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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19장 애굽을 향한 심판의 예언

LNCK 2021. 9. 25. 08:00

 

◈애굽을 향한 심판의 예언        이사야19장           출처보기

  

◑1. 애굽의 사회적, 정신적 파탄 예언       사19:1~15           

 

▲1절,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 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여호와께서 임하심은 애굽을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시96:13).

그가 구름을 타고 임하심은, 신속하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종종 하늘 구름과 바람 날개를 타고

다니시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신33:26, 삼하22:11)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녹으리로다’

하나님의 신속하고 거룩한 임재 앞에서

애굽의 우상들은 두려움으로 떨 수밖에 없습니다.

 

천지의 주관자이신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께서 임하시면

세상의 있는 존재들은 두려워 떨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우리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을 보면서

‘혹시나 이것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징조는 아닐까?’라는 의문을 제기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심판의 징조들은 제거하고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임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할 것입니다.

 

▲2절, 내가 애굽인을 격동하여 애굽인을 치리니..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칠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2절에 의하며 애굽에 내려진 심판의 형태는 '내란'입니다.

형제가 형제를, 이웃이 이웃을 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각기 형제를...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동족상잔의 비극은 ‘형제’에서 ‘이웃’으로, ‘성읍’에서 ‘나라’로 범위와 강도를 더해갑니다.

여기서 ‘나라’는 수십 개로 나뉘어진 고대 애굽의 지방들(nomes, 노메스)을 가리킵니다.

 

이렇듯 사람들 사이에 소요가 일어나서

다툼과 분쟁으로 사회적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은

심판의 징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 사회나 국가를 심판하실 때,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즉, 자중지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 각 지역, 각 국가마다 온갖 분쟁과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종교 간의 분쟁, 인종 간의 갈등, 민족 간의 다툼, 정파 간의 내전...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싸움들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밖으로 크게 들어나 있지 않은 것 같지만

엄청난 동서간, 남북간, 계층간, 세대간 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노사 갈등, 정파 갈등, 특히 보수와 진보간의 갈등이,

오래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지역마다 투쟁이 난무하고,

도심에는 매일같이 집단마다의 시위가 계속되고,

지상에는 정파와 집단의 비난과 성명전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적 혼란의 상태는 하나님의 심판의 징조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그 민족과 사회가 무너져서 멸망으로 치닫게 하는 징조인 것입니다.

 

▲3절,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의 계획을 내가 깨뜨리리니

그들이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

사람들의 마음이 두려움에 녹고 (1절)

지역마다 분열되어 골육상쟁하며 (2절)

판단력마저 고갈된 상태에서 (3a절),

 

이런 상황에서 애굽 사람들이 의지할 데라곤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판명된 우상들과 죽은 자들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비참함은 점강법으로 서술된

‘우상 - 마술사 - 신접한 자 - 요술객’의 어순에서 명백히 드러납니다.

 

즉 그들이 가장 신뢰하던 우상에게 도움을 구하나, 불만족한 고로

그보다 낮은 마술사에게 도움을 구하고,

그래도 안 되자 신접한자, 요술객들에게까지 미래를 의탁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 교훈을 추론할 수 있다.

1) 사회가 불안할수록 허탄한 미신이 판치고 광신적인 종교 집단이 활개친다.

2)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는 그 어느 것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재한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할 수 없다.

 

사람들의 정신이 쇠약해져서, 미신을 찾아다니는 현상도 심판의 징조입니다.

 

사회적 혼란과 내전으로 인한 파괴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피폐함을 가져 올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공허 상태가 올 것이고

우상숭배와 미신이 성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의 계획을 내가 깨뜨리리니’

하나님은, 애굽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계획과 경영들을 무너지게 하고

실패하게 만들어버린다는 말입니다.

