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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2:16~18 미스 페르시아

LNCK 2022. 1. 12. 11:40

https://www.youtube.com/watch?v=0ErcpKKBWXo

 

◈미스 페르시아    에2:16~18         2021.12.30.출처         

왕후 와스디의 폐위는 되돌릴 수 없게 되었고 
새로운 왕후를 뽑는 일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죠. 

본문 에2:8절에 '왕의 조서와 명령이 반포되매 처녀들이 도성 수산에 많이 모여 
헤개의 수하에 나아갈 때에 에스더도 왕궁으로 이끌려 가서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의 수하에 속하니'

왕후를 뽑는 일이 구체화되는데, '왕의 조서와 명령이 반포되었다'는 말은 
왕후를 뽑는 일이 자원해서만 되는 게 아니고 
눈에 띄는 미모를 갖춘 어떤 여성은, 국가가 차출하는 형태로 
그러니까 반강제적으로 동원되기도 했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바사 제국의 내로라는 처녀들이 다 모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주관하는 부서가 생기고 
헤개 라는 사람이 그 책임을 맡았습니다. 

드디어 나라 전체의 이목이 집중되는 대사가 진행되는데요.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당시 왕궁에 모인 처녀들이 약 4백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여기에 에스더도 포함이 된 것입니다. 


◑에스더가 이끌려서 왕궁으로 들어가다

그런데 본문 2:8절에서 눈에 띄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그게 뭐냐면 '에스더도 왕궁으로 이끌려 가서' 라는 이 대목입니다. 

'이끌려 갔다 Esther was taken to the king's palace' NASB 
이것은 에스더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고 
타의에 의해서 나아갔다는 뜻입니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누가 그를 왕궁으로 이끌어 갔는지는 말하고 있지 않지만 
아마도 모르드개의 뜻에 의해서 참여하게 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여겨집니다. 

어떻게 보면 에스더는 수동적이죠.  
근데 에스더의 인생을 보면, 전체가 수동태 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이끌리기에, 수동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됩니다. 자신이 선택한 삶이 아닙니다. 
자기 삶의 대부분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갔죠. 

2:6절에도 보면,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모르드개가 포로로 붙잡혀 올 때, 아마 에스더의 부모도 함께 사로잡혀 왔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에스더는 자의에 의해서, 바사 제국 안에서 살게 된 사람이 아니죠. 
모든 것은 자기와 상관없이 움직여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자세히 보면 그와 비슷합니다. 
결정적인 것은 우리가 우리의 바깥에서 다 이루어지는 거죠

국적을 내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대한민국의 백성으로 태어나겠다' 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성별도 마찬가지죠.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생일도, 나의 부모도,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외모도 우리가 결정한 게 아닙니다. 
내 코가 왜 이렇게 생긴 건지, 내 눈이 왜 이리 찢어졌는지.. 잘 모르겠어요.
지능지수도, 기질과 성격도, 내가 결정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들은 다 우리가 결정한 게 아니잖아요. 
부모를 내가 선택한 게 아닙니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 결정권이 없어요.

세월이 지나 보면 더 그렇죠.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내가 원했던 자리가 아닌데..' 
이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꿈에도 내가 이런 일을 한 할 줄 몰랐어요' 그럽니다. 

제가 호주에서 사역할 때 보니까 그런 분들이 많더라고요. 
'내가 꿈에도 여기 호주에 와서 이렇게 살 줄 몰랐는데 
여기 와서 살더라'는 거죠. 

종종 우리의 삶에서 저항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상황들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저항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하나님의 섭리가 움직이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고집을 꺾으시고,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그걸 빨리 깨닫는 사람일수록, 복된 인생을 사는 것이죠. 

굳이 자기가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보다 이기려고 막 저항하다가 
만신창이가 되는 거죠. 일찍 그 섭리에 순종해야 되는 거예요. 
수동태 인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을 맡기고 따라가는 법을, 빨리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에스더는 자기 뜻에 의해서, 자의적으로, 자기가 의도해서 
지금 왕후가 되겠다고 나선 게 아닙니다. 수동태로 이끌려갔습니다. 


