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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5장 18~31 하나님은 누구를 쓰시는가?

LNCK 2022. 1. 7. 20:21

◈하나님은 누구를 쓰시는가?       삿5:18~31        사사기 설교모음      설교 일부 스크랩, 녹취


정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에 지금 전쟁이 일어난 거잖아요. 
근데 충격적인 것은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많은 지파가 
이 전쟁에 참여를 안 했어요. 성경에 그걸 다 기록해놨어요. 

르우벤 지파, 길르앗, 단, 아셀 지파는  (그 외 유다 지파 포함)
자신들의 안전과 생업에 매여
안일하게 자기 자리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거예요.   5:16~18

겉에서 보면, 선임(서열 상위)이고, 겉에서 보면 장자 지파인데 
당시에는 믿음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지파들이 '하나님의 전쟁'을 비겁하게 회피했던 것입니다. 
지금 많은 수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어요. 

아니 자기네들이 국가와 신앙의 자유를 위해 스스로 열심히 싸워야 되잖아요.
심지어 여러분, 천상 세계에서 별들이 서로 일어나서 
하늘의 별들이 드보라와 바락을 도와서, 시스라와 싸웠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잖아요.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삿5:20   주1)

하늘도 비를 내려서, 전투를 돕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들이 꼼짝도 안했다는 거예요. 

사사기 5:22절에 보면, 시스라의 군대가 패해서 줄행랑을 치게 되는데 
그 말발급 소리가, 얼마나 급하게 도망갔는지, 땅에 진동을 했다고 그래요. 


그런데 이 전쟁이 승리로 끝나자마자 
하나님의 천사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성경에 나옵니다. 

그리고 갑자기 한 곳을 가리키면서 
'너희 (이스라엘 군대)들아, 그 주민들을 저주하라'고 명령을 하세요. 
한 번이 아니라, 두구 두고 계속 저주하라고 말씀을 하세요. 

삿5:23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주민들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아 제가 이 구절을 읽고 깜짝 놀랐어요. 
전쟁이 승리로 끝났는데,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야 저주해라!' 

그 저주가, 가나안 왕 야빈과 시스라의 군대를 저주하라는 게 아니라
메로스였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럼 메로스가 어디냐?  5:23

학자들은 바로 처음 이 전쟁에 출정했던 납달리 지파의 한 마을이라고 합니다. 
그게 맞는지/ 틀린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쨌든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이 메로스 마을은 
방금 전투를 치렀던 다볼 산과 기손 강가 근처에 위치한 마을이었어요. 

충격적이죠. 지금 바로 자기들 근처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납달리 지파 라고 한다면 
지금 내 동족들이 나가서 싸우는데, 
지금 이스라엘 군대의 장군 바락도, 납달리 지파 사람이거든요.

납달리 지파가 거의 다 나와서 싸우는데 
메로스 주님들은 가만히 있었다는 거예요. 영적인 나태 때문이죠!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주민들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5:23

앞서 르우벤, 단, 아셀 지파는, '드보라의 노래'에서 욕을 먹었지만 
이렇게 메로스 처럼 저주를 받지는 않았어요.

'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목자의 피리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찌 됨이냐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길르앗은 요단 강 저쪽에 거주하며 단은 배에 머무름이 어찌 됨이냐 
아셀은 해변에 앉으며 자기 항만에 거주하도다'  :16~18

그런데 유독 메로스가 저주 받은 것은, 
그들이 (아마) 기손 강변, 지근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는 이어지는 구절에서,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도운 탓에 
하나님의 축복을받은 야엘(24~27절)과는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하나님은 분을 내시면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저들을 저주해라!'  :23

결국 그들의 행실을, 선경은 무엇이라고 기록하느냐? 
'너희들은 친족들을 돕지 않았다. 너희 군대를 돕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 '메로스는 여호와를 돕지 않았다'  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23
그래서 메로스를 두고 두고 계속 저주하라는 거예요.


그러나 목숨걸고 전투에 임한 이스라엘의 자랑스러운 지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납달리, 스불론, 에브라임, 베냐민, 잇사갈
이들은 뛰어나와 국가와 신앙을 지켜내기 위해서 싸웠습니다. 

