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CK
2021. 10. 1. 17:40
◈심판의 날 이사야24:장 여러 설교 정리 이사야 설교 모음
이사야 24~27장은 <이사야의 작은 묵시록>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도 24장이 종말에 관한 장인데, 둘 다 24장이라서 외우기 쉽네요.
인터넷은 2012년 12월 21일에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난리를 쳤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고대 마야 제국의 달력이 2012년 12월 21일에 끝났기 때문에
그날이 종말의 날이 된다고 봅니다. 참으로 무지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 무지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믿고 있고 예수를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마지막 재앙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도 성경도 믿지 않는 자들도 저렇게 무지함으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성경에서 그렇게도 많이 강조하고 있는 마지막 재앙에 대해
교회들은 기독교인들은 이상하리만큼 외면하고 있습니다.
어떤 자들처럼 “무슨 종말이 그렇게 중요하냐? 그냥 예수만 잘 믿으면 되는 것이지”
하는 무지한 소리들이 신자들 입에서도 서슴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참으로 무지하고 미련한 자들의 소리입니다.
서울의 김서방을 찾아가는데 그냥 서울만 가면 찾아지는 것입니까?
김서방의 주소를 가지고 가야 찾을 수 있듯이
마지막 때의 되어 질 일들을 알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믿는 자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만약에 믿기만 잘하면, 왜 이렇게 예언서 17권을 통해서
선지자들이 목이 터지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까?
마지막 때를 잘 준비하라는 의미에서 이렇게도 많이 기록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구약의 예언서 17권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기록하였습니다.
그것은 곧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것을 기록하였고
또 한 가지는 지구의 역사적 마지막 종말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사야서는 그 종말에 대한 “그 날” 이라는 말은
다른 예언서보다 가장 많이 42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1)
또한 이스라엘의 종말에 대한 예언을 1장부터 12장까지 하였고
열방에 대한 심판을 13장부터 23장까지 예언한 후에
24장부터 다시 27장까지 세상 종말에 대한 예언을 하고,
40장에서 66장 끝까지 또 종말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6명의 위대한 선지자들은 모두 세상 종말에 대해 언급을 하였습니다.
이 위대한 예언서가 오늘날 이 시대 얼마나 전해지고 있습니까?
피를 토하듯 심정으로 전했던 선지자들의 예언이
이 시대 얼마나 우리 가슴에 들려지고 있습니까?
오늘날 이 시대가 마지막 때임을 믿으십니까? 어느 정도 깨닫고 살아가십니까?
어느 정도 알고 있으십니까?
신약의 예언서인 <요한계시록> 또한 2천년 교회 역사 가운데 가장 천대받은 책입니다.
오늘날도 계시록에 대한 설교는 듣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 초림에 대해서는 360번
재림에 대해서는 1560번 기록하고 있는 데도
왜 세상 끝 날에 대해서는 설교는 듣기가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초림 예수의 설교는 귀가 아프도록 들려지는데
다시 오실 재림 예수에 대한 설교는, 왜 듣기가 어려운지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16명의 선지자들은 (예언서는 17권, 렘과 애가는 중복되어서 16명)
한결 같이 세상 끝 날에 대해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모두 성령으로 충만한 자들이 되어서
선지자들이 피를 토하듯 전했던 예언서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마지막 날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1. 땅에 임하는 심판 사24:1~13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재앙을 내리기 전에
먼저 땅에 저주를 내리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계시록에서도 7인 재앙으로 시작된 대환난의 시작은 땅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첫째 인이 떼어질 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고
둘째 인이 떼어질 때 전쟁으로 인해 땅에 평화가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떼어지는 셋째인 재앙 때도 땅이 저주를 받아
가뭄과 재난이 생기게 될 것이고
넷째 인 재앙 때도 땅 사분의 일이 흉년과 사망으로 재앙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먼저 예언하고 있습니다.
13절까지 땅에 대한 말씀이 6번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땅에 대한 재앙은, 이 재앙이, <세상 마지막 날에 있을 재앙>이라는 뜻입니다.
▲1절,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집어엎으시고 그 주민을 흩으시리니
땅이 공허하고 황무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땅이 공허하다는 것은 땅이 텅 비우는 것을 말합니다.
기근과 지진, 홍수, 질병 등으로 인구는 대폭 감소될 것이고 땅은 황무케 될 것입니다.
히브리어 원문대로 읽으면
'보라(힌네) 여호와께서 땅을 쏟아버리시며(보케크),
공허하게 하시며, 그 얼굴을 뒤집으시며, 그 거민을 흩어버리실 것이다'
-이는 강조와 급박함을 나타냅니다.
