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선입견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들은 내용이, 기억속에 남아 있어서 삼손에 대한 선입견이, 필요 이상으로 우리 뇌리에 안 좋게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삼손을, 저평가도 하지 말고, 고평가도 하지 말고 성경에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관찰'하게 되기 원합니다.
우리의 선입견 또는 오해는, 삼손은 하나님이 쓰신 사람인데 우리 마음속에는 이미 그를 '형편없는 사람'으로 전제해놓고 성경을 읽는 거예요. 그런 필요 이상으로 저평가된 삼손에 대해서, 좀 변호를 하자면 삼손에 대해서는 삿13장의 '출생 예언'부터 시작해서 16장까지 무려 4장에 걸쳐, 삼손의 스토리가 길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사사기의 12사사들 중에, 최대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사사입니다. 가장 주목받는 사사라고 해도 말이 되죠.
그리고 사사기에 나오는 많은 이방 중에,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가장 오래도록 힘들게 했고, 40년 동안이나 압제했죠. 13:1 그리고 주변의 어떤 이방나라보다도 큰 힘을 가졌던 나라가 블레셋이라고 해요. 그러니 삼손은 가장 큰 대적을 물리친 사사이에요.
그러니까 사사 삼손은, 사사기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 삼손은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냐면, 힘만 센 멍청이, 여자 밝히는 놈팽이, 힘은 셋지만 하나님을 거역하고 평생을 살다가 막판에 회개하고 죽은 비운의 인물.. 정도로만 생각해요.
그러니까 머리 풀고 다니는(나실인 서약 때문인데) 동네 마당쇠 정도로 삼손을 보는 거예요. 필요 이상으로 너무 저평가 되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게 정말 맞냐? 하는 거죠.
과연 여인에게 빠져서 쾌락을 추구하다가 평생을 허비한, 능력은 있었지만 믿음이 없었던 어리석은 자의 표상이 삼손인가? 하는 거예요.
만약 아니라면, 우리가 그동안 삼손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만 들어왔던 그 선입견 때문이라는 거죠. 그러므로 사사 삼손을, 한 번 액면가 그대로 평가해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어 보면, 삼손은 정말 하나님께서 작정하고 쓰신 너무나 귀한 사사 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오히려 삼손은, 하나님이 정말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하시는 사람이고 쓰고 싶어 하시는 사람이고 우리가 삼손처럼 되기를 바라시는 사람이에요.
우리는 삼손을 어디서 만났냐 하면, 성경에서 만난 게 아니에요. 영화에서 만나고, 성경 만화에서 만나고, 미술 그림에서 만났어요.
그러다 보니까 삼손은 세상 사람들이 다루기 좋은 주인공이었고 사람들이 말하기 좋은 주제였기 때문에 그동안 삼손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작품에서 그를 '여자를 좇아다니가 망한 전형적인 불행한 남성 캐릭터'로 그려왔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회 안에서도 설교를 하면서 삼손은 늘 예화로 등장하는데, -유혹을 당해 실패한 케이스 -또는 자기가 눈에 좋아보이는 정욕을 좇아가다가 잘못된 케이스 -평생을 잘못 살다가 마지막에 잠깐 빛을 발한 케이스로.. 이렇게 부정적으로만 소개되지,
삼손의 전 일생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본 경우는 우리 일생에 없었단 말이죠. 그러니까 오늘부터 시작되는 13~16장은 최대한 삼손을 있는 그대로 보기 원합니다.
▲사사 삼손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본문에는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다른 사사들이 등장하는 것과는 달리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해 구원을 구하며 부르짖는 기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이전에는 이스라엘이 스스로를 돌아볼 여력이라도 있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을 생각하지도 못할만큼 영적으로 악화된 상황임을 의미합니다.
이방의 압제가 너무도 당연하게 이스라엘에게 뿌리깊게 박힌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자신을 구원할 하나님도 생각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 증거가 사사기 15:11절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하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하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블레셋이 우리를 다스린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1절,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또 다시 사사기의 반복되는 사이클이 나타납니다. 사사 입다가 6년 통치 후에 죽은 후, 입산, 엘론, 압돈 사사가 등장해서 *삿12:8~15 각각 7년, 10년, 8년을 사사로 다스리면서, 도합 31년 정도 이스라엘에 잠시 평화가 오는 듯 했습니다. *입다~압돈
(그러나 이 세 사사도, 부자로 살면서 이방 왕들의 흉내를 냈습니다.
