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실력자, 사실 왕권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아브넬 군사령관이 주군인 이스보셋 왕을 배신하고, 그 나라를 유다의 왕이 된 다윗에게 갖다바치려고 하는 장면이에요.
오늘 이 얘기의 골격을 이루는 몇 가지 뼈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배신의 문제" 라는 것입니다.
왜 배신의 길을 갈까요? 그래서 오늘 이 문제를 조금 깊이 생각해 보면 배신하는 문제는, 인간의 근본 본성에 속한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가 남이 배신하는 것을 들으면, 흥분하고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가 있느냐?' 하지만 우리가 본성적으로 배신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게 인간의 역사인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결국 인간의 배신과, 하나님의 용서에 관한 얘기 아닙니까. 인간은 하나님을 배신했어요. 어떻게 배신할 수 있습니까?
아니 에덴동산이 어떤 곳인데요? 하나님이 안 해 주신 게 뭔데요, 베풀지 않은 게 뭔데요? 근데 어떻게 하나님을 배신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인간이(우리가) 비록 배신하고 반역했을 지라도 하나님은 그걸 그대로 고스란히 갚지 않으시고 우리를 여전히 사랑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이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하고 계세요.
그래서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길, 이게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는 길이란 말이에요.
▲저는 인생에 많은 길이 있는 줄 알았어요. 젊은 시절에 너무 길이 많아서 혼란스러웠어요.
근데 예수를 알고 나니까 길은 딱 두 가지예요. -하나님을 따르는 길, -하나님을 벗어나는 길.. 그 두 개밖에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을 따르는 길은, 이게 무슨 길이냐? 이게 문제는 십자가의 길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는 걸 알게 되고 십자가의 길은 자기가 죽어야만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십자가의 길을 안 가겠다'고 하는 결정을 하게 되면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을 등지는 길을 가게 돼 있어요.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가만히 내버려 두시면 인간은 타락하게 되어 있다고요. 끝없이 타락, 추락해 가는 것이죠.
인간이 이렇게 발전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타락하고 있을 뿐이에요.
우리는 작은 집에 살다가 큰집에 살면 발전했다고 생각을 해요. 시속 60킬로 달리는 차를 타다가, 160킬로 차를 타면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발전이 아닙니다. 그냥 바빠졌을 뿐이죠.
◑삼하3:1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 아둘람 동굴에서 불과 4백명 데리고 공동체를 이루었어요. 하도 쫓기다가 블레셋 땅에 들어가서는, 시글락에서 6백명을 데리고 공동체를 이뤘어요.
사울이 죽고 유대로 귀국했는데, 그때부터 유다 지파 하나를 이끄는 지도자가 된 거에요. 한 지파에요. 한 지파 대vs 열한 지파의 대결이 된 것이죠.
그런데 11 지파를 이끄는 실력자는, 사울의 조카인 아브넬 군사령관이에요. 그가 사울의 넷째 아들인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우고 그리고는 자기가 나라를 좌지우지했어요.
그런데 1지파 대vs 11 지파면 당연히 11 지파가 강해지고, 한 지파가 약해야 되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 따르면 다윗은 점점 강해지고, 사울의 집안은 점점 약해졌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쪽은 점점 강해지는 길을 가고, 한쪽은 점점 약해지는 길을 갔다고 얘기해요.
그래서 점점 약해지는 결과, 이스라엘을 지금 좌지우지하던 실세 아브넬이 결국은 다윗에게 투항하는 장면이에요. 다윗에게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치겠다'는 거죠.
그럼 이제 안 싸워도 되죠. 무력으로 통일 안 해도 되죠. 그게 7년반 다윗이 기다리고 있였던 이유에요. 아니 하나님이 다윗을 기다리시게 한 이유란 말이에요.
▲이스라엘을 통일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어요. 다윗은 블레셋 하고 관계가 있었어요. 아기스 왕하고 친합니다. 그래서 블레셋의 힘을 빌어서, 이스라엘을 점령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서는 안 되죠.
또 그가 사울의 11지파와 전쟁을 해도, 전쟁수행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얼마인지 싸움으로 차례 차례 한 지파씩 정복해 나갈 수도 있어요. 다윗은 그렇게도 안 합니다. 같은 동족과 내전을 벌일 수는 없는 거죠.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며, '하나님이 어떻게 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시는데 관심을 갖고 계신가?' 여기에 집중하면서 7년 반이라는 시간을, 은인자중하면서, 그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일을 하고 계셨어요. 그런데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해지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본문에 보니까, 사울의 집은 약해지는데, 아브넬의 권력은 점점 강해졌다고 되어 있어요. (아브넬이 점점 강해진다고 성경에 명시되진 않지만, 행간이 그렇다는 것, 3:11절 등)
군사령관인 아브넬은 점점 강해지는데, 나라는 점점 약해지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독재국가가 가지는 함정입니다.