땅이 여기서 더러운 그릇으로 비유됩니다.
그 속에든 내용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릇을 뒤집어 비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처럼 죄악으로 가득찬 이 세상도 미래의
어느날 하나님에 의해 깨끗하게 될 날, 그릇을 뒤집어 비우는 날이 반드시 이를 것입니다.
▲2절, 백성과 제사장이 같을 것이며, 종과 상전이 같을 것이며,
여종과 여주인이 같을 것이며, 사는 자와 파는 자가 같을 것이며,
빌려 주는 자와 빌리는 자가 같을 것이며,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가 같을 것이라
주목할 것은, 이러한 재앙에 그 누구도 차별이 없고, 예외로 면제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섯 부류의 대조되는 쌍들을 언급했습니다.
즉 일반 백성과 제사장이 일반 일 것이며, 종과 상전이 일반일 것이며,
하녀와 안주인이 일반일 것이며, 사는 자와 파는 자,
고용인과 고용주가 일반 일 것이며, 채권자와 채무자가 일반 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차별을 두지 않고 땅의 공허와 항무함의
저주가 모든 사람들에게 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명품'으로 자신을 치장하기를 애씁니다.
수 백~수 천 만원을 호가하는 옷, 신발, 가방, 시계, 보석류를 다들 가지기를 애씁니다만,
그 명품으로 치장하려는 심리 이면에는 '차별의식'이 있습니다. '나는 너네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3절 본문은, '그 날에는 아무 차별이 없으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그 날에는.. 명품보다는 '의의 옷, 흰 옷',
'소박함과 정절로 자기를 단장함(딤전2:9)'이 절실히 필요할 것입니다.
▲3절, 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
3절 서두에 접속사 '키'가 들어가 있습니다.
'즉 또는 그런고로 (키) 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
그것은 여호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라고 번역됩니다.
▲4절,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
5절, 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땅이 저주를 받게 된 원인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5절에서 3가지로 지적하였습니다.
-율법을 범하였습니다.
율법을 의미하는 토라의 단어 기본 뜻은 “가르치다” 로서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교훈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율례(규례 regulation)를 어겼습니다.
율례는 율법을 보다 구체적으로 해석해서 확정한 법령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율례조차 지키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언약을 파기했습니다.
언약의 히브리어는 “베리트” 인데 이 뜻은 “자르다” 라는 의미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의 계약이 희생 짐승을 잡아 고기를 자른 후에
쌍방이 그 사이로 지나감으로써 서로 굳게 언약을 맺었습니다.
만약에 이 언약을 파할 경우에는 조각난 짐승처럼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엄숙한 경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땅을 오염시키는 가장 주된 요인은 살인과 피입니다.
사26:21, 민35:33, 시106:38 등
그 밖의 요인들로는 음행(렘 3:1,2,9), 우상 숭배(렘16:18, 겔36:17,18) 등이 있습니다.
'심판'은 인간의 죄로 인해 더렵혀진 땅를 본래대로 정결하게 회복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본질상 영원한 언약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 언약이 곧 율법입니다.
(롬2:12~13)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이처럼 율법을 범하고,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기한 자들
즉 말씀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말씀을 무시하고 외면하고 산 자들로 인해
땅은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6절,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사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주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도다.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고 피조물이 고통중에 함께 탄식한다는 사상에 관해서는
창3:17, 롬8:22 등을 보세요.
하나님의 저주가 땅을 삼켜버릴 것입니다.(6~13절)
하나님의 저주로 인해 사람들은 정죄함을 당하고 불의 심판을 당할 것이며,
모든 즐거움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죄로 인해 땅을 “더럽혔기” 때문에 심판이 올 것입니다.
그들은 죄의 결과를 책임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땅위에 소수만을 남기고 다 태워버리는 불과 같다고 합니다(6절).
6~13절까지 언급된 단어의 말들이
어느 정도 고통스러운 날들이 될지 짐작케 합니다.
▲7절,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마음이 즐겁던 자가 다 탄식하며
8절, 소고 치는 기쁨이 그치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끊어지고 수금 타는 기쁨이 그쳤으며
심판이 갖는 또 다른 국면이 제시되는데
그것은 인간을 즐겁게 만드는 요소들의 제거로 특징지워집니다. (7-13절)
'새 포도즙'은 새로 압착한 포도에서 나온 아직 발효되지 않은 즙을 뜻합니다.
본문의 전체적인 표현은 욜 1:10-12과 거의 유사하다.
