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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21장 1~10 상실의 시대

LNCK 2021. 10. 26. 16:59

https://www.youtube.com/watch?v=faK0yxpOiIU

◈상실의 시대          왕상21:1~10       2021.09.12.출처

최근 한국 사회에서 잇따르고 있는 참혹한 뉴스들을 보면서 
오늘은 인간성 상실과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의 역사적 배경

왕상21: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이스라엘 역사에서 북이스라엘 왕국은 
모반과 우상숭배로 시작된 나라입니다. 

첫 단추를 잘못 꿰었기 때문에 
그 후 계속해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나라가 부국강병을 이루었다는 것이죠. 
특히 아합 시대는, 군사력으로는 남유다를 압도했고 
경제적으로도 호황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1절에 '그 후에' 라고 했는데, 이 말은 아합이
얼마 전에 아람 왕 벤하닷을 크게 이기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왕상20장

아합으로서는, 말하자면 남부러울 것이 없는 그런 군주로 지냈던 거죠.

▲자 그런데 그가 왜 사마리아 성에 있지 않고 
북쪽으로 37키로 떨어져 있는 이스르엘에 와 있었는가요? 

아합의 부친 오므리가, 수도를 디르사에서 북쪽 사마리아로 천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해서 더 북쪽에 있는 두로 와 시돈 중심의 
페니키아 지역, (성경에서 베니게)  
당시 지중해 해상무역을 장악하고 있던 페니키아 문명과 손을 잡으면서 
큰 부를 축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아들 아합이, 베니게의 핵심도시인 시돈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을 했던 것도 다 그런 맥락에서 했던 것이죠.  *정략적 결혼 

자 그러다 보니까 아합이 굉장히 번영하고 부국강병을 이루게 되니까 
수도 사마리아는, 상대적으로 해발고도가 높기 때문에 시원했고, 
그곳에 여름 궁을 지었습니다. 

그 여름 궁은, 상아로 만든 상아궁전이었어요. 굉장히 화려했죠.

그것도 부족해서 더 북쪽에, 상대적으로 고도가 좀 낮은 이스르엘에,
그곳은 따뜻한 지역이기 때문에 겨울 궁을 지어 놓고 
그곳을 별장으로 활용했었던 것이죠. 

이스르엘은 이스라엘 중부의 최대 평원이자 
최고의 곡창지대였습니다. 

▲그곳에 나봇이 포도원을 갖고 있었는데 
하필 아합의 왕궁 바로 곁에 있었습니다. 
입지도 좋고, 풍광도 매우 좋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합 입장에서는 견물생심인 거죠.
나봇의 포도원을 보면 볼수록, 갖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거예요. 
그래서 나봇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2절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아합이 나봇에게 자기 포도밭을 팔라고 얘기하면서
자기 채소밭을 삼겠다고 이야기 했는데, 
이 채소밭은, 말하자면 정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스르엘 별장 왕궁에서 왜 갑자기 아합은 정원이 필요했을까요? 
그가 지금 이스르엘 별장까지 와서 지낸다는 것은
굉장히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데 

거기 건조한 지역에, 자기의 식탁에 날마다 신선한 채소가 올라오기를 원했겠죠.
그리고 가든 파티도 하고 싶었겠고, 왕궁 가까이에
또 이방인 아내 이세벨을 위해서, 우상의 제단도 세우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계획들이 있었을 터인데 
'단지 그 포도원를 내게 주면, 내가 더 좋은 포도원을 주던지 
아니면 값으로 제대로 변상 해 주겠다' 얘기를 했어요. 

▲이런 제안을 했던 아합은 어찌보면 
상당히 젠틀 했고, 또한 관대하기 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가 처음에는 아합의 포도원을 강탈할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럼 나봇이 뭐라고 대답을 했는가요?
3절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나봇이 거래할 마음이 없었어요. 이유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유산이기 때문이고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봇.. 이름의 뜻이 '싹 트다'
그 이름 그대로 그는 굉장히 과수원에서 성실하게 일했던 사람으로 보이고 
또 아주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문제는 아합의 반응이었어요. 

