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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89편 해석, 불순종으로 인한 언약 파기의 위기 때
LNCK
2021. 12. 25. 19:52
◈시89편 해석, 불순종으로 인한 언약 파기의 위기 때 시89:1~52 여러 설교 정리
*너무 길어서 녹음 없습니다
*저작 시기
오늘 본문 시편 89편이 언제 지어졌느냐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릅니다.
-혹자는 유다가 애굽 왕 시삭의 침략을 받았을 때라고 말합니다.
-혹자는 므낫세가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을 받아 포로로 잡혀간 후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다른 이는 유다 왕 요시아가, 애굽 왕 바로 느고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후에 지어졌다 합니다.
그런데 시편 저자는 38~45절에서 유다가 겪은 재난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왕이 패전의 고배를 마셨을 뿐 아니라
왕위에서 쫓겨나기까지 한 이러한 처지에 부합되는 것은
주전 6세기에 있었던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과의 전쟁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 시편은 여호야긴이나 시드기야가 느브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간 직후,
즉 주전 597년이나 586년 직후에 지어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시편 89편은 다윗언약이 파기되는 듯이 보이는 상황,
즉 다윗왕국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시인이 하나님께 다윗언약을 기억하여 보호해 주실 것을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예루살렘 멸망 직후에 그 환난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신들이 망한 것이 너무나도 기가 막혔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얼마나 능력이 많으신 분이십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얼마나 성실하신 분이십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모시면서도
비참한 멸망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인자하시고 성실하십니다.
한번 약속하신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성실하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지키신다는 약속을 깨뜨리시고
그들을 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망하게 한 것은
그냥 대충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폐허가 되게 하셨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무력하게 만들었을까요?
도대체 무엇이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의 손을 꽁꽁 묶어서
유다 백성들을 돕지 못하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이 바로 유다 백성들의 죄요 교만이요 위선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태양이 아무리 찬란하게 비칠지라도 구름이 가리고 있으면
그 빛이 땅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유다 백성들이 생각한 것은 그들이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기만 하면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성실하시기 때문에 다시 그들을 회복시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을 붙들고 기도를 드립니다.
◑1~4절,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첫번째 대창 (서로 주고 받는 노래)
1~2절 : 시인의 노래
3~4절 : 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화답
본문 시89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패망하고 그 백성이 바벨론에 유배생활 하고 있는
그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가 무너졌습니다.
-성전도 무너졌고
-그들의 언약도 없어진 것 같고
-역사도 끊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무너져버린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시인의 간청이 아주 간절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간절함, 그런 것들이
찬양과 노래로 아주 곳곳에 가득 담겨있습니다.
1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 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노래하는 것으로 시편을 엽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렇게 말할 상황이 아니라, 국가의 존폐가 걸린 상황,
나라가 무너질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 때는 탄식과 절망, 울분과 반항을 하기 쉬운 때입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여호와의 인자하심’으로 시편을 시작합니다.
2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여호와’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직접 알려주신 이름으로,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 현존하시는 하나님,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자하심’도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을 뜻하는 말입니다.
언약(약속, 법)은 파기할 때까지 그 효력이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그 언약이 영원토록 이어집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인자(헤세드)’로 번역된 말은
‘하나님의 실패하지 않는 사랑’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무너지는 위기를 맞고 있을 때,
언약의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를 간곡하게 요청하는 시인의 기도가
“여호와의 인자하심”노래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성실하심”도 ‘인자하심’과 거의 비슷한 말입니다.
끈질기고 끝까지 견디는 사랑을 뜻합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영원하다고 고백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파기 되지 않았음을 굳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상황보다도 하나님의 언약(약속)을 더 신뢰하고 있습니다.
언약에 대한 시인의 신뢰는 3절에 이렇게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3~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래서 1~4절은 '대창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창 : 두 무리가 교대로 찬양하는 것.
1~2절에서 시인이 질문을 하고요,
3~4절에서 하나님이 대답을 하십니다.
3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4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셀라)
3~4절은 하나님의 대답인데, 이것이 ‘다윗언약’입니다.
(*1~2절이 '나'는 시인, 3~4절의 '나'는 하나님)
17세기 일본의 시인 중에 마쯔다 마사히때
그가 이런 시를 썼던 적이 있습니다.
"헛간이 타버렸다
이제야 달이 보인다"
시인이 볼 때, 헛간이 다 타버린 거예요.
