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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2장 6~10 믿음의 계승을 끊어놓은 죄 + 삿2장 주석
LNCK
2021. 12. 28. 10:50
믿음의 계승을 끊어놓은 죄 | 임진혁목사 | 2021/06/20 |
◈믿음의 계승을 끊어놓은 죄 삿2:6~10 2021.06.20 출처
*사사기 설교 모음
제가 가르치는 이 신앙은, 이제껏 제가 배워온 신앙인데
바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이고, 제 멘토의 신앙이고
하나님을 경험했던 세대들의 신앙입니다.
그 조상들의 생생한 신앙으로, 저는 제 아이를 교육할 거에요.
그리고 여러분을 가르칠 생각입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사실 사사기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사사시대에 백성들이 경험하게 되는 것은
이 경험 자체가, 즉 징계를 경험한 자체가 교육이라는 거죠.
징계는 교육입니다.
◑여호수아의 그 다음 세대는, (사사기 세대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자 그럼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세대의 후손들입니다.
모세나 여호수아, 갈렙같은 영적 거인들의 그늘아래서
수동적으로 따라갔던 세대들입니다.
사실 사사기 세대의 신앙인들은 온실 신앙인이죠. (광야와 기적들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조상의 하나님을 잘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는, 이 광야세대 후손들에게는 필연적이었던 것이고
이 징계는 '조상(열조)의 하나님'을 배우기 위한 필수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징계를 통해서, 그들이 징계를 겪을 때
'괴롭다. 괴롭다'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징계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을 배우기만 하면, 뼈와 살이 되는 것인데
그들은 너무나도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징계를 경험한 후에
바른 선택을 못하고, 우상들을 섬겨 타락하고 말았다는 거에요.
그럼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걸까요?
그 이유의 첫번째는 삿1장에 이어 2장에 나오는 건데
동일하게 지금 1~2장에 반복해서 나오는 것이 "여호수아의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힌트입니다.
저들(2세대)이 왜 저렇게 우상을 선택하고 타락한 것인가요?
여호수아의 죽음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거죠.
2:7절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
그리고 '여호수와 옆에 있었던 모든 벌어지는 큰 일들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 '
이렇게 기록돼 있어요.
자 (여호수아의) 다음 세대는, 앞 세대의 신앙을 모른다는 거에요.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말 결정적인 치명적인 약점은 뭐냐면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경험을 못했다는 거예요.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일대일 체험이 아니라
전설과 무용담에 근거한 피상적인 신앙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말해준 것을, 전해들은 수준으로 살아간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삶에서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체험해보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어요.
자 오늘 본문에 결정적인 구절이 나오죠. 10절입니다.
삿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바로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여러분 비단 이것은 이스라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금 현재 신앙의 세대 차이가 나기 시작했어요. 신앙의 세대차이!
하나님을 뜨겁게 만났던 믿음의 선배들, 조상들의 체험신앙이
지금 다음 세대에서 무시되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성령 '성'자만 나와도, 다음 세대는 아주 무식하고 돼먹지 못한 신앙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어요.
자 이렇게 된 데는 물론 이유가 있습니다.
조상들의 성령 신앙이 일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죠.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1990년대에 활개쳐서 무리한 활동을 벌였고
또 일부 변질된 부흥 강사들의 그런 추한 모습도 한국 교회에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속에서 하필 단골적으로 나왔던 단어가 바로 '성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령님의 역사가 심하게 오해를 받은 것이 지난 세대 한국교회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리한 활동을 한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 문제가 발생한 때부터 다음 세대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체험을, 자기 수준에서 제한해 버리고 무시했다는 거에요.
방언기도도 하지 못하게 하고, 환상이나 통변을 얘기하면
이상한 사람, 광신도, 이단으로 몰기 시작했어요.
교회에서 기도원 가는 것을 막고,
기도원을 이상한 곳으로 비취게 해서, 한국교회에 (부흥)역사를 부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한국교회 부흥의 원동력은 기도원입니다. 기도원이에요.
