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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7장 15~26 인생의 바다에서 폭풍을 만났을 때

LNCK 2021. 11. 9. 11:09


https://www.youtube.com/watch?v=GzGZ-awXZr8

◈인생의 바다에서 폭풍을 만났을 때     행27:15~26    2020.03.22.출처

오늘은 사도 바울이 로마로 가는 항해중에서 풍랑을 만났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행27:15~17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뒤 계속해서 재판을 받다가 
마침내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상소를 했기 때문에 
지금 로마 백부장 율리오의 인도 하에 
로마로 들어가는 배를 타게 됐습니다. 

그 배의 이름은 알렉산드리아 호 였습니다. 
배의 이름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집트 북부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출발해서 로마까지 가는 배였습니다. 

이 배는 곡물 운반선이었는데요. 
당시 풍부한 곡창지대였던 이집트에서 곡물을 잔뜩 싣고 
제국의 심장부인 로마까지 가는 선박이었습니다.

본문 앞부분을 보면, 8절에, 그들이 크레타 섬의 미항(아름다운 항구)에
도착했다고 말합니다. 

'미항'이라는 표현이 재미있는 것은 반어법입니다.  *Fair Havens
사실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고 굉장히 초라한 크레타섬 남쪽에 있는 작은 항구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기를 좀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바울은 '지금 항해 시기가 아니니까 위험하다. 가지 말자'고 권고했지만 
백부장과 선장이 고집을 부려서 
'거기서 65키로 정도 떨어져 있는 뵈닉스 Phoenix 에 가서 겨울을 보내자'

그래서 무리한 출항을 했다가 풍랑을 만나 낭패를 겪게 되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14절에 보면 '유라굴로 광풍을 만났다'고 나오는데요.
'유라굴로' 라는단어 자체는 '북동풍' 이라는 뜻입니다. 

개역성경에서는 '광풍' 이라고 표현했는데, 이게 왜 강풍인가 하면,
크레타섬 중앙에 아이다 라는 산맥이 있습니다. 
최고봉이 2,456 미터가 될 정도로 굉장히 높은 봉우리입니다. 

그래서 이 봉우리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신인 제우스 신의 탄생지로
여겨질 정도로 굉장히 높은 산이었습니다. 

그 산맥으로 인하여 두 개의 기류가 충돌을 해서 
갑자기 강력한 바람이 형성되면 
그 바람에 그 주위를 지나던 배들이 휩쓸리면 
난파, 좌초, 침몰되는 경우들이 허다하게 많이 있었습니다. 

본문에 15절을 보면 '배가 폭풍에 휘말려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해상이든, 지상이든 아무리 어려운 상황 일지라도 
현재의 좌표를 찍을 수 있고, 방향을 잡을 수만 있다면 
헤쳐나올 방법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은 방향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 (코로나로)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위기의 상황도 똑같은 상황입니다. 
방향을 잡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게 어디로 방향이 가게 될지...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자 이렇게 인생의 바다에서 폭풍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1. 첫 번째는 매순간 <적극적인 수동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폭풍이 부는 대로 일단 수동적으로 따라가야 됩니다

폭풍이 이렇게 강력한데, 내가 벗어나려 하게 되고,

반대 방향으로 배를 틀려고 했다가는 
배가 부서지거나, 전복해서 침몰하게 되죠.

그렇다고 해서 아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절망해 버리면 
배가 좌초되거나 침몰하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됩니다. 

지금은 폭풍의 힘이 너무나 강력하게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갑 - 을 관계가 된 거예요. 
이때는 그냥 따라가야 됩니다. 

하지만 시시각각 예민하게 이 상황을 주시하고 판단해야 되고 
또 순간순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되는 것이죠. 

△사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한 가지 경우가 
삶의 주도권을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내 인생인데,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 
그래서 너무나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인데 
그 상황에 계속 질질 흘려 가야 된다거나 

어떤 사람이 부당한 요구를 하는 데도 
거기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 참 인생이 힘들어집니다. 