점점 사사들이 타락해 간 것입니다)
그러다가 삿13장에 이르러, 그 평화기가 깨지고 블레셋이 침입하는데 그를 막은 사사가 바로 본문의 주인공 삼손입니다.
블레셋이 사사기에 제일 처음 등장하는 곳은 삿3:31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백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이때는 마치 도적 떼처럼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대규모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블레셋의 침략은 삿10:7에서 나타납니다. 10:7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이때 동에서는 암몬이, 서에서는 블레셋이 침략했는데, 사사 입다가 성공적으로 막은 것은, 동쪽 암몬이었습니다. 입다 역시 요단 동편 길르앗 사람이었고요. 그러니 서쪽은 그대로 두고 있었고, 최대 피해지역은 유다지파, 또 인접한 단지파 였습니다.
△여러분 사사기 제일 후반부에 삼손이 나타납니다. 사사기의 12사사 중에 삼손이 맨 마지막 사사입니다. (*13대까지 치면 사무엘)
맨 마지막 사사.. 라는 말은, 영적으로도 바닥을 치는 시기이고 이제 나라의 힘도 거의 다 바닥이나 버립니다.
이제 여기서 블레셋을 이기지 못하면,
이스라엘은 다시 (범죄-부르짖음-구원의) 사이클이 돌릴 수도 없어요. 이번을 마지막으로 나라가 끝나버릴 수도 있었어요. 만약 삼손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이 지금 이 블레셋의 침략을 이기지 못하면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하고 말아요. 벌써 블레셋의 압제를 받은지가 40년이나 되었잖아요.
여러분, 40년을 압제해 보세요. 나라가 거의 마비상태가 되는 겁니다. 만약 삼손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블레셋의 압제는 12지파로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을 것이고요,
그러니 사실 당시 이스라엘은, 기도할 힘도, 부르짖을 힘도 없었던 것입니다. 삿 13장부터는, '부르짖었더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 절체절명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뭔가 해결책을 내셨는데, 그게 바로 삼손의 탄생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구원은
약속과 소망이 없는 한 가정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구원의 법칙을 깨뜨리시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이스라엘이 부르짖기도 전에,
직접 주도적으로 구원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3절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태어날 아이로 인해 구원이 완성되지는 못하더라도
구원이 시작될 것이라는 예언만으로도, 당시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에게는 복음임이 분명합니다.
자,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이 여인에게 특별사항을 요구하셨습니다. 4-5절
:4~5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나실인이란, 특별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나실인으로 택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그의 어머니 역시 아이를 품은 동안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어딘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만일 오늘 이 이야기가 세속사에 있었다면, 아이에게 어린 시절부터
무술을 가리키고 칼을 주어 용사로 잘 키우라는 이야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기의 어머니에게 그를 용사로 키우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그를 ‘거룩한 자’로 양육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힘이 있는 자를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거룩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아기의 어머니에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힘이 장사 같다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대학에 나와 학벌이 좋다고,
돈이 많은 재벌이라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부족해도 거룩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로 칼과 창에 능한 ‘용사’를 택하시지 않고,
포도주와 독주를 삼가는 ‘나실인, 거룩한 자’를 택하셨습니다.
우리가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노아의 아내가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부터 나실인의 계율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아이가 뱃속에서부터 먹고 마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태교의 중요성을 말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이를 임신할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그 아이에게 전하고 가르치려는
간절한 열망을 가졌던 마노아 부부의 간절함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시작할 한 아이 삼손은 나실인으로 세워집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나실인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실인은 민수기 6:1~8절에 나타나 있듯이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입니다.
나실인은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고,
시체를 가까이하지 않으면서 자기 몸을 거룩하게 구별해야할 사람입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한다는 것은
세상의 향락과 기쁨을 추구하기보다, 하나님만으로 즐거워한다는 의미이며,
-삭도(칼)를 대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멋과 치장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오직 하나님의 권세아래 있는 사람임을 드러냄이요,
-시체를 가까지 하지 않는 것은,
죄와 부정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5절,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그런데 우리는 늘 삼손을 떠올리면서 생각하는 게 '그는 나실인으로 태어났는데, 하는 짓을 보면, 나실인 같은 게 하나도 없어!' '여자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사자 때려잡고, 이상한 수수께끼나 내고..' 삼손은 자유분방하게 사는 것으로 여겨지지, 도무지 나실인 같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나실인이라는게 뭡니까? 나실인이 머리 안 자르고, 술 안 마시면 나실인이 됩니까? 아니에요.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에요.
