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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6장 8~13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다

LNCK 2021. 10. 27. 17:18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다            사46:장 8~13,  엡3:11                       출처

 

이사야 46장에는 두 가지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강대국인 바벨론이 멸망할 것이며,

바벨론에 포로 된 유다 백성들이 반드시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1절을 보면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리웠으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은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벨과 느보는 바벨론의 우상, 즉 신의 이름입니다. 벨은 아버지요, 느보는 그의 아들입니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이 벨과 느보를 어깨에 메고 섬겼는데,

바벨론이 멸망하자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짐승의 어깨에 얹어버렸습니다.

 

이처럼 벨과 느보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부르짖어도 응답하지 못하며,

고난을 당해도 구하지 못하는 신들입니다.

 

바벨론이 망하는 순간에도 바벨론의 신들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고난을 당해도

우상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저울에 달아서 구입한

은과 금으로 만든 우상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우상은 비교대상조차도 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며, 택한 백성을 끝까지 책임지고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찌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사 46:3~4).’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안으시고, 품으시며, 구하여 내실 뿐만 아니라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도 그와 같이 행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상은 이런 약속을 말할 수 있는 입도 없고, 지성과 능력도 없지만

하나님은 유다 백성의 남은 자들(the remnant of Israel)을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돌보시고 책임지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운행하시고 사람을 구원하시되 계획 없이 움직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략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모략이라는 단어는 ‘중상모략’이라는 사자성어에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우리말로는 별로 어감이 좋지 않습니다만,

본래 이 말에는 조금도 나쁜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모략이란 하나님의 뜻(the will of God),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목적(the purpose of God),

그리고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계획(the plan of God or the decree of God)을 의미합니다.

 

 

◑1. 세 가지 종류의 ‘하나님의 뜻’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이 세 종류로 나타납니다.

 

1) 첫째로 하나님의 감정적인 뜻입니다. 다른 말로는 정서적인 뜻입니다.

감정적인 뜻이란 하나님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하시겠다는 의지를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에스겔 18:장 32절에는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찌니라’

 

에스겔서 33:장 11절에도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심판하고 벌하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인이 심판받고 죽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악인이 죽고 멸망당하는 것을 감정적으로 기뻐하지는 않으십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악인의 형벌을 간과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감정적인 뜻에는 감정과 의지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십시오.

전쟁이기 때문에 적에게 총을 겨누고 공격해야하지만,

동족이기 때문에 만약 북한 군인을 죽였다면 박수치면서 기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감정상으로는 왜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지 고뇌하면서 슬퍼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격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저들을 공격하지 않으면 내가 죽고 전쟁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감정과 의지가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정적인 뜻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지옥에 보내시지만,

그것을 기뻐하지는 않으십니다.

 

2) 둘째로 하나님의 명령적인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사람에게 명령으로 주시는 경우입니다.

 

명령이기 때문에 언제나 ‘하라’, 혹은 ‘하지 말라’와 같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증거 하지 말라.”

 

명령적인 하나님의 뜻은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몰라서 순종하지 못했다고 핑계 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면서도 어깁니다.

이것이 바로 죄요, 우리의 허물입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작정적 뜻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적인 뜻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반드시 이루실 하나님의 계획이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작정하셨기 때문에, 여기에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가 포함됩니다.

그래서 이를 다른 말로 ‘하나님의 예정’, 혹은 ‘하나님의 작정’이라고 합니다.

 

본문 10절에서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 작정적인 뜻을 의미합니다.

 

바벨론이 멸망하는 것과 바벨론에 포로 된 유다 백성 중 남은 자들이 구원받는 것은

천지가 개벽하고 청천벽력이 내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일들입니다.

 

11절 후반에서는 하나님의 작정적인 뜻에 대한 의지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를 신약성경에서 적용해본다면, 이 세상의 나라들은 모두 멸망하겠지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구원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1)

 

 

◑2. 모략을 이루시는 도구

 

본문 11절에는 하나님의 모략을 이룰 하나님의 도구가 등장합니다.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모략을 이루시는데,

그 모략을 이루시기 위해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11절에 등장한 ‘동방에서 부를 독수리’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의미합니다.

고레스 왕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권세와 능력과 재물과 힘을 받아서

바벨론을 멸망시킵니다.

 

그런 후에 유다 백성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는데

이것이 바로 주전 539년의 ‘고레스 칙령’입니다.

 

그런데 고레스는 자신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가 되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된 것입니다.

고레스는 비록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략을 이루시기 위해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이처럼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고레스 왕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특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고레스보다도 더 큰 특권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가 받은 특권은 고레스 왕이 받은 특권보다도 몇 만 배는 더 큰 특권입니다.

고레스는 구원받지 못했지만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고레스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시는지 알지 못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로 살아가고 있음을 분명히 알며,

고레스는 현세의 복만을 누렸지만 우리는 영생과 내세의 복까지 함께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사소한 욕심을 던져버리고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이루는 도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주2)

 

 

◑3. 이 진리가 주는 경고

 

하나님의 모략이 영영히 선다는 진리는, 패역한 사람들에게 큰 경고가 됩니다.

본문 12절은 경고의 말씀입니다.

‘마음이 완악하여 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나를 들으라.’

 

마음이 완악한 사람은 의에서 멀리 떠난 사람이며,

하나님의 모략과 뜻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8절을 보면 ‘너희 패역한 자들아 이 일을 기억하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경고가 임합니다.

 

이사야 45:장 9절을 보면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찐대

화 있을찐저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리켜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뇨’

 

하나님의 모략에 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화 있을진저!”라고 선고됩니다.