 

인간들은 국가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청사진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곳에 온 희망을 걸고 달려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세우는 모든 계획들을 무너지게 할 것입니다. (시33:10)

  

백성들이 미신을 많이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불안하다는 증거이며

어리석어지고 혼미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사회에 미신적인 일들이 흥왕하게 된다는 것은

그 사회를 심판하려는 징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4절, 내가 애굽인을 잔인한 주인의 손에 붙이리니 포학한 왕이 그들을 다스리리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서 ‘잔인한 군주’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

학자들 간에 이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이는 그가 애굽의 삼페티쿠스라 하기도 하고,

혹은 앗수르의 사르곤 혹은 에살핫돈,

혹은 바벧론의 느부갓네살, 페르시아의 캄비세스 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는 잔인한 군주가 애굽 본토인인지 아니면 외국인인지 조차도

분명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역사상의 특정한 인물과 결부시키기보다는

‘군주들’이란 복수 명사에서 알 수 있듯이,

애굽의 여러 군주들에게 지속적으로 압제를 당할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하게 여겨집니다.

 

잔인하고 포악한 군주가 세워져서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도 심판의 징조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범죄한 사람들을 심판하는 한 방식이

‘악한 지도자가 세워지도록’ 방치하시는 것입니다.

애굽이 그런 형벌을 받게 될 것을.. 본문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늘 기도하면서,

현명한, 하나님이 세우시는 지도자가 세워지도록.. 염원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말씀은 비록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이나

우리들에게도 적용해 보아야 할 아주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2. 애굽의 경제적 파탄 예언         19 :5~10

 

▲5절,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을 ‘바다’라고 불렀다. (18:2)

차고 넘치고 범람하여서 주변 땅들을 적셔주는 나일 강은

예로부터 애굽의 자랑이며 풍요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다처럼 풍부한 이 강물도 필경은 말라 없어질 날이 이를 것입니다.

선지자는 여기서 동일한 의미를 지닌 세가지 동사를 연속적으로 사용하여

나일 강에 임할 기근의 심각성을 강조해서 보여줍니다.

 

6절, 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 애굽의 강물은 줄어들고 마르므로

갈대와 부들이 시들겠으며

 

경제적 파탄으로 인한 국가적 곤궁과 국민의 곤비함이 발생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의 징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경제의 근원인 강물들이 말라서 악취가 나고 식물들은 시들어질 것입니다. (5~6절)

바닷물도, 강물도, 시냇물도 전부 말라서 황폐해지고 물들은 더럽혀지고 줄어들어

강가에 있는 식물들이 시들어 죽어갈 것입니다.

 

농업을 중심 산업으로 삼았는데,

그 근본 원천이 되는 물들이 말라 썩어 악취가 난다는 것은

애굽 경제의 황폐함, 또는 파탄이 올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7절, 나일 가까운 곳 나일 언덕의 초장과 나일 강 가까운 곡식 밭이 다 말라서

날려가 없어질 것이며

 

일반적으로 애굽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대신

나일 강을 통하여 중앙아프리카의 평원에 내리는 겨울 강우와

에티오피아 고지대에 내리는 여름 강우가 유입되어

언제나 풍족한 수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나일 강의 마름은 곧 애굽 전역의 사막화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재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목축업과 농업의 피폐함뿐만 아니라, 어업계도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강 주변의 언덕의 초장과 곡식밭들이 다 말라서 없어질 것입니다.

강물이 말라지자 강 주변에 있는 초장, 강가 가까운 곳에 있는 곡식밭들이

황폐하게 변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곡식을 더 이상 거둘 것이 없을 정도로 피폐하게 될 것입니다.

 완전히 농업 경제가 파탄이 나서, 더 이상 일어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8절, 어부들은 탄식하며 나일 강에 낚시를 던지는 자마다 슬퍼하며

물 위에 그물을 치는 자는 피곤할 것이며

 

물론 이 모든 변화는 전적으로 나일 강의 마름에서 기인된 것이다.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탄식하고 슬퍼하며 피곤하게 될 것입니다.

강물이 말라 농업이 망치는 것뿐만 아니라 수산업까지도 파산하게 될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나일강에서 어업에 종사하던 어부들이 절망에 빠질 것입니다.

