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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17장 14~15 스스로 개척하라

LNCK 2021. 11. 21. 05:29

https://www.youtube.com/watch?v=0Knsumm6Rl8

◈스스로 개척하라         수17:14~15            2021/11/14출처

기독교 신앙, 성경적 신앙의 가장 자랑스러운 점 하나는 '역사의식'입니다. 
지상의 종교가 한 3천여 가지 있습니다. 
많은 종교들 중에 성경적 신앙이 가지는 가장 뚜렷한 장점은 '역사식입'니다. 

'지난 날의 역사를 모르면 미래가 닫힌다' 라는 역사학의 격언이 있습니다. 

1910년 우리 겨레가 한일합방이 되었습니다. 
한일합방이 된 후로 일본 식민지 정부가 첫 번째로 시행한 것이 
'토지조사사업' 입니다. 
전국 농민들에게 자기가 경작하는 토지를 등록하게 했습니다. 

근데 그게 참 일본 사람들이 간특한 것이 
그때 국민들의 90%가 문맹입니다. 그런데 토지 등록을 하라니까 
참 귀에 서투른 이야기지요. 

그러고 토지 등록을 하면, 토지가 빼앗긴다.. 그런 소문이 돌아서
농민들이 자기가 붙이는 토지를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1910~17년까지 7년간 기회를 주고, 모든 토지를 등록하라 했는데 
농민들이 기피하고 등록 안 하니까
1917년에 등록 안한 토지는 전부 일본식민정부가 압수했습니다. 

그리고는 가난한 일본 농민들 수천세대를 데려다가 그 토지를 나눠주었습니다. 
한국농민들이 갑자기 자기 땅을 잃은 거지요. 

분명히 자기 조상때부터 부치던 땅인데 
일본 농민들이 차지해 가지고 부치게 되니까 

할 수 없이 저 북간도로, 연해주로, 흑룡강 지역으로 
조국을 버리고, 봇짐을 싸서 떠났습니다. 

북한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인 곳이 연변이고 
경상도 사람들이 많이 간 곳이 흑룡강 유역이고 
호남 사람들은 연해주로, 
그곳으로 많이 옮겨가서, 거기 넓은 땅이 그냥 황무지로 있으니까
그걸 개간해서, 거기에 벼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1917년부터 땅을 빼앗긴 우리 동포들이 옮겨가기 시작해서
20~30년 지나니까, 연해주에만 약 20만명이 모여가지고 황무지를 개간해서
그 땅에 벼를 심고 정착해서 살게 되었습니다.

전부 20만 되는 연해주 주민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뭉쳤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에 교회가 중심이 되어서 아주 강력한 공동체를 이루었는데

스탈린이 생각하기를, 
당시 일본과 소련이 아주 사이가 나쁠 때입니다.
저 조선 사람들이 소련 땅 연해주에 한 20만 명 가까이 한데 모여 사는데
저들이 일본의 스파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1937년 10월에 그 20만 명을 갑자기 기차에 태워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시켰습니다.              

그러니까 20만명이 하루 아침에 자기가 개간했던 연해주 땅을 떠나서
당시 황무지 중앙아시아로 옮겨갔는데, 거리가 6천4백킬로 입니다.

거기가 추운 지역이고, 또 초겨울(10월)에 이주를 했기 때문에  
6천4백킬로나 되는 먼 길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2만5천명이 죽게 됩니다.
기차 안에서 굶어죽으면, 창밖으로 시체를 던져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약 17만5천명이 중앙아시아에 도착하게 됩니다. 
참 우리 민족이 한 많은 민족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연해주를 떠날 때, 세 가지를 꼭 챙겼습니다. 
성경과 된장과 씨나락입니다.

