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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5장 1~12 깨어라 드보라여 노래하라 드보라여!

LNCK 2022. 1. 1. 11:21

◈깨어라 드보라여 노래하라 드보라여!    삿5:1~12       2017/10/20 스크랩, 녹취  
                                                                         *사사기 설교 모음  

▲도입 / 고통중에 부르짖은 이스라엘

4:1~2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팔아버렸습니다.'

그 야빈이 20년 동안 지금 이스라엘을 학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4:3
얼마나 그 압제가 극심하였든지, 노상에서 약탈하는 행위가 너무 컸기 때문에 
사람들이 대로 로 다니지 못하고 오솔길로 다녔다고 했습니다. 5:6

그때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대적이 쳐들어와도 그들을 구원해줄 리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힘들어서 못 살겠다고 울부짖었습니다. 
압제를 당하고 그래서 회개해서 하나님 앞에 돌이킨 게 아니고요. 
철병거로 다스리는 군대가 너무 힘들어서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4:3

스스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간 것이 아님에도 
이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돌이키게 된 거죠. 
너무 어려우니까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5:10절에 보면 '귀족과 부자와 서민이 다 하나가 되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흰 나귀를 탄 자들(부자), 양탄자에 앉은 자들(부자), 길에 행하는 자들(빈자)아 전파할지어다' 5:10

C S 루이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기쁨속에서는 우리에게 속삭이시고 
우리의 양심속에서 말씀하시지만 
고통속에서는 크게 소리치신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시는 하나님의 메가폰이다.' 이렇게 얘기했거든요. 

혹시 여러분 중에 지금 어려움 가운데 고통당하는 분이 계십니까? 
고통 중에 더 크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큰 소리로 '내가 여기 있다'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고통스럽다고 울부짖는 이스라엘은 
그 울음 속에서 드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1. 드보라가 들었던 그 음성 첫번째는, 
주님은 드보라에게 "일어나라"고 부르셨습니다. 

5:7절에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쳤도다'  

'나 드보라가 일어나기까지, 이스라엘의 어머니인 내가 일어나기까지, 
이스라엘에서는 용사가 끊어졌다.' (새번역)

이 말은, 드보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의 어미가 되기까지.. 이렇게 뻐기는 게 아니고요, 
오죽했으면, 오죽사람이 없었으면 나 같은 사람도 나섰겠냐? 이런 말입니다. 

24절에 보면, '장막에 거하는 여인들'이라고 나오는데요. 
그 때 당시에는 여인들이 주로 하는 일은 '장막에 거하는' 일이었습니다.
좀 리얼하게 표현하면 '방구석에 묻혀 사는 여인들'입니다. 

네 여자가 별로 인정받지 못하던 그 당시에 
하나님은 영적으로 깨어있고 순종하는 드보라를 통해서 
그 땅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시작한 것입니다. 

▲왜 주님은 여자들을 불러 세우셨을까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사실은 다 생명을 유통하는 자들이지만 
특별히 여자들의 정체성이 '생명을 낳는 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엡2:1~5절에 보면, '그는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랬거든요. 
구원받았다는 게 뭐예요? 우리가 살아났다는 거잖아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자기의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았던 우리,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살리셨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살아난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하여서 
다른 생명을 살리도록 하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창1:28절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이 창조명령은 잊어버리고요.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을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니에요. 말씀을 자세히 보면 임신하고 출산하는 이것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입니다. 

문제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임신하고 출산하는 일에 수고와 고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악을 선용하셔서 
이 출산의 고통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시고 
자녀 양육하는 수고로움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니까 
얼마나 이 생명이 신비한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게도 생명의 가치가 불분명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말이 유행했거든요. 
그래서 젊었을 때 저는 '둘만 낳아서 잘 길러야 되고, 애가 많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을 보니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고 
자녀가 많은 것이 축복인 거에요. 

여러분 자녀가 여럿인 가정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어머 복을 받았어!' 이런 생각이 드세요? 
아니면 '아이고 어찌 다 키우려나?' 이런 생각이 드세요? 

오랫동안 우리 안에 형성된 세상의 가치관이 
진리를 만나면, 충돌해서 갈등을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이건 반드시 충돌해야 되고 갈등을 일으켜야 됩니다. 
그리고 갈등이 진리로 결론이 나야 되는 거에요. 