전국 방방곡곡 산마다 들마다 기도원이 있었고
거기서 뜨거운 기도와 체험을 통해 한국교회는 성장했는데
세계에 유례도 없는 단기간 내에 성장을 이루었는데
그 다음 세대, 그 후 세대들이 그만 이 역사와 족보를 무시하고
어른 세대의 신앙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심지어 안타까운 것은, 젊은 목회자들 중에서도 성령의 역사나 성령의 선물,
은사를 배척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어요. (일부 광신자들을 보고서 그러는 거죠)
제가 볼 땐 거의 불신자 수준의 지도자들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생활에서 '체험'이라는 요소를 아예 빼버린 듯한 한국 교회의 흐름이
2000 년대 초반부터 강하게 시작되었고 (인터넷 방송 시작 시기)
그로 인해 20 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교회를 보게 되면
너무나도 미지근한 신앙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거에요.
▲요 근래에 나온 말들 중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말이 있어요.
청년들사이에서도 많이 쓸 거예요.
'내가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하고 있다'는 그런 말들 이에요.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저는 그게 참 궁금했어요.
'도대체 인격적인 만남의 내용이 그럼 뭐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죄를 버리라거나,
심판을 면해야 된다는 과격한 말들은 없어요.
그냥 '마냥 부드러운 주님과의 만남'을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믿음에 도전을 하는 것도, 광신적인 믿음으로 여기고 있고
그저 하루하루 마음 편하게, 마치 밤마다 연인들이 서로 사랑 고백하듯이
우리 주님이 '내가 너를 사랑해!' 이런 말 듣기만 원하고
그냥 하루하루 별 탈 없이,
주님은 내 삶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인도해주셔야 하고
그렇게 내 삶을 보호해주시는 주님과의 만남을 두고
그들이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갖고 있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여러분 그 인격적인 만남이라는 것에
뜨거운 체험과,
상식을 뛰어넘는 믿음의 도전과,
죄의 권세를 이기려는 결단과 순종같은 제자도는 싹 다 빼버리고
그냥 야들야들하고, 나이스하고, 달콤한 솜사탕 같은
신앙아닌 것들을 두고
그것을 신앙으로 여기고 현대인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거에요.
그걸 영적으로 보게 되면
그건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는
토해 내쳐 버려야 될 미지근한 신앙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신앙을 가지고,
이 시대의 유행하는 기독교 문구들을 그 신앙에 죄다 갖다 붙여서
신앙이니 영성이니 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났습니까?
쉽게 말해 다음 세대들이 기도하다가 불받아본 적이 없는 거예요.
가슴 막 타오르는 경험이 없는 거예요.
기도하다가 혀가 확 말려서 방언이 터져 본 경험도 없어요.
기도하다가 온몸이 떨리는 체험이 없는거에요.
그래서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누가 해준 얘기, 들은 얘기, 큐티 책에 써 있는 얘기,
어느 유명 목회자들의 간증 유튜브 영상..
이런 '정보' 정도를 지금 얘기하고 있는 거지,
그들의 삶에서 단 한 번도, 하나님을 뜨겁게 경험(체험)해 보지 못했다는 거예요.
거기서 나아가 더 심각한 문제는
'아 그럼 나도 저 뜨거운 하나님을 만나보고 싶다!' 가 아니라
누가 하나님을 뜨겁게 경험했다고 하면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 차서
'저게 맞아? 진짜야?' 이런 것을 평생 분석하고 따지다가
하나님을 한 번도 체험해 보지 못한 세대로.. 그 길로 가고 있다는 거에요.
▲그럼 그들이 원하는 신앙이 뭔가요?
제가 살펴보면, 그저 무릎이 없고,
안전하고, 고상해 보이고, 힘 안 드는 신앙을 원하고 있다는 거에요.
뜨거운 체험보다는
그저 머리만 뜨겁고, 가슴은 냉랭한데
지식적인 무게가 너무 넘쳐가지고, 그냥 영적으로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런 황당한 신앙을 좋아한다.. 라는 거에요.
성경공부 좋아하고, 각종 신학강좌 듣는 것을 최고로 여기는 거죠.
여러분, 이 상태에서 한 개인이
이 온갖 유혹과 범죄가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그 죄를 이기고 버텨낼 힘은 없다..고 저는 단언합니다.
한때 한국 교회에서 '말씀이 최고다. 말씀 중심, 말씀 중심!'
얼마나 많이 강조했는지 모릅니다.
그때 저는 안타까웠어요. 말씀 중심은 좋은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균형입니다. 균형을 같이 강조했어야 돼요.
선배들의 기도도 계승해야 되었고,
선배들의 전도도 계승해야 되는데..
