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이 훌륭한 사사였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강력한 증거는 그가 특별한 수태고지를 받은 사실 말고도, '성령이 그에게 임하였다'고 성경 곳곳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13: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14: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14:19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15: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그리고 마지막에, 그가 블레셋 다곤의 신전에서 죽을 때, 거기 모인 블레셋인 3천과 함께 신전이 무너져서 죽은 것은 성경에 '성령이 임했다'는 말씀은 없지만, 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의 힘으로, 그 큰 건물의 무거운 돌기둥을 무너뜨릴 수 없거든요.
△이에 대한 반론, 일례로,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블레셋 여인과 결혼할 때, 이걸 애국적 거사로 해석하기 쉬운데요,
그가 만약 "사전에" 미리 심사 숙고하고, 사전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서 그때부터 성령이 임해서, 블레셋 사람을 친 것이 아니거든요.
삼손은 좌충우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하고 여러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중에 "갑자기" 성령이 임하십니다. 그리고 수세에 빠진 그를 도와주십니다.
물론 성령이 전혀 임하지 않는 사람보다 성령이 임하는 사람이 훨씬 더 영적인 사람입니다.
근데 다윗을 보면, 전쟁을 나가기 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쟁 계획을 수립해서 나가거든요. 그건 하나님이 인도하신 전쟁이 맞습니다.
근데 삼손을 보면, 사전에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는 얘기는 한 번도 없습니다. 사전에 그가 행한 일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가 정직한 평가입니다.
그런 소동의 와중에 '갑자기' 주의 성령이 임하여, 그에게 괴력을 주시고, 그를 도와주시고, 블레셋을 치게 하십니다.
그가 홀홀단신으로 블레셋을 쳐서 이긴 것은, 잘한 일이 틀림 없습니다만 그가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처럼, 무슨 사전 계획을 '애국심으로' 한게 아닙니다. 오죽하면 아무 무기도 없어서, 그냥 주위에 있는 것 하나 잡아서 들었는데, 그게 나귀 턱뼈였습니다.
이렇게 삼손은 정말 '즉흥적'이고, '갑자기' 주의 성령에 감동되었습니다. 만약 사전에 성령의 인도를 받아 치밀하게 준비해서 전쟁에 나갔다면, 삼손이 '전쟁 영웅, 구국 영웅'이 맞는데,
'어쩌다 부모, 어쩌다 어른'이란 말이 있듯이, 삼손이 영웅이 된 것은 정말 '어쩌다 구국 영웅'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삼손이 보통 사람 이상의 '성령에 감동된 사람'인 것은 분명하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평가절상 하기에는 좀 주저가 됩니다. 본인은 자기 소견대로 행한 좌충우돌 이었지만, '어쩌다 영웅'이었으니까요.
이것은 오직 세상에서 약하고 미련하고 비천한 자를 들어서 쓰시는 그래서 지혜있고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 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게 없습니다. 고전1:27
삼손을 하나님이 쓰신 사사로 인정은 하겠지만, 그를 무슨 '구국 영웅'처럼 떠받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소견대로 행한 사람이지,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행한 자가 아니었어요. 성령은 그냥 급작스럽게, 갑자기 그에게 개입을 하신 거죠.
이렇게 보는 관점이, 삿16장 그의 마지막 최후의 죽음과도 문맥상 맥을 같이 합니다.
삼손이 훌륭한 사사로 성령에 감동되어 사역하다가, 그런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다고 하면,
삿13~16장의 전체 삼손 스토리의 문맥과 흐름이 부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삼손 뿐만 아니라, 앞서 기드온, 입다, 입산, 압돈 등
기드온 이후 모든 사사들이, 어떤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잘한 점과 연약한 점을 둘 다 모두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의 약점을 '그가 블레셋을 치기 위한 계략'으로 보기엔, 무리한 해석입니다.
◑기도의 사람, 부르짖은 삼손
이것은 확실히 삼손의 강점이 맞습니다. 삼손은 부르짖을 줄 아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서 기도로 힘을 얻은 대표적인 사람 그러면 삼손이에요.
