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시86편 해석, 어려울수록 더욱
LNCK
2021. 12. 22. 19:57
◈시86편 해석, 어려울수록 더욱 시86:1~17 여러 설교 정리
시편86:편은 다윗의 시편으로 ‘기도시’입니다.
시편86:편에는 기도시답게 거의 절마다 하나님을 부르는데 무려 13번이나 나옵니다.
“여호와여, 내 주 하나님이여, 주여, 주여, 주여, 여호와여,
주여, 주여, 여호와여, 주 나의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주여, 여호와여”
이것은 시인이자 기도자인 다윗의 마음의 간절함을 잘 나타냅니다.
◑1. 보호를 바라는 기도 (1~7절)
1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주1)
다윗은 자신의 형편이 너무 가난하고 궁핍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금 꼭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셔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극심한 어려움 가운데 있으니 하나님이 응답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어려움의 근본에 저항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시편 저자에게 사실인 것은 또한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사실입니다.
즉 우리의 필요가 우리를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이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필요가 클수록 기도 또한 간절해집니다.
2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다윗은 자신을 “경건한 자”이며 “주를 의지하는 종”이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경건하오니’라는 말은 히브리어에 ‘하시드’라고 하는데
이것은 자신을 높이고 경건한 존재임을 나타내는 교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있어서 바르게 서 있는 자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를 의지하는 종’이라고 했는데
‘의지하는’이라는 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며
그분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4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5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6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7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서 동물의 왕국 종류의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는데,
마침 그 때 본 장면이 이런 것이었습니다.
사자는 사냥을 할 때 항상 여러 마리가 무리를 지어서 다니는데,
어떤 사자 무리가 기린을 사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린이 겁을 먹고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사자들을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자들은 기린의 발길에 채이고 어렵게 덤벼들었다가 내팽개쳐지고,
그러다가 상처를 입고는 오히려 사자들이 슬금슬금 도망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야 저런 일도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 사자가 기린보다 강하다고 생각하지요.
그것도 사자 한 마리가 아니라 대 여섯 마리가, 기린 한 마리에게
저렇게 형편없이 당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기린이 겁을 먹고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맞서고 공격을 하고 덤벼드니까,
사자들이 맥없이 당하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그들이 앞으로 당할 일, 해야 할 일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그래서 더욱 제자들에게 당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어려울수록, 힘들수록 더욱 당당하게, 더 큰 소리로 외쳐라.
왜냐하면, 너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이리 떼와 같은 그들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말 그대로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겁을 내라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하고 핍박하고 해치려는 자들보다
하나님이 훨씬 크고 강하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반대세력이 강하고 위협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그들이 우리를 해치고 죽일 것 같지만,
그러나 그들보다 훨씬 강하고 크시며 능력 있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은 후에, 대적에게 당당히 맞서면,
대적은 원수사탄 마귀는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찬양 (8~13절)
8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
9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10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오니 주만이 하나님이시니이다
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시인은 “주님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11
평범한 기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평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주님께 길을 묻기보다는
자기의 경험을 의지하거나,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잘못됐다는 말이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주님의 뜻을 심각하게 묻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진정 주의 길을 가르쳐 달라는 기도에는, 용단이 필요합니다.
종종 하나님의 뜻은, 나의 이익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라고 찬송하지만,
주님의 뜻이 정말 이루어질까봐 걱정합니다.
이런 ‘의외의 결과’를 기꺼이 승복할 수 있는 사람만,
“주님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님은 기꺼이 당신의 길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12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13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그는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영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를 음부에서 건지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2~13절)
음부에서 건지셨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죽을 고비에서 건져 주셨다는 말입니다.
사실 다윗은 남달리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긴 사람입니다.
어릴 때는 양을 치면서 사자나 곰과 싸워야 했습니다.
골리앗과도 싸우고
사울왕은 또 왜 그리 다윗을 죽이지 못해 안달을 했는지 모릅니다.
사울을 피해 블레셋으로 갔다가 거기서도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숱한 전쟁을 겪으면서 얼마나 많은 고비를 넘겼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그때 마다 건져주셨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아기스 왕에게 망명을 청하였다가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지은 그의 시편을 읽어보셨습니까? (시34편)
여러분이나 저는 이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지는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을 음부에서 건지신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지옥의 문 앞에서 건지셨습니다.
용서받지 못한 죄 값으로 말미암아 그냥 두면
지옥의 나락에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인자하신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지옥의 문턱에서 건지셨습니다.
그러니 구원받은 우리가 어찌 주를 찬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3.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감사와 영광돌림 (14~17절)
14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생의 어려움 앞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은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시를 읽다보면 그가 외로움에 찌들거나 고통에 짓눌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어요.
오히려 그는 산다는 게 으레 그런 것 아니겠느냐는 투로
자기 생을 싹싹하고 명랑하게 살아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 잠시, 생을 밝고 명랑하게 사는 법을 터득한 한 사람(아마 신앙인)의
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는 ‘저렴하게 행복해지는 능력’을 터득했다고 합니다.
내용인즉, 시디 플레이어를 생일선물로 받고 싶다고 말하는 어머니가 있어 즐겁고,
얼큰한 짬뽕 국물을 사이에 두고 친구랑 먹는 겨울 점심이 즐겁고,
통영으로 2박3일 겨울 여행을 가자고 꼬드기는 친구가 있어 즐겁답니다.
게다가 그는 남을 칭찬하는 능력을 가진 것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훌륭한 점을 한 가지 이상씩은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발견해서 남을 칭찬할 때, 그도 변하고 나도 변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또 일 년 내내 남을 축복하며 살았던 자신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고양이, 개, 새와 나무와 꽃들에게까지도
사랑과 축복을 보내며 살았습니다. 그의 말을 듣다 보면,
어찌 보면 ‘사소하지만 정말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의 어려움 앞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은 누구나 똑같습니다.
그런데 시인 다윗처럼,
우리 역시 외로움에 찌들리거나 고통에 짓눌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기도할 수 있고,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15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16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17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
은총의 표적은 자신을 괴롭히는 원수들이 보고 부러워할 수 있는 증거를 구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이
예수님의 메시아이심을 증거할 수 있는 표적을 구하였습니다.
그것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전자가 선한 목적에서 요구되어진 것에 반해
후자는 그리스도를 시험하려는 그들의 악한 목적에서 요구되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하나님께 어떤 증거를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그것이 선한 목적에서 출발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증거를 구하는 그 행위 자체가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
주1)
1절의 가난한, 히 ‘아니’는 주로 ‘물질적 가난함 poor’을 뜻하지만
그 외 ‘고통받는, 곤고한 afflicted’ 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삼하22:28에는 같은 단어를 ‘곤고한’으로 번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