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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18장 1~28 베냐민 지파의 기업 분배

LNCK 2022. 2. 20. 13:47

◈베냐민 지파의 기업 분배   수18:1~28     여호수아 장별 설교     출처, 여러설교정리

 

본장의 내용구조는

1~2절, 이스라엘의 회막 설치,

3~10절, 지도를 그려오라

11~28절, 베냐민 지파의 기업분배  

 

 

◑수18장 내용 요약

 

이스라엘이 요단강 서편 길갈에서 가나안 땅을 분배 받는데

제일 먼저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이 받고 (13장)

유다 지파가 받고 (14~15장)

요셉 자손인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분배를 받았습니다. (16~17장)

본문 18장은 베냐민 지파의 기업 분배입니다.

 

그런데 요셉 자손들이 여호수아에게 기업 분배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17장)

그 일로 인해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에서

기업 분배와 관련한 정체성을 다시 확인시킬 필요를 느낍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의 중심부인 실로에 회막(성막)을 설치하고 (18:1~10)

다시 하나님 앞에서 땅을 분배하기 시작하는데

본장에는 베냐민 지파가 기업을 분배받게 됩니다. 

 

▲1. 이스라엘의 회막 설치 (1~2절)

이스라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 회막을 세웠습니다 (1~2절).

'실로' Shiloh 는 휴식과 안식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실로는 벧엘의 북쪽 15㎞, 세겜의 남쪽 20㎞에 위치합니다.

실로는 가나안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스라엘 12지파 모두가 모여 예배하기에

적당한 위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길갈에 회막을 두고 그 곳에서 모였으나

이제 가나안 중심부인 실로가 이스라엘 수중에 들어왔기 때문에

실로에 회막을 세운 것입니다.

 

길갈에서 가나안 땅 분배를 시작했으나

세 지파만 분배받고 아직 일곱 지파가 분배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요셉 자손들이 불만을 토로하므로 (17:14-18).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땅을 분배받는다는 신앙이 흐려지고

아직 점령하지 못한 가나안 땅을 점령하려는 의지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 중심부에 모여 신앙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회막이 길갈에서 실로로 옮겨진 후

이곳에서 언약궤가 350여년 동안 있으면서, 실로는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곳이 됩니다.

 

(참고로, 혹자는 사사기를 4백년으로 보는데, 2백년 설이 맞다고 봅니다.

왜냐면 중복된 기간 있음. 그러면 실로에서 약 200년 있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하진 않고요)

 

'회막' 會幕 은 히브리어 '오헬 모에드'로서 '만남의 장막' Tent of Meeting 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은 하나님이 그 곳에서 이스라엘을 만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회막은 성막(출26:1, 민9:17), 증거막(출38:21, 민1:50), 법막(대하24:6),

성소(출25:8, 레10:18), 여호와의 전(출23:19),

하나님의 집 혹은 장막(대상6:48), 여호와의 장막(레17:4)으로도 불리웁니다.

이 회막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건축한 것입니다 (출25:8, 21-22).

 

▲2. 지도를 그려오라  (18:3~10)

여호수아는 실로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희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취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 정복을 왜 게으름 피우고 지체하느냐는 것입니다 (3절).

 

가나안 정복을 시작한지 7년 정도 지났습니다.

이미 요단강 동편에서 2지파 반이 땅을 분배 받았습니다.

요단강 서편에서도 2지파 반이 분배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받은 5지파는 가나안 땅 정복에 소극적이었을 것입니다.

나머지 아직 분배받지 못한 7지파들은, 5지파가 솔선수범하지 않으니, 의욕을 상실했을 것입니다.

 

이들 7지파가 시들해진 이유는,

갈렙은 유다지파이고, 여호수아는 에브라임지파입니다. (이미 땅 분배가 끝났음)

그러니 7지파 중에서는, 뚜렷한 영적 지도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전쟁에서 가나안 족속들을 이미 격파하고 중요한 지역들을 점령했기 때문에

마음이 해이해졌을 것입니다.

 

오늘날 영적 전쟁에서도 나태하고 안일주의로 나가려는 마음이

사단에게 속는 마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을 행치 않으면 죄가 문 앞에 엎드린다고 했습니다 (창4:7).

 

교회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구속사역을 해 나가야만

사단에게 넘어지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적극적으로 말씀과 기도와 전도에 집중하지 않으면

죄성으로 인해 악한 마음이 들어오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다 누릴 수가 없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매 지파에서 3명 씩 선정하여 아직 분배하지 않은

가나안 땅을 두루 다니면서 일곱 부분으로 책에 그려 오라고 했습니다.

정복에 사용할 목적도 있지만, 분배의 목적에서 강이나 산 등을 중심으로 그려 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실로의 회막 앞에서 제비를 뽑겠다고 했습니다 (4-9절).

실로에서 제비 뽑아 받을 지파는 7지파인 베냐민, 시므온, 스블론, 잇사갈, 아셀, 납달리, 단 지파입니다.