사실 사울 왕 때부터 절대왕정체제가 수립된 것이죠. 그래서 사울은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주는 왕' 사명을 감당 안 하고 세상 왕들처럼, 그는 자기 왕권을 강화하는데 혈안이 되었던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다윗이, 자기 절대 왕권을 강화하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를 제거하는데 올인 했단 말이에요. 그러다가 결국 자기도 죽고, 나라도 그냥 아주 어렵게 만들어 놓고 떠나버리고 말았어요.
이제 다윗은 지금 그렇게 주저앉은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책임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나라를 부흥케 하고, 나라를 통일하기 위해서 -전쟁(내전)이라는 방법으로 할 것이냐? -외세에 의존해서 할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기다릴거냐?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길을 가기 시작한 거예요. 그게 다윗이 강해진 길이에요.
-군사력을 늘려서 강해진 게 아니고 -무역을 열심히 해서 경제가 부흥해서 강해진 게 아니고 -무슨 대단한 히브리 문명을 일으킨.. 그런 강력함이 아니라
이 땅은 원래 하나님의 땅이고, 이 나라는 원래 하나님의 나라이고 이 나라가 강해지는 길은, 오직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다.. 하는 믿음을 가진 지도자가 세워졌더니, 하나님께 순종하는 지도자 한 사람 David 때문에, 그 나라가 왕성해지고 강해졌다.. 이게 오늘 본문의 줄거리에요.
▲그런데 11 지파를 가지고 시작은 크게 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쪽은, 시간이 갈수록 약해지고 말았다는 거죠.
그리고는 결국은 결정적인 전기를 맞게 되는데, 실력자 두 사람끼리 싸우는 거예요.
아브넬 하고 이스보셋하고, 양 진영이 서로 간에 틀어지는 사건이 생겨요. 뭐 때문에 이 사건이 터지냐면
:7 '사울에게 첩이 있었으니 이름은 리스바요 아야의 딸이더라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과 통간하였느냐 하니'
아브넬이, 사울 왕의 첩과 통간하는 스캔들이 생겼어요. 그런데 당시 문화적 상황으로는, 왕의 아내나 첩과 통간하는 것은 그건 그 왕의 나라를 물려받는는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에요. 그 당시 관습이 그래요.
왕의 여인을 데리고 오면, 왕권을 가지고 오는 걸로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거는 함부로 탐을 내서는 안 되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압살롬이 반역했을 때도,
공개적으로 지붕 옥상에서, 다윗의 첩들을 데리고 시간을 보냈어요.
△나중에 보면 다윗의 넷째 아들 아도니아가 왕이 될 뻔 했는데 솔로몬한테 밀려서 왕의 못 되었어요.
그가 왕은 못 되었지만, 다윗 왕의 마지막 첩이 아비삭이었어요.
다윗의 마지막 시기에, 돌아가시기 전에 병수발이나 좀 들어라고 구해다가 넣은 여인인데 인물이 이렇게 절색이었나봐요.
그런데 이제 아버지 다윗 왕이 죽었는데, 솔로몬이 왕이 됐으면 잠잠이 있으면 되는데 이 아도니아라는 넷째 아들이, 아비삭을 탐낸 거예요.
그래서 솔로몬 왕의 어머니 밧세바 한테 가서 '제가 저 수넴 여인 아비삭을 좀 데리고 살았으면 좋겠다' ... 그랬다가 죽음을 맞았어요.
솔로몬이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왕의 첩을 달라는 얘기는, 왕권을 갖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아도니아가 왕권을 가질 의도는 없었겠지만, 그런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던 겁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그래서 아브넬이 사울의 첩 리스바와 통간한 사건으로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나무란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실권자라고 생각하고 있던 아브넬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내(아브넬)가 유다의 개 머리냐, 내가 너한테 어떻게 대했는데.. 이렇게 너 이스보셋에게 나라를 주고, 왕권을 주고, 이런 엄청난 대접을 했는데 너 도대체 나한테 지금 그만한 일을 가지고 따지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 이렇게 해서 둘 사이가 쪼개진 거예요. 삼하3:8
그리고는 아브넬이 다윗한테 가서 '내가 이 나라를 당신한테 다 갖다 드리겠다. 통일은 내 손에 달린 거나 마찬가지다. 내가 다 갖다주면, 이 나라는 통일 이스라엘이 될 것이고 당신은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거다.' 3:9
아브넬은 이런 정지작업을 해놓고, 돌아가서는 각 지파들을 설득하고 마지막으로 베냐민 지파(사울 왕 출신)까지 설득하고.. 이제 끝난 상황인 거예요.
