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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16장 하나님은 여건을 주시고, 내가 가서 차지해야 한다
LNCK
2022. 2. 17. 14:59
◈하나님은 여건을 주시고, 내가 가서 차지해야! 수16장 여러설교정리 여호수아 장별 설교
여호수아서는 총24장인데, 딱 12장씩 절반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 수1~12장은 '가나안 정복'이고,
후반부 13~24장까지는 '가나안 땅 분배'입니다.
후반부를 시작하는 13장은
가나안 땅 가운데 이스라엘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지역을 열거하며, 1~7절
요단 동편 땅의 분배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8~33절
14장부터는 요단 서편 가나안 땅 분배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14~15장은 제일 먼저 <유다 지파>의 땅분배에 대한 기록입니다.
16~17장은 두번째로 <요셉 지파>의 대한 기록입니다.
화면 맨 아래 지도를 보면,
<유다> 지파가 가나안 남부의 대부분 지역을 차지하였다면,
<요셉> 지파는 가나안 중부의 대부분 지역을 차지하였습니다.
이 두 지파사이에 <베냐민>과 <단> 지파가 위치해 있습니다.
두 지파가, 12지파 중에 가장 대표적인 지파였으니까요.
요셉 지파가 명목상 장자 지파였다면,
유다 지파는 실제적 장자 지파로서, 이스라엘의 왕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땅분배에 있어서도, 중부와 남부의 대부분 지역을 차지하였습니다.
아래 지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요셉 지파가 아주 방대한 지역을 차지했습니다.
넓이로 놓고 본다면, 12지파 중에 제일 넓은 땅을 차지했습니다.
이것은 창49:22~26절에 야곱이 요셉을 축복한 예언의 성취입니다.
또한 모세도 12지파를 축복했는데, 그 중 요셉지파를 축복한 신33:13~17절이
성취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놓고 비교하자면, 므낫세가 훨씬 더 넓은 땅을 받았습니다.
요단 동편까지 치면 그야말로 광활합니다.
그 이유는, 요단 동편에 있을 때 인구조사를 했는데,
그때 므낫세는 5만2천, 민26:34, 37
에브라임은 3만2천으로, 므낫세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여,
땅 분배의 원칙 중 한 가지가 '가족 대로'라고 했는데,
그건 '인구 수 대로'를 뜻하기 때문이었죠. 수13:28등
▲본문16장 내용을 분해하면
1~4절: 요셉 자손이 두 번째로 제비를 뽑아 기업을 얻은 땅의 경계.
5~10절: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의 경계. (므낫세가 받은 기업은 17장에 나옴)
◑묵상할 내용
▲1. 흩으시는 하나님
여호수아 13장 이하에서 이스라엘 각 지파가 땅을 분배받는 모습을 보면
한 가지 위대한 성경적인 원리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흩어짐의 원리'입니다.
사람들은 욕망을 가지고 모이기를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사명을 가지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지금 가나안 정복 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사방팔방으로
각자 자기 기업으로, 자기 사명지로 흩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날 평지에 모여 권력욕과 교만을 상징하는 바벨탑을 쌓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해서 흩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얼마 동안은 모으셨지만, 그것은 결국 흩어지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여서 바벨탑을 쌓는 것이 아니라
흩어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소유하려고 모으지만, 하나님은 분배해서 흩으십니다.
교회는 흩어지고 분배하기 위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의 가장 중요한 삶 중의 하나가 선교하는 삶입니다.
성령 충만의 가장 확실한 증거도 선교하고 증거하는 삶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 :15)
는 말씀처럼 흩어짐과 선교의 명령을 이행하며 산다면
그 폭을 넓히는 만큼 축복의 지경도 넓어질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여건을 주시고
쫓아내는 것은, 내가 해야 된다
요셉 자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제비 뽑기를 통해 분배 받은 땅은
주로 가나안 중부지역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손 하나 까딱 안하고
그 땅을 차지하도록 하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대신에,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십니다.
그 여건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최선을 다해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시기 위해서
치밀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되시기에,
우리는 그 여건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미국 시카고 근교에는 휘튼 칼리지가 있습니다.
이 학교의 교장으로 레이몬드 에드먼 박사라는 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 한 학생이 찾아와 등록을 못해 자퇴할 상황인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학교도 재정난을 겪고 있어서, 도움을 줄 형편이 안 되었습니다.
그때 에드먼 박사는 ‘자네가 가진 돈이 모두 얼마나 되나?’ 라고 물었습니다.
학생은 머리를 극적이며 “75센트 밖에 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에드먼 교장은 다시 ‘그 밖에 자네가 돈을 마련할 방법은 없는가?’
“네, 별로요.” 하더니 “아, 제가 앞으로 학교식당에서 일을 하겠습니다”고 하자,
교장은 백지를 한 장 꺼내 놓고 “75센트 + 식당 노동”을 쓰게 한 후
학장은 거기에 보태어 “+ 기도”라고 쓰더니.. 간절하게 기도한 후 그를 보냈습니다.
그 이튿날 그 학생의 우편함엔, 등록비가 지불되었다는 통지서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돈은 교장이 지불한 것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에드먼 교장은, 먼저 그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기적이 필요하십니까?
그러면 먼저 나는 나의 상황에서 가능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를 물어 보십시오.