15: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15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 :16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하니라 :17 그가 말을 마치고 턱뼈를 자기 손에서 내던지고 그 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라맛 레히는 '턱 뼈의 무더기, 턱 뼈의 산'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라맛 레히의 큰 승리가 어떻게 해서 임한 거예요? 기도 했잖아요. 기도함으로써 큰 승리를 이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4
근데 삼손이 단신으로 1천명을 죽이고 승리했어요. 그 자리 라맛 레히에서 지금 삼손 혼자 싸우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블레셋이 접근전을 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아마 멀리서 삼손을 포위를 했는가봐요. 고사작전에 들어간 거죠.
삼손이 고립된 시간이 오래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마실 물이 없잖아요. 그래서 갈증으로 죽을 상황이 되었을 때 또 기도하는 모습이 나오잖아요.
15:18~19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엔학고레.. '부르짖는 자의 샘'이에요. 그러니 '기도하는 자의 샘'이란 뜻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기도모임이 많이 있는데 왜 '엔학고레' 라는 이름의 기도모임은 없는지요?
엔학고레는, 부르짖는 자의 샘이거든요. 부르짖을 때 샘이 터져 나왔다 라는 거예요.
우리 인생가운데, 삼손처럼, 죽을 위기에 처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목마르지 않습니까, 답답하지 않습니까?
그때 보통 사람과 전혀 다르게 삼손은 기도를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해 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얘기를 해요. '사람이 절박하면 기도하는 거 아니냐? 본능적으로 기도하는 거 아니냐?'
포르투갈 속담에 '기도를 배우지 못한 사람은 바다로 보내라 그러면 기도하게 된다'
그러니 삼손의 기도가 별거 아니라는 거죠. 누구나 위기에 처하면, 다 기도하게 된다는 겁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삼손이 엔학고레에서 기도한 것은 그가 평소에 기도의 줄을 붙잡고 있었다는 거예요.
계속 기도하는 사람이, 위기의 순간에 이런 기도가 나오는 거예요. 삼손에겐 기도의 습관이 있었다.. 이게 맞는 거예요.
여러분, 초신자들이나 신앙생활 제대로 안 하던 사람들에게 위기 한 번 닥쳐보세요. 기도 못 해요!
평상시에 기도하는 사람이, 위기 때도 기도하는 거지 평상시에 기도가 안 나오는 사람은, 위기 때도 그저 애절한 마음만 있을 뿐이지, 안타까워만 할 뿐이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가 나오질 못해요.
지금 삼손의 이 기도는, 급할 때 나오는 기도가 아니에요. 지금 이 기도는, 평소에 기도의 줄을 붙잡고 있을 때 나오는 기도라고요. 기도의 습관이 됐을 때 나오는 기도라고요.
이걸 통해 알 수 있는 게 뭐예요? 삼손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평소에 계속 기도 하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죠.
마지막 죽을 때도 봐요. 두 눈 뽑히고 연자 맷돌에 묶여 있을 때도 그때도 전부 다 하나님의 언약을 기초로 한 기도를 하고 있어요.
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도 본문의 삼손을 통해 '기도로 힘을 얻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양육할 때, 뭘 가르쳐야 되냐면 기도로 힘을 얻는 법을 가르쳐야 돼요.
우리가 다 번아웃 되고, 힘들고 넘어지고 깨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때마다 기도를 가르쳐야 돼요. 기도로 힘을 얻고, 기도로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워야 되고, 기도로 난관을 돌파하고, 극복해 나가는 법을 배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삼손에게서 우리가 배울 교훈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엔학고레가 되기를 원합니다. 또 여러분 심령이 엔학고레가 되기를 원합니다.
'부르짖는 자의 샘' 아무것도 없는 데, 목말라 죽는 데서도 여러분이 부르짖으면 거기서 샘이 터져 나오는 거예요. 엔학고레는 삼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있는 샘입니다. 다만 부르짖지 않아서, 그 샘이 터지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 자녀들보니까 뭐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거예요. 근데 부르짖더니 거기서 샘이 터져 나오는 거예요. 엔학고레 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뭐 이렇게 답답하고 묶여있고 눌려있는 것 같아 보이는데
기도하는 성도가 가서 부르짖을 때, 그곳이 엔학고레가 되는 거예요. 물이 터져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히11장에 보면, 믿음의 조상들 목록이 나올 때 저는 제일 특이했던 것은, 그 목록에 왜 여호수아가 빠졌을까? 라합도 들어가는데, 왜 여호수아가 빠졌을까요?