'어딘지 모르지만 끌려가서 벼를 심고 살아야지,
가서 벼농사를 지어야지..'
그래서 씨나락(종자 씨)은, 기차안에서 굶어죽어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씨나락, 된장 단지, 성경을 들고 기차를 타고 중앙아시아로 끌려갔는데 
중앙아시아 현지에 도착했는데

  
소련중앙정부에서 지방관리에게 문서를 보내기를
'연해주에서 고려인들이 지금 오니까 
4Km 마다 한 무리씩 내려놓아라'

그러니까 그 지방관리가 생각하기를
'우리 소련중앙정부에서 이 사람들이 얼어죽도록 방치하는 거구나'
하고 시킨 대로 했죠.

그래서 4Km 마다 한 무리씩 내려놓고 지나갔는데,
한 20일 지난 후에 지방관리가 '이제 얼어죽었겠지..' 하고 현장에 나와봤더니

얼어죽은 게 아니고, 땅 속에 굴을 파고, 풀을 엮어서 지붕을 씌우고
그 땅굴 속에 불을 피워가지고 식구들이 이불 하나에 발을 넣고 
풀을 뜯어서 죽을 해 먹으면서 살아있는 거예요. 

'야 참 지독한 백성들이다. 어떻게 안 얼어죽고 땅굴을 파서 살고 있는가?' 했는데
약 2달 후에 봄이 와서, 
'지금은 다 얼어죽었겠지' 하고 다시 가 보았더니
강물을 끌어들여서, 모판을 만들어서
가져온 씨나락을 뿌려서, 벼를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전 식구가 괭이를 들고 황무지 땅을 개간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논을 만들어서 모를 심으니까
중앙아시아에서는 밀농사는 했지만, 벼농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려인들이 벼농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거기는 농사를 안 짓던 비옥한 땅이니까, 가을에 풍년이 들었지요.
벼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소련 말기 서기장이 고르바초프 입니다. 그는 스타브로폴 출신(고향)입니다. 
고르바초프는 모스크바 대학에서 법대를 다니면서
공산당 청년동맹(콤소몰)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지도력을 발휘하니까
법대를 졸업하면서, 그는 자기 고향 스타브로폴 지방관리로 임명되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군수 급입니다.

그래서 고르바초프가 고향인 스타브로폴에 와 보니
그 사이에 중앙아시아에 이주했던 고려인들 중에 일부가
또 스타브로폴(카프카스 지역)까지 옮겨와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련이 공산당 집단농장을 하니까 생산성이 떨어져가지고 
수확량이 많지 않으니까 식량자급이 안 되는 거죠. 

소련중앙정부가 공고하기를, 내년도에 전국에서 
생산을 최고로 올리는, 농업수확 일등하는 지역의 군수는 
중앙정부에 요직을 맡기겠다.. 라고 공고를 했는데 

그 고르바초프 지역의 한인들이 벼농사를 잘 지어가지고
대풍년을 이루었지요. 소련 전국에서 1등을 했습니다.

일등하니까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그 공로로 
중앙위원으로 발탁되어서 농림부 장관이 됐습니다. 

농림부 장관이 되어 가지고는 
자기 고향의 고려인들이 벼농사짓던 그 방식을 전국에 보급해서 
농민부 장관 시절에 소련 공산정권의 농업생산량을 두 배로 늘였습니다. 
그 공로로 정권을 잡은 거지요. 소련공산당 제일 서기장 권력자가 됐습니다. 
그 때가 1985년입니다. 

그가 소련 권력자가 된 뒤에 두 가지 정책을 썼습니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입니다.

그래서 개혁, 개방정책으로 동구권도 독립시키고 하니까
고르바초프는 그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냐 하면
"한국인의 개척정신" 끈질긴 그 끈기,
중앙아시아에서 다 얼어죽었는가 했는데
땅굴파서 들어가서 풀 뜯어 죽 쒀 먹으면서 겨울을 나고

강제 이주 당하면서, 된장, 씨나락, 성경 들고 가서 살아남아서
지금은 그 지역에 한인들이 러시아 평균에 비해서
대학 졸업 비율이 세 배로 높습니다. 
한국인의 교육열이 거기서도 나타나는 것이죠. 

