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사흘간 우리가 살펴볼 내용은 구약과 신약전체 성경을 해석하는 일종의 '해석의 틀'을 우리가 이제 배우게 될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오늘 오전 오후 두 번 강의로 구약을 끝내고, 월요일과 화요일은, 신약에 나타난 "언약"을 우리가 공부할 건데요.
아주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고 재미있게 공부하면서도 또 성경을 이해하는 좀 깊이 있는 시간을 좀 가지게 될 겁니다.
◑시내산 언약
오늘 본문에 기록된 시내산 언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 나라로 부르시고 이 나라를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유로 삼으시는.. 그 언약을 맺는 사건입니다.
시내산 언약은, 성격상 제사장 나라로 부르는 언약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도 조명할 수 있고요.
또 이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는, 하나님께서 왕이 되고 이스라엘은 신민이 되는 거죠.
또 제사장 나라는, 오늘날로 생각하면 교회입니다. 그래서 일종의 '교회언약' 이라는 관점으로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고, 우리는 그의 몸이죠.
또 성경이 시내산 언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를 우리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렘31: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지금 새 언약, 신약 시대를 바라보면서 새 언약에 관한 내용을 선언하는 그 와중에
이것이 옛날에 맺었던 언약과 어떤 부분에서 차별화 될 것임을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가 선포하고 있어요.
자 출애굽의 역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추상적인 언약이 아니라 구체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서 나오던 날에 맺은 것(언약)과 같지 아니할 것은.. 역사적인 날이죠.
그 언약을 맺었는데, 그 결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었다.. 라고 얘기합니다. 렘31: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시내산 언약이 '결혼언약' 이었음을 뜻함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니 시내산 언약의 성격이 무엇일까요? 결혼언약입니다. 그래서 이 언약을 맺은 결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내가 된 것이죠.
이 부부, 또는 결혼의 메타포어(비유)는 계속 구약 선지자들에 의해서 반복됩니다. 대표적으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우상을 섬겼을 때 그것을 외도 한 것으로, 그렇게 하나님이 선언하지 않습니까. 그 근거가 여기에 있는 것이죠.
그 결혼을 했는데, 결혼 생활은 그렇게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렘31:32
누가 결혼언약을 깨뜨린 것입니까? 이스라엘이, 즉 신부가 깨뜨린거에요. 오늘 저녁(2강)에는 이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1강)은 '결혼언약'이라는 관점으로 출애굽기, 출1~40 장까지를 조명하면,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날도 결혼식을 하면, 우리가 결혼식에서 반드시 경험하게 되는 순서들이 있잖아요. 그런 관점으로 성경을 읽어보니까,
놀랍게도 오늘날 우리가 결혼을 경험하는 그 내용과 출애굽기에 기록된 내용이 굉장히 유사하다.. 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어요.
그래서 출19장부터 40장까지, 이 사실을 이 시간에 쭈욱 훑어볼 것입니다. (물론 이 부분을 가지고 책도 쓰고, 논문을 쓴 연구자들도 있어요.)
보통 이제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면, 요즘은 뭐 시대가 바뀌었죠. 그래도 이제 통계적으로나 전통적으로 보통 프로포즈는 누가 합니까? 남자들이 먼저 하잖아요.
그래서 신랑의 청혼이 있고,
또 중매쟁이의 역할이 있습니다. 모세가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고요.
프로포즈를 이제 신부가 승낙하는 장면이
출애굽기에 아주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신부의 정결 예식이 따르죠.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지만, 유대인들은 오늘날까지도 이 관습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막상 이제 결혼 예식이 시작됐을 때, 신랑이 보통 먼저 입장하죠. 신랑이 입장하고 신부가 입장하는.. 이러한 결혼식의 요소들이 출19장에서 이제 제가 발견한 거에요. 한 번 살펴볼까요?
◑출19장에 나타난 결혼(언약)식
▲1. 신랑의 청혼 출19:3~6 출19:3~6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청혼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자 출19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은, 19장 이전까지의 하나님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요. 19장 이전까지의 하나님의 모습은, 성경표현 그대로, 강한 손으로 주권적으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는 뭐 바로의 동의를 구하신 게 아닙니다. 사실은 바로와 그 이집트를 열 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출해 내셨죠.
마치 불난 집에서 아이를 구출할 때, 아이를 일일이 설득하지 않고 일단 끄집어내고, 그 다음에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죠.
그런데 이제 19장에서는 하나님이 굉장히 부드러워지십니다.
사실 고대 근동의 관습에 따르면, 노예를 누군가가 속전(속량)을 해서 해방 시키면 해방된 후에 노예는, 자기에게 돈을 지불하고 값을 주고 자기를 산 사람의 소유가 돼요.
가만히 있어도 사실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노예가 된다고 볼 수가 있어요. 근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그런 노예적 주종관계를 맺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시내 산으로 불렀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기 전에, 아라비아 반도 남쪽 끝에 있는 처음 모세에게 현현하셨던 그 약속된 장소로, 2백만 백성을 다 불러 모으셨어요.
그리고 그 산 밑에 진을 치게 하고, 산꼭대기로 지금 모세를 부르신 겁니다. 모세를 불러서 뭐라 그러시냐면 '네가 이스라엘 백성에 가서 이렇게 고하라' 는 겁니다. 19:3
'내가 애굽사람들에게 어떻게 행하였음을 너 봤지?' 애굽의 이집트는 다신교 사회니까 얼마나 많은 신들이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께서 모든 신들 위의 신이다. 가장 강하신, 하나님이 힘이 제일 센 신이다'라는 사실을 이집트 사람들도 알고,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도 다 알게 됐어요. 그만큼 하나님이 매력적인 분이죠.
그런데 힘만 세고 머리는 빈 사람들이 있잖아요. 근데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에요. 어떻게 알 수 있냐면,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개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출19:4
저는 이 말씀을 굉장히 의미 깊게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출1~18장까지의 역사를, 이 한마디로 응축해서 요약하시는데요. 시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계세요.