제가 원어를 보니까 감동이 되더라구요. 이 지파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아세요? 
이렇게 적혀있었어요. '그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모욕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자기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모욕했다.'    *하라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자기 생명을 가볍게 여길 정도로 
자신을 헌신에서 꺾어 바쳤다는 거예요. 
'스불론과 납달리는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18절의 원어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드보라와 함께 
또 다른 주인공 한 명을 주목하시죠. 바로 이 사람을 칭찬하시죠. 
그게 바로 야엘입니다. 

삿5:24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예, 야엘은 더욱 복을 받아야죠. 왜? 대가를 지불했으니까요. 
웬만한 남자보다 훨씬 뛰어났으니까요. 

여러분 이제 무엇이 느껴지시죠? 
내가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그 믿음이 내 삶을 움직일 수 없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에요. 나를 바꿀 수 없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닌 것이죠. 

하나님 나라에서 큰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데 
믿음 가지고 일어나지도 못하고 
비겁하게 숨는다? 여러분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것이죠. 

손해가 있다손 치더라도, 고생스럽더라도 
하나님의 전투에 우리는 참여해야 되는거죠. 
하나님의 사업에 마땅히 우리의 삶과,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드려야 되는 것이죠. 

그런데 꽁무니를 내뺍니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신앙인으로 치시지도 않습니다. 
'그를 저주하라' 하실 수 있는 거예요. :23

자 여러분은 메로스 성읍입니까? 
아니면 납달리와 스불론 지파입니까? 

하나님의 일이 있다고 할 때, 여러분은 눈이 반짝거리고 달려듭니까? 
아니면 먼산 쳐다보고, 못 본체 하거나 아니면 구경하고 있습니까?
'누가 나 대신 가겠지?' 이러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만약 누가 나타나면 질투하는 거예요. 
'어떻게 하나 좀 보자!' 이러고 

그러다가 이제 그가 잘 하기 시작하면 
이제부터 그와 경쟁자요, 원수가 되어가는 거죠. 

이런 세상에 거지 같은 믿음을 가지고 
믿음생활하고 있다 하는 사람들이 왜 없겠습니까? 

납달리와 스불론 지파가 선두에 딱 서자, 
그 여러 지파들은 '어떻게 하나 좀 보자!' 했던 거에요. 

훨씬 납달리와 스불론 지파보다 큰 지파도 있었는데,
성경에 유다 지파는 이름도 나오지 않았어요. 미안한 얘기지만. 
왜 이 하나님의 전쟁에 유다지파가 이름도 안 내밀었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유다지파는 그때 어디가서 뭘 했던 것일까요?

여러분, 하나님의 일 앞에서, 게을러 지십니까?
아니면 믿음으로 뛰어나가십니까

하나님이 역사신 그곳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기 동참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하나님이 너무나도 하고 싶은 그 일에 
교회가 손 놓고 구경하고 있다면 
그건 신부 되기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내 안에 어떤 마음이 올라오는지 생각해 보세요. 
주를 향한 열정입니까? 
아니면 시기 질투와 게으름입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습니까?
옆 교회에서 만약에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가 같이 가서 기도해주고 도와줘야 됩니다. 

내 일 아니라고, 무시하고 연락 끊어버리고.. 
이런 자잘한 신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시스라의 어머니가 또 여기 '드보라의 노래' 마지막에 나오죠.
참 시스라의 어머니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보고 반면교사로 배우라는 거예요. 

왜냐면 이 여인은 굉장히 이기적인 여자예요. 
자기 아들과 그 군대가 돌아올 때가 됐는데, 안 돌아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걱정이 되자, 어떤 생각이 쓰윽 스치냐면
'아 맞아, 내 아들과 그의 군대가 전쟁에서 승리했겠지.. 
그리고 이스라엘 처녀들을 지금 차지해서 돌아오고 있겠구나'
그래서 늦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5:29~30

'군사 한 사람마다 한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이렇게 한글 성경에 써 있어요. 
'내 아들 군대에 병사 한 사람마다, 이스라엘 한 두 처녀를 얻었겠구나..' :30
한글 성경에 이렇게 쓰여 있는데요. 히브리 원어를 보면 조금 직설적입니다. 

원문에는 '한 두 처녀'가 아니라 '한 두 자궁'으로 써 있어요. 
이것은 '한 두 처녀를 취하였다'는 말의 완곡어법 일수도 있어요.