 

그들은 탄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기력을 잃어버리고 절망할 것입니다.

 

▲9절, 세마포를 만드는 자와 베 짜는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며

포목 장사하는 사람들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애굽은 예로부터 삼을 많이 제배하였기 때문에 베를 짜는 사람들도 많았고

세마포 등 많은 옷감들을 생산했었습니다. (겔27:7)

이러한 직물들로 세계 각국들과 무역거래를 하면서 경제적 부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강물이 마르면서 삼이 제대로 제배가 안 되자

자연히 직물 산업이 무너지게 되고 무역업은 파산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로 인하여 직물을 생산하는 사람들, 무역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수치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10절, 그의 기둥이 부숴지고 품꾼들이 다 마음에 근심하리라

 

‘기둥과 품군들’은 사회의 두 구성 집단,

즉 고위 관리자들과 하층 노동자들을 의미합니다.

 

높고 낮음을 불문하고 사회의 모든 계층이 한결같이 고통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들 중에 속해 있던 미국, 영국 같은 나라에서

데모와 폭동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 경제적 파산 때문입니다.

국가적인 경제 파산은 하나님의 심판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5천년 역사동안 찢어진 가난 속에 살던 우리 민족을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 오늘의 삶을 누리게 하신 것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가 부요해졌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경제가 넉넉해지면 사람들의 마음이 교만과 오만함에 빠지기 쉽고,

사람들이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여 향락 문화가 번성하게 되고,

경제적 범죄들이 만연하게 되고, 국민들은 흥청망청하여

정도에 지나친 소비문화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전부 경제의 목적, 부요를 주신 이유를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인간들의 행동이요 처신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경제적 파탄이 일어나도록 각가지 모양으로 심판을 내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리고 경성해야 할 것입니다.

 

◑3. 애굽 지도자들의 파탄          19:11~15

 

고대 세계에서 애굽은 지혜를 가진 유명한 현자들의 나라로 알려졌습니다.

애굽의 현자들은 자신들을 “지혜로운 자들의 후예” 라고 자랑하면서

왕의 측근에서 조언함으로써 국가 경영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그들은 국가가 어떠한 위기에 처하든지 자신 지혜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했으며

애굽의 백성들도 그렇게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이것을 빈정대며 책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비록 애굽 사회에서 모퉁이 돌과 같이 중요한 존재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에, 그들의 지혜는

애굽을 그릇된 길로 끌고 갈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11절, 소안의 방백은 어리석었고 바로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의 책략은 우둔하여졌으니

너희가 어떻게 바로에게 이르기를 나는 지혜로운 자들의 자손이라

나는 옛 왕들의 후예라 할 수 있으랴

 

‘방백들’, 곧 지도자들은 애굽의 최고 귀족 계급인 제사장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의 지혜와 학식은 이미 고대에 유명하였습니다. (왕상4:30, 행7:22).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해서 애굽 전체가 재난에 빠진 이 상황에서

그들의 지혜조차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했습니다.

 

이러한 무기력함은 심지어 바로의 곁에 서서 온갖 조언과 모략을 짜내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모사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즉 그들은 우둔하여졌습니다.

 

어리석은 국가 지도자와 정치인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하여서 국가적 파탄이 오고

국민들이 잘못된 길로 가게 된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심판의 징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소안(Zoan)은 애굽의 타니티쉬 왕조의 수도로서

정치, 행정의 중심 도시였습니다(시78:12, 사30:4).

 

그곳에서 애굽의 정치와 행정을 맡고 있는 지도자들이 어리석음에 빠져있고

바로왕의 정책입안자들의 계획들마다 어리석을 뿐 아니라

야만스러운 것들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백성들을 평안하고 행복한 자리로 인도하려는 정책을 세우는 것보다는

백성을 억압하고 짓밟고 수탈하려는 야만적인 정책을 수립하여

전 국민의 입에서 탄식소리가 나고 절망에 빠지게 하는 정책들을 펼칩니다.

