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감히 이 시대를 '허상의 시대다' 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허상'이란 말 뜻은, 실체가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나타나 보이거나 실제와는 다른 것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습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뭐 좀 있어 보이는데 헤쳐보니까 아무것도 없더라는 거예요. 지금 우린 이런 허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뭐 좀 갖춰진 것 같고, 좀 대단한 줄 알고, 또 진짜인 줄 알았는데 막상 우리들의 삶 속에서 만나는 삶의 조각들은, 다 허상의 단면들인 거죠.
저는 이런 허상의 풍경들을 종종 경험하곤 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목사이다 보니까, 많은 성도님들과 사람들의 삶과 애환 들을 자주 듣게 됩니다...
제가 지금 짧게 몇 가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 현상을 말씀드렸는데 이게 뭘 보여주고 있죠? 다 허상이라는 거예요.
뭐가 좀 있는 줄 알았는데, 뭐가 좀 되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 살펴보니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죠.
여러분, 이렇게 우리가 전혀 몰랐던 허상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사람은 참 허탈하기 짝이 없어집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믿고 싶고, 기대하고 싶고, 바랬지만 실제로 이 세상은 허상의 시대 라는 것을 우리는 속속들이 마주하고 있어요.
겉은 그럴싸한데 속으로 들어가면 알맹이를 찾아볼 수 없는 이 '허상의 시대'를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자 그런데요. 세상이 이렇게 허상 위에 쌓아올린 허접한 말만 하고 있을지라도 이 땅에서의 허상은 우리가 그냥 좀 고통을 당하기만 하면 됩니다.
사회구조가 말도 안 되면, 그냥 좀 힘들고 안타깝지만.. 피눈물 좀 흘리면 됩니다. (몸으로 때우면 됩니다.) 이게 영원한 고통을 안겨주지는 않아요.
그런데 이 '영적인 허상'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내 믿음이 가짜였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면 이 허상(의 내 믿음) 위에 쌓아 올린 신앙은, 그 끝이 매우 위험하고 불길하다는 거에요. 영원한 형벌을 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 예수님께서 이 <영적 허상>을 무엇에 비유하며 말씀하셨는지요? 마7:26~27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예수님은 사람의 영적 허상을 뭐라고 비유하셨죠?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는 거에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이 영적 허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되는 말씀이, 바로 그 위에 나옵니다.
주님은 이 영적 허상, '있는 것 같아 보이는데 아무것도 없음'을 경고하시면서 바로 그 직전에 있었던 한 가지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말씀하세요. 그 사건이 뭐냐?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심판대에서 내어쫓김을 당했다는 실제적 사건입니다. (아마 지금도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실입니다.)
마7:22~23절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와 같이 심판대 앞에 섰던 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이 온전하고, 진짜인 줄 알고 예수님앞에서 자신 있게 '나를 좀 인정해 주세요' 라고 말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하시는 겁니다.
'너희는 불법자라'고 하시면서 그들을 천국에서 내쫓아버렸다는 거에요. 이런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경고하시는 거에요. 이렇게 버림받은 이 자들이, 무엇에 깊이 빠져있었는 줄 아냐? 그게 바로 영적 허상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너희 믿음이 진짜라고 생각하느냐? 너희들 중 많은 이들이, 심판대 앞에서, 내 앞에서 자기 신앙을 어필하겠지만 그 신앙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은, 허상의 신앙이라'는 거에요.
'사실 그건 신앙이 아니다. 본디 신앙이 아니라서 언제든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무너지되 그 무너짐이 너무 심해서.. 너희의 신앙이 이와 같이 허상 위에 쌓아올린 무너질 위험한 신앙은 아닌지 살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여러분 우리는 이제, 우리 신앙이 어떤지 점검하셔야 되는데 무너져도 그 무너짐이 너무 심하게 될 허상 위에 쌓아올릴 신앙이 바로 내 신앙은 아닌지..
몇 가지 지표를 가지고 우리 신앙을 점검하기 원합니다.
◑1. 첫번째 지표입니다. 내게 <영적 허세>가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내가 <영적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십시오.
자 예수님은 심판 날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 앞에서 허세를 부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했고, 귀신 쫓고 병도 고쳤습니다.' 그런데 이게 그 사람의 진짜 실력이었으면 예수님으로부터 큰 칭찬이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보시기엔 뭐예요? 실상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대단한 척하며 뭐가 있는 양 줄줄줄 나열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불호령이 떨어진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사람들이 이렇게 허세를 부리는지를 아셔야 됩니다. 왜 사람들이 허세를 부릴까요? 그 이유는 간단해요. 인정 받고 싶고, 주목받고 싶다는 거예요.
