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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75편 해석, 감사하고 감사함은..
LNCK
2021. 12. 8. 19:48
◈시75편 해석, 감사하고 감사함은.. 시75:1~10 여러 설교 정리
시편 75편은 ‘아삽의 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입니다.
‘알다스헷’은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폐허로 만들다, 멸하다’의 의미인 ‘다스헷’과
부정의 의미를 갖는 ‘알’이 합쳐져 ‘폐허로 만들지 마소서, 멸하지 마소서’
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알다스헷’은 본문 시75편의 배경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많은 학자들은 75편의 배경을
열왕기하 18~19장에 나오는 앗수르 산헤립의 남유다 침략사건으로 봅니다.
열왕기하의 기록에 따르면 히스기야가 왕이 된지 14년째 되던 해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해서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점령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앗수르왕에게 화친을 청하고 군대를 데리고 물러가기를 요청합니다.
그러자 앗수르왕 산헤립은 은 3백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조공을 바치고 앗수르의 공격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
왕궁 곳간에 있는 은과 성전 기둥을 장식했던 금까지 벗겨서 산헤립에게 바쳤습니다.
그러나 앗수르왕 산헤립은 물러가지 않고 부하들을 보내서 예루살렘을 공격하게 했고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사절로 오자, 그들을 조롱했습니다.
심지어는 화친을 청하러온 히스기야의 신하들과만 말하는게 아니라
큰 소리로 성위에 있던 백성들이 들으라고, 유다말로 소리 질러서 히스기야를 모욕했습니다.
심지어는 유다왕만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 어떤 민족의 신이 그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졌느냐?”
“민족의 모든 신들중에서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면서 하나님을 조롱하는 말까지 했습니다.
이 때를 배경으로 지어진 시가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75편입니다.
따라서 75편은 하나님과는 무관한 삶을 사는
세상의 교만한 통치자들의 맹렬한 공격 앞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폐허로 만들지 마소서, 멸하지 마소서’(알다스헷)라고 부르짖는 *표제어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본문의 주제나 내용이 '다윗의 시'와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서,
다윗이 노래한 것을, 아삽이 받아 적거나, 다윗의 시를 바탕으로 아삽이 정리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표제에 '아삽의 시'라고 했는데, 아삽을 다윗과 동시대 인물로 볼 때,
히스기야 때와는 맞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나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됩니다.
아삽을, 꼭 아삽 그 한 명으로 보지 않고, '아삽 계열, 아삽 후손' 이렇게 보는 거죠
3절과 8절 등을 볼 때, 본 시편은
다윗보다는 아삽의 계열이 썼고, 시대 배경은 히스기야 - 앗수르의 침입 때가 더 맞아 보입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1~5절)
1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시인은 자신의 삶에 있는 감사의 이유를
하나님의 이름이 가깝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감사하고 감사함은'
표제 알다스헷 (주여, 멸망시키지 마소서) 이란 말 속에 들어있는 절망감, 간절함과
'감사하고 감사함'이란 1절의 표현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1절이 '하나님이여, 우리가 당장 죽게 되었나이다!' 이렇게 시작해야 어울릴 것 같습니다.
저들이 지금 당장 죽게 되었는데, 감사한답니다.. 이런 정서가 뭘까요?
여러분, 이게 믿음이고, 신앙이고, 성도의 비밀입니다.
믿음이란 뭐냐?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은 상황이지만,
그 현실 상황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너머를 보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입니다.
여기서 '주의 이름이 가깝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일이
임박했다는 의미입니다.
본 시편의 배경은 앗수르 왕 산헤립이 남유다를 공격할 때라고 했습니다.
의인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처한 현실과 환경에 갇히지 않았고,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한 분으로 인해 오히려 감사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이 정하신 때에 공정하게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2
2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
2~3절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내가”라는 말입니다. 3번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내가 공의로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날이고 해방의 날이지만
악인들에게는 멸망의 날입니다.
그것은 광복절이 우리민족에게는 해방의 날이고 복된 날이었지만
일본에게는 항복하는 심판의 날이었던 것과 같습니다.
잠시는 악이 득세하는 것 같으나,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이르는 것이고
그날이 오면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의 백성 의인들은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이고, 악인들은 멸망당하게 됩니다.
심판의 대상은 분명합니다. 4~5절에 나옵니다.