그가 의지하던 비를 막아주던 자기 집,
자기 안식처라고 생각했던 그의 모든 것들이 다 타버린 거에요.
그래서 화재가 저주인 줄 알았죠.
모든 것이 다 끝난 줄 알았죠.
근데 시인은 그 타버린 헛간에 하늘 위로 환하게 뜬 달이 보인다 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모든 것이 잃어버린 그 상황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변함이 없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는
그 시인의 역설이 그 시에 있었어요.
그런데 본문 시89편을 보니까
이스라엘은 지금 절망적 상황입니다.
성전이 무너졌어요. 이스라엘 역사가 끊어졌어요.
이스라엘의 왕권의 언약도 끝난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모든 것이 다 끝난 상황에서
드디어 변함없으신 하나님이 보이는 거에요.
성전은 무너졌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보좌는 확실하고
하나님의 언약은 끊어졌지만, 그 언약 이면에 계시는
그 언약을 붙드시고, 결단코 자기 언약 백성들을
다시 회복시킬 하나님의 인자하심, 신실하심이 보이는 거에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었던 이 시에서
주위의 사랑과 주의 신실하심(변덕없으심)을 찬양하고 있는 거죠.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만일 ‘언약이 없다면?’
언약이 없다면 성경은 무슨 의미며,
언약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만, 언약이 없다면,
우리의 구속,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 대속, 칭의, 은혜와 같은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주제들은 다 무의미한 것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언약이라는 주제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의 구원이 무의미해지고 가치가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과 십자가의 은혜와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설명하시기 위해서
정하신 “언약”이라는 내용과 그 틀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 구원의 풍성한 내용을 깨달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언약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무슨 의미를 가지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그저 주관적인 자기 강박적 확신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특별히 많은 시편 중에서 “언약의 시”라고 알려져 있는 시편입니다.
이 본문은 위태하고 신앙이 흔들리기 쉬운 상황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있어서
언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의 신앙이 위기에 처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는데,
상황이 그와는 반대로 흘러가는 것을 볼 때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그런 위기를 겪었습니다.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다윗 자신도, 느헤미야도, 다니엘도
성경의 인물들은 다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그때 그들을 붙들어준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언약 신앙이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1
인자(헤세드)는 언약적 사랑, 실패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Love, Lovingkindness
성실(에메트)는 끝까지 변치않는 사랑,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랑입니다.
구약에 '신실하다'로 번역하기도 했고, 신약에는 '미쁘시다'라고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Faithfulness
그러므로 인자 하나만 있어도 견고한 사랑인데,
성실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들어간 하나님의 백성은,
이렇게 영원히 변치 않는 언약적 사랑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본문에서처럼, 다윗의 왕위가 폐하여지는 위기를 닥치지만
그것은 징계이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이 실패하고, 폐기된 것은 아니죠.
성도가 받은 사랑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언약적 사랑의 관계에 들어가려면, '지적 동의'로 예수 믿어서는 안 되고,
회개와 믿음으로 인한 정확한 회심이 일어나야 됩니다.
오늘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해도 그리스도를 붙들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미련해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반드시 얻게 됩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성실하심이 하늘에서 견고하기 때문입니다.
◑5~37절,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두 번째 대창 (서로 주고 받는 노래)
5~18절 : 다시 시인의 노래
19~37절 : 그에 대한 하나님의 화답
마치 집이 다 불에 탄 후에, 비로소 하늘에 달이 보인 것처럼 (앞서 인용한 마츠다의 시)
이스라엘이 망한 그 절망적 상황에서, 시인은 4가지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고 노래합니다.
*5~7절 '거룩하신 하나님'이 보입니다.
*8~10절 '승리하신 하나님'이 보입니다.
*11~14절 '창조의 하나님'을 발견하고 있어요.
*15~18절 시인은 모든 것들이 다 없어진 그 상황 속에서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5~7절 '거룩하신 하나님'이 보입니다.
5 여호와여 주의 기이한 일을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들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하리이다
6 무릇 구름 위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신들 중에서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7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모임 가운데에서 매우 무서워할 이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이시니이다
*8~10절 '승리하신 하나님'이 보입니다.
8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력 있는 이가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
5~8절은, 하나님은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자 권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만약 하나님께 권능만 있고 성실하심이 없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넘어 공포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을 가지시고 변덕을 부리시며,
약속을 어기거나 뒤집는 것을 아주 쉽게 여기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권능은 없으시고, 성실하심만 있다면
하실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으실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를 영원으로 인도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능과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우리의 찬양의 내용이자 목적입니다.