사실은 좀 더 현실적이고 과학적으로 표현하면, 홍해를 갈라서 인도해 왔잖아요. 그러니까 홍해를 뭘로 갈랐느냐면, 엄청난 규모의 바람을 일으키셔서 물을 가르신거에요.
이제 바닷물이 벽처럼 서 버린 거죠. 사실 거기를 통과해 가는 과정은, 땅 밑을 보면 뭐 흙바람도 많이 날렸을 거고, 진흙에도 빠졌을 것이고.. 그런 걸 좀 연상할 수 있어요.
근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것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내게로 인도했다..'
굉장히 아름답게 시적으로 묘사하시죠.
대개 남자들은, 시집을 사지 않아요. 특히 공대생들일수록 무슨 시를 읽습니까?
근데 그렇게 문학과 거리가 먼 남자들도 연애를 시작하면 시집을 사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그랬거든요.
제가 1970년생인데 저희 때만 해도 연애편지 세대에요. 요즘은 카톡을 해서, 우리 아이들 둘이 지금 대학생인데, 얘네들 친구와 교제하는 거 보면 다 카톡으로 합니다.
카톡카톡카톡으로 하는데, 저희 때는 편지를 쓰니까 저하고 제 처하고 나눈 편지만 해도 엄청나죠.
근데 맨날 똑같은 얘기만 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글을 쓰다 보니까 참 표현이 빈곤함을 느끼게 돼요.
그래서 멋있는 표현.. 뭐 김춘수 씨의 '꽃' 그런 표현들이 있잖아요. 그런 거 베껴다가 쓰게 되고 헤르만 헤세가 남긴 멋진 표현들을 베껴서 이렇게 쓰게 되죠.
사랑하면 남자가 좀 문학적이 될 때가 있어요. 연애할때 조차도 시집을 안 읽는다? 그런 분은 평생 희망이 없습니다. 결혼 후에도 그냥 건조한 표현만 할 수밖에 없죠.
하나님께서 당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실 때 시적으로 멋있게 계시하셨어요. :4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렇게 명령하신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굉장히 아름답게 계시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에도 너무 매력적으로 보이는 거예요. '힘도 세신 우리 신이, 굉장히 지성적이다' 이제 이런 인상을 주시는 거죠. (출19:4절의 '독수리 날개로 너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다'는 시적인 표현을 볼 때)
저는 제 처를 고등부 때 우리 교회에서 만났기에 한 번도 저는 소개팅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근데 소개팅을 나갔던 사람들, 또 그 사람들에 대한 심리를 이야기하는 어떤 교수님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다가 참 인상적이어서 제가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1)
출19:5절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다.'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지 몰라요. 연인 사이에 주고받는 표현입니다. '너는 내 꺼!'
이 말은 사실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전 세계를 다 소유하신 억만장자 이신 하나님이 힘도 세고, 머리도 똑똑하고, 학벌도 좋아! 그런데 경제력까지도 아주 든든히 갖추신 분이죠.
근데 이런 분이 '너를 내 소유로 삼는다'고 하신 말은 뭐냐면 결혼하게 되면, 그 하나님의 모든 소유가 다 신부인 우리 것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2. 모세의 중매 출19:7
출19:7 '모세가 내려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들 앞에 진술하니'
이렇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매력적으로 제시한 다음에 중매쟁이 모세에게 6절에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렇게 비전도 제시하죠.
그 다음에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6 사실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셔도 되는데, 중매쟁이를 통해서 말씀하신 거예요. 이게 신랑의 청혼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3. 신부가, 신랑의 퍼로포즈를 승낙함 19:8
출19:8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하매'
모세가 산꼭대기에서부터 내려왔어요. 백성의 장로들을 불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모임을 산헤드린 공회의 소집으로 보는 분들도 있어요. 우리로 이야기하면 국회를 소집한 거죠.
백성의 대표 전체를 소집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 그대로 전달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듣고 어떻게 얘기했어요?
8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다.' 신부가 하나님의 <프로포즈를 승낙>한 겁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또 산꼭대기로 올라갔어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하나님 쟤네들이 좋답니다.'
하나님께서 참 마음이 좋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래 오늘부터 그러면 동거하자' 이렇게 하시지 않고 공식적으로 '우리가 예식을 치르자!' 하신 거예요. 그래서 예식은 언제 치르느냐? 삼일 후입니다.
▲4. 신부의 정결예식 19:9~15 출19:10~11절은, 신부의 정결 예식입니다.
3일 동안 성결하게 하여 옷을 빨게 하고 셋째날은 내가 시내산에 현현할 것이다. 이렇게 이제 선언하시죠.
출19:10~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정결예식은 근데 '미크베 Mikve'라는 결혼 전 정결예식과 관련이 있어요. 주2)
근데 고대 근동의 결혼 관습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신부의 정결 예식을 요구하신 거예요.
그런데 여기가 지금 광야이잖아요. 그 많은 군중이 어디서 목욕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약식으로 이렇게 옷을 빨고 준비하는 예식을 갖춘 거죠.
▲5. 결혼 예식 19:16~20
삼일 후에 '신랑 입장'합니다. 신랑이 입장하는 장면을 아주 인상적으로 기록하고 있어요. 셋째날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 가운데, 큰 나팔소리를 더하여 시내산 꼭대기에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 강림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6~20
출19:16~20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여호와께서 시내 산 곧 그 산 꼭대기에 강림하시고 모세를 그리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현현하셨어요. 비록 구름과 불가운데라서 실제 모습이 보이진 않으셨죠. 우리에게 있어서 성육신과 같은 그러한 중요성을 갖는사건이에요. 얼마나 민족적인 자긍심을 높이는 순간인지 몰라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정말 모든 국민이 보는 앞에서 불 가운데 강림하신 사건!