◑에스더가 헤개로부터 은혜를 입다

그런데 에스더가 이끌려 왕궁으로 들어가자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데 
왕궁에서 왕의 후궁들을 관장하는 헤개라는 사람이 등장하죠. 

9절에, '헤개가 이 처녀를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 몸을 정결하게 할 물품과 
일용품을 곧 주며 또 왕궁에서 으레 주는 일곱 궁녀를 주고 
에스더와 그 궁녀들을 후궁 아름다운 처소로 옮기더라'

에스더를 헤개가 좋게 봤다.. 는 거죠. 
여기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에스더가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헤개가 그렇게 보았다는 겁니다. 
내가 잘 보이려고 한 것과, 상대가 나를 잘 보아주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결혼도 그런 거 아닙니까?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하고 잘 준비해서 간다 해도 
내가 상대에게 끌리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나는 별 신경도 안 쓰고, 화장도 대충 하고, 머리도 뒤로 고무줄로 메고 나갔는데 
'그게 당신의 매력이다' 뭐 이러고 형제가 따라 오는 경우가 있죠. 신기한 일이죠.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섭리입니다.

헤개가 에스더를 좋게 본 것, 이 조짐이 좋습니다. 
이걸 다 관장하는 사람이 일단 에스더를 좋게 본 거예요. 
그래서 일이 되는 것 같은 순풍이 불고 있는 것이죠. 

세상 사람들이 이런 일을 두고서 '운이 좋았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는 우리의 시각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녀가 헤개의 눈에 띈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죠. 

에스더가 아름다운 여성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외모로만 결정되었다고 볼 수가 없는 것이죠. 

9절에서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헤개가 이 처녀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
'은혜'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2장에서 여러 번 나오는 단어입니다. 은혜, 은총, 헤세드! 
이것은 에스더서 안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물론 성경전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어이지만요.

자, 이 단어는 언제 씁니까?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을 때만, 이 단어를 쓰는 거죠.

'은혜'라는 단어는 뭡니까? 
하나님이 함께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표현이 몇 차례 나오죠.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표현이 어떻게 표현되는 겁니까? 
종이지만 주인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는 겁니다. 

종인데 주인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일, 
이게 에스더에게도 나타났다는 거죠.
그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죠.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은혜를 베푸심으로써 
그가 이방의 왕들 사이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습니다.

다니엘이 어떻게 그렇게 이방의 나라에서 
정권이 바뀌는데도, 계속 그 왕들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는데 
그게 은혜(의 섭리)입니다. 

그 은혜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고 있다'는 증거이고요.
느헤미야도 바사의 왕 앞에서 은혜를 하나님께 구하죠. 느1:11, 2:5, 519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의외의 곳에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본문은 에스더의 미모, 에스더의 개인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에스더처럼, 그 은혜가 임해야 되죠. 
그러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설교의 주제

우리의 모든 사업이든, 결혼이 성사되든, 
아이들의 관련된 일들에 
은혜가 임하면 이야기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인생의 비밀이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헤개 라는 사람이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하심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일들이고, 

그 헤개가 에스더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배후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더의 국적을 밝히지 않다

자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모종의 지시를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먼저 알려지면, 결코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에스더의 국적입니다. 

2:10 '에스더가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이는 모르드개가 명령하여 말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자 우선은 왕후의 후보자격에 문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편견을 가지고 판단할 여지가 있었던 거죠. 

바사 왕국에서 다른 민족의 사람이 왕후의 자리에 오르는 일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 겠죠. 
그리고 지금 왕후를 뽑는 매우 까다로운 절차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왕후가 되어도, 이 일은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함께 엮여지면서 
모종의 역사가 앞으로 비밀스럽게 진행되어야 되기 때문에 
아마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국적을 밝히지 않게 했습니다. 

모르드개는 현재는 물론, 미래를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에스더에게 조언을 하죠. 

나중에 국적을 드러낼 순간이 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제 드러나게 되겠죠. 

▲자 여기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는, 책임을 져야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칫하면 집중적인 공격을 받을 수 있죠. 

예를 들면, 직장에서 내가 크리스천으로서 자신을 밝히려고 하면 
그 밝히는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돼요. 