 

4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방금 전까지 매우 젠틀 했던 아합 왕이 
욕구불만으로 어찌할 줄을 몰라서 
갑자기 유아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왕이 국사도 돌보지 않고, 침실에서 두문불출 곡기를 끊고 
분노조절이 안 돼서, 분노와 우울한 기분을 어찌할 줄 몰라 하는 거예요.

아합 이라는 캐릭터를 볼 때 
그는 과연 선한 인간인가요, 악한 인간인가요? 

▲아합 이라는 사람을 통에서 우리 자신을 볼 필요가 있는데요. 
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굉장히 친절하고 관대하고 젠틀한 편입니다. 

하지만 내가 뭔가 갖고 싶은 게 있다... 그러면 굉장히 집중력을 발휘하는 편이에요.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발벗고 나서서 도와 주는 일들이 우리 가운데 제법 많죠. 

그러나 일, 성공, 돈, 내가 갖고 싶은 거는 꼭 가져야 되는 거예요. 
안 되면 되게 해서라도 가져야 되는.. 그런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이게 한국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이죠. 

▲여러분, 아합에게 나봇의 포도원은 
보암직 하고, 먹음직 하고,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만큼 탐스러운 것이었어요. 

여러분에게도 '야 이거 내가 갖고 싶다.' 
그런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나봇의 포도원이 있지 않은가요? 

내 마음에 들지만, 그러나 가지면 안 되는 것, 
이게 나봇의 포도원이죠.

그런데 우리가 어린 자녀들에게
그냥 절제 없이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해 줍니다.

그러면 얼마 전에 산 장난감이 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새로운 장난감을 또 갖고 싶어해요. (절제할 줄 모릅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신형 핸드폰 갖는 거, 그걸로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뭐 이전보다 더 청소년들이 차량절도를 하고, 
용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자기 몸을 파는 그런시대가 됐어요. 

적잖은 청소년들이 비트코인에 올인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또 어른들은 주식에, 부동산에 올인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갖고 싶은 것이 굉장히 많은 시대!   *2021.09.12.설교, 주식이 절정이던 때,
그리고 이미 이전에 비해서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시대, 

그런데 왜 '상실의 시대' 라는 설교제목을 제가 잡았을까요? 


◑1. 탐욕을 버리고 절제를 배워야 합니다!

다다익선, 많을수록 좋다.. 라고 사람들이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이런 물량공세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들은 쉽게 싫증이 나고, 인생의 존재의 허무를 느끼고, 속이 답답한 거예요. 

왜 그럴까요?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더라도 
정작 중요한 하나님을 가지지 못하면.. 세상에는 참 만족이 없습니다.
 
또한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되는 그 인간성, 즉 신앙인격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에.. 삶이 공허하고, 인생이 허무한 것입니다.

아합을 보십시오. 그 시대에 아마 아합보다 많이 가진 사람은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 하나, 자기 눈에 들어온 것(포도원)을 가지지 못하자,
자기 인생이 고통스러워서 무너지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아합 이라는 사람 자체가, 내면의 어떤 도덕성이나 
아니면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으로 채워진 사람이 아니라 
물욕과 탐심으로 가득 차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게 채워지지 않으면, 스스로 불만족이 가득 넘치는 거예요.(오늘날 우리 모습 아닌가요?)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4장 11절에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바울은 자족을 배웠어요. 

바울은 출신이 비천해서 자족을 어쩔 수 없이 배운게 아닙니다.
그는 그 당시 하이클래스 로 출발한 사람이었어요. 

그가 주님을 위해서 헌신 했기 때문에, 
'풍부에 처하든, 비천에 처하든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다'..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자족을 배우지 못하고 있어요. 
어린 자녀에게 부모가 
'내가 열심히 노력했고, 내가 그래도 어느 정도 갖고 있으니까 
너 원하는 거 다 가져!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 
이렇게 가르치는 집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잘못입니다)

여러분 인간성의 핵심요소는 '자유'만이 아닙니다. 
그 절반은 '절제'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어떻게 오늘날 사람들이 
자기 자식을, 자기 가족을, 자기 지인들을 
성폭행하고 학대하고 살인할 수가 있는가요? 

