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CK
2021. 11. 6. 18:17
◈풍성한 구원으로의 초청 이사야55장 여러 설교 정리
54: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셨다면,
55:장은 이스라엘이 돌아올 것을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즉, 54:장이 미래에 대한 그림이라면,
55:장은 현재 (모든 시대)에 대한 그림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인 55:장은 ‘초청의 장’이라고 불립니다.
그 중에서도 1~5절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시는 풍성한 구원에
값없이 초대하고 있습니다.
▲1절,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복음은 큰 저수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 저수지는 상상할 수 없이 커서 이 세상의 모든 바닷물을 모두 담은 것보다 더 큽니다.
그리고 이 저수지는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이 저수지에서 물이 흘러내리는데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와
이구아수 폭포처럼 물이 흘러내립니다.
이 물은 한 번도 같은 물이 흘러내린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새 물이 흐릅니다.
어마어마한 새로운 물이 계속 쏟아집니다.
이 저수지에 담겨져 있는 복음의 물은 두 가지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십자가의 보혈이요, 다른 하나는 부활의 생명입니다.
이것이 섞여있습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이 물로 목욕하는 자마다,
이 물에 접촉하는 자마다 보혈과 생명의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에스겔 47:장을 보면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물이 처음에는 땅을 촉촉하게 적셨는데,
조금 지나니 물이 발목, 무릎, 허리까지 차오릅니다.
점점 차올라 도저히 그냥 건널 수 없는 강이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축복은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물에 다 빠지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다 물에 풍덩 빠져들어 헤엄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축복이 그런 것입니다.
‘오호라’
본절은, 감탄사 ‘호’(오호라)로 시작하는데,
본 감탄사는 큰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중대 사안이 뒤에 따를 경우 사용됩니다.
본서가 큰 관심 집중을 요구하는 감탄사 ‘호’를 사용한 목적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특권이었던 구원이 이방인에게도,
그것도 값없이 확대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그 같은 결과는, 53장에 자세히 언급된 메시야의 구속 사역에 근거를 둡니다.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빈부귀천 가릴 것 없는, 특히 이방인까지도 포함한바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또한 ‘목마른’은 그 무엇을 강하게 소원하는,
특히 영적 구원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축복을 선포하셨을 때
바로 본 구절을 염두에 두셨을 것입니다. (마5:6)
‘물로 나아오라’
이미 본서는 메시야 시대 이후 존재하게 될 축복, 곧 영생을 암시함에 있어서
시내, 물줄기, 비와 같은 물을 소재로 한 이미지를 사용한 바 있습니다. (35:6, 43:20, 44:3).
‘포도주와 젖’
생명을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물뿐 아니라
활기와 영양을 공급하는 포도주와 우유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구원의 복음이 주는 축복의 다양함과 풍성함을 시사합니다. (아5:1, 요7:37)
오늘도 여러분의 발로 이 교회에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이렇게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요6:65)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오라” 할 때 열심히 나와서, 하나님의 “카이로스”(하나님의 때)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체험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여기서 '값없이'는, 너무 싸다는 뜻이 아니라, 반대로 '너무 비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형편으로 살 능력이 도저히 안 되니까요!
그런데 오늘날 안타까운 현실은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에
예수의 십자가 피가 증거되지 않고 있는 교회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입니다. 주1)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그렇게 하나님께로 나아오라고 목이 터져라고 호소했지만,
그럼에도 유다 백성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2절,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마치 엄마가 자녀가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 최고의 재료로 만든 음식,
자녀가 자라는데 필요한 모든 영양소가 다 들어 있는 음식을 준비해 놓고 있는데,
물론 무료입니다.
자녀가 그것을 먹으러 집으로 오직 않고, 학교 앞에서 불량식품을 사 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 어떠하겠습니다.
그것을 수십, 수백 배를 확대하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양식 아닌 ... 수고하느냐’
문자적으로는, 인간은 행복을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실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빵은 생명을 지탱케 하는 수단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빵을 얻기 위해 돈을 버는데,
어리석은 인간은 빵 아닌 것을 사기 위해, 헛되이 돈을 낭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 구절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육신을 살찌우는 빵이 아니라, 영혼을 살찌우는 빵입니다.
1절에서 언급되었듯이, 영혼을 살찌우는 빵은
인간의 노력으로 번 돈을 지불하여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그것을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 사람은 결코 그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대안을 하반절이 제시합니다. ↙
‘듣고 들을지어다’
히브리어로 ‘듣는다’는 뜻은, 단순히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철저히 순종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십자가의 피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로 내 죄가 사함 받고
날마다 악의 세력들을 싸우는 데는, 십자가의 피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젖은 초보적인 신앙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젖을 먹는 어린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듯이
우리의 영적인 수준도 매일 매일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것에만 만족하고
더 이상 영적인 수준이 성장되지 아니하면
그 신앙은 반드시 타락되게 되어져 있습니다.
