라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여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삼상2:30

 

또한 기대를 저버린 사회를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사5:5

 

이는 장차 앗수르, 바벨론 군대를 보내서

나라 전체를 짓밟고 초토화시킬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위세가 얼마나 당당한지,

“그 말굽은 부싯돌 같고 병거 바퀴는 회오리바람 같을 것이며” :28

마치 사자처럼 달려들어 닥치는 대로 움켜 삼킬 것입니다.

 

그 파멸된 곳을 바라보는 자마다

흑암과 고난이 가득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30

 

처절한 파괴와 황폐함이 가득하고, 곳곳마다 고통과 슬픔의 탄식소리가

하늘을 찌르며, 앞이 안 보이는 캄캄한 절망적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저버린 신앙공동체의 비극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우리의 현실을 점검하고 성찰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분노를 촉발시켜 징계의 손을 들어 올린 지경까지 오지 않았는지

냉철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언약 신앙공동체를 건설하였습니까?

예배 공동체, 거룩 공동체, 사명 공동체로서 균형 잡힌 사회를 세워가고 있습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포도원'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포도원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읍시다.

 

기대는 컸는데, 실망이 큰 포도원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거기에는 무섭고 두려운 심판이 작정되어 있습니다. 즉 전쟁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심판으로서의 전쟁입니다.

 

꼭 국가간의 전쟁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의 전쟁,

가정적으로의 전쟁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심판으로서의 전쟁을 맞이하지 않도록

'들포도' 열매를 맺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적용 / 포도나무 열매에 대한 오해

 

포도나무의 열매를 ‘풍요와 진보’로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여러분, 요15:장의 비유에서, 또한 본문 이사야5:장에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했고

들포도 열매를 맺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 가지가 맺는 ‘열매’를

‘풍요 또는 진보’로 생각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그렇게 설교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일관성에 비추어볼 때,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서 맺는 포도열매는

1차적으로 ‘성령의 9가지 열매’입니다. 갈5 :22~23

사랑 - 희락 - 화평 - 오래참음 - 자비 - 양선 - 충성 - 온유 - 절제의 열매들입니다.

 

본문에서도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 5 :2

 

그 다음에 그 열매가 어떤 것인지 이렇게 나옵니다.     

    그들에게 공평 justice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사5 :7

 

     이사야서에도, 포도나무에게, 하나님이 바라신 열매는

     공평이요, 의로움이었습니다.

     물질적 풍요나 성공의 열매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포도나무 열매를 ‘풍요와 진보’로 열매 맺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아직 우리가 영적으로 충분히 성숙되지 못한 가운데서,

그런 물질적 풍요를 간구합니다만, 

하나님은 좀처럼 우리 소원대로 허락해 주시지 않습니다. 

무응답이 오히려 은총입니다. 덜컹 응답되면, 성령의 열매는 안 맺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1차적으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주셔서, 우리가 먼저 성숙하기 원하십니다.

그렇게 성숙된 다음에 2차적으로 ‘풍요와 진보’도 따라올 수 있겠죠.

 

만약 하나님이 포도나무 가지들에게

성령의 9가지 열매보다, ‘풍요와 진보’의 열매를 먼저 주신다면,

그 가지들은 아마 분명히 타락하고 말 것입니다.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입니다.

 

▲청주의 한 목사님이, 50대 중반의 나이에 지난 화요일 소천하셨다.

(2010년 5월경, 펀 글)

 

이 목사님이 임종 전에 갈라디아서 5 :22절 말씀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외우고 묵상하신 일에 대하여 들었다.

 

사랑의 열매, 얼마나 많은 사랑을 가지고 사람을 대했는가?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희락의 열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목회를 하였는가?

주신 은혜에 만족하여 기뻐하고 감사하지 못한 삶에서 막혀버렸단다.

 

화평의 열매, 화평을 회복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 사람들을 불러 화해하였단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하나 하나 다 자신이 없더라고 고백했다.

 

‘내가 다시 일어난다면 사람을 사랑하고,

상처를 싸매주고 위로하는 목회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이제는 그것도 하나님이 그만 두라고 하셨습니다.' (소천이 가까움)

 

그러면서 깨달아지는 것이 요한복음 15장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이 생각났단다.

 

성령의 열매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을

마치 자신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무엇인가 이룰 수 있는 것처럼 열심히 (외적인, 성공적) 일만 하였다는 것을 깨닫고

너무나 후회하였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렇지만 내 삶을 뒤돌아보면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너무 많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