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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4:1~23 전세가 뒤집히는 까닭
LNCK
2021. 10. 7. 09:52
https://www.youtube.com/watch?v=9NlHwjfA3jY
◈전세가 뒤집히는 까닭 삼상14:1~23 2021.07.11.출처
*부제 : 요나단, 게임 체인저 *게임 체인저 : 전세나 판도를 바꾸는 사람
◑본문 설명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블레셋과 이스라엘 과는 전쟁이 될 수 없는 전쟁이지요.
우선 그 병력 면에서는 뭐 이렇게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블레셋은 수만명이고, 이스라엘은 고작 6백명 이에요.
또 블레셋은 일찍 철기문명을 받아들여서 제대로 무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그런 철기문명이 없었습니다. ↓
삼상13:20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었는데'
그러니 어떻게 그게 제대로 된 전쟁이 되겠어요?
근데 오늘 본문은, 요나단의 용감한 선제공격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예상 하던 그런 결과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일어나 버렸습니다.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안 된다고 하는 일이 됩니까?
왜 다 안 된다고 하는 일이, 어떤 누군가에게 맡기면.. 그 일이 되는 것일까요?
오늘 이 점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은
본문 말씀과 비슷한 상황을 살아가고 있어요.
전장으로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오늘 본문에 이 전세를 뒤집은 사람(요나단)을 통해,
뻔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한 사람을 만납니다.
본문 삼상14:1~3에 보니까, 요나단이 블레셋의 수비대를 기습 공격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었어요.
사울은 어쩌면 내키지 않은 전쟁이었는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요나단의 기습으로, 전쟁이 전면전으로 확산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민병대로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서 다 흩어져버린 것이죠.
이스라엘 민병대가, 블레셋의 그 병력을 보고, 그들이 가진 무장을 보더니
그냥 슬금슬금 다 도망가고 빠져 버려 가지고
수만 명이 이렇게 6백명으로 줄어버린 것이죠. :2
싸울 의지도 없고, 싸울 전황도 되지 않는 그런 상황이에요.
그런데 요나단이, 지금 이런 상황에서, 자기 부관 하나를 데리고
슬그머니 사라져버렸습니다.
▲오늘 여기 재밌는 얘기는, 사울이 지금 어디 있느냐 하면
'사울이 기브아 변두리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에 머물렀고' :2
(오늘 본문 해석은, 히브리 말의 동네 이름의 뜻을 여럿 찾아 보겠습니다.
해석에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미그론'은 절벽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 절벽 부근에, 적에게 쉽게 눈에 띄지도 않고, 접근해 올 수 없는 그런 곳에
숨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곳 석류 나무 아래 주저앉아서, 남은 600명 데리고 전의를 상실한 채
상황을 그냥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런 상태예요.
▲그리고 그 옆에 '아히야' 라는 제사장이 뜻밖에 등장을 해요.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3
보통의 경우, 제사장은 여기까지 따라 오지 않습니다.
제사장은 개전 초기에 전쟁의 뜻을 묻는 그런 의식을 치르고
제사장은 성소로 돌아가야 돼요.
근데 아히야가 여기에 남아있은 이유는,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리러 오겠다고 했더니
사무엘이 조금 늦게 온다는 이유로, 사울이 직접 제사를 드렸어요. 삼상13:9
그랬더니 사무엘이 사울을 이렇게 질책합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삼상13:13~14
'하나님이 다른 지도자를 세우실 것이다' 어쩌면 사울은 억울했을 거예요.
서운하다 못해서 화가 났는지도 모르죠.
아니 자기(사무엘)가 조금 늦었으면, 늦었다고 사과 할 일이지..
그리고는 (제사를 마저 드리지도 않고) 사무엘은 그냥 돌아가 버렸어요.
사울로서는 속이 상해도 이만저만 상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제사장 아히야를 (사무엘 대신으로) 지금 전선에 데리고 온 것입니다.
마치 개인 비서를 대동 하듯이 데리고 온 것이죠.
뭐 답답한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물어보겠다고, 데려오지 않았겠습니까.