저는 이제 성경지리답사를 아직까지 안 가봤는데 오늘날도 이제 시내산으로 추정되는 산이 2~3개의 후보가 있대요. 그 중에 한 산이 1/3 정도가 위 산꼭대기가 이렇게 불에 탄 흔적이 있답니다. 그래서 가이드가 '이게 성경에 나오는 그 장면이다' 라고 소개한다고도 해요.
어떤 면에서는 제가 16절을 읽을 때마다 좀 웃음이 나는데요. 결혼식 때 신랑 입장할 때, 이제 반주를 하잖아요. 그래서 나팔소리도 나고 한 것입니다. :19
근데 제가 여태까지 경험했던 결혼식 중에 제일 화려했던 결혼식이 기억납니다. 주3)
우뢰와 번개, 폭죽 같은 게 막 터지고 그 다음에 들어와 드라이아이스 연기같은 빽빽한 구름이 있고 그 다음에 나팔소리도 들리고.. 하나님이 화려하게 신랑입장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역시 중보자(중매장이) 역할을 하는 모세가 대표로 신부의 역할로 신랑을 맞이하러 올라가는 장면이 있죠. :20
▲1. 결혼 서약 출20:1~24:7 그 이후에 전개되는 내용이 출20장, 여러분이 다 아시는 내용입니다. 신부서약이에요. 이게 십계명입니다.
결혼 서약은 결혼식 행사 중에서 가장 하이라이트입니다.
이런 결혼예식의 과정속에서 보면, 십계명의 의미가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 거예요.
다시 소개팅 현장으로 여러분 좀 모실게요. 오늘 본문이 '결혼언약'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결혼하시고 연애하셨던 그 순간들을 기억해보시길 바래요.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제 내가 프로포즈를 했더니 상대도 '저도 당신을 볼 때, 처음부터 첫눈에 반했어요. 아주 너무 좋아요.' 그러는 거예요. 얼마나 기분이 좋겠어요.
근데 신부가 좀 이상하게 얘기합니다. (이렇게 가정해 봅니다) '저도 일평생 당신도 사랑할게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원래 제가 사교성이 있어서 이성친구가 많은데 내가 그 사람들 다 포기하고 당신을 선택할 수는 없어요.
그냥 당신도 one of them, 그러나 항상 당신이 내 마음에 우선순위로 1순위! 그러나 2순위, 3순위도 있고, 난 계속 교제할 테니까 그걸 저한테 뭐라 그러면 안 돼요!'
만약 신부가 그러면 신랑은 좀 고민할 겁니다. 결혼 만큼은 두 단어, only you! 가 나와야 되죠. '내가 당신만을 사랑하겠습니다!' 라고 여러분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서약하고 결혼 하신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십계명을 보면 제1계명과 2계명의 내용이 딱 두 단어로 요약하면 only you 입니다.
'그때까지 다신교 사회에서 우리가 다른 우상도 생겼고 뭐 다른 신들에게 마음을 줬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겠습니다!'
그게 결혼언약의 관점으로 볼 때, 십계명이 내용이 그렇다고요. 이거는 사랑의 배타성 이죠.
'저는 분명히 제 아내만을 사랑하겠다'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서약하고 저는 뭐 가난해서 보석으로 된 결혼 반지를 그냥 제가 못했어요.
그냥 커플링 꼈던 걸로 했는데 그래도 그 반지가 '온리 유'를 설명하고 있잖아요.
제가 그렇게 서약을 했다고 해서, 지구의 인구 반이 이성인데 제가 다른 이성에 대해서 무례하게 대해야 하나요?
내 아내를 사랑하지만, 다른 이성도 존중해야지,
아내 사랑이 지나쳐서 다른 이성들을 무례하게 대하면 안 됩니다.
기독교의 배타성이라는 것은 사랑의 배타성입니다. 그걸 오해하시면 안돼요. 다른 모든 이성에 대해서도, 또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나이스 해야 됩니다. 평화를 추구해야 되고요. 하나님께서 그걸 명령하셨죠.
그러니까 기독교의 배타성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물론 의미 있는 눈빛을 서로 주고받으면 안 되겠죠?
그 신부서약이, 십계명이라는 것입니다.
▲2. 성혼(언약) 선포 24:8 그 다음에 출24장에 보면 성혼이 선포됩니다. 오늘날도 주례자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부됨을 선언하죠.
그리고 그 다음에 피로연하고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오늘날의 결혼식과 비교할 때, 시내산 결혼언약이 대부분 이렇게 놀랍게 일치합니다.
그런데 딱 하나 다른 게 있어요. 그게 출24:8절의 '언약의 피' 입니다.
출24:8~11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모세는 그릇에 담긴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말했습니다. '이 피는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너희와 맺는 언약의 피다.'
결혼 예식을 하는 도중에,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잡습니다. 그래서 그 '언약의 피뿌림' 예식을 해요.
이게 오늘날 결혼식 하고 좀 다른 것이죠. 이 의미를 잠시 후에 설명드리겠습니다.
▲3. 피로연 24:9~11 오늘날도 결혼식에 참여하면, 요즘 코로나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지만 그냥 돌려보내지 않죠. 맛있는 잔치 음식을 배부르게 먹이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그러셨어요. '자 모세와 이스라엘의 장로 70명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발 아래는 마치 청옥을 깔아놓은 것처럼 보였고, 그것은 마치 하늘처럼 맑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24:9~11
여러분 이 구절을 그냥 읽을 수가 없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상식처럼 알고 있는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람이 눈으로 보면 바로 죽습니다. 그리고 그 원리가 바로 조금 전까지도 적용되었어요.
하나님이 결혼하는 잔치 마당에, 지금 시내산 자락에 2백만 백성을 다 모아놓고 오로지 모세만 시내산에 올라올 수 있었어요.
호기심에라도 하나님 어떻게 생겼나 보자 해서 시내산의 경계를 넘어서면 가차없이 죽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엄하셨어요.