땅이 황폐해질 때 포도원은 시들어 버리고 음악(소고와 수금)과 잔치가 멈출 것입니다. (7-11절)
7~13절에는, 사람들의 죄로 인한 일곱 가지의 재앙이 나오고 있습니다.
7절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땅이 저주를 받아 포도나무가 말랐고
결과적으로 포도주가 없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죽음을 포도 수확의 노래와 축제가 중단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8절 포도 수확이 없어지자 악기의 음악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9절 이제는 노래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10절 도시가 폐허가 된다고 합니다.
11절 땅의 기쁨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12절 성읍과 성문이 황폐해집니다.
13절이 땅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은 마치 감람나무를 흔들어
마지막 열매까지 다 따 버리는 것처럼, 철저하고 비참해 진다고 합니다.
▲9절, 노래하면서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고 독주는 그 마시는 자에게 쓰게 될 것이라
성경에서 포도나무의 열매는 기쁨과 연결됩니다.(사16:9, 슥10:7).
그래서 본문24:9에서는 포도주가 없어짐으로 징벌을 상징하고 있지만,
나중에 27:2-4절에서는 포도원을 약속하시고 그것을 지키심으로
다시 회복시키시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0절, 약탈을 당한 성읍이 허물어지고 집마다 닫혀서 들어가는 자가 없으며
본문은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1) 적의 침탈을 막기 위해 사람들이 빗장를 가로지르고 집을 폐쇠시킨다.
2) 집들이 들어갈 수없을 정도로 파멸되었다.
전체 문맥상 후자를 취합니다. 비슷한 표현이 23:1에도 있습니다.
▲11절, 포도주가 없으므로 거리에서 부르짖으며
모든 즐거움이 사라졌으며 땅의 기쁨이 소멸되었도다
9절을 보세요.
▲12절, 성읍이 황무하고 성문이 파괴되었느니라
성읍의 집들은 텅 빌 것이고 훼파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대환란 때 그의 진노를 쏟아부으실 때,
모든 것은 황폐하고 어둡게 될 것입니다.
▲13절, 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곧 감람나무를 흔듦 같고
포도를 거둔 후에 그 남은 것을 주움 같을 것이니라.
감람나무나 포도나무의 수확이 끝난 후처럼, 남은 것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많은 죽음을 뜻합니다.
앞서 북왕국의 멸망 때는, 아주 조금 수확할 것이 남을 것이라 했는데 ↙
사17:6, 그러나 그 안에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과일 두세 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네다섯 개가 남음 같으리라.
종말의 때도, 그와 같이, 죄인들이 거의 다 사라지고.. 남은 자가 적게 되리라고 하십니다.
노아의 홍수 때도 그랬고,
하나님의 징계로 시행된 세계적인 전쟁에서도..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종말에도 그렇게 된다는 것이죠.
세상의 끝 날은 이미 하나님의 작정된 계획 속에 있습니다.
그 날이 언제 일지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이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 끝 날에는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징조를 보고 마지막 날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에서 징조는 영어(NIV) 성경에는 Sign 으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에 우리에게 Sign 을 보내주실 때 너희는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Sign 을 한 두 가지가 아니고 열 가지 정도를 보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도 보내주시는데도 모른다면 참으로 무지하고 미련한 자들 아닙니까?
이사야 선지자도 마지막 날에, 그러한 징조가 땅에서부터 있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도 땅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하였고
계시록의 예언도 땅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하였다면
우리는 땅에 나타나는 징조를 보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많은 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따를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참 기쁨과 소망을 찾아볼 수 없는 고통만 연속되는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만이 가득 찬 세상이 될 것입니다.
(계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2. 심판 날에 찬양을 부르는 성도들 사24:14~16
심판을 예언하다가 갑자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습을 기록한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독특한 필법이기도 합니다.
왜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독특한 필법을 사용하였을까요?
▲14절, 무리가 소리를 높여 부를 것이며 여호와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
무리는, 6절과 13절에서 언급한 ‘(큰 환란을 피하여) 남은 자’를 가리킵니다.
이들 ‘남은 자들’은 소리를 높여,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환호할 것입니다.
‘남은 자’ 곧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곧 ‘구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시험공부를 충실히 한 학생에게는
시험 보는 날이, 오히려 상 받는 날입니다. 자기 노력을 보상해주는 날입니다.
▲15절,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남은 자’들은, 땅의 황폐함은,
정의의 하나님에 의한 정의의 행동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앗수르의 진군처럼 잔인하며 불공정한 징벌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남은 자’들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포진해 있을 것입니다.