 

▲12절, 너의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뜻을 알 것이요, 곧 네게 말할 것이니라.

 

‘너의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이사야 선지자의 조소는 바로를 향해 주어졌습니다.

 

그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계획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향하여 가지신 계획은, 애굽이 잠시 고난을 당하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심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사19:16~25)

 

지혜로운 자들은 만군의 여호와의 계획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깨닫고

그 역사적 정황을 백성들에게 말해주고 인도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애굽의 정치지도자, 행정가들이 전부 어리석어서

국가와 백성들을 잘못된 구렁텅이로 끌고 갈 것입니다.

 

▲13절, 소안의 방백들은 어리석었고, 놉의 방백들은 미혹되었도다.

그들은 애굽 종족들의 모퉁잇돌이거늘 애굽을 그릇 가게 하였도다.

 

‘놉’은 멤피스이며, (렘2:16, 44:1, 46:14, 19, 겔30:13, 호9:6)

고대 애굽의 주요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서, 삼메티쿠스에 의해 왕도(王都)로 부상되었죠.

 

소안과 놉은 델타 지역의 북단과 남단이라는 대극적인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선지자는 델타(애굽)을 종횡하여 지혜로운 자는 한 사람도 없음을 말하는 것이죠.

 

각 지방 행정관들이 미혹을 받아 어리석게 나라를 잘못된 길로 가게 할 것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각 지방의 행정관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모퉁잇돌(cornerstone)

역할을 해야 할 중대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미혹에 사로잡혀’ 어리석은 정책을 펼치므로 나라를 곁길로 나아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애굽의 지도자들이 어리석게 된 원인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리석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

 

▲14절,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어지러운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애굽을 매사에 잘못 가게 함이 취한 자가 토하면서 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애굽의 지혜로운 자들에게

‘어지러운 마음’, 곧 혼돈의 영을 불어넣으셨다고 말한다.

 

그 결과, 그들은 마치 술 취한 자가 제 몸을 이기지 못하고 토하며 비틀거림과 같이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을 끝없는 혼란과 비극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기억할 것은, 만약 미래에, 이런 현상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전개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징조라는 것입니다. 이들로 인하여 국가와 민족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여 결국에는 파멸을 당하게 만들 것입니다.

 

애굽의 지도자/지혜자들이 이렇게 어리석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리석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14

 

하나님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지혜가 최고인 줄 알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어리석은 생각을 심어준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 아니하므로

자신들의 세상적인 지혜대로 살도록 그냥 버려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대로 그냥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신 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롬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형벌이 그냥 내어 버려두는 것입니다.

인간이 잘못된 길로 가도 양심이 아무렇지도 않고

악한 죄를 지어도 회개도 모르고

우상 앞에 절을 하여도 자신의 무서운 짓을 모르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내어버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관심 밖에 있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옥 가도록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형벌인지 모릅니다.

 

▲15절, 애굽에서 머리나 꼬리며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가 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징계로 인해 주어진 이 불가해한 현기증에서 깨어날 자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머리나 꼬리나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는

지위 고하를 막론한 애굽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포괄하는 말입니다. (9:14 참조).

 

여기 ‘머리’는 지도자와 상류 사회를,

‘꼬리’는 서민들과 하류계층을,

‘종려나무 가지’는 존귀한 자들을,

‘갈대’는 비천한 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국가적인 경제적 파탄과 정치적 실패는

결국에는 그들 모두에게 일자리가 없는 실업자들을 양산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는 시위와 폭동들을 보면

전부 일자리가 없고, 실업자가 쏟아지게 되자

시민들이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을 폭발하면서 폭동을 일으키는 것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회와 국가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심판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사회와 국가를 심판하려 하실 때에

어떤 이유에서든지 경제적 상황이 무너지는 일들이 발생하며

국가의 기둥들이 파괴되어

백성들의 삶이 고달파지면 절망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국가 정책을 담당한 사람들에게 어리석음과 미혹의 역사가 일어나서

잘못된 정책을 펼치게 되고

전개하는 사업마다 실패하는 일들이 속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우주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이 무엇인지 몰라서

멍청한 사업을 전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을 잘 믿을 때, 그 사회는 불신자들까지 덩달아 복을 받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하나님의 심판적 징조들을 제거하려면,

먼저 성도 각 사람이 하나님을 잘 믿는 일입니다.