특히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 이들은 지금 <주님 앞에서도 인정받고 싶어서>, 자기를 어필하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 여러분, 이 땅에 살 때 이 자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인정을 받고> 싶고 박수와 갈채를 받고 싶어서 혈안이 되었겠습니까, 그죠?
허세의 본질이 여기서 드러나는 거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에요.
자 그런데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실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은, 받을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사람이 진짜 잖아요. 그러면 사람들이 알아서 그를 인정해줘요. 그를 알아봐요.
자기를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진짜들은 드러나요. 그래서 인정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진짜 들은 허세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보통 허세는 누가 부릴까요? 실력이 없는 사람들이 허세를 부려요.
자기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들통이 날까봐 불안해서 자꾸 자기를 어필하고 내세우는 거죠.
여러분 진짜들은, 자기를 어필하지 않죠. 자 이병철 회장이 돈 자랑하는거 보셨습니까? 진짜 부자들은 돈 얘기 안 해요.
그런데 여러분 짝퉁들은요, 이미테이션들은 이렇게 인정받고 싶어서 폼 잡고 허풍을 떨어요.
그래서 가끔 교회에서 보면 '내가 기도를 합니다. 내가 뭐 음성을 듣습니다. 제가 좀 선교를 합니다. 봉사를 합니다.' 여러분 이런 얘기 들으면, 씩 웃음이 나오지 않아요?
여러분 진짜 들은 그런 얘기 잘 안 해요. 왜냐면 그냥 그게 자신의 당연스러운 삶이에요.
▲기도하는게 삶이셨던 마가의 다락방의 박현식 전도사님 이분은 사람들 보고 '당신, 기도 하세요!' 하고 윽박지른 적이 없어요. 그리고 '내가 얼마나 기도 합니다.' 라고 말하지도 않아요.
왜냐면 그냥 그분은 늘 눈만 뜨면 기도 하고 계세요. 늘 몸을 살짝 흔드시면서 기도하신다니까요. 입을 웅얼거리면서요.
여러분, 선교하는 게 삶인분들은요. 내가 뭐 선교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자기를 어필하지 않아요.
아프리카의 이원철 선교사님을 보면, 정말 대단한 분이거든요. 정말 선교사들의 아버지 같으신데, 이분은 별 말씀이 없으세요. 왠줄 아세요? 그냥 그게 자기 삶이거든요. 진짜는 어필하거나 자랑할 게 없어요.
이미테이션들이 자꾸 자기를 어필하죠. 여러분 저도, 전도사때 허세에 빠진 적이 있었어요.
예전에 신학생 때 그렇게 헬라어, 히브리어 이런 원어를 너무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냥 원어성경 좀 보고, 제가 성경 좀 안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러다가 좀 어려보이는 신학생 하나가 있어가지고 같이 성경에 대해서 얘기를 한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깜짝 놀란 게 뭔지 아세요? 그 친구가 저보다 훨씬 성경을 많이 알고 있었어요.
저는 오히려 원어에 집착하다 보니까 지엽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얼마나 성경을 잘 아는지 통으로 다 꿰면서 줄줄줄 얘기하는데 제가 그때 깨달았어요. '아~ 완전히 내가 허세를 부리고 있었구나. 내 성경지식이가 거품이었구나!'
그때 제 모습이 정말 한심하더라고요.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제가 뭘 안다.. 자랑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여러분, 실제로 살다 보면 신앙도 목회자보다, 성도님들이 더 경건하고 거룩한 분들도 진짜 많아요. 제 말에 공감하는 목회자들 많으세요.
정말 기도하는 성도들, 정말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들이 많기 때문에 감히 단에서 자기 신앙 얘기하면서, 제가 까불 수가 없어요.
▲기도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여러분 가끔 설교하다가, 제 산기도 얘기를 할 때가 있어요.
이거는요, 설교맥락상 어쩔 수 없어 얘기하는 거지 정말 주님이 아시지만, 제가 지금까지 산기도 한 것에 대해서 이걸 자부심을 갖는다거나, 이걸 자랑으로 여긴 적이 없습니다.
왜냐면 저는 저 자신을 너무 잘 알잖아요. 그 산기도를 가지만, 얼마나 보잘 것 없고 변변치 않은 기도를 하고 어떤 날은 그냥 (출석도장) 찍고 내려오는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기도를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이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저는 왜 산을 그렇게 찾느냐? 오히려 제가 안 돼서(부족해서) 가는 거에요.
