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이사야 43장 너는 내 것이라

LNCK 2021. 10. 24. 19:25

https://www.youtube.com/watch?v=t4RF-rEnmao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43:1~8                     출처    

우리는 이사야 40장 이후로 하나님의 위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쭈욱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40장>에서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렇게 시작했죠. 
'죄가 그치고 죄사함을 받는 날이 온다' 그러면서 주신 위로의 말씀은, 
'너희 하나님을 보라' 였어요.

'너희 하나님을 보라.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 너희의 참된 위로다'

<41장>에서는, 
'그러면 그 구원을, 그 위로를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과연 섬들을 잔잔케하고, 민족들과 힘을 겨룰 자가 누구냐? 
그가 바로 나 여호와다!' 이것이 41장의 내용이었어요. 
'일을 행하는 자, 나 여호와다'

<42장>에서는,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 위로하시는가? 
누구를 통해서 역사하시는가? 

바로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자, 
그를 통해서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새 일은 복음입니다.

바로 그 새 일을 행하는 하나님의 종은, 본문에서는 고레스인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오늘 <43장>은 뭐냐?
왜 위로하시는가? 입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구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이 43장의 주제입니다.                *43:1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가요?
그것은 바로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지었고, 내가 너를 구속하였다' :1

네가 내 것이기 때문에 구원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확실한 약속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어요. 

▲우리가 뭐 잘 생겨서.. 잘나서.. 뭘 할 줄 알아서가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넌 내 거니까, 내가 너를 지키고 함께한다' 이게 이유라는 거예요. 

1절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여기에 밑줄을 그어 보세요. 
이게 43장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고마운 말입니까? 
뭐 '너는 내신 1등급이다. 너는 공부 잘 한다. 너는 훌륭하다'
이런 말보다 훨씬 더 좋은 말이에요. 왜요? 

'너는 내신 1등급이다' 그러면, 
등급이 떨어지면 버린다는 얘기잖아요. 

'네가 공부 잘 하니까 너는 내 자녀다'
그러면 공부 못 하면요? 

우리가 잘 나서가 아니에요. 어떤 이유도 없어요. 
'너는 내 것이기 때문에, 내가 너를 버릴 수가 없고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넌 내 것이다!' 

쉽게 말하면, 눈에 콩깍지가 씌어진 것이에요.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한테 예쁠 존재가 아니에요. 그렇게 귀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를 예쁘게 봐 주시고, 귀하게 봐 주시는 거예요. 

그런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결단이 나타나 있는 겁니다. 

여러분, 사랑은 결단입니다. 
사랑하기로 마음 먹는 것입니다.

사랑하기로 마음 먹고 나면, 그때부터 모든 것을 다 쏟아붓는 게 사랑이에요.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사랑 받을만 하니까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근데 그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여러분, 자녀를 사랑하시죠? 왜 사랑합니까? 
그 자녀가 옆집 애들보다 공부 잘해서? 
옆집 애들보다 뭐 키가 더 크고 더 잘 생겨서?

아니잖아요. 내 자식이니까 사랑하는 거 아닙니까. 
내 자식이니까 아무리 못 나도 사랑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새벽기도회에 나왔으니까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내가 매일 1시간씩 기도하고, 내가 말씀을 10장씩 보니까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나를 하나님이 사랑하기로 마음 먹으셨어요. 그게 놀라운 복음입니다.

내가 아무리 실수하고, 내가 아무리 연약하고 넘어져도 
하나님은 날 포기하지 않아요. 날 버리지 않아요. 
왜요? 사랑하기로 선택하시고 결심했으니까! 
왜냐면 '너는 내 것이니까!'  43:1

그래서 목사라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게 아니고요 
장로, 권사라서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는 게 아니고요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으셨어요. 너는 내 거니까! 
'내 것'이란 말이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요즘 젊은 아이들 가요 중에 '내 꺼하자' 라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뭐예요? 
네가 누구든 관계 없다는 거예요.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 거 하자! 나는 네 거 할게!' 이 말이죠.  *노래 가사

서로가 서로에게 속한 사람, 
너는 나에게 속하고, 나는 너에게 속했다.. 라고 하는 이 고백이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하고 계신 고백인 거예요. 

▲'야곱아, 이스라엘아' 라는 말이 두 번 나왔잖아요. :1
야곱은 변화받기 전에 자연인의 모습이고, 
이스라엘은 변화된 다음에 새롭게 받은 이름이죠.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1

그가 변화받기 전이나, 변화된 이후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똑같이 그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야곱이든 이스라엘이든 관계 없고 
네가 변화 받든/ 못 받든 
네가 새로워지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나는 너를 항상 창조한 여호와고, 너를 지은 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1b
즉 '너는 내 거니까 이제부터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살아갈 때 가장 큰 위로입니다. 