말씀풀이(성경해석)만 계승해서
말씀만 드립다 외워라, 공부해라, 찾아라, 깊이 파라!
이런 얘기만 강조해서, 그 결과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교회들마다 불이 다 꺼지고 냉랭해졌습니다.
성도들을 상담해보면, 청년들을 상담해보면 막 아우성이에요.
기도 하고 싶다고! 너무 갈급하다고!
교회 안에 그러니 당연히 예전에 있었던 기사와 이적들은 없어요.
신유도 없습니다. 여러분 신유가 교회에서 끊어졌어요.
그래서 환자들이 나타나도, 그 병을 어떻게 처리해주지 못하는
황당한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 이것은 왜 이렇게 됐을까요?
성령님을 자기네들의 수준에서 제한하고 무시한 대가입니다.
즉 선배들의 체험 신앙을 무시한 결과라는 거예요.
여러분 잊으시면 안돼요.
모세가 없으면 여호수아가 없습니다.
엘리야가 없으면 엘리사도 없어요.
사무엘이 없으면 다윗도 없는 거예요.
지금 우리 한국교회, 많은 교회들에게서
믿음의 계승문제를 실패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럼 이 믿음의 계승 문제에 실패하고 있는 첫번째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사람들 안에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사실 여러분, 이게 다 마지막 때 일어나는 현상 중의 하나거든요.
딤후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어른 세대를 우습게 알고, 교만하며, 자기 중심적인 세대가 일어나
진정한 바른 교훈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거에요.
왜? 자기하고 안 맞아서 부담스러워 해요. 힘이 드는 거에요.
▲근데 저는 이렇게 질문하고 싶어요.
'정말 여러분, 하나님의 법이 힘들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때요. 여러분 대답해 보세요. 하나님의 법이 진짜 힘들어요?
아니요! 지킬 마음이 없어서 힘들어 보이는 거예요.
제가 요즘에 유튜브 영상을 보면, 가끔 격투기 영상이 올라옵니다.
저도 어렸을 때, 20대까지 참 격투기를 좋아하고, 샌드백도 오래 쳤습니다.
아버님이 복싱을 하셨기 때문에, 저도 복싱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열심히 그렇게 운동을 했었는데
자 만일 여러분들이 요즘 격투기를 배우러 도장에 간다고 해보죠.
격투기를 사랑하는 사람과, 격투기에 관심 정도만 갖고 있는 사람 중에
누가 훈련에 열심히 임할까요?
격투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 혹은 다이어트를 목표로 격투기 도장에 온 사람은,
훈련을 잘 할까요? 아니요.
이 사람들은 하나부터 열 가지 훈련이 너무 엄격하고 힘들어서 못 해먹겠다 그래요.
그러나 정말 격투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열정이 있기 때문에, 그 훈련에 대해서 군소리 안 하고 따라서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법이 엄격한 것이 아니에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그냥 할 거고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오늘도 곡소리, 내일도 곡소리 내면서
'아~ 못해먹겠다.. 어렵다.. 순종이 힘들다..' 하는 것입니다.
'꼭 이게 올바른 신앙이냐?' 이렇게 나온다는 거에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일도 동일해요. 하나님의 법은 원래 힘든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을 이제 막 갖기 시작한 사람들이
대충 믿음과 신앙생활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정리해 놓은 자료들이 있잖아요.
그게 막 또 시중에 책으로 나오기도 하고, 인터넷에도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에 대해 "관심 정도"를 가진 사람들이 써낸 서적들을 접하고
그런 교육을 교회에서 오랫동안 받아온 신자들에게
이들에게 진짜 신앙훈련을 딱 얘기하게 되면
이게 원래 신앙인데도, 딱 얘기해주면
자꾸 '힘들다. 힘들어서 못 믿겠다'고 아우성인 거에요.
자 여러분 만일 현대 교회에
과거 우리 믿음의 조상인 사자굴에 들어갔던 다니엘이 와서
요즘 현대교인들의 신앙을 보면 뭐라 그럴까요?
A성도, '아 주님, 저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뭐라 그럴까요?
'저게 믿음이 아닌데.. 아니 왜 자꾸 믿음 아닌 걸 믿음이라고 그러지?' 이럴 겁니다.
B성도, '제가 순종을 하려고 했는데, 이게 힘들더라고요.' 그러면
다니엘은 '네가 뭐 순종했냐?' 그럴 겁니다.
