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CK
2021. 12. 31. 08:39
◈사사기 5장 주석 삿5:1~31 출처
1 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가로되
ㅇ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본절만으로는 본장에 기록된 찬송이
'드보라'와 '바락'의 공동 저작인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3, 7절에서 본 찬송의 1인칭 주어가 '드보라'인 점을 고려할 때,
이 노래는 '드보라'의 저작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본절에서는 왜 두 사람이 노래한 것으로 언급되어 있는가?
드보라는 야빈 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사실을 기념하여
바락은 물론이고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미하는 일에 동참하기를 원했었다.
그리하여 히브리 노래의 한 유형인 화답송(和答頌)의 형태로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한편 성경에는 여인들이 지은 노래로 본장 외에
'미리암의 노래'(출 15:21), '한나의 노래'(삼상 2:1-10), '마리아의 노래'(눅1:46-55) 등이 있다.
2 이스라엘의 두령이 그를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ㅇ이스라엘의 두령(영솔자들)이 그를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지도자와 백성의 평행법이다.
백성들이 지도자들의 말을 따라 기꺼이 헌신하여 전투에 참가한 것을 가리킨다.
이는 바락이 군사를 모집하자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 일만명이 지원한 것(4:10)과
그외 여러 지파도 적극 조력한 사실(4,15절)에서 잘 나타난다.
ㅇ여호와를 찬송하라
본시(本詩) 전체의 내용은 언뜻 볼 때 전쟁에 참여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헌신과 용기 그리고 연합에 대하여 노래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배후에서 친히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데 진정한 목적이 있었다(3,5,11,13절).
3 너희 왕들아 들으라 방백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ㅇ너희 왕들아 들으라 방백들아 귀를 기울이라
본절에도 역시 강조를 위한 '평행법'이 사용되어 본문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왕들 - 방배들)
그런데 본절에 언급된 '왕들'과 '방백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지칭한 말이 아니다.
그 근거로는 (1)당시 이스라엘에는 왕이나 방백이 없었다는 점이다. 또한
(2)'왕'이란 단어가 복수 형태를 취하여 여러 나라의 왕들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4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도 새어서 구름이 물을 내렸나이다
ㅇ주께서...진행하실 때에
여기서 드보라는 자기 선조들의 출애굽 노정 때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역사적인 사건을 회상하고 있다.
즉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 강림하셨다'는 모세의 회상과 연관지어(신 33:2),
드보라는 야빈과의 전쟁도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ㅇ하늘도 새어서 구름이 물을 내렸나이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진 것을 뜻하는 시적 표현이다.
이는 노아 홍수를 연상케 한다. 즉 노아 홍수 때에도 하늘의 창들이 열리고
땅의 샘이 터져 40주야 비가 쏟아졌다는 식으로 표현되어 있다(창 7:11,12).
이처럼 드보라는 하나님의 기이하신 능력을 찬양함에 있어서 과거 실제적으로 발생했던 사건
들을 중심으로 노래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생함을 더해주고 있다.
5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산도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ㅇ시내 산도...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시내 산'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약의 율법을 베푸신 장소였다(출 19:18).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모세와 대면하실 때 그 주위는 연기로 자욱함과 동시에 온 산이 진동하였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위엄과 영광과 권세를 나타내신 것이다.
그런데 드보라가 여기서 그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최근에 드볼 산과 기손 강을 중심으로 시스라와 싸워 대승한 사실(4:12-16) 역시
그같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는 사건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6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은 소로로 다녔도다
ㅇ삼갈의 날...야엘의 날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족과 하솔 왕 야빈의 압제 하에서 고통당하던 때를 가리킨다.
이때 '삼갈'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던 블레셋 사람 600명을 소 모는 막대기로 죽여
이스라엘을 구원했었다(3:31). 그리고 '야엘'은 이스라엘의 압제자 야빈 왕의 군대 장관인 시스라를
지혜롭게 처치했었다(4:17-22).
ㅇ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은 소로로 다녔도다
당시 이스라엘의 황폐상을 표현한 것이다.