정글의 맹수도 배고프면 한 마리 잡아 먹지만 
배고프지 않으면 더 이상 욕심내지 않아요. (짐승도 절제가 됩니다)

탐욕이 끝나지 않는 것은 인간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러 오신 게 아니에요. 
'짐승'으로 전락한 인간, 아니 짐승만도 못한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거예요.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해버린 자들을 
다시 하나님의 형상 인간으로 복구시키는 작업을 하신 것입니다. 

▲참 안타깝게도 현대사회는 돈의 논리로 돌아가고 있어요. 
현대인들은 돈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노인들은 노후를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른들은 사명감이 아닌, 돈 벌러 직장을 다니고요. 

이제 뭐 어린 자녀들에게 '너 장래희망이 뭐냐?' 물어보면 
분야에 상관없이 첫 번째 나오는 대답이 '돈 많이 벌어서..' 입니다. 

돈이 있어야만 내가 갖고 싶은 걸 가질 수 있고 
원하는 일을 할 수가 있고 
내 욕망을 채우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죠. 

주변에 뭐 영화나 드라마, 가요 등 대중문화의 어떤 장르를 보든지 
뭐 수 없이 쏟아지는 광고들을 보든지 
똑같은 메세지를 계속 사람들에게 던지는 겁니다.

'야 너도 이거 갖고 싶지? 
그게 신제품이 되었던, 돈이 되었던, 성이 되었던, 아름다움이 되었던, 
인기가 되었던, 또 무엇이 되었든간에 
끊임없이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문화의 한 가운데, 지금 우리가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열심히 일해서 좋은 직장 가고 
좋은 집안과 결혼해서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차를 끌고 다니면.. 그게 다 좋은 삶입니까?

▲본문의 아합을 보세요. 
그는 상아 궁전에 살면서, 이스르엘 별장에 살면서 
최고급 마차를 끌고 다니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겉으로 사회 생활을 할 때는 굉장히 젠틀하고 관대합니다. 
근데 집에 들어와서는, 욕구 조절이 안 되는 거예요. 분노 조절이 안 되는 거예요.

폭언, 폭력, 자녀학대, 물질 중독, 쇼핑중독에 빠져있는 현대인들! 
우리의 모습이 바로 아합의 모습인 거죠. 

자기 스스로는 굉장히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악하고 어리석은 아합의 모습이, 내 속에도 그대로 담겨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합이 왜 힘들어 했는가요? 
너무 많이 가진 사람이라서 힘들었던 거예요. 

그 하나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가지고 살다 보니까 
만족이 없는 인생이었어요.
아무리 채워도 만족이 없는 거예요. 오히려 채울수록 공허감이 더 커지죠.

여러분, 그래서 많이 가진 사회일수록 행복지수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요. 
세계 최빈국의 행복지수가 훨씬 높잖아요. 
이런 말도 안 되는 모순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희한하게 음식도 너무 과식을 하다 보면 
보통 사람보다 항상 더 배고프게 되어 있어요. 
인간의 그 식탐이 끝이 없고, 결코 만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과연 나 자신은 어떤 모습인가요? 

여러분의 영혼에 진짜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닙니다. 
사회적인 지위, 명예, 권력.. 이런 것이 더 필요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의 영혼에 가장 절박하게 지금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야 진정한 천국을 살게 되니까요!

'하나님, 적어도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형상 답게 살 수 있는 영혼의 힘을 주시옵소서!' 

찬양 가사에서 우리가 고백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전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을 나의 능력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2. 악인이 주도하는 세상인가요, 선인이 주도하는 세상인가요? 

왕상21:5~6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아니하겠노라 하기 때문이로다'

이세벨이 와서 보니까, 아합이 컨디션이 굉장히 좋지 않았어요.
왜 그러냐 물어봤더니, 아합이 마치 엄마에게 징징대며 고자질하는 아이처럼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했어요. 

이때 이세벨이 어떻게 반응을 하는가요?

:7~8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

이세벨이 보니까 남편이 한심한 거예요. 
'왕이 지금 뭐 하는 것입니까? 나봇의 포도원? 그거 내가 당신에게 드리겠어요'

그리고는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요?