▲예를 들면 태아가 생명이기 때문에 낙태는 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이 내 상황이 되면 어떨까요? 

십대의 딸이 임신을 했다거나 
임신한 소식을 들었는데 태아가 장애인일 가능성이 100% 라거나 
아니면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운데, 원치 않은 임신이 되었다면 어떻게 할까요? 

한번은 집사님 얘기를 들었습니다. 
너무 어려운데 애들도 이미 여럿인데, 임신이 됐다는 소식을 알게 된 거에요. 

남편은 키울 형편은 안 되고 
그렇다고 낙태를 하려니 그게 죄라는 걸 알기 때문에 
울고 있는 남편을 보면서, 아내가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알아서 한다'고 
그리고 나가서 아내 혼자 아이를 유산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오래오래 흘러서 피눈물 흘리는 회개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날마다 우리의 삶에는, 성경대로만 살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이해가 되고,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이 제1 가치'라는게 우리에게 평소에 확고하게 서 있지 않으면 
우리가 부딪치는 상황에 따라서 
우리는 그 상황에 따라 결정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위기가 되면 자기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결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이지만 저희 시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2년이 넘는 세월을 중환자실과 요양원을 왔다 갔다하시다가 소천하셨습니다. 

저는 병원에 아버님을 뵈러 갈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생을 주를 위해서 (목회자로) 헌신하신 우리 아버님이신데 
어떻게 이렇게 인생의 마지막에 험하게 보내셔야될까?' 
이런 생각이 제가 병원에 갈 때마다 드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2년 2개월의 시간을 보내면서 
제가 시아버님으로부터 너무나 귀중한 교훈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생명은, 학식이 있거나 재산이 있거나 유능하거나에 상관없이 
어떤 생명도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중환자실에 있는 생명이나 
활발하게 활동하는 생명이나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제가 병실에 누워있는 아버님을 뵈면서 배웠습니다. 

성경은 '생명'을 (소중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삶의 질'을 (제1 가치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이' 절대가치입니다. 
세상은 '내가' 중심이 되어서 
모든 가치의 평가는 내가 상대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는 사사기의 문제가 
지금 이 시대에도 그대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명의 가치가 절대 가치가 되면 
다른 것들의 위치가 명백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드보라를 '이스라엘의 어머니' 로 부르시고    5:7 
생명을 살리는 사명으로 부르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생명이 절대 가치가 될 때, 
어떻게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이 가치로 우리를 불러내신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하나님은 "깰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12
 
밥하고 살림하던 드보라가 주님의 음성을 듣는 거예요. 
무엇에서 깨어나라고 하는 것이죠? 

세상에 죄악에 대해서 무감각하고 외면했던 자리에서 
깨어 일어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4:5절에 보면, 집에서 살림만 하던 아줌마 '드보라가 
나무 밑에서 백성들을 재판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동안 드보라로서는 무관심했던 그러한 일이 
자기 일(사명)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무감각한 그 자리에서 
주님이 깨어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지금은 한 해 한 해 뿐 아니라, 하루하루가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가치관이 도전을 받고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작년에 어떤 택시운전사가 쓰러졌는데 그 택시에 탔던 사람이 
골프 치러가는 비행기 시간이 늦어서 
그것을 몰라라 하고 간 일이 뉴스에 나왔습니다. 
'어떻게 생명에 대해서 그렇게 무감각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무감각한 정도가 아니고요. 
남의 생명을 취해서 자기 유익을 얻게 되는 그러한 뉴스들이 계속 보도되고 있습니다. 

아까도 기도제목으로 나왔지만, 아이들이 자기 친구를 괴롭히면서 
그것도 잔인하게 괴롭히면서 쾌감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무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보편적인 사람의 감정, 또는 보편적인 사람의 양심
이런 것들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어떻게 마음대로 죽이면서 
우리가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의 생명을 구원해달라고 하나님께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자살도 굉장히 심각한 문제지만요. 
지금 우리나라에는 동반자살의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이 보통 죽을 결심을 했다가도, 그 결심을 실행 하려고 하면 겁이 나서 
자살을 돌이키는 경우가 반은 넘습니다. 

그런데 동반자살은 서로가 서로를 묶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살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까 기도제목에도 나왔지만, 탈북한 사람들은 인신매매 팔리게 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여자는 성매매로, 남자들은 노동하는 일에 팔립니다. 