즉 당시에는 블레셋족과 야빈의 압제가 극심하여 상거래(商去來)도 없었으며
법질서도 마비되어 있었기에 노상(路上)에서 약탈 행위가 빈번히 자행되었다.
때문에 약탈, 폭행 등을 피하여 행인들은 큰길로 다니지 않고
소로로 다녀야 할 형편에 처해 있었다.
다시말해 블레셋족과 야빈의 압제 하에서 이스라엘은 경제가 핍절되었으며,
무법 천지가 되어 백성들에게 평안이 없었던 것이다.
7 이스라엘에 관원이 그치고 그쳤더니 나 드보라가 일어났고 내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의 어미가 되었도다
ㅇ나 드보라가...이스라엘의 어미가 되었도다
야빈의 학정에 시달리던 이스라엘에는 참된 지도자가 없었는데,
드보라 자신이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특히 여기서 '어미'라는 표현은 욥이 자기에게 의탁하던 자들과 관련하여 스스로를
'빈궁한 자의 아비'라고 고백한것과(욥 29:16)같이
하나님께서 보낸 '보호자'란 의미를 지닌다.
다만 드보라는 자신이 여성이므로 '어미'란 표현을 사용했으며,
욥은 자신이 남성이므로 '아비'란 표현을 사용했을 따름이다.
8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미쳤으나
이스라엘 사만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고
ㅇ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
이스라엘에 이방인의 압제와 전쟁의 참화(慘禍)가 임하게 된 원인이다.
즉 이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과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킨 탓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상과 이방신들을 가리켜 '새신들'(new gods)이라 표현한 것은
그것들이 과거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전혀 알지 못했던 것들(신 32:17)이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은 영원하시고 참된 신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마치 새 옷 입기를 즐기는 어린 아이처럼 새 신(神)들을 섬긴 것이다(2:17;3:6,7).
ㅇ전쟁이 성문에 미쳤으나...방패와 창이 보였던고 -
드보라는 대적들이 이스라엘을 에워싸고 곧 공략하려 드는 일촉 즉발의 위기 상황을
'전쟁이 성문에 미쳤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에겐 적을 방어하거나 공격할 무기가 변변찮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철병거를 지닌 하솔 군을 격멸시켰는데,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이적과 권능을 베풀어 이스라엘을 도우셨기 때문이다(4:12-16,23,24).
따라서 드보라가 당시 이스라엘에 무기가 있었느냐고 반문한 것은
역설적으로 바로 이 같은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ㅇ이스라엘 사만 명 - 시스라와의 싸움을 위해 출전하였던 이스라엘의 주력군은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 군사 일만 명이었다(4:10).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사만 명'은 어떻게 된 것인가?
아마 이는 이들 주력군을 도와 같이 전쟁에 참전하였던 이스라엘 여러 지파의 병력을 합한
대략적 수효일 것이다. 즉 14,15절을 보면 시스라와의 싸움에는
비단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 뿐 아니라
에브라임, 베냐민, 므낫세 반, 잇사갈 지파 등이 참여했었음을 알 수 있다.
9 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방백을 사모함은 그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하였음이라
여호와를 찬송하라
ㅇ앞 부분에서의 분위기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구절이다.
즉 6-8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중단하므로
압제자의 멍에에서 신음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본절에서부터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고서
기뻐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더욱이 본절에서 드보라는 하나님과 화해를 이룬 이스라엘 방백들이
시스라와의 전투에 즐거이 헌신한 사실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다.
이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사실의 재차 반복이다. 2절 주석참조.
ㅇ내 마음이...사모함은 - 이처럼 드보라가 이스라엘 방백들을 사모하였다는 말에 대하여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이를 다음과 같은 뜻으로 보았다.
"나는 참으로 그들을 사랑하며 존경한다. 그들은 영원토록 내 마음을 차지하였다.
나는 결단코 그들을잊지 못할 것이다"
즉 이는 곧 이스라엘의 방백과 두령들이 자신을 도와 전쟁에 적극 참여하고,
솔선 수범한 것에 대하여 드보라가 깊이 감사하고 있는 말이다.
