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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65편 해석, 한 해 추수를 감사하는 기도
LNCK
2021. 11. 26. 18:39
◈시65:편 해석, 한 해 추수를 감사하는 기도 시65:1~13 여러 설교 정리
시편 65:편의 표제어는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입니다.
이 시가 언제 쓰여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시의 내용 가운데 농사를 통한 풍성한 수확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내용을 미루어, 이 시는 올리브와 포도 등을 추수하는 시기에 지키던
수장절(=장막절)을 앞두고 지어진 시라고 추정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시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다윗은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구원자 하나님,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고,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전심으로 감사하기 위해 이 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온에서 주님을 찬송함 (1~4절)
▲1절,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이것은 지정된 시간에 찬송을 부르기 위해 밤 동안 성전에 머물러 있던
레위인들의 마음 상태를 빌어온 표현입니다.
시134:1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또한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기에 앞서
기다리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1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다린다’라는 의미는 침묵한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어 ‘두미야’인데 그 의미는 ‘침묵, 고요, 조용히 기다림’이라는 뜻이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려 하기 전에 우선 잠잠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시간을 갖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통해
우리도 예배드리기 전에
우선 조용히 그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다윗이 하나님께 찬송 드리기 위한 장소로
‘시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시온은 솔로몬 시대에 성전이 세워지는 장소이지만
다윗 시대에는 아직 성전이 건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곳은 언약궤가 놓여있는 ‘여호와의 성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어느 곳에서나 드릴 수 있지만
하나님 임재의 상징적인 장소인 성소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
마음을 모아 친밀하게 하나님을 찾으며 찬양하려는 시인의 열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시온에서 주님을 조용히 기다리던 시인이 마침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시편에 보면, 예배 또는 제사에 꼭 '서원'이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원'은 다른 말로 서약, 약속, 결단.. 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오는 자가 꼭 가져야 하는 것은 '결단과 결심'입니다.
아무 결단과 결심 없이 예배를 끝내는 것은, 결코 훌륭한 예배가 아닙니다.
성경말씀을 들을 때나, 설교를 들을 때나, 기도를 드릴 때나, 찬송을 부를 때나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에 따라
'제가 앞으로는 이렇게 저렇게 꼭 하겠습니다!' 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결단과 결심, 즉 서원이 있어야.. 훌륭한 예배입니다.
▲2절,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2절에서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부모아래 자라는 자녀들의 가장 큰 복이 무엇입니까?
자기들의 요구를 들어 주시는 부모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물론 요구하는대로 다 이루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요구할 수 있는 부모가 있음이 감사한 것이 아닙니까?
물론 철부지 자녀들은 이것에 대한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 요구대로 해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부모곁을 떠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를 들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심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3절,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이 말은 자신이 지은 죄가 힘겹도록 무겁다는 말입니다.
즉 죄의 포로가 되어 이제는 더 이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밧세바 사건을 경험한 후에
자신이 철저한 죄인임을 깨달은 때의 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철두 철미한 죄인임을 자각한 후에
그 죄에서 자유함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간구한 것입니다.
'죄악이 나를 이기었사오니 우리의 죄과를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이것은 죄와 처절한 투쟁을 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죄를 이길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과를 사하여 주신다는 기본적인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죄의 은총은, 죄의 권능, 죄의 무거움, 죄의 짓누름 가운데
신음하고 고통해본 사람만의 고백입니다.
도저히 자신의 힘만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을 때,
비로소 구원자이신 하나님(신약에선 예수님)의 사죄의 은총을 기대하며, 기뻐하는 것이죠.
▲4절,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또 감사한 것은 4절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신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시점은 창세전입니다.
이미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죄로 말미암아 멀어진 우리를 가까이 오게 하셨는데
얼마만큼 가까이 오게 하셨는가 하면, 아예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촌수로 따지면 가장 가까운 일촌입니다.
4절에서“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자녀로 삼으셔서 아름다운 주의 집에서 만족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가까이 오게 하신다’라는 것은 지성소를 기준으로 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점점 더 하나님께 가까이 오게 하십니다.
그래서 구원받는 성도들은 어떤 생활을 하게 됩니까?
하나님의 성전 뜰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생활합니다.
결국 이것이 신앙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 (5~8절)
5~8절까지의 내용은 크신 능력으로 온 세상올 창조하시고,
혼돈의 세력을 제압하셔서 세상 질서를 세우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5절,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가
의지할 주께서 의를 따라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6절,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
7절, 바다의 설렘과 물결의 흔들림과 만민의 소요까지 진정하시나이다
8절, 땅 끝에 사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5절과 8절, '땅 끝에 사는 자'란 지금까지 전혀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도 차츰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될 것입니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면서 하루하루가 연장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긍휼이요 자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여러 날 동안 오래오래 살 것을 걱정하는데
실제로는 우리가 하루하루 사는 것 자체가 기적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풍성한 결실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 (9~13절)
9절과 10절을 음미해보십시오.