죽일 때 어떻게 죽여야 되냐면, 활로 멀리서 쏘아서 죽이든지 돌을 던져서 죽이라 그랬어요. 왜 그랬을까요? 출19:13
경찰이 범인 잡으려고 시내산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가 경찰도 시내산 경내를 범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범인을 멀리서 활로 쏴서 죽이라 그랬다고요. 그렇게 절대 다가오지 못하게 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태도를 돌변 하십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대표 70명을, 산헤드린 공의회원들이겠죠.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났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루살렘의 모습처럼 그 시내산 산꼭대기에 멋진 연회장이 있는거에요. 보석으로 깔아놓은 것 같아요. 그리고 거기에 하나님이 잔치 음식을 배설했어요.
여러분, '하나님을 보면서 먹고 마셨다' 그랬어요. 그 분위기가 엄했다면 음식이 소화가 안 됐겠죠.
하나님께서 정말 이스라엘 역사에서, 유일무일하게 이렇게 예외적인 장면을 연출하신 거예요. 이것이 결혼 피로연 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이 이 부분을 두고 왈가왈부 하면서 이렇게 이상한 이야기들을 하는 신학자들이 생겼어요.
성경을 뭐 꼭 하나님 말씀이라고 해석하지 않고 그냥 '사랑의 고전이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분들이 소위 말해서 JEDP 문서설입니다. 주4)
만약에 하나님이 태도를 바꾸셨다면, (19장의 엄하신 하나님에서 → 24장의 잔치 베푸시는 하나님으로) 일단 텍스트 안에서 그 원인을 찾아봐야 되겠죠.
근데 분명한 원인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성혼을 선포할 때, 소를 잡는 그 예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고 있어요.
죄인인 이스라엘과 거룩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동거하고 어떻게 결혼을 하겠어요? 죄가 가로막혀 있기 때문에, 역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중보자 모세를 통해서만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으시다가
이제 혼인예식의 정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그 언약의 피, '언약의 피뿌림' 예식을 통해서 이들의 죄를 사하시는 것을 상징적으로 행하시고
죄에 가로막혀 있는 장벽이 무너졌으니 이제 자유롭게 신부를 안으시는 것이죠. 그렇게 하나님의 태도에 변화의 원인을, 성경스스로 얘기하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포도주를 드시고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 그랬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새 언약, 눅22장에서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 했을 때는 예수님의 머릿속에 '옛 언약'을 염두에 두신 거죠. 옛 언약이 뭘까요?
지금 출애굽기 24장의 이 본문을 염두에 두신 겁니다.
이때는 '황소의 피'로 앞으로 오실 예수그리스의 피가 예표되었다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실제 하나님의 피로 새언약을 맺으시겠다..고 하신 것이죠.
사실은 본질이 다른 게 아니라 그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증표(황소의 피 → 포도주, 예수님의 피로)가 바뀐 겁니다.
황소의 피가 지금 우리는 포도주로, 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역사적으로 경험한 이후로 이제 증표가 바뀐 것이죠.
그래서 피로연까지도 기록이 되어 있고요. 그 다음에 기념촬영, 이게 그냥 하는 게 아니라 법적인 효력을 가져요.
▲4. 기념촬영 24:12~18, *돌판 '이 부부가 실제 결혼했고 이게 증거다' 그게 이제 기념 촬영 사진이죠. 요즘이야 뭐 디지털 카메라로 한번 찍으면 되지만 예전에 카메라 없었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돌에 파셨습니다. 그게 십계명(결혼 서약문, 언약선언문)이고
또 추가적으로 제사장 나라를 세우는 국가의 법을 40일에 걸쳐서 모세에게 주셨죠. 기록하게 하셨어요. (21~23장) 그것이 어떻게 보면 오늘날 기념 촬영의 증거로서의 효력을 갖는다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24장 이후로, 출40장까지의 전체 역사는 무엇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냐면 성막 입니다.
예전에는 십계명과 성막을 딱딱하게 공부를 했다면, '결혼언약'의 관점으로 보면 이제 결혼을 하고 신랑 신부가 됐어요. 이제는 신랑신부가 동거해야 됩니다. 그래서 같이 살 집이 필요해요. 그게 성막 입니다.
▲5. 신혼집 건축 규례 출25~31장 그래서 출25~31장은, 성막을 만드는 규례를 자세하게 모세에게 일러주십니다.
성막의 의미가 뭐냐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 그 뜻이거든요.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그 빽빽한 구름이 출애굽기 마지막 40 장에 보면, 거기 완성된 성막 위에, 거기에 이렇게 임하시는 것으로 끝나요. *마치 시내산에 임하셨던 것처럼
그러니까 출애굽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신부된 이스라엘과 결혼하는 이야기입니다.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서, 노예로 살던 신부를 해방시키고 그다음에 프로포즈에서 결혼식 올리고 성막 짓는 이야기.. 이 전체가 마치 여자 아이들이 읽는 '왕자와 공주 이야기'처럼 너무 핑크빛 이야기인 거예요. 그래서 출애굽기가 너무 재미 있습니다.
▲6. 신부의 외도 출32:1~6
그런데 이제 이렇게만 이야기하고 끝났으면 참 좋았을텐데 출애굽기 중간에 허리 부분에, 정말 있을 수 없는 이야기가 소개되죠. 그러면서 전체 스토리가 막장 드라마로 바뀌어 갑니다.
이 신부에게 옛날 남자가 있었어요. 뭐 결혼하기 전에 사귈 수 있죠. 그런데 최소한 결혼식 올리기 전까지는 관계를 정리해야죠. 근데 이스라엘이 그걸 정리 안 한 거예요.
이제부터는 성혼이 선포된 거죠. 신랑신부관계가 됐어요. 그리고 이제 국가의 청사진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 꼭대기로 다시 부르시고, 거기서 40일을 있었거든요.
아니 올라간 모세가 어떻게 됐냐? 백성들은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이스라엘이 예전에 자기들이 섬기던 금송아지 신상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음란하게 섬겼다.. 그랬거든요.