의인 10명이 없어서, 소돔 성이 망하지 않았습니까!

 

 

◑4.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 계획       사19:16~25

 

*보편적 구원 : 하나님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기 원하신다는 뜻

 

이스라엘을 여행하다가 베들레헴 쪽으로 가려고 하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있습니다.

 

이 분리 장벽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6m 높이로

총 620km 나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장벽으로 인하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물자와 사람의 이동이 철저히 봉쇄되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산업이 발달한 이스라엘 지역에 가서 일했었지만

분리 장벽이 설치된 이후에는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함부로 이동할 수 없어서

모두 실업자 신세가 되어 평균 실업률이 36%나 되어

10명 중에 4명이 실업자이고 대학졸업생들은 70% 이상이 일자리가 없는 실정입니다.

 

심지어 옛날에는 젖과 꿀이 흐르던 가나안 땅이

이제는 물 한방울 얻기도 어려운 천박한 땅이 되어버렸고

그들은 물 마실 권리, 일할 권리, 이동할 권리마저 박탈된 채

사방으로 고립되어 점점 말라죽어가는 생지옥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테러의 고통이 컸으면, 그런 분리장벽을 설치했을까..

하는 이해하는 마음도 있습니다만..

 

이스라엘이 민족은 세계인을 향하여 선교적 사명을 부여받은

택한 민족인 것을 감안하면, 더욱 분리장벽을 쌓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여 집니다.

생존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선교적 과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유대인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직 자신들만이 하나님께 택함 받았다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자신들의 종교, 자신들의 국가,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기독교도 마찬가지 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만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만 위한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 인류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성경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향한 ‘정하신 계획’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날”, 즉 여호와의 날,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자신의 예언된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는 날에

애굽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성을 세워 구원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지상 위에 하나님께서 버리시는 민족은 하나도 없습니다.

옛날에 그렇게 재앙과 심판을 내리셨던 애굽을 위하여

하나님은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으며 그들을 “내 백성”이라 부르시고,

 

심지어 처절한 심판의 대상자였던 앗수르를 향하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좁은 소견을 버리고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을 바르게 인식할 줄 알아야 합니다.

 

▲16절, 그 날에 애굽이 부녀와 같을 것이라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흔드시는 손이

그들 위에 흔들림으로 말미암아 떨며 두려워할 것이며

 

애굽은 한 때 “큰 악어”라고 부를 정도로 강대한 나라였으나, (겔29:3, 32:2)

오늘 말씀에는 기력이 쇠약해진 “부녀와 같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렘51:30, 나3:13)

나약하고 미약한 국가가 되다보니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보면서 두려움에 떨게 될 것입니다.

 

먼저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 위에 ‘흔드는 손’을 보면서 두려워 떨게 될 것입니다. (16절)

‘흔드는 손’이란 (하나님의 지휘하시는 손)  *사30:32

애굽 사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심판의 현상들을 보면서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17절, 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계획으로 말미암음이라 그 소문을 듣는 자마다 떨리라

 

유대의 땅이 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앗수르 대군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한 ‘정하신 계획’에 대한 소문을 들으면서

두려움에 떨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바벨론을 통하여 유다 왕국뿐만 아니라, 애굽까지도 침략 당하고

정복될 것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의 소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만군의 여호와’, 즉 우주와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역사적 계획을 깨달은 것입니다.

눈을 열어 하나님의 역사적 경륜을 볼 줄 아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18절,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를 멸망의 성읍이라 칭하리라

 

선지자는 두려움의 정점에서 애굽이 여호와께 돌아올 것을 말씀합니다.