여러분, 이런 한국인의 끈질긴 개척정신, 근면한 정신
어떤 난관도 돌파하는 그 정신, 

그래서 우리들 피속에는 역경, 실패, 고난을 극복하는 DNA가 들어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사람들의 특징이 위기에 강합니다. 

위기가 닥치면, 국민들이 금모으기 운동도 하고
임진왜란 때는 의병운동, 일제시대 때는 항일운동도 하고 

위기를 당하면 국민들이 정신차려 가지고 
국민들이 모여가지고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죠. 

여러분, 이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 중앙아시아에 한인들이 뿌리내린 역사를 읽으면 눈물납니다.

그 6400킬로 가는 기차안에서 2만5천명이 굶어죽고 얼어죽었으니까요.
그러면서 그 사람들이 지금 중앙아시아 지식사회의 주도권을 잡고 
그 뜨거운 교육열로 러시아 평균 대학졸업생의 3배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판사, 변호사, 교수를 배출했습니다.
그 고려인 출신들이 중앙아시아 사회에 굉장히 아주 기반을 잡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 여호수아서 17장 14절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개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모세, 여호수아, 다니엘, 느헤미야, 베드로, 바울 
전부 개척자들의 얘기가 성경의 스토리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감동받는 사람들은 
어떤 역경, 어떤 난관도 극복하고 
몸으로 극복해 나가는 그런 개척정신의 후예들입니다. 
우리 한국 교인들이 그런 개척정신을 몸으로 익혀야 됩니다. 

여호수아 장군의 인도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1~14장까지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이야기입니다.
14~22장까지는 땅을 분배하는 이야기입니다.

23~24장은 여호수아 장군이 세겜에서의 마지막 고별설교입니다.
그것을 세겜 회의라고 합니다.

전부 지파 별로 땅을 분배하는데
유다 지파는 이 지역, 스불론 지파는 해안가 어디,
잇사갈은 산 중 어디.. 이렇게 다 분배했습니다.

그때 요셉 지파가 불만이 생겼습니다. 왜냐면 자기들 지파는
공로도 있고, 숫자도 많고, 업적도 있는데
다른 지파와 똑같이 대우하는 것입지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불만이 생긴 거죠.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수17:14

우리 지파는 두 몫을 주셔야지,
다른 지파처럼 한 몫만 주는 것은 부당합니다.

그랬더니 여호수아가 뭐라 그럽니까?
나는 여호수아서에서 17:15절 이런 말씀을 읽으면, 아주 속이 확 트입니다.
여호수아 장군이 위대하고 멋있게 보입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수17:15

아 멋있습니다. 너희 지파가 숫자가 많냐? 힘과 공로가 있냐?
좋다. 너희가 더 달라고 하면, 다른 지파 몫이 줄어들 수 있다.

너희 지파가 힘이 있고 숫자가 많고 공로가 있으면
적은 땅을 더 달라 그러지 말고 스스로 전진해서 개척하라!

이게 여호수아서의 주제입니다. 스스로 개척하라!

그래서 성경은 개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제대로 읽으면, 어느 시대나 개척정신이 가슴에서 끓어올라야 됩니다.
성경 읽고 은혜 받으면서 그냥 편하게 자기만 먹고 살겠다는 것은 
성경을 한쪽 눈만 뜨고 읽은 거지요. 제대로 못 읽은 거지요. 

그때 요셉지파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18절에, '아이고 우리가 개척하려니까
중간에 산림이 가로 막고, 바위가 가로 막고, 
우리 지방에 있는 산지 사람들은 철병거가 있어서 

우리가 개척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나왔습니다. :16

이때 여호수아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18
 
삼림이 가로막으면 꺾어 눕혀라. 삼림이라도 개척하라.
바위가 가로막으면 깨뜨리고
상대방이 전차 철병거를 가졌으면 정면 돌파해라! 

그래서 너희가 스스로 넓혀 나가야지
왜 적은 땅에서 더 달라 하느냐?

나는 이런 말씀을 읽으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영감이 옵니다.
'맞아,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여러분,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형편과 처지를 불평 마시고
위축되지 마시고, 스스로 개척하는 개척자들의 가슴을 지닐 수 있게 되기 바랍니다.

