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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9:14~18 내가 너를 잊겠느냐?

LNCK 2021. 9. 27. 10:34

https://www.youtube.com/watch?v=Z9XqMY7hUT4

◈내가 너를 잊겠느냐?    이사야 49장 14~18절               출처   

저는 지난 10일 동안 아프리카 케냐를 다녀왔습니다. 
한국 컴패션 본부에서, 우리 교회가 그동안 변함없이 10년 동안 
가난하고 어려운 아이들 입양해서 후원을 계속해 왔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담임목사 부부를 초청해 주셨습니다.

케냐에서 말할 수 없이 가난하게 사는 빈민들 지역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고르고초, 무쿠로, 마타리 이런 어마어마한 슬럼지역 모두를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다니는 10일 내내 눈물이 계속 흘러 넘쳤습니다. 
너무나 비참하게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마음 속에 이런 질문이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이렇게 질문이 제 입을 통해 나왔습니다. 
'주님께서 이들을 잊으셨습니까?' 

이사야 49: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가끔 있습니다. 
슬럼 지역에 살고 있는 그 가난한 아이들.. 
버림받고 잊혀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고, 내 사정을 알지 못하여 
그 아이들은 버려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 가난한 아이들, 돌보는 사람도 없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그들의 미래를 계획하는 자들도 없는 아이들... 
하루하루 그저 하루에 한 끼 먹으면 잘 먹는 그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다 잊혀졌다. 저들은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 민족도 꼭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70년을 살지 않습니까? 

시간은 흘러가는데.. 고국으로 돌아갈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고생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신분상으로 노예가 되었습니다. 
힘든 일들을 매일매일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먹는 것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입는 것도 형편이 없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일본의 억압 속에서 36년동안 고통당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그 당시 우리 민족들은 다 탄식했습니다. 
도무지 독립이 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민족주의자들, 애국자들도 변절 했습니다. 
춘원 이광수를 위시해서 많은 사람들이 변절했습니다.
왜요? 독립의 희망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셨다'는 생각을 할 만큼 탄식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민족들의 고백입니다. 
이사야 49: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제가 케냐의 빈민가를 둘러보면서 
'이들도 이런 고백을 하겠구나' 이런 생각을 제가 속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쓰레기장을 뒤집니다. 
우리 일행이 거기를 지나가는데 아주 이상한 냄새가 났습니다. 

돌아보았더니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서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썩은 음식을 펼쳐 두었습니다. 

하나하나 골라내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먹기 시작하는데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요... 

학교 못 가는 아이들이 거기 가득 차 있었습니다. 
입을 옷도 없었습니다.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옷을 빨아서 입을 정도입니다.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아이들이 차고 넘쳤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아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이 셀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모두 잊혀진 아이들 같았습니다. 아무도 돌보는 자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도,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우면 그런 생각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나를 잊으셨나 보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내게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쓰레기 더미에서 음식을 찾아 먹고 병들어도 그대로 방치되고 
어떤 교육이나 자립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아이들.. 
'이들은 과연 버림받은 아이들일까?' 
이런 질문이 제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주님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제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잊겠느냐? 내가 그들을 잊겠느냐?' 
 
▲하나님께서 우리를 절대로 잊지 않는 이유를, 본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통해 설명하시지요. 
하나님은 젖 먹는 자식과 어머니를 예로 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로 잊지 않는 이유는
자기에 배에서, 태중에서부터 자라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아무리 부족해도 자기 자식을 버리지 않습니다. 잊지도 않습니다.

주님은 나를 만드셨고, 나를 택하셨습니다. 
나를 부르셨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죠. 

이사야 44:1~2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주님이 우리를 잊지 않으시는 이유가 분명합니다.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미국에서 온 스완슨 목사님이 
서울 거리를 어느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서 혼자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쓰레기더미 같은 것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쓰레기더미를 버리는데 뭔가 이상해서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깜짝 놀랄 광경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밤새 굶주리고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아이의 시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너무나 쓰라린 가슴을 안고 
거지 어린아이가 동냥하던 깡통 하나를 주워들고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의 전쟁고아 후원자를 모으기 위해 호소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1953년에 세운 기구가 바로 컴패션 입니다. 

그로부터 41년 동안 무려 한국 고아 10만명을 입양하고 후원했습니다. 

그러다가 컴패션은 1993년에 한국을 떠났습니다. 
이젠 한국의 경제 사정이 좋아져서, 외국 원조를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0년 뒤인 2003년, 한국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도움을 받았던 나라에서 
돕는 나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컴패션'이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부터 출발하여 전 세계로 흩어지는 사랑의 손길은 
무려 12만명을 그렇게 도우며 입양하고 후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625때 우리가 진 빚을 갚는 일입니다.
전세계적으로 180만명이 혜택을 받으며 사랑의 손길에 의하여 양육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에 가서 보니, 그 선택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제 생각은, 여러 아이들 가운데 좀 똑똑하고 장래성이 보이는 아이들을 뽑는 것이 아니겠는가 했는데.. 
즉 건강도 괜찮고 인물도 좀 괜찮은 아이들을 뽑아서 후원하는가 생각했는데..