:9~10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

편지 내용인즉 '금식을 선포하라' .. 문제 상황이 있다 라는 싸인이죠. 
그리고 나봇을 높이 앉혀 놓고 
건달 두 명이 그를 고발 하는데, 거짓증언 이죠.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 했다고 거짓 증언하게 함으로써 
신성모독죄 와 반역죄로 즉결처분 해서 사형을 시키라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그대로 되었습니다.

여러분, 아합은 그냥 울먹이면서 한 마디 했을 뿐이잖아요. 
근데 이 여자 이세벨은,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다릅니다. 
그냥 그대로 단 번에 날려버립니다. 

그대로 일이 진행이 됐어요. 
그리고는 나봇의 포도원을 자기 남편에게 안겨줍니다. 

▲이 두 사람을 보십시오. 
욕심은 많은데 우유부단하고 심약했던 아합, 
그리고 굉장히 주도면밀하고 치밀하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악녀 중에 악녀 이세벨!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조합 이었어요. 
두 사람의 이름의 뜻을 살펴봅시다.

아합은, '삼촌, 아저씨' 라는 푸근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세벨은 '바알은 어디에?, 바알 신이여 이곳에 임하소서'
이런 주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어요.

이 심약하고 우유부단한 사람 아합이 
이세벨을 만나서
아주 무자비한 추진력을 얻게 되었고 
악을 쌓고 쌓다가 
두 사람 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세벨은 짧은 시간 안에 죄악을 한 다발 지었어요. 
권력 남용에, 공문서 위조, 거짓 증인 세움, 무고한 인명 살해, 
십계명으로 봐도 복합적으로 죄를 지은 거였어요.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데, 함부로 사용했죠. 
제3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이웃에 대해서 위증 하지 말라'고 했는데, 9계명을 어긴 거였어요. 

'탐내지 말라'고 했는데, 10번째 계명을 어긴 거였어요.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6계명과 8계명을 어긴 것이었어요.

게다가 이 모든 것을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바알과 아세라 숭배자 였기 때문입니다. 

일계명과 이계명을 어긴, 그 외에도
줄줄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악인 중에 악인 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이세벨의 표현을 조금 바꿔서 우리가 이해를 한다면 
이세벨의 표현이 참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왜 이세벨이 남편에게 '왕답게 행동해라. 네가 왕이면 왕답게 행동을 해야지..' 
이런 얘기를 했을까요? 

당시에 아합이 갖고 있는 왕의 개념과 
이세벨이 갖고 있는 왕의 개념이 달랐기 때문이에요. 

이방인 왕들은 법 위에 존재했어요. 
'짐이 곧 국가이고, 법이다' 이었던 거죠.
중세 절대왕정과 비슷했죠.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들은, 아무리 왕이라도 
하나님의 법도 아래에 존재했습니다. 

지금 이세벨이 아합에게 무슨 얘기를 하냐면 
'법 위에 딛고 서라'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네가 나봇의 포도원을 갖고 싶으면, 법 위에 서면 되는 거지!' 


◑3. 탐심은 우상숭배의 죄입니다.

▲현대인들도 상당히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어요. 
'돈이 있어야 인간답게 산다'고 생각하잖아요. 

'내가 이 정도의 학력이 있고, 이 정도의 사회적 지위가 있어야 
사람 위에 군림하면서, 떵떵거리면서 큰소리치며 인간답게 사는 거지..' 

여러분, 그런 생각이 이세벨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아셔야 돼요. 

그러면 여러분, 진짜 인간다운 것이란 
내가 다른 사람들을 밟고 일어서고 
내가 하나님을 법도보다 위에 서서 
내 권력을 사용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서는 것, 
그게 인간다운 것인가요? 아닙니다.

참 인간다움이란 것은
하나님 아래 엎드려, 하나님 앞에 경배를 드리는 자리에 서는 것이에요. 