예전에는 그 두 가지에서 제외되었던 노인들이나 아이들은 
그냥 중국에 버려져서 살았는데 
지금은 그들마저도 이용을 당하고 있습니다. 

배고프고 가난한데, 데려간 아저씨가 밥 먹여주니까 이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굶주리고 영양실조인 사람들을 살찌워서 
장기를 적출하는 일에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적출된 장기가 어디로 가는지 아십니까? 
그 수요자들은 바로 중국 사람들과, 대부분의 한국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너무 무섭지 않아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핵무기로 일어나는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요. 이런 얘기 듣기 싫으시죠? 
저도 이런 얘기 듣기 싫고, 보기도 싫었어요. 
그래서 뉴스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고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것입니다. 
외면하면, 그 외면의 대가가 우리 발 앞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이 안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사방이 다 우글거리는 늑대가 되어서 
어떻게 우리 아이의 안전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내가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내 옆집 아이를 위해서 
내 아이 때문이라도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영향을 받으니까요)

본문 삿5장에 보면 똑같은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드보라가 갓지파에게 전령을 보내서, 전쟁에 나오라고 얘기합니다. 
에브라임, 베냐민, 스불론 이런 지파들이 하나님께 순종해서 나왔어요. 

그런데 전쟁에 나오지 않는 지파들도 있는 거에요. 
15~16절에 보면 르우벤 지파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르우벤 지파는 전쟁에 같이 나가자는 통지를 받았어요. 

그런데 '우리는 돌볼 양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두고 가?
양떼는 누가 돌볼 거야?' 

그래서 결정한 게 뭐예요?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15, 16
르우벤 지파가 다 만장일치로 그 싸움에 안 나가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17절에 ‘길르앗은 요단 저편에 거하거늘’
'길르앗'은 넓은 의미에서 요단 강 동편의 전지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중심부는 갓 지파가 차지하고 있지만 
북쪽으로는 므낫세 반 지파, 남쪽으로는 르우벤 지파의 지경에까지 뻗쳐있는 
요단 동편의 산지가 곧 길르앗입니다. 

그런데 이 중 르우벤 지파는 이미 앞에서 언급되었으니(15,16절), 
여기서 '길르앗'이란 갓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죠.

그들은 아마 요단강을 건너가는 게 부담스러워서 안 나갔습니다. 
거리가 멀다고 납달리 와 스불론 지파가 벌이는
하솔과의 전쟁에 안 나갔습니다. 4:6

단지파는 바다에서 무역을 하고,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못 간다고 했습니다. :17
자기들을 구원하는 싸움인데도, 그들이 출전하지 않았어요. 

오늘날에도 똑같아요. 논도 사고 밭도 사야 되고 
시집가고 장가도 가야 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맨날 살던 대로 그대로 사는 거가 무서운 일입니다. 

신29:19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복을 빌어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이 완악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멸망할지라도 
내게는 평안이 있으리라 할까 함이라' 이렇게 사람들이 말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뭐 어떻게 되겠지.. 누군가는 하겠지..' 
이 무관심과 방관때문에 우리가 다같이 죽어가는 것입니다. 

▲또 깨어나야 될 것이 "두려움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드보라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그는 고향에서 정치적인 기반을 잘 닦아서 여의도에 입성한 게 아니잖아요. 
갑자기 하나님이 불러갖고, 정치 지도자가 된 거잖아요. 

사람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고.. 
그러니 얼마나 드보라가 두려웠겠어요.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특별히 여자들에게 
무관심한 자리에서 일어나 라고도 하시지만 
두려워하는 자리에서도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2주 전에 저희 목사님의 설교가 계시록 2장의 서머나 교회에 대한 말씀이었어요. 
말씀을 준비하는 내내 저희 남편 목사님은 한 주간 동안 
'아~ 고난을 당하지 않은 내가, 어떻게 이 설교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고민을 얘기하면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사모인 저는 어떻게 설교할까 되게 궁금했거든요. 
그 날 1부 예배 때는 굉장히 눈물을 주체하기 힘든, 고백적인 설교를 했습니다. 

저도 설교를 들으면서 굉장히 많이 울었습니다. 
그날 '영성일기'에 제가 이렇게 썼습니다. 