괜히 신분을 밝혀놓고,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자라고 밝히는 순간부터, 우리는 성경적 가치를 따라 행동해야 될 각오를 해야 돼요. 
잘못하면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게 될 수 있기 때문에요.

특별히 오늘날 기독교에 대해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두가 나를 기독교인줄 아는데, 내 삶이 따라주지 않으면 
내가 그리스도인 임을 밝힌 그게 오히려 화근이 되는 수가 있어요.

자 에스더의 입장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는 아직 나이가 어린 여성입니다. 
거대한 권력의 중심부에서 자칫하면 휘둘릴 가능성이 높은데 
특히 유대인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 혹독한 시련을 맞을 수가 있습니다. 

아무튼 모르드개가 에스더의 국적을 밝히지 않은 것도 
에스더가 왕후로 뽑히는 부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어떤 자격문제와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11절에도 보면 '모르드개가 날마다 후궁 뜰 앞으로 왕래하며 
에스더의 안부와 어떻게 될지를 알고자 하였더라'

모르드개가 굉장히 분주해요. 
딸처럼 돌본 사촌동생 에스더, 긴장감이 넘치는 거죠. 

왜냐하면 이게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유대 전체, 민족 전체의 사활이 달린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속 에스더 곁에서 코칭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관계가 얼마나 긴밀한지를 보여주고 
또 모르드개가 계속적으로 에스더에게 주문을 할 때마다
에스더가 잘 순종하는 모습, 이 둘의 관계는 앞으로 펼쳐질 사건들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다 

 

자 헤개에 의해서 먼저 간택을 받은 여인들은 
왕 앞에 나아가기 전에 준비 과정이 있습니다. 준비 과정이 일년이에요. 

12절에 '처녀마다 차례대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기 전에 여자에 대하여 정한 규례대로 
12달 동안을 행하되 6달은 몰약 기름을 쓰고, 6달은 향품과 여자에게 쓰는 다른 물품을 써서 
몸을 정결하게 하는 기한을 마치며'

12개월은 처녀들이 자신의 몸을 가꾸는데 쓰여지는 기간입니다. 
이때부터 먹을 것, 입을 것, 화장품 다 제공받습니다. 

왕앞에 최상의 상태로 나가기 위해서 몸을 가꾸어야 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1년 동안 신부화장 하는 것과 같아요. 

스킨 케어하고, 마사지하고, 트리트먼트 하고
역사적인 자료를 보면, 당시에도 별 걸 다 하더라고요. 

BC 450년 경 당시에 바사 제국은 세계 최강입니다. 
그저 동네 미인경연대회가 아닙니다. 
바사 제국의 왕후를 뽑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복잡한 과정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마 현장에 우리가 있었다면, 이 분위기를 후끈하게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경쟁은 치열하고 기준은 매우 높았습니다. 
와스디 왕후에 대한 평가를 보면 대단했잖아요. 

'아름답고 용모가 사람들이 보기에 좋았다' 왕후 와스디가 굉장히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뭡니까? 와스디보다 더 나은 사람입니다. 
경선이 매우 까다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여기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2:12~14절에 보면, 순서가 정해진 대로 왕과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요. 
고대사에 왕실의 문화를 읽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왕에게로 들어가고 나오고.. 이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모든 권한은 왕에게만 있고, 처녀들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처녀들은 자신들이 왕으로부터 간택을 받고자 노력을 했어요. 필사적으로. 
근데 한번 들어갔다가 나와서, 왕이 다시 부르지 않으면 
그는 왕앞으로 다시는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나는 겁니다. 
그 이후로는 일평생 그 처녀는 (궁녀로) 안타까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이후로는 궁녀를 관장하는 내시의 관리 아래로 들어갑니다. 
에스더가 살았던 바사 제국의 도덕성이나 문화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없는 문화속에서 일어나는 어두운 역사들이죠. 

아무튼 우리는 여기서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자 이제 이야기가 느린 듯 진행되다가, 갑자기 이야기가 빨라집니다. 

이야기의 중심이 에스더에게로 흘러갑니다. 
드디어 에스더 차례가 다가오고 있어요.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에게 좋게 보였다는 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어요. 
중요한 것은 왕의 눈이에요. 왕의 눈에 들어야 됩니다. 