10 흰 나귀를 탄 자들, 귀한 화문석에 앉은 자들, 길에 행하는 자들아 선파할찌어다
ㅇ흰 나귀를 탄 자들 - 이스라엘 사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것은 어린 나귀를 탄 것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상류층에 속한 신분임을 암시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10:4;12:14).
ㅇ화문석(양탄자)에 앉은 자들 - '화문석'은 오늘날에도 평민들이 구하기 힘든 귀하고 비싼 물건이다.
따라서 '화문석에 앉은 자들'이란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부유하고 여유있는 계층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ㅇ길에 행하는 자들 - 일반 평민 또는 행상(行商)을 가리킨다. 이들은 압제자의 시대에는
마음놓고 길을 갈수 없었으나(6절), 하나님께서 그 대적들을 훼파하셨으니(4:12-24)
이제 안전하게 길을 갈 수 있었다.
한편 이상과 같은 흰나귀 탄 자, 화문석에 앉은 자, 길에 행하는 자들이란
결국 이스라엘 모든 계층, 모든사람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11 활쏘는 자의 지꺼림에서, 멀리 떨어진 물 긷는 곳에서도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을 칭술하라
그의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의로우신 일을 칭술하라
그 때에 여호와의 백성이 성문에 내려갔도다
ㅇ활 쏘는 자의 지꺼림에서, 멀리 떨어진
여기서 '활 쏘는 자'란 다름아닌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심하게 괴롭혔는지는 4:3에 잘 암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로부터 '멀리 떨어졌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에 대한 대적들의 압제가 종식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 이들을 진멸하셨으니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다시금 평화가 찾아든 것이다(10절).
ㅇ물 긷는 곳에서도...칭술하라
여기서 '물 긷는 곳'이란 우물을 가리킨다.
그런데 보통 고대 근동 지역의 우물은 마을 어귀에 있었다(요 4:5-8,28).
그래서 이스라엘이 적의 압제 하에 있을 때에는 마음놓고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적들을 분쇄해 주셨으니 안심하고 물을 길으러 갈 수 있게 되었다.
드보라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두고서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을 칭술하라'한 것이다.
ㅇ여호와의 백성이 성문에 내려갔도다
고대 사회에서 성문은 백성들의 주요 회합(會合) 장소였다.
그곳에선 비단 상거래 뿐 아니라 공식 재판, 중요 사항 공지, 친교 등이 이루어졌었다(창 19:1;신 21:19;느 13:19).
그러나 이스라엘이 야빈과 시스라의 군대와 전쟁하는 동안에는 이러한 회합이 이루어질 리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고(4:12-24) 다시금 팔레스틴에는 평화가 깃들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백성들은 생활의 주요 무대인 성문으로 모여들 수 있었는데,
본절은 바로 이같은 사실을 가리킨다.
12 깰찌어다 깰찌어다 드보라여 깰찌어다 깰찌어다 너는 노래할찌어다 일어날찌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찌어다
ㅇ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노래할지어다
- 드보라가 이처럼스스로에 대하여 네번이나 '깰지어다'는 말을 반복한 것은
자신을 향해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즉 그녀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 앞에서 영적으로 깨어
그 놀라움과 영광을 힘있게 찬송할 지도자적 책임이 있었다.
ㅇ바락이여...네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여기서 '사로잡은 자'란 바락이 시스라군을 진멸할 때 생포한 포로들을 가리킨다.
드보라는 바락에게 이제 그들을 끌고서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가라 하였는데,
이는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케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민수기 23:1절에 나오는 발락 : 파괴자", "약탈자"란 뜻을 가진 모압의 왕 Balak
거짓선지자는 발람 Balaam : '이방인, 탐닉자' 라는 뜻
본문 삿5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장군은 바락 Barak : 아비노암의 아들로 이름의 뜻은 '번개.