큰 위로 중에 위로는 뭐냐?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왜? 너는 내 것이다!' 

▲여러분, 이 두 가지의 마음을 우리가 오늘 품으면 두려울 게 없어요. 
-너는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내 것이다.

왜요?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는 거예요.

1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이 적어도 두 가지가 나옵니다. 
-창조했다 
-구속했다 

이 두 가지가 왜 중요하냐면 
우리가 하나님의 것인 이유가 뭐냐? 
왜 우리가 하나님 것이냐? 

1) 첫째는 창조 했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만들었으니까. 
하나님이 만드셔서 하나님이 것이 된 거죠.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셨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지었는데, 지음 받은 우리가 하나님 것으로 살지 못했어요.
하나님을 거부하고 도망갔어요. 

2) 구속하셨으니까!
우리는 죄를 지어서, 죄가 하나님과 우리를 가로 막고 
우리는을 거부하고 도망쳐 버렸어요. 

그런데 그런 우리를 위해서, 다시 한번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를 구속하셨죠.

그러니까 우리는 따블로 하나님 것이예요. 
두 번이나 하나님 것이 된 거예요. 

창조해 주셨는데, 죄를 짓고 도망갔는데 
다시 값을 주고 사서 구속 해서, 또 한번 하나님의 것이 된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님 것이 된 것입니다.

이게 우리의 자존감 입니다.
'나는 누구냐?' 그러면 
'내가 돈 많이 벌어서, 내가 많이 배워서, 뭐 내가 무슨 학위가 있어서' 그게 아니라

'나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나는 소중하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다, 하나님이 나를 구속하셨다'
'이제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 세상 것이 될 수 없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무릎꿇지 않는다'

왜? 나는 하나님 것이니까! 
이게 우리 자존심이고 자존감입니다.

다른 무엇도 우리를 넘볼 수 없고, 
다른 무엇도 우리를 꺾을 수 없어요. 
누구도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없어요. 
죽음도, 이 세상 어떠한 것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너는 내 것이라'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요.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1 
우리 마음속에 어떻게 두려움이 없겠어요? 
아무리 잘 되고 있어도 넘어질까 두렵고, 잘못될까봐 두렵고, 
보이스 피싱 전화만 울려도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고 

근데 그런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말씀 하는 거예요. 
'너는 잘못 되지 않는다!' 
'잘못 돼 봤자,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내 것이니까, 내가 너와 함께 하니까, 그러면 되지 않니?' 
라고 하는 말씀이, 본문 이사야 43장인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럼 이렇게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내 것이라!' 그러면 

그때부터는 매일매일 평안만 몰려와야 돼요? 
아니면 힘든 일도 찾아오는 겁니까?

내가 하나님 것이라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으면
매일매일 좋은 일만 생겨야 되지 않습니까?

근데 신기한 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불구하고 
매일 고난이 찾아온다는 거죠. 
두려워 할 일이 생긴다는 거죠.

왜 그런가 볼까요? 2절입니다. 

◑43:2절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분명히 네가 물 가운데 지나는 날이 온다는 거예요. 
강을 건너는 날이 오고, 불가운데 지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좋겠는데,  
물도 피하고, 불도 피하고 
하나님이 다 피하게 해 주셔서, 그런 일이 없으면 좋잖아요. 

근데 물가운데로 지나가야 깨끗해지는 거예요.
불가운데 지나가야 정결해지는 거예요. 

'물가지고 날씻든지, 불가지고 태우든지' (찬송가 가사)
부정해지는 몸과 마음을 하나님이 새롭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시련이라고 하는 관문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물도 불도 통과해야 돼요.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나갈 수 있어요. 

▲근데 문제는, 우리는 물도 못 이기고, 불도 못 이겨요. 
물에는 쓸려가고 침몰해 버리고요 
불에는 타버린다 말이죠. 

근데 하나님을 뭐라고 말씀하시는가면 
'네가 나의 것이기 때문에, 네가 내 것이니까 
앞으로 너는 물 가운데 지나갈 때 침몰하지 못 하겠고
너는 불 가운데 지나도 타지 않는다' 라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크리스천의 삶은, 
-물도 불도 피해가는 삶이에요? 
-아니면 물도 불도 두렵지 않는 인생이에요? 