그리고 그 다음 정말 주님의 도우심을 기도하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십시오.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세계 선교의 과제는 너무 엄청나게 커 보이고
‘내 작은 노력으로 무슨 세상이 바꾸어지겠는가?’ 라는 절망감을 안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시대의 한 성도로서
이 시대의 주님의 몸인 공동체의 지체로서
우리가 과연 가능한 우리의 헌신 우리의 5병2어를 드리고 있는가를 묻고 계십니다.
△관련글 : 기적을 일으킨 꽃씨 이야기
베리 여사가 10센트 다임으로, 1백만 불의 베리 스쿨을 일군 사연 (펀 글)
미국 LA 나성한인 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베리 스쿨 Berry school이 있습니다.
그 학교를 세운 마르다 베리 여사 Martha Berry의 이름을 붙인 학교입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베리 여사는 몹시 가난한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늘 기도하는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자기처럼 가난하여 공부 못 하는 아이들을 위하여 어떻게 하든지
학교를 하나 만들어 진정한 교육을 시켜보겠다고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가, 학교를 세운다는 것은 보통 기도제목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베리 여사는, 마음에 확신을 포기할 수 없어서
하나님을 믿고, 끈기 있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베리 여사는 기도 중에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당시 미국에서 제일 거부로 알려진 헨리 포드를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학교를 세울 돈을 도와달라고 당돌하게 요청했습니다.
이 사정을 듣던 헨리 포드는, 10센트짜리 다임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100원 짜리 동전 하나였습니다.
(당시 시세를 감안한다면 1천원이라 칩시다.)
어쨌든 분명한 거절 의사를, 그렇게 다소 모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동전을 내던지고 돌아왔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베리 여사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고 한 행동인데, 그런 결과가 나왔다면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기도하고 되어지는 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기도하고 왔는데 작은 동전 하나를 준다면,
그 동전 하나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달랐습니다.
베리 여사는 그것을 가지고 와서, 꽃씨 한 봉지를 샀습니다.
그리고 빈 공터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잘 가꾸었습니다.
꽃을 추수하여 더 많은 씨앗을 얻었습니다.
더 많은 꽃을 수확했습니다. 이렇게 몇 번 반복하였습니다.
해가 지날수록 재배하는 꽃의 양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드디어 그 꽃을 팔아 모은 돈으로, 자그만한 건물을 하나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건물 한 동을 세운 후에 베리 여사는 다시 헨리 포드를 찾아 가서 말했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선생님을 찾아 와서, 불우한 아이들을 위하여
학교를 세워 달라고 부탁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은 제게 다임 한 개를 던져 주셨습니다.
그 다임으로 이룬 성과를 구경하여 주십시오. 정식으로 선생님을 초청합니다"
헨리 포드는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작은 동전 하나를 던져 주었는데,
그것으로 건물을 세웠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믿을 수 없는 일을 직접 확인하려고, 그 농장에 세워진 학교에 갔습니다.
그 작은 학교건물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학교를 위하여 100만불을 헌금하여 주었다고 합니다.
베리 여사는, 작은 동전에서 학교건물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환경은 여전히 좌절스러웠지만,
그 믿음의 씨앗을 점점 키워나갔습니다.
기도하고, 마음에 확신(응답)을 받은 후에
이상하게 현실은, 일의 결과는, 응답과 정반대로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베리 여사가, 기도응답을 받았는데도, 정작 받은 것은 동전 한 개 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받은 응답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실 줄 믿었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런 기적을 체험하기 어렵지만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그 길로 감동하시고, 인도해 가실 때에
우리는 민감하게 깨어서, 그 인도하심을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3. 그런데 하나님이 여건을 주셨으나, 자기들이 차지하지 못한 예도 있었습니다.
(이 내용은 반복해서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에 나오는데, 본문에 또 나옵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이 점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 15:장 63절을 보면
유다 지파가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해 함께 거주한다고 말씀합니다.
마찬가지로 16:장 10절에도
“그들(에브라임 지파)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
유다지파는 쫓아내지 못했고,
에브라임은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만 그게 그거입니다.
유다지파가 예루살렘의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한 것은, 그들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고,
에브라임이 게셀의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은 것은, 경제적 이득을 바랬기 때문입니다.
둘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가나안 원주민들을 어쨌거나 '다 쫓아내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그들은 나중에 '옆구리에 가시'가 됩니다. 삿2:3
하나님은 신명기 7: 1~2절 말씀을 통해, '다 쫓아내라'고 분명히 명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원주민을 쫓아내지 못할 경우
커다란 어려움이 다가올 것을 경고했습니다.
유다 지파가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한 것처럼 (나중에 다윗 때 쫓아냅니다)
에브라임 지파도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들을 종으로 삼아 노역을 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가나안 족속을 멸하라고 하셨지
노역하는 종으로 삼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서,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완전히 가나안 땅에서 몰아내라고 하신 것은
신앙적인 이유였습니다.
우상과 미신으로 오염된 가나안 족속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살아가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오염이 되어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문제를 신앙의 측면에서 보지 않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며 그들을 노예로 부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올무가 되고 만 것입니다. 삿2:3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하루의 삶 속에서도 세상의 경제적인 논리가 아닌,
믿음의 눈을 들어, 우리를 위하여 치밀하게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신뢰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한 날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