13 그 때에 남은 귀인과 백성이 내려왔고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강림하셨도다
ㅇ남은 귀인과 백성이 내려왔고
야빈의 압제 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정에 시달렸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재산과 가족을 외국으로 피신시키거나 아니면 그 와중에서
적에게 살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20년 동안 야빈의 압제 하에서도(4:3) 굳건히 살아남은 백성들이 있었으니
이들이 곧 시스라와의 전투에 참여한 것을 가리킨다(4:6-10).
ㅇ여호와께서...용사를 치시려고 강림하셨도다
- 여기서 '용사'란 야빈의 군대 장관인 시스라와 그의 군사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대적과 싸우시기 위해 나서신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서 '여호와께서 강림하셨다'는 것은 그분이 눈에 보이게 이 땅에 임하신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는 그분이 초자연적인 이적으로 적들을 패퇴시키며 이스라엘을 도우신것을 가리킬 뿐이다(4:15).
14 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는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요
그 다음에 베냐민은 너희 백성 중에 섞였으며 마길에게서는 다스리는 자들이 내려왔고
스불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가 내려왔도다
ㅇ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는 아말렉에 뿌리박힌 자요
에브라임 지파 중 이번 전투에 참가한 자들은 전에 아말렉 족속이 거주했던 지역(12:15)의 사람들
이란 의미이다.
그런데 70인역에 따라 RSV와 공동 번역에는 이 '아말렉'이 '골짜기'로 번역되어 있다.
아마 이는 과거 에브라임 지파의 영토 내에서 아말렉 족속이 거주했던 지역이
에브라임 산지와 그 골짜기 주변이었던 점에 근거한 번역일 것이다.
ㅇ베냐민은 너희 백성 중에 섞였으며
본절을 통해 볼 때 베냐민 사람들은 일개 지파의 자격으로서 참전한 것 같지는 않다.
대신 그들은 여러 지파들 틈에 섞여 개인적으로 참전(參戰)했던것 같다.
이는 아마 그들이 팔레스틴 남부 지역에 위치해 있었던 탓에
북부 지역의 지파들과는 달리 야빈의 압제를 덜 받았기 때문일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야빈과의 전쟁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고
자연히 일부 사람들만이 개인적으로 전쟁에 참여했을 것이다.
ㅇ마길에게서는 다스리는 자들이 내려왔고
'마길'은 므낫세의 독자였다(창 50:23).
그런데 이 '마길'의 자손, 곧 므낫세 지파 중 절반은 요단 동편에 정착하였으며(수13:29-31)
나머지는 요단 서편에 들어갔다(수 17:1-13).
따라서 본절에서 '마길'이라는 표현은 이 중 요단 서편에 거한 므낫세 반 지파만을 의미한다.
이 지파는 아셀, 스불론 그리고 잇사갈 지파와 북쪽 경계를 이루며 살았으므로
잇사갈 지파의 경내에 있는 다볼 산(4:12)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한편 여기서 '다스리는 자들'이란 군대의 지도자들을 의미한다.
이는 곧 므낫세 지파에서는 군 지휘관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내려왔음을 알려 준다.
ㅇ스불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가 내려왔도다
'대장군'에 해당하는 원어 '소페르'는 '계수하는 자' 또는 '서기관' 등의 뜻이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 단어이다.
그런데 '대장군의 지팡이'가 무엇을 지칭하는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의 여지가 있다.
즉 RSV, NIV, Living Bible, 공동번역 등은 모두 개역 성경과 같이 번역하고 있으나
KJV에서만은 '작가의 붓'(pen of the writer)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KJV의 번역을 지지하여, 스불론 사람들은 시돈 사람들처럼
상업에 능하고 장사를 전문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도 전쟁 경비를 계산하는 일을 맡아 보았다
고 주장한다(P. Cassel). 그러나 이 해석은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서기관'은 전시에 국민을 초모(招募)하는 일도 맡아 보았으니(왕하25:19;렘 52:25),
스불론 지파는 그 전쟁에 있어서 서기관의 직무를 담당했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15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하니 잇사갈의 심사를 바락도 가졌도다
그 발을 좇아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르우벤 시냇가에 큰 결심이 있었도다
ㅇ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하니
잇사갈 지파도 스불론, 납달리 지파(4:6,10)를 돕기 위해 드보라와 행동을 같이 하였으며
친히 방백들이 자기 지파를 인솔해 나온 것을 가리킨다.