"남편이 자신을 통과한 말씀을 전할 수 있어서 
그 말씀에 제가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주님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 기쁩니다. 

고난의 길로 부르시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가기를 주저한다거나 
혹은 자기 자신을 쏙 빼고, 여러분(제 삼자)이 그렇게 사십시오.. 했다면 
그 설교가 무슨 생명이 있겠습니까? 

'주님이 고난의 길로 부르시려고 (우리를) 준비시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감당하기에는, 저희가 너무나 연약한 인간임을 알기에 
마음이 일렁이었습니다. 

그러나 편안한 자리에 있어도 
믿음의 삶은 늘 충동과 충돌과 선택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제가 (교회 앱에) 그날 썼습니다. 

▲여러분 겔24장에 보면,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아내가 죽은 상황에서도 울지 말고, 사명의 길을 가라고 하십니다. 

제가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은 너무 하신거 아냐?
아내가 죽었는데 울지도 말라니 너무하신 거 아냐?' 이렇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명의 길 한가운데 서 보니까 
그거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가야 될 오직 한 길이었습니다. 

에스겔에게 말 못하는 자가 되라고 해도 
머리를 밀고 수염을 깎으라 해도 
390일 동안 오른쪽으로 누웠다가 왼쪽으로 누웠다가 이렇게 하라고 해도 
심지어 아내가 죽었을 때 울지 말라고 해도 
묵묵히 에스겔은 그 자리를 가는 순종을 드렸습니다. 

겔37장에 보면 에스겔이 대언해서
마른 뼈가 일어나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일이 나오잖아요. 

누구나 마른 뼈를 향하여 대언하고 생기를 불어넣으면 
그 사람들이 다 일어나는 거 아니더라고요. 

매일 자기의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주님께 순종을 드린 삶의 드린 자만이 
그렇게 대언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시91:1~2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라고 시편기자가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안전하기 위해서 위험한 일을 거부합니다. 
그런데 진짜 눈이 띄여서 보면, 십자가를 통과하여 사명을 감당하는 그 자리가 
제일 안전한 자리입니다. 

위험해 보여도요. 
진리를 거스르는 세상을 향하여 싸우는 자만이 안전한 것입니다. 

우리의 안전은, 주님의 지키심 아래 있을 때만 안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삿5:23절에는 메로스 주민에 대한 저주가 나옵니다. 
약삭빠르게, 전쟁에,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지 않았던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저주가 나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세상 가치를 추구하는 데서 깨어나라"고 하십니다.

28절부터 보면, 시스라의 엄마의 얘기가 나옵니다. 
'왜 우리 아들 안 돌아와?' 하면서 
전쟁 끝에 전리품을 가지고 올 아들을 문간에 서서 안타깝게 기다리는 
시스라의 엄마의 얘기가 나옵니다. 

늘 전리품을 한가득 씩 싣고 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승리해서 전리품을 가지고 올 거야' 이러고 기다리는 거에요. 

그런데 엄마가 몰라서 그렇지, 자기 아들 시스라는 
야엘 이란 여인이 말뚝을 박아서 죽였잖아요. 

전령이 가지고 올 건 아들 시스라의 죽음의 소식인데 
엄마는 아들이 가지고 올 전리품, 이 보석들을 기다리고 문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너무 극단적입니까? 여러분은 어느 편을 택하시겠습니까? 
부귀영화를 가지고 
아들이나 딸을 통하여 영화를 누리는 시스라의 엄마를 택하겠습니까? 

아니면 두려움을 무릅쓰고라도 
시스라의 이마에 말뚝을 박은 야일 이라는 아줌마의 길을 택하겠습니까? 

여러분 중간처럼 보이지만 중간은 없어요. 
하나님을 가장 큰 가치로 붙잡고 살던지 
아니면 세상 가치를 붙잡아서, 하나님의 가치가 내 안에서 소멸되게 하든지 
둘 중에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저희 유치부 아이가 헌금을 했어요. 
근데 그 유치부 전도사님이 그 헌금봉투에 쓴 말이 너무 귀여워 가지고 
저한테 캡쳐를 해서 사진으로 보내줬어요. 

유치부 애니까 여섯살 인데요, 헌금봉투를 두 개 냈어요. 
하나는 십일조, 하나는 감사헌금이에요. 