15절 '모르드개의 삼촌 아비하일의 딸 곧 모르드개가 자기의 딸 같이 양육하는 에스더가 
차례대로 왕에게 나아갈 때에,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가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더라'

에스더는 왕실이 주관하는 대로 모든 걸 따랐다는 거예요. 
다른 오버 액션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후보여성들은 더 돋보이고자, 더 많은 물품들을 요구하고 
더 많은 것들을 까다롭게 요구했었했던 것으로 여겨져요. 

그러나 에스더는 모든 규정대로 따랐습니다. 
내시 헤개가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뭘 보여주느냐면, 에스더는 자신이 더 돋보이려고 어필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수동태
허세를 보이지도 않았고, 어떻게 보면 경쟁심도 없었어요. 

이것은 그녀가 처음부터 이끌려 왔다는 사실과 일치를 이룹니다.
에스더는 적극적으로 자기가 왕후가 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냥 무심한듯 참여하고 있습니다. 매우 소극적입니다. 
그녀는 왕후로 뽑히는 것을 목표로 하고 나온 사람이 아니에요. 
이끌려온 사람이에요. 

여기서 다른 경쟁자들과 함께 경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15절 끝에 달린 코멘트가 인상적입니다.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더라' 

에스더는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에스더는 특별하게 자기가 돋보이려고 애를 쓰지 않았어요.
왕후가 되겠다고 스스로 어필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그냥 하라고 하니까 한 거예요. 
자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거죠.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더라' 이미 판세가 결정되고 있는 거예요. 
특별한 일인 것이죠. 
이것은 그냥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2장의 흐름을 여러분, 파악하셨지요?

처음에 집에서는 모르드개의 인정을 받고 → 궁에 가서는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의 인정을 받고

→ 그 다음에는 궁의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 이제 드디어 왕의 사랑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말은 그녀가 단순한 외모의 아름다움만 갖고 있었다는 게 아니라,

깊은 신앙심에서 오는 인격의 미, 성품의 미까지 겸비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은 경건에서 오는, 기도에서 오는 인격과 성품의 아름다움 입니다.

 

 


◑에스더, 왕의 사랑을 받게 되다

 

드디어 에스더가 이제 왕이 인정을 받는 대목이 17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2:17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하므로 그가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더 은총을 얻은지라 

왕이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로 삼은 후에'

드디어 최종적인 판단이 났습니다. 
왕의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가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더 은총을 얻은 지라' :17
여기에서도 은총(은혜)이라는 단어가 또 나오죠. 
이 은총, 히브리어로 헤세드 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향한 사랑과 자비를 나타낼 때 쓰는 단어입니다. 
왜 당신이 백성을 그렇게 사랑하시는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은총입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은총이라고 얘기합니다. 

은총은, 그 받는 이유를 설명을 할 수가 없어요. 
한마디로 왕은, 에스더를 보는 순간 푹 빠져버렸습니다. 
그녀는 다른 여인들과는 완전히 다른 레벨이었습니다. 

다른 여인들은 자신을 과장해서 매력을 발산해서 남자를 끄는,

가꾸어서 끌어당기는 매력을 발산했지만,

에스더는 그런 것과는 다른 레벨이었어요.

 

드디어 에스더가 왕후로 세워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엄격히 말하면, 왕이 왕후를 선발한 게 아니죠.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뭡니까? 

하나님이 에스더를 왕후로 먼저 선발해 놓으신 거죠. 
왕의 은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이죠. 

진행과정을 자세히 보십시오.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에스더가 처음에는 헤개의 눈에 들었어요. :9

그런데 15절을 보면,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았어요'

그리고 17절에는 '왕에게 사랑을 받았다'

처음 헤개의 눈에 들 때는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보는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 .. 이런 특별한 일이죠.
에스더가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최초로 갖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왕의 사랑을 받는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난거죠. 
그냥 왕이 사랑했다는 게 아니라, 
'왕은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했다'

그러니까 지금 진행 과정을 보면, 갈수록 강도가 더 세어집니다. 
점층법이라고 말하죠.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고 모든 것이 더 분명해졌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에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요?