그래서 온 우주에 하나님과 견줄만한 존재가 없으며,
그 어떤 신들과 하나님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경외의 대상이십니다.
또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이 있으신 분이신지 9~10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9 주께서 바다의 파도를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잔잔하게 하시나이다
10 주께서 라합을 죽임 당한 자 같이 깨뜨리시고 주의 원수를 주의 능력의 팔로 흩으셨나이다
‘파도’는 문자 그대로 ‘파도’일 수도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일 수도 있습니다.
파도가 파도라면 하나님께는 자연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심을 의미합니다.
고대로부터 인간에게 물, 특히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말하며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다(사 43: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높은 파도와 같이 대적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게 보여도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면 모든 것이 무력화됩니다.
그리고 고대에는 바다에서 파도가 일어나고, 재난이 생기는 것은
바다 괴물 ‘라합’ 때문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라합도 깨뜨리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아무리 강해도 그저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파리, 모기에게 사마귀나 거미는 공포의 대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보기에는 모두 다 곤충에 불과합니다.
파리, 모기와 사마귀, 거미의 차이보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차이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우리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11~14절 시인은 불타 무너진 지붕 아래서 달을 보듯이
'창조의 하나님'을 발견하고 있어요.
11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12 남북을 주께서 창조하셨으니 다볼과 헤르몬이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나이다
13 주의 팔에 능력이 있사오며 주의 손은 강하고 주의 오른손은 높이 들리우셨나이다
14 공의와 정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
*15~18절 시인은 모든 것들이 다 없어진 그 상황 속에서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
15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리로다
16 그들은 종일 주의 이름 때문에 기뻐하며 주의 공의로 말미암아 높아지오니
17 주는 그들의 힘의 영광이심이라 우리의 뿔이 주의 은총으로 높아지오리니
18 우리의 방패는 여호와께 속하였고 우리의 왕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속하였기 때문이니이다
하나님의 권능을 덧입고 하나님을 향해 소리를 높여
찬양할 줄 아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고, ‘주님의 이름 때문에’ 기뻐하고,
‘주님의 공의로 인해서’ 높아져서, 주님께서 그들의 힘이 되어 주신다고 합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주님(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19~37절, 하나님의 화답
다윗과 맺어주신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회상인데 (주어가 하나님)
하나님은 7가지로 말씀하십니다.
7가지 자기 계시
1) 19~21절, 여호와 나는 너희의 힘이다
2) 22~24절, 여호와나는 너의 목자다, 내가 너를 지키는 자다
3) 25~ 26절, 여호와나는 너의 반석이다
4) 27~29절, 네 번째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여호와 나는 너희 보좌로다'
너희가 앉을 곳, 너희가 거처로 삼을 곳은 바로 나다!
5) 30~32절, '여호와 나는 너희의 심판자이다'
6) 33~35절, 나는 인자하며 신실하신 하나님이다
7) 36~37절, 7번째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여호와나는 너의 소망이다'
1) 19~21절, 여호와 나는 너희의 힘이다
19 그 때에 주께서 환상 중에 주의 성도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능력 있는 용사에게는 돕는 힘을 더하며 백성 중에서 택함 받은 자를 높였으되
20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내어 나의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도다
21 내 손이 그와 함께 하여 견고하게 하고 내 팔이 그를 힘이 있게 하리로다
시편 기자는 “그때에 주께서 환상 중에 주의 성도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19
이라고 언급함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소개합니다. 어떤 계시입니까?
20~37절까지 그 내용이 쭈욱 나옵니다. 일종의 '하나님의 직접 계시'입니다.
먼저 “내가 능력 있는 용사에게 돕는 힘을 더하며” 강한 자에게 힘을 더하신다는 것입니다. :19
그렇게 하심으로, 그에게 능력을 부여해
하나님이 그를 위해 계획하신 일들을 수행하게 하십니다.
‘백성 중에서 택함 받은 자를 높였으되’ :19
여기에서 택함 받은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다윗입니다.