사람들이 착각하면 안 돼요. 제가 뭐가 돼서 가고, 어떤 대단한 영적인 실력이 있어서, 그걸 유지하려고 저 양반은 산에 가는구나.. 그렇지가 않아요.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를 때가 많아요. 우리는 허세부리면 안 됩니다. 지금 내가 얘기하고 자랑하고 있는 이것들.. 다 거품일 수 있어요.
주님 앞에 갔을 때 '넌 누구냐? 난 너를 몰라! 내 앞에서 썩 비켜라, 사라져 버려라!' 우리는 이런 평가를 받을 수가 있어요.
제가 그래서 지금도 제 밑에서 배움을 받고 제가 가르치는 사역자들에게 늘 이런 얘기를 합니다.
'내가 너희를 지도하는 것 같지만, 나도 너희와 함께하는 훈련생이다' 왜냐면요, 내가 뭐가 돼서 그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제가 지금까지 늘, 제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해요. '나도 같이 훈련을 하고 있으니, 너희도 같이 함께 이 길을 가자!'
여러분 왜냐하면 자신이 허세에 빠진 줄 모르면 뭐가 되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뭐가 된 줄로 압니다. 그러다가 훗날 어려움당하게 되는 거죠.
자 영적 허세를 부리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십시오!
◑2. 영적 허상인지 아닌지를 살피는 두 번째 지표는 '내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이걸 따지셔야 돼요.
이건 제가 만든 얘기도 아니고, 뻔한 얘기도 아니라 이것은 주님께서 오늘 분명히 성경 본문에 간단명확하게 말씀하신 기준입니다.
'너희 신앙이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냐/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냐? 이것을 가르는 유일한 기준은 뭐에요?
'네가 내 말을 듣고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 순종이냐/ 불순종이냐?' .. 이것에 달려있다는 얘기에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신앙에, 순종만큼 중요한 게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순종을 대체할 영역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아셔야 됩니다.
사람들이 가끔 보면 기도로, 성경 읽기로, 어디 뭐 단기선교로 순종의 영역을 대체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그런 것들을 아무리 붙들고 경건한 척해도 순종이 없으면 그건 도피행위에 불과합니다.
다들 기도 하고, 성경만 읽고 또 이래저래 여러 모양으로 봉사하고 있으면 그게 신앙의 전부인 줄 알아요. 아니거든요.
때로는 그런 거 없어도 하나님이 오늘 내게 주시는 이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는 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여러분 성경에 요나 보세요. 주님이 그에게 명령하신 것은 '너는 니느웨에 가서 복음전해라!' 그러면 그거 하면 하나님 앞에서 최고인 거예요.
그런데 요나는 어떻게 했어요? 니느웨에 안 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 골방에서, 자기가 선지자니까 뭐 기도 좀 했겠죠.
그리고 배 갑판에 올라가서도, 자기가 선지자니까 설교준비하면서 성경 줄줄줄 열심히 읽었겠죠.
여러분, 겉으로 보면 정말 경건해 보여요.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는 참 종이네.. 이렇게 볼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는 불순종의 죄를 짓고 있는 것이거든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대표적인 인물이 또 있습니다. 사울 왕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초대 임금으로서 이스라엘 왕정국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수많은 일을 했고, 그가 왕이었지만 그 당시 유대 사회는 전시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는 군인들과 함께 전쟁터를 누볐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결국 그 많은 일을 해놓고 불순종함으로써 그는 버림받았어요.
여러분의 중심에, 수많은 업적과 뭐 대단한 근사한 종교적인 제스처가 있을지라도 여러분의 중심에 순종이 없으면 순종이 우리 삶을 관통하지 못하면, 그건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무엘은 사울의 불순종에 대해서 이렇게 꾸짖었습니다. 삼상15:22~23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이런 무서운 말을 했어요.
여러분, 불순종이 뭐라고요? 주술행위와 같대요. 우상에게 절하는 거랑 똑같답니다. 다른 것 다 하고 계셔도, 여러분이 불순종하고 있으면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우상행위입니다. 따라서 그 끝은 버림받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온갖 제사를 다 드리는 것, 온갖 예배를 다 참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라리 한번의 순종이 더 낫다는 거에요.
순종을 대체할 영역은 없습니다. 그래서 순종이 없는 신앙은 허상이고, 죽은 신앙이에요.
우리가 사상누각 이라는 말하죠. 모래 위에 세운 집이라서, 기초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순종은 우리의 신앙을 떠받치는 기초 입니다. 순종이 없으면 다 거짓 신앙이에요. 다 가짜 신앙이예요.
▲여러분 이제 우리의 모습을 살펴봐야 되겠습니다. 과연 요나와, 사울과.. 같은 모습이 내게는 없는지요?