‘다섯 성읍’은 이 사실을 보증해주는 전조로서 주어집니다.

이 ‘다섯’이라는 숫자는 많은 것 가운데서 지극히 적은 것을 뜻합니다. (30:17, 레26:8, 고전14:19).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를 멸망의 성읍이라 칭하리라'

매우 난해한 구절입니다. 주1)을 참조하세요. 

 

학자들은 ‘멸망의 성읍-이르 하헤레스’가 ‘태양의 성읍-이르 하헤레스’의 오기(誤記)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약 15개의 히브리어 사본들과 탈굼역(Targum),

벌게이트역(Vulgate) 등에 이 단어는 ‘태양의 성읍’(이르 하헤레스)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옳다면 본문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다섯 성읍 가운데 하나인, 태양신을 섬기던 바로 그 우상의 성읍조차

하나님께 돌아와 가나안 방언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하는 다섯 성읍을 세울 것입니다.

장차 애굽 땅에는 가나안 방언, 즉 히브리 언어를 사용하는 도성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기로 맹세하게 될 것입니다.

 

태양신을 섬기고 황제 숭배사상으로 물들어 있던 땅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거역적인 행동만 하던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도성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곳은 예레미야44:1에 나와 있는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믹돌, 다바네스, 놉, 바드로스, 장망성이라고 했습니다.

장망성(將亡城)은 ‘태양의 도성’(Heliopolis)을 가리킵니다.

 

▲19절,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이처럼 애굽도 장차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헌신을 표시하기 위하여

제단과 기둥을 세울 것입니다.

애굽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한 제단이 세워질 것입니다.

 

애굽에는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위한 예배의 제단이 세워지고

하나님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질 것입니다.

 

여호와를 예배하기 위한 제단은 원칙적으로 예루살렘에만 허용된 것이었으나

이방인의 땅 애굽에 예배의 제단을 세우게 된 것은 특별한 은총인 것입니다.

 

이것은 메시아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성취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인 것입니다.

 

이방의 땅에 예배의 제단을 세우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상에 사는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기를 원하시며, (사66:23)

이방 사람들을 택하여 예배를 돕는 제사장과 레위인을 세우실 것입니다. (사66:21)

 

▲20절,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징조와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요컨대, 본문의 요점은

하나님께서 애굽을 이스라엘과 똑같이 대우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되기를 계획하셨는데, (사2:1~3)

마침내 애굽 땅에 우상숭배의 제단들이 무너지게 하시고,

참 하나님의 예배 중심의 도시가 형성되고, 예배의 제단이 세워지며,

하나님을 위한 기념비들이 세우지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의 성취의 증거요 표적이 될 것입니다.

 

이런 표적을 보면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예언적 계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중심, 하나님의 계획,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만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참여할 선택된 민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땅의 있는 모든 족속이 신령한 복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이 부르짖으면 구원자를 보내주실 것입니다. (20하~22절)

애굽 땅에 예배의 제단이 세워지는 것도 징표가 되지만

또 한편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구원자를 보내 구원해 주시는 것도 하나님을 위한 징표가 되고 증거가 될 것입니다.

 

애굽 백성들은 압박자로 인하여 하나님께 부르짖게 될 것입니다.

여기 애굽의 압박자들이 누구냐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견이 있으나

성경과 역사적 배경을 맞추어 볼 때에 페르시아 왕들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특히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3세가 BC343년 애굽에 침략하여

정복하면서 도시의 성벽들을 파괴하고, 신전의 보물들을 약탈하였으며,

경전들을 전부 말살하고 애굽 사람들을 가혹하게 통치했던 것입니다.

 

억압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던 사람들은

마침내 참 하나님이신 만군의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여 ‘한 구원자’

또는 ‘보호자’(a mighty one)를 보내주셔서 그 괴로움에서 구원해 내실 것입니다.