사실 다윗이 왕이 될 만한 자격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찾아내지 않으셨다면 그는 초야에 묻혀 살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명예, 권세, 부(富)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2) 22~24절, 여호와나는 너의 목자다, 내가 너를 지키는 자다
22 원수가 그에게서 강탈하지 못하며 악한 자가 그를 곤고하게 못하리로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 다윗에게 베푸신 은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는 은혜입니다. :21
삼상 18:12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삼상 18:14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삼상 18:28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사울이 보고 두려워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을 당할 자가 있겠습니까?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시는 은혜입니다. :22~23
어떤 원수도 그에게서 강탈하지 못하게 하고 괴롭히지 못하게 하실 뿐 아니라
그 원수들을 멸망시켜 버리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약할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 되셔서 붙들어 주시고,
사탄의 어떠한 공격에도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사 35:3~4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23 내가 그의 앞에서 그 대적들을 박멸하며 그를 미워하는 자들을 치려니와
24 나의 성실함과 인자함이 그와 함께 하리니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의 뿔이 높아지리로다
이 은혜를 베푸실 보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실함(에메트, 변치 않는 사랑)과 인자함(헤세드, 언약적 사랑)이 보증입니다.
이것이 이 시편의 주제이자, 여러 다른 시편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3) 25~ 26절, 여호와나는 너의 반석이다
25 내가 또 그의 손을 바다 위에 놓으며 오른손을 강들 위에 놓으리니
이 말씀은 바다와 모든 섬들을 지배하도록 하겠다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강들이 흐르는 모든 내륙 지방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메시아 왕국의 확장이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26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여호와는 다윗과 특별한 관계를 세우셨습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나의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가 왕으로 등극할 때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일은, 아주 특별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이요 구원의 바위라고 부름으로 충성과 믿음을 드러냅니다.
‘바위’는 힘과 영속성을 강조하는 상징입니다.
여호와의 이런 속성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구원은 확고해진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으로 선택되었을 때 여호와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음을 알았습니다.
그 관계가 견고하려면 믿음과 순종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4) 27~29절, 네 번째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여호와 나는 너희 보좌로다'
너희가 앉을 곳, 너희가 거처로 삼을 곳은 바로 나다!
27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
또한 여호와는 그분의 일로 다윗을 “장자”로 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다윗 왕가의 첫 번째 왕이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유일하시고 진정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이기 때문에,
그는 이 땅의 왕들 가운데 지존자가 될 것입니다.
왕으로서 여호와의 종이 되는 것보다 더 높은 위치는 없습니다.
높은 부르심을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분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지키셨고,
그 결과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이 굳게 세워졌습니다.
이 언약은 또한 영원할 것입니다.
28 그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 영원히 지키고 그와 맺은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며
29 또 그의 후손을 영구하게 하여 그의 왕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5) 30~32절, '여호와 나는 너희의 심판자이다'
30 만일 그의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하지 아니하며
31 내 율례를 깨뜨리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32 내가 회초리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신다는 사실이 은혜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전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여러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억울함을 인내할 수 있는 거에요.
다 판단하시고 가늠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까지 통찰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과 싸우지 않을 수 있는 거에요.
너희가 만약 내 법을 버리고 내 규례대로 행하지 않냐고
내 율례를 깨뜨리고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내가 회초리로 너희들을 칠거야, 너희들을 일깨울 거야!
너희들이 그 죽음의 자리로 계속 가지 않도록 내가 막아설 거야! 하십니다.
6) 33~35절, 나는 인자하며 신실하신 하나님이다
33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는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34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내 입술에서 낸 것은 변하지 아니하리로다
35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 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말을 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위는 폐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은 영불변합니다. 하나님의 입술에서 낸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맹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유다 나라가 바벨론에 멸망당했는데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징계입니다. 징계는 끝이 있고 징계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굳게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7) 36~37절, 7번째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여호와나는 너의 소망이다'
36 그의 후손이 장구하고 그의 왕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37 또 궁창의 확실한 증인인 달 같이 영원히 견고하게 되리라 하셨도다 (셀라)
36절과 37절의 말씀은 바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특히 36절에 해같이, 37절에 달같이... 해와 달은 변치 않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언약은 변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비록 나라가 망하고, 이스라엘 왕권이 무너졌더라도
결코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집에 불어나서 지붕이 무너져도
오히려 그 속에서 달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앞서 인용한 마츠다의 시에 비유해서)
◑38~52절, 위기에 처한 다윗왕국을 속히 구원해 주실 것을 간구함
38 그러나 주께서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노하사 물리치셔서 버리셨으며
39 주의 종의 언약을 미워하사 그의 관을 땅에 던져 욕되게 하셨으며
38~39절, 성도들은 은혜와 자비를 거두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다윗 왕조는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주께서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노하사 물리쳐서 버리셨다’고 말씀합니다. :38
뿐만 아니라 그와 맺은 언약을 미워하사 그의 관을 땅에 던져 욕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39
이스라엘에 기름부음 받은 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에게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기름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영적 나태로 말라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가 아래에 이렇게 나옵니다.