에스더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선 게 아니에요. 
자기 앞에 다가온 상황에 반응한 것이지, 그녀가 주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상황이 에스더 편으로 움직여 가고 있는 거예요. *섭리죠
역사의 중심축이, 섭리의 화살이 에스더를 주목하고, 그에게로 계속 기울어집니다. 

이게 은총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은 여기에서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죠. 

여러분, 이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막 하려고 발버둥치고, 내가 뭔가 이루려고 많은 날 안달복달하고
억지로 악을 쓰는 것으로는 되는 게 아니에요

이미 그러면 안 되는 일이라고 내다보면 맞습니다.
미래에 안 되는 일인데, 내가 지금 매달려 있는 거죠. 

본문의 에스더는 자기가 왕후가 되려고 한 게 아니에요. 이끌려 갔어요. 
그리고 과정도 뭐 대충 한 것 같아요. 

그리고 막 아무 데나 핀도 꽂고, 눈도 이상하게 그리고.. 
뭐 하여튼 뭐 자기가 의도적으로 되려고 애를 쓰지 않았어요. 

내가 하려고 해서 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되게 하신 거잖아요. 
그게 은총입니다. 이게 에스더서 전반부의 총 주제입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그 은총이 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은혜로 살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인생이 쉬워요. 삶이 자연스럽고! 
억지가 아니고요.

일이 안 되는데, 
근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이 되게 하시니까 
일이 되는 반전이 일어나는 겁니다.

나는 도망가는데 하나님의 은총이 따라오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삶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은혜의 원리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과 우리 성도의 삶은 근본적으로 다른 차이가 있어요.
세상은 자기의 힘으로 획득하고 쟁취해 가는 인생이라면 
그러니까 악을 써야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악을 빼야 돼요. 우리는 우리의 힘을 빼야 돼요. 
내가 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어쩔 수 없이 되게 하시고야 마는 
그런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기도할 때, 그 은혜를 주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은혜)가 내게 나타나게 해달라고 
이 기도를 해야 됩니다. 
그러면 새해 2022년은, 되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기차가 레일 위에 올려놓으면 가는 거 아니에요? 
여러분 그런데 다른 길에 올려놓으면, 기차가 갈 수 없는 거죠.
그 인생 기차는 너덜너덜 해 지죠. 가면 갈수록!

16절 '아하수에로 왕의 제칠년 시월 곧 데벳월에 
에스더가 왕궁에 인도되어 들어가서 왕 앞에 나가니'

여기 표현을 보십시오. 왕궁에 인도되어 들어갔어요. 

8절에는, 에스더가 왕궁으로 이끌려 들어갔어요. 수동태입니다. 

근데 전혀 다른 상황이 됐어요. 인생이 바뀐 거죠. 
인도를 받고 있는 거죠. 

지금 시점은 와스디가 폐위되고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왕후의 선택이 미루어지고 미뤄졌습니다. 

왜 이렇게 4년의 공백이 생겼을까요? 
역사가에 의하면 아하수에로 왕이 처음 3년간 그리이스와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년은, 처녀들이 왕 앞에 나가기 위해 준비한 기간입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미뤄진 것처럼 보이지만 
에스더를 왕후로 세우기 위해서 준비가 필요한 시간으로 보여집니다. 그 4년이!

하나님은 늦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역사하십니다.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흘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침내 때가 왔고, 그때가 꽉 찼고 
하나님의 시그널이 울릴 때, 비로소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다는 걸 우리가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생략된 그 빈 공간에는 
우리가 들어가서 해석을 해야 돼요. 

그래서 모든 것이 우연처럼 보이는 것들이, 겹겹이 겹쳐져 있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 얼마나 많은 경쟁자가 있었겠습니까. 

에스더는 경쟁에서 이겨서, 왕에게 간택된 게 아니에요. 
에스더는 하나님이 먼저 선택하셨다는 겁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지목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먼저 있고, 그 다음에 다른 게 따라오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오래 전에 다윗의 어린 시절에, 
사무엘을 통해 기름부음을 받는 사건이 있었어요.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왕이 된 거죠. 
먼저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와 사건을 읽는 눈(시각, 관점)입니다.
일어난 사건에 대한 해석과 관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으로부터 선택받은 에스더는, 왕의 눈에 들 수밖에 없는 거예요. 
어디를 보아도 마음에 들게 된 거죠. 
왕은 완전히 에스더에게 사로잡혔습니다. 