'네가 우리를 해방시킨 신이다' 그러면서 그 앞에서 뛰어놀았어요. 외도한 겁니다. 결혼식을 하자마자 신부가 없어졌어요. 어디 갔나 알아봤더니 옛날 사귀던 친구랑 모텔에 들어갔다.. 여러분 그 결혼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시내산에서 내려와서 모세가 그 현장을 봤을 때,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떨어뜨려서 깨뜨렸죠. 그게 상징적 행위죠. 이 결혼이 깨진 것과 같다.. 는 의미에요. 이러한 막장 드라마가 연출된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이전까지는 하나님 앞에 불평하고 반항할 때 하나님이 그렇게까지 화를 내시진 않았어요. 그러나 지금부턴 다릅니다. 결혼 후니까!
지금부터는 이스라엘이 범죄하는 거는, 신부가 외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도, 신랑의 질투와 분노, 진노로 이제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이제 한바탕 붙는 사건이 있고 그 때 하나님께서 너무 진노하셔서 첫번째 '이스라엘을 다 멸절시키겠다' 하셨고, 그때 이제 모세가 중보하죠.
▲7. 신랑의 진노와 모세의 중보
1차중보 : 진멸, 32:7~14 →증거판을 깨뜨림 :19
2차중보 : 금가루 & 생명책 32:15~35 → 신랑의 별거 선언과 신부의 회개
3차중보 : 33:1~3, 4~23
우리는 모세가 하나님의 진노를 막은 그 중보가 '차라리 저를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시고, 차라리 저를 지옥보내시고 우리 이스라엘 용서해주세요.' 그 모세의 중보기도를 하나만 기억해요.
그러나 성경을 가만히 읽어보면, 모세의 중보기도가 3차에 걸쳐서 이루어졌습니다. 굉장히 놀라워요.
△1차 중보는,
모세가 산 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중보한 거예요.
하나님이 모세와 대화 하시다가 '너 지금 여기서 내려가라. 지금 이스라엘이 바람 났다.' 그 이야기를 하신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무 진노하셔서 '내가 이 더러운 신부하고 살 수가 없다. 내가 이 이스라엘을 (내가 너무 무서운 말씀을 하세요) 싹 진멸해버리고 새 역사를 쓰겠다. 모세 너를 선택해서, 너로 하여금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인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그러니까 모세 개인의 입장에서는 황송한 얘기죠. 자기가 제2의 아브라함이 되는 거 아니겠어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심판을 선언하시니까 모세가 하나님만 딱 엎드려서 '그럴 수 없습니다.' 하면서 하나님께 두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 그러면 큰 스캔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겠다고 해서 이집트에서 그 난리를 치시고,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거기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자기 백성 2백만 백성을 다 광야로 데려오셨는데.. 그 당시 고대 근동 사회에 얼마나 이게 뉴스보도가 됐겠어요? 강대국을 치고 나온 새로운 국민, 그 하나님의 위대함! 뭐 외신들이 다 관심을 갖고 보도했을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데?' '결국은 하나님이 광야로 데려가서 싹 죽여 버렸데!'
'그게 뭐냐고요, 하나님이 이렇게 악한 신이냐고.. 하나님께 스캔들이 일어나서 안 됩니다.
-두번째는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약속하신 그 약속을 기억하옵소서!'
그 두 가지를 갖고 모세가 중보하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래 너의 중보기도를 받겠다. 내가 진멸하지 않겠다.' 하십니다.
여러분 지금 모세는,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어요. 중보자 그리스도의 사역을 소개하면서, 이 내용이 우리에게 크게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참 죄악이 많죠. '이 망할 놈의 세상!' 이런 얘기들을 합니다. 하나님은 그 말을 다 듣고 계십니다.
정말 하나님은 지구를 진멸하고도 남을 만한 엄청난 죄악과 타락한 세상인 것을 하나님은 아세요.
근데 하나님이 왜 지금도 지구를 돌리고 계신지 아세요? 한순간이라도 하나님이 다 진멸해버릴 수 있는 의로우신 하나님이시지만 지금도 우주의 법칙이 적용이 되고, 우리 지구가 돌아가는 이유는 넓은 의미로서 은혜입니다. *보존 preservation 의 은혜
그것도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으로 말미암아 *지금도 보좌 우편에서 중보하심 이 우주의 역사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 모세가 중보를 했기 때문에 자기네들이 멸망가운데 처해 있다가 살아났다는 걸 인식조차 못해요. 금송아지 앞에서 그냥 아무 생각이 없이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인생을 즐기고 있어요.
그러나 그들이 생명 호흡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도 이미 중보자 모세(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은총으로 주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런 은총을, 특별히 우리의 영혼의 구원얻는 정말 그 은총과 구별하여 '일반은총'이라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것도 우리에게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한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어요.
△모세의 두 번째 중보 : 파혼 32:15~35, 금가루 먹임과 생명책
이제 두 번째 중보가 우리가 이미 아는 중요한 내용이죠. 생명책 중보! 그 내용이 뭘까요?
결혼언약의 관점에서 생명책은, 파혼, 이혼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모든 문서기록은. 부부관계를 증거하는 거잖아요.
근데 거기서 이름을 지운다고 하는 것은, 이 모든 내용을 무효화시키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이제 모세가 중보할 때, 그 중보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아주 쿨하게 금방 받아주세요. 그게 조금 이해가 안 돼요.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여러분의 배우자가 외도 하는 장면을
남을 통해 들은 게 아니라, 여러분이 우연히 뭐 모텔에서 나오는 걸 내가 봤다..
잠시 이성을 잃지 않겠습니까?
근데 그 가장 어려운 용서를, 모세의 중보기도를 받고 그냥 용서하시거든요.
물론 그 주도자들의 처단이 있었죠. 그리고 이상한 일을 하나 행하십니다.