마치 축구선수가 90분 경기 내내 상대팀에게 골만 먹고 
수비적으로 경기를 질질 끌려 가잖아요. 
90분 내내 그 선수의 마음은 얼마나 참담한지 모릅니다. 

근데 지금 우리는 굉장히 오랜 시간을 

이 코로나 상황에 끌려가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 또 어려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최악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죠. 

당시 바울이 타고 있던 배는 이렇게 밀려 가다가는 
아프리카 북쪽 해안에 형성되어있는 모래톱이 있는데 
당시에 '스르디스' 라는 모래톱에 처박히는 배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거죠. 

'최악의 상황'이라는 표현 자체를, 사람들은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 말을 하는 것 자체를, 이런 상황에서는 터부시 합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빠르게 대처를 해야만 
이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죠.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들이 '보호자 동의서'도 받고요. 
수술을 받는 환자에게도,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 미리 얘기를 해 주고 
각오를 하고 수술실에 들어오게 만듭니다. 

△제가 감명깊게 봤던 영화 중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에이비에이터' 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상당히 훌륭한 작품이 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미국에서 TWA 라는 아주 작은 항공사를 인수해서 세계적인 항공사로 키워낸 
굴지의 사업가, 억만장자였던 하워드 휴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는 참 안타깝게도 어렸을 때부터 자기 어머니가 
굉장히 질병에 대한, 감염에 대한 강박증이 있었어요.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아들인 그의 마음 가운데 남아서 
그가 세균에 대한 공포증에 시달리게 되죠.

많은 성공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균 감염에 대한 강박증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의 말년에는 측근들과 전혀 만나지도 못하고 
호텔에 칩거하면서, (방역용) 유리 진공관 안에서 살면서

자기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물론 우리가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양극단을 피해야 됩니다. 

'뭐 코로나 쯤이야! 나는 젊으니까 감염될 확률이 적다'
적은 것이지, 없는 게 아닙니다. 

'나는 믿음이 있으니까 병에 안 걸릴 것이다'
'나는 이 상황이 너무 답답해서 나는 그냥 맘 편하게 지내겠다'
이렇게 지나친 낙관론을 펴는 것도 문제가 있고요. 

그러나 정반대로 하워드 휴즈 처럼, 병균과 바이러스에 대해 
과도한 불안과 두려움에 빠지는 것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각 가정의 아빠 엄마 부모에게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평강이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부모가 마음에 평강이 있지 않으면 
아이에게 두려움이 전염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워드 휴즈가 겪었던 케이스인 것이죠.

우리가 이 상황에 진지하게 대처하면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긍정적인 믿음의 관점을 견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풍랑을 만나면, 
인생의 무거운 짐들을 내버리십시오.

본문 행27:18~20절을 보면, 
폭풍우가 이틀째 삼일째 계속 되니까 
선원들이 자기들 손으로 배 위에 있는 물건들을 포기하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는 짐을 버렸다고 성경에 나와 있는데요. 
배에 실려 있던 개인 짐이나, 화물, 

우리가 여행 갈 때 캐리어를 끌고 왔는데, 상상하자면 
수 백 개의 캐리어 들을 바다에 다 내다버린 격입니다.

그런데 사흘 째 되던 날에도 폭풍우가 멈추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배의 장비들까지 자기들 손으로 다 버립니다. 

그리고 이 배는 곡물 운반선이었는데 
이 배가 폭풍에서 4~5일째 계속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38절쯤 가면, 곡물까지 바다에 다 쏟아 부었어요. 
곡물을 로마에 운송을 해야만 돈을 받는 거잖아요. 

말하자면 이 사람들 가슴이 정말 찢어질듯 했을 것입니다. 
돈다발을 그냥 바다에 뿌리는 것 같은 그런 상황이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뭐가 가장 중요한 상황인가요?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생명이 소중한 상황입니다. 

그것을 빨리 판단하고, 빨리 결정을 해야 되는 순간이었어요. 
짐이며, 장비들이며, 곡물이며.. 이게 소중하다고 해서 
이거 다 움켜쥐고 있다가 

이 풍랑 가운데 배가 무거워서 가라앉기라도 하면, 그래서 자기 목숨을 잃으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인생의 바다에서 폭풍을 만났을 때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를 얻는다면 
비본질을 빨리 포기하고, 본질을 선택 하셔야 됩니다. 