C성도, '제가 주님 나라 위해서, 술 안 먹는 그 직장을 선택했는데
그 전에 있던 직장이 페이를 더 많이 주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두번째 직장을 갔는데
내가 주님 나라를 위해서 순종하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어요..'
막 이렇게 간증을 하니까
선지자 다니엘이 듣고는 '그게 뭐가 힘들다는 거야? 신앙은 원래 그런 거야!'
이렇게 얘기할 겁니다.
만일 성경인물들이 지금 한국에 와서,
여기에 대단한 슈퍼스타 목사님들이 간증을 할 때
회중들은 다 놀래 자빠지지만, 혹은 재밌다고 막 웃겠지만
다니엘이 그 설교나 간증을 들으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님께 대한 갈망이 있는 사람들은
'힘드네, 뭐 죽을 것 같다니, 뭐 이런 게 신앙이냐?'
이딴 소리 안 합니다. 그냥 딱 결단해버려요.
그러나 자기를 사랑하는 이 세대가
과연 믿음의 선배들과, 신앙의 선배들이 전해 준
성경적 조언과 그 신앙을 잘 이어받을 수 있을지 참으로 걱정스럽다는 거에요.
◑자 그럼 우리들만 잘못한 게 아니에요.
믿음의 계승이 실패한 원인 두 번째는
부모 세대가 어느 때부터인가
자녀 세대들에 대한 진리 교육을 게을리했다는 거죠.
부모 세대들이 자녀들을 등한시 여기며 가르친 거죠.
자 한국교회를 보면요. 어느 시점까지는 신앙이 잘 전수되고
영적 위업들이 잘 물려 내려왔어요.
그런데 어느 때부터가 딱 끊어졌어요.
신앙의 선배들이 후배들을 양성하는 것을 게을리했습니다.
가르칠 마음을 잃어버렸어요.
참 죄송한 얘기지만, 그거 알려주면
자신이 당대에서 최고가 되고, 내가 인기를 누려야 되는데
후배들이 자기 인기를 뺏어갈 수 있는 거에요...
목사들이 부목사에게, 설교 어떻게 하는지 안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와가지고 설교 기회는 주지 않고 냅다 그냥 서류 정리하는
그냥 행정직으로만 돌려버려서
수련을 해야 되는 부분 중에 설교라는 파트가 있는데
설교를 한 번도 제대로 훈련, 연습을 안 시켜줘서
이게 개척을 나오고 목회를 해보면
설교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그제서야 다시 훈련하려고 하는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는 거죠.
이게 뭘까요? 어떻게 보면 자신이 당대에 최고가 되고 싶다는 욕심때문에
사람을 길러내지 않은 거예요.
예전에는 한국교회의 획을 긋는 종들이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그 교회에) 나와 주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참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지금 신앙의 대가 끊긴 느낌이 들기도 해요.
믿음의 계승이 제대로 이어지고 있나에 의구심이 듭니다.
▲음악가들이 가끔 하시는 말이 있더라구요. 세계 3대 테너가 있었습니다.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 입니다.
이 대단한 세계 3대 테너가 있었는데 다들 뭐라고 하시냐면
그 다음 타자들이 안 나오고 있다는 거에요.
왜냐? 안 가르쳐 주셨어요.
자기네들은 실력이 대단한데, 그 어린 학생들이 코 묻은 돈 가져와 내면서
'가르쳐주세요' 부탁하면, 가르쳐줘야 하는데
가르치는 게 성가신 거예요. 그래서 안 가르쳐 준 거에요.
그래서 그 뒤를 잇는 테너들이 나오지 않고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뤄야 됩니다.
이 설교를 누가 듣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여러분 자신이 그래도 신앙의 선배라고 생각이 든다면
후배들이 하나님을 뜨겁게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지금 이 설교를 장년이 듣고 계시다면
장년 세대의 고귀했던 신앙과 삶과 예배를
그 다음 세대들에게 전수해주셔야 되고
또 지금 청년세대는, 집에 있는 그 말썽쟁이 동생들을 붙잡아 놓고
여러분이 뜨거웠던 신앙과 삶과 예배를 가르쳐 줘야 돼요.
다음 청소년 세대들에게
지금 우리의 것을 물려줘야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저도 참 가진 것 없고,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가 계속하고 있는 것은
제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정말 안들을 때도 있는 것 같아요.