삼림이 가로 막으면 꺾어 눕히고
바위가 가로 막으면 깨뜨리고
상대방이 전차가 있으면 돌파하라!

그래서 나중에 여호수아는, 그 가나안 족속의 철병거, 전차를 어떻게 돌파했느냐면
가나안 거기에는 철광석이 있습니다. 지금도 거기서 철광석을 캐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에서 탈출해 나올 때
놋쇠로 된 무기, 놋쇠로 된 괭이, 삽.. 이런 것을 들고 나왔으니까

놋쇠로 된 무기하고 철제 무기는
서로 상대가 안 되는 거지요.

가나안 족속은 쇠로 된 무기이기 때문에 성능이 좋은 겁니다.
그걸 가지고 전차를 만들어서 말이 끌고, 그 전차로 돌진해 오면
전쟁에 승기를 잡게 되지요.

그런데 여호수아의 전략이 뭐냐면, 
날씨가 좋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비가 올 때, 거기도 비가 올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비가 오면 땅이 뻘밭이 되니까, 그때 공격하면, 철병거가 무용지물이 되는 겁니다.

그때 이스라엘이 그 가나안 족속을 기습해서
그 철병거를 대파한 거지요.

기도하는 사람, 성경 읽는 사람은 세상사람보다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유리합니다.
술 안 마시죠. 담배 안 피우죠. 절제 생활 하지요.
새벽기도 하지요. 물질에도 헌금 외에는 다 절제 있게 살지요.

신앙인은 앞서게 되어 있습니다.
근데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만 할렐루야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이 죄많은 세상을 스스로 개척하라는 말씀으로 우리가 돌파해 나가야
나라가 살고, 교회도 살고, 영혼도 살고, 우리 후손들이 뻗어나가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여호수아가 요셉지파에게 너무나 좋은 말씀을 했습니다.
스스로 개척하라!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요즘 시간 나시면 두레마을 한 번 와 보십시오.
지금 우리 동두천 시에 허가 수속을 밟고 있는데
이번에 식품 공장을 짓습니다.

우리가 보리국수, 잡곡국수 특허를 냈습니다.
그게 곧 허가가 나면, 산비탈에 보리국수 공장을 짓는데

우리가 밀을 수입해서 국수를 만들어 먹는데
수입과정에서 부패하지 않도록 약을 치고 합니다.
그래서 이래 저래 백색 밀가루는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면 보리국수, 잡곡 국수, 현미 국수의 특허를 내서
건강한 우리 식품을 생산하고자 합니다.
청년 고용도 하고요.
그래서 대한민국의 최고의 (농장)공동체를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금 4차산업혁명 시대에
시대를 앞서가는 교회, 시대를 앞지르는 교육, 시대를 앞지르는 사고방식을 가져야지
뒤쳐져가지고 따라가면 전도가 되겠습니까.

여러분, 요즘 코로나 비대면 때문에 교인 숫자가 줄고
청년들이 떠나고, 앞으로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 쓸데 없는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길을 열어주시고, 힘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위기는 기회입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합쳐진 것이 위기입니다.

우리 교회나 나라에 위기가 올 때는, 그 속에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개척하라! 스스로 개척하라!
삼림이라도 꺾어 눕히고, 바위는 깨뜨리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라.

적이 철병거를 가졌더라도, 극복하라.
여러분, 우리 성경의 신앙은 그렇게 위대한 신앙, 개척자의 신앙,
미래를 향해서 전진하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가는 곳에는 특별히 개신교, 프로테스탄트 교회
특별히 그 중에도 칼빈정신, 장로교가 가는 곳에는 두 가지가 꼭 발전합니다. 

역사가 말해주는 증거입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산업이 발전합니다.

여러분, 산업혁명이 스코틀랜드와 네덜란드의 장로교에서 
영국의 퓨리탄 청교도 배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을 아시죠?