후자입니다. 두렵지 않는 인생이에요. 
크리스천이라고 물과 불이 피해 가지 않아요. 

우리에게도 똑같이 병이 오고요, 
우리에게도 외로움이 오고요, 
우리도 분쟁이 오고요.. 다 똑같이 오더라고요.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겪는 것은 비슷해요. 
그런데 뭐가 다른가? 

그것을 이겨낼 능력을 주시더라.. 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이겨낼 힘을 주시더라는 게 다른 거예요.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시험이 없어지게 해 주옵소서'가 아니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시험은 있지만, 시험에 빠지지 말게 하옵소서)
그게 우리의 기도 인거죠. 
  
그러니까 '어려움을 피하게 해 주시고, 어렵지 않게 해 주시고 
우리만 좋게 해 주시고...' 이건 이기적인 기도해요. 
어린 아이의 기도죠.

그건 말도 안되는 기도죠. 그러나 어려움을 겪지만 
어려운 현장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니까, 당당히 이겨낼 믿음과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게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되는 거죠. 

◑43:3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대저'는 '왜냐하면'으로 읽어도 됩니다.

자, 왜냐하면, 네가 왜 두려워 하면 안 되냐면 
'나는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고, 
너희 구원자 이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너의 하나님이다. 
네가 섬길 다른 신이 있는 게 아니고, 
다른 우상은 다 헛것이고, 나만 너희의 하나님이다.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주었고 
구스와 스바(아라비아)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다'

이 말은 뭐냐면,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자유케 해서
고국으로 귀환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때 왜 이스라엘 돌려보냈느냐면, 
고레스의 아들인 캄비세스 왕이, 애굽을 정벌하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에는 '페르시아가 너희를 풀어준 이유는 
너희보다 애굽(구스, 스바 포함)을 공격하기 위해서'라는 거에요. 
애굽을 전략적으로 공격하려고 이스라엘은 풀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레스가 자유를 선포해서 이스라엘이 돌아왔고
그 아들은 애굽을 침공했습니다.. 이게 역사적인 사실인데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요? 
'내가 너를 살리기 위해서 너를 대신해서 애굽(구스와 스바 포함)을 내줬다'는 거예요. 

근데 이게 말이 안 되는 게, 애굽은 어마어마하게 큰 나라고
구스와 스바까지 합치면, 아프리카 북부 지역을 다 포함하는 굉장히 넓은 지역인데,

거기에 비해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조그만 나라입니다.
말도 안 되게 작은 나라입니다.

근데 하나님은 이 작은 이스라엘 나라를 위해서
저 어마어마하게 큰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대신 내주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 어마어마한 대국보다 너를 더 사랑한다. 
아무리 크고 아무리 비옥하고, 아무리 놀라운 문명이면 뭐하냐? 
내가 너를 더 사랑한다' 라고 말씀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세상을 부러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이 세상에 대단한 사람들, 어마어마 사람들보다 
너를 더 사랑하신다.. 차라리 그들을 내어주더라도 난 너를 구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럼 왜 그렇게 그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가요?


◑43:4절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우리가 찬양을 우리가 늘 부르잖아요.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모든 환란 가운데 너를 지키는 자라
두려워 하지말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
놀라지말라 네손 잡아주리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내것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너를 사랑하는 네 여호와라' 

이 찬양이 바로 이사야 41장과 43장을 합쳐놓은 가사입니다.

그러면 왜 내가 이렇게 사랑스러워요? 
하나님의 것이니까! 


◑43:5~6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동서사방에서
멀리 땅끝에서, 
하나님의 자녀 (포로된 자) 들을 모두 모으시겠다는 것입니다.


◑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오늘 본문 사 43장의 주인공은 누구냐? 우리가 아니에요. 
하나님 이세요. 

항상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더 귀한 거예요. 
사랑 받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이 
받는 사랑보다 더 귀하고 존귀한 거예요. 

그래서 오늘 1절에,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세 번이나 '내가'가 나옵니다.

2절에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여기도 '내가'에 밑줄 그으세요.

3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내가 애굽을 네 속량물로..' 

여기서도 '나는, 내가'가 나옵니다.

4절,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절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7절, 8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주어,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된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더 중요한 존재가 되십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사랑받는 나가 아니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더 중요합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의 구원도, 사실은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를 위한 것이죠.

우리는 구원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체와 주도권을 놓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성경과 구원을, 자꾸 인간 중심으로, 나 중심으로 이해하거나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이해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또한 결국 그것이 진정 '나를 위하는' 길도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