 

여기 구원자는 바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을 가리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BC 333년 이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대를 무찌르고

애굽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었을 뿐 아니라

유대인들의 신앙을 좋게 보아서 애굽의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하늘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응답하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21절,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그 날에 애굽인이 여호와를 알고’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애굽에 편만해질 것을 말합니다.

이 지식은 전절의 구원의 경험으로부터 주어지는 체험적 지식을 가리킵니다.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고 예물을 드려 경배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해 주었다는 것은

엄청난 은총인 것입니다.

이것은 일찍이 바로왕과 애굽 사람들을 향하여 바라셨던 것입니다(출5:2, 8:10, 22, 11:7).

 

또한 미래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날

애굽 사람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경배하고 섬기게 될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신앙적 자격과 은총을 받을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로 작정만 한다면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자녀보다 더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사56:4~7)

 

▲22절,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 것이라도...고쳐 주시리라’

끈끈한 유대와 애정으로 결속된 하나님과 애굽의 관계는 부자지간으로 표상됩니다.

이스라엘과 더불어 새로이 하늘 아버지의 자녀가 된 애굽은

이제 징계의 형태로 하나님의 돌보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때로 그들이 죄악의 길에 빠질때, 하나님은 징계의 채찍을 드실 것이나

그럴 때라도 그들에 대한 치유룔 잊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호6:1, 히11장).

 

하늘에 계신 한 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애굽과 이스라엘의 차별은

사실상 완전히 소멸됩니다. 따라서 이 둘은 동일한 구원의 계획에 포함되게 됩니다.

 

애굽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는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자격과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이라고 가려내시고 물리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들에게 징계의 채찍을 들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돌아오고 회개만 하면

맞은 자리를 고쳐주시고 상한 자리를 싸매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부르짖는 것마다 들어주시고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한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는 것입니다(롬3:29).

 

하나님은 애굽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격을 주시고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고 고통에서 건져주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약속을 동일하게 적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인간도 차별하지 않으시는 것이 그의 우주적(=보편적) 계획이십니다.

   *universal이란 말을 ‘우주적’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보편적’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둘은 같은 말입니다.

 

▲23절,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애굽과 관련하여 보다 확대된 전 세계적인 전망이 펼쳐집니다.

선지자의 시대에 고대 근동을 지배하던 두 나라,

즉 유다를 중심하여 각각 남과 북에 위치하고 있던 애굽과 앗수르가

이전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마치 친구처럼 서로 왕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유다는 이 두 나라를 잇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 선지자의 세계주의적, 평화주의적 비전이 극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1) 그날에 유다는 세계의 중심이 되어,

끊어진 것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구심점이 될 것입니다.

 

2) 유다를 교량으로 하여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 가로놓인 전쟁의 통로가

그날에 복음의 통로, 평화의 대로로 바뀔 것입니다.

 

본문에서 얻을 수 있는 영적인 교훈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유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사이의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시키시고 이 둘을 화목하게 하심같이,

신자들은 분열되고 갈라진 인간관계를 회복시키는 자로서 역할을 해야 하며, (마5:9, 엡2:14-18)

 

둘째, 애굽의 입장에서 볼 때,

모든 관계의 우선은 하나님과의 화목이며,

그럴 때에 적대적인 관계들도 해소된다는 것입니다. (엡 2:13)

 

하나님께서 세계 만민을 위한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23~25절)

이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스라엘이나 애굽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온 세계로 확산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우주적인 것입니다.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 대로가 생겨 구원의 은총이 확산 될 것입니다. (23절)

이 말씀은 알렉산더 대왕 때에 성취된 말씀입니다.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팔레스틴과 페르시아가 있던 동방 지역,

애굽을 정복하고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면서

전 세계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정치뿐만이 아니라 문화까지도 통일 정책을 펼치므로

세계가 아테네로 대로가 생겼고

헬라가 망해 로마 제국이 세워진 후에도 계속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도로는 로마로'라는 말이 생겨나서

초대교회 시대까지 교통이 원활하게 만든 것입니다.