▲도대체 왜 인간은 하나님보다 위에 서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 
한 가지 이유를 말씀드리면 <탐심을 채우기 위해서> 입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이것도 갖지 마라, 저것도 손대지 마라' 
이렇게 하도 잔소리를 하시니까 
'내가 하나님 안에 들어가면 이걸 다 지켜야 되는 거에요. 
그게 싫은 거죠.' 

성경에 에베소서에도 나오고, 골로새서에서 나오는 
아주 특이한 표현이 있어요. 

골로새서 3장 5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여러분 큰소리로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심을 갖지 말라고 강조하기 위해서 과장법을 쓴 것일까? 
아니요. 성경은 진리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탐심은 우상숭배가 맞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 하시는가요?

십계명을 보시면, 전부 탐심에 관한 계명이란 걸 알 수 있어요. 
제6계명에서 10계명까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위증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이게 다 탐심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 것이 아닌 것에 손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타인의 생명에 대해서 
-타인의 성에 대해서 
-타인의 물질에 대해서 
-타인의 진실에 대해서 
-타인의 소유에 대해서 
네 것이 아니니까 손대지 말라는 거예요. 

▲근데 이거를 '어휴 그래도 내가 갖고 싶으면 갖는 거지' 
이렇게 탐욕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은, 즉 자기 탐욕을 채우려 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일단 멀리 해야 돼요. 

하나님을 딱 등지고, 귀신을 섬기든지, 우상을 섬기든지
점집을 들락거리든지... 내가 원하는 것은 다 가지려 하는 것입니다.
그게 다 탐욕이요, 내 욕심의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내 탐심을 채우기 위해서 그런 방법을 써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 그 탐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게 되어 있어요. 
그럼 어떻게 보이느냐?

하나님이, 내 욕심을 채워주는 심부름꾼 정도로 생각되는 겁니다. 
기도는, '왜 내가 이거 필요.한데 안 채워 주냐? 빨리 해결해 달라!' 
이런 기도가 다 가득한 거예요... 

▲왜 요즘 TV 프로그램에 무당들이 그렇게 많이 나오나요? 
왜 사람들이 역술가를 찾고, 귀신들을 찾나요? 

인간이 하나님(신) 아래 존재 하겠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신) 위에 올라서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신들보다 위에서 신들을 조종하려고 하는 것, 
이게 샤머니즘, 점보기, 무당 굿의 핵심이에요. 

그러니까 사업가 중에, 깡패들을 동원해서 

자기가 원하는 사업을 진행 하는 사람들 있는 것처럼 
신자들이, 영적인 깡패(무당)를 동원 하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원하는 거를, 무조건 이루도록 만드는 게.. 그게 샤머니즘이에요. 

그러니까 현대도시 문명이 아무리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고
질서정연해 보여도

이 탐욕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겉으로는 휴머니즘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지만 
영적으로는 샤머니즘 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탐욕을 채우려 하기 때문에 점술가, 무당을 동원합니다.)

▲뭐 제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많은 나라들, 문화들을 보면서 
희한한 현상을 봅니다. 

아시아에서 굉장히 지성적인 사회라고 자부하는 <일본>을 가 보세요. 
귀신들, 우상들을 얼마나 섬기는지 몰라요. (탐욕 때문입니다)

그렇게 지성적이고, 선진국 대열에 섰다는 일본인들이 
왜 귀신들을 찾냐고요? 

인간이 그렇게 잘 나고, 인간 이성으로 다 해결할 수 있는데 
왜 귀신을 찾냐고요? (자기 소원을 어떻게 해서든지 이루려는 탐욕 때문입니다)

유럽사회에서 지성사회를 자부하는 <프랑스>가 
한 때는 정말 하나님을 경외했던 나라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인본주의의 핵심 국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심령술사 들과 역술가 들이 가장 많은 동네가 됐어요. 
왜 그렇게 됐을까요? 

인간이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인간성은 회복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면 선악과는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최소한의 장치였던 거죠.

그런데 인간은 그 안전핀을 뽑고, 인간성을 폭파시키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동산을 파괴시켜버린 것이죠. 


◑4. 내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최근에 브레흐만 의 <휴먼카인드> 라는 책을 읽어보니까 
'인간의 선한 본성에 소망을 가져보자' .. 뭐 좋은 얘기입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보자면, 인간 안에 선한 본성, 악한 본성이 다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 21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내가 어떻게 해야 될까?' 