△여러분들에게는 이스라엘의 통일 얘기가 하나도 재미가 없겠죠. 나는 이 스토리가 꼭 한반도에서 재현될 것 같아요. 됐으면 좋겠어요. 무력으로 통일은 안 됩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방법으로는 안 돼요. 근데 하나님의 방법이 있단 말이에요. 우린 잘 모르죠.
그러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져야지 하나님의 일을, 인간의 방법으로 이루려다가는, 그냥 상처만 깊어지고.. 일은 일대로 잘 진전이 안 된단 말이에요.
▲근데 다윗은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려면, 동원할 수 있었지만 자제해요. 전혀 안 한 것은 아니에요.
왜냐면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를 데려와서 또 아들(아도니야)을 낳았으니까요. 정략 결혼을 한 거죠.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도 있음
또 나중에 아브넬이 나라를 가지고 오겠다 그러니까 '그래 오는 건 좋은데, 올 때 내 본처, 내가 원래 결혼했던 사울의 딸 미갈을 먼저 데려와라'
이거는 계산을 복잡하게 한거죠. 왜냐하면 사울의 딸과 다윗이 이혼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다윗이 망명을 시작하자, 사울왕이 자기 딸을 발디엘이란 사람한테 시집을 보내버렸어요. 그러니까 본인이 무슨 이혼을 하려고 결정한 것도 아니고 사울 왕이 죽기 전에 그런 일을 저질러놓고 간 거예요.
그러니까 미갈을 도로 데려오면, 본인은 사울 왕의 적법한 사위로 다시 복권이 되는 거죠. 그러면 사울 왕가를 자기가 그냥 넘겨받는 게, 훨씬 정통성을 확립하는데 쉬워지잖아요.
그런 저런 목적으로 미갈을 데려오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러나 미갈 때문에 통일되는 것도 아니란 말이에요. 미갈을 데려온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한 마음이 되는 것도 아니란 말이에요.
다윗은 인간적인 일을 전혀 안 한 건 아니지만 그러나 다윗이 인간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아브넬이 계획한 대로 이 모든 일이 진행이 되는 것도 아니란 말이에요.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을 주관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배후에 있다는 것, 하나님이 절묘하게, 선하지 않은 인간들, 악하디 악한 인간들, 생각만 하면 잔꽤나 악한 꾀만 만들어 내는 인간들 사이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의를 이루어가는 절묘한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그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 보게 된단 말이에요.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배신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의 배신의 계획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게 우리의 신앙이 되어야 한단 말이에요.
인간은 얼마나 복잡하게 생각하는지 몰라요. 잔꾀를 내느라 다들 머리가 팽팽 돌아가잖아요.
그런데 인간의 잔꾀대로, 생각대로 모든 일이 진행이 안 된단 말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냥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그 일을 이루어 보겠다고 죽을 힘을 다하면서 사는 거예요.
△저는 이런 일을 생각할 때 옛날 일이 생각나더라고요. 옛날에 제가 여의도 방송국에 다닐 때, 취재할 일이 생겨서 여의도에서 동대문까지 차 두 대가 출발하는 거예요.
한 대는 취재한답시고, 신호등 다 어기고, 교통법규 다 어기고 난리를 치며 갔었어요. 또 한 대는, 신호등과 교통법규를 꼬박꼬박 지키면서 갔어요.
몇 분 차이가 났을까요? 7분도 차이가 안 났어요. 여의도에서 동대문까지 모든 법규를 어겨가면서 7분 앞에 도착했고 그 사이에 이리 추월하고, 저리 추월하고, 차선 바꾸고, 급차선 변경하고... 그렇게 해서 7분 일찍가려고, 얼마나 많은 고통스러운 시간들, 고민되는 결정들, 그리고 불안한 운전을 했겠느냐 말이에요.
여러분,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은, 혼자서 그 모든 것들을 계획하고 혼자서 정말 난리법석을 치면서 살아가요.
그렇게 사나, 그냥 듬직하게 하나님 믿고 뚜벅뚜벅 걸어가나 속도에 있어서 별 차이가 안 난다는 거예요.
▲7년 반 동안 아브넬은 별의별 생각을 다 했어요. 처음에는 자기가 왕이 되려고 했죠. 그런데 자기가 왕이 되는 게, 분위기가 좋지 않아요.