아히야는 본문에 설명이 나오는데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 입니다. 14:3 주1)
아히둡은 엘리 집안의 제사장으로서 이런저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상황이 예측되냐면,
'사무엘, 너 없으면 제사 못 드리냐? 사무엘 너만 제사장이냐?'
그래서 지금 아히야를 끌고 온 거예요.
▲여기서 잠시, 선지자 사무엘이 제사를 집전할 권한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제사는, 레위인 제사장이 드리는 권한을 가졌고, 선지자는 권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는 에브라임에 거주하는 사람이었어요.
얼핏 보면 에브라임 지파처럼 보입니다. 삼상1:1
그러면 에브라임 지파 출신 선지자 사무엘이, 제사를 집례하는 것은.. 아무 권한이 없지요.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삼상1:1
라마다임소빔은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가 살던 곳입니다. 주2)
엘가나는, 역대상 6장의 족보를 찾아보면, 레위 지파 고핫 계열입니다. *대상6:27, 28
고핫 자손들 중에 특히 아론의 후손들이 '제사장' 직을 이어 받았는데,
사무엘은 그 제사장 계열에 속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제사를 집전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를 '에브라임 사람' 이라 칭한 까닭은 *삼상1:1
그가 에브라임 지파의 후손이어서가 아니라, 다만 그가 그 지역에 거주하여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레위 지파는 타지파처럼 일정한 기업을 받지 못하고, 이스라엘 전국 12지파 속에 흩어져 살면서
그들의 종교 생활을 지도하는 임무를 가졌습니다. *민35:1~8
그러니 사무엘은 '레위인' (또는 제사장) 집안이었던 것입니다.
에브라임 지역에 파견되어 살고 있던 레위인!
그래서 한나가 어린 사무엘을, 성막에서 봉사하도록 맡긴 것이지요.
보다 넓은 곳으로 가서, 레위인(또는 제사장)의 직무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험악한 지형을 뛰어넘은 요나단
그래서 제사장까지 데려다 놓았습니다만
정작 전쟁을 치를 의지가 있습니까?
전쟁을 치를 그런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는 그런 상황입니다.
자, 이런 상황에서 요나단이 지금 사라진 거예요.
요나단은 무기를 든 소년 한 명만 데려갔어요.
부관 한 사람을 데리고, 적진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사지에 그냥 뛰어 든 거예요.
삼상13:4~5절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쪽에는 험한 바위가 있고
저쪽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한 바위는 북쪽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쪽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
지금 본문의 지형을 보니까
요나단이 적진 블레셋 진영으로 건너가려면 좁은 통로(길목) 하나를 지나가야 돼요.
그 통로 양쪽에 큰 바위가 두 개 나오고,
그 이름이 각각 보세스, 세네 였습니다.
보세스.. 미끄럽다는 뜻이고
세네.. 날까롭고 뾰족하다는 뜻입니다.
그 두 바위 사이의 통로.. 요즘 말로 하면 '와디'입니다. *현재 지명은 '와디 스웨인'
거기를 지나가야 적진에 도달할 수 있어요.
그러니 요나단이 부관과 함께 적진으로 곧바로 가려면
세네 바위를 내려갔다가, 보세스 바위를 올라가야 했어요.
지금도 가보면 그 바위의 경사가 75도 이상이에요.
도저히 무기를 들고서, 그 험한 지형을 통과할 처지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런 (불가능한) 상황에 지금 요나단이 도전을 했다 이겁니다.
5절 '바위 하나(보세스)는 북쪽에서 거대한 기둥처럼 치솟아올라 믹마스를 바라보고 있었고,
다른 하나(세네)는 남쪽에서 치솟아올라 게바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3)
그래서 보세스 바위를 지나면 믹마스 라는 마을이 나옵니다.
'믹마스' 라는 뜻은, '은신처'입니다. 숨기 좋은 곳이에요.
지금 그곳에 어쨌거나 블레셋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는 거예요.
요나단은, 여기를 뛰어 들어가야, 전쟁에 승기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거기 도달하는 길이 너무 험악한 거죠.