그 해답을 롬8장, 성령장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님을 잘 믿어야 돼요. 그냥 교회에 들락거리는 거 말고요. 
정말 예수님 잘 믿어야 되고, 성령 충만하게 살아야 됩니다. 

이 시대를 보면서, 악한 본성으로 무너져가는 이 사회, 
하나님의 형상들인 인간들이 망가져가는 이 시대, 
어떻게 하면 회복이 가능하겠는가요? 

사람들은 '인간성 회복, 휴머니즘'을 가장 많이 이야기합니다.
휴머니티를 회복하자는 거죠.

이것은 여러분, 뭐 사상을 내걸고, 정책을 내세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인간 안에 있는 디비니티, 즉 신성의 회복을 통해서 되어집니다. *divinity 

무슨 얘기냐면,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 되어야만 가능한 것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상이 어떻게 회복되는가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회복돼야 되고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회복돼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영성이 회복되어야, 인간성이 회복 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도 세상의 방식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당장의 순간적인 쾌락을 위해서 살아가지 마세요. 
세상 방식을 위해 살지 마세요. 

십자가 희생을 치르면서 살아가세요. 
그러므로 영혼을 구원하고, 가정을 구원하고, 일터를 구원하는 
감격적이고 감동적인 인생을 사세요. 

제가 한 7년 전에 주례했던 커플이 최근에 연락이 왔어요. 
신랑이 제게 연락을 했는데 
'목사님, 주례해 주실 때, 결혼은 자기 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게 하는 것이다..는 그 주례사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데 

이제 두 자녀를 키우다 보니까, 육아도 동일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내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너무 반갑고 고마운 거예요. 
여러분, 자기 욕구해결을 위해서 자식들에게 집착하고 조종하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오늘날 아합처럼 최소한의 선량함이 남아 있는 사람들도 
정말 극단적인 악인 이세벨 같은 사람들이 주도하면, 같이 휩쓸려가는 거예요.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그리고 이 나라에서 
누가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가요? 

악인이 주도하게 되면, 선량하던 사람들머저 다 흑화 되는 것입니다. 
이 나라도 돈의 논리, 탐욕의 논리로 계속해서 사회를 이끌어 가면 
국민들이 전부 흑화 되어 가게 돼 있어요. 

경제적으로 보자면,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를 이야기하지만 
결국에는 둘 다 돈의 논리 라는 것입니다.

-돈을 자기 혼자, 각 개인이 열심히 벌도록 해주는 것이냐? 
-아니면 부의 재분배가 중요한 것이냐? 

결국에는 돈이 이 사회의 근간이라고 보는 관점! 
그게 마치 모든 정치적인 해결책이 될 것 같은 생각들! 
이게 너무 극단으로 가면 
인간성을 회복할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어 가는 거예요. 

▲진정한 휴머니즘은, 참된 하나님 신앙의 회복에 있어요. 
인본주의(휴머니즘)를 아무리 외친들.. 무슨 소용이 있나요?

인권을 가장 많이 노래하는데, 
인간성은 가장 바닥에 떨어진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잖아요. 

여러분 오늘 날 인본주의는
갈수록 극단적이 되면서 
절대자인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절대 진리인 성경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걸 넘어서서 이제는, '규칙이나 규범 이런 거 우리한테 강요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극단적 자유'를 주장합니다. 

그럼, 인간이 정말 자유할 때만 가장 인간다운 것인가요? 

한 2주 전에 재미있는 뉴스를 봤어요. 
미국 텍사스의 한 도시에서 학부모 토론회를 열었는데 
주지사가 미국이 지금 뭐 백신 많이 맞긴 했지만 
여전히 코로나가 창궐해 있는 상태잖아요.

'학교에서 학생들이 마스크 착용 하는 거를 의무화를 중단하겠다'는 거예요.
'애들이 자기 원하는 대로 하는 거지!' 

주정부가 그 결정을 내려 놓고 학부모들에게 의견을 물었어요. 
그랬더니 한 아버지가 일어났는데, 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 아버지였어요.