민주주의가 장로교, 개신교 전통에서 일어난 것을 아시죠?
역사가 그걸 증명해 주는 겁니다.

한국이 장로교가 대세를 이룬다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입니다.
제대로 된 장로교라야 되겠지요.

우리 신광두레교회는 이 시대에 말씀을 통해서
스스로 개척하라, 어떤 역경, 어떤 난관도 스스로 돌파해서 헤쳐 나가라!
그런 사명자의 교회로 세우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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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칼바람도 막지 못한 다음 세대 사랑

해외에 나와 살고 있는 700만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살피다보면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숭고한 민족성의 뿌리를 발견하고 감탄할 때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1937년 가을 구소련은, 서기장 스탈린의 명령에 의해서 
극동지방에 사는 한인들을, 중앙아시아 쪽으로 
갑자기 강제이주를 시킨 일이 있습니다. 

그들이 내세운 공식적인 이유는 
당시 소련이 일본과의 전쟁을 앞둔 예민한 시점에서 
극동 지방에 일본 첩자들이 침투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였는데 

이는 소련 사람들의 눈에는, 
외견상 일본인과 한국인의 구별이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1937년 9월 9일, 첫 수송 열차가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한 이후 
그 해 12월까지 3개월간 
약 18만 명의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했는데, 
그 과정은 이루 말로 다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했습니다. 

사람을 객차가 아닌 화물칸이나, 가축용 운송칸에 빽빽이 태우는 바람에
잠도 제대로 누워 잘 수 없었고, 화장실도 없이 장시간을 달리다보니 
웬만한 용변은 그 안에서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기차가 시베리아 벌판을 지나는 동안에는 
그 매서운 칼바람이, 
난방도 없는 화물칸 안으로 파고 들어와서 

그 어떤 건장한 사람도 하루 이틀 시달리다 보면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동상에 걸리거나 얼어죽기 일쑤였습니다. 

그들을 강제이주 프로젝트에는 
인간의 존엄성이나 생존 가능성 따위는 아예 처음부터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 참혹한 이주 과정에서 
약 2만명에 한인들이 추위와 굶주림 등으로 희생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차를 타고 6,600 킬로미터나 떨어진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인근의 우슈토베 지역에 도착 했을 때 
한인들을 실은 화물칸을 열어본 소련 군인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소수민족들은 제각기 웅크린채, 이 구석 저 구석에 흩어져 있었는데 
유독 한인들은 기차간 안에서 서로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원형 써클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가장 나이 많은 연장자들이 가장 바깥 쪽에 있고 그 안쪽에 청장년들이 
그리고 맨 안쪽에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더욱 군인들을 숙연하게 만든 것은 
맨 바깥에 있던 노인들이 
나중에는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안쪽에 있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양보한 이들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그들 중 다수는 결국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열차 안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죽음의 열차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한인 이주자들은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동토의 땅에 내던져졌지만 
강인한 정신력과 단결심으로 황무지를 개간하였습니다. 

당시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처음에는 맨손으로 토굴을 파고 
그 안에서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여 살다가 
곧바로 흙을 이겨 구워낸 타일로 온돌을 놓고 굴뚝을 뽑아 
중앙아시아의 혹독한 첫 겨울을 가까스로 버텨냈다고 합니다. 

그 후손들이 지금의 고려인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강제이주 일세대들이 도착하여 
첫 겨울을 지냈던 우슈토베 언덕에는 
땅굴과 공동묘지가 보존되어 있는데 

이 자리에 세워진 기념비에는 
"이곳은 원동에서 강제이주 된 고려인들이   *원동 : 먼 동쪽, 연해주를 뜻함
1937년 10월 9일부터 1938년 4월 10일까지 
토굴을 짓고 살았던 초기 경작지다"라고 한글로 새겨져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다음 세대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였던 
고려인들의 숭고한 정신은 
어느 날 누가 가르쳐 줘서 갑자기 생겨난 것이 결코 아닐 것입니다. 

우리도 몰랐던 그런 DNA가 
우리 한국인의 혈관에 오래전부터 면면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