그래서 블레셋도 '설마 적들이 이 길로 오겠나?' 하고 방심하고 있었던 거죠.
▲지금 본문은 주전1030년 일인데,
그때로 부터 정확히 2900년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냐면
1차 대전 중에 영국군 알렌딘 군단이 팔레스틴에 주둔하고 있었어요.
거기에 있는 영국군 한 중대가, 당시 믹마스 에 주둔하고 있던 터키군을 공격하라는
진격 명령을 받았어요.
근데 이 명령을 받은 장교가, 가만히 생각해 보다가 본인이 성경 읽은 기억이 나는 거예요.
'믹마스? 들어본 이름인데?'
그래서 성경을 찾아보고,
요나단이 갔던 길을 그대로 가서
믹마스에 있던 터키군은 쫓아내고 점령했다는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주4)
그 전황을 기록한 사람이 뭐 비비안 길버트 인가 하는 영국군 소령인데,
'현장에 가 보니까, 성경의 지명이 하나도 틀린 데가 없더라'고 말했습니다.
현장에 가 보니까, 세네 바위, 보세스 바위가
여전히 그대로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네, 보세스 바위를 건너서 요나단의 공략 루트를 따라서 그대로 갔더니
터키군이 방심하고 있다가 당한 거죠.
(성경 기록에 나오는 지명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는 걸
좀 감동 하라고 지금 드리는 얘기입니다.)
▲14:6~7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무기를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리이다'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6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우리가 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6
이게 좀 약하게 번역 되었는데
원래는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원문에는 '혹시'(울라이)라는 단어가 있어서
요나단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은 양 보입니다.(창32:20)
그러나 이 말은 또한 '정녕', '필시'라는 뜻의 소망과 확신의 의미도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음이 분명합니다. (수14:12참조)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도와주시면
우리가 이걸 쟁취할 수 있다는 거예요.
◑요나단, the game changer
오늘 이 요나단의 선포를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이거란 말입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삼상14:6 *본 설교의 주제
이게 비록 요나단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사실 믿음의 클라이맥스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수많은 일들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렸어요.
우리가 세상에서 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돈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어요.
세상에서 우리가 행하는 많은 일들은, 조직이 정비가 잘 되어 있느냐/ 아니냐에 달렸어요.
또 요즘 유행하는 말로, 지식과 정보의 양이 많고/ 적음에 달렸어요.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역사는
그 어떤 세상 자원의 많고/ 적음에도 달려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면,
오직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일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은
이 어려운 시대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이유가 뭐예요?
진퇴양난 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앞에는 보세스, 즉 절벽같은 바위가 가로막고 있고,
그 뒤에는 세네와 같은 미끄러운 바위가 또 있고...
우리가 사는 길 앞에는 온갖 험한 바위투성이 이고,
지형지물이 어느 것 하나 편한 게 없다는 말이에요.
이런 곳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
어떻게 적진을 향하여 나아가겠느냐는 것입니까?
어떻게 수만명의 병력과 엄청난 무기를 가진, 우리보다 월등한 적을 상대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 보니까, 이 열세에 놓은 전세를 뒤집는 데는
딱 한 사람이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객관적인 정보나 자료에 의해서, '안 되는 일은 안 된다'고 얘기 할 뿐입니다.
'이런 일은 안 됩니다. 이런 일은 무모합니다. 이런 일을 해서 안 됩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즐비합니다.
그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세상에 될 일이 아무 것도 없어요.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안 될 이유가 수 십, 수 백 가지나 있다고 쭈욱 나열합니다.
합리적인 사람들, 지식이 가득한 사람들, 최신 정보로 넘치는 사람들이
안 되는 이유를 찾는데 하루종일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하고는 무슨 일을 할 이유가 없단 말이에요.
그래서 누구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도전하는.. 요나단 같은 한 사람이 중요한 것이지,
안 되는 이유를 찾고, 안 되는 이유를 말하면서
석류나무 아래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은 600명이나 있었지만...