듣든지 아니 듣든지.. 성경에 입각해서
체험 신앙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늘 듣다가 보면, 제가 제 멘토에게 그러했듯이
여러분 중에 몇 명은 전심으로 주를 따르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저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말씀을 전합니다.
근데 사람들이 '그냥 나만 알면 되지 뭐, 나만 복 받으면 되지 뭐,
나만 이 예배때 뜨거우면 되지 뭐, 기도 때 이런 음성을 들으면 되지 뭐!'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영향을 받을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다면
우리에게 마땅히 전해야 할 책무가 있는 거예요.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하나님의 진노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 조상의 하나님과, 조상의 신앙을 배워야 되는 지금 중요한 타이밍인 겁니다.
그런데 이 사사기 때 백성은
애초에 주님께 마음이 없는 세대라서
징계가 이제 그쳐지고 하나님이 숨좀 쉬게 해주자마자
우상에게로 가버렸습니다.
바알과 아스다롯 우상은, 물질과 재미와 쾌락을 약속하거나 제공해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한테 가면, 따분한 말씀과 경건의 훈련이 있으니
당연히 하나님께 마음 두지 않은 세대가
우상들에게 가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닙니까!
▲여러분, 솔직히 여러분도 그렇지 않아요?
오늘 이곳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 여러분은
사실 세상에서 1% 안에 드는 청년 세대입니다.
지금 이 시간은 주일 오후 네시 인데,
이 땅의 청년들 중에 몇 명이, 과연 지금 교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어요?
다들 재미없어 할 것 아닙니까?
가장 놀기 좋은 나이에, 놀지 말고 교회에 오라니
오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여기 오는 사람들은, 저는 이렇게 생각이 들더라고요.
적어도 주일 오후의 나른한 시간에
이제 광란의 일요일 밤을 즐기려고 하는 이 청년 세대가
왜냐하면 내일 출근해야 되니까요. 학교가야 되니까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놀고 싶지 않겠어요? 인간적인 마음에.
그런데 여기 교회에 와있단 말이에요.
이것은, 자기 마음이 조금이라도 하나님께 있는 사람만
여기에 나온다고 저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이 중에서 여러분,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지금 그 마음이 적던/ 크건
그 마음으로 이 자리까지 나왔다면
여러분 그 사랑하는 마음을 빨리 키우셔야 합니다.
죄와 유혹이 점차 강해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신앙과 양심을 지키기 힘들고
낙오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 가지 않고
또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안심할 수도 없는 노릇은
양다리 신앙인들이 앞으로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양다리 걸친 신앙인들이 있기 때문에
사실 목회자로서 청년예배에 참석을 했다 하더라도
제가 그렇게 마음을 푹 놓을 수는 없는 상황이에요.
왜냐하면 여러분의 마음 안에 혹시 이런 마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동안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것은 있고
내가 교제권, 친구들이 다 교회 안에 있으니까
교회는 뭐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고
또 그렇다고 세상을 버릴 수도 없고
주님을 전적으로 따를 용기도 없고
세상을 완전히 버릴 용기도 없고
자연스럽게 양다리 신앙이 되어간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어요.
자 이런 양다리를 취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징계를 내리시는데
너희들에게 약속한 그 가나안 땅을 주려고 한 것은 맞는데
그 속에 있는 가나안 주민들은 내 God 가 내쫓지 않고
그들이 오히려 너를 괴롭히게 할 것이다... 그랬어요.
그때 막 곡소리가 나고, 막 울부짖기 시작하잖아요.
이런 악성 패턴이 계속 나와요.
너무도 울부짖으니까... 하나님이 사사를 보내서 구원해 주시고..
그러면 또 범죄해서 고통을 당하고.. 그러면 또 울고 부르짖고.. 이 패턴이 반복됩니다.
여러분 사사기를 보면,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의 책입니다.
이 사사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울부짖는 게 회개 기도가 아니거든요.
'나 괴로워 죽겠다'고 원망 반, 불평 반, 또 회개 반.. 막 뒤섞여져 있는 울부짖음 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불쌍하니까
사사를 보내셔서 그들을 건져주세요.
그러면 그들은 또 죄를 짓고, 또 고통을 받고
심판을 받아 고통을 받고 또 간구하고
그럼 또 사사를 통해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해 주시고
이게 계속 반복해서 돌아가는 거예요.
▲자 보십시오.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이 있대요.