ㅇ잇사갈의 심사를 바락도 가졌도다
즉 바락이 잇사갈 지파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것을 가리킨다.
RSV는 이를 '잇사갈이 바락에게 충실하였다'(Issachar faithful to Barak)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준해 공동 번역도 '잇사갈도 바락에게 충성을 바쳐'로 번역하고 있다.
ㅇ그 발을 좇아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 잇사갈 지파가 바락의 군사와 더불어
시스라 군대를 치기 위해 다볼 산에서 기손 강가로 내려간 것을 의미한다(4:14,15).
ㅇ르우벤 시냇가에 큰 결심이 있었도다
르우벤 지파가 차지한 요단 동편 땅에는
시내가 많이 있었고, 그에 따라 목초지가 널려 있었다(수 13:15-23).
드보라가 르우벤 지파의 지경(地境)을 가리켜 '르우벤의 시냇가'라는 표현을 쓴 까닭은 이 때문이다.
한편 본절에 의거하면 르우벤 지파는 타지파로부터 전쟁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직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큰 결심'이란 표현은 16절의 '마음에 크게 살핌'(히크레 레브)이란 표현처럼
그들이 전쟁에 참여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에 대하여 많은 토론이 있었다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16 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 앉아서 목자의 저(피리)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찜이뇨
르우벤 시냇가에서 마음에 크게 살핌이 있도다
ㅇ본절은 르우벤 지파가 다른 지파의 전쟁 소식을 듣고도
평안한 목자의 생활에 안주하고 있음을 비꼬는 내용이다.
즉 다른 지파들은 전쟁의 나팔 소리를 듣고 모두들 참전, 전쟁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14,15절)
르우벤 지파는 편안히 목자의 저(笛)부는 소리를 들으며, 단지 탁상 공론만을 벌였다는 것이다.
ㅇ양의 우리 가운데 앉아서 - 기록에 의하면 르우벤 지파는 갓 지파와 더불어
이스라엘 여러 지파 중에서도 특히 많은 가축들을 소유하고 있었다(민 32:1).
그들이 요단서편 땅에서 기업을 차지하지 않고 요단 동편의 모압 북방 지역을 기업으로 차지한 까닭도
그 때문으로서, 그곳은 목축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목축사업은 날로 번창하였을 터인데, 본절은 바로 이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ㅇ마음을 크게 살핌이 있도다
공동 번역은 이를 '끝도 없이 토론이나 벌이는구나'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곧 15절의 '큰 결심이 있었도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17 길르앗은 요단 저편에 거하거늘 단은 배에 머무름은 어찜이뇨 아셀은 해빈에 앉고
자기 시냇가에 거하도다
ㅇ길르앗은 요단 저편에 거하거늘
'길르앗'(Gilead)은 넓은 의미에서 요단 강 동편의 전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중심부는 갓 지파가 차지하고 있지만 북쪽으로는 므낫세 반 지파,
남쪽으로는 르우벤 지파의 지경에까지 뻗쳐있는 요단 동편의 산지가 곧 길르앗이다.
그런데 이 중 르우벤 지파는 이미 앞에서 언급되었으니(15,16절), 여기서
'길르앗'이란 갓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드보라는 이들지파 역시 요단 동편땅에 거하면서 동족의 전쟁에 조력지 않았음을 책망하고 있다.
ㅇ단은 배에 머무름은 어찜이뇨
이 표현은 단 지파도 르우벤 지파나 갓, 므낫세 반지파와 같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자기들의 이기적인 생활을 즐기고 있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특히 '배에 머무르다'라는 표현은 단 지파가 뱃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베니게 사람들과 함께 욥바에서(수 19:46) 무역을 했다는 의미이다.