이 생각을 시스라의 엄마가 했어요. 실제로 시스라는 죽어서 안 돌아오고 있었던 거죠.
그것도 시스라는 아주 불명예스럽게, 비참하게 
야엘 여인에 의해서 관자놀이가 뚫어져 죽었죠.

그런데 이런 문화가 아직까지도 중동지방에는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여인의 손에 죽는 것을, 매우 치욕스런 일로 여긴다고 합니다.
3천여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이기적인 신앙은 반드시 심판의 사유가 됩니다. 절대 이기적이면 안돼요. 

십자가를 보세요. 십자가 신앙은 자기 희생, 자기 부정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으면서 이기적이고 자기 밖에 모르면, 
그래서 하나님 앞에는 아주 인색하고, 나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자원을 쓰고..
이건 신앙도 아닌 거죠.

성경은 야엘과 시스라의 어머니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같은 여자지만 너무 다른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사람입니까? 그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수고도 아깝지 않게 여기는

그렇게 가슴 뛰는 준비된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믿음을 갖고 계십니까?

 

내 만족을 채우려고 믿음을 활용하고 있는, 믿음을 악용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나를 헌신할 수 있는 믿음입니까?

 

만일 전자라고 한다면, 여러분 내 만족을 채우려고 갖는 믿음이라면

그 믿음을 가지고 이 땅을 어떻게 살려고 그래요?

 

그 믿음으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실래요?

얼마나 세상에 휘둘리고 살겠습니까?

 

잘 깨달아야 돼요. 잊지 마세요.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일을 맡기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 밖인 거예요.

 

여러분 제가 질문하고 싶어요. 이 교회에 왜 왔습니까? 하나님 만나고 싶어서 오셨어요?

아니면 다른 목적으로 오셨어요? 사람 만나러 오셨어요?

 

하나님이 만약에 여러분에게 맡기신 일에, 지금 동참하라고 호소하고 있잖아요.

그때 하나님의 일에, 여러분은 얼마나 믿음으로 최선으로 진지하게 임하고 계십니까?

 

드보라는 분명히 전쟁이 터졌을 때, 이스라엘 지파에게 들릴 정도로

이 전쟁에 참여하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다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

이 충격적인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 전쟁이 '하나님의 전쟁'이었는데도, 지파들이 다 모이지 않았어요.

하나님을 돕지 않았다는 그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어요.

 

따라서 우리의 삶이 크게 쓰임받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하나님 편해 속하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돼요. 아시겠죠?

꼭 이 점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크게 쓰임받지 못할지라도

하나님 편에 딱 서 있는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메로스에 저주에 빠지지 마세요.

자기 유익과 자기 편의에 눌려서

자기의 욕망만 채우다가 망하고 많은 인생들 되지 마시라는 말이에요. 

우린 다시 살펴봅시다. 내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지 말고

내 마음에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지...

내 기도와 내 예배를 드리는 동기와 내 생활이, 하나님과 관련이 있는지?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나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여러분은 원하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렇지 못한다면, 어디선가 산염소(야엘)를 쓰실 겁니다.

쟁쟁한 믿음의 훈련받은 사람이 아닌,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는

꿀벌(드보라)을 쓰신다는 것을 기억하셔여 되요.

 

하나님 눈에는, 결국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만 남습니다.

삿5:31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만 일어나 대가를 지불하면 앞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대가, 믿음 생활하기 좋습니까/ 안 좋습니까?

진짜 어려운 시대예요. 여러분!

 

문화가 예전의 제 청년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이 타락했어요.

시대가 점점 무섭게 변하고, 죄악의 가속도가 굉장히 힘있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믿음있는 자를 정말 찾아보기가 힘들죠.

그런데 여러분, 언제까지 시대 탓하겠어요? 언제까지 세상 탓하겠어요?

언제까지 미디어 탓하겠냐고요?

 

오늘 우리가 내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면 돼요.

그 우선순위를 정확히 정하면, 내 삶의 모든 부분이 정리가 딱 되버리는 거예요.

 

오늘부터 하나님만 따르고, 하나님 의지하는 훈련을 합시다.

그러면 하나님 눈에 반드시 들게 되어 있어요.