3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주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 (셀라)
3절의 개역 번역은 좀 약합니다. 새번역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땅이 진동하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흔들리고 비틀거릴 때에,
땅의 기둥을 견고하게 붙드는 자는 바로 나다.' (새번역)
땅은 인간의 삶의 토대를 말합니다. 아울러 땅을 구성하고 있는 흙은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사용하신 재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땅의 기둥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에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양심을 통해서 윤리와 도덕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윤리와 도덕은 인간의 최소한의 양심의 반영일 뿐
이것이 인간을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그나마 이것마저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기에 세상은 병들고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이 흔들리지라도 이 땅의 기둥이 되는 말씀을 굳게 붙잡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4 내가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행하지 말라 하며
악인들에게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5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뿔은 힘과 권세, 그리고 교만을 동시에 비유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자신의 힘을 믿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한 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여기서 ‘뿔’이란 뿔달린 짐승들이 자신의 머리를 들고 힘을 과시하면서
자랑스럽게 다니는 것을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 (6~10절)
6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7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사람들은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충분히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인생의 높고 낮음을 결정하시는 분은 재판장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별처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별똥별처럼 떨어지게 하실 수 있고,
진흙탕에 뒹구는 사람도 모든 사람 위에 두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8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 쏟아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여기서 여호와의 손에 잔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술 거품이 일어난다'는 말은, (여호와의) 화가 부글부글 끓는다는 뜻입니다.
'속에 섞은 것'은, 아마 진노, 저주, 증오를 뜻할 것입니다.
'찌꺼기까지 기울여 마신다'는 말은, 한 방울도 남김 없이 마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악인에게는, 은혜도 없고, 조금도 봐 주는 것도 없이.. 100% 하나님이 정하신
진노, 저주, 증오를 다 받게 되리라는 뜻입니다. 조금도 깎아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결국 8절은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전에
하나님을 향한 교만을 회개하고 돌이킬 것을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9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10 또 악인들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10절을 이렇게 해석하는 주석가도 있습니다.
"비록 악인의 머리는 다 베지 않더라도 '악인의 뿔은 다 벨' 것이라.
왜냐하면 그들은 그 뿔로 불쌍한 이웃들에게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로 하여금 악을 행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즉 세상 끝날까지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권세(뿔)는 제거되어도,
악인이 세력(머리)는 여전히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이를 테면 새 뿔이 또 나겠지요.
왜냐면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쓰임을 받기 때문입니다. 잠16:4
마치는 말
본 시편의 표제어가 '알다스헷', 즉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소서! 입니다.
지금 완전히 예루살렘의 파멸과 멸망을 앞두고, 그 직전에 드리는 기도요, 찬미라는 겁니다.
근데 앞 뒤가 맞지 않습니다.
지금 사방이 막혀있고, 풍전등화인데 무슨 감사가 나옵니까?
완전히 모든 시민이 죽기 일보 직전인데, 그 가운데서 '감사하고 감사하옴은'
이렇게 시인은 연속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1
그 이유는, 왜냐하면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은 분명히 자기 이름을 증명하여 보여주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기도하다가, 영감으로 깨달음이 왔습니다. '주의 이름이 멀지 않습니다.'
즉 주님의 임재, 나타남, 그 역사가 가깝다는 거죠. 임박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의 이름이 너무 먼 것 같아요.
'엘로힘, 엘샤다이..' 이런 전능자 라는 이름이 내게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다급한 상황가운데, 오늘 아삽이 고백하는 거예요.
'아닙니다. 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란 그 전능하신 이름은 매우 가까이에 있습니다' 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행하심이 곧 임박해 있다는 뜻이지요.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그 말을 다시 반복해서 '주의 기이한 일들'이라고 표현합니다.
1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즉 주의 이름이란 곧 뭘 말하느냐?
곧 주의 기이한 일들을 말하는데.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앗수르를) 바르게 심판하리니.. 입니다. :2
그래서 저들이(우리가) 볼 때는 불가능한 일들, 막혀있는 일들, 안 될 것 같은 일들입니다.
그런데 그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해 내실 것을 미리 내다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심을 자기는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와 하나님이 하셨구나!' 이렇게 탄성을 지를 수 있도록,
시인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날을 미리 내다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의 기이한 일들이 나타난 후에라야 비로소 찬양하고 감사합니다만,
'선제적 감사'라는 말이 있듯이,
시인은 미리 감사, 믿음의 감사의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억지로, 머리로 감사하는 게 아니라,
성령의 감동이 오니까, 아삽이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내다보며 미리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금 현제 예루살렘의 사방이 앗수르의 포위로 꽉 막혀 있지만,
그는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내다보고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를 경험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구원의 은혜,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의 특징은
내 삶의 모든 것이 은혜로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기 상황이 그렇게 절망적이고 막막하고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데도
계속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아삽처럼요!
그런데 살다보면, 그런 뜨거운 신앙이 희석되어지고, 식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즉시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가까우면, 나의 모든 대적들은, '알로(아래로)' 보이게 되고요,
내가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지만, 나의 모든 대적들은 '위로(우러러)' 보이게 되는 것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