여러분 다니엘을 보면,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바벨론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죠. 

문제는 그들의 몸이 초췌해지면서, 환관장이 징계를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묘한 일이 일어나죠. 채식만 한 소년들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단1:15절에 보면,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이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보인지라'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잘 먹은 다른 소년들보다, 훨씬 더 잘 아름답고 윤택했다는 겁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어떤 사람은 '채식을 해서 그랬다'는데, 성경을 자세히 읽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단1:9절을 보면, 답이 금방 나와요.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시니라' 단1:9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죠. 그게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오늘 에스더는 포로민의 자녀에서, 바사 제국의 왕후가 됩니다. 
밑바닥에서 권력의 최상층부로 치솟게 됩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죠. 

당시 바사 Persia 는 광대한 영토를 가진 제국입니다. 
그야말로 이 바사 제국은, 그 거대한 바벨론을 무너뜨린 나라가 바사 입니다. 

그런데 그 바사 제국의 왕후가 되었다는 거예요. 
유대인들은 너무도 미약하고 보잘 것 없는,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던 유랑민이에요. 

그 유랑민들, 그 곳곳에 정착해 있는 나그네 삶을 살아가는 
정말 변방에 별 볼일 없는 여성이, 이 바사 제국의 왕후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에스더의 입장으로 들어가보면 어안이 벙벙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에스더는 마침내 바사 제국 왕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에스더서는 한 인물의 성공담이 아닙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된다는 것은, 특권보다는 사명입니다. 
성경은, 한 사람의 성공 케이스를 단순히 알리고 있지 않습니다. 

가끔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평을 받는 사람들이 있어요. 
천신만고 끝에 경쟁을 뚫고 올라간, 입신양명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나 그런 이야기안에는 반드시 나오는 것이 있는데 
'인간 승리'라는 것입니다. 
소위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자화자찬이 넘칩니다. 

그러나 에스더의 이야기는 달라요. 
에스더가 왕후가 된 이야기는, 성공 스토리와는 다른 것입니다. 

왕후가 되는 게 목적이 아니고 
왕후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대걔는 성공 이후에, 자기 성공에 도취됩니다. 
그러나 왕후의 자리야말로 매우 위험한 자리입니다. 

얼마 전 와스디의 폐위 과정을 본다면 
앞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요. 

변덕스러운 왕의 마음, 그 신하들의 들끓는 그 경쟁심과 충성임,
이 왕실 안의 구조를 본다면, 왕후는 결코 안전한 자리가 아닙니다. 

에스더가 왕후에 오른 것은, 바사 제국의 역사보다
유대인의 역사에 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방의 제국 안에 살아가는 유대인 공동체의 운명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의 한가운데서, 
우리의 위치를 한없이 올려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안될 일이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소위 흙수저이고, 스펙은 한없이 부족한데 
왠지 그 인생이 풀려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풀게 하시면 풀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풀어주실 때, 
분명히 안 되어야 되는데,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 하시면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2022년 에도 여러분들 가운데도 
이런 역사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소극적으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적당하게 직장 생활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냥 죄 안 짓고 사는 수준으로만 만족하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인으로 부름을 받았을 때, 소명자들이에요. 

성공을 위한 성공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한 세상에 우리를 보내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가운데로, 한가운데로 우리를 보내세요. 
아주 어렵고 위험한 곳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에스더가 왕궁 한 가운데로 들어간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 이라는 신분이 드러나는 순간
주변에 적들이 막 생겨납니다. 

이제 여러분 앞으로 이제 에스더서가 전개되는 과정을 보면 알겠지만 
이제 살벌한 살풍경이 벌어지는 겁니다. 

지금 뭐 왕후가 된 것은, 기쁨은 잠깐이고 
이제 아슬아슬한 일들,
생명이 오고 가는 일들이 이제 앞으로 벌어지잖아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속에서 우리의 신분이 드러나는 순간, 주변에 적들이 생길 수 있어요.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는 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주실 때 
그 성공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그냥 깔아뭉개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하는 거죠. 