그들로는 아무 일도 안 된다는 말이에요.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는 단 한두 사람이 나서도 족합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 그 한 사람으로 인해서 상황이 달라지고, 전세가 뒤바뀐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오늘날 이 시대에도, 이런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사람 많으면 좋지만.. 그들 대다수가 믿음이 없다면.. 크게 소용 없습니다.
'안 된다'는 사람들 수백명 수천명 가지고 무슨 일을 하겠어요?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면,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즉 돈과 조직과 권력의 크고/ 작음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한 분이면 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교회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게 아니란 말입니다.
교회는, 건물의 크고 작음에 달린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헌금과 재정의 크고 작음에 달린 게 아니라는 거예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한 사람이면.. 족한 줄로 믿으십시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해 시작된 일이에요.
이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교회들도,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 한 분으로 시작되 게 아닙니까.
▲저는 오늘 날 이 원리는 동일하다고 믿습니다.
이 작은 교회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객관적으로 뭘 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저는, 이 작은 교회가 주님이 함께 하시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믿음으로
날마다 강단에 설 뿐이에요.
저는 여러분들이 그런 믿음을 가지고 여러분의 일터에 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직장에 하나도 없습니까?
결혼 해 보니까, 시댁에 교회 나가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습니까?
그 숫자에 달린 게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담대히 선언하면
그러면 무슨 일이 반드시 일어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게 우리가 믿는 이유요,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요,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도 겁먹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란 말입니다.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세상은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뭐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다윗도 똑같은 고백을 하지 않았습니까.
삼상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여러분들이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든지,
거기에 크리스천이 단 한 사람도 없는 조직이라도, 가서 담대하게 여러분들이 일하시기 바랍니다.
시125:1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기초가 흔들리지 않는 거예요. 터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거예요. 생각이 천갈래 만갈래 흩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게 평안입니다. 그런 평안이 없이, 어떻게 우리가 세상을 살아 내겠습니까.
▲그러자 무기든 부관이 요나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리이다' 14:7
여러분 마음이 하나될 수 있는 사람!
이런 동역자 한 사람이면 족합니다.
하나님께 감동된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 되는 사람에게는
그 감동이 주위로 확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부관 같은, 그런 충성된 일꾼이 또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붙여주시는 동역자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 성령에 감동된 사람들로 인하여, 본문으로 치면 요나단과 그의 부관으로 인하여
현실 상황은 객관적으로 어느 것 하나 유리한 게 단 하나가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상황은 반전시킬 수 있습니다!
본문 삼상 14:8~12절을 읽어보십시오!
▲제가 지금 드리고 싶은 말씀은
오늘 요나단의 믿음이 어떤 말투를 쓰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어요.
여러분, 믿음은 선포입니다.
믿음은 선포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진정한 믿음이 있다면,
이 시대를 향해서도 담대히 선포하는.. 날마다의 선포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면
우리는 반드시 할 수 있다!' 하는 이런 믿음을 선포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싸인(본문에 지진 일어남 :15)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가정에서도 이런 선포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도 믿는 사람이 없는 집에 결혼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시면, 이 가정이 모두 구원에 이를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선포하며 기도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 아이도 변할 줄로 믿습니다!'
이게 믿음을 가진 부모가 자녀를 기르는 방식 아닙니까.
자녀가 게임 중독에 빠졌습니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중독에서 벗어나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변할 것을 날마다 선언하십시오. 선포하십시오!
때가 되면, 그런 선언과 선포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게 하실 것입니다.
*관련글 : 선포기도 https://blog.daum.net/rfcdrfcd/15976683
'이 나라 이 민족이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하루에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선포하는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하실 것입니다.
골방에서 소리쳐서 선포하십시오.
전철 타고 가다가 여러분은 웅얼거리면서 선포하십시오.
'이 민족이 언젠가는 바뀔 것입니다. 복음으로 통일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이 민족에 그런 변화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는, 여전히 하나님이 이 땅에 두신 소망입니다.
주님이 이 소망과 함께하실 줄로 믿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이제 다시 한번 회복될 기회를 주십시오!'