그런데 십일조 봉투에 뭐라고 썼냐면 
마춤법도 다 틀리게 쓰면서 
'하나님 아버지, 제가 하나님께 만원을 드리는 게 아까워요. 
그렇지 않게 해주세요.' 십일조 봉투에다 이렇게 썼어요. 

그리고 감사헌금 봉투에는 또 이렇게 썼어요. 
'하나님 아버지, 제가 돈을 좋아해서 
하나님께 돈을 드리기 싫은 마음을 받아주세요.' 

너무 귀엽죠? 
근데 이 애가 헌금을 이렇게 드리고나서 
그날 전도사님한테 나와서 기도를 받았대요. 

그때 기도 제목이 뭔지 아세요? 
'하나님, 제가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해가지고 전도사님의 기도를 받았다는 거에요. 

여러분 유치원에 다니는 애만 해도, 돈 좋은 거 알고요,
돈의 가치와 그 힘을 알아요. 

그런데요. 너무 놀라운 건 
이 아이가 돈을 좋아하는 걸 끊는 길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라는 걸, 얘가 어떻게 알았을까요? 

성령님이 가르쳐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날 유치부 교사들이, 아이의 그 헌금봉투를 보고 
회개하는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어른들 똑같아요. 돈 좋아하고 돈 사랑하고 돈의 힘을 알아요. 
그런데 어른이 아이와 다른 거는요. 
정직하게 '내가 돈 좋아해, 돈을 사랑해' 이걸 인정하지 않는 거에요. 
감춰두고요. 스스로도 속고, 남도 속이고, 덮어두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 안에서 깨어나야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가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낙심에 자리에서 깨어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늘 이혼을 꿈꾸면서, 자기 가방에 이혼 서류를 넣고 다니셨던 권사님이 
제게 이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변화되지 않는 남편을 보면서 항상 가방에는 이혼 서류를 넣고 다녔어요.
그러면서 '내가 (남편과) 살아주는 거야, 내가 언제라도 (이혼을) 실행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했대요. 

근데 이거가 진리를 허무는 건지 정말 몰랐다고 하셨습니다. 
참아주는 나, 이혼을 실행하지 않고 있는 나.. 
이렇게 나에게 초점이 있었다고 그러시면서, 

진리는 '이혼하지 않고 가정을 지키라' 이렇게 말하고 있으면 
마음으로 이 진리를 붙잡아야 그게 진리가 진리지 
이혼은 하지 않지만 서류를 끼고 다니는 이것은 
정말 아니라고 그러면서 

'사모님, 너무나 많은 여자성도들이 이혼을 꿈꾸면서 
실행은 안 하고 살고 있어요. 그런 여자성도들에게 제 얘기를 꼭 해주세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한 여자 권사님 하고 상담을 했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남편, 변하지 않는 상황 때문에 고통을 받고 계셨습니다. 
직장생활로 피곤해서 시간이 없다 보니까 이제는 
기도하는 것도 놓아 버렸습니다. 

얼마나 그 분의 심령이 메마른지 
'사모님, 저 기도할 힘조차 없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네, 권사님 맞아요. 우리는 기도조차 할 수 없는 존재들이에요. 
그동안 기도 한 거, 하나님의 은혜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권사님,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서 떠났나요? 
그 은혜가 떠나지 않았다면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는 권사님에게 있다고 고백할 수 있다면 
오늘부터 다시 우리 기도하는 생활을 시작해 봐요!'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권사님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낙심된 상황 때문에, 다 포기하고 싶은 분이 있으십니까? 
오늘 그 자리에서 주님은 '깨어 일어나라!'고 여러분을 권하시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는 드보라에게 "노래하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노래하는 거죠? 
하다못해 슬픈 유행가라도, 마음에 슬픔이 있어야 슬픈 노래가 나오잖아요. 

누군가의 입에서 노래가 되는 건 
자기 속에 있는 게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드보라에게, '이스라엘의 어머니'의 사명을 주면서 5:7
'너는 이 사명을 노래로 불러라, 
생명을 구원하는 이 사명을 노래로 불러라!' 이렇게 부르신 것입니다. 

중략

그런데 우리가 사실 생명을 사랑하기를 원하고, 
또 생명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설교도 하지만
실제로 생명을 사랑하는 삶을, 자기 몸으로 살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때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요. 
'주님맞아요. 저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 없는 자가 맞아요. 
주님맞아요. 그런데 주님, 주님이 사랑이시잖아요. 주님이 생명이시잖아요. 