ㅇ아셀은 해변에 앉고 자기 시냇가에 거하도다
여기서 '해변'과 '시냇가'는 각기 지중해변을 가리킨다.
'아셀 지파'는 지중해 연안에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야빈의 압제가 가장 심했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에 연접해 있었다(수 19:24-3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기 동족들의 전투에 무관심하며
자기들의 생업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18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ㅇ들의 높은 곳
납달리 지파가 거주하던 게네사렛 호수 북서쪽의 산악 지역(수19:32-39)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의 정예 부대 만 명이 집결했던 다볼 산을 가리킨다(4:6,12).
그곳에서 스불론, 납달리 지파는 시스라 군을 맞이하여 일사 각오의 정신으로 용감히 싸웠던 것이다.
19 열왕이 와서 싸울 때에 가나안 열왕이 므깃도 물 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돈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ㅇ열왕이 와서 싸울 때에 - '열왕'은 북부 가나안의 여러 동맹군을 지휘하여 싸우러 온 시스라(4:13) 및
동맹군들의 군사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여호수아 때에도 하솔 왕 야빈은 북부 가나안 지경에 거주하던
열왕들과 동맹군을 형성해서 여호수아의 군대와 메롬 물가에서 싸운 적이 있었다(수 11:1-9).
ㅇ므깃도 물가 다아낙 - '므깃도 물가'는 므깃도와 남쪽 산지사이, 즉 므깃도 후방의 분지로 흘러 들어가는
마른 계곡인 '와디'(Wadi)를 가리킨다. 이곳은 우기 때 비가 와야만 물이 흐른다.
이러한 사실은 14세기의 유대인 학자 에쉬토리 하파리(Eshtori Haparhi)에 의해서 밝혀졌다.
따라서 '므깃도 물가'는 기손 강(4:7)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4:7,15 주석 참조.
한편 '다아낙'은 '므깃도'에서 불과 8km도 채 안되는 이스르엘 계곡의 남쪽에 위치한 성읍이었다(수 12:21).
기손 강은 평지를 지나 므깃도와 다아낙의 북부로 흘러 들어갔다.
ㅇ돈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 '돈'에 해당하는 '케세프'는 구약 시대 당시
화폐로 통용되었던 '은'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쟁시 취하는 전리품이나
노획물 따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즉, 시스라와 그 동맹군들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전리품을 얻고자 하였으나
하나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진멸당하고 말았던 것이다(4:15,16,23,24).
20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ㅇ별들이...시스라와 싸웠도다 - 칼데아역(The Chaldee)은 본절을 '하늘로부터 별들이 나오는 곳에서
시스라에 대항하는 싸움이 시작되었다'로 번역하고 있다(Matthew Henry Commentary, Vol.II.p.149).
그러나 이 역시 정확히 무슨 뜻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 요세푸스(Josephus)는 본절을 다음과 같은 의미로 이해한다.
즉 하나님께서 시스라의 군대 앞에서 일으키신 바람과 벼락, 폭풍우와 우뢰로 인하여
원수들이 진멸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Lange, Pulpit Commentary).
이러한 견해는 본장이 곧 시스라와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현상을 이용하여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신 사실에 대한 노래인 점(21절;4:15)에 비추어 볼 때 매우 타당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자들도 이에 찬동한다.
즉 본절은 하나님께서 대자연의 힘을 빌어 이스라엘을 도우신 사실에 대한 시적 표현인 것이다.
역사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파하기 위해 사용하신 자연 현상들은
바람, 하수, 뇌성, 우박, 숯불, 번개등 아주 다양하다(출 14:27;15:10;수 10:11;삼상 7:10;시 18:13,14).
21 기손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강은 옛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ㅇ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기손 강'은 겨울 우기를 제외하고서는 보통 메말라 있었으므로
시스라의 군대가 그 주변에 주둔할 수 있었다. 4:13 주석 참조.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강을 범람케 하셨으니
시스라의 무리들은 표류할 수 밖에 없었다.
즉 그때 시스라의 군대는 뜻하지 않은 재난으로 인해 우왕 좌왕하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군대를 칼로 쳐 파했었다(4:15).