그 금송아지를 절구에 넣고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물 상류에 뿌립니다.
그걸 이스라엘 백성들로 마시게 하거든요.
좀 이상한 예식을 하나 행하신 다음에 용서하세요.
그래서 이 부분을 좀 주의 깊게 본 연구자들이 있습니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그래서 이제 용서하시기로 하신 거에요.
: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근데 이제 이상한 일을 행하십니다.
금송아지를 갈아서 물에 타서 마시게 한 사건에 대해서
M. R. Dehaan 박사가 쓴 책에 보면
(제가 벌써 중고등학교 때 저희 교회 도서관에 이 책이 번역돼 있었어요.)
디한 박사란 분은 네덜란드의 로이드존스 입니다. 디한 박사도 원래 과학자요, 의사였어요. 그러다가 은혜 체험을 하고 목사가 되고 신학자가 됐어요.
근데 이제 예전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 과학자의 눈으로 성경을 읽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제 보통 신학자들이 읽는 것과 좀 달라요. 그런데 이 부분에 이 분이 꽂혔어요.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신9:21절에 보면 모세가 이때 일을 회상하면서, 이 내용을 아주 자세하게 서술합니다. '너희가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여러 개의 공정 과정이 있어요. 일단 불사르고 그걸 또 빻았어요. 근데 그냥 빻은 걸로 끝나지 않고 마치 오늘날 미세먼지처럼 곱게 갈았다는 거예요. 마치 용각산 처럼요.
금은 갈면 갈수록 그렇게 입자가 작아진데요. 용각산처럼, 금송아지를 말갛게 그렇게 갈아서 그걸 물에 뿌려서 마시게 했다는 거죠.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과정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디한 박사가 실험실에서 실험했대요.
금을 갖다가 이렇게 갈아가지고 가루를 만들어서 물에다 딱 뿌렸더니 순간 디한 박사가 너무 깜짝 놀라서 이렇게 책까지 썼잖아요. 물 색깔이 적포도주 색깔로 변하더랍니다.
그래서 이 디한 박사는 벌써 느낌이 왔어요. '이게 구약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피구나! 이게 성만찬의 그 잔을 하나님께서 상징했구나!'
'그냥 죄를 용서하신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의 보혈로 용서하신 거구나!' 그리고 이제 이렇게 책까지 썼어요.
그래서 뭐 신학자들이 인용하는 연구물로는, 이런 결과가 나오진 않겠지만 참고할만한 내용이에요.
제가 수 년 전에 저희 교단에 어느 교회에 가서 이렇게 출애굽기 강의를 하면서 이런 디한 박사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3일 동안 집회했는데, 첫째날 맨 뒤에 앉아계시던 그 교회 장로님이 둘째 날에 맨 앞에 앉으셨어요. 그리고 목사님을 통해서 꼭 저를 밥을 사주시겠다고 그래서 예정에 없던 식사를 하게 됐습니다.
장로님 부부가 나오시고 제가 나갔죠. 근데 알고 봤더니 그분이 서강대학교의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님이에요. 자기 전공이 재료공학 쪽이래요.
근데 제 설교 중에, 디한 박사의 얘기를 듣고 자기가 너무 흥미로워가지고 그분이 저한테 어떤 내용을 이렇게 카피해서 주셨어요. (*화면 51:20초에 나옴)
자기 전공분야 에서는 제일 권위있는 학술지랍니다. 그 학술지에 금의 원소 속성에 대한 이런 논문이 발표됐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금은 입자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점점 빨간색으로 바뀐다는 거에요. 그래서 적포도주 색은 물론이고, 더 입자가 작아지면 정말 그야말로 새빨개진데요.
그래서 재료공학 교수님도 그 사실을 학술지 논문을 통해서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런 에피소드가 불과 몇 년 전에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이 배도한 이스라엘, 그 신부의 흉악한 죄를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이제 용서하신 것이죠.
'야 내가 너희를 경험해보니까 너희가 또다시 이러한 죄, 외도하지 말라는 죄를 다시 짓지 않는다는 법이 있느냐?'
지금은 모세 네가 중보해서, 내가 잘 참아서 넘겼지만 그 때 길가에서 그냥 걸어가는 도중에 내가 내 신부를 팍 쳐서 죽일까봐 .. 내가 스스로 두렵다..'
그래서 타협안을 하나님이 제시하세요. '내 사자를 보내서 가나안 7족속을 다 멸해 줄게. 전쟁할 필요도 없어. 그냥 약속의 땅, 너희가 원하는 그 재산.. 뭐 다 누려! 거기 가서 잘 살아라! 그런데 나는 너희랑 같이 안 갈래. 내가 스스로 무서워, 너희를 죽일까봐!' 그런 말씀이 성경에 있어요.
그러니까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그 말씀을 전하고 다 장신구 떼고 그때 회개 다운 회개를 합니다.
신랑신부가 결혼해서 아무리 초호화 타워팰러스 같은데 사는데 신랑이 없으면 그 결혼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하나님 우리와 동행하사이다!' 그게 동행 Fellowship 을 위한 모세의 세 번째 중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동행을 허락하세요.
출33:1~3 '그 땅으로 올라가라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 등 7족속을 쫓아내고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하나님의 이 대사가 마치 드라마의 이렇게 나올만한 너무 가슴에 팍 박히는 말씀을 하세요.
그러니까 이제 모세가 이렇게 중보합니다.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으면 원하건데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33:13
'이들이 하나님의 신부 아닙니까?' 모세가 그렇게 하나님께 사정하는 거에요. 그때 하나님께서 이 모세의 집요한 중보기도에 항복하십니다.
'내가 포기했다. 그래, 너를 좀 편히 쉬게하겠다. 그리고 내가 너희와 동행해 주겠다.' 하시죠. :14
그러시니까 모세가 다시 한번 확인하죠. :15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도 안갈래요..' 라고 모세가 말씀드린 겁니다.