우리가 이제 보게 되겠지만, 사실 삼손의 일생을 보면,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삶을 살았어요. 그가 한 행동은, 단 하나도 자기 뜻대로 한 게 없어요. 그가 한 행동은, 단 하나도 의미 없이 행한 행동이 없어요. 그는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으로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근데 그가 나실인이 되어서 하는 일의 본질은 '술 안 마시고 머리 안 자르는' 그게 본질은 아니죠. 그건 준비 조건이죠.
삼손이 나실인의 본질, 그의 사명은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5
그러니 아무리 착실하게 살았다손 치더라도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못하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닌 거죠.
그러나 삼손은 그 자기 사명, 자기 직무에 충실했던 사람입니다. 삶이 좀 자유분방하기는 했죠. 잘난 사람들이 좀 자유롭잖아요. 자기 잘난 체 하는 거죠.
▲그리고 삼손이 범상치 않은 인물인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수태 고지'를 받았다는 점입니다.
성경에 '수태 고지'를 아무나 받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이삭이 태어날 걸, 하나님이 알려주시죠.
그리고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 전에 쌍둥이가 태어날 것인데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라는 수태고지가 주어지고요.
신약으로 오면 세례요한과 예수님.. 으로 끝이에요. 그 외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삼손이 지금 그 수태고지 명단에 들어있어요. 게다가 이렇게 긴 수태고지는, 아마 성경에서 제일 긴 수태고지가 될 겁니다.
성경에 한 장(삿13장)을 다 할애해서 한 인물의 탄생을 설명하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습니다.
아니 다른 사사들은, 일생의 행적이 한 두 절로 끝나는데, 삼손에게는, 수태고지만 벌써 한 장 전체를 할애하고 있습니다. 삼손의 위상을 알게끔 합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예수 그리스도
먼저 여호와의 사자가 아내에게 전한 예언을 들은 마노아는
아내와 함께 있을 때 다시 한 번 예언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다시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를 본 마노아는 그 사자를 극진히 대접하며 이름을 묻게 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들려준 이름 ‘기묘’. *필리(형용사)
이 이름은 장차오실 메시야를 예표하는 것이며, 성자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사9:6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페레(명사)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인간이 절망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지 못할만큼 어둠에 빠져 있을 때,
그 때에도 하나님의 구원은 반드시 시작됩니다.
모두가 절망한 그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은 한 가정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어떤 유능하고 탁월한 사람을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을 택하십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 삼손
그런데 이 여인의 이 떨리는 가슴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죠.
그런데 그 와중에도 그 여인이 하는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7b절에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이 말은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이 나실인 삼손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쓰임을 받습니다.
13:24~25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여러분, 여호와께서 태어나면서부터 그 성장기에 복을 준 사람은 :24
삼손 말고는 사사 중에 아무도 없습니다.
25절에,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러면서 그의 활동이 시작돼요.
그러니까 삼손은 제멋대로 술에 취해서, 자기 꾀에 따라, 자기 욕심대로 산 사람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께 복을 받고,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였던 사람이에요.
삼손을 너무 저평가만 하지 말고, 액면가 그대로 평가해서 봐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의 그런 저평가는, 영화나 성경만화.. 이런 것에 선입견을 받아서 왜곡되었을 수 있어요.
이런 13장의 기본적인 이해가 없으면 14장부터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수많은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 한명도 허투루 세상에 보내시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누구 한명도 세상을 구원하라고 보냈는데, 그가 마음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했다가 죽기 전에 잠깐 그를 들어 사용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시고 그를 세상에 보내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삼손의 이러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보여주셨던 바로 그 일이며, 그 일을 1200년 전에, 삼손을 통해서 예표로 보여주셨고, 21세기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지금 다시 한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다음 세대들, (비록 그들 전부가 삼손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볼 때는 이해가 안 되지만 (삼손도 그랬잖아요)
그러나 그들(자녀 세대)을 통하여 사실 놀라운 일이 있음을 기억하고 그들 가운데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는...
그리하여 삼손(자녀 세대)을 통하여 보여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깨닫게 되어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