그들 사이에 고통을 주는 것이 뭐냐?
그게 너희를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너희를 좀 테스트하고자 했다는 것이
오늘 본문 삿2장에 나오고 있어요.
만일 너희가 이 가나안 민족으로 인해서 고통을 겪으면
내가 그때 너희들의 태도를 좀 보고 싶다는 거에요.
1) 고통이 찾아오면, 너희 조상들처럼
하나님의 도를 따르는지/ 거스르는지 내가 지켜보겠다..
이걸 테스트하고자 하신 것이고,
2) 두번째 이 사사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모르는 세대 아닙니까? 전쟁을 치러 본 적이 없어서 몰라요.
부모가 다 치렀지 뭐 애들이 뭐 했겠어요?
그러니까 전쟁을 모르는 이 세대가
전쟁의 시련을 한번 겪게 하면서
바로 부모 세대들이 가졌던 그 신앙,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하는 그 체험적 신앙을
가르쳐주고 싶으신 거에요. 그래서 전쟁을 치르게 하신 거죠.
지금 제가 여러분에게 백번 말해줘도 소용이 없는 게
여러분이 한 번 경험을 해보셔야 돼요. 무슨 얘긴지 아시겠죠?
아무리 많은 걸 얘기해도, 여러분 삶 속에서 깨달은 사람들만이
오늘 이 말씀이 들리고, 무릎을 치게 되고, 감동이 일어나고 회개가 터지는 거죠.
저도 제 멘토에게 십년 동안 말씀을 들은 것이 있어요.
그런데 그 말씀을 들은 것을, 제 삶 속에서 가만히 조용히 순종을 해봤는데
그 (삶의) 훈련들을 해 나갈 때, 여러분 제 삶에 변화가 있더라고요.
그분께서 겪으셨던 체험을
제가 이 강단에서 말할 수 없지만, 저도 겪은 적이 있어요.
물론 우리 멘토 목사님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제 삶 속에서 그 하나님을 만났어요.
최근에도 그것을 경험하고 제 혼자
'야 이게 정말 되는구나, 정말 이런 것이구나!'
한번 제가 경험을 해보니까, 어떻게 되는지 알겠더라고요.
늘 십 년 동안 들었던 말씀인데, 제가 한번 몸으로 체험을 해버리니까
하나님을 절대 못 놓겠더라고요.
그리고 더 이전보다 목마르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제 자신을, 훈련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어요.
왜 겪었기 때문에, 겪었기 때문에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셨던 그 테스트는
대실패였습니다.
그 시험을 하는 것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었어요.
왜냐면 백성들은 애초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나리오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게 여러분 삿2장에 요약적으로 쫙 나와 있는데
이 삿2장은 사사기 전장을 요약해주는 장입니다.
아주 중요한 사사기의 두 번째 서론인데
자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나리오로 가지 않았는데요
그게 17절, 19절입니다.
2:17 '그들이 그 1)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2)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이들이 얼마나 변함없이 완악한 마음을 가졌는지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사들에게 사사들에게 순종하지 않았어요.
조상들의 순종의 신앙에서 속히 치우쳐 떠났다 그랬어요.
2:19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않았어요.
그치지 못한 게 아니라 그치지 않았다고...
이 말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단 말입니다.
사사가 죽고 나니까 더 타락했어요. :19
그건 애초에 하나님께 마음 자체가 없었다는 거에요.
사사가 죽은 후에, 이전보다 더 심하게 우상숭배했어요.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에 2세대 3세대가 지난 다음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불과 한 세대가 지났는데, 바로 다음 세대인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영적 성적표를 쥐고 있는 거에요.
자 이제 하나님의 테스트를 완전히 실패로 뭉개버린 결정적인 물증이 나오는데
그것이 삿3:5~7절까지입니다.
삿3:5~7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방금 매 맞고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하나님이 불쌍해서 일방적으로 그들을 건져주셨는데
지금 방금 매맞았는데,
그리고 또 다시 그 죄를 짓고 있는 거예요.
계속 그들 가나안 족속들과 동거하면서
심지어 그 딸들을 아내로 맞이하고 (가나안 주민을 내쫓는 게 아니라)
통혼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내로 맞이해서, 그 이방 신들까지 섬겼어요.
결국 사사기 1장에 살펴봤던 대로
그 땅에 우상이라는 지뢰를 매설해 놨다가
결국 지금 우상숭배 라는 지뢰가 드디어 폭파라고 말았습니다.