성장되지 아니한 것은 썩어지고 죽는다는 것이, 세상의 모든 것의 원리입니다.
아무리 깨끗한 물도 일주일 이상 고여 있으면 썩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나무라 할지라도, 성장이 멈추어버린 나무는 죽은 나무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 가정의 기쁨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정상적인 아이로 성장하지 못하면
부모의 마음은 “차라리 태어나지나 말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피로 구원받으셨습니까? 구원받으셨다면
이제 더욱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청종하고 들어서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한(들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약속하십니다.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먹는다는 것은, 다름 아닌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깨닫고,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육의 생명이 아닌, 영의 생명을 얻게 됨을 의미합니다.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여기 ‘기름진 것'이란 성경에서 최고의 음식을 암시할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창27:28, 시65:11).
▲3절,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너희 영혼이 살리라'
인생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목이 마른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있으나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허무합니다. 삶의 의미가 없습니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가면 점점 더 이것을 심각하게 느낍니다.
돈을 벌어 봐도, 명예를 가져 봐도, 결혼을 해 봐도 재미가 없습니다.
그것이 해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해답입니다.
저는 여러분 인생에 목마름이 오늘 당장 멈추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목마른 인생들아 나를 마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칠 것이라고 하십니다.(요 7:38)
인간의 육체가 얼마나 더럽습니까?
그런데 거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친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입술이 더럽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입술에서 아름다운 찬양과 기도가 나올 것입니다.
저주의 말, 책망의 혀가 변하여 찬양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다윗에게 허락한 은혜’라고 하는 것은 사무엘하 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네 자손이 영원히 왕위에 있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조선왕조가 순종황제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듯이,
남유다는 시드기야가 두 눈이 뽑히고, 쇠사슬에게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
거기서 죽음을 맞이함으로 표면적인 다윗왕조는 끝이 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어주신 언약이 영원히 유효한 것은,
그 언약이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분,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어짐으로
영원한 언약이 되었고,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은혜가 되었기 때문이니다.
▲4절,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그 메시야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속사역을 완성하고
부활하심으로써 온 인류에게 구원의 소망을 제시하실 분이십니다.
구약 성경 자체도 이 사실을 증거합니다. (렘30:9, 겔34:23, 24, 37:24, 25, 호3:5)
‘증인’
공적으로 충고하거나 증인들 앞에서 변론하는 자
혹은 증인, 왕, 방백, 망령자, 율법 수여자 등을 뜻하기도 합니다.(잠19:5~9)
메시야에게 적용되었으니, 하나님의 법, 계획 등을 인간에게 가르치고 전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명령자’
원문 직역은 ‘율법 수여자‘입니다.
메시야는 율법의 창안자이시기도 합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곧 절대적 규범이요, 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절,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네가’
본 2인칭 주어를 메시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지만,
그보다는 영적 이스라엘로 파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다윗 통치하에서 이스라엘의 영토는 역사상 가장 넓게 확장되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도 다윗은 왕으로 오실 메시야의 예표가 됩니다.
본문에서는 메시야에 의해 통치될 영적 이스라엘의 영역은
다윗 왕국조차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계적 차원에 이를 것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6절,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이것은, 지금은 여호와를 만날 수 있을 만한 때임을 암시하는 반면,
때가 오면 그분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수 없다는 사실을 동시에 공고합니다.
‘부르라’
‘하나님의 자비에 너 자신 전체를 던지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신약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못박고 있습니다.(롬10:13)
본절은 일종의 동의어 반복이며, (찾으라 - 부르라)
하반절이 상반절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강한 표현입니다.
5절까지는, <말씀>에 관한 교훈이라면,
6절에서는, <기도>에 관한 교훈입니다.
솔로몬 성전에 두 기둥이 있었는데 “야긴과 보아스”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성전에 두 기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말씀과 기도의 기둥입니다.
오늘날 설교 못하는 목사들이 없습니다. 다 잘합니다.
그러나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곧 기도입니다.
우리 교회는, 주일오후예배와 수요예배 후에도, 기도 시간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금요 기도회는 글자 그대로 기도회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왜 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 답을 본문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 기도할 때 어떤 기도부터 하라고 하였습니까? 7절을 보세요.
회개 기도부터 하라고 하였습니다.