자기 자신에게도 스스로 선포하십시오.
'저 미끄러운 바위, 날카로운 바위를 보고 두려워 하지 말지어다!'
이런 선포의 능력을 오늘날 우리가 잊어버리면 안 되겠습니다!
◑실제로 상황이 반전되다
이렇게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따라 험한 바윗길로 올라간 요나단과 그의 부관,
아주 무모하게 보이는 기습 공격이었지만, 정말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공격이었지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을 보여주는 싸인이 뒤따랐는데, 그건 바로 지진이었습니다.
14:13~15 '요나단이 손 발로 기어 올라갔고 그 무기를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무기를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자가 반나절 갈이 땅 안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자가 20명 가량이라
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들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지진)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진정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때는
'따르는 표적'을 주님이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막16:17, 행8:6
그래서 그 사명을 더욱 확고하게 수행해 나가도록, 주님이 밀어주시는 것입니다.
14절의 '반 나절 갈이 땅'이란, 약 반 에이커 정도입니다. 주5)
고대 전쟁은 첫 전투에서 승패가 결정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단과 무기 든 자가 죽인 블레셋 군인이 불과 20명에 불과했지만,
'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들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었으며' :15
이런 떨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주신 떨림도 있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땅의 지진 까지도 가세 되었습니다.
그러니 단 6백명의 사울의 군대가,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은 블레셋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3:5
............................................
주1)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다 같이 죽는 날에,
비느하스의 아내가 출산하면서 '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이름을 짓습니다. 삼상4:21
그러면 본문에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이라 했으니,
잠시 가계도를 그려보면 아히야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엘리의 증손'이 맞습니다.
*엘리 - 비느하스 - 아히둡 (이가봇의 형제) - 아히야
주2)
'라마다임소빔' (Rama-thaim-Zophim)은 '숩 족속의 두 고지(언덕)'
또는 '숩 땅에 있는 고지들' 이라는 의미로서,
사무엘 가문의 조상이었던 '숩'(혹은 '소배', 대상 6:26)이라는 사람이
그곳에 정착함으로써 붙어진 지명이다(Kdil, Fay, Smith, Driver).
아마도 두 개의 고지(언덕)위에 세워진 듯한 이 '라마다임소빔'은
에브라임 산지 중 베냐민 지파 거주 지역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이곳은 예루살렘 북서쪽 약 8km 지점에 위치하였으며,
단순히 '고지'(高地)라는 이름의 의미를 갖고 있는 '라마'와 동일한 지역이다<19절>.
한편 '라마'(Ramah)는 사무엘이 태어난 고향이요, 그가 활동한 사역의 중심지이며,
또한 후일 사무엘이 죽어 장사된 곳으로, 사무엘 시대에 주요한 위치를 점하는 장소이다.
그런데 삼상1:1절에서 특별히 '라마다임소빔' 이란 원지명을 사용한 이유는
팔레스틴 지역에는 많은 '라마'(언덕 마을, hill town)가 있기 때문에,
그것들과 사무엘의 고향 '라마'와 서로 구별하기 위함이다.
한편 이 지역은 후일 신약 시대에는 부자 요셉의 고향과 동일한 '아리마대'로 불리워졌다. (요 19:38)
주3)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그 의미를 잘 드러내기 위해서는
'(보세스는) 북에서부터 뻗어서 믹마스 맞은 편에 있다'
'(세네는) 남에서부터 뻗어서 게바 맞은 편에 있다'로 번역함이 좋다고 합니다.
주4)
625 한국전쟁 때도, 인천상륙작전이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여호수아의 가나안 점령 전술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너무 비슷하니까요.
주5) '반 나절 갈이 땅'
고대 중근동에서는 황소 두 마리가 하루에 보통 밭을 갈 수 있는 분량인
약 1에이커(1에이커=약 4km )를 밭의 면적을 계산하는 단위로 삼았었다.
따라서 '반 나절 갈이 땅'이란 대략 1/2에이커의 땅(an half acre of land, KJV)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