 

앗수르 사람이 애굽으로 가기가 쉬워졌고,

애굽 사람들도 앗수르로 가기가 쉽게 대로(大路)가 활짝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복음이 온 세계로 쉽게 확산되어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언하신 계획’대로 앗수르 사람과 애굽 사람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만드신 것입니다.

 

▲24절,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그날에 이스라엘이...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온 세상을 대표하는 두 개의 초강대국,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

이스라엘이 셋 중의 하나로서 참가하게 될 것인데,

이를 통해서 이전에 두 나라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림을 받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하나님의 축복을 중재해 주는 나라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결국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는

약속의 말씀의 실현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애굽, 앗수르를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창12:3)

 

하나님의 관심은 이스라엘만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더불어 애굽과 앗수르까지도 함께 ‘하나님의 복’이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애굽, 앗수르를 대표로 말씀한 것일 뿐

세계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복에 참여되는 것이 ‘우주적 계획’인 것입니다.

 

▲25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영적으로 연합된 세 나라에 대한 축복 선언으로 본장은 마감됩니다.

이 축복은 이스라엘에게만 배타적으로 허락되었던 권리와 영예로운 이름이

애굽과 앗수르에게까지 확대 적용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먼저, 애굽은 ‘나의 백성’(아미)이라 불리웁니다.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체결된 언약 관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10:24, 렘11:4, 호1:10, 2:23).

 

그리고 앗수르는 ‘나의 손으로 지은 작품’이라 불리웁니다.

이는 하나님이 진흙으로 빚어 만든 수고로운 작품이란 말입니다. (60:21, 64:8, 시119:73, 138:8).

 

이전에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로 쓰임 받았던 앗수르가, (10:5)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탈바꿈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하여는 ‘나의 산업’이란 이름이 그대로 주어집니다. (신4:20, 32:9, 시28:9, 47:4, 94:5, 미가7:14).

 

이 놀라운 예언은 16~25절에서 무려 6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그날’, 곧 복음이 만방에 선포되어질 신약 시대에 성취되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을 없애신 것에 대한

성취의 말씀인 것입니다(롬10:12).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세상의 모든 민족을 향하여 차별하지 않는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인 것입니다.

 

여러분! 눈을 열고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계획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사는 어떤 사람도, 어떤 민족도 멸망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모두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착각하지 마십시다.

좁은 소견을 갖고 판단하고 정죄하지 마십시다...

 

☞ 하나님의 보편성과 배타성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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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그 중 하나를 장망성(將亡城)이라 칭하리라.’

장망성, 곧 ‘장차 망하리라고 예정된 성’은 히브리어로 ‘이르 하헤레스’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무오한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의심하고 있다.

 

왜냐하면 애굽의 회심과 그로 말미암는 복된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본문에서

‘장망성’이란 단어는 문맥에 조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난점을 피하기 위하여 칼빈은

‘장망성’이라 지명된 한 성이, 구원받을 다섯 성읍 가운데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문은 여섯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다섯 가운데 하나가

그러한 이름을 가질 것을 분명히 말한다.

 

델리취는 이와는 다른 각도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려한다.

즉 장망성이 다섯 성읍 가운데 포함된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은 '장차 망하리라고 예정된 성읍'으로 이해될 것이 아니라

‘장차’(우상 제단들을) 파괴시킬 성읍‘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본문에 우상 파괴에 대한 어떤 암시도 주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따라서 현대의 많은 학자들은 ‘하헤레스’가 ‘하헤레스’의 오기(誤記)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약 15개의 히브리어 사본들과 심마쿠스역(Symmachus), 탈굼역(Targum),

벌게이트역(Vulgate) 등에 이 단어는 ‘태양의 성읍’(이르 하헤레스)로 표기되어 있다.

 

만약 이것이 옳다면 본문의 의미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다섯 성읍 가운데 하나인, 태양신을 섬기던 바로 그 우상의 성읍조차

하나님께 돌아와 가나안 방언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 해석이 가장 타당하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