▲7절,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회개의 진행은 소극적인 변화인 ‘그의 행실을 버림으로’ 시작되어
적극적인 회개인 ‘여호와께로 돌아가’,
‘여호와를 그의 하나님으로 섬기는’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문제가 급한 것이 아니라,
나의 죄에 대한 회개 기도가 먼저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배 때에, 왜 철저하게 회개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까?
(사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우리가 말씀 듣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날마다 나의 죄를 고백하는 시간이
습관화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회개 기도를 드린 다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
▲8절, 이는(왜냐하면)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본절은 여호와의 생각과 길이 우리 인간의 그것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사실의 의미는 바로 앞절의 ‘용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원문에는 ‘이유’를 뜻하는 접속사 ‘키’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경에 '이는'이라고 했는데, '왜냐하면' 이란 뜻입니다.
말하자면 본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7절과 8절을 연속해서 읽어 보십시오.
‘너희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풍성히 용서하시는 사실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낼 필요가 없다.
악인의 행실과 불의한 자의 생각은,
용서받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방식은,
용서받을 악인이나 불의한 자의 상태나 정도에 따라 좌우되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25:11, 롬5:19)
기도를 왜 해야 한다고요? 첫째로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아서 내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기도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잘못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의 대부분 기도는 문제 해결 받고 복 받기 위해 기도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예수님이 가르쳐준 주기도문을 보더라도 잘못된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7장에서 기도에 대한 중요한 말씀을 하셨는데
그 주기도의 결론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물어보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으로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말씀이 내 안에 계실 그 때가, 하나님을 찾는 시간이고,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생각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8절부터 우리가 그러한 기도를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3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9절,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본절은 앞절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 분명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의 간격만큼이나, 하나님과 인간의 계획의 차이가 크다는 본 구절은
다음과 같은 구절들에서 뒷받침됩니다.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시103:11),
"대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시57:10),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시89:2).
이상의 구절들이 취하고 있는 사상은 동일한데,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인간의 눈에 용서받을 수 없어 보이는 자가, 용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관대로 행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8~9절)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한 자라면 하나님의 뜻에도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그 길이 비록 험난한 길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은, 무조건 다 좋은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쁜 것이 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은 나쁜 것도 주십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지금 나쁜 것 같지만
그것은 엄청난 축복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됩니다.
만약에 제가 사업을 해서 성공하고 폐병에 걸리지 아니했다면
지금 제가 주의 종이 되었겠습니까? 당시에는 그러한 일들이 뼈아프게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은 얼마나 큰 축복을 받은 자입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생활하게 한 것은
그들을 괴롭히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모세도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을 치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지도자로 쓰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10절,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저자는 6~9절에 언급한 내용에 확실성을 더하기 위하여 한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그 비유의 내용은 척박한 토지에 비와 눈이 내려 옥토로 만들면
그 옥토는 열매를 내고, 추수꾼은 파종하여 양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본절을 영적으로 고갈되어버린 인간의 마음으로,
비와 눈을 메시야 통치 시대 아래 부어질 성령으로
그리고 열매를 의로 각각 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본절은 영적으로 고갈 상태에 있는 인간의 마음이
이제 메시야 시대가 되면 성령을 받아 회개하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본 비유의 경우, 그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소재거리 하나하나의 의미보다는
그 내용 전체가 담고 있는 주제가 무엇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이 비유가 드러내는 주제는,
하나님은 한번 발설한 말씀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성취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한번 내려진 비나 눈은 반드시 그 열매를 낳는다는
알기 쉬운 자연의 이치를 통해 저자는 설명합니다.
이 주제는 다음절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11절,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내 입에서 나가는 말’
구체적으로 이 말씀은 앞문맥(7절)에 언급된 ‘용서’입니다.
사막에 내린 비와 눈은 금방 흔적도 찾아보기 힘드나, 결국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듯이,
하나님이 한번 약속하신 ‘용서’는 결국 성취되고 말 것입니다.
이제 그 ‘용서’ 사역은,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유대인과, 더 나아가 유대인과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돌아올 이방인의 행렬을 통해, 그 결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10~11절)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만을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자연의 비유를 하시면서 반드시 헛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형통케 하여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온 그대로 가는 법이 없습니다.
비와 눈이 토지를 적시어 싹이나 열매를 맺게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말씀이 특별한 사명을 받은 사신이 되어
사명을 완수하게 할 것입니다.
▲12절,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13절,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성령이 임하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산과 언덕이 환호성을 치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나갈 때 비참하고 괴롭고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것만 상상하지 마십시오.
산이 환호성을 치고 나무가 손뼉을 치는 놀라운 축복의 세계를
마음 속에 그리면서 사십시오.