제 안에서 주님이 영혼들을 사랑해 주세요. 
저는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었으니까, 주님 제 안에서 제 대신 살아주세요.' 
이렇게 주님 앞에 고백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기도 하고나니까 너무나 선명해졌습니다. 
드보라가 부른 노래를, 저도 다시 부르며, 
제 노래로 삼아야 것 임을, 제가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셨습니다. 
예수님, 그분이 노래가 된 사람만이 
생명을 사랑할 수 있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드보라에게, 승리가 주님의 손에 있기 때문에 
일어나서 노래하라고 하십니다. 

5:20~21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기손 강은 겨울 우기 때를 제외하고는 바짝 마른 땅이어서
시스라의 군대가 거기 주둔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비가 안 오는 시기인데 비가 오니까
그 바짝 마른 땅(와디)이 강으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구백 대가 되는 이 전차들이 
거기에 강바닥, 진흙뻘에 그냥 쳐박혀 갖고 
서로 빠져나오려고 야단하고 있었습니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때 드보라가 바락에게 '일어나 가서 싸우라'고 명령하니까 
바락이 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나가, 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승리는 주님께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싸워서 이긴 게 아니고 
하나님이 다 만드시고 승리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하는 것입니다. 
승리의 노래는요 믿음이 있어야 부를 수 있어요. 

그런데요, 믿음이 없는 자도 
그 노래를 부르다 보면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저는 하나님이 드보라에게 '깨어라 노래를 불러라 할 때' 
처음 드보라에게 사명을 주실 때만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드보라가 사명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그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을 때도
그 때마다 주님은 '깨어나라 드보라여, 노래해라 드보라여!'
이렇게 계속 주님이 말씀하셨다고 믿어집니다. 

드보라는 그래서 어려운 순간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노래, 승리의 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들을 감당하기 위한 방법은 "기도"입니다.

우리는 지금 전쟁중입니다. 
생명을 양들에게 주셔서 더 풍성케 하시려는 예수님의 편에 서서 
사람들의 생명을 죽이려고 하는 마귀를 향하여 
우리가 생명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이 생명의 영적 전쟁은 
문화전쟁이기도 하고, 진리전쟁이기도 하고, 입법전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전쟁을 싸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해요. 
'기도만 하면 다 예요? 기도만 하면 다냐고요!'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부끄럽지만 저는 '기도면 다 됩니다' 이렇게 기도해보지 못했어요. 
늘 기도한다고 하는데 제 기도가 아직 충분하지 않아요. 

'기도가 다야' 이렇게 말할 정도가 아니고요, 
늘 기도가 부족한 저 자신을 느낍니다. 

정말 저도 '기도가 다야! 기도면 다야, 나는 정말 생명 다해서 끝까지 기도 했어!'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저는 원합니다. 

기도가 전부인 자들이 되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 중에 
우리가 일어서야 할 때와 앉아야 될 때, 
나아가서 싸워야 할 때와 머물러 있어야 할 때를 
지도자들에게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거룩이고 사랑이기 때문에 
지도자들로 인하여 무절제하고 음란한 이 땅, 
사람을 죽이는 이 땅에서 
생명을 살리는 싸움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미된 우리들에게, 여기에 계신 아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눈물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너무 늦었어요.. 라고 말들 하지만 
그런데 더 늦기 전에 우리가 울며 기도해야 됩니다. 
 
예레미야애가 18장에서 그들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을 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딸 시온의 성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를 쉬게 하지 말지어다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 어귀에서 주려 기진한 네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애2:18~19

 

우리의 눈동자가 쉬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자녀들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라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년 (2016) 2월 10일에 우리가 매일 합심기도를 시작했잖아요.

그런데 그 다음날인 2월 11일부터

임현수 목사님이 우리 기도 제목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전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모님이, 저희의 곁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도 중에 만나게 하셨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에 머무시는 사모님과

예배도 같이 드리고, 기도도 같이 하고, 밥도 같이 먹었습니다.

 

임현수 목사님의 사모님을 곁에서 뵈니까   *남편 임현수 목사는 당시 북한 억류 중

남편 목사님이 지금 좋은 것을 못 드시는데,

좋은 음식을 사드려도 잘 못 드시고, 늘 굶기와 금식을 밥 먹듯 하셨습니다.