고난이 때로 우리에게 감사의 제목이 되는 것은 
인생의 진짜 본질이 무엇이냐? 
진짜 핵심이 무엇이냐를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본문 20절 말씀을 한번 같이 읽어 보기 원합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구조될 소망을 포기했습니다)

여러 날 동안 폭풍이 계속 몰아치고, 해와 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폭풍으로 항로를 이탈한 배는, (GPS가 없던 과거에는) 
해와 별이 보여야,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항로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폭풍으로 해와 별이 보이지 않으면, 항로를 못 잡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엎친데 덮친 격입니다.

지금 코로나 사태가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 가운데 빠졌기 때문에 
이게 어떤 상황이 그 다음에 전개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전히 풍랑 한가운데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이 사람들이 구조될 모든 소망을 포기했다' :20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닌데, '이젠 다 끝났어!' 라고 포기선언을 해 버린 것이죠.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요, 상황이 종료되기도 전에 
자기 마음에 미리 종료를 해 버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절망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그렇게 소망이 완전히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아직 배가 가라앉지 않았어요. 아직 배가 좌초되지 않았어요. 
물론 여전히 풍랑가운데 있기는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아무리 밑바닥으로 떨어지더라도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면, 바닥을 치고 다시 반등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그런 반등할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물건이 바닥에 떨어졌다가 다시 반등해서 올라오려면 
상반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됩니다. 

1) 첫 번째는 그 떨어지는 물체가 자체적인 탄력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2) 두 번째는 그 떨어지는 바닥이 견고한 토대여야만 합니다.

물체가 탄력이 있어도, 만약 바닥이 진흙탕 이면, 반등 못 하는 거죠. 
또한 바닥이 견고한 토대일지라도, 떨어지는 물체가 탄력이 없다면
반등하지 못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모든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마음의 탄력, 마음의 회복력을 주셨다는 거예요.  *1)조건 충족

대자연을 봐도, 숲과 강과 바다와 공기를 봐도
자연적인 복원력을 허락하셨어요.

오염이나 훼손이 되어도, 스스로 회복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반등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상처가 있고, 슬픔도 있고, 

실패와 절망을 경험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창조해 주셨습니다.

잠언 4장 23절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아멘! 

그러므로 우리가 처해있는 이 상황에서 
건강도 잘 지키셔야 되고, 위생도 잘 지키셔야 되지만 
우리의 심령을 그 무엇보다도 잘 지켜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광풍에 몰려가고, 시야는 캄캄하고.. 
우리 생활을 놓고 보면, 자녀들이 학교도 갈 수 없고 
또 어른들은 사업을 제대로 할 수도 없는 이런 상황에서 

'마음의 복원력'만 가지고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견고한 토대이신 그분을 만나게 되면 
우리 마음의 복원력이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죠. 

반등하려면, 물체가 탄력이 있어도, 그 바닥이 견고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견고한 기초가 되십니다.    *2)조건  충족

우리가 지금 이 코로나 상황에서 마음 가운데 
'아 난 정말 끝났다. 나는 절망이다. 소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선언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인생을 살아 오면서 
내 인생의 토대가 물질과, 쾌락과, 세상의 자랑들이 아니었는가? 

내가 세상에서 자랑 하는 것들, 그게 내 인생의 전부였다면, 
그 위에 내 인생이 떨어지면 다시 일어서지 (반등하지) 못 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 마음 가운데, 내 인생의 길을 
'내 인생의 유일한 기초, 내 인생의 견고한 기초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 고백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이미 우리 마음 가운데 복원력을 주셨고 
그리고 그분이, 우리가 인생의 고난의 그 마지막 지점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다시 반등 할 수 있도록 
견고한 토대가 되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3. 풍랑을 만나면, 생명에 집착하지 마시고
사명에 집착하십시오.

목숨이 달린 위기 가운데서도, 무조건 살려고 발버둥치려 하지 마시고
어떻게 해서든지 사명을 감당하는 길로, 나아가십시오.