이들에게는 반드시 화가 임하고 실패하는 인생이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모략에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들은

비록 지금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자신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8:장 6~8절을 보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육신이란

하나님을 대적하는 패역한 마음, 즉 죄성을 의미합니다.

 

육신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육신이 하는 생각은 모두 멸망할 생각이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들이 듣게 될 다섯 글자의 말씀은 오직 “화 있을진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인생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인생은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실패이기 때문입니다.

살아도 비참하고 죽으면 더욱 비참합니다. 이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이 말씀은 농담을 섞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피상적인 믿음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영혼의 내적인 변화, 성령님에 의한 중생의 은혜를 반드시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뿌리부터 변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에 의해 거듭난 사람은 급진적인 변화 radical change를 경험합니다.

 

이 radical(급진적인)이란 영어단어는 ‘뿌리’를 의미하는 라틴어 radix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뿌리까지 변하는 것이 급진적인 변화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인생은 심령이 뿌리부터 변화되는 내적인 변화입니다.

이것은 내 뜻을 이루면서 사는 인생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인생으로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혹시라도 이 자리에 교회에 나오긴 하지만

아직 뿌리부터 변화되는 체험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이 시간에 뿌리부터 변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은혜를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4. 이 진리가 주는 격려

 

12절이 경고의 말씀이라면,

13절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내가 나의 의를 가깝게 할것인즉 상거가 멀지 아니하니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 :13

 

하나님의 모략이 영영히 설 것이라는 진리는 성도들에게 큰 격려가 됩니다.

 

※개역은 '나의 모략'으로, 개역개정은 '나의 뜻'으로 번역했습니다.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10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10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부르시고,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원은 물론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되는 정치적인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죄와 멸망으로부터 구원받는 영적인 구원의 그림자이기도 합니다.

 

마치는 말

 

하나님의 모략은 신약성경 중에서 특별히 에베소서에 많이 등장합니다.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엡 3:11).’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모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목적을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실패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택한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 사함을 주시고,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영생을 누리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사단이 이 목적에 대적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천지가 개벽을 하고, 핵전쟁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들은 결국 자신들만 망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1장 9절은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때 전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정하시고,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략을 가지고 역사를 운행하시며 구원을 행하십니다.

 

영원히 서 있는 하나님의 이 모략은 우리에게 명령적인 뜻으로 나타납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 6:40).’

 

기독교의 목적은 예수님을 믿고 부자가 되거나, 병에서 낫거나, 사업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으며, 병이 나을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기독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택한 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믿어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변화된 천국 삶을 이 땅에서부터 누리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은 자들은 비록 한 번은 육신의 죽음을 경험하겠지만

“마지막 날에 내가 그들을 다시 살리리라”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부활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영생과 부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들의 상황은 심각합니다.

그들은 천국에서 영생하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서 영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타는 지옥불에서 고통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원한 모략의 명령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보고 믿으십시오.

육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죄 값을 갚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믿으십시오.

 

오늘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지만, 나의 믿음이 피상적이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미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분들은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이루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보람찬 인생, 성공하는 인생의 비결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모략은 영영히 설 것이며, 정녕 이루어질 것이며,

결코 실패하지 않는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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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내용이 길어서 각주로 돌립니다.

미국이 잘 살고 번영하는 것 같아도, 중국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일본의 경제력이 강할지라도 언젠가는 모두 멸망할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의 나라는 모두 망할 나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망하지 않는 한 나라를 세우기로 계획하셨습니다.

신·구약성경을 통틀어서 제일 중요한 한 단어를 고른다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하고 부패한 인류 가운데서 택한 백성을 부르시고,

그 백성들을 죄악에서 건져내고,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처럼 조그맣게 시작되지만,

점점 성장하여 완성된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바로 이 나라에서 죽지도, 병들지도, 실패하지도,

멸망하지도 않고 영원토록 살 것입니다.

이것이 신·구약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

 

여러분은 영생하기를 원하십니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를 원하십니까?

또 다시 살아나되 영원토록 슬픔과 고통이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십니까?

물론 원하실 것이고, 저도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그것은 헛된 꿈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영원한 모략을 세우시고

그것을 이루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나라를 상속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살아있는 소망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기의 뜻, 자기의 목적, 자기의 기뻐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이기적인 목적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기뻐하는 모략을 이루기 원하십니다.

 

따라서 이것이 내 뜻인지, 혹은 하나님 뜻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의 목적만을 가지고 기뻐하는

사람은 나중에 허무한 인생을 살았다고 후회할 것입니다.

 

돈 많이 벌어보십시오. 부지런히 출세해서 권력을 잡아보십시오.

그것이 대단한 것입니까? 자신의 뜻과 목적만을 이루고 산 사람들에게

무엇이 남았는지 살펴보십시오.

나중에 자신이 속은 인생을 살았다는 사실만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았던 바울은

“내 인생이 마치는 날, 나는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씌워주실 의의 면류관을 기다리노라”는 소망을 품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나만의 유익을 위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원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을 분별하여

그 목적을 자기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의 인생에는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모략을 틀림없이 이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략은 영원히 설 것입니다.

실패하는 인생이 아니라 성공하는 인생을 누리고 싶으시다면

하나님의 모략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여

그 모략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2)

어떤 분들은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만 산다면

내 인생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살 때에 내 자신의 인생도 살아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책임지시고

행복과 번영과 권세와 능력을 주어서 살게 하십니다.

돈과 권세가 우리를 따라오고 행복이 찾아오는 역사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성공하는 인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