또 바락은 나오는데, 여자 사사 드보라는 목록에 빠져 있어요. 혹시 여성 차별아닌가? 혼자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겁니다.
그리고 12명의 사사 가운데는 두 명만 들어가 있어요. 입다와 삼손! (바락은 사사 아님) 이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인 거예요.
우리가 왜 기도해야 되나요?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해요. 내 힘만 갖고는 안 되잖아요.
우리 맨날 그러잖아요. '눈감으면 확신이고, 눈뜨면 의심이다' 눈감고 기도하면 믿음이 생기는데 눈뜨고 현실을 보면, 믿음이 식어진다는 얘기죠.
그때마다 우리가 하나님의 힘을 구해야 돼요. '하나님, 힘주십시오. 능력 주십시오!'
사실 내가 가진 힘만 갖고 한다면 그러면 목회가 되겠습니까, 교회가 되겠습니까, 우리 가정이 되겠습니까, 선교가 되겠습니까?
다 막막하고 너무너무 힘든 일이에요. 이 많은 일들을 어떻게 다 감당을 해요?
그런데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을 보면, 우리 힘만 갖고 되는 게 아니데,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루만져 주시고 우리 각 성도들을 어루만지시고, 일꾼들을 보내주시고 세워주시고... 그래서 오늘까지 되는 것입니다.
이게 기도 없이 어떻게 되냐고요? 그래서 매 순간 엎드려 기도하는 거예요. 매 순간!
오늘 이 아침에도 엔학고레, 기도의 샘이 터져서 우리 영혼이 싱싱함을 되찾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싱싱하게 주어진 일을 하고, 싱싱하게 선교를 가고요. 싱싱하게 사업을 하고요. 싱싱하게 새롭게 일을 시작하고, 싱싱하게 오늘도 사람을 만나고, 싱싱하게 사역을 이끌어 가고 싱싱하게 가정을 이끌고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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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0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년을 지내었더라
본절에서는 '레히'에서 대승리를 거둔 삼손이 이제야 비로소 동족의 냉대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인정받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사기의 기록은 엄격하게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다기 보다는 구속사적인 안목에서 연대별 순서가 무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사사들의 활동 범위가 국지적이었기 때문에 연대적으로 둘이상의 사사들이 동시대에 활동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삼손의 경우에도 그 활동 연대를 추정하기가 몹시 어려운데, 그에 관한 기록들과 본절을 참고할 때 삼손의 사사직은 블레셋에 대항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과 결부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가 B.C.1080-1060년에 걸쳐 활동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렇게 볼때 삼손은 입다와 동시대인이면서 사무엘의 활동 시기와도 상당 부분 겹치는 것이다.
한편 그의 활동 반경은 단 지파와 유다 지파에만 국한되었다.
‘사사로 이십 년을 지내었더라’ '레히'에서 블레셋족을 격멸한 일로 인하여 비로소 이스라엘의 사사로 정식 인정받은 삼손이 이후 20년 동안 사사로서의 공적 활동하였다.
그러나 20년간은 블레셋의 이스라엘 압제 기간 40년(13:1)의 절반 밖에 못 미치는 기간이므로 삼손이 블레셋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구원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13:1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니라
한편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압제한 기간은 정확히 언제부터 어느 때까지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왜냐면 삼손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이스라엘은 블레셋으로부터 괴롭힘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블레셋 치하에서 삼손이 사사로 활동한 기간은 불과 20년 밖에 안 되며(15:20) 삼손 이후에도 블레셋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혔기 때문이다(삼상 4장, 17:1-5 삼하 5:17-25).
그러나 사무엘의 통치 말엽 경에 블레셋의 압제가 일시 소강 상태를 이루었던 점으로 보아 이때까지의 기간을 대략 40년으로 볼 수 있다.
아무튼 이후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에도 블레셋은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혔는데 다윗 왕이 저들을 정복하므로서(삼하 8:1) 마침내 블레셋의 압제는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