바울이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행27:21~24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0절에 보면, '모두가 살 소망이 끊어졌다, 즉 구조될 가능성이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근데 역설적으로 이 배에는 
이미 살 소망에 대해서는 포기한 사람이 타고 있었죠. 
누구냐? 사도 바울입니다. 

모두가 생명을 건지고 싶었지만 
바울은 주님을 위해서, 자기 사명을 위해서

생명을 내어드리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이게 참 모순이지요.
살고 싶은 사람에게 살 길이 보이지 않고 
생명을 던진 사람에게는 살 길을 보여 주셨다.. 라는 것이죠. 

△바울이 그들에게 했던 첫 마디 말은 
'여러분이 내 충고를 들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겨울을) 좀 더 편하게 지내겠다고 지금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지 않느냐?'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우리가 좀 더 편하게, 좀 더 쾌락을 누리고, 좀 더 물질을 누리고 
우리의 이기심과, 교만과, 영적인 안일함과 수많은 죄악으로 인하여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멈춰서게 만드신 시간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이 기회에,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될 것은, 회개해야 되죠. 

△그러나 바울은 이 사람들에게 책망 하기보다는 
소망과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다에서 위기를 만난다면 누구의 조언을 들어야 되나요? 
당연히 선장과 선원들의 조언을 들어야 되는 것이죠. 

이 풍랑 가운데서 바울은 아무런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근데 그가 일장 연설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에요. 
인생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이 거기 계시기 때문이죠. 

우리의 인생과 세상을 경영하는 최고의 전문가는 
오직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바다에서 폭풍을 만났을 때 
전문가의 의견을 따라야 되는데 
우리 인생 최고의 전문가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됩니다. 

그런데 참 안타까운 것은, 많은 분들이, 인생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충고를 
필수가 아니라 옵션으로 생각하는 경우들이 참 많다는 거예요. 

우리가 내 인생의 창조주요,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신뢰하겠습니까? 
이 상황에서, 인생의 위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신뢰하겠습니까? 

△바울이 절망에 빠져 있는 그들 한가운데 서서 이야기를 합니다. 
'제 충고를 들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러나 아무도 죽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배만 손상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심하십시오, 안심하십시오' 

오늘 본문 22절과 25절에 두 번이나 반복해서 
사람들에게 '안심하십시오, 안심하십시오' 이야기를 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면 바울이 믿는 구석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은 '네가 로마 황제 앞에 반드시 서야 되기 때문에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너만 죽지 않을 것이 아니라)  
너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도 살려주겠다.' 
이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었어요. 

이 본문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은 수명이 다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사명이 다할 때 죽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결코 수명이 다해서가 아닙니다. 
사명이 다할 때 떠나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 코로나 위기 상황 가운데, 우리가 수명이 단축될까봐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맡겨 주신 사명을 다하지 않았나?'
이것을 두려워하고 돌이켜 봐야 될 것입니다. 

△물론 이 상황에서 아직 감염되지 않은 분들이 대다수인데요,
그러다 보면 '생명의 위협을 나는 느끼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사회 활동, 경제 활동이 거의 올스톱 되면서 
개인적인 사업도, 경력도, 완전히 단절될 위기에 처해 있는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단순히 일로 이것을 했는가? 
단순히 직장생활로 했는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했는가?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인생에 주신 사명으로 감당하고 있었다면, 
사명자는 절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명자는, 사명을 위해 헌신하면 
그의 생명은 하나님이 지켜 주시기 때문이에요. 
그의 인생의 필요는,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만 지켜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때문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함께 지켜 주시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었어요. 

감리교회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가 미국으로 선교를 하기 위해서 배를 타고 간 적이 있었어요.
근데 배를 타고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난 거예요.

'이러다가 내가 죽게 되는 게 아닌가? 선교도 하지 못하고 죽겠다..' 
큰 두려움에 휩쌓여 있을 때, 그 갑판 위에 모라비안교도들이 모여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기쁘게 찬양을 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본 거예요.