성령님이 임하면 가시나무가 다 뽑아지고 거기에 잣나무가 심겨지고
내인생의 찔레 나무가 다 사라지고 꽃 피는 화석류가 생길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질 것입니다.
저는 목사가 된 지도 오래되고, 목회한 지도 오래됐습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성령님입니다. 처음에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습니다.
그 뒤에 계속 예수를 잘 믿을 수 있는 비결은 성령충만입니다.
내 힘으로는 믿어지지 않고 내 힘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성령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성령세례를 받으시기 원합니다.
성령의 생명수 물을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입술은 성령충만한 입술, 여러분의 눈은 삐치는 눈이 아니라
성령충만한 부드럽고 인자하고 긍휼이 넘치는 눈물이 있는 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손은 남을 때리는 손이 아니라
보호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손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며 ...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이것은 1차적으로 세계 각처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의 인도를 받아 본토로 귀환할 것을 가리키고,
더 나아가서는 이방인을 포함한 택함받은 모든 백성들이
참 지도자되신 메시야의 인도를 받아
영적 본토인 교회로 이끌림을 받을 것을 암시합니다.
"야곱아 내가 정녕히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정녕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 양떼 같게 하며 초장의 양떼 같게 하리니
그들의 인수(人數)가 많으므로 소리가 크게 들릴 것이며
길을 여는 자가 그들의 앞서 올라가고 그들은 달려서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좇아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행하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미 2:12, 13)
‘산들과 ... 손뼉을 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기쁨에 대해 자연이 동일한 기쁨의 환영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자연이 이 같은 반응을 나타내는 까닭은, 인간의 죄가 제거될 때
갱신된 인간 세계와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자연계도 ‘허무’에서 구원받고 새롭게 갱신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98:8, 롬8:19~22)
‘잣나무’
경건한 백성들을 가리킵니다(60:13).
‘가시나무’
사악한 자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삼하23:6, 미7:4)
‘화석류’
팔레스틴 지역, 특히 갈릴리 호수 부근과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근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록수로서, 희거나 붉은 꽃은 향기가 짙습니다.
느헤미야는 초막절 축제를 위해 필요한 초막을 짓는데, 이 나무를 사용했습니다. (느 8:15)
‘질려’
황량한 비경작 지대의 상징으로 쓰였습니다.(5:6)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이것’이란 자연계의 갱신뿐 아니라
본장에서 다루고 있는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복음에로의 초대, 용서 등을 가리킵니다.
바로 그 같은 결과들은 여호와의 선하심과 영광을 드러내는 기념비 같이 될 것입니다.
12~13절은, 깨닫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나 광야에서나 바벨론 포로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 느헤미야, 에스라 같은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살았기 때문에
놀라운 이상을 보며 살았습니다.
12~13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살아가는 자에게
다음과 같은 7가지의 약속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 “노래를 발하고”
“손뼉을 칠 것이며” “아름답게 태어날 것이며”
“여호와의 명예” “영영한 표징”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의 완전하신 축복의 약속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사람이 보기에는 좋지 못할지라도,
그 길이 하나님의 완전하신 길이라면, 우리는 가야할 것입니다.
때로는 사람이 보기에 바른 길이 아주 멸망의 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잠16:25)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여러분! 날마다 시간마다 예수를 부르며, 찾으며,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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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2010년 4월에 미국의 유명한 레너드 스윗 목사님이 다녀갔습니다.
장충체육관에서 4천명이 모인 가운데 “예수와 성경” 에 대해서 세미나를 하셨는데
이분은 미국에서 어느 정도 유명한가 하면 미국의 “처치 리포트” 설문 조사에서
미국 대통령이 11위이고, 릭 워렌 목사가 16위였는데 이분은 8위 였을 정도로
미국에서 영향력이 큰 목사입니다.
미국에서는 “레너드 스윗 목사님의 책을 읽지 않는 교회 지도자는 상상할 수 없다”
라고 할 정도입니다. 저도 최근에 이 분 책을 8권 구입했습니다.
레너드 스윗 목사는 오늘날 교회가 “예수 결핍 장애(JDD : Jesus Deficit Disorder)를
겪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교에 예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ADHD(집중력 결핍 장애)에 빗대어
여러분! 우리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피의 말씀이 없다면
다른 교회로 떠나가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십자가의 피의 능력을 받아서
일주일 동안도 세상 속에서 힘차게 살아가야 합니다.
내 힘의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내 지식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십자가의 피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 어떤 어둠의 세력도 예수 십자가의 피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질 것입니다.
교회에 나올 때마다 십자가 예수의 피의 말씀을 듣다 보면
내 피가 A형, B형, O형이라 할지라도 예수의 피로 변화 되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목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