신부가 어느 재벌가에 시집갔는데, 신랑이 '내가 재산 다 줄 테니까 난 너랑 안 살아!' '네 마음대로 살아! 옛날 남자친구 불러서 살아!'
근데 이제 이때 신부가 회개한 거죠. 그게 무슨 결혼의 의미가 있어요?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동행을 결국 얻어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로 말미암아 우리 죄를 용서받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되고 천국가게 됐어요.
'예수님의 중보사역은 이것으로 끝이다' 라고 우리는 착각하고 삽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것,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 마음속은 거룩한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이잖아요. 그래가지고 성령님이 내 마음에 들어와 보셨더니 '얘는 왜 이렇게 원수가 많아? 누굴 미워하고 용서를 못했어! 빨래는 막 차고 넘치고, 설거지는 안 해서 싱크대는 더럽고.. 야 도저히 내거 너랑은 같이 못 살겠다.' 하나님 그러시는 거에요.
하나님이 오늘 나와 하루하루 동행하시는 게 예수 그리스도의 지속적인 중보사역이 없이는 불가능한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오늘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이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세요.
구원을 위한 중보가 아니라, 이거는 동행, 교제를 위한 동행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예수 그리스도와 손잡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의 중보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해요.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서 교제, 동행 하기로 했잖아요. 이제 하나님께서 무엇을 강화하냐면
▲8. 성혼 언약의 갱신 & 신부의 순결 서약 강화 출34장
여러분 출34장을 신랑의 입장에서 읽어보시면 정말 이게 가슴이 아픈 웃음이 나요. 하나님이 뭐라 그러시는지 알아요?
'야 그래서 이집트의 옛날 남자(금송아지)는 이제 피를 좀 보고 용서했어요. (3천명 죽음) 근데 하나님 뭐가 걱정되냐면, 가나안, 거기도 선진국이잖아요. 거기 가면 쭉쭉빵빵 멋진 남자들이 너무 많아요.
이 신부가 또 거기에 눈 돌아갈 것 같아요. 그래서 뭐라 그러냐면 '너희는 절대로 거기 가서 그들과 언약맺으면 안돼!'
지금 언약이 무슨 언약이에요? 결혼언약이에요. 그러니까 언약 맺지 말라는 게 뭐냐면 신부가 또 가나안에 들어가서 바람 피울까봐, 하나님이 그걸 또 다짐 받고 계세요.
'결혼은 신랑이 살아있을 때 또 하는 거 아니야!' 그거 신부에게 확인하고 계시다.고요. 사실 하나님의 애뜻한 마음이죠. 그래서 서약을 다시 받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다시 해피 모드로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즐거이 헌신하며 신랑신부가 같이 살 신혼 집인 성막을 마련하죠.
▲9. 신혼집, 성막의 건축 35장~40:33
성막의 모든 내용 하나 하나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 아내도 고향 떠나서 혼자서 이렇게 살면서 직장생활하면서 저희가 결혼했거든요. 뭐 제가 그릇을 사고 이런 거는 뭐 전혀 관계하지 않았어요.
근데 하나님은 달라요. 그릇은 어떻게 배치하고, 벽지 색깔은 뭘로 하고, 성막 덮개는 1차로 뭘로 하고, 2차는 뭘로 하고, 양탄자는 뭘로 하고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신부를 피곤하게 하는 신랑일 수도 있는데 그게 다 영적인 의미가 있어요. 성막의 모든 기구, 집기는 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 출애굽기 텍스트 안에서 계속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생각이 됩니다.
그러다가 40장에서 신랑신부의 합방이 일어납니다.
▲10. 신랑 신부 합방 40:34~35
여러분 기억하세요. 19장에서는 하나님이 불 가운데 강림하셨죠. 40장에는 쉐키나, 즉 정말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구름 가운데 하나님이 강림하십니다.
그게 신랑신부 첫날 밤을 보내는 거에요. 완성된 성막에 하나님이 임재하셨다는 뜻입니다. 19장의 시내산 언약 때 강림하신 것처럼!
은밀성도 있어요. 구름이니까 소프트 하죠.
여러분 우리 인간은 몸이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어서 하나님이 불 가운데 강림하시면 어떡해요? 뼈와 살이 타는 겁니다. 말 그대로 그냥 태워져서 죽을 수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가 아니라, 이번엔 은밀성과 이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 가운데 강람하세요.
▲11. 광야로의 신혼여행 40:36~38
신혼여행을 어디로 가실까요? 출애굽기 40장 딱 끝나고 어디로 가요? 광야로 갑니다. 광야에 뭐가 볼 게 있어서요? 볼 게 없어서 갑니다. 신랑만 쳐다보라는 거예요.
사실 너무 신혼여행 좋은데 갈 필요가 사실 없어요. 이미 신랑신부가 신혼여행 갈 때는, 서로가 서로에게 신혼여행지죠. 더 신부보다 아름답고, 신랑보다 더 멋진 데가 어딨겠어요?
오히려 막 큰 부호들의 비행기 타고 어떤 섬에 가고 연예인들이 화려하게 신혼여행 가는 분들이 오히려 많이 깨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척박한 데 가는 거예요. 선교지 같은데 가가지고 서로 의지하고, 얘기 많이 하고, 기도 하고.. 이런데 신혼여행 가면 좋겠죠.
자 신혼여행을 광야로 가셨는데, 그 이후에 우리가 역사를 압니다. 그 사이에 신부가 다시 눈이 돌아갔어요.
12 정탐꾼 사건 기억하시죠? 하여튼 틈만 나면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자!' 옛날 남자가 좋았다 그거 아니겠어요?
12 정탐꾼 사건 이후에는 아예 공식적으로 'Back to Egypt' 운동을 합니다. '우리가 모세 말고, 새로 지도자 뽑아서 다시 옛날 남자에게로 가자!' 그 막장 드라마가 그래서 계속되는 거예요.