9~10절은 풍성한 가을 벌판을 바라보며 회상한 주님의 은택입니다.
▲9절,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1) ‘땅을 돌보사’
직역하면 “하나님이 땅을 방문하셨나이다”
무르익은 황금벌판과 하얗게 뒤덮은 양떼의 번식은
하나님께서 땅을 방문하신 결과라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보십시오. 땅을 방문하신 결과가
초장의 양떼가 뒤덮이게 되었고 골짜기에 황금물결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올해 우리 가정과 공동체에 하나님이 방문하셨습니까?
초장에는 양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습니까?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팔레스타인은 물이 귀한 곳입니다.
물만 잘 공급되면 얼마든지 농사를 잘 지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땅을 돌보기 위해 개입하신 것입니다.
율법은 백성이 순종하면 그들에게 풍성하게 복을 내려주실 것을 약속합니다.
특별히 비를 보내실 것을 약속합니다.
2) ‘하나님의 강’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The stream of God‘
이것은 하나님께서 물을 저장해 두시는 곳으로 여겨지는
구름과 대기권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땅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저장해 두신 물로 그 땅을 기름지게 하시어
인간으로 하여금 그 땅에서 많은 소출을 얻게 하십니다.
사실 겨울(11~2월) 우기 한 철에 내리는 비로 일 년을 지내야 하는 이스라엘에서는
비는 곧 생명을 의미하는데, 이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로 여겨집니다.
만약 ‘하나님의 강’으로부터 공급되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그 땅은 금새 사막으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러 죄로 말미암아 사막과 같이 되어 버린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은혜의 단비를 얻지 못하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10절,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양의 비를 땅에 공급하셔서
땅이 새로운 모습을 갖추도록 하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거칠고 메마른 우리의 마음 밭에도
때를 따라 흡족한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셔서 부드럽고 평온하게 만드십니다.
▲11절,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지금 시인은, 한 해의 추수를 앞두거나 마친 시점에서
한 해를 뒤돌아보며 감사찬송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한 해 동안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그 풍성한 추수와 수확을 바라보니
마치 자신에게 왕관을 씌워주시듯 복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12절,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13절,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하나님은 농사와 심지어 가축을 기르는 일에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복이 모든 곳에 넘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른 믿음에 서 있을 때
한없이 복주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약적 의미의 복’은
장차 신약에 도래할 ‘영적이며 영원한 복’의 예표로
풍성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적용
1)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4절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시84:1~2)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시122:1).
누가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주의 집을 사모하며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한나가 주의 집에서 기도하다가 복을 받았고
사무엘이 주의 집에 거하다가 복을 받았습니다.
시므온과 안나가 주의 집에 머물다가 아기 예수를 만났습니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웅장하든지 / 초라하든지
주님의 피로 그리고 하나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행20:장 28절은 교회를 하나님의 피로 사셨다고 기록했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때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20:28).
교회는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향하시는 곳입니다.
“내 눈과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7:16).
교회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만나시고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곳입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네게 명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25:22).
예수님께서는 “내 교회를 내가 세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16:16).
교회는 주님 자신의 몸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교회에 들어오시면 죄 사함이 있고 구원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습니다.
교회는 천국의 모형이고 천국으로 이어지는 하늘 집입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의 집이고 주님의 집인 교회를 사모하고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가장 복된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본문 9~10절을 다시 읽어봅니다.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땅을 돌보사’는 ‘하나님이 땅을 방문하셔서 돌보신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9
이것은 우리 인간의 자원, 힘, 능력과 대조됩니다.
작은 개천들이 쉽게 말라버리듯이 인간의 모든 자원은 쉬 고갈합니다.
한 번씩 해보려고 시도하지만 우리의 능력, 우리의 자원은 바닥을 드러내고 맙니다.
시도한 지 얼마 가지 않아서 우리는 “더 이상 도무지 견딜 수 없겠습니다.”라는
절박한 상황에 이르고 맙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쉽게 바닥이 나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질 수 있는 물지게의 물로서는 척박한 땅을 적실 수가 없습니다.
사막과 같은 세상이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퍼나르는 물통의 물로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물이 가득한 하나님의 성령의 강, 생수의 강만이 우리에게 소망이되므로
늘 하나님의 방문을 기도하고, 기대해야 되겠습니다.
그때 은혜의 소낙비가 쏟아질 것입니다.
우리의 자원은 쉬 고갈되고 말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강수는 다함없이 흐르고 있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강에 다함없는 그 강물이 아직도 흐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 강물의 물이 메마른 대지를 적시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찾아와 주시도록 기도하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