요한 웨슬리가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가 선교를 나갈 정도로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지만 
진정한 믿음이라는 게 무엇인가? 
진정한 회심이라는 게 무엇인가? 
다시 한번 그의 마음 가운데 놀라온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생명에 집중하기 보다, 사명에 집중해서 살아가십시오. 
우리가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반드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인생길 가운데

하나님께서 길을 보여 주시고, 길을 만들어 주시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4. 큰 사명 감당도 중요하지만, 
그래서 지금 내 곁에 있는 작은 사명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행27:25~26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바울이 사람들을 안심시켰어요. 

여러분 인생의 바다에서 폭풍을 만났을 때, 사람들을 살려내는 
하나님의 위로의 손길, 위로의 음성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뭐 다른 사람들은 다 두려워 떨고 있었지만 
바울은 밤에 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잖아요. 

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거 보니까 
지금 사람들은 밥도 못 먹고 뭐 삼일째 고생하고 있는데 
바울은 잠도 잔 거 같아요. 그래서 잠을 자면서 꿈을 꿨는데 
꿈에서 천사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주셨거든요. 

그러면 사람들은 여기 저기서 난리 쳐도 
구석에서 바울은 혼자 편안하게 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편안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크리스천들이 바로 이 시점에 해야 될 일인 것이죠. 
내 안위만 지키면 끝이 아닙니다. 
내 신앙만 잘 지키면 끝이 아닙니다. 

이웃을 돕고 위로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나누고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돕고 
또 이 고난 가운데 동참하는 것, 그거 자체로 
서로에게 위로의 메시지가 될 수 있는 것이죠.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로마로 가고 있는 길이었어요.
물론 그는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하나님은 로마제국의 심장부에 들어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깃발을 꽂게 하신 거예요. 

너무나 중요한, 그의 인생의 마지막 사명지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말을 안 들어서, 이 선장과 백부장 때문에 
자기가 죽을 위기까지 처해 있잖아요. 

그러면 '아니 당신들, 도대체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 줄 아느냐? 
내가 이 사명을 감당해야 되는데, 당신들 때문에 이거 못 하게 생겼다.' 
하며 원망하고 싸울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근데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우리 크리스찬들이 사명과 비전을 감당하며, 
내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되는데 

이것이 너무나 근시안적 관점에 사로잡히면 
때로는 내가 먼데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신경을 안 쓰게 됩니다.

때로는 내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로마로 가는 길이면서도 
내 곁에서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경우들이 생긴다는 것이죠.

그것이 강도 만난 사람을 외면했던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태도이었던 것이죠. 

△우리는 그런 오류에 빠질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적인 사명, 
우리의 신앙적인 어떤 방식을 지켜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살려내는 것이 
또한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26절 '우리는 밀려서 어느 섬에 닿게 될 것입니다.' 

저는 26절 말씀을 오늘 여러분에게 소망의 말씀으로 드리기 원합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사셨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이 말씀은 위로의 말씀이기 때문이에요. 

인생의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면 
우리가 원하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 것은
'어느 한 섬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 섬은 우리가 원하는 최종 목적지로 인도하는 
디딤돌이 되어줄 것입니다. 

시간도 걸리고, 우회 하게 되고,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완성하시는 그 최종 목적지까지 인도하시기 위해서

나를 어느 섬에 닿게 하실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이 어려운 상황을 온전히 주님 손 붙잡고 뚫고 나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풍랑이는 바다 한가운데서 
저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방향도 잡을 수 없고, 소망마저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 오늘 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의 음성을 붙잡기를 원합니다. 

생명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부여잡게 해 주십시오.
사명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그 인생을 붙드시고 지키셔서 
마지막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어느 섬에 닿게 하실 것이고 

그것이 발판이 되어서, 디딤돌이 되어서 
한 걸음 한 걸음 다시 올라서게 하실 것입니다. 

내 인생이 무너진다고, 무너질 것에 대한 두려움, 내려갈 것에 대한 두려움, 

경기가 침체되고, 사업이 어려워질 것에 대한 두려움, 
많은 두려움 가운데 있지만 

다시 올라서게 하시는 하나님,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서서 
결국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목적지에 이르게 하실 하나님!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