그런데 가서 보니 (후원 수혜 아동) 선택에 원칙이 있었습니다. 
될 수 있으면 더 가난한 아이들, 
더 약한아이, 더 버림받은 아이 순서로 선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 선택할 수는 없으니, 그 가운데 가장 어려운 아이들을 뽑는..
그런 선택의 원리를 보고서, 저는 '하나님의 선택과 비슷하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실 때 우리 인물을 보지 않습니다. 
우리 성격을 보시고, 성격 좋은 사람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출신 배경을 보시고, 배경 좋은 사람을 택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선택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근데 제가 가서 보고 놀란 것은 
컴패션이 후원할 아이를 선택할 때 
이미 태어난 아이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어머니 뱃속 태아에서부터 선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왜냐면 아기가 태중에 있을 때 공급받는 영양분이 평생을 가기 때문이랍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충분한 영양을 공급 받지 못하면 
아이가 태어나서 즉시 죽을 확률이 높고, 태어나도 잘못된 확률이 높기 때문에 
태중에 있을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선택하는 거예요. 

우리는 그들에게 음식을 주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했습니다. 
아빠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 태중에서부터 보호를 받습니다. 
영양을 공급받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그 아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배워서
태아에게 기도해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 이 뱃속의 아이를 축복해 주소서!'

그리고 엄마들이 말합니다. 
'얘야 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생명이란다. 좀 있다가 태어나면   
하나님이 너를 훌륭하게 키워주실 것이다' 

선택을 받고 어린 태중에서부터 그렇게 생명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의료혜택을 보고, 영적 돌봄을 받고 
날마다 감사하고 기도하며 어머니 태중에서 자라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 산모들만 모이는 프로그램을 또 보았습니다. 
산모들이 그 신나는 케냐의 전통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노는데 
얼마나 훌륭한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랬습니다. 

정말 가난하지만, 얼굴 표정을 보면 너무나 밝습니다.
자기 배속에는 아이가 자라고 있는데, 
산모들 가운데 30%가 에이즈 환자들이랍니다. 
절망이죠.

에이즈 환자인 채로 그냥 출산하면, 아이가 아주 쉽게 에이즈 환자가 됩니다. 
그러나 의료해택으로 잘 돌보면, 그 아이는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기쁨으로 하나님을 노래하면서, 자기 태아를 축복하면서 
그렇게 사랑을 베풀고, 하나님의 은혜 중에 그렇게 돌봄을 받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태어나면 자립할 때까지, 입양 후원을 받으면서 자라나
한 사람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것 역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일대일로 진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희망은 "하나님의 <선택>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우리를 택하셨기에, 내 인생의 희망이 생겼습니다. 

한 아이의 집에 가 보았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이 존 칼빈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만 좋지, 그 외에는 아무 희망도 없었어요. 

존 칼빈의 아버지는 집을 나가고 말았어요.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옷을 빨아 주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엄마는 아이와 함께 '선택'을 받았습니다. 
미래는 보장 되었습니다.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보장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이죠. 

모자는 교회를 통해 그런 돌봄을 받고 있었습니다. 
후원자가 후원 양육을 통해서 그들 모자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더러 후원하는 사람이, 후원을 중단 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통계를 보면, 누가 제일 후원을 중간에 잘 끊느냐 하면, 

제일 빨리 냄비처럼 확 끓어올라서 입양도 잘 하지만
쉽게 끊는 것도 제일 잘하는 민족이 우리 한국 민족이랍니다.

그러면 중간에 후원이 끊어지면 그 아이는 어떻게 하느냐? 
한국 사람이 끊어 버려도 후원은 중단하지 않고 
어떻게 하든지 그 지원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번 선택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과 마찬가지잖아요. 
하나님은 우리를 한번 선택하고 나서.. 우리가 부족하다고 해서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영원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믿은 사람이 나를 버릴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의지하던 사람이 나를 팽개칠 때가 있습니다. 
어제까지 나를 좋아하던 사람이, 오늘 그만 나를 싫어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비록 연약해서 어긋난 길로 갈지라도 
하나님의 선택은 취소 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를 연단하시고, 우리를 키우셔서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사49:16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당신의 손바닥에 새겨 두셨습니다.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그 눈물의 성벽을 주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문제도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잃어버린 것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속상한 것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주님의 손바닥에 우리를 다 새겨놓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름은 주님의 손에, 가슴에 새겨져서 지울 수 없는 이름입니다. 

우리를 선택하신 그 선택은 취소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취소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선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선택하셨을 뿐 아니라, 그 후에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케냐의 컴패션 센터를 가 보니, 다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센터 역할을 했습니다. 

거기에 모여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필요를 공급 받고 있었습니다. 