ㅇ기손 강은 옛 강이라 - 드보라가 '기손 강'을 '옛 강'이라 부른 이유에 대하여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오래 전부터 고대 역사가들이나시인들이 그곳을 찬양해 왔거나
아니면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시스라군을 멸하시기로 예정하셨기 때문인 것으로 주장한다.
그리고 어떤 학자는 그 강 가에서 옛부터 무수한 전쟁이 있었기 때문에
그 강이 옛날부터 유명해진 탓으로 추정한다.
그밖에 단지 기손 강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흘러 내려온 오래된 강이기 때문에
'옛 강'으로 불리웠다는 주장도 있다.
이상과 같은 견해를 종합해 볼 때, 기손 강은 드보라시대에 이미 옛날의 어떤 사건들과 연관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ㅇ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 본절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개역 성경과 KJV, 그리고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밟았다'고 해석한 공동번역 등은
본절을 시스라 군대에 대한 이스라엘의 완전한 승리(4:12-24)를 노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밟았도다'에 해당하는 원어 '티드레키'가 명령형인 점에 근거,
다른 영역본들은 이를 달리 번역하고 있다. 즉 RSV, NIV, Living Bible 등은 본절을
'내 영혼아 힘차게 진군하라'(March on, my soul;be strong !)로 번역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시스라와의 전쟁 당시 드보라가 힘차게 이스라엘군을 격려했던 사실을
노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어쨌든 본절은 시스라와의 전투에서 용맹히 싸웠던 백성들을
치하하는 것이므로, 양 견해 중 그 어느 쪽을 택하여도 무방하다.
22 그 때에 군마가 빨리 달리니 말굽소리는 땅을 울리도다
ㅇ군마가 빨리 달리니...땅을 울리도다 - 시스라 군이 패퇴하여 급히 도망치는 것 뿐 아니라
이스라엘 군이 그 뒤를 맹렬히 추격한 것(4:15,16)을 가리키는 시적 표현이다.
즉 시스라 군은 목숨을 부지(扶支)하기 위하여 사력을 다해 도망친 반면
이스라엘 군은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다 진멸하기 위하여 말발굽 소리도 드높게 그 뒤를 추격한 것이다.
23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 거듭 그 거민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ㅇ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 '메로스'에 대한 저주와 '야엘'에 대한 축복(24절)은
드보라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대언한 것일 뿐임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ㅇ메로스를 저주하라...치지 아니함이니라
'메로스'란 지명은 본절 외에 성경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주받아 마땅한 메로스의 죄는 분명히 나타나 있다.
이에 근거해 볼 때 '메로스'는 기손 강 부근에 위치해 있었던 마을임에는 분명하다.
혹자는 이를 사마리아 북방 약 20km지점에 위치한 '메루스'(Merrus)일 것으로 추정한다.
아무튼 메로스 거민은 압제자의 손에서 구원받고자 싸우는 이스라엘을 도와줄 의무가 있었던것 같다.
그런데도 메로스의 주민은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이스라엘을 돕지 아니하므로
간집적이나마 폐해를 끼쳤었다.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메로스를 저주하였는데,
이는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도운 탓에 하나님의 축복을받은 야엘(24-27절)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24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거한 여인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ㅇ겐 사람 헤벨 - 모세의 장인인 르우엘과는 일족(一族)이다.
ㅇ야엘은 다른 여인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 야엘에 대한 축복은 '메로스에 대한 저주'와 대조된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압제자와 사귀고 있었고
자신 또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4:11)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러한 야엘의 행동에 대하여서는 앞장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4:17-22).
따라서 그 의의 및 제반 사항에 대하여서는 4:21 주석을 참조하라.
25 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우유를 주되 곧 엉긴 젖을 귀한 그릇에 담아주었고
ㅇ우유...곧 엉긴 젖 - 여기서 '엉긴 젖'에 해당하는 원어 '헤므아'는 '두껍게 엉긴 젖'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고급 우유를 의미하는 '할라브'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여기서 '우유'와 '엉긴 젖'은 같은 의미를 지니면서 서로의 뜻을 강조해 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는 히브리 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행법적 표현이다.