사울 왕의 넷째 아들이 버젓이 있는데, 본인이 덥썩 왕이 되기는 그렇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이스보셋 뒤에서 본인이 실세로, 왕노릇을 사실 5년간 한 거예요. (2년반은 왕이 공석)
그러다가 점점 나라는 힘이 없어지고, 다윗은 점점 강성해지니까 '아니 나는 권력을 실컷 누려야 되는데..' 계속해서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 이스보셋을 꼭두각시로 왕 자리에 앉힌 거란 말이에요.
그래 놓고는 본인이 마음대로 왕을 좌지우지하면서 왕권보다 더 큰 실세, 실권을 행사했는데
'이 권력을 어떻게 하면 더 유지할 건가? 어떻게 하면 나는 이 자리를 더 보존할 건가? 어떻게 하면 나는 이스라엘이 통일이 되어서도 2인자 자리를 끝까지 누릴 수 있을 것인가?' 를 고민하고 있던 차제에
오랫동안 고민하던 과정 가운데서 오랫동안 계산하고 머리를 굴린 끝에 '에이, 차제에 그냥 나라를 다윗에게 갖다 바치자' (그러면 뭔가 대가가 따르겠지) 이게 아브넬이 배신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란 말이에요. 치밀한 계산의 결과입니다.
▲제가 서두에 말씀드렸습니다. 인간은 배신의 유전자가 누구에게나 있어요. 그래서 모든 부모들은 자녀에게 배신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은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가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는 건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인간한테 그런 DNA가 있는데, 그걸 우리가 죄성이라고 말해요. 부모보다 자기 존재가 더 중요한데, 어떻게 배신 안 해요?
우리도 자녀인 시절에는 그렇게 살았고 우리 자녀도 부모 세대인 우리에게 그렇게 할 것이고 그 자녀들의 자녀들 또한 그렇게 살텐데... 여러분 이거는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요.
그래서 인간 죄인들이 살아가는 길에 이름을 붙이면 -'십자가의 길' 과 -그 정반대의 길을 '권력의 길' .. 이렇게 두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지가 '권력의 의지'란 말이에요. 이게 정치권만의 얘기가 아니고, 인간이 살아가는 어떤 집단, 어떤 관계 속에서도 인간은 그런 강인한 '권력 의지'를 가지고 있단 말이에요.
'내가 저 사람을 내 뜻대로 부리고야 말리라. 내 의지대로 이 사람을 끌고 가고야 말리라. 내가 내 뜻대로 이 조직을 이끌고야 말겠다!' 이런 본능적인 의지가 사람에겐 있단 말이에요.
▲아브넬에게, 이게 좀 더 많이 두드러졌을 뿐이죠. 아브넬은 이스라엘 11지파를 지금 마음껏 다스리다가 자기 세가 점점 더 불리해지니까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의 통치 권력을 더 누릴 것인가?' 하는 그의 탐욕스러운 기회주의적 속성 때문에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웠다가, 이스보셋을 자기 손으로 내려버리고 다윗에게로 투항해서 가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인간의 약아빠진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전능하신 섭리입니다.
이게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도 될 근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악한 세상 속에 살면서도, 악한 일을 당하면서도 악한 자들에게 심지어는 모욕을 겪으면서도, 그렇게 슬퍼하지 않아도 될 이유에요.
▲여러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봅시다. 아브라함은 자식이 있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인간의 머리로 짜낸 게 이스마엘이에요. 아니 더 이상 애를 낳을 능력이 없는데, 사라가 경수가 끊어진게 언제인데 당연히 인간의 생각, 사람의 결정으로는 이스마엘이 답이에요.
근데 하나님의 답은 뭐에요? 인간의 불가능 가운데서 답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거란 말이에요.
인간에게는 이스마엘이 답이지만 하나님에게는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이삭'이 답이란 말이에요.
△야곱의 생각은 어떻게 해서든지 팥죽 한 그릇이라도 형한테 팔아서 장자권을 사는 게 자기의 아이디어 였지만, 하나님은 그런 생각 전에 벌써 답을 가지고 가르쳐줬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리브가가 뭐 또 야곱에게 털옷을 입혀가지고 장남 에서처럼 분장을 시켜서, 장자권의 축복을 받는 그게 인간의 방법, 인간의 생각이지만
그거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계획해 놓으셨단 말이에요. 그러니 성경은 인간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이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걸 끊임없이 우리한테 말씀해주고 가르치고 계시지만 우리는 쉽게 거기에 동의를 하지 않는단 말이에요. 그래서 야곱에게 털옷을 입히고.. 난리를 친 거죠.