그가 1분 30초의 발언시간을 받고서는
말을 하면서 갑자기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아 저는 국가나 이웃들이 저한테 뭐라고 이야기 하는 거 싫습니다. 
제 아내가 이래라 저래라 제게 잔소리 하는 것도 싫습니다. 
뭐 직장에서는 자켓을 꼭 입으라 넥타이를 꼭 매야 된다 이야기하지만.. 
저는 따르기 싫습니다. 

그러면서 자켓을 벗고, 넥타이를 풀고, 셔츠를 풀고.. 막 이러고 있는 거예요. 

저는 여기로 오면서, 교통법규를 하나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주차장에서 장애인 주차구역에 그냥 세웠습니다. 

이제 속옷차림이 된 이 아저씨가,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아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적어도 규칙을 지켜야 하는 것은 
지켜야만 하는 더 소중한 가치들이 우리에게는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미국이란 사회, 그 외 선진국가들이 
지금 극단적인 인본주의로 인해서 
이 팬데믹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잖아요.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규범을 파괴시키고 
인간성을 파괴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여러분, '극단적 자유'가 왜 인간성을 파괴 하나요? 
인간성의 핵심요소는, 
자유가 절반이라면, 절제가 나머지 절반이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자유를 줄 것이냐/ 절제 시킬 것이냐? 
선이냐/ 악이냐.. 

이 기준을 누가 정하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인본주의가 자기당착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은 
오늘날 극단적인 인본주의는, 상대주의를 넘어서 다원주의 까지 갔잖아요. 

그러니까 '너도 옳을 수 있고, 나도 옳을 수 있고.. 
이것도 맞을 수 있고, 저것도 맞을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된 거란 말이에요.

자 그러면, 언제 인간에게 선과 악을, 
자유와 절제를 줄 것이냐? 
이것을 결정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점이 될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철학적, 사상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절대 도덕률'을 세울 수 있는 존재는, 절대자 하나님밖에 없으신 거예요. 

그런데 휴머니즘은,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인간이 도덕성을 지킬 수 있는 근간 (절대자의 도덕률) 자체를 무너뜨린 거예요. 

그리고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겠다는데요,
이상적인 사회가 물질 사회로 가능한가요? 
인간이 인간성이 상실하고 있는데, 물질의 풍요 사회만으로
아름다운 사회가 되냐고요? 

그러니까 물질적으로 번영하고 있는데 
그런데 사람들의 내면세계의 인간관계, 정신세계는 

무나 불안하기 그지 없는 거예요. 

도덕성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인간사회에는 구원이 있어요. 

♣기도/ '하나님이 이 시대가 아합의 탐욕으로 가지 않게 해 주시고 
정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 나올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대가,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이세벨과 같이 불법과 편법과 탈법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시간에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에스더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오게 하여 주옵소서. 

멸망의 길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나봇의 포도원을 아합처럼

원하고 있지 않는가요?

 

우리는 자녀들에게, 아합 같은 인생이 되는 것을

성공이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요?

 

오 하나님, 치유하여 주옵소서!

우리 생각의 뿌리에, 원수가 뿌려놓은 거짓의 가라지들이 다 뽑히게 하여 주시고

거룩하고 정결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시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하나님, 이 나라의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을 각성시켜 주시옵소서.

여론의 정치, 세상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는 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지도자들,

하나님, 악인들이 세상을 사로잡지 못하게 하여 주소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각 분야에서 지도자가 되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주님이 인도하시고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 깨어 있게 하시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법도 아래 살게 하여 주셔서

우리 자녀들,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자녀들로 양육하게 하시고

거룩한 자녀, 거룩한 세대를 일으키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 우리의 관점과 신앙관이 변화되게 하시고

교회도 물량주의, 결과주의,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을 추구했던 것들을

회개하며 나아갑니다.

 

하나님, 본질적인 성경적 가치를 위하여 아낌없이 희생하고 헌신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게 하시고, 이 나라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겨주셔서

악으로 치닫지 않게 하시고, 아합처럼 망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와 민족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