그 지뢰는 결국 터져버렸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완전히 초토화시킨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악은 어떤 모양도 버리는 거예요.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부정한 것을 만지지도 말아라'
그건 주님이 왜 그러신가요?
바로 그 지뢰를 매설해 놨다가, 지금은 안 터질 것 같지만
그건 반드시 터져서, 여러분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는 거에요.
▲여러분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상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최악의 밭인 '길가' 밭입니다.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그냥 새가 와서 물어가 버리잖아요.
여기서 밭은 너희들 마음이고, 그 새는 마귀다. 그랬어요.
마음에 하나님 말씀이 던져자마자 새가 확 채가는 거예요.
돌밭이라고 해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아요.
신앙의 뿌리가 너무 얕아서, 훌훌훌 미풍에도 다 뽑혀버리는 신앙이 돼버리는 겁니다.
게다가 여기서 끝나지 않죠.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절대 대충 넘어가지 않고
이렇게 확실하게 규정을 해 두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너희들아 너희는 영적인 창녀들이다' 그랬어요.
영적 창녀들!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규정해 놓았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팀 켈러 목사님은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혼한 창녀였다.' 이렇게 규정했어요.
즉 이스라엘은, 남편된 하나님과 신혼생활이 끝나자마자
바람나서 집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거에요.
마치 호세아서에 나오는 고멜과 같은 여자인 거죠.
겔16:33~36 '그러므로 너 음녀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네 누추한 것을 쏟으며
네 정든 자와 행음함으로 벗은 몸을 드러내며
또 가증한 우상을 위하며 네 자녀의 피를 그 우상에게 드렸은즉'
여러분 제가 경험한 것 중에,
지금까지 살면서 확실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뭐냐면
하나님이 누구를 축복해주시는 내용보다도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진노를 발할 때입니다.
그게 유독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왠줄 아십니까? 그게 지혜로운 거에요.
하나님이 무엇에 대해서 진노하시는지, 그걸 잘 분석하고 파악하면
적어도 여러분, 내가 버림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참 두려웠던 경험이 있어요.
제 멘트목사님께서 어느 여자 분을 안수기도를 해주시는데
그 분의 머리에서 손을 딱 떼시고 난 후에, 표정이 아주 좋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이렇게 나지막하게 물으셨습니다.
'성도님, 점을 보러 가셨나요?'
왜냐하면 목사님의 마음 안에, 하나님은 진노의 목소리로
그 여자 분의 머리에 손을 대자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어요.
'이 악한 자야, 너는 우상에게 절을 했다.'
박 목사님이 너무 무서워가지고, 안수하던 손을 떼고 감정을 추스르신 후에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물어보신 겁니다.
그때 그 여자분은 이렇게 발끈했어요.
'제가요? 제가 왜 우상에게 절을 하나요.
목사님이 틀리셨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제가 왜 거기 점집에 갑니까?'
그때 목사님께서 하나씩 하나씩 말씀을 하기 시작하셨어요.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때 이분은 두 손, 두 발을 들었죠. 그 이유는 뭐냐?
교회에 가서도 자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까
점집을 가서 그걸 다 점을 본 거에요. 그걸 다 이실직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그 사람이 너무 상황이 딱 하니까
점집 한번 찾아간 거, 그게 여러분 여러분 보기에 아주 사소한 것 같습니까?
성경은 이것을 두고 '영적 간음'이라고 여기는 거에요.
여러분 간음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아시죠?
부모 중에 한쪽 간음으로 인해, 고통 당해본 여러분 청년들있습니까?
그 가정이 다 깨져버리잖아요.
부모의 불화로, 그 자녀들은 큰 고통을 당합니다.
영적 간음 역시 파괴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여러분, 내 마음에 하나님과 우상을 같이 두고 있는 것은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깨닫고, 우리의 영적 간음을 종결지어야 됩니다.
▲그리고 이 영적인 간음으로부터
이 우상 세대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오늘 이 사사기 2:1절에서 제시해주고 있어요.
그게 뭐냐? 길갈의 믿음을 회복하라는 거에요.
자 여러분, 삿2장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사자가 길갈에서 올라왔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이런 연유에서그렇습니다.
삿2:1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길갈 신앙'에 대해서는 다른 설교에도 많이 나오므로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