그러자 하나님이 '얘네들은 안 되겠다..' 그래서 신혼여행 기간을 좀 늘리시죠. 가나안 땅 들어가기 전에. 얼만큼 늘리셨죠? 사십년 동안! 사십년 동안 신혼여행했어요. 어디에서? 광야에서! 뭐 볼 게 있다고? 하나님 바라보라고! 신랑만 바라보는 훈련을 합니다.
그게 하나님이 지극히 당신이 신부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는 방식이었어요.
▲마치는 말 이렇게 해서 출애굽기 일장부터 40 장 까지를 우리가 오늘 배웠습니다. 오늘 저녁에 오시면, 그 이후에 말라기까지의 역사를 우리가 배우게 될 겁니다.
결국 포인트는, 하나님의 지극한 신부사랑! 이것이 결국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고, 깨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교회 사랑 입니다.
동일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랑되어주셔서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 이 자리까지 인도하셨어요.
물론 순탄한 걸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이제까지 오신 분도 많이 계시겠죠. 그러나 더러는 막장 드라마를 쓰신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고, 이 자리까지 인도하셨어요. 앞으로도 그 손을 놓지 않으실 겁니다. 그 내용을 우리가 또 2강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될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1) 그냥 캐주얼하게 교제하는 거 말고 결혼을 전제로 해서 이제 소개 받아서 나갔을 때 남자들이 이 자매를 미래의 아내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경우에는 남자들이 유치하게 재산 자랑을 한답니다. 혹시 경험하셨어요?
'뭐 우리 집에 큰 건물이 좀 있는데, 누나는 시집 갔고 내가 좀 경영학 공부를 해야 되는데..'
뭐 이런 얘기를 하면 '이 남자가 뭐 유치하게 재산 자랑을 하고 그러나?' 이렇게 부정적으로만 보지 마시고, '그게 정말 나를 진지한 결혼 대상자로 생각하는구나..' 이런 심리가 좀 있대요.
그러니까 이제 전통적인 가정 이야기죠. 여자들이 보통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정착의 소명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적어도 이 남자가 우리를 먹여 살리고,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가? 여자는 그거를 확인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죠.
남자들이 진지한 관계로 발전시키고 싶으면 그런 부분에서 이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은근히 그렇게 한다는 거에요. 좀 유치하지만 필요한 반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이제 우리 하나님도 그러신 것 같아요. 프로포즈할 때 재산 자랑을 하십니다.
주2) 오늘날도 유대인들이 전통 혼례를 올리려면 회당에서 랍비의 주례로 예식을 그냥 치르는게 아니고, 조건이 하나 있어요.
그게 뭐냐면, 침례교회에 가면, 침례를 베푸는 욕조같은 게 있잖아요. 회당에도 그런 욕조가 있습니다. 전통 혼례를 올리고자 하는 예비 신부는 반드시 와서 여기서 종교적인 정결 예식이 있어요. 여기서 몸을 씻어야 돼요. 때를 미는 건 아니고, 그냥 물에 담갔다가 나오는 거겠죠.
주3) 근데 제가 여태까지 경험했던 결혼식 중에 제일 화려했던 결혼식이 진천에 있는 제 학교 선배 제가 그때 서울대학교의 미국학 연구소의 조교로 근무할 때인데
근데 학교 선배가 진천 출신인데 결혼을 하신다고 해서, 제가 그때 진천에 내려갔어요. 근데 진천에 이렇게 큰 예식장이 필요할까? 할 정도로 큰 예식장이 있었습니다.
그 예식장에 들어갔는데 '신랑 입장!' 하는데 그 예식장 직원들이 마치 사관생도들처럼 쭉 나열을 해가지고 팡파레를 불고요. 무슨 K-POP 무대공연 처럼 주례단에서 막 폭죽이 터지는 거에요. 그리고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위에서부터 내려와서 분위기를 띄웠어요.
근데 저는 그때 속으로 '참 유치하다. 나는 앞으로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 본문말씀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신랑입장하실 때 제가 봤던 그 서너가지 요소가 다 있는 것 같아요.
우뢰와 번개, 폭죽 같은 게 막 터지고 그 다음에 들어와 드라이아이스 연기같은 빽빽한 구름이 있고 그 다음에 나팔소리도 들리고.. 화려하게 신랑입장을 하셨습니다.
근데 근대사회 이전에는 이거를 2주 동안이나 했대요. 2주 동안 아마 매일 갔던 것 같아요.
계몽주의시대에는 한 3일 했답니다. 오늘날은 약식으로 하루 한답니다.
그렇게 한 번 정결 예식을 하면, 회당장이 '종교적으로 이 신부는 정결한 신부입니다' 이 확인증 받아 가지고 랍비에게 가면, 이제 주례를 받을 수 있는 거예요. 이게 '미크배'입니다.
주4) 그래서 신학자들이 이 부분을 두고 왈가왈부 하면서 이렇게 이상한 이야기들을 하는 신학자들이 생겼어요.
성경을 뭐 꼭 하나님 말씀이라고 해석하지 않고 그냥 '사랑의 고전이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분들이 소위 말해서 JEDP 문서설입니다.
즉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토라 텍스트가 모세의 저작이 아니라 그냥 여러 구전 전통이 있었고, 또 문서 전통이 있었는데 나중에 후대에 포로 후기 때, 이름 모를 어떤 편집자가 짜집기해서 만든 게 오경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자유주의신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그런 4개의 전통 문서설을 얘기하면서 가장 대표적 근거로 삼는 게 출애굽기 19장과 24장의 이 본문이에요.
왜냐하면 출19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과 '가까이 오면 죽인다'고 이렇게 말한 엄한 하나님과 지금 24장에 하나님 모습이 다르잖아요.
이건 왜 그러냐면 원래부터 소스(출처)가 다른 문서들을 편집해서 만들다 보니 이런 일관성을 상실하는 텍스트가 됐다.. 라고 설명하는 거에요. 정말 무식한 추론입니다.