※2중예언으로 볼 때, 사24~27장 이사야의 예언은,
-앗수르의 침략으로 인해, 온 세상이 심판 받고 황폐화될 것과
-세상 마지막 종말에, 온 세상이 심판 받고 황폐화될 것을.. 이중으로 예언합니다.
그런데 24:23절, '그 때에 달이 수치를 당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라고 했는데,
앗수르 때는, 해와 달의 이상이 없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예언서에 나오는 ‘해와 달과 별의 이변’을..
그 당시 열방의 왕들의 떨어짐으로 해석합니다.
그들 왕들은, 신과 같은 존재로, 해와 달과 별처럼, 존중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마24장과 계시록에 나타나는 천체의 변화도,
실제 천체의 이변이 아니고, 세상 정치 지도자들이 ‘떨어짐’이라고 봅니다만,
저/편집자는.. 이중예언으로 둘 다 봅니다. (가정합니다.)
해와 달과 천체의 격변은,
구약에는, 열방의 왕들의 ‘떨어짐’을 뜻하지만,
신약에는, 실제로 천체의 격변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때 열방의 왕들도 떨어지겠지만요.
▲16절,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이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도다.
그러나 나는 이르기를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배신자들은 배신하고 배신자들이 크게 배신하였도다
땅끝(세상 모두)에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이사야 선지자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궤휼자가 궤휼을 행하도다. 궤휼자가 심히 궤휼을 행하도다 하였도다” :16
“나는 쇠잔하였고” 라는 말은 “야위고 수척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이사야 선지자는 심적으로 너무나도 큰 고통으로 몸까지 쇠약해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 받는 사람은 적고, 즉 ‘남은 자’에 불과하고,
온 세상은 궤휼을 행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할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의 고통이요, 예수님의 번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찬양하는 모습이, 계시록에 종종 나옵니다.
한 대목만 보겠습니다.
(계15:2~4)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그 심판의 날에 오직 예수만 찬양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나의 영과 혼과 육이 흠 없이 보전되셔야 합니다.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궤휼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로 그 날에 예수를 찬양할 수 없습니다.
궤휼자는 “속여 행하다” “거짓으로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속이거나 형식과 외식으로 거짓된 신앙 생활하는 자는
예수님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심판을 받아 망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러한 거짓된 자들이 있음을 보고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마지막 날에 이러한 아픔이 있을 것입니다.
불의와 타협하고 거짓을 진리인양 전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플 것입니다.
여러분! 불의와 거짓과 타협하며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실 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엡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마지막 날에 예수님만 찬양 드리는 것으로 만족을 못하시겠다는 분들은
이사야 선지자처럼 마지막 그 날을 외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마지막 복음을 외치는 것은 심적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각오해야만 합니다.
사도 요한도 작은 책인 계시록의 말씀을 먹어버리자
“내 입에서는 꿀같이 달으나 배에서는 쓰더라” 고 하였습니다.
다른 복음처럼 편하게 전할 수 있는 복음이 아닙니다.
구약의 16명의 선지자들 모두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마지막 날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고통이 있는 만큼 영광도 크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할 수만 있다면 예수님이 허락만 하신 다면
우리 모두 찬양의 자리에 서는 평범한 자리보다
다시 오실 예수를 알리는 귀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날을 전하는 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날이 다가온다” “신랑 예수가 오고 계신다” 해도
사람들이 믿지 아니할 것입니다. 아니 믿지 않는 것은 좋은데
오히려 핍박하고 욕하고 미워할 것입니다.
(마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러나 사명을 받았다면 전해야 합니다.
단 한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하나님 말씀을 잊지 마시고
단 한사람이라도 깨닫고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전해야 합니다.
세 사람의 모습 속에서 여러분은 어떤 자가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3. 심판 가운데 나타나실 영광의 왕 사24:17~23
본문에서도 땅이라는 단어가 8번 기록되고 있습니다.
땅은 ‘온 세상’을 가리킵니다.
첫째. 땅의 기초가 진동할 것입니다.
둘째. 땅이 깨어지고, 갈라지고, 흔들릴 것입니다.
셋째. 땅이 취한 자같이 비틀비틀 거릴 것입니다.
넷째. 땅이 떨어지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다섯째. 땅의 왕들을 벌하실 것입니다.
여섯째.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 할 것입니다.
▲17절, 땅의 주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이르렀나니
18절, 두려운 소리로 말미암아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빠지겠고
함정 속에서 올라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 땅의 기초가 진동함이라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기 전에 온 땅에 미칠 최후 심판에 대한 묘사가 다시 전개됩니다.