 

여호수아는 그 7지파에서 3명씩 선정하여 모두 21명이

그 7지파가 받을 땅을 탐지하여 7지역으로 그려 오라고 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21명이 그려 온 지도를 근거로

실로 회막 하나님 앞에서 제비 뽑기를 하여 7지파에게 기업을 분배했습니다 (10절).    주1)

 

▲3. 베냐민 지파의 기업 분배 (11~28절)

베냐민 지파의 분배 받은 땅과 성읍과 촌락들은 유다 지파와 요셉 자손의 기업 중간에 있었습니다.

유다 지파의 땅은 남단에 위치해 있고 

북쪽으로 요셉 자손인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가 위치해 있는데

베냐민 지파의 기업은 그 유다 지파와 요셉 자손의 기업 중간에 있었습니다.

 

베냐민 지파에 할당된 땅은 대체로 산악지대이고 약간의 사막지대이고

일부는 여리고와 예루살렘 근방의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에 있어서 양 지파가 관련하게 됩니다 (15:8, 63, 삿1:21).

여리고도 요셉 자손인 에브라임 지파와 경계에 있어서 양 지파가 관련하게 됩니다 (16:7).

 

베냐민 지파의 영토는 가나안 남북을 잇는 전략상의 주요 도로상에 위치해 있어서

역사적으로 분쟁 빈도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는 호전성을 띠게 됩니다.

 

일찍이 야곱이 예언한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는 내용과 부합됩니다 (창49:27).

베냐민 지파의 영토는 유다 지파와 요셉 자손의 사이에 위치해 있는 것은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동복(同腹) 형인 요셉 자손의 곁에 거하므로   *동복 : 어머니 배가 같음

그 유대 관계가 돈독하게 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예루살렘 곁에 거하므로서 후일에 남북 분열시 유다 지파와 결속하여

다윗 가문과 하나님의 성전을 고수하게 됩니다.

 

전에 모세가 예언한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는

내용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신33:12).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제비뽑기 결과는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신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잠언16:33,에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結言>

베냐민 지파는 하나님이 야곱과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분쟁지역에 있는 동시에

형제 지파의 사이에서 안전히 거하는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막 앞에서 제비뽑기를 한 결과가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이는 당시 제비뽑기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실로 모든 일이 사람의 의지대로 하는 것이라 해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묵상할 내용

 

▲1. 분란이 생길 조짐이 있으면, 예배와 기도로 돌아가라

땅을 배정받지 못한 남은 7지파들에게 땅을 분배하기 위해

실로에 모인 회중들이 회막을 세웠습니다.

 

1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에 회막을 세웠으며 

그 땅은 그들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

지금 실로에 세워진 회막은 사울 시대 이전까지 실로에 위치하였습니다. 

실로에 회막이 있다는 것은 실로가 이스라엘의 종교, 정치, 군사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지역이라는 의미입니다. 

 

'실로'는 '평화'를 나타내는 '샬롬'과 어원이 같습니다. 

'평온의 처소, 안식의 처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30km 떨어져있습니다.

회막이 실로에 세워진 이유는 

아직 땅을 분배받지 못한 지파들에게 공평한 분배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먼저 분배를 받은 지파들에게는 이미 좋은 땅이 분배되었고, 

나머지는 척박하거나 지형적 경계가 어려운 지역들만 남게 된 것입니다. 

 

지파분배가 미진해진 상황에서 여호수아는 

가나안 중심부인 실로에 회막을 세우고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중심의 신앙 공동체성을 함양함과 동시에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임을 상기시켜

기업분배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배분받는 것은 단순히 남은 땅을 배분하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거룩한 행위임을 인지하기 위해 회막을 세우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서, 늘 평화스럽지만은 않습니다.

때에 따라선 목소리가 격앙해지며, 심지어는 고성이 오고 갈 때도 있습니다.

 

회의 할 때나, 대화할 때나.. 뭔가 분란의 소지가 보인다면,

빨리 회의나 대화를 중단하고, 기도하는 것이 '해결책'입니다.

그런 분위기를 계속 방치하면.. 결국은 서로에게 깊은 상처가 되는 말들이 오고가게 됩니다.

모두가 승자 없는 패자가 되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우는 것입니다.

 

사실 회의나 대화에 있어서, 서로간에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꼭 대화가 길어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골이 더 깊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같은 깨어있는 지도자는,

회의나 대화가 길어질 때면, 그 분위기를 끊고, 예배와 기도회의 자리로 회중을 인도합니다.

 

선교역사 기록에 보면, 초창기 선교사 대회, 교단 총회는

주로 부흥회 중심의 모임이었습니다.

대회로 모이든지, 총회로 모이든지..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예배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대회 (컨벤션)나 총회가 아름답게 끝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서로 토의하고 격론을 주고 받은 회의보다, 더 아름답고 은혜스럽게 끝난 것입니다.

 

리더는 이렇게, 회의, 대화, 컨벤션을

여호수아처럼, 은혜스럽고 아름답게 진행하고, 이끌어가는 영적 지도자입니다.

▲2. 여호수아는 7지파에게 새 땅에 대한 비전을 심어주었습니다!