40 그의 모든 울타리를 파괴하시며 그 요새를 무너뜨리셨으므로
41 길로 지나가는 자들에게 다 탈취를 당하며 그의 이웃에게 욕을 당하나이다
42 주께서 그의 대적들의 오른손을 높이시고 그들의 모든 원수들은 기쁘게 하셨으나
43 그의 칼날은 둔하게 하사 그가 전장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하셨으며
44 그의 영광을 그치게 하시고 그의 왕위를 땅에 엎으셨으며
45 그의 젊은 날들을 짧게 하시고 그를 수치로 덮으셨나이다 (셀라)
유다를 살리는 길은 기름 부음 받은 자들이 스스로를 희생하고
이 세상의 재미와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경건을 위하여 힘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름 부음 받은 자(왕, 제사장, 선지자)들이 전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욕심을 모두 채우려고 하니까 유다는 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유다의 울타리가 무너지고 가장 귀한 것은 모두 탈취당하며
이웃의 조롱거리가 된 것입니다.
위와 비슷한 상황이 예레미야애가1:2~4절에도 나옵니다. 참조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실 때 사용하신 방법은
대적들의 오른 손을 높이시고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기쁘게 하셨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의 칼날은 둔하게 하셔서 그들이 전쟁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영광이 끝나게 하셨고 그의 왕좌를 땅에 내치셨습니다. :42~45
흔히들 전쟁에서 승패는 군사력에 달려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기드온의 삼백 용사로 미디안 군대를 쳐부순 사건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바벨론 군대에 무너진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편에 서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긴 유다의 죄악을
채찍과 막대기로 징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조건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윗의 언약에 왜 위기가 찾아왔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은혜를 누리지만,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됩니다.
혹시 지금 내가 겪는 수치와 모욕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요?
46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
주의 노가 언제까지 불붙듯 하시겠나이까
이에 시인은 탄식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는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을 간절히 갈망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임재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절망 가운데서 탄원합니다.
오늘 시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안을 통해 이스라엘의 등불을 끄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깨뜨리시고 다윗의 집안을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약속을 모르면 상관없지만
그들이 이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이 약속을 지켜달라고 요구하면
하나님은 지키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가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유다를 징계하실 수 있지만
망하게 하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영원히 다스리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도대체 언제까지 징계하실 것인지를
질문할 권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징계라는 것은 무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47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시편기자는 극심한 고난의 세월을 살아가면서 인생의 유한함과 허무함을 고백합니다.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그렇습니다. 인생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고 풀과 같은 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이 결코 길지 않습니다. 밤의 한 경점과도 같은 것이 인생입니다.
47절은 이와 같이 인생이 유한하고 허무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서둘러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 살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가 죽음의 권세에서 자신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48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셀라)
49 주여 주의 성실하심으로 다윗에게 맹세하신 그 전의 인자하심이 어디 있나이까
즉 이전에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실 때 베푸셨던 인자하심을
왜 지금은 베풀지 않느냐고 하는 탄식성을 띤 질문을 합니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성실하심(변함 없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시며 영원히 다윗의 자손들에게 인자하심을 베푸실 것을
맹세하셨던 고로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 열조들에게 임했던 것만큼이나
그들에게도 미칠 것을 그는 변함없이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50 주는 주의 종들이 받은 비방을 기억하소서 많은 민족의 비방이 내 품에 있사오니
51 여호와여 이 비방은 주의 원수들이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행동을 비방한 것이로소이다
52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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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89의 표제어는 <에스라인 에단의 마스길>입니다.
시88편의 표제어는 ‘에스라인 헤만의 마스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인 에단과 헤만의 시편이 나란히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이 두 사람은 형제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시편 전체 150편은 5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에서 89편이 제3권의 마지막입니다.
90편부터 제4권이 시작됩니다.
본문 표제를 보면 [에스라인 에단의 마스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헬라어 사본들은 ‘에스라인’을 ‘이스라엘인’으로 그렇게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단은 다윗 때의 에단(대상 15:19)의 자손을 가리키거나,
아마도 이 시인은 ‘여두둔’(시편 39편 참조)과 같은 인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