 

세상은 금수저 찾고 있지만, 여러분 하나님은 너무나도 공평하신 분이세요.

하나님은 믿음을 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류를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구합시다.

스펙이 아니라 믿음을 구합시다.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와 풍속을 따르지 말고

말씀을 붙드는 구별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훈련합시다.

설교 서두에 말씀드렸지만, 요즘 전세계적으로 젊은 바람이 불고 있어요.

(한국에도 당대표, 유럽의 여러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이 40대, 심지어 30대도 있어요)  
이제 교회는 어떻게 될까요? 젊은 세대들이 일어나줘야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영적 패권을 장악하고 영적 시류를 하나님께 온전히 틀어버리게 하고, 
그 일에 합당한 자로, 오늘 믿음의 실력을 갖춰 
내일에 쓰임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하셔야 된다는 거예요. 

세상은 마지막 때로 가고 있잖아요. 
여러분 안에, 빨리 마음에, 하나님 한 분밖에 남지 않는 훈련을 하셔야 돼요. 

이 시대는 평화는 시대가 아니라, 환란의 시대잖아요. 
이제는 축복의 시대가 아니라, 박해의 시대가 점점 도래하고 있잖아요. 

어떤 믿음으로 여러분이 일어서야 되겠어요? 
세상은 정말 전 세계적으로 각 영역에서 청년들이 일어나 
굴직굴직하게 일을 감당하고 있는데 
왜 교회는 다들 청년들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까? 

왜 청년들이 바로가 주는, 저 세상이 주는, 바벨론이 주는 먹이를 덥썩 물고
왜 거기에 속해 있습니까? 
거기서 빠져나와서, 자신을 구별하고, 저 세상을 향하여 물매를 준비해야죠. 

수많은 세상의 골리앗들을 향해 
믿음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그 젊은 세대들로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전 도전을 강하게 받았어요. 
야~ 삼사십대가 이제 다 잡고 있구나, 세상을!

이제 교회에 젊은 피들이 일어나 
예수의 피를 높이며, 십자가의 군사로 일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스펙 따지지 않잖아요. 배경 따지지 않잖아요. 
네 가방끈 길이를 따지지 않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믿음을 보십니다. 
믿음만 있으면, 천하고 비천하고 어려워도 
그들을 써서 지혜있고, 가진 자,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그러셨잖아요. 

공평하신 하나님 앞에 여러분 인생을 드리고 싶지 않습니까? 
교회오면서, 그깟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기위해서 교회에 오십니까? 

믿음을 준비하세요. 마지막 시절을 헤쳐나갈 믿음을 준비하세요. 
하나님은 그래서 여러분을 산염소(야엘) 같이 쓰시고 
꿀벌(드보라) 같이 쓰셔서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으로, 그 사명지로
우리를 아주 아름답게 착륙시켜주실 강력하게 믿습니다. 

여러분 일어나십시오. 믿음을 준비하십시오! 
깨어나십시오! 하나님이 우선되는 삶을 사십시오. 
그 믿음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함께 이 찬양부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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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별들이...시스라와 싸웠도다'  :20
칼데아역(The Chaldee)은 본절을 '하늘로부터 별들이 나오는 곳에서
시스라에 대항하는 싸움이 시작되었다'로 번역하고 있다(Matthew Henry Commentary, Vol.II.p.149).
그러나 이 역시 정확히 무슨 뜻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 요세푸스(Josephus)는 본절을 다음과 같은 의미로 이해한다.
즉 하나님께서 시스라의 군대 앞에서 일으키신 바람과 벼락, 폭풍우와 우뢰로 인하여
원수들이 진멸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Lange, Pulpit Commentary).
 
이러한 견해는 본장이 곧 시스라와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현상을 이용하여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신 사실에 대한 노래인 점(21절;4:15)에 비추어 볼 때 매우 타당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자들도 이에 찬동한다.
 
즉 본절은 하나님께서 대자연의 힘을 빌어 이스라엘을 도우신 사실에 대한 시적 표현인 것이다.
역사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파하기 위해 사용하신 자연 현상들은
바람, 하수, 뇌성, 우박, 숯불, 번개등 아주 다양하다(출 14:27;15:10;수 10:11;삼상 7:10;시 18: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