△에스더서를 보면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안 나오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갔다가는 죽습니다. 모르드개가 '네가 왕비된 자리가 이때를 위함인지 어떻게 아느냐, 네 목숨을 걸고 왕 앞에 나가보기나 해라! 지금 유대민족이 다 말살되게 됐는데, 지금 네가 왕비 자리 지키는 게 문제냐?'
그렇게 해서 왕 앞에 나갔다가, 결국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 민족이 말살당합니까? 아니죠.
하만이 이스라엘 민족을 말살을 완벽한 계획을 짰었잖아요. 그야말로 인종 학살을 위한 아주 완벽한 계획을 했단 말이에요.
그리고 모르드개 이놈은, 특별히 내 눈 밖에 난 놈이니까 목을 매달아 죽일 거라고, 장대를 뭐 30미터나 높이 자기 집에 세워놓고 그놈의 목을 매달겠다고 벼르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게 인간의 방법인데, 결론은 뭐예요? 하나님의 방법은, 자기가 만든 그 장대 교수대에 자기가 목이 달리게 하는 게 하나님 방법이에요.
이거 왜 우리가 악인의 꾀를 좇지 말아야 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 꾀에 자기가 빠지게 돼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어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방법이 뭔가? 인간의 방법이 뭔가? 이게 구별된단 말이에요.
인간의 길은 어떤 길인가, 세상 길은 어떤 길인가? 하나님의 길은 어떤 길인가? 이걸 날마다 우리가 배워가고 학습하고 결정하는 삶이, 그 인생이 신앙의 인생이란 말이에요. *주제
▲아브넬이 왜 배신했는가? 그는 하나님의 길을 떠났기 때문에 그런 파멸의 길을 선택한 거예요. 한 때 잘 나갔죠. 잘 나가는 듯이 보이죠. 막강하게 보이죠. 실세 중의 실세고, 측근 중의 측근이죠. 그러나 그런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거에요.
다윗의 길이 뭐예요? 나중에 열왕기서로 가면 길은 두 가지 밖에 없어요. 다윗의 길이냐/ 여로보암의 길이냐?
이스라엘의 왕을 평가하는 기준은 딱 그 기준 하나이에요. 다윗의 길을 따를 것인가/ 여로보암의 길로 갈 것인가?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길이냐/ 우상을 숭배하는 길이냐? 이게 갈림길이에요.
저는 금년 한 해, 여러분이 하나님을 힘써 알고 하나님의 길로 가기로 결정하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올 한 해, 말씀을 알아가면서 예수님을 닮아가기로 결정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내 힘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성령을 더욱 의지하고, 성령께서 인도하는 길을 가기로 결정한 줄로 믿습니다.
그게 여러분 복된 길이요. 그게 성공의 길이요. 그게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이루어가는 길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오늘 기껏 자기들 머리로 생각하다가 (아브넬과 이스보셋) 둘이서 싸웠는데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그 싸움을 통해서 통일 이스라엘을 무력에 의한 방법이 아니라, 평화로운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는 절묘한 사건이 되게 하셨죠.
이렇게 역설적인 방법,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역설,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증거 된 것을 봄으로써 믿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악한 꾀입니다. 죄 없는 사람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잔인한 방법이요, 가장 잔혹한 인간의 술수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통해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못 박히게 하심으로 모든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문을 열어젖히는, 그런 놀라운 일을 시작하셨단 말이에요.
십자가가 무슨 희망이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때, 누가 저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인간을 구원할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로마시대 때 그렇게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 십자가에 메달린 사람을 보면서 저게 인간을 구원하는 아이콘이 될 거라고, 구원의 아이콘이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누가 있었냐는 말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십자가를 통해서 인간의 길이 아니라, 인간의 계획이나 인간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길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이걸 믿고 안심하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점점 더 불안해지는 시대를 살아갈 거예요. 점점 더 평안해진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점점점 더 불안해지는 시간이 오고 있습니다. AI 인공지능이 나오고, 로봇이 나오면 인간이 더 강해질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점점 더 약해지는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 19를 보십시오. 그 자랑하던 세계 첨단 기술이 다 무용화 되었습니다. 막지 못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올해 정말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감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다윗처럼, 진실로 점점 더 강해지는 인생의 길을 걷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인간의 방법, 인간의 지혜, 인간의 수단, 인간의 궤계를 꿈꾸는 모든 시도들은 실패할 것이라는 것을, 반드시 여러분들이 믿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게 안 믿겨지면 성경을 요한계시록부터 다시 읽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