하나님은 우리를 올려주실 수도 있어요.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안 되는 것도 되게 하실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소외된 변방에 
정말 나그네로서의 살아가는 디아스포라 같은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은 끌어올리셔서, 얼마든지 에스더처럼 사용하십니다.
그 같은 역사가 오늘도 우리 가운데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돼 있느냐는 것이죠.
주님, 그 감당할 능력을 주시옵소서! 

여러분 그게 없으면 왕후의 자리는 아무 의미가 없는 거죠. 

여러분 세속적인 성공의 자리에 들어가면, 생각보다 유혹과 위험이 엄청나게 많아요.

여러분 성공의 자리에 가면, 성공을 향유하고(누리고) 싶은 욕망을 이기는 게 쉽지 않아요. 
여러분, 다니엘과 세 친구도 포로로 붙잡혀 갔는데
왕실 안으로 특채로 들어갔으니까 이게 엄청난 출세입니다. 엄청난 성공이죠.

느헤미야도 마찬가지잖아요. 이방 왕의 아주 최측근 비서관이 된 거죠.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출세한 사람은, 그 성공을 향유하고 싶은 욕망을 이기는 게 쉽지 않아요. 

자칫하면 그 세상 문화안으로 흡수, 동화되어 버리기 쉬운 거예요. 

여러분 언제나 권력은 매혹적인 것입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신분상승은 어지럼증을 유발하죠.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이 그 자리에 오르게 하신 목적을 놓치면 안 됩니다. 
여러분 바사 제국은 역사 속에 서서히 사라져가는 제국에 불과해요. 

신자들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참 무가치한 존재로 비칠 수 있어요. 
화려한 세상 문화 앞에서, 우리의 존재는 작아져 보일 수도 있습니다. 

화려한 고초고층 아파트 앞에서 전도할 때
경비원들의 차가운 그런 냉대를 받으면서, 우리가 작아지 때도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에스더처럼) 하나님의 나라의 택함 받은 백성들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에요. 하나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높이 세워서 사용하기도 하시고 
때로는 낮은 곳에 이르러 섬기는 일을 하게도 하십니다. 

어떤 직위에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맡은 일이 무엇인가요?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름을 받은 소명자들입니다. 

우리는 성공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분의 왕국을 위해서, 부름을 받은 백성들인 것입니다. 

2:18 '왕이 크게 잔치를 베푸니 이는 에스더를 위한 잔치라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또 각 지방의 세금을 면제하고 

왕의 이름으로 큰 상을 주니라'

자 잔치가 벌어지고 있어요. 근데 '잔치'하면 가슴이 덜컹해요. 
1장에서, 잔치 끝에서 와스디가 폐위를 당했거든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믿는 것은, 에스더를 통한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흩어진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이 있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더서와 출애굽기는 매우 닮아있습니다. 
당신이 백성들을 구원내 내기 위한 드라마는 상상을 초월하죠. 

애굽에서 학대받는 히브리 민족을 구출해 내신 이야기나 
바사 제국의 몰살의 위기에서 유대인들을 구출해 내신 이 사건은 너무도 흡사해요. 

낯선 문화 속에서 온갖 핍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믿음의 공동체를 살려내시는 이야기들을 
우리는 출애굽기와 에스더서를 통해서 더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그 하나님의 구원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숨가쁘게 살아가고 있지만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편이 되시고, 우리를 돌보십니다. 

그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순간마다.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안 되는 일을 되게 하시고, 풀어내시고, 
결국 에스더는 여전히 수동태로 있지만 
하나님은 에스더를 기어코 왕후의 자리에 세워놓고야 마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시기 위한 열심을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하여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성공은 분명한 목적이 있고, 이유가 있고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에 쓰임 받도록 하시기 위해 세우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우리의 의도와 상관 없는 곳으로 어디론가 데려가실 때가 있어요. 
그때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시고 순종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수동티로 있지만 하나님은 능동태 이십니다.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셔서 어디엔가 세우실 때 
거절하지 말고, 순종하며 나갈 때
우리를 통하여 계속해서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펼쳐가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의 구원의 놀라운 역사에 
여러분 모두가 쓰임 받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라고 
오늘 한 날도 하나님의 인도 하심속에 기꺼이 순종해 가는 하루가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