근데 놀라운 것은, 한 명 한 명이 다 개인 파일이 있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아동을 선생님이 한 사람씩 붙어서 일대일로 그들을 양육하는데 
그 돌보는 목록을 보고서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육체적인 건강 상태를 다 기록하는 파일이 있었습니다.
영적인 케어를 기록하는 파일도 있었습니다. 
사회적, 심리적인 발달을 살펴보는 파일도 있었습니다. 
그의 모든 가정의 문제가 다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한 아동을 두고 완벽하게 모든 것을 돌보는 시스템을 발견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지요! 
부모가 있는 자식들보다, 훨씬 더 돌봄을 잘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돌봄과 사랑의 양육을 받아 자라나는 아이들은
무려 94%나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간다는 사실을 보고 
저는 또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대학진학률은 70% 밖에 되지 않습니다. 

빈민촌 키베라 에는 무려 150만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은 술과 마약과 폭력에 노출되어 살다가 40세 가량에 죽습니다. 

그렇지만 선택을 받고, 돌봄을 받는 아이들은 잘 자라납니다. 
예수님 사랑으로 성장해서,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사야 44장 21절은 이렇게 말씀삽니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할렐루야! 
우리의 이름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께 잊혀질 인생이 아닙니다. 

주님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습니다. 주님의 가슴에 담겨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키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주님의 품을 떠나지 마시길 바랍니다. 교회의 품을 떠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연단을 받고 잘 성장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우뚝 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사야 48:10~11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우리를 선택하신 주님은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그리고 끝까지 끝까지 키우십니다. 

왜 키우실까요? 
나 하나만 잘 먹고 잘 살도록 키우실까요?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고, 

복음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로 삼기 위하여 우리를 키우십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선택하시며 양육하셔서 
기어이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돌아오게 하셔서
회복시켜 주셔서, 하나님이 쓰시는 민족이 되게 하시고 

그 민족을 통해서 다른 열방들이 모여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게 하십니다.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하는 희망의 선포를 해주셨습니다. 

사49:18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이스라엘의 지금 신분은 노예입니다. 종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민족을 키우셨습니다.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하시고, 
옷에 장식품처럼 주렁주렁 몸에 차며, 다른 여러 열방들을 구원하는 
그런 구원의 도구로 쓰임 받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바벨론 포로로 고생하는 이스라엘을 양육하시고 
회복시키셔서,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민족으로 삼아서
마치 몸의 장식품처럼 몸에 차듯이, 열방을 구원하여 그것을 영광으로 삼는 민족으로
세우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선택하시고 키우시는 주님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만 잘 살게 하기 위함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또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 돌보고, 세우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인생의 자랑이 무엇입니까? 
우리 어깨에 번쩍이는 계급장 입니까? 
내 주머니에 꽉 차 있는 돈이 우리의 자랑입니까? 
아주 좋은 인맥이 우리의 영광 입니까? 

으리으리한 집이 우리의 영광 입니까?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좋은 자리가 나의 영광 입니까? 
모두 다 아닙니다! 

바로 우리를 통해 구원 받은 사람들, 
내가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된 그 사람들, 
내가 사랑의 손길을 펼쳐서 도와주어,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게 된 그 사람들, 

 

내가 기도해주어서, 나의 기도가 그들을 위하여 은혜가 되어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되어, 힘을 내어서 살게 된 그 사람들! 
그들이 우리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데살로니전서 2장 19~20절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우리가 전도한 사람이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섬겨 준 사람, 그래서 위로를 받은 사람.. 그들이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손을 펼쳐서 도와주는 사람, 
그래서 그들이 힘을 내어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주 앞에 서게 되었다면
그 사람들이 우리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도와준 교회, 우리가 보낸 선교사를 통해 선포된 복음을 듣고 
구원 받은 사람들.. 그들이 우리의 영광입니다. 

주님이 우리 가슴 속에 안겨주신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손을 내밀어 나누기만 하면 
거룩한 하나님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입양 후원을 계속 해 오신 우리 교회의 수백 명의 성도들이 있습니다. 
중단 하지 마시고 계속 하시길 바랍니다. 

아니 내가 중간에 확인도 안 했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계속 후원하셨습니까?
참으로 귀하신 손길 들입니다.

돕는 손길을 중단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한 생명을 살리면  
그 생명은 우리의 영광이 될 것이고 
그는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땅 끝까지 선교사를 보내는 일을 계속해 오신 성도 여러분, 
중단 하지 말고 계속 하시기를 바랍니다.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중단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내가 전할 이 귀한 복음, 
우리가 보낸 선교사들이, 현지인들의 손을 잡아 줄 때 
그들은 살아날 것입니다.

중단 하지 말고 계속 하십시다.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 때까지, 쉬지 않으시는 주님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 섬기고 나누는 삶을 

계속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절대로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지으신 우리 주님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키우시고 우리를 양육하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통해서 또 다른 사람을 부르시고 
돕고 키우기를 원하시는 주님과 함께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전하여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하는 복된 성도와 교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