26 손으로 장막 말뚝을 잡으며 오른손에 장인의 방망이를 들고 그 방망이로 시스라를 쳐서
머리를 뚫되 곧 살쩍을 꿰뚫었도다
27 그가 그의 발 앞에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그의 발 앞에 꾸부러져
엎드러져서 그 꾸부러진 곳에 엎드러져 죽었도다
ㅇ4:21에 언급된 장면의 반복 기사이긴 하나 사건을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드보라가 야엘의 의거(義擧)를 노래하고 있는 것은 가냘픈 여인이 한때
이스라엘 백성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를 죽인 사실을 부각시켜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었다.
ㅇ살쩍 - 사람 얼굴의 귀와 눈 사이에 태양혈(太陽穴)이 있는 부분, 즉 '관자놀이'를 가리킨다.
28 시스라의 어미가 창문으로 바라보며 살창에서 부르짖기를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고 그의 병거 바퀴가 어찌하여 더디 구는고 하매
ㅇ창문으로 바라보며 살창에서 부르짖기를 - 이 말은 자식을 전쟁에 보낸 후
그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안타까이 기다리는 어머니의 일반적인 심정을 나타낸다.
29 그 지혜로운 시녀들이 대답하였겠고 그도 스스로 대답하기를
ㅇ지혜로운 시녀들이 대답하였겠고 - 드보라가 시스라의 어미를 위로한 시녀들을 가리켜
'지혜로운 시녀들'이라고 언급한 것은 역설적인 의미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즉 그녀들은 시스라가 전리품을 많이 탈취하느라고 이렇게 늦을 것이라는 말로써
시스라의 어미를 위로하였다(30절). 하지만 정작 시스라는 그러한 기대와는 달리 이미 죽고
말았으니 그녀들의 생각과 위로의 말은 어리석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30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 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놓은 채색옷이리로다 곧 양편에 수놓은 채색옷이리니
노략한 자의 목에 꾸미리로다 하였으리라
ㅇ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
시스라가 적들과의 싸움에서 당연히 승리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시스라는 전쟁 때마다 승승 장구하여 많은 전리품을 갖고 돌아왔었기에
시스라의 어미와 시녀들은 이번에도 그가 굉장한 전리품을 가지고 오리라 기대했던것이다.
아무튼 드보라는 이 표현을 통해 시스라가 전쟁에 능한 자임을 설명하면서
그러한 그를 죽인 야엘의 용기를 역설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러한 시스라와의 싸움에서 이긴 이스라엘의 승리가
매우 값진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ㅇ사람마다 한 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 전쟁시 여인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노예로 삼거나
아니면 첩으로 삼는 경우는 고대에 흔히 있던 일이다(신 21:10-14).
그런데 시스라의 모든 병사들이 제각기 한 두 명의 여인을 포로로 얻지 못하였겠느냐는 말은
곧 시스라군이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고 굉장한 전과를 올렸을 것이라는 뜻이다.
ㅇ양편에 수놓은 채색옷 - '채색옷'에 해당하는 '리크마'는 다앙한 색깔의 자수품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옷감의 안팎을 손이나 베틀로 수놓아 만든 옷을 가리키는데
고대에는 매우 값비싸 주로 상류 계층 사람들만 착용 했었다(창 37:3).
ㅇ노략한 자의 목 -
'노략한 자'는 시스라를 가리키며 그가 승리를 기념하여
채색옷을 감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31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ㅇ본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처분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즉 이스라엘의 대적이자 하나님의 대적인 시스라를 망하게 하셨던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모든 대적들을 그와같이 처리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 자들에 대해서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이 미래가 영광스럽게 되도록 축복해 달라는 의미이다.
ㅇ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 이것은 전쟁의 결과를 요약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기간은 전쟁 이후 드보라가 살았던 기간이며(비교, 2:18),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공경하며 살았던 기간을 지칭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