 

땅을 분배받지 않은 일곱 지파,  
왜 그들은 땅을 분배받는데 소극적이었던 것일까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수18:3

오늘날에도 전쟁을 할 때 보면, 미사일도 쏘고, 비행기도 보내고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지상군이 투입되어, 완전히 점령을 끝냅니다.

 

이미 12장에서 여호수아가 가나안 31개 거점 도시, 주요 성읍의 점령을 다 마쳤지만, 

이제 각 지파는, 자기가 기업으로 분배받은 땅에서,

마지막 지상군을 투입해서, 완벽하게 점령해 나가야 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땅을 분배받지 못한 7지파가 느슨해져서, 여호수아의 책망을 들은 것입니다. :3 

그들이 느슨해진 이유는,

 

1) 긴장이 풀리고 피곤해 짐. 
38년간의 광야생활, 7년간의 정복전쟁.. 사실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제 좀 쉬자. 전쟁을 하더라도 좀 쉬었다 하자..'

다 되었으니, 나머지는 좀 쉬었다 해도 되지 않느냐?

이렇게 긴장이 풀리고, 느슨해져 버린 것입니다.


2) 두번째로 7지파에겐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유다지파에는 지도자 갈렙이 있었고,   
요셉 지파에는 지도자 여호수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7지파는 뭐 뚜렷한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긴장이 풀리고 느슨해진 것입니다. 

 

이때 여호수아는 '그들이 아직 보지 못해서 느슨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7지파에 각 지파 3명씩, 도합 21명을 보내서 '지도를 그려오게' 합니다.  

지도를 그려서, 비록 정탐을 가지 않은 나머지 지파 사람들에게 '지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 입니다.

 

'너희는 각 지파에 세 사람씩 선정하라 내가 그들을 보내리니 그들은 일어나서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들의 기업에 따라 그 땅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 18:4

 

위 구절을 자세히 보면, 땅 분배가 이미 제비뽑기로 결정난 모양입니다.

그래서 '기업에 따라' 지도를 그려오라고 했는데,

여기서 '그리다'는 말은, 상세히 자세하게 묘사함을 뜻합니다. 대충이 아닙니다. *describe

 

당연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해외여행을 간다고 칩시다.

그러면 먼저 그 여행목적지에 대해서, 사진이나 영상으로 미리 보았기 때문에,

거기에 가고 싶다는 동기가 부여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사진이나 영상이 없었으므로, 지도를 그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누가 여호수아와 같은 훌륭한 지도자입니까?

자기를 따르는 회중들에게 비전을 심어주는 지도자입니다.

 

지도자가 비전을 심어주는 이유는,

먼저 자기가 뭔가 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본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회중들에게 비전을 심어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우리나라는 해외연수를 많이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일본으로, 다음에는 미국으로, 다음에는 유럽으로, 세계 각지로

직장인, 공무원들이 해외연수를 떠났습니다.

가서 선진화된 문물과 시스템을 보고 나니까.. 사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 지자체가 활성화되고, 각 도시와 군과 읍이 선진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세상적, 일시적'인 것들을 보는 지도자가 아니라,

영적이고 영원한 것을 보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구약에 선지자를, 선견자라고도 불렀는데, '미리 본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 가정과 신앙공동체가 뭔가 소극적이로, 느슨해져 있다면,

이런 '보는'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호수아와 같이, 끊임없이 회중들에게 나아가야 할 길을 '보게 하는'

그래서 '지도를 그려오게 하는' 그런 영적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3. 자녀가 훌륭한 스승을 만나도록 부모는 기도해야!

이런 7지파의 소극적 태도는

적극적으로 기업을 취하려고 했던 유다 지파와 요셉 지파와는 대조적입니다.

그들은 아마 갈렙과 여호수아와 같은 탁월한 지도자가 있어서, 적극적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초등, 중등, 고등, 대학 과정에서, 훌륭한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입니다.

교회에서도 훌륭한 스승과 동기생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 엄청난 축복입니다.

 

아무렇게나 운에 맡기는 것보다, 기도하는 부모는,

그 자녀가 훌륭한 스승을 만날 확률이 더 높을 것입니다. 

 

..........................

 

주1)

이스라엘이 한 제비 뽑기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제비 뽑기는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나타내는 계시의 방법 중 하나입니다.

제비 뽑기는 하나님이 친히 명령하셨고 (민26:55), 하나님이 친히 당신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레16:7-10, 삼상10:20,21, 14:42).

 

그래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록 제비는 사람이 뽑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께 달렸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잠16:33, 18:18).

 

그러나 제비 뽑기가 전 세대에 사용된 계시 방편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대언자인 선지자들을 통해 나타내던 신지시대에는 제비 뽑기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신약시대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단지 사도시대에 사도 수를 보충하는 사건에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행1:26).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제비 뽑기를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은 무리이며

오히려 요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엔 성령의 조명 하에 성경에서 찾으려 해야 합니다 (딤후3:15-17).

실로의 회막 앞에서 제비 뽑기를 한 사건을 통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일을 결정하려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