혹시 사울처럼, 요나처럼 순종은 없으면서 다른 것으로 순종의 영역을 메꾸려고 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건 신앙이 아니고 거짓이에요.
그럼에도 사람들이 얼마나 점점 시대를 거듭할수록 약아지고 이중적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 교인들을 보면 분명히 노골적으로 불순종하려고 들지는 않아요. 그런데 꼭 사울 왕처럼, 본인이 불순종해놓고 그렇지 않은 것처럼 그럴듯하게 적절하게 포장을 해 놓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허상'의 다른 말은, 조금 더 심하게 얘기해서, '조작'이에요. 지금 신앙을 조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의 믿음을, 조작하지 마세요. 그거 속된 말로 다 뽀록나요. 결국 다 드러납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제가요. 여기서 아무리 그럴싸한 말을 해도 제 실체는 반드시 드러납니다. 저는 그게 두려운 거에요.
따라서 우리가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도 나를 간섭하고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역사하고 있어야 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순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게 참 신앙이에요.
너무 중요한 말입니다. 자 여러분, 심판 날에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과 지금 관계를 맺어보려고 하는 거에요.
'주님, 저 아시죠?' 그런데 주님께서는 딱 거절하셨어요. '난 널 모른다. 썩 꺼져버려라! 넌 내 집에 들어올 수가 없다!'
왜 주님께서 그들을 본인의 집에 들이지 못할까요? 당연한 거죠. 평소에 주님과 관계가 있어야지, 평소에 전혀 모르는 사람을, 자기 집에 들일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렇죠?
'네가 나와 함께 해서, 평소에 친분이 있어야지 당연히 우리 집에 들이지 않겠냐? 넌 평생 나와 함께 한 적이 없어! 넌 네가 좋다고 달려갔지! 이제 와가지고 내 집에 들어오겠다고? 네가 나를 잘 안다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집어치우라는 거예요. 주님은 단호히 그들을 내쫓으셨습니다.
▲자 그러면요. 우리가 진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평소에 주님과 함께 동행해야 돼요. 그렇죠.
그런데 그 함께 동행함은 어떻게 가능하냐는 거에요. 진심이 있어야 돼요. 진심이 없으면 두 사람이 함께하지 못해요.
자 여러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누가 제 옆에 끝까지 남아 있을까요? 저에 대해 진심이신 분들이, 저와 끝까지 가실 거에요.
여러분 진심인 사람들은, 이와 같이 주님의 대해 진심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주님과 함께 하고 돈독하게 관계를 유지했죠.
그래서 주님의 집과 주님의 것들을 다 얻고 차지하는 거예요. 여러분 사람이 그래서 진심이면, 정말 그를 사랑하게 되면 떨어질 래야 떨어질 수가 없지요.
제가 애정이 없는 사람들끼리의 만남과 결혼을 봤거든요. 아~ 못 보겠더라고요. 결국 헤어지더라고요. 뉴스에도 보면 재벌들 정략결혼하잖아요. 결혼은 형식적으로 하는데, 자기들 마음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 두고 있어요.
그러니까 집안 품위유지를 위해서, 그냥 적절하게 격을 맞춰서 결혼들을 하는거죠. 그런데 결혼생활은 어때요? 퇴근 후에 집에 들어가기가 싫은 거예요. 서로 엄청 불행합니다. 가정을 세워가는 건 불가능해요. 당연하죠. 마음이 없기 때문에 행복의 기초를 놓을 수가 없는 거예요.
무엇이든 관계가 유지되려면, 진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되고 싶으시면, 마음과 마음이 만나야 됩니다... 중략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허상은 진심 앞에서 무너집니다. 진정한 사랑앞에서 허상은 맥을 못추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이것을 신앙에 대입해 볼 때 내가 정말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주님이 말씀하셨듯이 단연 최고의 큰 계명이라고 하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진심이면 순종할 수밖에 없고, 주님과 함께 할 수밖에 없고 참 믿음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여러분 이 진심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지만 여러분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우리의 진심만 받으려고 하는 욕심쟁이 하나님이 아니시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사랑과 진심을 요구하시기 전에 이미 당신께서 이미 자기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희생하셔서 우리에게 모든 걸 다 내어주셨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말로만 하시지 않고 너무나 실제적으로 아들을 보내주셨고 그 보내진 그 아들은 죽기까지 희생하여, 자기 사람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신 마음, 그 사랑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절대 허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셨어요.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진심을 표할 때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 진지해야 할 때고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때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내 신앙을 더이상 허상 위에 쌓아놓지 않고 그 허상에 만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