'이는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 땅의 기초가 진동함이라'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수 없는 까닭이 명시됩니다.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라는 표현은 노아의 홍수를 연상시킵니다. (창 7:11)
그때 온 땅을 절멸시킬 엄청난 양의 물을 방류하기 위해 하늘의 문이 열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여기서 꼭 물의 심판을 시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성격의 재난이 온다는 거죠.
사람들의 반역과 또 다른 죄 때문에, 그들은 고통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도물을 잡는 함정에 빠지거나 올무에 잡힐 것입니다.
한 위험에서 도망치려 하다가 다른 재난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19절, 땅이 깨지고 깨지며 땅이 갈라지고 갈라지며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20절, 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하며 원두막 같이 흔들리며,
그 위의 죄악이 중하므로 떨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심판은 큰 폭풍우나 지진과 같을 것입니다.
지진이 일어날 때 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하며 바람에 흔들리는
들판의 원두막처럼 흔들릴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계6:14)
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것은 종말에 임할 대지진을 가리키지만,
이사야 당시에는, 앗수르의 침입이, 대지진과 같이 땅을 진동하는 무서움이 됨을 예언합니다.
▲21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높은 데에서 높은 군대를 벌하시며
땅에서 땅의 왕들을 벌하시리니
‘그 날에’라는 표현은 이사야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날은 하나님이 심판하실 그 때를 가리킵니다. 주1)
이사야는 다시 다가오는 심판이 하나님의 직접적 참여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벌하시리로다.’
‘높은 군대’는 하나님께 반대하는 영적 힘을 지칭합니다.(계19:20, 20:2)
‘땅의 왕’이란, 그들의 사주를 받는 정치적 힘을 지칭합니다.
모든 왕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나라와 악한 왕을 뜻합니다.
▲22절, 그들이 죄수가 깊은 옥에 모임 같이 모이게 되고,
옥에 갇혔다가 여러 날 후에 형벌을 받을 것이라
21절의 높은 군대와 땅의 왕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함께 몰아서 죄수처럼 옥에 가두시고,
여러 날 후에 형벌이란, 백보좌심판을 말합니다. (계20:11-15)
이와 유사한 광경에 대하여 벧후2:4, 유1:6, 계9:2, 11, 11:7, 17:8, 20:1~3 등을 보세요.
▲23절, 그 때에 달이 수치를 당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라
최종적으로 종말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움이 묘사됩니다.
그 나라의 중심은 새예루살렘일 것이며
구속받은 백성들을 대표하는 장로들이 영광 중에 주를 보필할 것입니다. (출 24:9-11, 계 4:4,9-11)
그 나라의 영광은 너무나 눈부신 것이어서 심지어 하늘의 해와 달마저도
그 앞에서 빛을 잃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굴 것입니다. (사60:19, 욜3:15, 슥14:7, 계21:23, 22:5)
이 심판이 행해질 때면 여호와 즉 구세주께서
예루살렘의 시온산 위에서 다스리실 것입니다.(24:23, 1:8)
그는 영광스럽게 다스리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24:15~16)
‘그 때에 달이 수치를 당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그때 그곳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찰 것이며
따라서 달과 해의 빛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계21:23)
한 마디로 천지가 개벽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날은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마24:21) 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곳곳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지진은 결코 우연의 일이 아닙니다.
땅의 기초가 진동하고 깨어지고 갈라지고 흔들리고 비틀거리는 것은..
성경에 예언된 지진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이 마지막 때의 Sign 을 보내주시는데도
모른 체하고 무시하고 외면하고 사시겠습니까?
계시록에서는 이러한 재앙에 대해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계8:7~9)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섞인 우박과 불이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지더라”
(계16:18~20)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
예수님도 여기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마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이러한 무서운 재앙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끝이지만
예수를 믿고 있는 자들에게는 새로운 날이 될 것입니다.
대환난 후에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분명코 마지막 시대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언제 인을 떼실지 모르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 나타나는 징조를 볼 때 그 날이 심히 가까이 오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못된 종말론주의자들처럼 쉽게 동요하지 말고
우리가 어디 있던지 간에 오직 예수 신앙을 사수하면서
말씀으로 무장하고 깨어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환난이 다가와도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24:14~15
동시에 심판당하는 세상을 보면서, 이사야처럼, 애통하게 될 것입니다. 24:16
마지막 시대에 올바른 종말론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에 반드시 먼저 배도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살후2: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2천년 교회 역사 가운데 오늘날처럼 배도(도를 배신함)하는 역사가
강하게 나타난 적은 없었습니다.
말씀을 모르면 배도하는 세력들에게 미혹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영광의 왕이 다스리는 그 나라에서 왕노릇하는 영광을 누리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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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그 날에’가 나오는 이사야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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