 

뉴스에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정말 모든 것이 암담하다고 느껴질 때면

사모님이 밤잠을 못 주무시는 모습을 보면서

사모님의 마음이 제 마음이 되었고,

목사님이 제 가족처럼, 제 심령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 반을 함께 기도한 거예요.   *2017.08.09. 구금31개월 만에 석방

제가 믿음이 좋아서 끝까지 기도한 거 절대 아닙니다.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끝까지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울며 기도하라고 부르신 그 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 자녀의 죄이기 때문에 돌을 던질 수가 없고

내 남편의 죄이기 때문에 끌어안고 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족은 포기할 수 없는 거잖아요.

예수님은 '네가 네 가족에게 그렇게 한 것처럼

나의 자녀에 대해서, 돌아와야 될 세상에 대해서

그렇게 기도하고 섬겨달라'고 말씀하십니다.

 

분노로 충만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온유로 무릎을 꿇고

탐욕을 향하여 달리는 사람들을 향하여서는,  내 탐욕을 꺾고

눈동자가 쉬지 않도록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저에게 그러십니다.

'자녀들의 어떠함 때문에, 세상의 어떠함 때문에 울지 말고

그들로부터 외면당하는 나 (주님) 때문에 울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니요. 울어야 하는 게 아니고

주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부어지면

울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님이 구체적인 일들을 가르쳐 주시고

눈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아주 작은 일들이지만

구체적으로 할 일들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학교를 다닌다고 하면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

가까우면 매일, 안 되면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아이들의 학교를 심방하는 마음으로 가서

 

학교의 운동장을 밟으며, 그 땅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과 교사를 향하여

축복하며 기도해 주십시오.

 

교회에 오면, 교회 근처에 있는 학교를 향하여

여러분 집 근처에 있는 학교를 그렇게 방문하며

운동장을 돌며, 운동을 하면서라도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교회 앞 성남시 복정동 길을 걸을 때는

여기 근처 길에 있는 술집들과 사주 카페가 끊어지는 일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십자가 불빛을 보게 되면

그 교회 이름이 여러분의 눈에 들어오면

잠깐이라도 그 교회를 축복하며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뉴스에 나오는 악한 범죄 소식, 정치판의 답답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외면하지 맙시다. 분노하거나 욕하거나 논쟁하지 말고

다 기도제목으로 삼으십시다.

 

요즘 '어금니 아빠' 라는 뉴스가 몇 주 동안 나왔습니다.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고, 채널을 돌리고 싶은데

주님이 이 기도를 하라고 하시니까, 뉴스가 나올 때마다 기도 했습니다.

 

'주님, 기도하다 보니 그 영혼이 얼마나 불쌍한 영혼인지..

그 영혼도 깨어진 가정과,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의 피해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불쌍히 여겨주시라고, 용서해주시라고, 그 죄가 우리 사회 가운데서 끊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되더라고요.

 

모든 뉴스에 대하여 우리가 한 마디라도

'주님, 용서하십시오. 고쳐주십시오. 악이 끊어지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한다면

이 땅이 달라지리라고 믿습니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온갖 악을 즐깁니다.

어미된 우리부터 스마트폰을 가지고

가족들이나 교우들 간의 교제하는 것,

기도와 말씀, 영성일기 쓰는 것 외에

우리가 즐기기 위해서 깔아둔 앱들을 다 삭제하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운다고 달래기 편하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에게 핸드폰 보여주는 것, 그거 하지 맙시다.

 

여러분, 열방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 열방이, 선교할 기회라고 말합니다.

 

세상이 점점 악해지는 이 세상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생명을 살려야 될 기회가 우리에게 많아진 것입니다.

 

세상이 너무 악해졌는데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속에서 드보라를 일으키신 주님이

저를 일으키시고, 여러분을 일으키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돌이킨 거 아니고

고통 때문에 부르짖었어요.

 

우리도 회개한 게 아니고요.

핵무기가 무서워서, 북한이 무서워서, 고통 가운데 부르짖어요.

'하나님, 그 부르짖음이라도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부르셔서

우리를 기도시키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드보라에게 승리를 주신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십니다.

그 아버지께서 동일한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5:31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아멘입니다. 여러분이 일어납시다. 깨어납시다. 노래합시다. 아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